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짠글쓰기4]반갑다, 페미니즘

김지연
2021-12-06 09:58
404

페미니즘, 그런 거였어?

 

2020년 겨울, 우리 회사 모(母)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35살의 최연소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2021년 여름, 그녀는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짧은 논란을 끝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경질되었다. 갑이 을에게 횡포를 저질렀고,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문득 내 시선에 다른 문제가 겹쳐 보인다. 남성 임원이 막말 따위(?)로 경질되는 건 본 적이 없다. 폭력이나 성추행 정도는 돼야 문책받는다. 특히 이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여성 임원 할당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정한 평가로 선발하지 않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사람을 뽑아 올리니 이런 문제가 생긴단다. 그동안 여성을 위한 자리는 특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에서 정희진의 책을 다루던 날이었다. 모두가 사회 문제를 속 시원한 글솜씨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녀의 글에 홀딱 반해서 왁자지껄 토론하던 중이었다. 학인 한 명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가 여자보다 불리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함께 노는 아이들 사이에 때리는 여아와 맞는 남아의 불공평(?)도 존재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데, 소수의 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다른 학인의 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시대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고착된 남녀 구조가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불편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특히 페미니즘은 남녀 차별을 넘어 모든 불평등 해소를 위한 이념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공부해야 한다고도 했다. 나도‘페미닌(Feminine: 여성의)’이라는 단어 속에 치우친 성의 특정성이 불편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동안 여성이 남성에게 치우친 삶에서 고통받았다는 건 잊고 있었다. 전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지금부터 공평하면 그만이라고 간편하게 생각했다.

 

 

페미니즘맹() 탈출 후유증

 

짧지만 강렬했던 깨우침(?) 이후로 전에는 못 느끼던 불편함이 조금 늘었다. 특히 직속 남성 상사의 발언이 거북해졌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자 로맨스 소설 광팬이다. 종교가 주는 보수성과 로맨스 소설이 주는 감수성 때문일까. 그는 종종 보수적이면서도 성적인 독특한 발언을 한다. 남녀는 때가 되면 당연히 결혼해야 하고, 남성이 연상이어야 정상(?)이며, 부부가 젊음을 유지하는 비결은 아이를 낳는 것이다. 나이 든 독신 여성에게 난자 냉동을 권하거나, 다양한 취미 중 하나인 발레 얘기를 할 때마다 여자 몸매를 과학적으로(?) 묘사하는 건 기본이다. 업무 태도 및 성과를 늘 평가받는 입장 때문일까. 여성이 태반인 우리 부서에서 그런 이야기에 웃음으로 대응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실력은 으뜸이라는 객관적 사실과 평소 자기 사람을 보듬는 사려 깊음에 높은 위치가 더해졌기 때문이리라.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의 언행에 상당히 관대하다. 직속 여성 상사 K는 이렇게 말했다.

 

“더한 사람들도 있잖아. 그냥 철없는 애라고 생각하자.”

 

그렇게 한 개인의 철없음으로 치부한 채, 들은 얘기를 잊는 것도 방법이다. 함께 있던 후배들에게 그의 말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그 상황에서 어찌할 수 없어 속상할 뿐이라고 이메일에 몇 문장의 넋두리를 남기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부끄러움을 덜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바깥 세상은 변하고 있었다.

 

 

 

 

 

안팎의 온도차... 커도 너무 크다!

 

우리 팀은 올해 약 6개월에 걸쳐 뷰티 케어 사업 방향을 제안했다. 현대 여성이 생각하는 뷰티 케어란 무엇이고, 그들이 지향하는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연구했다. 반갑게도 성형이나 시술로 원하는 외모를 만들려는 여성보다, 자신감 있고 에너지 넘치며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여성이 많았다. 나이도 과거도 개의치 않고 건강한 몸과 건전한 가치관을 가진 여성을 멘토로 삼는 경향도 강했다. 우리 팀은 지금까지 없었던 새로운 광고 모델을 제안했다. 이혼한 아이 엄마지만 누구보다 일과 가정을 열성적으로 꾸리는 연예인이었다. 자기 관리를 통해 어린 시절 싼티(?)를 벗고 패셔니스타 이미지를 구축하기도 했다.

