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읽기/논어2] 어차피 안 될지라도, 역부족 일지라도

토토로
2022-07-11 09:38
243

며칠 전 친구가 시골에서 보내준 것이라며 호랑이 콩을 나누어 주었다. 호랑이 콩은 알이 큼직한 게 특징인데, 크기가 작았다. 가뭄 때문이라고 했다. 가뭄에 산불까지, 올 봄도 참 힘겹게 지나갔다.

 

어차피, 파멸인데....

 

관심만 있었던 환경문제에 대해 이제 실천적 대응을 해보자며 삼년 전부터 ‘에코 000’ 운동을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쓰레기 덜 만들고 자동차 덜 타고 전기 아껴 쓰고. 주로 덜 하고 덜 사고, 소박하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어서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것들 이었다. 운동이란 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야 힘이 나는 법이라 같이 하자고 여러 사람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작년에 나는 문탁 내 에코 챌린지 매니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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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공부를 통해 지구 생태계가 처한 실태를 알아갈수록 부정적 예측을 떨칠 수 없었다. 전 지구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부분적인 개개인들의 소소한 변화로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까. 대기과학자 조천호의 설명은 더욱 암담했다. 지금의 늘어난 온실가스와 기온 상승은 2000년 이전 산업 활동의 결과이며, 현재의 결과물은 30년 이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각고의 노력으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해도 몇 십 년 뒤 상태는 지금보다 끔찍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각국은 이기주의에 빠져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행여나 부자나라가 감축할 탄소는 저개발국가가 떠안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붕괴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바다를 떠다니는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또 어쩔 건가. 이건 도저히 해결 불가능. 임계점을 이미 넘어섰구나! 우린 너무 늦었고, 고통 속에 망해가겠구나! 비관이 늘 따라다녔다. 어차피 파멸인데, 나, 뭐 하자고 이러고 있지.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해보려는 사람

 

춘추시대는 천하의 구질서가 재편되면서 정치·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다. 다양한 정치사상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었으니, 제자백가(諸子百家)가 싹튼 때이기도 하다. 이 중 노나라의 공자(孔子)는 인(仁)과 예악(禮樂)으로 다스려지는 덕치(德治)를 주장한 사람이다, 위정자의 자기 수양, 덕행. 솔선수범, 의로움..그런 것들이 백성에게로 가 닿아 세상을 편하게 하는 정치 말이다.

그는 좋은 집안 출신이 아니었기에 이를 위해 관직을 얻고 쓰임을 받아야 했다. 따라서 자신을 써줄 위정자를 찾아, 무려 14년이나, 제자들을 이끌고, 천하를 주유하였다. 자존심 상하는 일도 많았고, 상갓집 개처럼 행색이 초라해 지기도 했다. 제후들 뿐 아니라 세력가, 반역자, 심지어 호사가들의 구설에 오르내리는 비선실세 여인과의 만남도 꺼리지 않았건만 원하는 자리를 얻을 기회는 쉽게 오질 않았다.

 

자로가 석문에서 묵게 되었는데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에서 오셨습니까?” 자로가 대답했다. “공씨 집에서 옵니다.” 문지기가 말했다.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해보려고 하는 사람 말입니까?”

(논어헌문-41)

 

천하를 떠돌 당시, 어느 문지기의 눈에 공자는 ‘안 되는 줄 알면서도 해보려는 사람’으로 보였다. 뼈 때리는 표현이다. 그렇게까지 했는데도 원하는 걸 얻지 못했으니 공자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그가 하늘과 제자를 향해 신세 한탄하는 장면을 보노라면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느낀 좌절감을 표출하는 것 같아 짠하다. 결국엔 별 소득 없이, 늙은 나이에 고국에 돌아온 그는 제자 교육에 전념하다 생을 마쳤다. 공자에겐 기회가 없었지만 제자들은 유가(儒家)를 형성하며 꾸준히 관료로 진출하였다. 이후 유가사상은 새로운 국가가 탄생 될 때마다, 지도자의 통치관에 영향을 주었다, 또한 2500년 지난 지금까지 동아시아 주요 사상으로 남아있으니, 공자 살아생전엔 꿈도 꾸지 못했을 법한 일이다.

