남어진의 현장분투기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대학 가는 수업에 흥미를 잃은 상태로 지냈다. 어느 날 뉴스에서 할머니들이 포크레인 바가지 안에 들어가서 쇠사슬을 목에 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약간의 궁금증과 더불어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있을까. 그러던 중 하루 종일 밀양과 송전탑이 뉴스에 나오길래 한번은 가 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을이 한창이던 10월 첫 날, 해가 지기 두어 시간 전 밀양역에 도착했다. 누군가 ‘저 차에 타면 된다’고 해서 난생 처음 보는 조끼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골짜기로 들어갔다.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인권 침해 감시단으로 활동하는 인권 활동가들이었다.   ​ ▲ 논 한가운데 솟은 송전탑 아래에 있는 사람이 점처럼 보인다. ​ ​ 2 ​ 그렇게 아주 경사가 가파른 산길에 도착하면서 지난한 ‘밀양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후회는 거의 없다. 하지만 가끔은 ‘아 밀양은 참 마음 아픈 곳이구나. 그러니까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꿔야겠다.’라고 생각했으면 지금보다는 아주 조금은 몸과 마음이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조금은 한다. ​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제일 고통스러운 곳인 줄 알았는데, 근사한 명분이 생겨 학교를 자퇴를 하고 나서야 여기나...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대학 가는 수업에 흥미를 잃은 상태로 지냈다. 어느 날 뉴스에서 할머니들이 포크레인 바가지 안에 들어가서 쇠사슬을 목에 감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약간의 궁금증과 더불어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저 사람들은 왜 저러고 있을까. 그러던 중 하루 종일 밀양과 송전탑이 뉴스에 나오길래 한번은 가 봐야겠다 하는 마음이 들었다.   가을이 한창이던 10월 첫 날, 해가 지기 두어 시간 전 밀양역에 도착했다. 누군가 ‘저 차에 타면 된다’고 해서 난생 처음 보는 조끼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차를 타고 골짜기로 들어갔다. 조끼를 입은 사람들은 인권 침해 감시단으로 활동하는 인권 활동가들이었다.   ​ ▲ 논 한가운데 솟은 송전탑 아래에 있는 사람이 점처럼 보인다. ​ ​ 2 ​ 그렇게 아주 경사가 가파른 산길에 도착하면서 지난한 ‘밀양 라이프’가 시작되었다. 후회는 거의 없다. 하지만 가끔은 ‘아 밀양은 참 마음 아픈 곳이구나. 그러니까 더욱 열심히 공부해서 능력 있는 사람이 되어 세상을 바꿔야겠다.’라고 생각했으면 지금보다는 아주 조금은 몸과 마음이 편했을 것 같다는 생각을 조금은 한다. ​ 고등학교를 다닐 때는 학교가 제일 고통스러운 곳인 줄 알았는데, 근사한 명분이 생겨 학교를 자퇴를 하고 나서야 여기나...
남어진
2023.07.10 | 조회 375
기린의 걷다보면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정말 갈 수 있을까    올해 2월 정월대보름날,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는 모임이 있었다. 공동체에 인문학 공부를 하러 와서 인연을 맺은 친구들 중에서 비혼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모임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주제가 있거나 하는 건 아니고, 시간이 되면 모여서 밥 먹고 수다나 떠는 취지로 모였다. 작년 8월에 총 일곱 명이 모였는데, 하는 공부도 다르고 했던 시기도 제 각각이라 그 날 처음 만난 친구들도 있었다. 그 후 두 번 정도 만났으니 아직은 조금은 서먹한 사이들이었다. 이 날 저녁은 보름에 어울리는 음식들을 각자 조금씩 챙겨 와서 한 상 차려놓고 맛있게 먹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와중에, 20년 근속을 끝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친구가 제주 한 달 살기 여행 계획을 밝혔다. 자신이 여행하는 기간에 시간이 되면 제주에 놀러 오라는 제안을 했다. 다들 좋다며 그 자리에서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6월 현충일을 끼고 3박 4일의 일정의 제주 여행이 잡혔다.    모임 다음 날 날짜에 맞춰 일단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정말 갈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연 초부터 제주를 두 번이나 다녀오는 다른 일정도...
