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감성기르기 프로젝트 #16 <정평천의 흉물들>

토토로
2023-11-20 12:22
130

"걷는 건 정말 지루해.  한 발짝이라도 덜 걷고 싶어." 

난 이런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었다. 그랬던 내가, 나이가 들었는지 몇년 전부터 점차 소위 '걷는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 

몸과 마음의 건강을 위해서 시작된 걷기는 이제 생태감성을 기르기 위해서, 혹은 고물가 시대에 교통비라도 아껴보려는 기특한 마음으로, 혹은 무슨 아이디어라도 떠오르길 기대하며 걷는다.

엄마가 아팠던 지난 10월엔 부정하고 싶은 현실을 덤덤하게 받아들이기 위해  훌쩍거리면서 정평천을 걷고 또 걸었다.

 

한 여름을 빼고 나머지 계절 동안 정평천을 지속적으로 걷다보니 풀과 나무로 드러나는 기온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고, 

분에 넘치는 꽃길도 길게 누렸다. 좋았던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하지만....

정평천엔 거슬리는 것도 꽤 많다. 흉물이라고 말하고 싶은 그런 것들 말이다.

내가 주로 걷는 풍덕천 주민센터 주변 하천은 나름 수지의 벚꽃 명소이다. 봄만 되면 멀리 나가기는 부담스럽고 벚꽃 구경은 놓치고 싶지 않은 주민들이 바글바글 몰려든다. (작은 축제도 열린다.)

 

그래서 인지,,,아님 다른 이유에서 인지, 올 봄 이 근처 하천의 밤은 온갖 조명으로 치장되고 말았다.

 

오 마이 갓!!!!

여기가 하천인지, 신내림 받은 무당집인지!!!!

저 알록달록 빛나는 플라스틱 꽃 무더기를 볼 때면 나도 모르게 혐오의 감정이 치솟는다. 도대체 누구의 아이디어일까. 그냥 둬도 멋진 곳에 왜 저런 것을!

 

저 희고 거대한 것은 도대체 정체가 뭘까?

돼지? 아니...아니 토끼? 아니...괴생명체? 분간이 되지 않는다. 

 

수직으로 빛나는 현란한 불빛. 90년대 변두리의 싸구려 나이트 입구같아 보인다.

 

행복과 긍정, 웃음과 힐링, 그리고 사랑이 넘치는 4인 가정 등등을 강요하는 글과 그림들.

저런 글귀를 볼 때마다 내 맘 속에 웅크리고 사는 까칠이가  자꾸 말대꾸를 한다. 

'아니요! 저는 오늘 그다지 수고하지 않았는걸요. 무슨 근거로 내일은 더 행복할거라는 거지요?

행복한 4인 가족? 에휴.......'

 

 

나름 돈 써서 꾸민 건데 너무 괴상하고 어글리하다. 인위적인 조형물, 불 빛, 건전 문구들...(다른 사람들 눈엔 어떻게 보일까?)

생태감성을 기르기 프로젝트에 정말 방해되는 것들이다.

 

 

 

용인시에서 만들어 놓은 것들 외에 다른 놈들도 있다.

하천 길에 아무렇지도 않게 주차된 전동 퀵보드! 한쪽 구석에 얌전하게  주차되어있으면 그나마 양반에 속한다.

하천 길 한 중간에 벌러덩 누워있는 퀵보드도 많다.

 

넘 꼴보기 싫은데 우리집 두 아들도 전동퀵보드를 자주 애용한다니 마냥 미워할 수도 없다. 아침 저녁,  퀵보드로 출퇴근과 등하교를 하는 많은 이들을 보았기에 퀵보드를 욕할 수도 없다. 어쩌면 너무 너무 급할 땐 우리집 애들도 이렇게 아무 곳에나 던져버리듯 주차하고 가버릴 지 모르겠다. 애들아 제발 너희들은 매너있게 주차해주라~

 

 

 이렇게 거슬리는 것들이 많지만 그래도 하천 걷는 것이 좋기에 자주 나가게 된다.

 

2023년 11월 19일 밤.

밤이 되어도 여전히 환한 빛에 둘러 싸인 도시의 하천. 거기서 조용히 웅크려 잠든 것으로 보이는 오리떼. 

그리고 자잘한 못마땅함과 큰 감사함을 동시에 느끼며 걷는 나.

 

 

 

 

 

 

댓글 5
  • 2023-11-20 17:06

    오늘밤 춥지만 정평천 쪽으로 걸으러 나가봐야겠군요.
    저런 것들이 생긴줄도 몰랐다니

  • 2023-11-20 18:51

    수원 일월수목원 한 번 같이 가요.
    겨울의 빛깔이 무채색인 건만은 아님을 볼 수 있다고 하는데 무척 궁금하거든요

  • 2023-11-21 14:37

    도대체 저런 흉물은 누가 좋다고... 무슨 감성일까요...민원 넣고 싶네요

  • 2023-11-21 17:56

    우리 동네 탄천은 인적도 드물고 컴컴해서 그랬는데
    정평천은 또 다른 모습이군요
    저도 다리 아래에 조명 쏘고 그런 건 정말 별루던데...
    잘 꾸미는 재주가 필요해요!

  • 2023-11-21 19:11

    그러고 보니 저는 밤에 탄천에 나가본 적이 거의 없네요.
    토토로님, 추울 때는 옷 따숩게 입고 나가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