 

당연히 정치는 이상을 품어야 한다. 구태의연한 현실정치만 반복하는 위정자는 사람을 끌어들이지 못한다. 좋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는 위정자는 국민들을 더 심한 고통에 빠지게 한다. 그런고로 『논어』를 읽는 동안 이상적 군주를 논하는 공자에 수긍은 하면서도, 나는 안 될 것 같은 일에 그렇게 애쓰는 그가 답답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이와 비슷한 감정을 느낀 자가 또 있다.

 

역부족(力不足) 이지만 금여획(今女畫) 하지 않는 자세

 

염구가 말했다. “저는 선생님의 도를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힘이 부족합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한 자는 중도에 그만두는데, 지금 너는 미리 금을 긋는 것이다.”

(논어옹야-10)

 

『논어』 속 공자와 제자 염구(冉求)의 대화이다. 스승을 따르기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판단한 염구가 ‘역부족’ 이라며 거절을 하자, 공자가 나무라는 장면이다. 염구가 이상적 도만 좇을 수 없는 상황을 잘 파악한 실용적 전략가 일 수도 있다. 혹은 현실과 적당히 타협한 비겁한 사람일 수도 있다. 여기서 내가 주목하는 건 그런 것이 아니다.

어차피 안 될 거라고 생각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다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다. 공자의 정치관은 이상에 불과하다. 환경운동은 어차피 늦은데다 몇 명 애쓴다고 달라지지 않는다. 툰베리도, 디카프리오도, 욕먹어가면서 괜히 쓸데없는 짓 하는 거다. 비닐포장재 안 썼다고 ‘추앙’을 날린 들!! 이런 생각에 빠져 자포자기(自暴自棄) 한다면 우린 어떻게 될 것인가. 모든 것이 더 빨리 엉망진창이 되지 않을까. 왜 잘못 됐는지 일말의 성찰도 없이 살게 되지 않을까. 그러니 안 될 것 같아도 꾸준한 시도 속에서 다른 세상을 꿈이라도 꿔 봐야 한다.

 

 

 

 

공자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아직 그의 이상 정치에 의구심이 많다. 환경문제에도 마찬가지여서. 여전히 희망은커녕 비관적이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야 한다. 나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길에 쓰레기 버린 놈들을 미워하면서도 쓰레기 줍기에 동참해보고, 채식지향도 여전하다. 환경을 위해 뭐든 하는 사람들을 추앙하며 응원과 박수도 보낸다. 이런다고 달라지지 않겠지만 지구에 마구 폐 끼치며 살수는 없으니까 뭐든 하게 된다. 다만, 그저, 공자가 그랬던 것처럼 선 긋지 않으며, 비록 역부족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계속 해 나갈 뿐이다. 그래야 한다는 마음으로. 최악 중의 최악은 면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댓글 2
  • 2022-07-12 16:20

    어차피 안되고 역부족일지라도 계속해나가겠다는 전 공생자행성지기, 현 에코레시피지기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저도 그 옆에 붙어서 같이 계속해보겠습니다.

    여럿이 함께 하면 역부족일지라도 찡그리기보다 웃을 일이 많아지겠죠?