 

해당 사업의 최고 경영자 보고를 앞둔 어느 날이었다. 마케팅 실무자가 모델 제안을 삭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웹에서 검색해보니 이혼도 했고 전남편의 자질도 좋지 않기 때문이란다. 어차피 우리 회사와 맞지 않으니 사전에 제안을 말자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 포기하기엔 아까웠다. 다양한 뷰티 업계에서 그녀를 모델로 내세우고 있었다. 그녀에게 달라진 여성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고 확신했다. 현재 그녀가 뷰티 마케팅 업계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설명했다. 숱한 명품업계에서 그녀에게 옷을 입혀보려 한다는 자료도 보여줬다. 동의는 하지만 받아들일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다. 이 싸움으로 우리 팀이 득 볼 일이 없었기에 우리는 결국 모델 제안을 단념했다.

 

생각할수록 놀랍다. 21세기 첨단 기술 상품을 만드는 일터에서 ‘올바른 여성’과 ‘정상 가족’에 대한 압박을 받다니. 일을 통해 세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여자들의 여성관이 얼마나 멋지게 변했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와 가족의 이력이 사람을 평가하는 지표라니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날 나는 결심했다. ‘회사에 다니는 동안 열심히 잘해서 여자 후배들에게 힘을 주는 선배가 돼야지.’ 그런데 며칠도 지나지 않아 생각지도 못한 다른 벽에 부딪혔다.

 

 

여자는 여자의 적? 우리끼리 이러지 말자.

 

뷰티 프로젝트는 여성 팀원 세 명이 진행했다. 리더를 맡은 J가 찾아와 하소연했다. 결혼을 앞둔 Y가 결혼 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 회사는 자율근무 제도를 시행 중이라 각자 원하는 시간에 출퇴근할 수 있다. 그런데 Y는 혼자 일찍 출근해서 혼자 일찍 퇴근해버린단다. J는 자신이 결혼식 전날까지 야근했던 경험 때문에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그때부터 나도 Y를 주시했다. 늘 급히 퇴근하느라 업무에 소홀한 것처럼 보이긴 했다. 따로 불러서 같은 여자끼리 힘든 일을 거들며 좋은 성과를 내보자고 말했다. 네 남자친구가 결혼 준비 때문에 회사 일을 등한시하면 좋겠냐는 질문이 목구멍에 차올랐다. 그리고 잠깐 이런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왜 여자들은 이런 거지?’

 

1~2주 정도 지났을까. 리더인 J가 다시 면담을 요청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 시험관 아기를 준비할 예정이었는데, 갑자기 자연적으로 임신한 것이다. 몇 년째 유산과 임신 실패로 마음고생이 많던 친구였기에 진심으로 축하했다. 문제는 임신 상태가 불안정하여 의사가 꼼짝하지 말라고 했단 것이었다. 당연히 생명이 회사보다 중요하니 그렇게 하라고 했다. 워낙 일 욕심이 많은 친구라 만류에도 불구하고 출근을 고집했다. 결국 복통이 시작되면서 단축근무와 휴가를 신청했다. 결혼과 임신으로 쉬어야 하는 그들의 뒷수습은 내가 막내 사원을 데리고 해야 했다. 안 그래도 일이 많아 힘든 시기에 또 다른 책임이 더해지니 서러웠다. 신입 시절 이후 처음으로 회사에서 울었다. 회사 밖에서 내 얘기를 들은 여자들은‘나도 여자지만 이래서 여자들과 일하기 어렵다’고 반응했다.

 

문득 지금의 여성 상사 K와 (지금은 퇴사한) 과거의 여성 상사 A가 논쟁하던 술자리가 생각났다. 싱글이기도 한 K는 특정 팀에 육아휴직자가 몰리는 상황은 남은 사람들에게 불공평하다고 했다. 결혼한 유자녀 여성인 A는 K를 여성의 사회적 권리를 몰이해한 사람으로 몰아세웠다. 너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 때문에 여자가 일하기 힘들다고, 출산과 육아 문제는 무조건 배려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출산과 육아를 하지 않아 공식적으로 쉴 수 없는 우리 입장은 달랐다. 그들의 출산과 육아가 고통스러운 건 안다. 그러나 남아서 그들의 몫까지 해내는 우리도 힘들다. 이렇게 우리는 여자끼리 누가 더 힘든지 실랑이하고 있었다. 이 대화에서 남자의 존재나 역할에 대한 논의는 단 하나도 없었다.

