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그들

천유상
2023-06-07 01:04
272

1.

“그리고 다른 부류의 여학생들이 있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가 세고 주관이 뚜렷한 이들. 대차고 까다롭고, ‘집시의 음울함’을 풍기고, 탁월한 지성을 갖추었으나 세심하지 않고, 감성은 공격적이지 온화하지 않으며, 말투와 태도는 냅다 직설적이고, 우아함이나 겸손함 따위는 결여되어 있으며 아슬아슬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사나운 애착」, 비비안 고닉, 202쪽)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늦은 나이에 병원에 취직하여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며 녹록하지 않은 직장 생활을 버텨내는 주인공(차정숙)의 모습이 판타지 같지만은 않아서 공감하며 보고 있다. 나에게 주인공보다 더 눈길이 갔던 인물은 같은 과 선배이자 주인공 아들의 여자 친구 ‘소라’이다. ‘일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이러한 원칙은 후배 교육에서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jtbc. 닥터 차정숙. 인물 소개) 드라마 속 그녀는 주인공의 실수에 직설적인 비난을 쏟아낸다. 그녀의 날카로운 질책은 온 병동에 울리고 이를 보다 못한 남자 친구(주인공의 아들)가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라’고 조언하자 ‘나는 잘하고 있다’며 돌아선다. 드라마의 전개 상 소라는 자신이 그렇게 다그치던 나이 많은 주인공이 남자 친구의 엄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텐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거친 태도를 후회할 것인가? 그 상대가 시어머니인데’. 소라는 그 사실을 알고 잠시 이불킥 하지만 ‘우리가 결혼할 사이도 아니고, 남자 친구의 엄마라고 해서 내가 달라져야하는지’ 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기에 신선했다. 왜 나는 시어머니라고 해서 그녀가 달라져야한다고 생각했을까?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전형적인 구조 안에서만 관계를 한정지었기에 다른 유형의 관계가 가능하다는 생각을 못했다. 드라마 마지막 소라는 남편의 불륜 사실로 실의에 빠진 주인공에게 드라이브를 제안하며 자신의 방식으로 그녀를 위로한다. 할 말을 솔직하게 다 하고야 마는 ‘기가 센’ 소라의 캐릭터가 처음에는 불편했다. 그것이 여성이기에 나에게 더 크게 다가왔을까? 아니면 그냥 성별에 상관없는 개인적인 호불호였을까? 오래 전 작은 이모가 나에게 ‘너 여자애가 왜 이렇게 고집이 세니’ 하며 이야기한 적이 있다. ‘고집 센’이라는 말에 담긴 의미를 묻기도 전 나는 그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해석했고 ‘나에게 무슨 단점이 있는 것일까’ 하며 고민했다. 수다스럽지 않거나 사교성이 없어서였을까. 고집 센 여성은 별로라는 것일까. 이모가 생각하는 여성은 어떤 이미지일까. ‘그들은 따지고 말대꾸하는 아내를 원하지 않는다’ (「사나운 애착」, 비비안 고닉, 204쪽) 는 비비안 고닉의 말처럼 나 역시 ‘그들’의 입장으로 ‘여성’의 자기 주장과 당당함에 대해 낯선 이질감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했다.

 

 

2.

“솔직히 말해봐요. 나랑 자고 싶었죠?”

“지유씨는 아니었나봐요?”

“전, 반반?”

뭐 이런 게 다 있지.

“근데, 지금은 아니에요.”

뭐 이런 게 다 있지.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75쪽)

 

 

