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생과 장자>1회 양생을 위한 지식

기린
2023-04-11 08:39
439

양생을 위한 지식

기린

 

 

 

  양생(養生)을 탐구하는 기획 세미나를 4년째 하고 있다. 그간 양생과 관련해서 동서양의 다양한 텍스트들을 읽었다. 구체적으로 양생을 정의하는 텍스트도 있었고, 현재 사회를 움직이는 여러 담론을 통해 내 삶과의 연관성을 탐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양생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여전히 막연하다. 양생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언어를 찾아보고 싶었다.

 

  양생(養生)의 원출전은 『장자』 내편 중 「양생주」편이다. 직역을 하면 삶을 기른다, 가꾼다 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태어난 생명을 둘러싼 모든 보살핌을 포함하여 삶을 지속하게 하는 행위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생명을 보살피기 위해서는 영양도 섭취해 주어야 하고, 자신이 속한 세계를 알아가는 지식활동을 통해 외부로부터 안전을 보장해주기도 해야 한다. 그런데 「양생주」 첫 장에서는 지식의 위험에 대해 논하고 있다. 양생과 지식의 관계에 어떤 위험이 있을까? 나아가 양생을 위한 지식은 어떻게 터득하는 것일까?

 

 

삶을 위태롭게 하는 지식

 

  우리의 삶에는 끝이 있지만 지식에는 끝이 없습니다. 끝이 있는 것으로 끝이 없는 것을 좇는 일은 위험합니다. 그러니 지식을 좇는다면 삶이 위태로워질 뿐입니다.(吾生也有涯,而知也無涯.以有涯隨無涯,殆已.已而爲知者,殆而已矣.「양생주」 1장_낭송장자)

 

 

  삶을 잘 가꾸기 위해서 지식이 필요하다. 유한한 삶을 이해하고 그 삶에서도 살아가야 할 가치를 찾기 위해서다. 곧 삶을 위한 지식이다. 하지만 지식은 삶만을 위해 작동하지 않는다.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는 채로 태어나 차츰차츰 자신이 속한 세계를 파악해나간다. 그 세계에 대해 지식이 쌓일수록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는 가능성도 확장된다. 하지만 지식이 어느 선을 넘어서면 그 가능성은 삶에 대한 관심에서 벗어나 지식의 확장에 집착하게 되기도 한다. 지식 자체가 새로운 앎을 향한 욕망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식을 향한 욕망을 좇다가 정작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보존하는데 쓸 에너지가 부족하게 된다. 장자는 이렇게 지식을 위한 지식의 추구가 유한한 삶의 양생을 위험하게 할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이러한 입장은 『장자』의 다른 편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천지」 편에 기심(機心)에 관한 고사가 나온다. 직역을 하면 기계에 관한 마음이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시골 마을을 지나게 되었는데, 한 노인이 직접 우물을 파고 항아리에 그 물을 담아 밭으로 옮기고 있는 것을 보았다. 자공은 기계를 사용하면 힘은 적게 들이고 얻게 되는 효과는 더 크다고 알려 주었다. 노인은 성을 냈다. 스승의 가르침에 의하면, 기계를 쓰게 되면 기계에 온 마음을 기울이게 되기에 이르러 스스로 해내고 만족하는 순박함을 잃게 된다고 했다. 그러니 기계를 몰라서 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기계에 빠지게 되는 부끄러움을 경계한다는 것이다.

 

  직접 몸으로 해내는 것 보다 기계를 이용해서 우물을 파고 물을 길어 올려 밭에 주는 것이 수월하다. 그 결과로 여유를 얻게 되면 그 시간을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하는데 쓸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인의 스승은 기계를 쓰게 되면 기계에 마음을 빼앗겨 그럴 여유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 몸을 써서 직접 성취하는 만족보다 기계로 인한 만족이 더 크기 때문이다. 그러면 더 큰 만족을 좇는 지식에 의존하게 될 것이며, 몸은 그 일에서 점점 소외되어서 스스로 만족하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된다. 기계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그 기계가 주는 효과에 매몰되어 무한히 뻗어나가도록 부추기는 지식이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식에 대한 노인의 성찰

 

  「천도」 편에는 지식을 “옛사람의 찌꺼기”로 보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차의 수레바퀴를 깎는 노인이 대청 위에 앉아 글을 읽고 있는 제후에게 읽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제후는 “성인의 말씀”이라고 대답했다. 노인은 이미 죽고 없는 성인의 말씀을 가리켜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일축한 것이다. 제후가 화를 내자, 노인은 자신이 평생 바퀴를 깎는 일을 하면서 깨달은 것을 밝힌다.