 

남성과 여성 사이의 권력 구조가 여성과 여성 사이의 문제로 전이되니 자존심이 상한다. 달라진 세상에 대한 경계심 없이 여성성과 정상 가족에 대한 가치관을 강요하는 남성 상사 앞에서 가만히 있기가 점점 부끄럽다. 이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자는 우리 여성들의 조심스러운 움직임도 답답해지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여성끼리 비난하고 원망하는 상황이 반복되니 마음 아프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

 

 

아무리 답답해도 해답은 있다!

 

남성 상사를 철없는 아이로 보자던 K는 꽤 적극적인 방법을 선택했다. 임원을 코칭하는 인사 전문가와 면담하던 중에 남성 상사의 젠더 감수성 문제를 언급했다. 그녀의 행동에 자극받아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출산과 육아로 휴직자가 생기면 조직 구조 문제로 드러내서 구멍 난 업무를 해결할 방법 찾기. 남성 상사의 발언으로 무안해질 때마다 후배들에게 좋은 페미니즘 책 한 권 권하기. 무엇보다 일을 통해 여성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해서 알리는 것도 방법이겠다. 우리 회사의 주요 고객은 여성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상품을 기획하고 만들어 파는 사람의 대부분은 남성이다. 아무리 조사하고 연구해도 말과 글로 여성을 이해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뷰티 케어 기기를 연구하는 사업부도 피부 연구에만 집중하느라 피부와 생리주기 간의 상관성은 처음 들어본 것 같았다. 달라진 여성 트렌드라며 X세대 남성들이 작성한 리포트에 코웃음 친 기억도 난다. 여성이 진짜 원하는 것을 제대로 파악하고 알리는 일은 선후배 및 동료들과 매일 할 수 있는 일이겠다.

 

생각해 보면 나는 일터 밖에서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일주일에 두세 번쯤은 SNS에 게시물을 올린다. 여성 임원 경질 사건 당일에는 세계 최초 젠더 중립 주연상을 수상한 엠마 왓슨의 사진과 그녀의 수상소감을 게시했다. 뷰티 프로젝트 모델 제안을 포기한 날에는 김현경의 ‘사람, 장소, 환대’ 중 깨끗한 여성을 강요하는 가부장제 글귀를 올렸다. 통상 한 달에 한두 권의 책을 읽는다. 그중 한 권 정도는 여성 작가나 페미니즘 책으로 정해서 소감을 작성하고 인상 깊은 구절을 촬영해 올리면 어떨까. 몇 명 되지 않아도 내 SNS를 보고 책을 사거나 빌려 읽는 동료들이 종종 있다. 그들이 나를 통해 모든 성이 존중받아야 한다고 이해하도록 시도해보고 싶다. 그런데 이 일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글쓰기 클래스에서 새로운 이들을 만나 지식을 공부하고 생각을 나누는 일은 실로 뜻깊다. 그 가치를 알면 알수록 평소 친분이 두텁고 아끼는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과도 이렇게 가치 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상사지만 사실 마음을 터놓고 지내는 언니이기도 한 K가 평소와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그녀는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덕에 여성 임원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상황을 겪으며 임원을 목표로 살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조직이 요구하는 기준보다 삶에서 진짜 중요한 걸 기준으로 삼자고도 했다. 그녀에게 조직이 아닌 우리를 위한 공부 모임을 제안했다. 페미니즘부터 들이대면 이전의 나처럼 불편해하지 않을지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우리가 연구하는 트렌드나 재테크부터 페미니즘에 이르기까지 여성 지식인에게 필요한 주제를 폭넓게 다뤄보자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한가한 연말에 시작해서 아무리 바빠도 그 시간은 꼭 지키는 모임을 만들어보자는 말에 그녀가 대답했다.

 

“너무 좋다! 꼭 하자! 그까짓 것 우리가 못할 리 없잖아?”

 

그녀는 함께 하면 좋을 다른 동료 이름도 댔고, 그간 쌓아온 인맥으로 전문가를 불러도 좋겠다는 아이디어까지 냈다.