이야기의 말미 남자 주인공은 지유 씨에게 거절 받는다. 함께 료칸도 가고, 공원도 가고 분위기가 다 무르익었다고 생각했는데 지유 씨는 아니었다. 그러자 남자는 생각했다. ‘뭐 이런 게 다 있지’. 소설을 읽으며 나도 생각했다. 지유 씨가 남자 주인공에게 착각을 줄만한 행동을 한 건 아니었을까? 남자 주인공의 억울함에 동조하는 나의 시각이 지극히 남성 중심적이라는 것을 처음에는 알지 못했다. 내가 그런 비슷한 일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교사로 임용이 되고 처음 근무지는 경기도 여주였다. 아무 연고도 없는 그곳에서 풍물을 배우는 교사 동아리에 가입해 장구를 배우게 되었다. 동아리를 이끄는 남자 교사가 있었다.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그는 미혼이었고 혼자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가 나에게 장구를 더 가르쳐주겠다면서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다. 여자 혼자 남자 혼자 있는 집에 간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그가 나에게 호감을 표시한다는 것에 대해 나도 싫지는 않았다 (나에게 남자친구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그런 제안이 단지 호감만으로 그치리라는 것은 정말 순진한 생각이었다. 그는 내게 장구의 리듬에 대해 이야기하는가 싶더니 은근슬쩍 나를 만지기 시작했고, 내가 그의 손을 쳐내며 싫다는 신호를 보내도 손길은 더욱 거세져 갔다. 급기야 나를 침대로 끌고 가 눕히는 상황에 이르자 나는 정말 있는 힘껏 그를 밀쳐내야 했고 울면서 그의 집을 뛰쳐나와야 했다. 그날 밤 나는 어떻게 나의 집으로 돌아왔는지, 그의 집 안까지 들어갔던 나 자신을, 그것도 단둘이, 얼마나 혼란스럽게 여겼었는지 기억이 난다. 다음 날 내가 사과를 요구했을 때 그는 사과를 회피했던 것 같다. 나 혼자로는 사과를 받아내기 어렵다는 생각에 가까운 선배 여자 교사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선배 교사는 그에게 교육청에 신고할 수 있음을 이야기했다. 그제야 그는 두려워하며 사과의 뜻을 건네왔다. 교육청으로의 신고는 나에게도 위험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비난은 나에게도 쏟아질 수 있었기에 나도 거기까지는 원하지 않았다. 이 일을 사귀었던 남자 친구도 알게 되었고 남자 친구는 그를 불러내 주먹을 날리며 분을 풀었지만 그 일은 남자 친구에게도, 나에게도 상처로 남았다. 남자 친구는 그의 집까지 단 둘이 들어간 나에게 실망감을 표했고, 그로부터 얼마 안되 나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건넸다. (물론 여러 다른 이유도 많았으리라). 애인이 있는 여자가 다른 남성의 호감(그것이 순수한 호감인지, 아니면 같이 자자는 표현이었는지)에 반응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아님 그가 나의 이런 모호한 마음을 이용했다는 것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그 일에 대한 나의 혼란스러움이었다.

 

 

3.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 남편과 나의 달콤한 신혼 생활은 끝이 났다. 육아는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온종일 어린 아이를 돌보는 일은 굉장한 육체적, 감정적 노동이었다. 육아를 통해 나는 그동안 몰랐던 나의 모습을 직면했다. 감정은 롤러코스터를 타듯 심한 기복을 보였다. 아이가 사랑스러워 정성을 다하다가도 어떻게 해도 달래지지 않는 잠투정, 음식에 대한 거부에 직면하면 젖 먹던 아이를 침대, 소파 위에 던져버리거나, 숨 막히게 꽉 껴안아 버리거나 접시를 던져버리는 등 충동적인 폭력성이 나오기 시작했다. 아이에게 거칠게 대한 뒤 밀려오는 ‘실패했다’는 죄책감과 좌절감은 무겁게 나를 끌어내렸지만 나도 모르게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화’, ‘짜증’은 그것을 인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순간 제어하기 쉽지 않았다. 감정적인 기복은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분출되었다. 무슨 일 때문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우리는 자주 싸웠다. 아마도 남편이 문자도 없이 늦게 오거나, 아니면 아예 전화를 받지 않거나 그런 종류의 사소한 것들이었다. 나는 남편과의 싸움 도중 화가 나면 아무거나 손에 잡히는 물건을 던졌다. 아이의 장난감을 포함한 집 안의 물건들이 부서지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서로를 때리는 육탄전이 벌어지기도 했다. 남편은 이런 나를 두고 ‘지랄맞다’고 했다. 그리고 숨 막힌다고 했다. 나로서도 남편에게 할 말은 있었다. 밤에 왜 나만 깨어서 아이를 돌봐야하는지, 공공장소에서 왜 나만 아이를 동동거리며 안고 다녀야하는지, 너는 회식하며 늦는 게 당연한데 나는 왜 매일 집에 있어야 하는지 등. 그 시절 남편과 나,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나의 힘듦만을 이야기하며 상대방이 왜 더 나를 ‘배려’하지 않는지만 따지고 들었다. 다른 사람에게는 좀처럼 표출하지 않았던 나의 공격성은 가장 가까운 나의 가족, 남편과 연약한 존재였던 아이들을 향해 맹렬히 뿜어져 나왔고, 나는 그 사실이 몹시 괴롭고 막막했다. ‘나는 정말 지랄 맞은 사람인가?’. 이것은 나의 개인적인 문제인가 아니면 누구에게든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누구의 탓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모든 문제의 화살을 나에게만 돌리는 건 절망적이었다.

