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이 예술1회] 가랑비에 옷 젖듯 한자를, 雨

동은
2023-04-21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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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랑비에 옷 젖듯 한자를, 雨

 

동은

 

 

 

1. 연필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든 한자

 

   17살 여름,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땄다. 8급부터 4급까지 누적되는 시험 출제범위가 딱 1000자였에 나는 그 날부터 한자 1000자를 외운 사람이 되었다. 물론 국가공인으로 인정되는 급수는 아니었지만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그 무게를 들어 올린 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지금까지 한자를 통해 겪었던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언제부터 한자를 배웠는지 기억을 거슬러 가보면, 미취학 아동 시절 때부터 외우느라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한자 공부를 시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어느 학원에서는 영어발음을 위해 혀뿌리를 자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정도로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대세를 거스르고 나를 서예학원에 보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나의 산만함이 원인이었다. 먹냄새라도 맡으면서 사자소학이라도 읽고 내가 제발 조금이라도 차분한 애가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서예학원에 가면 한자를 급수 순서로 빼곡하게 채워 코팅한 책받침을 줬다. 갈 때마다 그 책받침에 표시를 해 가면서 그 날 외워야 하는 한자를 할당해줬다. 오늘은 쇠 금金까지, 내일은 군사 군軍까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 태권도 학원 사범님, 가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나였지만, 서예학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꿀밤을 때리셨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한자를 외워서 학원을 탈출해야 했다. 어쨌든 몇 번의 이사를 다니면서도 꾸준히 한자학원에 다녔고 한자학원에 더 다니지 않게 되었어도 엄마는 계속 나에게 한자를 외우게 했다. 물론 나도 한자를 외워야 자유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에 꾸역꾸역 한자노트 칸을 채웠다.

   당연하지만 점점 한자를 외우는 것은 어려워졌다. 급수가 올라갈수록 복잡해지고 비슷한 형태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쉽게 외워지지도 않고,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옛말(도대체 지아비라는 말을 외워서 어디에다 쓰는가?)을 반복하고 있자니 노트 표지만 봐도 열불이 일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산만한 애를 앉혀놓고 차분하게 외우라 하니 얼마나 괴로웠겠는가. 외우기 싫다고 엉엉 우는 건 물론, 제 분을 못 이겨 연필을 부러뜨리고 급기야 교재를 찢기도 했다. 씩씩대며 화가 난 나에게 엄마는 한자공부는 너한테 꼭 필요하다는 말로 설득했지만 나는 도대체 세상에 필요 없는 공부가 어디 있냐며 빽 소리를 질렀다.

 

 

 

추억의 코팅 책받침

 

 

  2. 이야기로 한자와 만나다

 

   외국어 능력이 능통했던 우리 언니는 고등학생때부터 일본어 능력 시험(JLPT시험)을 준비했다. 일어한자를 외우기 위해서 과외를 받았었는데 그때 겸사겸사 나도 끼워서 한자과외를 받았던 적이 있다. 수학도, 과학도, 국어도 아닌 한자 과외라니. 아무 기대가 없이 시작했지만 지금까지도 선생님이 했던 설명이 떠오른다.

 

"이건 특별할 특特이야. 왜 특별할까? 소牛가 절寺에 다녀오니 특별한 소인거지!"

"그럼 때 시時에는 왜 절寺이 들어가는 걸까? 왜냐하면 날日이 밝을 때마다 종을 울리던 곳이러서 그렇지. 그래서 시간을 나타내는 글자가 된 거란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선생님의 설명은 형성자나 회의자에 포함된 한자를 이용해 형태나 뜻을 풀이하는 흔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통으로 외우기만 할 줄 알았던 나에게 굉장히 파격적이고 새로운 설명법이었다. 나는 조금씩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그럼 왜 의원 의醫는 왜 술이 들어가요?', '사랑 애愛에는 왜 손톱이 있는 거에요?' 그렇게 몇 번 수업을 들으니 한자 안에서 이야기가 보이기 시작했다. 물론 선생님의 설명은 탁월할 때도 있었지만 억지로 연결지어 수상쩍은 적도 많았다. 그럴 때면 나는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때로는 조각조각으로 나누어 풍경으로 보기도 하고 때로는 한자의 형태를 비틀어 내 마음대로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나는 정말 무작정 한자를 쓰는 법과 뜻, 음만 외워온 것이다. 한자로 이야기로 만들어낸 선생님의 설명은 한자를 보는 내 눈을 틔워주기에 충분했다. 한자공부는 엄마의 바람대로 산만한 나를 차분하게 만들어주지는 못했지만, 그 산만함은 다르게 발휘되었던 것 같다.

