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읽기/논어3] 공자님의 자식 키우기

도라지
2022-07-11 09:50
344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학이-2/낭송논어 p.35)

 

공자가 지향한 인간상은 ‘군자’다. 위 문장은 군자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 효도와 우애라고 말하고 있다. 가족 안에서 효와 우애로 다진 마음을 세상을 향해 꺼내어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서 ‘인’의 가능성은 숨 쉬고 있다. 뭐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군자가 아니라서 싱거울 정도지만 어쨌거나 ‘인’은 발아하지 못했을 뿐 내 주변 일상에 잠재해 있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는 것이 ‘인’한 것일까? 하지만 논어에서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보편윤리라서 공자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을 망치거나, 혹은 서로 미워하는 부모 자식 관계를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금쪽같은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엄마란 가장 가까이에서 스치는 칼날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삼가함()을 예()로 삼아

 

공자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이름은 공리(孔鯉). 백어(伯魚)라고도 한다. 스무 살에 얻은 아들이었으니 나이로 치면 1기 제자와 2기 제자들 중간쯤 되는 연배다. 공자가 69세일 때 50세의 나이로 (안회보다 1년 먼저)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계씨편에 진강(자금)과 백어의 대화가 나온다.

 

진강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백어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일찍이 아버님께서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 걸음으로 지나가니, ‘시를 배웠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시를 배우지 않으면 말을 할 수 없다(不學詩, 無以言)’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물러나 시를 배웠습니다. 다른 날에 또 홀로 서 계시기에 종종걸음으로 뜰을 지나가니, ‘예를 배웠느냐고 물어보셨습니다. ‘아직 배우지 못했습니다하고 대답하자, ‘예를 배우지 않으면 바로 설 수 없다(不學禮, 無以立)’고 하셨습니다. 나는 물러나 예를 배웠습니다. 제가 들은 것은 이 두 가지입니다.”

진강이 물러나와 기뻐하며 말했다.

하나를 물어 세 가지를 얻었다. 시에 대해 듣고, 예에 대해 듣고, 또 군자는 자식을 멀리한다는 것을 들었다.” (계씨-13/낭송논어 p.547)

 

진강의 질문은 그가 자공에게 했던 “선생께서 겸손해서 그렇지, 중니가 어찌 선생보다 뛰어나겠습니까?”(자장-25)라는 질문을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 진강은 공자보다 40세 어린 제자인데(자공의 제자로 보기도 한다) 공자의 명성에 의심을 품었던 것 같다. 그러므로 진강의 백어를 향한 질문은 공자가 아무리 제자들을 아낀대도 아들만을 위한 ‘특별한 교육방식’이 있지 않을까 하는 개인적인 의심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진강의 질문에 백어는 뜰 앞에서 단 두 가지에 대해 들었다고 대답할 뿐이다. 그것은 바로 ‘시(詩)’와 ‘예(禮)’였다. 공자가 아들에게 당부한 ‘시’는 말(言)을 바로하기 위함이었고, ‘예’는 자립(立)을 제대로 하기 위함이었다. 공자는 열다섯에 뜻을 세우고 서른에 자립했다고 한다. ‘立’은 열다섯에 세운 뜻(志于學)에 매진하여 서른에 사회에 나가 그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그러므로 아버지 공자가 백어에게 했다는 두 가지 말은 아들이 서른이 되도록 노심초사하며 가슴에 품고 있던 아버지의 당부였다고 볼 수 있다. 공자가 아들 백어에게 얼마나 말을 아꼈는지 짐작되는 장면이다.

 

공자에게 ‘예’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소통시키는 핵심 사상이었다. 그렇다면 백어의 대답을 통해 비쳐진 공자의 내리사랑은 ‘삼가함(愼)’을 ‘예’로 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런데 부모는 자식을 대함에 있어 무엇을 어떻게 삼가해야 하는 것일까? 반면 부모가 자식을 위해 기꺼이 해도 되는 일은 무엇일까?