 

의외로 적극적인 그녀의 반응에 마음이 설레고 의지가 샘솟는다. 우리가 과연 실행할 수 있을지, 연말에 생각이 바뀌지 않을지 걱정도 된다. 하지만 최소한 일터에 매여 있기에 할 수 있는 일과 내 생각을 드러낼 수 있는 디지털 공간은 있지 않은가. 모임이라는 결과를 끝내 얻지 못한다 해도 실망하지 않으려 한다. 엠마 왓슨과 앤 해서웨이가 차분하고 자신감 있게 페미니즘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는 영상을 자주 찾아봤다. 나도 그들처럼 문제를 문제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힘을 키울 수만 있어도 좋겠다. 그런 힘이 생긴다면 단단한 여성 모임도 결국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페미니즘, 만나서 반갑다. 그리고 고맙다.

댓글 2
  • 2021-12-06 19:53

    고구마 먹다가 사이다 한 컵 들이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읽으면서 박수를 치게 되는군요. 마음으로 응원합니다!!

  • 2021-12-13 12:12

    80년대에 시작했던 직장생활의 기억이 떠오르네요. 나름 앞선 지식인이라 자부하던 기자사회에서조차 신문사의 행사에 여기자는 한복을 입고 오라는 사측의 주문에 어이없어했었죠. 그런데 정작 더 황당했던 것은 유일한 여자동기가 정말 한복을 가지고 나타났다는 거죠. 입고오지 않은게 다행이었다고 해야 하나....수없이 많은 성차별적 언어와 행동거지들 사이에서 매일 싸우고 울고 했던 시기가 고스란히 되살아나네요. 지금은 형식적으로나마 그런 노골적인 차별은 없어졌지만, 오히려 이면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스스로를 옭아매는 것들이 더 큰 문제지요. 자신의 입장에서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무엇인가 행동에 옮기는 김지연님의 실천에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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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해방일지>, 청년들의 서사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끝나자마자 언론매체에는 ‘해방’과 ‘추앙’을 제목으로 내세운 글들이 빼곡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반했다’, 무엇에 반했을까? 스타덤에 오른 손석구의 시크한 연기, 미정의 주옥같은 대사들, 주조연을 모두 아우르는 따뜻한 연출……. 아마도 우리는 이 드라마에서 ‘우리’를 보았을 것이고, 또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삼남매 가운데 창희와 친구들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함께 일하는 편의점 점주들에게 성실한 본사 직원으로 인정받고, 연애가 끝나자마자 또 다른 여자가 ‘대시’할 만큼, 창희는 근면성실하고 매력자본이 충분하다. 그러나 차가 없어서 키스한 공간이 없고, 월천만원의 수익을 내는 재테크 방법을 알아도 빚내서 투자하는 걸 반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돈을 모을 수 없다. ‘1원짜리’, ‘계란 흰자’, ‘유기견’, ‘견딜 수 없는 촌스러움’, ‘마음 둘 데 없는 쪽팔림’이 창희가 자신과 친구들을 호명하는 방식이다. 돈 욕심 많고 성격 파탄자에 가까운 회사 동료를 싫어하지만,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는 말처럼 수준 떨어지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 같아 어떻게든 거기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 방법이 창희에게는 승진이었다. 차 없는 경기도 남자가 서울 여자와 연애하기 힘든 것만큼 창희의 승진도 쉽게 풀려가지 않는다. 이후 창희는 퇴사와 창업을 시도하지만 빚더미에 오르고 결국 편의점 점주로 이 빚을 갚아나간다. 드라마 속 그의 대사처럼 “태어나서 희열, 쾌락, 황홀 이런 걸 경험해본 적이 없”고 “사나이 인생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쪽팔리니냐?”는 항의처럼...
<나의 해방일지>, 청년들의 서사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가 끝나자마자 언론매체에는 ‘해방’과 ‘추앙’을 제목으로 내세운 글들이 빼곡하다.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반했다’, 무엇에 반했을까? 스타덤에 오른 손석구의 시크한 연기, 미정의 주옥같은 대사들, 주조연을 모두 아우르는 따뜻한 연출……. 아마도 우리는 이 드라마에서 ‘우리’를 보았을 것이고, 또 우리가 ‘보고 싶은’ 것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삼남매 가운데 창희와 친구들에 주목해보고자 한다. 함께 일하는 편의점 점주들에게 성실한 본사 직원으로 인정받고, 연애가 끝나자마자 또 다른 여자가 ‘대시’할 만큼, 창희는 근면성실하고 매력자본이 충분하다. 그러나 차가 없어서 키스한 공간이 없고, 월천만원의 수익을 내는 재테크 방법을 알아도 빚내서 투자하는 걸 반대하는 아버지 때문에 돈을 모을 수 없다. ‘1원짜리’, ‘계란 흰자’, ‘유기견’, ‘견딜 수 없는 촌스러움’, ‘마음 둘 데 없는 쪽팔림’이 창희가 자신과 친구들을 호명하는 방식이다. 돈 욕심 많고 성격 파탄자에 가까운 회사 동료를 싫어하지만, ‘끼리끼리는 과학’이라는 말처럼 수준 떨어지는 사람과 같이 일하는 것이 바로 자신의 수준을 말해주는 것 같아 어떻게든 거기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 방법이 창희에게는 승진이었다. 차 없는 경기도 남자가 서울 여자와 연애하기 힘든 것만큼 창희의 승진도 쉽게 풀려가지 않는다. 이후 창희는 퇴사와 창업을 시도하지만 빚더미에 오르고 결국 편의점 점주로 이 빚을 갚아나간다. 드라마 속 그의 대사처럼 “태어나서 희열, 쾌락, 황홀 이런 걸 경험해본 적이 없”고 “사나이 인생 나라를 구하는 것도 아닌데 뭐가 이렇게 쪽팔리니냐?”는 항의처럼...
겸목
