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읽기/논어2] 어차피 안 될지라도, 역부족 일지라도
토토로
2022-07-11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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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가 시골에서 보내준 것이라며 호랑이 콩을 나누어 주었다. 호랑이 콩은 알이 큼직한 게 특징인데, 크기가 작았다. 가뭄 때문이라고 했다. 가뭄에 산불까지, 올 봄도 참 힘겹게 지나갔다.
어차피, 파멸인데....
관심만 있었던 환경문제에 대해 이제 실천적 대응을 해보자며 삼년 전부터 ‘에코 000’ 운동을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쓰레기 덜 만들고 자동차 덜 타고 전기 아껴 쓰고. 주로 덜 하고 덜 사고, 소박하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어서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것들 이었다. 운동이란 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야 힘이 나는 법이라 같이 하자고 여러 사람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작년에 나는 문탁 내 에코 챌린지 매니저였다.)
https://moontaknet.com/?pageid=4&page_id=244&uid=36826&mod=list
그런데 공부를 통해 지구 생태계가 처한 실태를 알아갈수록 부정적 예측을 떨칠 수 없었다. 전 지구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부분적인 개개인들의 소소한 변화로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까. 대기과학자 조천호의 설명은 더욱 암담했다. 지금의 늘어난 온실가스와 기온 상승은 2000년 이전 산업 활동의 결과이며, 현재의 결과물은 30년 이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각고의 노력으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해도 몇 십 년 뒤 상태는 지금보다 끔찍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각국은 이기주의에 빠져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행여나 부자나라가 감축할 탄소는 저개발국가가 떠안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붕괴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바다를 떠다니는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또 어쩔 건가. 이건 도저히 해결 불가능. 임계점을 이미 넘어섰구나! 우린 너무 늦었고, 고통 속에 망해가겠구나! 비관이 늘 따라다녔다. 어차피 파멸인데, 나, 뭐 하자고 이러고 있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해보려는 사람
춘추시대는 천하의 구질서가 재편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다양한 정치사상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싹튼 때이기도 하다. 이 중 노나라의 공자(孔子)는 인(仁)과 예악(禮樂)으로 다스려지는 덕치(德治)를 주장한 사람이다, 위정자의 자기 수양, 덕행. 솔선수범, 의로움..그런 것들이 백성에게로 가 닿아 세상을 편하게 하는 정치 말이다.
그는 좋은 집안 출신이 아니었기에 이를 위해 관직을 얻고 쓰임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자신을 써줄 위정자를 찾아, 무려 14년이나, 제자들을 이끌고, 천하를 주유하였다.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고, 상갓집 개처럼 행색이 초라해 지기도 했다. 제후들 뿐 아니라 세력가, 반역자, 심지어 호사가들의 구설에 오르내리는 비선실세 여인과의 만남도 꺼리지 않았건만 원하는 자리를 얻을 기회는 쉽게 오질 않았다.
자로가 석문에서 묵게 되었는데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자로가 대답했다. “공씨 집에서 옵니다.” 문지기가 말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해보려고 하는 사람 말입니까?”
(『논어』 헌문-41)
천하를 떠돌 당시, 어느 문지기의 눈에 공자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해보려는 사람’으로 보였다. 뼈 때리는 표현이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원하는 걸 얻지 못했으니 공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가 하늘과 제자를 향해 신세 한탄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느낀 좌절감을 표출하는 것 같아 짠하다. 결국엔 별 소득 없이, 늙은 나이에 고국에 돌아온 그는 제자 교육에 전념하다 생을 마쳤다. 공자에겐 기회가 없었지만 제자들은 유가(儒家)를 형성하며 꾸준히 관료로 진출하였다. 이후 유가사상은 새로운 국가가 탄생 될 때마다, 지도자의 통치관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2500년 지난 지금까지 동아시아 주요 사상으로 남아있으니, 공자 살아생전엔 꿈도 꾸지 못했을 법한 일이다.
당연히 정치는 이상을 품어야 한다. 구태의연한 현실정치만 반복하는 위정자는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좋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위정자는 국민들을 더 심한 고통에 빠지게 한다. 그런고로 『논어』를 읽는 동안 이상적 군주를 논하는 공자에 수긍은 하면서도, 나는 안 될 것 같은 일에 그렇게 애쓰는 그가 답답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자가 또 있다.
역부족(力不足) 이지만 금여획(今女畫) 하지 않는 자세
염구가 말했다. “저는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 그만두는데, 지금 너는 미리 금을 긋는 것이다.”
(『논어』 옹야-10)
『논어』 속 공자와 제자 염구(冉求)의 대화이다. 스승을 따르기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판단한 염구가 ‘역부족’ 이라며 거절을 하자, 공자가 나무라는 장면이다. 염구가 이상적 도만 좇을 수 없는 상황을 잘 파악한 실용적 전략가 일 수도 있다. 혹은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비겁한 사람일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다.
어차피 안 될 거라고 생각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공자의 정치관은 이상에 불과하다. 환경운동은 어차피 늦은데다 몇 명 애쓴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툰베리도, 디카프리오도, 욕먹어가면서 괜히 쓸데없는 짓 하는 거다. 비닐포장재 안 썼다고 ‘추앙’을 날린 들!! 이런 생각에 빠져 자포자기(自暴自棄) 한다면 우린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것이 더 빨리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까. 왜 잘못 됐는지 일말의 성찰도 없이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안 될 것 같아도 꾸준한 시도 속에서 다른 세상을 꿈이라도 꿔 봐야 한다.
공자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그의 이상 정치에 의구심이 많다. 환경문제에도 마찬가지여서. 여전히 희망은커녕 비관적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나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길에 쓰레기 버린 놈들을 미워하면서도 쓰레기 줍기에 동참해보고, 채식지향도 여전하다. 환경을 위해 뭐든 하는 사람들을 추앙하며 응원과 박수도 보낸다. 이런다고 달라지지 않겠지만 지구에 마구 폐 끼치며 살수는 없으니까 뭐든 하게 된다. 다만, 그저,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선 긋지 않으며, 비록 역부족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 나갈 뿐이다. 그래야 한다는 마음으로. 최악 중의 최악은 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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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안되고 역부족일지라도 계속해나가겠다는 전 공생자행성지기, 현 에코레시피지기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도 그 옆에 붙어서 같이 계속해보겠습니다.
여럿이 함께 하면 역부족일지라도 찡그리기보다 웃을 일이 많아지겠죠?
논어 공부로 더 깊어지는 토토로 멋짐
맹자에 나오는 자포자기를 기후위기문제와 연결하자니 가슴이 답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마음도 챙기기... 의샤의샤 구령이 필요합니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