   '물고기 어魚는 왜 이런 모양이 된 걸까? 아래의 점들은 물방울이 튀어 오르는 모습일지도 몰라. 손手과 털毛은 왜 이렇게 된 거지? 사슴 록鹿은 뿔모양을 본 뜬게 아닐까?' ... 지루함을 달래기 위한 상상들이 실제 한자 형성 과정과 유사하기도 하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훨씬 나중 일이었다. 그 이후로도 한자를 익혔는데, 마냥 즐거운 것은 아니었지만 단 한가지, 영어단어를 외우는 것보다 한자 외우는 게 훨씬 나아졌다.

   시간이 흘러 인문학공동체에서 <천자문>이나 <논어>같은 동양고전 원문을 읽게 되었을 때, 내 지난했던 한자공부는 다시 빛을 보게 된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한문보다는 한자 하나 하나가 실제로 사용되었다는 것에 더 눈을 반짝였다. 그 한자가 왜 그 자리에 있는 것인지, 무슨 의미로 쓰이는 것인지...! 한자를 다시 만나게 된 일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는 것으로 하고, 이제 처음 <한문이 예술>을 시작했을 때의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3. 한자는 왜 배우는 걸까?

 

   흔히 한자를 배우는 이유로 어휘력을 꼽는다. 한자를 배우면 그 다양한 용례를 통해 자연스럽게 단어를 이해하는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거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한자를 배우는 이유를 실감한 건 중학교에 진학하고 나서였다. 중학교부터 과목마다 시험을 보기 시작하면서 한자가 평균 점수를 깎아 먹는 주범이 된 것이다. 나에게 한자는 거저먹는 문제였기에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국어 시험에서 꼭 한두 개씩 나오는 한자 문제를 속수무책으로 틀리는 것을 보고 상식이 없냐면서 그 앞에서 모처럼 주름을 잡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전체적인 정답률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찍어서 맞으면 운이 좋은 거고, 틀렸다면 아쉬운 정도의 점수였을 뿐이었다.

   내가 뭘 하는지도 모르면서 무작정 머리에 욱여넣는 공부는 당연히 괴롭다. 학교공부라는게 암기가 전부일 뿐이라고 스스로를 위안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자는 특히 더 실용성을 느낄 수 없었다. 자기 이름 석자 이외의 한자를 언제 쓰겠는가. 한자는 점수를 많이 얻을 수 있는 과목도 아니었기 때문에 성적을 위한 공부도 아니었으며 그렇다고 미술이나 음악, 체육같은 예체능 과목도 아니었다. 나는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괴로워 하면서 한자를 공부했던 것일까? 엄연히 하나의 교과목으로 자리잡고 있었던 한자였지만, 우리말이라고도 할 수 없고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한자를 왜 힘들게 외워왔던 것이까? 다 알아야 한다는 상식을 위해서? 혹은 남들보다 조금 더 나은 교양을 쌓기 위해서? 어부漁夫의 부夫가 지아비 부夫라는 것을 맞추기 위해서?(지아비는 정말 이런 데나 쓰였다!) 상당히 혼란스러웠지만 이미 오랫동안 한자를 익혀오며 급수 시험을 준비하고 있던 터라 그 흐름에 관성적으로 몸을 맡기는 수밖에 없었다. 그 이후로도 나는 오랫동안 그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게 굉장히 괴롭지도 않았다. 한자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거나 나를 너무나 힘들게 만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단지 그 답을 찾기 전까지 오랫동안 답답했을 뿐이다.