2022.07.04 | 조회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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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숲은 생각한다’라는 이 짧은 문장은 내 안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나는 이 문장을 말할 때 꽤 희망적이게 된다. 페미니스트와 비건 지향인이 되기로 하면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보다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을 더 많이 마주했다.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말이다. 정상성을 모방하며 종종 정상성의 범주에 들지 않는 나는 나와 비슷한 인간들을 만날 때마다, 혹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만날 때마다 세계가 협소하게 느껴졌다. ‘숲은 생각한다’는 말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인 나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만약 사고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은 이 세계 속에 있는 유일한 자기들selves이 아니다.   <숲은 생각한다>에서는 자기self라는 개념이 나온다. ‘자기’는 우리가 흔히 주체라고 생각하는 ‘인간’ 뿐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기호작용을 하고 표상하는 모든 존재를 지칭한다. 비인간 존재도 ‘자기’로 명명되며, 숲은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숲 속의 수많은 존재들은 살아있는 ‘자기’다. 그러면 이 세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도덕성이 존재하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이 지구 위를 걷기 전에는 도덕성도 윤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덕성은 우리와 이 행성을 공유하는 비인간 존재들로부터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인간적인 것들이 비인간 자기들의 것을 무시한 채 이 세계의 오랜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더 이상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 세상의 도덕으로 해석하고 답을 찾는건 너무 부족하다....
1.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숲은 생각한다’라는 이 짧은 문장은 내 안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나는 이 문장을 말할 때 꽤 희망적이게 된다. 페미니스트와 비건 지향인이 되기로 하면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보다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을 더 많이 마주했다.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말이다. 정상성을 모방하며 종종 정상성의 범주에 들지 않는 나는 나와 비슷한 인간들을 만날 때마다, 혹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만날 때마다 세계가 협소하게 느껴졌다. ‘숲은 생각한다’는 말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인 나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만약 사고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은 이 세계 속에 있는 유일한 자기들selves이 아니다.   <숲은 생각한다>에서는 자기self라는 개념이 나온다. ‘자기’는 우리가 흔히 주체라고 생각하는 ‘인간’ 뿐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기호작용을 하고 표상하는 모든 존재를 지칭한다. 비인간 존재도 ‘자기’로 명명되며, 숲은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숲 속의 수많은 존재들은 살아있는 ‘자기’다. 그러면 이 세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도덕성이 존재하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이 지구 위를 걷기 전에는 도덕성도 윤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덕성은 우리와 이 행성을 공유하는 비인간 존재들로부터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인간적인 것들이 비인간 자기들의 것을 무시한 채 이 세계의 오랜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더 이상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 세상의 도덕으로 해석하고 답을 찾는건 너무 부족하다....
인문약방
2022.01.02 | 조회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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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Man, 人間)을 넘어선다는 것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들보다 인간이 아닌 것, 예를 들어 비인간 동물이나 자연이 더 잘 이해된다. 나에게 ‘인간’이라는 단어는 이해되지 않는 범죄들을 저지르고, 동물들은 소유물 혹은 고깃덩어리로 대하며,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남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가득한 건 아니다. 다만 매일 올라오는 각종 폭력 범죄들, 도로에서 마주치는 동물의 사체들,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을 알게 되면서 더 자주 인간들이 싫어졌다. 