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의 꽃" 대토론회 후기

달팽이
2016-12-04 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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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축제의 꽃이라 불리웠으나 활짝 피우기 힘들었던 꽃!!!

대토론회..

올해는 꽃봉오리가 얼마나 벌어졌을까요?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가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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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제 첫 날 탈핵집회 사회보다 훨씬 떨린다는 사회주의자(?) 봄날의 사회로 대토론회를 시작합니다.

먼저 반짝거리는 파지스쿨러 수아의 축제 전 수행과정을 담은 영상을 봅니다.

어떤 굴욕 씬이 있을지 모두들 조마조마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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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나 다를까 몇 장면의 웃음포인트에 다들 즐거워합니다.

수행이 뭐냐는 수아의 질문에 진달래의 마지막 시크멘트"그냥 사는 게 수행아닌가?"가 압권이었지요.

특히 파지스쿨장 노라는 흐뭇함을 얼굴에 가득 담고 보고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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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첫번째 발제자 문탁의 발표가 이어지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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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수행뎐>으로 읽어달라고 쓰신대로 그야말로 문탁역사 상 수행이라 이름붙였던 모든 활동들을 정리해주셨어요.

게으르니의 첫 100일수행부터 최근 문탁 모두의 아젠다가 되어 진행된 양생프로젝트들까지~

마지막 질문이 우리를 살짝 흔들었지요.

몸을 바꾸자고 세상을 바꾸자고 수행을 한다고들 하는데 진짜 바꾸고 싶은 게 있기는 한거냐.

절실히 바꾸고 싶으냐고요.

문탁발제의 질문자로 명 받은 히말라야는 대부분의 수행이 공부만 하다보니 생긴 몸의 이상,

혹은 과로로 인한 피로를 풀기 위한 것들이 많은 데 공부가 문제가 있는 것인가?

문탁 개인의 수행담도 듣고 싶다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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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 질문에 대답하기 힘들다는 문탁샘은 공부가 일상과 활동의 변화로 나타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해서 다시 공부의 새로운 발명이라는 문제로 돌아간다고 하셨어요.

개인적 수행에 대해서는 10년 주기로 일어난 자발적 탈퇴로 이제 문탁의 친구들이 삶의 전부라며

나는 여기서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스로 여기서 배움을 일으키고 있는가? 질문하고 있다고

두번째 발제자 라캉과 맑스 역을 훌륭히 소화해내신 여배우 뚜버기

맑스와 수행을 연결하려니 힘들 것 같았는데 쓰고보니 잘 썼다며 발제문을

차분히 읽어주셨어요.

모두들 의외의 잘난척에 빵 터졌는데 그게 아니라 쓰길 잘했다는 뜻이라며

변명인지 해명인지 모를 설명을 붙였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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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에서 반복적인 노력을 통해 몸을 바꾸고 행동의 습관을 바꿔가는 것을 수행이라 한다면

수행은 곧, 현실적인 사회관계 속의 나를 해체하고 다른 세계로 이행하는 혁명이 될 수 있겠다는

뚜버기샘의 발제가 끝나고,

두번째 질문자 노라는 글을 참 잘 써주셔서 식구들과 함께 읽었는데

모두들 어려운 맑스가 이렇게 쉽게 이해되다니 놀라워했다는 칭찬으로 말문을 열더니

이전과는 다른 실천이 지금의 지반을 깬다고 했는데 그게 지반을 깰것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느냐?

경험과 연결하여 말해달라는 어려운 질문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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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질문에 당황한 기색도 없이 내가 살고 있는 현실파악이 중요하다. 혼자 생각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

관계 안에서 계속되는 실천과 그 과정에서 주고받는  친구들의 무자비한 비판을 통해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경험을 했다면 세계가 바뀌었을텐데... 그래도 말해보자면 100일 금주를 들 수 있겠다.

새벽에 일어나 맑은 정신으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100일 후 도로아미타불,

금주가 세상을 바꾼다면 일상의 금주가 되어야할 터

반자본주의적 경제활동을 하자는 작업장 활동이 가차없는 비판으로 지반을 깨는 일상의 혁명이 되기를 바란다.

고 말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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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번째 발제는 문탁인들의 몸의 변화를 선두에서 끌어주고 있는 파지 큐레이터 건달바

몸과 수행이라는 주제로 발제해달라는 명을 받았으나 범위가 너무 넓어 단식으로 축소했다며

처음엔 별 생각없이 진행했었는데 글로 정리하며 더 많은 것을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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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몸하고도 소통을 못하면서 다른 사람과 소통이 되겠는가?

몸이야말로 우리의 온갖 욕망이 들끓는 수행의 장소이고 공부의 장소라며

"꽃보다 단식"은 앞으로도 쭈욱 이어진다 하셨어요.

단식으로 새로워질 수 있다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한사람이 흐뭇하게 건달바의 발제를 듣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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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질문은 여여샘이 단식 안한 얼굴이라 했다는

이어가게 옷 입으려면 단식부터 하라는 말을 들었다는 진달래

몸짱되려고 단식하고 운동하는 거 아니라는 건 알지만 건강하다는 게 뭔가?