 

()로써 한다

 

부모는 자식을 늘 살핀다. 대놓고 살피면 혹여 부담스러워할까 나는 몰래 살핀 적도 많았다. 큰아이가 한참 사춘기였던 무렵엔 쳐다보는 것도 녀석이 불편해했었다. 그래서 등교하는 아이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질 때까지 베란다에 숨어 하염없이 내려다 본 적도 있었다. ‘매정하고 쌀쌀맞은 놈’이라고 속으로 욕하면서도 서운했다. 그런데 내 눈길을 큰 아이는 왜 그렇게 불편해했을까? 나는 어쩌다 마주친 아이의 눈빛을 붙잡고 잔소리를 해댔을 것이 틀림없다. 방 안이 어질러진 것에 대해, 과제를 잘 하고 있는지에 대해, 얼굴에 난 여드름에 대해. 아이는 찌푸린 얼굴로 쏟아내던 관심을 가장한 엄마의 욕심이 불편하고 싫었을 것이다.

 

자공이 물었다. “한마디 말로 평생토록 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그것은 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지 않는 일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것이다.”

(위령공-23/낭송논어 p.509)

 

주자는 위 문장에 대해 이렇게 덧붙인다. “자기 마음을 미루어 남에게 미치면 그 베풂이 무궁하다. 그러므로 종신토록 행할 수 있는 것이다.” (「논어집주」 성백현 역주 P.452)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봐야 했던 공자의 아들 백어의 마음을 상상해본다. 백어는 소문난 스승인 아버지 공자에게 뭔가를 따로 배우고 싶었던 적은 있었을까? 자신이 아버지 앞에 나서면 다른 제자들이 아버지를 어떻게 볼까 걱정되어 아버지가 홀로 계실 때서야 종종 걸음으로 그 앞을 지나갈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반대로 공자인들 하나밖에 없는 아들 백어에 대한 애착이 왜 없었을까? 하지만 학당을 이룬 아버지의 명성에 주눅들까봐 아들에게 어떤 말도 하기 어려웠을 테고, 그로 인해 아들의 교육을 망칠까 걱정한 것은 아닐까?

진강은 백어의 대답을 듣고 기뻐하며 이렇게 말했다. “군자는 자식을 멀리한다는 것을 들었다”라고. 서(恕)로써 염려했을 공자와 백어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 ‘멀리함’ 속에 있는 서로를 향한 마음(恕)과 태도(禮)에서 멀고도 가까운 부모 자식 간의 애씀 또한 느껴진다.

 

 

 

“방학동안 문탁에서 하는 수학 세미나를 해보면 어떨까?” 나의 말에 옆에 있던 작은 아들은 슬금슬금 자리를 피한다. 공부를 더 오래하면 멋진 청유형 문장으로 아이들을 꼬실 수 있을까? 이런 망상이 수시로 일어나지만, 아직은 공부로 아이들을 감화시키지 못하는 나라서 오늘도 그냥 나만 열심히 사는 걸로 한다. 물론 아이들이 책 읽기를 바라는 나의 기대는 또 고개를 쳐들겠지만, 아이들 역시 지금까지 보여준 것처럼 나의 말을 귓등으로 듣고 나의 기대치를 용납하지 않을 것 또한 틀림없기에 나는 이제 어떠한 실망도 좌절도 없다.

아이들을 키우면서 지나간 내 시절을 자주 떠올릴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그랬다. 할머니댁에 가시면서 하룻밤 집을 비우시던 엄마 아빠가 얼마나 반가웠던가. 나는 부모님이랑은 텔레비전도 같이 보기 싫어서 ‘모래시계’도 안 본 사람이 아니었던가. 부모가 마음 놓고 자식을 살펴도 되는 것은 ‘건강’밖에 없는 것 같다. 문탁에서 일찍이 다른 쌤들께서 자식한텐 밥만 잘 해주면 된다고 하시던 말씀 또한 이런 맥락이었을 것이다.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합니다.” (위정-6/낭송논어 p.58)

(질문하는 이의 상황에 맞는 대답을 하는 공자의 화법을 고려하건데 당시 노나라의 대부였던 맹무백은 허약한 인물이 아니었나 싶다. 공자는 그런 맹무백에게 건강이 효라는 답을 한다.)