 

  즉, 수레바퀴를 깎을 때 너무 많이 깎아서 몸체에 헐거워지지도 너무 꼭 맞게 깎아서 빡빡해지지도 않는 상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다. 그저 자신의 “손으로 터득하면서 마음으로 느낄 뿐”이었다. 노인이 습득한 지식은 직접 몸으로 체득하는 과정을 거친 후에야 터득된 것이다. 이러한 지식은 설령 자식이라 할지라도 설명해줄 수 없다. 스스로 바퀴를 완성해서 수레가 제대로 굴러가는 것을 통해서만 보여줄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자신은 평생 수레바퀴를 깎고 있다는 것이다.

 

  성인의 말씀 또한 생전에 시대 상황의 맥락을 충분히 숙고하는 과정에서 터득한 지식을 몸소 실천함으로써 사람들에게 보여 졌을 것이다. 그 실천이 일으키는 효과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인으로 받들어졌을 따름이다. 그런데 제후가 이러한 맥락을 염두에 두지 않고 성인의 말씀이라는 이유만으로 읽는다면 그것은 찌꺼기에 불과하다. 찌꺼기인줄도 모르고 읽는 것도 모자라 백성들에게 적용시키려 한다면 결과적으로 제후도 백성들도 모두 위험에 빠진다. 마치 맞지 않는 바퀴를 끼워서 굴러가는 수레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삶을 위한 지식은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밟아야 할까?

 

 

 

 

온전한 삶을 위한 지식

 

 「달생」 편에는 악기를 걸어 놓는 거(鐻)를 만드는 목수가 자신이 일을 실행하는 과정을 밝히는 이야기가 나온다. 목수는 거를 만들 때는 자신의 기(氣)를 소모시키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는다. 그리고 며칠의 시간을 보내며 마음을 고요하게 하는 일에 집중한다. 벼슬을 하겠다는 욕망이나 훌륭한 작품으로 칭송을 받겠다는 생각들이 생겨났다 사라져서, 어떤 것도 마음을 어지럽히지 않는 경지를 터득할 때까지이다. 그러고 나서야 산으로 올라가 거를 만들기에 적합한 나무를 고른다. 마음이 고요한 상태일 때에야 수많은 나무들 속에서 거를 만들기에 딱 적합한 나무를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목수는 거를 잘 만들어낼 때 목수로서의 명성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명성을 바라는 마음부터 일어나게 되면 그만큼 일에 쓰이는 에너지가 줄어든다. 그래서 목수는 명성을 향해 내달리는 마음의 에너지를 돌이켜 일을 하는 몸에 쌓이도록 시간을 들이는 것이다. 자신의 일과 관련하여 이러한 인식을 실천하는 행위, 이것이 온전한 삶을 위한 지식이다. 곧 마음이 고요해질 때까지 몸을 닦아서 일하는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지식이다.

 

  주어진 삶을 온전하게 하는 양생을 위해 필요한 지식은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 상태를 지향한다. 『장자』에 나오는 이러한 일화의 인물들이 실제로 몸을 써서 일하는 사람들인 것을 보면, 장자는 전국시대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로 인해 초래된 지식의 위험을 밝히고 있다. 마음에서 생겨난 욕망을 좇느라 실천과 분리된 지식은 자신의 생명을 위태롭게 할 뿐 아니라 자신이 속한 세계까지 위태롭게 할 수 있다.