              기린 고전 분야에서 덕업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고민하던 차, 양생을 위한 담론을 생산하고 생업도 마련하는 기회를 잡아 소속을 인문약방 팀으로 옮겨 일리치 약국 정규직이 되었다.  양생과 관련한 공부에 박차를 가하며 또 한 번의 덕업일치에 도전중이다.       정말 갈 수 있을까    올해 2월 정월대보름날, 우리 집에서 저녁을 먹는 모임이 있었다. 공동체에 인문학 공부를 하러 와서 인연을 맺은 친구들 중에서 비혼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모임이다. 그렇다고 특별한 주제가 있거나 하는 건 아니고, 시간이 되면 모여서 밥 먹고 수다나 떠는 취지로 모였다. 작년 8월에 총 일곱 명이 모였는데, 하는 공부도 다르고 했던 시기도 제 각각이라 그 날 처음 만난 친구들도 있었다. 그 후 두 번 정도 만났으니 아직은 조금은 서먹한 사이들이었다. 이 날 저녁은 보름에 어울리는 음식들을 각자 조금씩 챙겨 와서 한 상 차려놓고 맛있게 먹었다. 서로의 근황을 나누는 와중에, 20년 근속을 끝으로 직장을 그만두는 친구가 제주 한 달 살기 여행 계획을 밝혔다. 자신이 여행하는 기간에 시간이 되면 제주에 놀러 오라는 제안을 했다. 다들 좋다며 그 자리에서 날짜를 잡았다. 그렇게 6월 현충일을 끼고 3박 4일의 일정의 제주 여행이 잡혔다.    모임 다음 날 날짜에 맞춰 일단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정말 갈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연 초부터 제주를 두 번이나 다녀오는 다른 일정도...
기린
2023.07.06 | 조회 471
인문약방 에세이
    슬픔이 자산이 되려면     겸목       1.슬픔, 내 서사가 비틀거린다   「“병가 한 번만 줬어도……” 20대 청년 앗아간 ‘아파도 출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몸이 안 좋아 병가를 내려 했으나, 대체인력이 없어 3조2교대로 일하던 20대 화장품 판매원이 사망했다. SPC 제빵사의 끼임 사망사고가 떠오르지만, 이내 「전세사기 피해자 79% 생활고 심화…… 절반 이상 야근/부업 늘었다」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오고, 「임신하면 취업허가 종료 가사노동자 ‘쓰다 버리는’ 싱가포르」라는 기사가 겹쳐지고, 대치동의 ‘초등의대반’을 성토하는 칼럼과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아파트 광고에 경악하는 기사를 읽을 때쯤 정신이 멍해졌다. 놀라기도 민망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겨버리는 뉴스들인데, 무감각해진 건 맞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신문을 보다, 습관처럼 임대아파트 모집공고 앱을 살펴본다. 올해 1월부터 나는 앱을 깔고 임대주택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국민임대, 장기전세, 매입임대, 행복주택, 뉴홈 등등 매주 뜨는 공고를 보며, 이들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뭐가 우리 집에 유리한 것일까 따져보지만, 너무 어렵다. 가구원과 세대원이 어떻게 다른가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공고문을 읽기에 나의 문해력은 현저히 낮다. 첫 번째 신청에서는 경쟁률이 15:1로 나왔다. 어렵다는 입시와 취업의 경쟁률만큼 ‘넘사벽’으로 느껴지는 숫자였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세상에 살아남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심란해졌다.         주디스 버틀러의 『위태로운 삶』을 읽다, 누군가의 죽음을 매일 신문에서 읽으며 참담하고, 집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불안해하는...