 

숨어서 하던 대놓고 하던 자식이 건강한지 살피고 염려하는 딱 거기까지만. 이제 성인이 된 두 아이에게 내가 ‘서’를 통해 표현할 수 있는 ‘삼가함’의 마지노선이자 ‘예’다.

 

.

 

댓글 2
  • 2022-07-13 14:25

    이미 다 큰 자식들에게는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지라 

    건강한지 살피는 정도가 할 수 있는 일이네요

    알아서 잘 살려니 믿는 수밖에요

    공자님과 아들의 에피소드는 새롭네요

  • 2022-07-15 07:35

    자식에게 삼가는  예로써  공자와 그 아들의  정원에서의 대화를 상상해 봤어요. 나름 품격 있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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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 시즌2는 '여행'이 주제였습니다. 시즌2을 마치며 쓴 에세이 가운데 두 편을 북앤톡에 올립니다. 함께 읽어봤으면 합니다.    나를 부르는 망우산 발을 옮겨 딛는 단순한 기쁨을 마음껏 즐겼다.(239쪽) 생기 있는 푸른 하늘과 군청색의 대지, 자연이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색의 선명한 농담을 발산하는 나뭇잎들. 숲에 있는 모든 나무들 하나하나가 개성 있는 존재가 되는 광경을 보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나는 열정적으로, 원기 왕성하게 신선한 대기와 광채에 들떠서 등산을 즐겼다.(387쪽)   『나를 부르는 숲』(빌 브라이슨, 까치, 2018년)에서 빌과 카츠는 처음 계획대로 애팔래치아 트레일 3520킬로미터 전부를 걷지는 못했지만 두 번에 걸쳐 시도했고 시도한 만큼 예상 밖의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 중 트래킹을 마친 후 빌과 카츠가 ‘발을 옮겨 딛는 단순한 기쁨’을 알고 누리게 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빌처럼 내게도 산에서 단순한 기쁨을 누리며 등산을 즐긴 적이 최근에 있었나? 떠올려보니 올 여름이 되어서는 더워서 없었고 장마가 시작되자 더욱 산에 갈 생각조차 안 했다. 더위와 비 때문이 아니어도 산 자체를 여유 있게 마음껏 즐겼던 기억이 없다.   왜 없을까? 나는 10년 전 2030산악회 막내 회원으로 활동하며 설악산, 지리산 종주도 가 보았고 혼자서 템플 스테이를 다니며 지방 곳곳 산행도 했고 고민이 있을 때에는 서울 불암산, 수락산도 종종 등산했는데 말이다. 함께 산행 했을 때에는 웃고 떠들고 나누다가 혼자서는 현실의 고민과 걱정이 가득차서 산 자체를 온전히 즐길 여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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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2 | 조회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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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지 20년이 넘었다. 타지에서 생활하면 자주 뵙기 힘든 부모님에 대한 ‘효’는 더욱 간절해진다. 나와 사정이 비슷한 남편은 혼자 계신 시어머니가 걱정되어 나에게도 안부 전화를 드리는지 자주 확인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도 누가 시켜서 하려면 마음이 달아나는 법. 나는 미루다 미루다 마지못해 한 번씩 전화를 드리곤 한다. 아무래도 이건 ‘효’라고 말하기 좀 그렇다. 얼마 전 친정엄마의 칠순을 기념한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왕이면 더 멋진 장소, 더 맛있는 음식, 기준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딜까 고민했고 그에 따라 여행 일정은 빡빡해졌다. 다행히 별다른 다툼 없이 여행을 잘 마쳤고 ‘고마운 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문득 그때 내가 ‘효’라고 믿고 행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가 ’효’를 말하다.   <논어>를 보면 여러 사람이 공자를 찾아와 효에 대해 묻는다. 당시에도 효를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공자의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효는 구체적인 행위들로 드러나는 것이지, 하나의 본질로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공자는 일정한 형식(禮)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격식에 맞는 행동이라도 마음이 빠져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공자는 효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한번은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합니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위정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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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2022.07.11 | 조회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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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학이-2/낭송논어 p.35)   공자가 지향한 인간상은 ‘군자’다. 위 문장은 군자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 효도와 우애라고 말하고 있다. 가족 안에서 효와 우애로 다진 마음을 세상을 향해 꺼내어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서 ‘인’의 가능성은 숨 쉬고 있다. 뭐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군자가 아니라서 싱거울 정도지만 어쨌거나 ‘인’은 발아하지 못했을 뿐 내 주변 일상에 잠재해 있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는 것이 ‘인’한 것일까? 