    논어 공부로 더 깊어지는 토토로 멋짐

  • 2022-07-15 07:38

    맹자에  나오는  자포자기를  기후위기문제와 연결하자니  가슴이  답답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 수 있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마음도 챙기기...  의샤의샤 구령이 필요합니다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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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 시즌2는 '여행'이 주제였습니다. 시즌2을 마치며 쓴 에세이 가운데 두 편을 북앤톡에 올립니다. 함께 읽어봤으면 합니다.    나를 부르는 망우산 발을 옮겨 딛는 단순한 기쁨을 마음껏 즐겼다.(239쪽) 생기 있는 푸른 하늘과 군청색의 대지, 자연이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색의 선명한 농담을 발산하는 나뭇잎들. 숲에 있는 모든 나무들 하나하나가 개성 있는 존재가 되는 광경을 보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나는 열정적으로, 원기 왕성하게 신선한 대기와 광채에 들떠서 등산을 즐겼다.(387쪽)   『나를 부르는 숲』(빌 브라이슨, 까치, 2018년)에서 빌과 카츠는 처음 계획대로 애팔래치아 트레일 3520킬로미터 전부를 걷지는 못했지만 두 번에 걸쳐 시도했고 시도한 만큼 예상 밖의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 중 트래킹을 마친 후 빌과 카츠가 ‘발을 옮겨 딛는 단순한 기쁨’을 알고 누리게 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빌처럼 내게도 산에서 단순한 기쁨을 누리며 등산을 즐긴 적이 최근에 있었나? 떠올려보니 올 여름이 되어서는 더워서 없었고 장마가 시작되자 더욱 산에 갈 생각조차 안 했다. 더위와 비 때문이 아니어도 산 자체를 여유 있게 마음껏 즐겼던 기억이 없다.   왜 없을까? 나는 10년 전 2030산악회 막내 회원으로 활동하며 설악산, 지리산 종주도 가 보았고 혼자서 템플 스테이를 다니며 지방 곳곳 산행도 했고 고민이 있을 때에는 서울 불암산, 수락산도 종종 등산했는데 말이다. 함께 산행 했을 때에는 웃고 떠들고 나누다가 혼자서는 현실의 고민과 걱정이 가득차서 산 자체를 온전히 즐길 여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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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8.22 | 조회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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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지 20년이 넘었다. 타지에서 생활하면 자주 뵙기 힘든 부모님에 대한 ‘효’는 더욱 간절해진다. 나와 사정이 비슷한 남편은 혼자 계신 시어머니가 걱정되어 나에게도 안부 전화를 드리는지 자주 확인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도 누가 시켜서 하려면 마음이 달아나는 법. 나는 미루다 미루다 마지못해 한 번씩 전화를 드리곤 한다. 아무래도 이건 ‘효’라고 말하기 좀 그렇다. 얼마 전 친정엄마의 칠순을 기념한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왕이면 더 멋진 장소, 더 맛있는 음식, 기준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딜까 고민했고 그에 따라 여행 일정은 빡빡해졌다. 다행히 별다른 다툼 없이 여행을 잘 마쳤고 ‘고마운 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문득 그때 내가 ‘효’라고 믿고 행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가 ’효’를 말하다.   <논어>를 보면 여러 사람이 공자를 찾아와 효에 대해 묻는다. 당시에도 효를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공자의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효는 구체적인 행위들로 드러나는 것이지, 하나의 본질로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공자는 일정한 형식(禮)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격식에 맞는 행동이라도 마음이 빠져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공자는 효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한번은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합니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위정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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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2022.07.11 | 조회 3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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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학이-2/낭송논어 p.35)   공자가 지향한 인간상은 ‘군자’다. 위 문장은 군자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 효도와 우애라고 말하고 있다. 가족 안에서 효와 우애로 다진 마음을 세상을 향해 꺼내어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서 ‘인’의 가능성은 숨 쉬고 있다. 뭐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군자가 아니라서 싱거울 정도지만 어쨌거나 ‘인’은 발아하지 못했을 뿐 내 주변 일상에 잠재해 있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는 것이 ‘인’한 것일까? 하지만 논어에서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보편윤리라서 공자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을 망치거나, 혹은 서로 미워하는 부모 자식 관계를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금쪽같은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엄마란 가장 가까이에서 스치는 칼날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삼가함(愼)을 예(禮)로 삼아   공자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이름은 공리(孔鯉). 