 

 

4.

 

‘조화롭고 온전한 여성의 모델, 즉 강하고 관능적이고 야심 있으며 자신의 다양한 욕구와 요구를 잘 파악하고 그 모든 욕구와 요구를 탐색할 수 있는 자유와 자원을 갖춘 여성의 모델을 제시해주는 문화에 살기만 했더라면 ~ 동시에 공 아홉 개를 공중에 띄우고 던지고 받고 해야 한다는 강박을 덜 느꼈더라면, 그리고 그 공들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토록 쉽게 자신을 비난하는 성향이 덜했더라면 (이하 생략)’ ((「욕구들」, 캐럴라인 냅, 298쪽)

 

 

글쓰기를 하며 내가 여성이라는 정체성에서 어느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지 혼란스러워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캐럴라인 냅이 표현한 조화롭고 온전한 여성의 모습이 이상적으로만 느껴졌고, 세상과 조화로우면서도 온전하다는 것은 양립 불가능한 것처럼 느껴졌다. 반면 ‘공들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토록 쉽게 자신을 비난하는 성향이 덜했더라면’의 표현은 나에게 많이 와 닿았다. 고집이 세다는 말을 들었을 때, 남자가 나를 강제로 침대에 눕히는 상황에 나의 잘못도 들어가 있는지 아닌지를 고민할 때, 아이들과 남편에 대한 나의 감정이 부드러운 것만은 아닐 때 더 이상 나 자신만을 자책하거나 비난하지 않기를 바래본다. 내 안에서 나를 가혹하게 몰아붙이는 ‘그들’을 이제 조금 덜어내고 싶다.

 

 

댓글 1
  • 2023-06-08 09:32

    유상샘, 유상샘, 유상샘, 유상샘, 유상샘... 엄청난 공감 속에서 잘 읽었어요.

    우리 여성들이 처한 이 모든 문제, 우리 대부분이 겪었던 이 모든 문제는, 옳고 그른 게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매번 새롭게 해석되어야 하구요, 그래서 읽고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나봐요.

