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띠우
2023.04.23 | 조회 373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봄날
2023.04.22 | 조회 372
한문이예술
    # 1. 가랑비에 옷 젖듯 한자를, 雨   동은       1. 연필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든 한자      17살 여름,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땄다. 8급부터 4급까지 누적되는 시험 출제범위가 딱 1000자였에 나는 그 날부터 한자 1000자를 외운 사람이 되었다. 물론 국가공인으로 인정되는 급수는 아니었지만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그 무게를 들어 올린 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지금까지 한자를 통해 겪었던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언제부터 한자를 배웠는지 기억을 거슬러 가보면, 미취학 아동 시절 때부터 외우느라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한자 공부를 시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어느 학원에서는 영어발음을 위해 혀뿌리를 자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정도로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대세를 거스르고 나를 서예학원에 보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나의 산만함이 원인이었다. 먹냄새라도 맡으면서 사자소학이라도 읽고 내가 제발 조금이라도 차분한 애가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서예학원에 가면 한자를 급수 순서로 빼곡하게 채워 코팅한 책받침을 줬다. 갈 때마다 그 책받침에 표시를 해 가면서 그 날 외워야 하는 한자를 할당해줬다. 오늘은 쇠 금金까지, 내일은 군사 군軍까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 태권도 학원 사범님, 가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나였지만, 서예학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꿀밤을 때리셨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한자를 외워서 학원을 탈출해야 했다. 어쨌든 몇 번의 이사를...
    # 1. 가랑비에 옷 젖듯 한자를, 雨   동은       1. 연필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든 한자      17살 여름,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땄다. 8급부터 4급까지 누적되는 시험 출제범위가 딱 1000자였에 나는 그 날부터 한자 1000자를 외운 사람이 되었다. 물론 국가공인으로 인정되는 급수는 아니었지만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그 무게를 들어 올린 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지금까지 한자를 통해 겪었던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언제부터 한자를 배웠는지 기억을 거슬러 가보면, 미취학 아동 시절 때부터 외우느라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한자 공부를 시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어느 학원에서는 영어발음을 위해 혀뿌리를 자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정도로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대세를 거스르고 나를 서예학원에 보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나의 산만함이 원인이었다. 먹냄새라도 맡으면서 사자소학이라도 읽고 내가 제발 조금이라도 차분한 애가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서예학원에 가면 한자를 급수 순서로 빼곡하게 채워 코팅한 책받침을 줬다. 갈 때마다 그 책받침에 표시를 해 가면서 그 날 외워야 하는 한자를 할당해줬다. 오늘은 쇠 금金까지, 내일은 군사 군軍까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 태권도 학원 사범님, 가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나였지만, 서예학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꿀밤을 때리셨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한자를 외워서 학원을 탈출해야 했다. 어쨌든 몇 번의 이사를...
동은
2023.04.21 | 조회 460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양생을 위한 지식 기린         양생(養生)을 탐구하는 기획 세미나를 4년째 하고 있다. 그간 양생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었다. 구체적으로 양생을 정의하는 텍스트도 있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담론을 통해 내 삶과의 연관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양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막연하다. 양생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보고 싶었다.     양생(養生)의 원출전은 『장자』 내편 중 「양생주」편이다. 직역을 하면 삶을 기른다, 가꾼다 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태어난 생명을 둘러싼 모든 보살핌을 포함하여 삶을 지속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영양도 섭취해 주어야 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아가는 지식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양생주」 첫 장에서는 지식의 위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양생과 지식의 관계에 어떤 위험이 있을까? 나아가 양생을 위한 지식은 어떻게 터득하는 것일까?     삶을 위태롭게 하는 지식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지식을 좇는다면 삶이 위태로워질 뿐입니다.(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양생주」 1장_낭송장자)       삶을 잘 가꾸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서도 살아가야 할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곧 삶을 위한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은 삶만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차츰차츰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그 세계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삶을 잘...
양생을 위한 지식 기린         양생(養生)을 탐구하는 기획 세미나를 4년째 하고 있다. 그간 양생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었다. 구체적으로 양생을 정의하는 텍스트도 있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담론을 통해 내 삶과의 연관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양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막연하다. 양생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보고 싶었다.     양생(養生)의 원출전은 『장자』 내편 중 「양생주」편이다. 직역을 하면 삶을 기른다, 가꾼다 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태어난 생명을 둘러싼 모든 보살핌을 포함하여 삶을 지속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영양도 섭취해 주어야 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아가는 지식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양생주」 첫 장에서는 지식의 위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양생과 지식의 관계에 어떤 위험이 있을까? 나아가 양생을 위한 지식은 어떻게 터득하는 것일까?     삶을 위태롭게 하는 지식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지식을 좇는다면 삶이 위태로워질 뿐입니다.(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양생주」 1장_낭송장자)       삶을 잘 가꾸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서도 살아가야 할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곧 삶을 위한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은 삶만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차츰차츰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그 세계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삶을 잘...
기린
2023.04.11 | 조회 420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오발탄>(1961) | 감독 : 유현목 , 주연 : 김진규, 최무룡 | 107분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영화 <오발탄>(1961)은 어느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암울함이 지속됐던 당시의 사회모습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작이다. 영화 <오발탄>이 한국 고전영화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건, 동명의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유현목 감독의 진지하고 풍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실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영상미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허나 대부분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액션영화 등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은 촬영기법이나 내용, 장르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제작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는 이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시 조명감독이었던 김성춘이 사비를 털어 겨우겨우 필름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초, 당시 전후 한국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오발탄>(1961) | 감독 : 유현목 , 주연 : 김진규, 최무룡 | 107분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영화 <오발탄>(1961)은 어느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암울함이 지속됐던 당시의 사회모습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작이다. 영화 <오발탄>이 한국 고전영화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건, 동명의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유현목 감독의 진지하고 풍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실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영상미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허나 대부분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액션영화 등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은 촬영기법이나 내용, 장르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제작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는 이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시 조명감독이었던 김성춘이 사비를 털어 겨우겨우 필름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초, 당시 전후 한국은...
청량리
2023.04.09 | 조회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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