백어(伯魚)라고도 한다. 스무 살에 얻은 아들이었으니 나이로 치면 1기 제자와 2기 제자들 중간쯤 되는 연배다. 공자가 69세일 때 50세의 나이로 (안회보다 1년 먼저)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계씨편에 진강(자금)과 백어의 대화가 나온다.   진강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백어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일찍이 아버님께서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학이-2/낭송논어 p.35)   공자가 지향한 인간상은 ‘군자’다. 위 문장은 군자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 효도와 우애라고 말하고 있다. 가족 안에서 효와 우애로 다진 마음을 세상을 향해 꺼내어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서 ‘인’의 가능성은 숨 쉬고 있다. 뭐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군자가 아니라서 싱거울 정도지만 어쨌거나 ‘인’은 발아하지 못했을 뿐 내 주변 일상에 잠재해 있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는 것이 ‘인’한 것일까? 하지만 논어에서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보편윤리라서 공자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을 망치거나, 혹은 서로 미워하는 부모 자식 관계를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금쪽같은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엄마란 가장 가까이에서 스치는 칼날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삼가함(愼)을 예(禮)로 삼아   공자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이름은 공리(孔鯉). 백어(伯魚)라고도 한다. 스무 살에 얻은 아들이었으니 나이로 치면 1기 제자와 2기 제자들 중간쯤 되는 연배다. 공자가 69세일 때 50세의 나이로 (안회보다 1년 먼저)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계씨편에 진강(자금)과 백어의 대화가 나온다.   진강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백어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일찍이 아버님께서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
도라지
2022.07.11 | 조회 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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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구가 시골에서 보내준 것이라며 호랑이 콩을 나누어 주었다. 호랑이 콩은 알이 큼직한 게 특징인데, 크기가 작았다. 가뭄 때문이라고 했다. 가뭄에 산불까지, 올 봄도 참 힘겹게 지나갔다.   어차피, 파멸인데....   관심만 있었던 환경문제에 대해 이제 실천적 대응을 해보자며 삼년 전부터 ‘에코 000’ 운동을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쓰레기 덜 만들고 자동차 덜 타고 전기 아껴 쓰고. 주로 덜 하고 덜 사고, 소박하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어서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것들 이었다. 운동이란 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야 힘이 나는 법이라 같이 하자고 여러 사람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작년에 나는 문탁 내 에코 챌린지 매니저였다.) https://moontaknet.com/?pageid=4&page_id=244&uid=36826&mod=list 그런데 공부를 통해 지구 생태계가 처한 실태를 알아갈수록 부정적 예측을 떨칠 수 없었다. 전 지구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부분적인 개개인들의 소소한 변화로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까. 대기과학자 조천호의 설명은 더욱 암담했다. 지금의 늘어난 온실가스와 기온 상승은 2000년 이전 산업 활동의 결과이며, 현재의 결과물은 30년 이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각고의 노력으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해도 몇 십 년 뒤 상태는 지금보다 끔찍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각국은 이기주의에 빠져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행여나 부자나라가 감축할 탄소는 저개발국가가 떠안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붕괴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바다를 떠다니는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또 어쩔 건가. 이건 도저히 해결 불가능. 임계점을 이미...
며칠 전 친구가 시골에서 보내준 것이라며 호랑이 콩을 나누어 주었다. 호랑이 콩은 알이 큼직한 게 특징인데, 크기가 작았다. 가뭄 때문이라고 했다. 가뭄에 산불까지, 올 봄도 참 힘겹게 지나갔다.   어차피, 파멸인데....   관심만 있었던 환경문제에 대해 이제 실천적 대응을 해보자며 삼년 전부터 ‘에코 000’ 운동을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쓰레기 덜 만들고 자동차 덜 타고 전기 아껴 쓰고. 주로 덜 하고 덜 사고, 소박하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어서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것들 이었다. 운동이란 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야 힘이 나는 법이라 같이 하자고 여러 사람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작년에 나는 문탁 내 에코 챌린지 매니저였다.) https://moontaknet.com/?pageid=4&page_id=244&uid=36826&mod=list 그런데 공부를 통해 지구 생태계가 처한 실태를 알아갈수록 부정적 예측을 떨칠 수 없었다. 