인문약방 에세이
      삐침과 빡침 : 마을에서 돌봄을 실천한다는 것은     김윤경       새로운 상상계:시민적 돌봄·난잡한 돌봄   나는 작년에 문탁네트워크에서 돌봄을 공부했고, 올해는 양생을 공부한다. 작년 ‘나이듦’세미나에서 읽었던 『새벽 세시의 몸들에게』 중 전희경의 「시민으로서 돌보고 돌봄받기」 는 나에게 새로운 개념을 선사했다. 바로 ‘시민적 돌봄’이다. 그것은 새로운 종류의 돌봄을 발명해낸 개념이다. 이 새로운 돌봄관계는 ‘가족 돌봄’을 넘어서고, ‘서비스’들과는 다른, 다치고 아프고 늙고 언젠가는 죽어가는 취약한 존재로서, 인간이라면 누구나 연루되어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의존’이라는 조건을 기본으로 한다. 전희경은 이 보편적이면서 불가피한 공동의 운명을 ‘시민적 돌봄’이라고 명명한다. 감정이 있고 취약하며 동시에 타인을 이해하고 보살필 수 있을 정도로 강하고 다정한 존재로서의 ‘시민’을 상상해보라고 말이다.   또 올해 양생프로젝트를 시작하며 읽은 『돌봄 선언』에서는 ‘난잡한 돌봄’이란 개념을 나에게 선사했다. 그 개념은 1980~1990년대 에이즈 인권운동 액트 업 활동가인 더글러스 크림프의 에세이 「전염병 중에 난잡할 수 있는 방법」에 근거를 둔 것이다. 에이즈 유행의 원인이 게이들의 성적 난잡함에 있다는 주장에 그는 게이들의 성 문화의 난잡함은 ‘실험적’인 성적 행위를 배가했음을 의미한다고 응수했다. 그는 난잡함이라는 개념을 ‘가벼운’ 또는 ‘진정성 없는’이라는 의미가 아닌 게이들이 서로에 대해 친밀감과 돌봄을 다양화하며 실험한다는 의미로 사용한다.   난 친밀감으로 많은 관계들을 교차하며 난잡하게 돌봄을 실천하자고, 다정하면서 강한 시민으로서 다른 시민을 돌보자고 결심했다. 그래서 올해 초, 한 마을 모임에 참석했고, 다행히 정치적으로 견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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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3.07.02 | 조회 221
일상명상
  버섯에 빠지다                 요요 문탁에서 불교와 철학을 공부하고 있다.  앞으로 10년은 불교공부를 계속 함께 할 친구들을 찾고 있다.  나이듦연구소의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존엄하게 늙는 길을 찾고 싶다. 명상적 삶, 일상의 영성, 공동체와 영성, 나이듦과 영성이 풀어야 할 화두라고 생각한다.       장마에 가슴이 두근두근   장마가 시작되었다. 덥고 습하여 불쾌지수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런데 나는 장마가 싫지 않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심 격하게 장마시즌을 반기고 있다. 숲에서 버섯을 만날 수 있는 계절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 사연은 이렇다. 작년 봄 내내 탄천변에서 풀꽃을 탐색하던 내가 여름 장마가 그친 뒤 뒷산 산책을 하던 중 우연히 버섯에 눈이 갔다. 그 뒤로 산에 갈 때마다 눈을 땅바닥에 두고 버섯 찾는 재미에 푹 빠지고야 말았다. 버섯 도감을 샀고, 산책을 다녀 오면 도감을 뒤지며 내가 본 버섯과 비슷한 버섯 그림을 찾고 이름을 확인했다. 도감에서 찾지 못하면 인터넷을 뒤졌다. 버섯 이름을 하나 둘 익히니 버섯이 더 잘 보이기 시작했다. 이름도 모양도 재미있는 방귀버섯이며, 닭다리 버섯이며 말불버섯을 발견했을 때는 너무 기뻐서 ‘유레카’를 외쳤다. 십년 넘게 뒷산 산책을 다니면서 그동안은 존재조차 알지 못했던 버섯과 갑작스레 사랑에 빠진 것이다.   가을이 깊어가자 버섯이 사라졌다. 봄이 오면서부터 은근히 버섯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날이 더워지면서부터 마치 아열대성 기후의 스콜처럼 갑작스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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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2023.07.01 | 조회 415
조은의 강정에서 살아남기
                  조은 5년 동안 현민, 시윤, 민서, 동희와 함께 동천동에서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살던 마을을 떠나, 2월부터 강정에서 첫 독립을 시작했다.      2023년 2월20일에 강정으로 이사를 왔다. 이우중학교를 가기 위해서 동천동으로 이사를 했으니, 약 10년만에 동천(고기)동을 떠났다. 10년 동안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다. 10년을 비슷한 사람을 만나고 같은 동네에 살았으니 지겹겠다는 생각을 누군가는 하겠지만, 나는 지겹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오랜 기간 마을에 머무는 일은 나에게 안정감을 주었고, 오래된 친구들과 안전하게 있을 수 있는 공간을 운영한다는건 때때로 외롭고 힘들었지만 대체로 즐거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떠나가는 이들을 많이 봐왔고, 그들을 보내주는 건 나에게 편안한 일은 아니었다. 