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고수다 10편 - 담쟁이

느티나무
2016-10-09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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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나는 고수다 열번째 시간 담쟁이의 수다였습니다.

담쟁이는 중용13장의 충(忠) 과 서(恕)를 주제로 했습니다. 담쟁이의 발제를 요약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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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용에서의 윤리적 삶은 자신으로 부터 시작하는 기본적인 인간관계들을 충실히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계맺음의 기본은 바로 충과 서이다.

"시경에 이르기를 도끼자루를 잡고 도끼자루 할 나무를 자르면서 곁눈질해 바라보고는 오히려 멀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군자는 사람의 도를 가지고 사람을 다스리다가 고치면 그친다.

충과 서는 도에서 멀지 않나니 남이 나에게 하기를 바라지 않는 것을 나 또한 남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 (중용 13장 발췌)


忠은 마음 心과 가운데 中으로 구성된 글자로 마음의 중심에 서서 흔들리지 않음을 말하고

恕는 마음 心과 같을 여(如)가 합하여 만들어져 자기 마음처럼 다른 사람의 마음도 헤아리는 것이다.

이 둘은 유교사상의 뿌리이며  줄기로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다만 충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 서이며 충은 서의 바탕이다.

나의 윤리적 삶은 나와 연결된 타자와 관계맺음을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와 타자의 관계맺음은 서로의 입장의 동일함으로 나아가는 것인데 내가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중용의 도로써 충과 서가 이루어진다면 나와 타자의 구분은 없어져야 하는 것이 아닐까?

주제 발표에 이어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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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가 여기저기를 건너다녀서 누구의 발언인지는 메모하지 못했네요.

일단 충서가 수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학의 지침인 수신이 중용에서 충서로 말해진 것이다.

타자와 나의 사이를 하나로  즉 타자의 본성과 나의 본성이 같음을 인정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면 이것은 각자 자기 입장 즉 자기 기준에서 보는 것이 아니가?

"충은 자기를 지극히 하는 것이다. 자신의 충을 본성까지 미루어 들어 가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결코 동일화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질지성 즉 각자의 타고난 기질의 품이 다르기 때문에  나와 타자가 같다는 것이 아니다.

타자를 나의 기준에 맞춘다거나 역지사지의 의미가 아니다."

"충은 정에 의해 발현된 사욕을 제거하여 공평무사를 회복하는 것이니

자기 마음의 치우침을 자신은 안다.(이것이 신독)"

"여기서  무엇을 없앤다는 것은 다른 존재로 화(化)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제거한다는 것은 배치를 바꾼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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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적으로 잘 관계맺음이 화(和)일텐데 그렇게 하는 것이 충(忠)과 서(恕)로 이루어진다. 

나를 미루어 타자와 감응이 되는 것이다.

나는 고수다를 정리해서 후기를 쓰는 것이 어렵다더니 참 정리가 안되네요.

혹 부족한 점이나 잘못된 부분이 있으면 댓글로 수정해주세요.

어쨋든 충과 서로 고수다를 마친 담쟁이님은 이후 어떤 자리에서건 충과 서로 연결지어 생각하게 된다고 하십니다.

어느덧 10회를 넘어섰습니다.

처음에 중구난방 생각이 더 어지럽더니 회를 거듭하게 되고 질문이 반복되니

오히려 그것을 통해 대학과 중용의 맥락이 조금씩 정리가 됩니다.

담쟁이님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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