문탁에서 단식을 함께 한다는 건 또 뭔가 듣고 싶다고..

그 설명을 잘했다면 진달래가 벌써 단식을 했을텐데 라는 말로 대답을 시작한 건달바는

문탁 단식은 단식으로 일어나는 일들을 적은 음식 꼭꼭 씹어 천천히 먹으며

엄청 많은 이야기로 나눈다는 것이 특징이다.

몸을 알아차리고 내 공부를 알아차리고 그것을 나누면서 나를 비워 외부와 소통할 수 있는 존재가 되려는 것

병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내 몸과도 친구와도 소통하는 존재가 되려는 것이 아니겠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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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발제는 그 깊은 불교의 세계를 수행으로 풀어주신 요요

스스로 깨어난 자 붓다 덕분에 어려운 불교의 세계를 조금은 잘 이해할 듯 해서 다행이라며

깨붓다 이야기를 동어반복할 수 없어 평소 하고 싶던 이야기를 써주셨다고 하셨어요.

위대한 발심이 위대한 수행을 낳는다며 자신을 구원할 뿐 아니라 중생들도 모두 구원하겠다는

자리이타의 마음을 내어야 하겠다고..

위대한 수행은 자리이타의 지혜와 방편을 갖게 한다고 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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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자 뿔옹은 발심은 수행을 통해 생겨나지 않을까? 발심이 먼저일 수 있는가? 의문을 제기했고요

발심은 수행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인데

불교에서는 발심을 일으키는 것으로 전생의 공덕과 우주에 편만한 불보살들을

얘기하는데 화초나 벌레, 살면서 만나는 수많은 인연들이 발심하게 한다는 것이다.

수행과 발심은 상호작용한다고 할 수 있겠다.

발심삼초라 발심한 것이 오래가기 힘들다. 발심을 밀고나가는 힘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좋은 어머니가 되겠다고 발심하는 것과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발심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를 만들어낸다.

우리는 어떤 발심으로 수행할 것인가? 라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으로 끝난

요요님의 답을 마지막으로 1부가 마무리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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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식테이블에 자리잡은 4명의 여인들~

저 중에 오늘의 대토론회 명령권자가 있습니다. 

누구일까요? ㅎㅎ

쉬는 시간에는 간식테이블이 북적거렸겠지요.

사진이 없네요.

곧이어 시작된 2부

저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문탁샘이 발제에서 잘하는 것을 계속하는 것이 공부가 되겠냐? 고 하신 말씀에 대한 질문, 

잘하는 걸 다르게 하면 되지 않나? 못하는 걸 시도해야만 공부가 되나?

문탁샘은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습관처럼 하고 있는 게 아닌가를 문제삼아야한다. 

일상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습속의 장이기 때문이다. 특정한 방식으로 행을 반복하게 하는 사회적 배치가 있고

욕망이 거기에서 비롯된다. 이것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가? 

물어야 한다고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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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지원의 질문

거리로 나가는 것이 어렵지 않은 요요샘께 

이번 광화문 시위가 법적 지반 위에서의 운동 같아 광장으로 나가는 것을 꺼려했는데

요요샘은 아니었더라. 왜 탈핵시위를 계속 해야한다고 생각하시는가?

요요샘은 

매번 사회적 이슈에 동참을 제기하는 게 내가 되더라. 

그리 빨리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여기서만 빠른 거 같다. 습때문인 거 같은데

그건 사회문제가 발생한 장소, 역사적 현장에 함께 해야한다는 생각 때문, 

마치 난 무풍지대에 있는 것만 같아서, 그 현장이 나에게 자극을 줄 거라는기대가 작동하는 듯

현장에 가면 두가지 감정이 같이 일어난다. 하던 데로 하는구나 하는 실망과 

내가 이렇게 말할 자격이 있나하며 현장에서 싸우는 그들에 대한 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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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스스로를 습의 결정체라 말하는 동은

자기구원은 스스로밖에 못한다고 하는데, 위대한 발심이 나를 바꾸는가? 도대체 위대한 발심이란 뭔가?

요요샘은 위대한 발심은 내가 우주와 연결된 존재라는 걸 알고 다함께 잘살자는 마음을 내는 것이다. 

인간을 왜소하게 만드는 고립된 존재라는 근대적 인간상 이걸 뛰어넘어 자아를 확대하는 것

이게 위대한 발심을 가능하게 하지 않을까 하는 말씀을 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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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을 못받은 건달바와 뚜버기

건달바가 먼저 뚜버기에게 질문합니다.

자기수행이 사회적 배치를 바꾸지 못할 때 자기해체가 가능한가?

사회적 배치로부터 주입받은 이데올로기 적인 것들을 감성적으로 깨닫지 못해도

이성적으로 알 수 있다. 의식적으로 다른 관계맺음을 하려고 노력하다보면 조금씩 바뀌지 않겠는가?

주고 받음이 계속 일어난다면 이행과 해체로 연결될 것 같다는 뚜버기의 답변이 이어졌습니다.