그러다가 작년 1월 피스파인더 모집 포스터를 보게 되었고, 22년4월부터 3개월짜리 강정살이(피스파인더)를 시작했다. 그게 강정을 처음 만나게된 시작이었다.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반대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평화운동을 하는 지킴이들이 살고 있다. 해군기지는 이미 지어졌지만, 해군기지 폐쇄를 외치며, 해군기지를 만들때 폭파시킨 구럼비바위를 그리워하고, 나아가 전쟁을 멈추라고 말하는 친구들이 살고있다. 매일 아침에는 백배, 11시에 미사, 12시에는 인간띠잇기를 하고, 매일 점심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는 삼거리식당이 있다. 그렇게 지킴이들은 11년째 강정을 지키고있다. (강정에 대한 더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한 분들은 얼마전에 나온 <돌들의 춤>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6월18일, 강정에 함께 사는 친구들과 제주시에서 열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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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은
2023.06.25 | 조회 392
동물을 만나러 갑니다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7월 9일     작년 여름, 새벽이 잔디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2022년 7월 9일. 그날은 새벽이의 세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첫 돌봄을 며칠 앞두고 새벽이생추어리 인스타 계정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 다가오는 7월 9일은 새벽이의 세 번째 생일입니다! 새벽이는 종돈장에서 구조되어 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만, 새벽이와 같이 태어난 돼지들은 생일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새벽이 역시 구조되지 않았더라면 생일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돼지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서 새벽이의 삶은 매일매일이 투쟁입니다. 그 매일의 시간이 쌓여 어느덧 3년이 지났습니다. 새벽이가 살아낸 날들을 기억하며 이 땅에 사는 돼지들도 생일을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사전에 새벽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 크루'가 결성되었다. 크루들은 감자 케이크와 미강 미역국을 비롯한 음식들로 새벽이의 생일상을 준비했다. 그리고 생일날 이른 아침, 크루들은 새벽이생추어리에 가서 생일 축시를 낭송하고 축하 노래를 함께 불러주었다. 나는 같은 날 저녁에 처음으로 새벽이, 잔디와 만났다. 처음 본 새벽이의 모습은 위엄이 넘쳤고, 식사를 마치고는 더위를 피해 진흙탕에 몸을 풍덩 담갔다. 잔디는 만나자마자 슬금 슬금 다가왔고, 나는 미리 준비한 토마토를 잔디 입에 쏘옥 넣어주었다. 그렇게 돌봄이 시작되었다. 그날부터 매주 새벽이, 잔디를 만나왔다.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 봄....
        경덕 새벽이생추어리 보듬이(2022. 7~). 난잡한 공부가 체질이라 여러 세미나와 워크숍을 유랑한다. 올해 문탁네트워크에서 주역, 불교, 돌봄을 키워드로 공부한다.       7월 9일     작년 여름, 새벽이 잔디와의 첫 만남을 기억한다. 2022년 7월 9일. 그날은 새벽이의 세 번째 생일이기도 했다. 첫 돌봄을 며칠 앞두고 새벽이생추어리 인스타 계정에는 이런 글이 올라왔다.    - 다가오는 7월 9일은 새벽이의 세 번째 생일입니다! 새벽이는 종돈장에서 구조되어 세 번째 생일을 맞이하지만, 새벽이와 같이 태어난 돼지들은 생일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새벽이 역시 구조되지 않았더라면 생일을 맞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돼지가 살아남을 수 없는 세상에서 새벽이의 삶은 매일매일이 투쟁입니다. 그 매일의 시간이 쌓여 어느덧 3년이 지났습니다. 새벽이가 살아낸 날들을 기억하며 이 땅에 사는 돼지들도 생일을 맞이할 수 있는 날이 오길 바랍니다.    사전에 새벽이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한 '축하 크루'가 결성되었다. 크루들은 감자 케이크와 미강 미역국을 비롯한 음식들로 새벽이의 생일상을 준비했다. 그리고 생일날 이른 아침, 크루들은 새벽이생추어리에 가서 생일 축시를 낭송하고 축하 노래를 함께 불러주었다. 나는 같은 날 저녁에 처음으로 새벽이, 잔디와 만났다. 처음 본 새벽이의 모습은 위엄이 넘쳤고, 식사를 마치고는 더위를 피해 진흙탕에 몸을 풍덩 담갔다. 잔디는 만나자마자 슬금 슬금 다가왔고, 나는 미리 준비한 토마토를 잔디 입에 쏘옥 넣어주었다. 그렇게 돌봄이 시작되었다. 그날부터 매주 새벽이, 잔디를 만나왔다. 여름을 지나 가을, 겨울, 봄....