 

 

 

 

 

기심이 발동하는 순간

 

  일리치약국 초창기에는 한약을 달여서 일일이 계량을 해서 파우치에 담은 후 한 봉지씩 가정용 필름용접기로 꾹꾹 눌러서 포장을 했다. 파우치에 닿는 열이 조금만 세도 윗부분이 잘려 버리고, 약하면 달라붙지 않았다. 포장할 때는 붙어있었지만, 택배로 보내는 사이 미세하게라도 떨어지면 한약이 새서 엉망이 되었다는 클레임을 받았다. 그래서 한약을 계량해서 넣고 필름용접기로 누른 다음에도 제대로 붙었는지 일일이 재확인을 했다. 그래도 간혹 같은 문제가 발생해서 논의 끝에 한약 포장 기계를 들여놓았다. 기계의 계기판에 파우치에 넣을 양과 개수를 입력하면 한 봉지씩 계량되어 말끔하게 포장이 되었다. 처음에는 기계의 작동 원리에 익숙지 않아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조정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드디어 제대로 포장된 파우치가 나왔다.

 

   점점 시간이 지나자 포장을 하면서 들였던 품은 확실히 줄었고, 약 한 재를 포장하는데 족히 30분은 걸렸던 일이 5분이면 해결되니 한결 몸이 편해졌다. 기계 앞에 앉아서 포장되어 나오는 파우치를 정리하며 이 약을 복용한 이들에게 효험이 있기는 바라는 여유도 생겼다. 그것도 잠깐, 점점 그 5분이 무료해졌다. 그러자 포장 일을 마치고 연이어 해야 할 일들로 마음이 내달렸다. 세미나 책 읽기, 다른 활동이나 회의 준비 기타 등등으로. 그러면 급해진 마음에 기계 앞에서 벗어나 남은 일들을 처리했다. 포장이 끝났다는 알림음을 듣고 돌아와 보면 뜨거운 파우치들이 마구 엉기고 흐트러져 쌓여 있었다. 그러면 파우치 포장이 구겨진 채로 택배를 보내야 했다.

 

  일하는 환경의 변화로 생긴 여유에 만족하는 기간은 매우 짧았다. 연이어 마음은 기계가 주는 편리함에 매몰되어,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서 다른 데로 옮겨가고 만 것이다. 이렇게 일어나는 마음이 기심(機心)이다. 기심이 일어나자 지금 몸이 하고 있는 일에 무관심해지는 소외가 발생했다. 파우치가 엉기고 구겨져도 상관없이 내일 세미나를 위해 읽어야 할 책이 더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렇게 습득하는 지식이 온전한 나의 삶을 위한 지식이 될까. 온전한 삶을 위한 지식은 지금 하고 있는 일에 내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고 집중하는 데서 터득된다. 5분의 여유에 집중하기, 내 몸이 하는 일과 떨어지는 줄도 모르고 내달릴 마음의 상태를 가라앉혀 양생을 위한 지식을 익히는 시간이다.

 

 

 

댓글 6
  • 2023-04-11 13:42

    이 글을 읽으니, 시간을 단축해주는 자동차, 공부를 가능하게 해주는 노트북을 생각해보게 되네. 자동차, 노트북과 나는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 2023-04-11 17:21

    멀티 태스킹을 잘 못하는데도 자꾸 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한 번에 한 가지일을 하는 게 어려운 세상입니다. 5분이라도 온전히 몰두한다면 명상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죠? 화장실에 휴대폰 안들고 가기부터 ㅋ.

  • 2023-04-11 19:33

    5분동안 파우치멍 하심이 어떨지..^^

  • 2023-04-17 09:12

    기계와 딱 붙어 사는데 기심을 어떻게 안 일어나게 하나 ㅠㅠ
    양생이 어려운 시대에 사네요

  • 2023-04-17 16:46

    몸과 마음의 분리가 어떻게 되나 싶지만 실제로 그런 시간이 하루 대부분인 경우가 많아요..우리 참 희한하게 살고 있어요.. 잘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할게요

