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행성 #3] 출산방법 결정하기

사이
2023-04-19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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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친구는 자연출산? 그런 거 했더라고. 회음부 절개도 안 하고 마취제 촉진제 안 쓰는.”

“아 그런 게 있구나. 연예인들 수중분만 했다는 그런 건가? 그렇게까지 출산해야 하나?”

“왠지 너는 관심 있어할 것 같은데.”

“그래? 너무 유난 떠난 떠는 거 같은데…”

임신이 되고 대학교 친구를 만났을 때 자연주의 출산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그전까지 자연분만, 제왕절개 두 개의 출산 방법만 있다고 생각했다. 어렴풋하게 TV에 나와서 연예인들이 했다는 출산이 생각났고, 뭐 그렇게까지 아이 낳는데 유난을 떨어야 해라는 마음이 있었다. 친구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았고, 역시 나는 유난 떠는 사람이었다^^;; 집에 오는 길에 뭔가에 이끌린 듯 자연 출산을 검색했다.

 

순응이 아닌 주체적인 출산에 대해

찾으면 찾을수록 조산사, 둘라, 캥거루 케어 등등 너무 새로운 용어들이 많아서 헷갈렸다. 일단 조산사라는 개념부터 와닿지 않았다. 출산 시 병원에서 의사가 아이를 받아야 한다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산사? 옛날 산파 이런 건가? 그럼 위험하지 않나?’ 이런 관념과 느낌은 우리나라의 출산 시스템이 얼마나 획일적인지에 대한 방증이고, 그 획일적인 환경에서 산모는 병원과 의료진의 말에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수동적인 태도가 되었다. 나 또한 생소한 출산 방법에 대해서 ‘유난 떤다’ '위험하다'라는 첫 느낌과 태도가 떠오른 것이 얼마나 그동안 내가 시스템에 순응하고 살았는지 보여준다.

작년부터 동의보감, 불교를 통해 ‘몸과 마음은 하나다.’ ‘몸이 곧 우주이자 자연이다.’같이 이것저것 주어들은 이야기가 많다 보니 대한민국 출산에서 자연스럽게 쓰는 용어에 대해 의문을 품게 되었다. ‘선택적 제왕절개’ ‘산후조리원’ ‘신생아실’ ‘무통천국’ ‘단유마사지’ 등등. 한국에서는 너무 당연한 시스템과 문화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는 들어보지 못한 이야기들이다. 특히 대한민국 제왕절개 비율은 56%에 육박하는데 세계보건기구의 제왕절개 권장 비율은 15%이고, 미국은 25% 일본은 30%와 비교하면 너무 높은 비율이다.

고연령 산모 증가, 낮은 수가, 분만에 따른 의료사고 부담 등등 사회적 배경과 의료 환경의 영향이 있지만, 요즘에는 처음부터 제왕절개를 선택하는 친구들이 많다. “친구가 13시간 진통했다가 결국 수술했다는데 그럴 바에 나는 처음부터 수술할래” “불확실한 상황이 싫으니까 제왕절개 할래”라면서 출산의 고통을 최소화하고, 의료 시스템에 맡겨버리고 싶어 한다. 나 또한 작년에 에코 세미나, 불교, 동의보감을 만나지 않았다면 ‘촉진제’ ‘무통주사’ ‘제왕절개’를 당연하게 생각해 출산의 고통에서 도망가는 방법만 찾았을 것이다.

이런 획일적인 출산 시스템에서 자연주의 출산을 선택하기는 쉽지 않았다. 자연주의 출산 병원은 서울에 두세 군데 밖에 없고, 비용도 제왕절개의 2~3배 자연분만의 4~6배까지 높았다. 또한 가장 큰 건 내 안에 있는 두려움이었다. 과연 내가 내 몸이 이 출산을 견딜 수 있을까? 4~5년 전 무당에게 점을 보았을 때 무조건 제왕절개를 해야 한다는 말도 스쳐지나갔고, 요가할 때 절대 골반이 꽉 굳어져 열리지 않는 나의 뻣뻣한 몸을 생각하면 결국 진통하다 수술하는 거 아닌지 걱정이 되었다.

 

공부의 인연으로 확신한 자연주의 출산

그 와중에 작년 에코 세미나에서 출산에 관해 이야기를 했는데 오늘님께서 자연주의 출산을 하셨다고 했고 나는 귀가 쫑긋해졌다. 오늘님은 ‘임신과 출산의 과정이 너무 행복했다’고 말씀하시는데 그동안 들어온 ‘출산하고 몸 다 망가졌다’ ‘출산 때를 생각하면 끔찍하다’같은 주변의 이야기와 대비되었다. 오늘님과 이야기하면서 자연주의 출산이 단순히 ‘마취제’ ‘촉진제’ 같은 의료적 개입을 최소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분만대 없이 다양한 출산 자세로 아기, 남편, 조산사, 둘라가 함께 팀을 이루어 출산의 과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우리가 여기저기 매체에서 본 분만대에서 이를 악물고 힘을 주는 출산 방식은 사실 의료진이 아기를 잘 받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 뿐이었다.