처음 공부를 할 때는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인간은 곧 남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주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그들과 나 둘 중에 하나만 살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그들을, 그들이 나를 해석할 수 있을까. 나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처음에 양생 세미나를 신청할 때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며 어느새 인류학까지 왔다. ‘나’에서 숲으로 확장된 셈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인간적”인 것에 의문을 던진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을 아마존 숲속에 있는 루나족의 생활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이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담겨있다. 인간은...
인간(Man, 人間)을 넘어선다는 것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들보다 인간이 아닌 것, 예를 들어 비인간 동물이나 자연이 더 잘 이해된다. 나에게 ‘인간’이라는 단어는 이해되지 않는 범죄들을 저지르고, 동물들은 소유물 혹은 고깃덩어리로 대하며,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남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가득한 건 아니다. 다만 매일 올라오는 각종 폭력 범죄들, 도로에서 마주치는 동물의 사체들,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을 알게 되면서 더 자주 인간들이 싫어졌다. 처음 공부를 할 때는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인간은 곧 남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주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그들과 나 둘 중에 하나만 살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그들을, 그들이 나를 해석할 수 있을까. 나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처음에 양생 세미나를 신청할 때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며 어느새 인류학까지 왔다. ‘나’에서 숲으로 확장된 셈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인간적”인 것에 의문을 던진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을 아마존 숲속에 있는 루나족의 생활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이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담겨있다. 인간은...
인문약방
2022.01.02 | 조회 261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나는 조금 독특한 9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다. 장애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천재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그런 아이 말이다. 어릴 때부터 지지리도 예민하고, 울음을 달고 사는, 그리고 사회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아이를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돌 지나고부터는 아이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여기저기 검사도 많이 받았다. 검사 결과는 지능 상위 1%, 사회성 하위 1%. 한 가지를 좋아하면 몇 년 동안 좋아하는 터라, 지금은 유니코드 문자표에 푹 빠져있다. 아이는 눈 뜨자마자 생각난 듯 나에게 묻는다. “엄마, 에스페란토라는 문자를 아세요? 인공어 중에 하난데요. 제이 위에 이런 삿갓 모양이 그려져 있어요.” 매일 이런 것들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모든 게 괴상하게 그려놓은 꼬부랑 글씨 같아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어떤 친구에게 할 수 있을까 싶어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해도, 사실 나도 힘들다. 거기에 사람들간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쉽게 알아채지 못해서, 농담과 진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다른 친구들과 대화도 안 되고, 재미도 없다 보니, 학교든 학원이든 어디를 다니기가 힘들다. 보편적인 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 왜 온종일 이상한 세계 여러 나라 문자표를 들여다보고 있는지, 왜 똥을 누는 것 같은 당연한 생리 현상을 그토록 무서워하는지..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아이 ‘되기’는 가능하기나 할까.         흰 눈 잉꼬 같은 아이를 알아간다는 건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결국엔 아이...