    슬픔이 자산이 되려면     겸목       1.슬픔, 내 서사가 비틀거린다   「“병가 한 번만 줬어도……” 20대 청년 앗아간 ‘아파도 출근’」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읽었다. 몸이 안 좋아 병가를 내려 했으나, 대체인력이 없어 3조2교대로 일하던 20대 화장품 판매원이 사망했다. SPC 제빵사의 끼임 사망사고가 떠오르지만, 이내 「전세사기 피해자 79% 생활고 심화…… 절반 이상 야근/부업 늘었다」라는 기사가 눈에 들어오고, 「임신하면 취업허가 종료 가사노동자 ‘쓰다 버리는’ 싱가포르」라는 기사가 겹쳐지고, 대치동의 ‘초등의대반’을 성토하는 칼럼과 “언제나 평등하지 않은 세상을 꿈꾸는 당신에게 바칩니다”라는 아파트 광고에 경악하는 기사를 읽을 때쯤 정신이 멍해졌다. 놀라기도 민망해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 넘겨버리는 뉴스들인데, 무감각해진 건 맞지만 아무렇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는 신문을 보다, 습관처럼 임대아파트 모집공고 앱을 살펴본다. 올해 1월부터 나는 앱을 깔고 임대주택에 대해 알아보고 있다. 국민임대, 장기전세, 매입임대, 행복주택, 뉴홈 등등 매주 뜨는 공고를 보며, 이들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뭐가 우리 집에 유리한 것일까 따져보지만, 너무 어렵다. 가구원과 세대원이 어떻게 다른가 인터넷에서 찾아보기도 했다. 공고문을 읽기에 나의 문해력은 현저히 낮다. 첫 번째 신청에서는 경쟁률이 15:1로 나왔다. 어렵다는 입시와 취업의 경쟁률만큼 ‘넘사벽’으로 느껴지는 숫자였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런 세상에 살아남는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심란해졌다.         주디스 버틀러의 『위태로운 삶』을 읽다, 누군가의 죽음을 매일 신문에서 읽으며 참담하고, 집문제를 해결하지 못해 불안해하는...
문탁
2023.07.03 | 조회 276
인문약방 에세이
      도서관을 소란스럽게 하자!   스프링     1. 장애인이 출현했다   전장연 시위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도 내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내가 자주 가는 동선에 시위가 예상되면 조금 일찍 집을 나섰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평상시엔 이용하지 않던 다른 길을 찾아 교통편을 바꿔가며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내 일상의 루틴에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그것이 싫은 느낌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장애인이 이동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정도의 불편은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몫이고 국가는 마땅히 그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에 장애인이 나타났다. 그는 시각 장애인이었는데, 자신이 찾는 자료가 오디오북으로 제공되지 않으니 눈이 보이지 않는 자신을 위해 책을 읽어달라고 요청했다. 원하는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자 소리치며 소란을 부리는 이용자 앞에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서관의 근무 인력으로는 특정 개인에 대한 1:1 서비스는 불가능했다. 전장연 시위에서는 문제점도 해결책도 비교적 명확해 보였고, 정부에서 의지를 갖고 실행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로 보였기에 나는 그저 멀리서 나이스한 시민으로서의 포즈를 취하기만 하면 되었다. 정부를 욕하고, 전장연을 욕하는 시민들을 생각 없고 이기적인 사람들 취급하며 말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 맞닥뜨린 단 한명의 장애인 앞에서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다양한 감정이 일어났다. 미안함과 무력감, 억지 부리는...
      도서관을 소란스럽게 하자!   스프링     1. 장애인이 출현했다   전장연 시위로 온 나라가 떠들썩할 때도 내 일상에 큰 변화는 없었다. 내가 자주 가는 동선에 시위가 예상되면 조금 일찍 집을 나섰고, 그래도 해결이 안 되면 평상시엔 이용하지 않던 다른 길을 찾아 교통편을 바꿔가며 목적지에 도착하곤 했다. 내 일상의 루틴에 약간의 변동은 있었지만, 그것이 싫은 느낌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 이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장애인이 이동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나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그 정도의 불편은 당연히 감내해야 하는 몫이고 국가는 마땅히 그런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얼마 전 내가 근무하는 도서관에 장애인이 나타났다. 그는 시각 장애인이었는데, 자신이 찾는 자료가 오디오북으로 제공되지 않으니 눈이 보이지 않는 자신을 위해 책을 읽어달라고 요청했다. 원하는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자 소리치며 소란을 부리는 이용자 앞에서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의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도서관의 근무 인력으로는 특정 개인에 대한 1:1 서비스는 불가능했다. 전장연 시위에서는 문제점도 해결책도 비교적 명확해 보였고, 정부에서 의지를 갖고 실행하기만 하면 되는 문제로 보였기에 나는 그저 멀리서 나이스한 시민으로서의 포즈를 취하기만 하면 되었다. 정부를 욕하고, 전장연을 욕하는 시민들을 생각 없고 이기적인 사람들 취급하며 말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일하는 현장에서 맞닥뜨린 단 한명의 장애인 앞에서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지고 다양한 감정이 일어났다. 미안함과 무력감, 억지 부리는...