오늘님의 후기를 듣고 확신이 생긴 나는 자연주의 출산 병원으로 옮겼다. 검진에서 원장님을 만났을 때 했던 이야기는 “출산은 질병이 아닌데 왜 의사가 봐야 할까요? 출산을 가장 잘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아기를 많이 받아본 조산사입니다. 산전 검사와 출산 시 위급사항에 의사의 역할이 필요한 거죠.” 나 또한 출산은 당연히 의사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개념이 또 한번 깨졌다. “이 출산을 하기 위해서는 남의 말에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필요합니다.” 라고 말씀하시면서 우리 부부에게 출산 관련 책 리스트 10권을 주셨다.

『두려움 없는 출산』 『즐거운 출산 이야기』 『평화로운 출산 히프노버딩』 등등 출산의 역사, 출산하는 몸의 변화, 자연주의 출산 인터뷰를 담은 책들을 남편과 함께 읽어나갔다. “분만 Delivery는 어른 들이 중심이 되어 “아기를 밖으로 꺼낸다”라는 개념, 즉 의료시스템과 의사에게 아이를 맡긴다는 것이고, 출산 Birth은 아기를 중심으로 보고 “아기가 세상에 나온다”는 개념, 즉 출산을 본능적인 힘으로 하는 것이라고 개념을 정리” (정환욱, 『히프노버딩』, 샨티, 349쪽)한다고 한다. ‘아이를 낳는다’라는 같은 상황에서도 용어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시선이 달라진다.

임신과 출산을 통해 내가 읽는 텍스트, 공부의 현장, 거기서 만난 인연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다시 느끼고 있다. 만약 작년에 에코 세미나를 듣지 않았더라면, 동의보감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시스템에 당연하게 순응했을 것이다. 한편으로는 자연스러운 출산을 하기 위해 훨씬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과 한국 의료 보험 체계가 서글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지금 다니는 병원에서 한국 의료 보험이 인건비를 지원하지 않아 운영이 힘들기 때문에 앞으로는 외국인을 우선으로 받으려고 한다고 합니다ㅜㅜ)  또한 한국 의학이 수준이 선진국보다 높아지면서 수술 사고 비율이 낮아졌기 때문에 의료진도 쉽게 수술을 권하고, 산모들도 쉽게 수술을 선택하는 현실도 안타깝다. 이런 현실 속에서도 나 또한 누군가의 경험으로 출산을 결정했듯이, 나의 경험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선을 연결할 수 있는 작은 씨앗이 되길 바란다.

댓글 10
  • 2023-04-19 21:15

    사이님의 자연주의 출산 시도를 진심 응원합니다.
    이 글을 읽고 나니 birth라는 말이 참 아름답게 느껴져요!
    우리말의 '태어난다'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아요.

  • 2023-04-20 07:51

    반가운 글이 올라와있네요~~
    임신과 출산, 그 속에 공부가 자리잡은 사이님!
    아이 데리고 공부하러 올 날도 멀지 않은듯ㅎㅎㄹ

  • 2023-04-20 23:38

    우리때도 그게 유행이었는디
    전 용기가 없어서 의사가 시키는대로 ㅠ
    사이샘! 자연주의 출산 저도 응원합니다

  • 2023-04-20 23:51

    사이님에게는 아름다운 연결의 씨앗들이 가득하네요^^

  • 2023-04-20 23:52

    그랬나요? 저는 유난떠는 사람이 아니었는지 아님 너무 무심했던 건지 자연출산은 금시초문이었습니다. 미리 알았더라면 한번뿐인 출산의 경험이 지금처럼 끔찍하진 않았을텐데요 저 역시 마음으로 늘 응원하고 있습니당~

  • 2023-04-21 00:11

    많은 사람들이 제가 자연출산을 했다고 하면 용감하다고 말하지만 저는 정말 겁이 많아서 자연출산병원을 선택했어요. 혹시 앞으로 또 출산을 하게 된다면 무통주사의 천국을 경험해 보지 못해서 이렇게 생각하는걸지도 모르지만 일반병원에서는 무서워서 못할것 같아요. 자연출산 교육을 받으며 출산시 호흡하는 법, 아이를 밀어낼때 힘주는 법, 아이를 잘 낳기 위해서 산모에게 필요한 몸관리법, 남편과 함께 할 수 있는 출산준비 등을 열심히 준비해서 저는 두려움없이 출산을 맞이 했던 것 같아요. 부디 사이님도 황홀한 출산을 맞이하시기를 바랄께요. ^^ 응원합니다~~♡

  • 2023-04-21 06:52

    사이님의 자연주의 출산 엄청 응원해요~~~

    전 무통하다..결국 제왕절개.. ㅠㅠ

  • 2023-04-21 20:00

    사이샘~~
    몸 많이 무거워 졌지요?
    많이 힘들지는 않나요?
    아기 낳는 날까지 잘 먹고, 잘 자고, 운동도 하고,
    좋은 생각 많이 하시길.
    그리고 혹~시 자연스런 출산을 못하게 되더라도 원통해하지 말았음 해요.

    저는 수술로 다소 차가운 분만을 했지만 그게 나쁘지만은 않았어요. ㅎㅎ

  • 2023-04-24 16:09

    사이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결혼과 출산은 돌아보게되는데
    그때 이런 생각을 못했을까, 왜 당연히 주어진 임무처럼
    결혼을 해야하고 또 아이를 낳는 일을 당연히 받아들였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고민을 하는 건 참 필요한 건데 알이죠
    그런 의미에서도 사이를 응원합니다.

  • 2023-04-29 09:56

    사이님, 이렇게 글로 다시 뵙네요. 건강한 고민들 이어가시는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사이님 주변에 튼튼한 기운 가득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