  • 2023-04-19 07:42

    저두 몸으로 하는 일에서 맘이 달아나려고 할 때가 많아요. 자꾸 시계를 확인하게 되죠. 그게 '기심'이군요. 기억할게요. 그리고 그때마다 전 되뇌여야겠어요. '지금 하고있는 일에 온맘을 두자.'라고^^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겨우 잡았는데, 이토록 허망하다니 <짝코>(1983) | 감독 : 임권택 , 주연 : 김희라, 최윤석 | 103분            어느 날, 노숙자 한 명이 '갱생원'으로 들어온다. 갱생원이란 “오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밥도 주고 잠도 재워 주는” 곳이지만, 실상은 ‘사회복지’보단 “속세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자들의 ‘사회적 청소’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노숙자는 침대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보고 깜짝 놀란다.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살고 싶었으나 망실공비(사망, 실종 또는 아무리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는 공비)로 떠도는 빨치산 ‘백공산, 일명 짝코(김희라)’와 한평생 그를 잡기 위해 뒤를 쫓는 토벌대 경사 ‘송기열(최윤석)’은 30년 만에 서울의 ‘갱생원’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송기열은 단번에 짝코, 백공산을 알아본다. 아닌 척하지만 백공산 역시 그를 알아보고 식은땀을 흘린다.     영화 <짝코>(1983)는 지리산을 시작으로, 갱생원까지 오게 된 두 사람의 시간을 ‘플래시백 기법(회상장면으로 넘어간 시점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진행하는 기법)’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에선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왜 그토록 송기열이 백공산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 백공산과 송기열은 이미 사회에서 잊힌,...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겨우 잡았는데, 이토록 허망하다니 <짝코>(1983) | 감독 : 임권택 , 주연 : 김희라, 최윤석 | 103분            어느 날, 노숙자 한 명이 '갱생원'으로 들어온다. 갱생원이란 “오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밥도 주고 잠도 재워 주는” 곳이지만, 실상은 ‘사회복지’보단 “속세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자들의 ‘사회적 청소’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노숙자는 침대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보고 깜짝 놀란다.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살고 싶었으나 망실공비(사망, 실종 또는 아무리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는 공비)로 떠도는 빨치산 ‘백공산, 일명 짝코(김희라)’와 한평생 그를 잡기 위해 뒤를 쫓는 토벌대 경사 ‘송기열(최윤석)’은 30년 만에 서울의 ‘갱생원’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송기열은 단번에 짝코, 백공산을 알아본다. 아닌 척하지만 백공산 역시 그를 알아보고 식은땀을 흘린다.     영화 <짝코>(1983)는 지리산을 시작으로, 갱생원까지 오게 된 두 사람의 시간을 ‘플래시백 기법(회상장면으로 넘어간 시점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진행하는 기법)’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에선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왜 그토록 송기열이 백공산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 백공산과 송기열은 이미 사회에서 잊힌,...
청량리
2023.05.02 | 조회 375
논어 카메오 열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구나, 내 다시 꿈속에서 주공을 뵙지 못한 것이.”(子曰 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논어』「술이,5」   동양의 문화주의는 흔히 공자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공자는 이 문화를 주공(周公)으로부터 이었다고 했다. 공자는 늘 주공을 흠모했다고 전해지는 데, 이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논어(論語)』에 나오는 이 문장이 아닌가 싶다. 공자는 젊었을 때부터 주공의 도(道)를 따르고 배우려고 힘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공자는 꿈에서 주공을 뵐 수 있었나 보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자 공자가 주공에 대한 꿈을 꾸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위 문장은 공자가 이 때의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논어집주』의 주(注)에는 주자와 이천의 주가 함께 있는데, 두 글이 비슷한데 다른 것이 흥미롭다. 주자는 공자가 주공에 대한 꿈을 꿀 수 없게 된 것이 늙어서 주공의 도를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반해 이천은 마음은 늙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나 도를 행하는 것은 몸이기 때문에 공자가 늙어서 도를 행하는 것도 힘들고 주공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꿈에서까지 주공을 생각한 공자의 이러한 모습은 후대에 『여씨춘추』와 같은 책에 이르면 공자가 꿈에서 주공을 직접 만나 도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주공은 어떤 사람일까   주공의 이름은 단(旦)이다.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동생이다. 무왕이 은(殷)나라를 정벌할 때의 공신(功臣)이다. 『사기』 「주본기」에 의하면 무왕이 즉위한 후 태공망(강태공)을 사(師)로 삼고 주공을 보(輔)로 삼았다고 한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구나, 내 다시 꿈속에서 주공을 뵙지 못한 것이.”(子曰 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논어』「술이,5」   동양의 문화주의는 흔히 공자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공자는 이 문화를 주공(周公)으로부터 이었다고 했다. 