나는 조금 독특한 9살짜리 아이를 키우고 있다. 장애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천재의 범주에도 딱 들어맞지 않는 그런 아이 말이다. 어릴 때부터 지지리도 예민하고, 울음을 달고 사는, 그리고 사회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이 아이를 키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두 돌 지나고부터는 아이가 조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여기저기 검사도 많이 받았다. 검사 결과는 지능 상위 1%, 사회성 하위 1%. 한 가지를 좋아하면 몇 년 동안 좋아하는 터라, 지금은 유니코드 문자표에 푹 빠져있다. 아이는 눈 뜨자마자 생각난 듯 나에게 묻는다. “엄마, 에스페란토라는 문자를 아세요? 인공어 중에 하난데요. 제이 위에 이런 삿갓 모양이 그려져 있어요.” 매일 이런 것들을 열심히 설명하는데, 모든 게 괴상하게 그려놓은 꼬부랑 글씨 같아 보인다. 이런 이야기를 어떤 친구에게 할 수 있을까 싶어 최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해도, 사실 나도 힘들다. 거기에 사람들간의 미묘한 상호작용을 쉽게 알아채지 못해서, 농담과 진담을 잘 구분하지 못한다. 다른 친구들과 대화도 안 되고, 재미도 없다 보니, 학교든 학원이든 어디를 다니기가 힘들다. 보편적인 눈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아이, 왜 온종일 이상한 세계 여러 나라 문자표를 들여다보고 있는지, 왜 똥을 누는 것 같은 당연한 생리 현상을 그토록 무서워하는지.. 아이를 이해하는 것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니, 아이 ‘되기’는 가능하기나 할까.         흰 눈 잉꼬 같은 아이를 알아간다는 건     에두아르도 콘의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면서, 결국엔 아이...
인문약방
2022.01.02 | 조회 262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페미니즘, 그런 거였어?   2020년 겨울, 우리 회사 모(母)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35살의 최연소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2021년 여름, 그녀는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짧은 논란을 끝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경질되었다. 갑이 을에게 횡포를 저질렀고,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문득 내 시선에 다른 문제가 겹쳐 보인다. 남성 임원이 막말 따위(?)로 경질되는 건 본 적이 없다. 폭력이나 성추행 정도는 돼야 문책받는다. 특히 이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여성 임원 할당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정한 평가로 선발하지 않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사람을 뽑아 올리니 이런 문제가 생긴단다. 그동안 여성을 위한 자리는 특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에서 정희진의 책을 다루던 날이었다. 모두가 사회 문제를 속 시원한 글솜씨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녀의 글에 홀딱 반해서 왁자지껄 토론하던 중이었다. 학인 한 명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가 여자보다 불리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함께 노는 아이들 사이에 때리는 여아와 맞는 남아의 불공평(?)도 존재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데, 소수의 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다른 학인의 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시대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고착된 남녀 구조가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불편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페미니즘, 그런 거였어?   2020년 겨울, 우리 회사 모(母)그룹의 다른 계열사에서 35살의 최연소 여성 임원이 탄생했다. 2021년 여름, 그녀는 부하 직원에게 막말을 퍼부었다는 짧은 논란을 끝으로 임기를 1년도 채우지 못한 채 경질되었다. 갑이 을에게 횡포를 저질렀고, 그에 따른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러나 문득 내 시선에 다른 문제가 겹쳐 보인다. 남성 임원이 막말 따위(?)로 경질되는 건 본 적이 없다. 폭력이나 성추행 정도는 돼야 문책받는다. 특히 이 문제가 기사화되면서 여성 임원 할당제도가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공정한 평가로 선발하지 않고 특별히 마련한 자리에 사람을 뽑아 올리니 이런 문제가 생긴단다. 그동안 여성을 위한 자리는 특별히(?) 배제되었다는 점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사실 나도 잘 몰랐다.   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에서 정희진의 책을 다루던 날이었다. 모두가 사회 문제를 속 시원한 글솜씨로 날카롭게 지적하는 그녀의 글에 홀딱 반해서 왁자지껄 토론하던 중이었다. 학인 한 명이 페미니즘에 대한 불편함을 토로했다. 아들을 키우다 보니 남자가 여자보다 불리한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함께 노는 아이들 사이에 때리는 여아와 맞는 남아의 불공평(?)도 존재한다고 했다. 나도 모르게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부서에는 남자보다 여자가 많은데, 소수의 남자들이 역차별 당한다고 푸념하던 일이 생각났다. 그때 다른 학인의 반기(?)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당하는 시대라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하다는 것이었다. 역사적으로 고착된 남녀 구조가 이제 막 변화하기 시작했는데, 익숙하지 않다고 해서 불편해하면 안 된다고 했다....
김지연
2021.12.06 | 조회 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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