 

 

 

 

   때문에 <한문이 예술>을 준비 할 때 [왜 한자를 가르쳐야 할까?]에 대해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아이들과는 그런 답답함을 남기고 싶지 않았고, 특히나 절대 급수 중심 한자 암기 수업은 하고 싶지 않았다. 첫 수업을 준비하는 몇 달 동안, 어떤 한자를 처음 만나면 좋을지 고민하다 한자 비 우雨를 찾아냈다.

 

 

4. 처음 한자와 만난다면 이것으로

 

   처음 아이들과 만났던 건 뜨거운 여름이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우리가 수업을 할 때마다 새벽에 촉촉한 비가 내렸다. 강수량이 가장 많은 여름에 아이들과 비에 대해서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단순히 시기적으로 이 한자를 고른 것은 아니었다. 雨는 상형자로 어렵지 않게 빗방울이 내리는 비의 형상을 글자 속에서 떠올릴 수 있다. 그뿐인가, 雨비는 눈 설雪, 구름 운雲처럼 다른 글자와 합쳐져 날씨를 의미하는 부수로 쓰이기도 하며 전기 전電의 경우에는 회의자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한자를 통해서 아이들과 가장 하고 싶은 이야기는 조자造字의 원리가 아니라 아주 오래 되어서 알 수도 없는 옛날 이야기였다. 한자가 만들어진 역사에서 가장 초기를 살펴보면 아주 단순한 형태에서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초기에 만들어진 한자들은 대부분 그 모습을 그대로 본 뜬 상형자 대부분은 하늘에 떠있는 해日와 달月, 마시는 물水과 몸을 데우고 음식을 만드는 불火처럼 우리 주변에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로 만들어져있다.

 

 

비의 다양한 형태들

 

 

   비雨 또한 빗방울이 내리는 모습으로부터 만들어졌는데, 오랫동안 사람들과 함께하면서 비가 내리거나 번개가 치거나, 눈과 우박이 내리고 구름이 가득해지는 모든 일과 연관되어 날씨를 상징하는 글자로 확장되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사람들이 어떤 기준으로 기상현상을 구분했고, 그 현상을 어떻게 표현했는지를 알 수 있다. 눈 설雪의 경우에는 눈을 쓸어내는 싸리빗자루를, 번개 전電은 길게 내리뻗는 번개의 모양을 본떠 만들어졌고, 그리고 기우제 우雫는 가뭄에 비가 내리길(下) 바라며 만들어졌다. 이 외에도 구름 운雲, 장마 림霖 모두 어떤 맥락에서 만들어졌는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하늘을, 날씨를 바라보는 시야가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절대로 정확히 알 수 없는 고대 세상에 대해 한자라는 단서를 통해,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내리는 비를 통해서 고대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갈 수 있었다.

 

 

5.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한자 공부

 

   수업에서 배우는 모든 한자가 '쓸모 있는', 그러니까 사용되고 있는 한자는 아니었다. 기우제 우雫는 더이상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자를 외우는 건 별로 소용이 없다. 대신 雨가 들어간 다양한 한자들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바뀌었는지, 농경사회에서의 비와 오늘날의 비가 무엇이 다른지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雨가 확장되어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자기만의 경험을 담은 새로운 한자를 만들도록 했다.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비맞을 우, 비오는 날 지렁이를 본 기억을 되살려 지렁이 밟을 우, 자기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로 만든 구름 많을 우… 아이들은 어렵지 않게 새로운 문자를 만들었다. 기후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雨의 활용법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이 정도면 한자와 아주 훌륭한 첫 만남이었다.

   이후로 몇 년간 아이들과 수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내가 한자 공부에 대해 갖고 있던 답답함이 무엇인지 찾을 수 있었다. 한자로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공부가 가능하다는 것! 고대의 시선을 60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유지하고 있는 문자이기에, 오늘을 새롭게 볼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오늘날 내가 한자를 공부하는 이유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과거를 통해 오늘날을 이해하고, 더 풍부한 의미를 찾게 될지도 모른다. 이제 상식과 교양을 벗어나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는 한자 공부가 되었으면... <한문이 예술>은 아이들과 조금씩이라도 그런 공부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됐다.

 

 

첫 수업 모습!