공자는 늘 주공을 흠모했다고 전해지는 데, 이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논어(論語)』에 나오는 이 문장이 아닌가 싶다. 공자는 젊었을 때부터 주공의 도(道)를 따르고 배우려고 힘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공자는 꿈에서 주공을 뵐 수 있었나 보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자 공자가 주공에 대한 꿈을 꾸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위 문장은 공자가 이 때의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논어집주』의 주(注)에는 주자와 이천의 주가 함께 있는데, 두 글이 비슷한데 다른 것이 흥미롭다. 주자는 공자가 주공에 대한 꿈을 꿀 수 없게 된 것이 늙어서 주공의 도를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반해 이천은 마음은 늙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나 도를 행하는 것은 몸이기 때문에 공자가 늙어서 도를 행하는 것도 힘들고 주공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꿈에서까지 주공을 생각한 공자의 이러한 모습은 후대에 『여씨춘추』와 같은 책에 이르면 공자가 꿈에서 주공을 직접 만나 도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주공은 어떤 사람일까   주공의 이름은 단(旦)이다.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동생이다. 무왕이 은(殷)나라를 정벌할 때의 공신(功臣)이다. 『사기』 「주본기」에 의하면 무왕이 즉위한 후 태공망(강태공)을 사(師)로 삼고 주공을 보(輔)로 삼았다고 한다....
진달래
2023.04.26 | 조회 37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띠우
2023.04.23 | 조회 378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봄날
2023.04.22 | 조회 385
한문이예술
    # 1. 가랑비에 옷 젖듯 한자를, 雨   동은       1. 연필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든 한자      17살 여름,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땄다. 8급부터 4급까지 누적되는 시험 출제범위가 딱 1000자였에 나는 그 날부터 한자 1000자를 외운 사람이 되었다. 물론 국가공인으로 인정되는 급수는 아니었지만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그 무게를 들어 올린 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지금까지 한자를 통해 겪었던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언제부터 한자를 배웠는지 기억을 거슬러 가보면, 미취학 아동 시절 때부터 외우느라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한자 공부를 시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어느 학원에서는 영어발음을 위해 혀뿌리를 자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정도로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대세를 거스르고 나를 서예학원에 보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나의 산만함이 원인이었다. 먹냄새라도 맡으면서 사자소학이라도 읽고 내가 제발 조금이라도 차분한 애가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서예학원에 가면 한자를 급수 순서로 빼곡하게 채워 코팅한 책받침을 줬다. 갈 때마다 그 책받침에 표시를 해 가면서 그 날 외워야 하는 한자를 할당해줬다. 오늘은 쇠 금金까지, 내일은 군사 군軍까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 태권도 학원 사범님, 가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나였지만, 서예학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꿀밤을 때리셨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한자를 외워서 학원을 탈출해야 했다. 어쨌든 몇 번의 이사를...
    # 1. 가랑비에 옷 젖듯 한자를, 雨   동은       1. 연필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든 한자      17살 여름,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땄다. 8급부터 4급까지 누적되는 시험 출제범위가 딱 1000자였에 나는 그 날부터 한자 1000자를 외운 사람이 되었다. 물론 국가공인으로 인정되는 급수는 아니었지만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그 무게를 들어 올린 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지금까지 한자를 통해 겪었던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언제부터 한자를 배웠는지 기억을 거슬러 가보면, 미취학 아동 시절 때부터 외우느라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한자 공부를 시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어느 학원에서는 영어발음을 위해 혀뿌리를 자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정도로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대세를 거스르고 나를 서예학원에 보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나의 산만함이 원인이었다. 먹냄새라도 맡으면서 사자소학이라도 읽고 내가 제발 조금이라도 차분한 애가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서예학원에 가면 한자를 급수 순서로 빼곡하게 채워 코팅한 책받침을 줬다. 갈 때마다 그 책받침에 표시를 해 가면서 그 날 외워야 하는 한자를 할당해줬다. 오늘은 쇠 금金까지, 내일은 군사 군軍까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 태권도 학원 사범님, 가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나였지만, 서예학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꿀밤을 때리셨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한자를 외워서 학원을 탈출해야 했다. 어쨌든 몇 번의 이사를...
동은
2023.04.21 | 조회 468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