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번째 <나는 고수다> 씀바귀의 중용

담쟁이
2016-10-12 01:16
508

  

나는 고수다 열 한 번째는 씀바귀의 중용이라는 주제로 이루어졌다.

중용은 고대로부터 내려오는 전통 사상이지만 중과 용을 연결하여 사용된 것은 논어가 최초라고 한다. 공자는 기존의 중개념에 실천력을 더한 용개념을 더하였다.

씀바귀샘이 중용을 음식의 간을 맞추는 것에 비유하여 설명했다. 하나의 정해진 계량기준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 각의 입맛에 맞게 그 기준은 숟가락이 될 수도 있고 소주컵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식구들의 입맛에 맞추는 것, 중용은 적당함. 적중한다라는 의미라고 했다. 그러나 그 적당함은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고수다 사진1.jpg

 

중용에서 중은 시중의 중과 중화의 중을 다 가지고 있어 미발과 이발의 상태를 다 포함하고 있다고 주자가 해석했다

용에 대한 해석도 다양했다.

주자는 평상으로 해석했지만 정약용은 항상, 일관된 지속성으로 해석했다.  주희는 진리의 일상성, 범용성을 강조한 것이라면 정약용의 해석은 실천의 지속성을 중시했다고 볼 수 있다.

 달팽이는 중화는 앙상블이라면 중용은 행동력이며 실천으로 해석된다고 본다.

그러나 용은 行(실천)으로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 시중을 유지시켜 주기 위한 사회적 표준이나 기준들이지 않을까 중용에서 이야기 하는 것은 윤리의 측면이다. 도덕적 동기가 중요한 것이다. 시중은 아무 때나가 아니라 수시로라도 그렇게 하게 만드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자누리 샘이 말했다.

그러나 풍경은 중의 개념에 이미 그 기준을 포함하고 있으니 용에서 다시 이야기하는 것은 중복되어지는 것 아니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고수다 2.jpg 

항상함은 변치 않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실천할 때 만들어지는 공통 감각이라고 정리해야 할까.

시중이라고 말하면 각자의 기준으로 해버리고 중용이라고 말해버리니  

중에서 공통개념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방자함으로 흘러 버릴 수 있지 않은가 말이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