 

댓글 9
  • 2023-04-21 17:56

    오! 재미있군, 재미있어!!
    동은샘의 <한문이예술> 수업을 듣고 싶어지는 글이에요.^^

    • 2023-04-22 06:35

      저두요!!^^

  • 2023-04-21 20:48

    길라임................아니, 아니, 동은이는 언제부터 이렇게 잘 썼나? ㅋㅋㅋㅋㅋㅋㅋㅋ
    (드뎌, 나의 숙원이 풀리려나^^)

  • 2023-04-21 21:01

    저와 달리 한자 공부에 족보가 있으시네요..^^
    제가 바로 다른 공부를 다 해도 한자만은 죽어라 틀렸던 그 친굽니다요 후후

  • 2023-04-23 07:13

    그러게요. 한자공부의 시작이 이렇게 오래 됐다니!!!!!
    나뭇잎으로 아이들과 수업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ㅎㅎㅎ
    멋지네요~~

  • 2023-04-24 09:33

    예술프로젝트에서 한자로 그림을 그리겠다고 했을 때 엄청 신기했는데 오래된 내력이 있었구나^^ 넘 재미있게 읽었음!!

  • 2023-04-24 13:40

    한자 급수 시험, 한 때 유행이었다.~
    요즘 공부방에서 자주 보는 동은, 앞으로의 글도 기대 된다.

  • 2023-04-25 16:10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시간들이 드디어 한 데 엮이면서 빛을 발하는 것 같네요ㅎㅎ