하지만 논어에서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보편윤리라서 공자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을 망치거나, 혹은 서로 미워하는 부모 자식 관계를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금쪽같은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엄마란 가장 가까이에서 스치는 칼날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삼가함(愼)을 예(禮)로 삼아   공자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이름은 공리(孔鯉). 백어(伯魚)라고도 한다. 스무 살에 얻은 아들이었으니 나이로 치면 1기 제자와 2기 제자들 중간쯤 되는 연배다. 공자가 69세일 때 50세의 나이로 (안회보다 1년 먼저)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계씨편에 진강(자금)과 백어의 대화가 나온다.   진강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백어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일찍이 아버님께서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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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라지
2022.07.11 | 조회 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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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가 시골에서 보내준 것이라며 호랑이 콩을 나누어 주었다. 호랑이 콩은 알이 큼직한 게 특징인데, 크기가 작았다. 가뭄 때문이라고 했다. 가뭄에 산불까지, 올 봄도 참 힘겹게 지나갔다.   어차피, 파멸인데....   관심만 있었던 환경문제에 대해 이제 실천적 대응을 해보자며 삼년 전부터 ‘에코 000’ 운동을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쓰레기 덜 만들고 자동차 덜 타고 전기 아껴 쓰고. 주로 덜 하고 덜 사고, 소박하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어서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것들 이었다. 운동이란 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야 힘이 나는 법이라 같이 하자고 여러 사람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작년에 나는 문탁 내 에코 챌린지 매니저였다.) https://moontaknet.com/?pageid=4&page_id=244&uid=36826&mod=list 그런데 공부를 통해 지구 생태계가 처한 실태를 알아갈수록 부정적 예측을 떨칠 수 없었다. 전 지구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부분적인 개개인들의 소소한 변화로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까. 대기과학자 조천호의 설명은 더욱 암담했다. 지금의 늘어난 온실가스와 기온 상승은 2000년 이전 산업 활동의 결과이며, 현재의 결과물은 30년 이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각고의 노력으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해도 몇 십 년 뒤 상태는 지금보다 끔찍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각국은 이기주의에 빠져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행여나 부자나라가 감축할 탄소는 저개발국가가 떠안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붕괴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바다를 떠다니는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또 어쩔 건가. 이건 도저히 해결 불가능. 임계점을 이미...
며칠 전 친구가 시골에서 보내준 것이라며 호랑이 콩을 나누어 주었다. 호랑이 콩은 알이 큼직한 게 특징인데, 크기가 작았다. 가뭄 때문이라고 했다. 가뭄에 산불까지, 올 봄도 참 힘겹게 지나갔다.   어차피, 파멸인데....   관심만 있었던 환경문제에 대해 이제 실천적 대응을 해보자며 삼년 전부터 ‘에코 000’ 운동을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쓰레기 덜 만들고 자동차 덜 타고 전기 아껴 쓰고. 주로 덜 하고 덜 사고, 소박하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어서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것들 이었다. 운동이란 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야 힘이 나는 법이라 같이 하자고 여러 사람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작년에 나는 문탁 내 에코 챌린지 매니저였다.) https://moontaknet.com/?pageid=4&page_id=244&uid=36826&mod=list 그런데 공부를 통해 지구 생태계가 처한 실태를 알아갈수록 부정적 예측을 떨칠 수 없었다. 전 지구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부분적인 개개인들의 소소한 변화로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까. 대기과학자 조천호의 설명은 더욱 암담했다. 지금의 늘어난 온실가스와 기온 상승은 2000년 이전 산업 활동의 결과이며, 현재의 결과물은 30년 이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각고의 노력으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해도 몇 십 년 뒤 상태는 지금보다 끔찍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각국은 이기주의에 빠져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행여나 부자나라가 감축할 탄소는 저개발국가가 떠안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붕괴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바다를 떠다니는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또 어쩔 건가. 