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읽기/논어1] 사람이 보이네
마음
2022-07-11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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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하면 유가 경전을, 공자를 떠올리고 또 인(仁), 예(禮), 정명(正名)을 생각한다.
내가 처음 『논어』를 배웠을 때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한자 문장들, 그것도 단편적인 구절들의 집합. 거기다 위대하신 공자님 말씀들의 개념들을 파악하느라 내겐 여느 철학책 못지않게 어려웠다. 이번 ‘고전학교’에서 다시 만난 ‘논어’는 역사상 실존했던 공자와 그의 사상들을 파헤치기보다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논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행하기는 어렵구나.”(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竝爲仁矣)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잘한다. 그러나 아직 인하지는 못하다.”(子游曰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위 두 문장은 모두 『논어』 <자장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보면 자장이라는 사람은 공자가 지향하는 인(仁)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비친다. 자장은 공자 만년의 제자로 공자와 48세 차이가 난다. 공자가 54세가 되던 해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절에 제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 무렵 자하, 자유, 증자, 자장이 공자 학단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은 출신 지역은 서로 다르지만(위나라, 오나라, 노나라, 진나라), 나잇대는 비슷비슷하며 이 중 자장이 가장 어렸다.(자하보다 4살 연하) 왜 자장은 동문수학하는 문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얼마나 나쁜 일을 하였기에? 『논어』에는 이렇다 할 자장의 잘못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지인 인을 거론하면서까지 교우를 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 학단 내에서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지, 선배인 자공이 나서서 아예 대놓고 스승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낫냐고 물어본다. 이에 공자는 그들 각각이 가진 결이 다른 것이지 우열이나 순위를 따질 수 없다고 대답해준다. 그렇다면 그들의 결이 어떻게 다른지 한번 보자.
사람 사귀는 법에 대해서 자하는 “사귈 만한 사람과 사귀고, 사귀어서는 안 될 사람을 사귀지 말라”고 말하고, 자장은 자하의 말을 의식하며 “군자는 현명한 사람을 존중하고 많은 사람을 포용하며 유능한 사람을 칭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불쌍히 여긴다. 내가 크게 현명하면 어찌 남을 포용하지 못하겠는가? 내가 현명하지 못하면 남이 나를 거절할 텐데, 어찌 내가 남을 거절하겠는가?”라고 말한다.
자장의 말에서 자하는 소극적인 데 비해서 자장은 진취적이고 호방하게 느껴진다.
이상 네 구절을 살펴 미루어 짐작해보면 “당당하고”, “어려운 일을 잘하고”의 표현처럼 자장은 매사 자신감 넘치고 활발하며 적극적인 성격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그러니 공자로부터 지나치다는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자장은 배우는 데도 열의가 있어서 공자에게 많은 질문을 던진다. 그럴 때마다 공자는 친절하게 잘 답해주는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스승의 귀염도 받았으리라 추정된다. 『논어』에 보면 공자가 뒷담화를 하거나, 호통친 사람도 있는데 자장은 공자에게 벼슬을 구하는 방법을 당돌하게 물은 유일한 제자이기도 하다. 공자의 가르침을 차곡차곡 새긴 자장은 말한다. “선비는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치고, 이득을 보면 의를 생각한다.” 특히 ‘의’를 강조한 자장은 위급한 것을 보면 생명을 바쳐야 한다고 말할 정도로 의협심이 강한 사람이기도 하다. 스승 공자가 볼 때 먼저 떠난 자로가 생각나지 않았을까.
공자 사후 3년상을 치르고 난 뒤 공자 학단의 제자들은 여러 문파로 나뉘었다. 『한비자』의 〈현학편〉에 의하면, “유가에는 자장(子張) · 자사(子思) · 안씨(顔氏) · 맹씨(孟氏) · 칠조(漆雕) · 중량씨(仲良氏) · 손씨(孫氏) · 악정씨(樂正氏) 등의 8파(八派)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짐작해보면 막내이면서 맨 앞에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두각을 나타내는 자장을 문인들이 서로 견제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래서 동문들의 평가도 이런 맥락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그렇다고 유독 자장만 견제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아니다. 자유와 자하도 서로 논쟁의 각을 세우는 장면이 있다. 자유가 자하의 제자들이 마당을 빗질하고 손님을 응대하는 예절만 열심히 하는 걸 두고 그건 좀 사소한 일에만 신경 쓰는 것 아니냐며 핀잔을 주자, 자하가 발끈하며 군자가 사람을 가르침에 순서가 있어서 먼저 작은 것과 가까운 것을 가르친 뒤에 큰 것과 먼 것을 가르치는 것이지 높고 원대한 것을 가지고만 억지로 말하지 않는다. 쇄소하고 응대하는 일로부터 나아가면 그 이치는 동일하다고 맞받아친다.
이들은 공자 학단 특성상 이들 또한 각자의 문인들을 두고 있었다. 따라서 이들의 논쟁은 단순히 개개인의 일이 아니라, 공자의 말을 둘러싸고 서로 해석이 다른 공동체들이 있었다고 봐야한다.
앞의 자하와 자장의 교우관에 있어서도, 자하의 교우관은 『논어』 <학이편>의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벗으로 사귀지 말아라’라는 것에 가깝고, 자장의 교우관은 『논어』 <학이편>의 ‘널리 여러 사람을 사랑하고,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라’라는 것에 가깝다.
<자장편> 자체가 이미 분파의 단초를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제자들이 공자에게 가르침을 받았지만, 신분과 개성이 제각각인 공자의 제자들은 그 가르침을 각자의 삶 속에서 적용하거나 해석하면서 각자 나름대로 색깔을 만들어나갔을 것이다. 그래서 『논어』는 공자의 사상을 나타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자의 사상과 그에 대한 제자들의 해석이 공존한다. 『논어』에 나오는 장면들은 여러 가지 상황과 맥락이 생략된 형태가 대부분이다. 그래서 하나씩 추론해가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 수 있다. 공자의 제자들은 각자 공자의 말을 이해하고 해석하면서 서로 차이가 생겼을 테고 공자 학단 내에서 경쟁도 일어났을 법하다. 그리고 이들은 공자 사후 새로운 분파의 출발을 맞는다. 특히 공자 생애 후반부의 제자들이. 자하, 자유, 증자, 자장. 공자가 죽었을 때 이들의 나이는 29세에서 25세 사이들이었다. 한창 혈기왕성했을 이들은 서로가 공자의 가르침을 전수한다며 다양한 지역에서 경쟁과 질투 속에서 꿋꿋하게 후대에 유학을 알리고 전파하는 데에 혁혁한 역할을 한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앞서 밝혔듯이 나는 논어=공자였으며, 공자의 사상과 관련된 인, 예, 효, 충, 서...개념을 파악하는게 우선이었다. 그래서 공자의 초기 제자 자로, 안회, 자공 외에 등장인물에는 관심이 없었다.(사실 논어에는 너무 많은 사람이 나온다.) 그러나 이번에 공자 학단의 제자들을 중심으로 『논어』를 읽으니, 공자와 그의 제자들의 삶이 서로 엮이면서 사람들이 보였다. 이번 ‘논어 읽기’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다음에는 어떤 모습의 논어를 만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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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에서 사람이 보이는 경지!!
마음님의 고전공부가 무르익은듯요
젊은 제자들 이야기도 흥미진진 재밌어요
거의 십년? 만에 보는 마음의 에세이~~~ 그간 공자의 명성을 넘어 제자들의 분투에 가닿은 시선을 이어가기를 응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