    글 재미있을 有~

  • 2023-07-18 23:36

    한자에 대해 재미있고 편한하게 접근을 하고 읽는 내내 머리속에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고 떠오르게 하는, 참 잔잔한 글인것 같아요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겨우 잡았는데, 이토록 허망하다니 <짝코>(1983) | 감독 : 임권택 , 주연 : 김희라, 최윤석 | 103분            어느 날, 노숙자 한 명이 '갱생원'으로 들어온다. 갱생원이란 “오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밥도 주고 잠도 재워 주는” 곳이지만, 실상은 ‘사회복지’보단 “속세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자들의 ‘사회적 청소’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노숙자는 침대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보고 깜짝 놀란다.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살고 싶었으나 망실공비(사망, 실종 또는 아무리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는 공비)로 떠도는 빨치산 ‘백공산, 일명 짝코(김희라)’와 한평생 그를 잡기 위해 뒤를 쫓는 토벌대 경사 ‘송기열(최윤석)’은 30년 만에 서울의 ‘갱생원’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송기열은 단번에 짝코, 백공산을 알아본다. 아닌 척하지만 백공산 역시 그를 알아보고 식은땀을 흘린다.     영화 <짝코>(1983)는 지리산을 시작으로, 갱생원까지 오게 된 두 사람의 시간을 ‘플래시백 기법(회상장면으로 넘어간 시점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진행하는 기법)’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에선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왜 그토록 송기열이 백공산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 백공산과 송기열은 이미 사회에서 잊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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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3.05.02 | 조회 375
논어 카메오 열전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심하도다, 나의 쇠함이여! 오래되었구나, 내 다시 꿈속에서 주공을 뵙지 못한 것이.”(子曰 甚矣吾衰也 久矣吾不復夢見周公) 『논어』「술이,5」   동양의 문화주의는 흔히 공자로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공자는 이 문화를 주공(周公)으로부터 이었다고 했다. 공자는 늘 주공을 흠모했다고 전해지는 데, 이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논어(論語)』에 나오는 이 문장이 아닌가 싶다. 공자는 젊었을 때부터 주공의 도(道)를 따르고 배우려고 힘썼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공자는 꿈에서 주공을 뵐 수 있었나 보다. 세월이 흘러 나이가 들자 공자가 주공에 대한 꿈을 꾸는 횟수가 점점 줄었다. 위 문장은 공자가 이 때의 심정을 토로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한 『논어집주』의 주(注)에는 주자와 이천의 주가 함께 있는데, 두 글이 비슷한데 다른 것이 흥미롭다. 주자는 공자가 주공에 대한 꿈을 꿀 수 없게 된 것이 늙어서 주공의 도를 행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이에 반해 이천은 마음은 늙는다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나 도를 행하는 것은 몸이기 때문에 공자가 늙어서 도를 행하는 것도 힘들고 주공에 대한 꿈도 꾸지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꿈에서까지 주공을 생각한 공자의 이러한 모습은 후대에 『여씨춘추』와 같은 책에 이르면 공자가 꿈에서 주공을 직접 만나 도를 배웠다는 이야기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주공은 어떤 사람일까   주공의 이름은 단(旦)이다. 주(周)나라를 세운 무왕(武王)의 동생이다. 무왕이 은(殷)나라를 정벌할 때의 공신(功臣)이다. 『사기』 「주본기」에 의하면 무왕이 즉위한 후 태공망(강태공)을 사(師)로 삼고 주공을 보(輔)로 삼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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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달래
2023.04.26 | 조회 37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띠우
2023.04.23 | 조회 378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봄날
2023.04.22 | 조회 387
한문이예술
    # 1. 가랑비에 옷 젖듯 한자를, 雨   동은       1. 연필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든 한자      17살 여름,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땄다. 8급부터 4급까지 누적되는 시험 출제범위가 딱 1000자였에 나는 그 날부터 한자 1000자를 외운 사람이 되었다. 물론 국가공인으로 인정되는 급수는 아니었지만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그 무게를 들어 올린 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지금까지 한자를 통해 겪었던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언제부터 한자를 배웠는지 기억을 거슬러 가보면, 미취학 아동 시절 때부터 외우느라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한자 공부를 시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어느 학원에서는 영어발음을 위해 혀뿌리를 자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정도로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대세를 거스르고 나를 서예학원에 보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나의 산만함이 원인이었다. 먹냄새라도 맡으면서 사자소학이라도 읽고 내가 제발 조금이라도 차분한 애가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서예학원에 가면 한자를 급수 순서로 빼곡하게 채워 코팅한 책받침을 줬다. 갈 때마다 그 책받침에 표시를 해 가면서 그 날 외워야 하는 한자를 할당해줬다. 오늘은 쇠 금金까지, 내일은 군사 군軍까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 태권도 학원 사범님, 가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나였지만, 서예학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꿀밤을 때리셨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한자를 외워서 학원을 탈출해야 했다. 어쨌든 몇 번의 이사를...
    # 1. 가랑비에 옷 젖듯 한자를, 雨   동은       1. 연필을 부러뜨리고 머리를 쥐어 뜯게 만든 한자      17살 여름, 한자능력검정시험 4급을 땄다. 8급부터 4급까지 누적되는 시험 출제범위가 딱 1000자였에 나는 그 날부터 한자 1000자를 외운 사람이 되었다. 물론 국가공인으로 인정되는 급수는 아니었지만 1000이라는 숫자가 주는 무게감은 상당했다. 그 무게를 들어 올린 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지금까지 한자를 통해 겪었던 고통을 잊어버리게 만들 정도였다.    언제부터 한자를 배웠는지 기억을 거슬러 가보면, 미취학 아동 시절 때부터 외우느라 끙끙거렸던 기억이 난다. 그때만 해도 한자 공부를 시키는 건 드문 일이었다. 어느 학원에서는 영어발음을 위해 혀뿌리를 자르게 한다는 이야기가 들렸을 정도로 영어공부에 열을 올리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가 대세를 거스르고 나를 서예학원에 보냈던 이유를 유추해보자면 아무래도 나의 산만함이 원인이었다. 먹냄새라도 맡으면서 사자소학이라도 읽고 내가 제발 조금이라도 차분한 애가 되길 바라셨던 것 같다.    서예학원에 가면 한자를 급수 순서로 빼곡하게 채워 코팅한 책받침을 줬다. 갈 때마다 그 책받침에 표시를 해 가면서 그 날 외워야 하는 한자를 할당해줬다. 오늘은 쇠 금金까지, 내일은 군사 군軍까지... 피아노 학원 원장님, 태권도 학원 사범님, 가리지 않고 수다를 떨 수 있었던 나였지만, 서예학원의 할아버지 선생님은 제발 입 좀 다물라고 꿀밤을 때리셨기 때문에 나는 가능한 한 빨리 한자를 외워서 학원을 탈출해야 했다. 어쨌든 몇 번의 이사를...
동은
2023.04.21 | 조회 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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