문탁
2023.07.03 | 조회 190
인문약방 에세이
      k를 퀴어링, 어디로 갈 것인가?     권경덕     k는 지난 10년 동안 실패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자퇴에 실패했고(맞지 않는 전공 수업을 꾸역 꾸역 들으며 학위를 취득했고), 이별에 실패했고(전 애인과 제때 헤어지지 못해서 흑역사를 만들었고), 독립에 실패했다(호기롭게 독립했지만 7년 만에 다시 부모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실패 이전까지 k는 'OO 밖에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를 지향했지만, 독립적이고 번듯한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할수록 불안정함은 커져갔다. 하지만 k의 실패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자퇴에 실패했지만 어쨌든 졸업해서 학교를 떠났고, 이별에 실패했지만 시간이 흘러 결국 헤어졌고, 독립에 실패했지만 서울의 어느 주택 옥탑방에 무사히 눌러앉았기 때문이다. k는 이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개인이라는 자유주의적 이상을 갈망하는 대신, 지상 위에서의 공생, 혹은 기생의 기술을 탐구하고 있다. 옥탑방에 출몰하는 바퀴벌레와 주거권을 놓고 협상하고, 구석에 은밀히 서식하는 거미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유대감을 형성한다. k 역시 다시 독립하기 전까지는 집주인과 잘 공생하는 법, 옥탑방에 잘 기생하는 법을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k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1.이상한(queer) 만남들   k는 2021년 겨울, 길드다 워크숍 <동물을 퀴어링>으로 문탁네트워크에 처음 접속했다. "온갖 빛깔의 퀴어를 만나고, 고착화된 나의 시선을 비틀어보는 워크샵"이라는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퀴어(queer)는 원래 ‘이상한, 기이한’ 같은 뜻이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지칭하거나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등의 근대적 규범에 도전하는 이론과 실천(퀴어링)을 일컫는다. 워크숍에서는...
      k를 퀴어링, 어디로 갈 것인가?     권경덕     k는 지난 10년 동안 실패한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자퇴에 실패했고(맞지 않는 전공 수업을 꾸역 꾸역 들으며 학위를 취득했고), 이별에 실패했고(전 애인과 제때 헤어지지 못해서 흑역사를 만들었고), 독립에 실패했다(호기롭게 독립했지만 7년 만에 다시 부모님 집에 얹혀 살게 되었다). 실패 이전까지 k는 'OO 밖에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유를 지향했지만, 독립적이고 번듯한 개인으로서의 자유를 추구할수록 불안정함은 커져갔다. 하지만 k의 실패는 무언가를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시작점이기도 했다. 자퇴에 실패했지만 어쨌든 졸업해서 학교를 떠났고, 이별에 실패했지만 시간이 흘러 결국 헤어졌고, 독립에 실패했지만 서울의 어느 주택 옥탑방에 무사히 눌러앉았기 때문이다. k는 이제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개인이라는 자유주의적 이상을 갈망하는 대신, 지상 위에서의 공생, 혹은 기생의 기술을 탐구하고 있다. 옥탑방에 출몰하는 바퀴벌레와 주거권을 놓고 협상하고, 구석에 은밀히 서식하는 거미와 자신을 동일시하며 유대감을 형성한다. k 역시 다시 독립하기 전까지는 집주인과 잘 공생하는 법, 옥탑방에 잘 기생하는 법을 고민해야 했기 때문이다.   k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1.이상한(queer) 만남들   k는 2021년 겨울, 길드다 워크숍 <동물을 퀴어링>으로 문탁네트워크에 처음 접속했다. "온갖 빛깔의 퀴어를 만나고, 고착화된 나의 시선을 비틀어보는 워크샵"이라는 소개가 인상적이었다. 퀴어(queer)는 원래 ‘이상한, 기이한’ 같은 뜻이지만, 1990년대 이후에는 성소수자 정체성을 지칭하거나 섹스, 젠더, 섹슈얼리티 등의 근대적 규범에 도전하는 이론과 실천(퀴어링)을 일컫는다. 워크숍에서는...
문탁
2023.07.03 | 조회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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