이건 도저히 해결 불가능. 임계점을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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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1 | 조회 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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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하면 유가 경전을, 공자를 떠올리고 또 인(仁), 예(禮), 정명(正名)을 생각한다. 내가 처음 『논어』를 배웠을 때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한자 문장들, 그것도 단편적인 구절들의 집합. 거기다 위대하신 공자님 말씀들의 개념들을 파악하느라 내겐 여느 철학책 못지않게 어려웠다. 이번 ‘고전학교’에서 다시 만난 ‘논어’는 역사상 실존했던 공자와 그의 사상들을 파헤치기보다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논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행하기는 어렵구나.”(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竝爲仁矣)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잘한다. 그러나 아직 인하지는 못하다.”(子游曰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위 두 문장은 모두 『논어』 <자장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보면 자장이라는 사람은 공자가 지향하는 인(仁)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비친다. 자장은 공자 만년의 제자로 공자와 48세 차이가 난다. 공자가 54세가 되던 해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절에 제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 무렵 자하, 자유, 증자, 자장이 공자 학단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은 출신 지역은 서로 다르지만(위나라, 오나라, 노나라, 진나라), 나잇대는 비슷비슷하며 이 중 자장이 가장 어렸다.(자하보다 4살 연하) 왜 자장은 동문수학하는 문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얼마나 나쁜 일을 하였기에? 『논어』에는 이렇다 할 자장의 잘못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지인 인을 거론하면서까지 교우를 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 학단 내에서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지, 선배인 자공이 나서서 아예 대놓고 스승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낫냐고 물어본다. 이에 공자는...
『논어』 하면 유가 경전을, 공자를 떠올리고 또 인(仁), 예(禮), 정명(正名)을 생각한다. 내가 처음 『논어』를 배웠을 때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한자 문장들, 그것도 단편적인 구절들의 집합. 거기다 위대하신 공자님 말씀들의 개념들을 파악하느라 내겐 여느 철학책 못지않게 어려웠다. 이번 ‘고전학교’에서 다시 만난 ‘논어’는 역사상 실존했던 공자와 그의 사상들을 파헤치기보다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논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행하기는 어렵구나.”(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竝爲仁矣)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잘한다. 그러나 아직 인하지는 못하다.”(子游曰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위 두 문장은 모두 『논어』 <자장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보면 자장이라는 사람은 공자가 지향하는 인(仁)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비친다. 자장은 공자 만년의 제자로 공자와 48세 차이가 난다. 공자가 54세가 되던 해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절에 제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 무렵 자하, 자유, 증자, 자장이 공자 학단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은 출신 지역은 서로 다르지만(위나라, 오나라, 노나라, 진나라), 나잇대는 비슷비슷하며 이 중 자장이 가장 어렸다.(자하보다 4살 연하) 왜 자장은 동문수학하는 문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얼마나 나쁜 일을 하였기에? 『논어』에는 이렇다 할 자장의 잘못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지인 인을 거론하면서까지 교우를 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 학단 내에서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지, 선배인 자공이 나서서 아예 대놓고 스승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낫냐고 물어본다. 이에 공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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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7.11 | 조회 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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