전 지구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부분적인 개개인들의 소소한 변화로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까. 대기과학자 조천호의 설명은 더욱 암담했다. 지금의 늘어난 온실가스와 기온 상승은 2000년 이전 산업 활동의 결과이며, 현재의 결과물은 30년 이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각고의 노력으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해도 몇 십 년 뒤 상태는 지금보다 끔찍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각국은 이기주의에 빠져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행여나 부자나라가 감축할 탄소는 저개발국가가 떠안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붕괴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바다를 떠다니는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또 어쩔 건가. 이건 도저히 해결 불가능. 임계점을 이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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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논어』 하면 유가 경전을, 공자를 떠올리고 또 인(仁), 예(禮), 정명(正名)을 생각한다. 내가 처음 『논어』를 배웠을 때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한자 문장들, 그것도 단편적인 구절들의 집합. 거기다 위대하신 공자님 말씀들의 개념들을 파악하느라 내겐 여느 철학책 못지않게 어려웠다. 이번 ‘고전학교’에서 다시 만난 ‘논어’는 역사상 실존했던 공자와 그의 사상들을 파헤치기보다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논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행하기는 어렵구나.”(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竝爲仁矣)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잘한다. 그러나 아직 인하지는 못하다.”(子游曰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위 두 문장은 모두 『논어』 <자장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보면 자장이라는 사람은 공자가 지향하는 인(仁)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비친다. 자장은 공자 만년의 제자로 공자와 48세 차이가 난다. 공자가 54세가 되던 해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절에 제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 무렵 자하, 자유, 증자, 자장이 공자 학단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은 출신 지역은 서로 다르지만(위나라, 오나라, 노나라, 진나라), 나잇대는 비슷비슷하며 이 중 자장이 가장 어렸다.(자하보다 4살 연하) 왜 자장은 동문수학하는 문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얼마나 나쁜 일을 하였기에? 『논어』에는 이렇다 할 자장의 잘못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지인 인을 거론하면서까지 교우를 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 학단 내에서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지, 선배인 자공이 나서서 아예 대놓고 스승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낫냐고 물어본다. 이에 공자는...
『논어』 하면 유가 경전을, 공자를 떠올리고 또 인(仁), 예(禮), 정명(正名)을 생각한다. 내가 처음 『논어』를 배웠을 때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한자 문장들, 그것도 단편적인 구절들의 집합. 거기다 위대하신 공자님 말씀들의 개념들을 파악하느라 내겐 여느 철학책 못지않게 어려웠다. 이번 ‘고전학교’에서 다시 만난 ‘논어’는 역사상 실존했던 공자와 그의 사상들을 파헤치기보다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논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행하기는 어렵구나.”(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竝爲仁矣)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잘한다. 그러나 아직 인하지는 못하다.”(子游曰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위 두 문장은 모두 『논어』 <자장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보면 자장이라는 사람은 공자가 지향하는 인(仁)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비친다. 자장은 공자 만년의 제자로 공자와 48세 차이가 난다. 공자가 54세가 되던 해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절에 제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 무렵 자하, 자유, 증자, 자장이 공자 학단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은 출신 지역은 서로 다르지만(위나라, 오나라, 노나라, 진나라), 나잇대는 비슷비슷하며 이 중 자장이 가장 어렸다.(자하보다 4살 연하) 왜 자장은 동문수학하는 문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얼마나 나쁜 일을 하였기에? 『논어』에는 이렇다 할 자장의 잘못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지인 인을 거론하면서까지 교우를 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 학단 내에서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지, 선배인 자공이 나서서 아예 대놓고 스승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낫냐고 물어본다. 이에 공자는...
마음
2022.07.11 | 조회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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