경덕
2023.06.20 | 조회 394
먼불빛의 웰컴 투 60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취업을 했다     작년 정년퇴직 후 8개월이라는 실업급여 수급의 막바지가 다가올 즈음,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재취업에 시동을 걸었다. 역시나 내 나이와 경력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60이라는 -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축에도 못 끼는 - 나이처럼 절망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분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을 차일피일 보내고 있을 때, 마침 일하지 않겠냐는 전 직장 팀장으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내 의향을 묻던 그는 주30시간(하루 6시간) 일자리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했다. 사실 퇴직하기 전에 하루 8시간 근무가 버거울 수 있는 나이라는걸 깨달은 탓에, 중‧고령 노동 시장에서 나이 많은 나를 헐값이 아니고서는 받아줄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은 탓에, 나는 재지 않고, 그냥 넙죽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두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나랑 안 맞으면 때려치우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근무할 곳은 정년퇴직한 전 직장에서 이미 업무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었던 곳이었고,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함께 일하게 될 K는 사무국장이면서(헐... 나이 차는... 비밀!) 작년에 입사하여 혼자 일해 왔다. 올해 경기도와  00 재단으로부터 프로젝트 예산을 받게 되면서 자신을 보조할 인력이 필요했지만, 신입을 받고...
              (글)먼불빛 문탁에서 2016년부터 공부해왔다. 2021년 양생프로젝트 공부하다가 책에 심하게 멀미를 겪었다. 원래 뭐든지 좀 늦되다. 멀티는 더더욱 안된다. 올해 양생프로젝트 다시 한번 도전해 볼 예정이다.     취업을 했다     작년 정년퇴직 후 8개월이라는 실업급여 수급의 막바지가 다가올 즈음, 어디든 가리지 않고 일할 때가 됐다고 생각하며 재취업에 시동을 걸었다. 역시나 내 나이와 경력을 활용할 만한 일자리는 없었다. 60이라는 - 젊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늙은 축에도 못 끼는 - 나이처럼 절망하기에는 이르지만, 그렇다고 분투하기에는 애매한 시간을 차일피일 보내고 있을 때, 마침 일하지 않겠냐는 전 직장 팀장으로부터의 전화가 왔다. 조심스럽게 내 의향을 묻던 그는 주30시간(하루 6시간) 일자리라는 사실을 무척 강조했다. 사실 퇴직하기 전에 하루 8시간 근무가 버거울 수 있는 나이라는걸 깨달은 탓에, 중‧고령 노동 시장에서 나이 많은 나를 헐값이 아니고서는 받아줄 곳이 많지 않다는 사실을 처절히 깨달은 탓에, 나는 재지 않고, 그냥 넙죽 받아들일 수 있었다. 한두 가지 염려되는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나랑 안 맞으면 때려치우지, 뭐’ 하는 심정이었다.   내가 근무할 곳은 정년퇴직한 전 직장에서 이미 업무로 밀접하게 관련을 맺었던 곳이었고, 대부분 안면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이곳에서 내가 함께 일하게 될 K는 사무국장이면서(헐... 나이 차는... 비밀!) 작년에 입사하여 혼자 일해 왔다. 올해 경기도와  00 재단으로부터 프로젝트 예산을 받게 되면서 자신을 보조할 인력이 필요했지만, 신입을 받고...
먼불빛
2023.06.20 | 조회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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