자누리샘은 우리가 끊임없이 변화를 말하는데 공허하게 들린다. 명령으로 들릴 수도 있겠고

좀 더 구체화해야하지 않을까? 습은 바꿔야만 하는 것인가?

이어진 문탁샘의 답은

여기서 바꾸자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적 습속이다. 루쉰은 그 시대 봉건적 습속에서 벗어나자 했다.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적 습속을 버리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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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어진 깨알샘의 이야기

문탁에 자신을 알고 싶고, 공부가 하고 싶어 왔는데

공부할수록 현재의 나는 20대에 두려워했던 것들을 다시 대면하면서

공부를 통해 두려움을 넘을 수 있는 내면의 힘을 키워가고 있는 것 같다.

는 말씀을 울먹이며 하시는 바람에 모두가 살짝 숙연..

마음을 추스리고 문탁샘을 향한 질문

문탁샘이 매번 나에게 공부가 되는가를 질문한다는 것이 의아스럽다고

공부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고, 정리를 하자는 것도 아니지 않나

기존의 앎을 깨는 것, 새로운 것 앞에 선 막막한 순간 온 신체와 지성이 길을 찾으려 신경을 곤두세우는 순간

깨달음을 얻는 것 그것이 공부가 아닐까?

모든 행위에서 공부가 일어나야한다는 문탁샘의 이야기가

깨달아 알겠다는 뜻을 가진 깨알샘께 전달되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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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쉰공부를 한해동안 열심히 해온 꿈틀이는

나에게 바꾸고 싶은 게 있는지, 절실한 게 있는지는 잘모르겠지만

문탁에서 공부하며 나의 과거와 화해하게 되었다. 

하라는 대로 1년 공부했더니 문탁에 자주 오게 되는 변화도 생겼다.

잘 모르겠지만 이런 화해와 깨달음으로 족하지 않은가?

하는 진솔한 이야기를 해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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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방울은 단식 때 칭얼거림을 모두 받아 준 건달바에 대한 보답(?)으로

단식권유하는데 시큰둥하게 반응하면 힘들지 않느냐고 질문을 했고

건달바는 나의 기분은 상관말라. 무자비한 비판 좋다.

욕망을 끊기에는 단식이 최고다. 닥치고 단식을 외쳤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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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점에서 뚜버기는 꿈틀이에게 이 한마디를 꼭 해주고 싶었나봅니다.

꿈틀이의 이야기에 동감한다. 하지만 나만의 구원에 매몰되지 않고 더 나아가야하지 않을까?

사회적 변혁까지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드디어 마이크를 잡은 축준위원장님

정말 바꾸고 싶은가? 가진 게 많아진 지금 버려야한다는 사실이 두렵다.

수행의 의지를 물으면 피하고 싶은 마음도 생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엄중한 질문으로 다가온다고 무거운 입을 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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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정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이제 외빈(?)들의 이야기를 들어볼 시점

청송 나무닭움직임연구소에서 오신 장소익선생님에게 마이크가 넘어갑니다.

인문학 축제는 어떤 것인가 궁금해서 왔다. 절대 의리상 온 거 아니라며 강조 하시고는

모든 축제는 희생제물이 있어야하는데 아직까지 뭐가 제물인지 모르겠다.

마지막엔 알게 되려나 지켜보겠다 하셔서 모두들 제물감을 찾게 만드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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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빈인지 외빈인지 헷가리는 신목수님

내부의 적같은 한마디를 날리셨죠.

축제 이거 시간 죽이는 거 아니냐시며

문탁은 책만 보지말고 작업장에 와서 일을 하면 어떻겠냐고..

이거 신목수님도 설득이 안되니 어쩌나? ㅎㅎ

왠지 희생제물의 기운이 느껴지는 듯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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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다 되어 가지만 그래도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띠우는 자본주의를 벗어나긴 힘들어도 흔들기라도 하려면 그 위에서나마 뛰기라도 해야할 터

법적 지반 위에서든 뭐든 광화문에라도 나가야 하는 거 아니냐

광장은 사람들이 나와 말하고 그 말이 섞이는 곳 아닌가?

지금 우리는 광장이 무엇인지 질문해야하는 거 아닐까?하고 힘주어 말을 했고IMG_1752.jpg

느티샘은 수행과 배움은 고통이다.

글쓰기, 가족, 공부가 고통이 되었을 때 그걸 예민하게 보면서

내 안에 배움이 일어나고 변화가 생기더라.

고통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이미 습관이 된 거 아닐까?

세월호와 광화문이 고통으로 다가올 때 그 때 수행이 되는 거 아니겠는가?

본인의 경험에서 우러나온 말씀을 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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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꽉 채우고도 못다한 이야기들이 많이 남은 듯

아쉽게 대토론회가 마무리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루 이틀 만나는 것도 아닌데 

얘기할 시간이야 또 만들면 되겠죠.

대토론회를 하면서 이번 축제의 주제가 그냥 나온 게 아니었다는 생각을

새삼 하게 되었습니다.

2015년 반성장에 이어 자연스럽게 어떻게 반성장의 삶을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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