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13회] 택천쾌, 지금은 결단할 때

봄날
2024-01-08 02:12
329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겨누었고 화살은 활을 떠났다. 활을 제대로 겨누었다면 쏜 화살은 목표를 맞추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이사 결정으로 나는, 우리 회사는 어떤 목표를 이루게 될까?

 

무엇을 결단하는가

쾌괘에서 결단하는 것은 무엇일까?

쾌괘의 괘상을 보면 무엇을 결단하는지 금세 알 수 있다. 쾌괘는 아래로부터 다섯 개가 모두 양효이고, 맨 위에 단 하나의 음효가 자리잡은 모양을 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하괘의 세 양효는 하늘(天)을 상징하는 물상을 가지고 있으니까, 양효 중에서도 기운이 센 양효이다. 숫적으로도 5대1이니 쾌괘는 양(陽)의 기운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다. 주역 괘를 해석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시간의 흐름으로 보는 방법이다. 즉 맨 아래 효는 일의 시작, 태동으로 보며 이효, 삼효로 진행하는 과정을 시간적으로 따져보는 것이다. 이 방법으로 보면 쾌괘는 양의 기운이 생기고 자라서 대세적 양상을 보이고, 맨 위의 마지막 음효가 머지않아 사라질 상황으로 설정된 것이다. 마지막 남은 음효 하나마저 사라지면 세상은 순수한 양의 세상, 즉 중천건(重天乾)괘의 세상이 올 것이다. 그러므로 쾌괘에서 말하는 결단은 다가오는 양의 시대에 하나 남은 음을 처단하는 것이다. 정이천은 쾌괘의 결단은 군자의 도(道)가 성해져서 소인의 도가 처단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다가오는 양의 시대는 그러므로 군자의 시대이다. 군자시대의 도래는 대세(大勢)이고, 이것을 막거나 거스를 수는 없다. 우리 회사에 도래할 양의 시대는 어떤 모습일까? 우선 내가 이사를 결정한 배경을 따져봐야겠다. 앞에서 말한 부채를 갚는 것은 장기적으로는 회사가 남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하는 첫걸음이 될 수 있으니, 이는 양을 지향하는 자세일 것이다. 그리고 햇볕이 들지않아 어둡고 추운 사무실 환경을 바꿈으로써,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근무의 질을 좋게 할 필요도 있었다. 사무실의 직원들은 모두 3,40대 청년들이므로 이들이 떠오르는 양들 자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양의 세상의 도래를 위해 화살을 쏘는 것,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것’은 대세에 부응하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날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결단하는가이다.

 

어떻게 결단하는가

 

夬 揚于王庭 孚號有厲 告自邑 不利卽戎 利有攸往

쾌는 왕의 뜰에서 드날리는 것이니 미덥게 호소하되 위태롭게 여긴다. 읍으로부터 고하고 군사를 움직이는 것은 이롭지 않으며 가는 바를 두는 것이 이롭다.

 

택천쾌괘의 괘사는 결단의 신중함을 몇 가지 요점으로 정리해준다. 첫째, 결단은 공적으로 해야 한다. 괘사에서 ‘왕의 뜰’은 공적인 것을 가리킨다. 쾌괘의 분위기는 이미 양으로 기울어졌다. 허나 아무리 대세가 기울었다 해도 내맘대로, 임의로 처리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결단의 전과정은 ‘깃발을 휘날리듯이’ 누구나 다 볼 수 있도록 공정하게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둘째, 결단의 주체는 반드시 군자여야 한다. 이때 ‘읍으로부터 고한다’는 괘사의 뜻을 새기는 것이 좋다. 이 말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 자신에게 내밀한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외부로 확대해나간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결단의 주체는 (군자처럼)스스로 높은 덕성을 갖추는 것이 기본이다.

 

또한 쾌괘의 괘사는 결단의 주체인 구오, 혹은 군자에게 조심해야 할 두 가지를 더 주문한다. 그것은 ‘지나침’, 즉 ‘과도함’과 ‘방심’이다. 괘사에서 말한 ‘군대를 쓰는 것이 이롭지 않다’는 것은 ‘벼룩 한 마리를 죽이는데 도끼를 집어드는 것’처럼, 처단의 과정이 과도하게 폭압적으로 전개되는 것을 경계하는 말이다. 기울어진 귀퉁이를 간신히 붙잡고 있는 음을 처단하는 것이 말 한 마디로도 가능한 상황에서, 지나친 무력의 남용은, 처단의 당위성이 설 곳을 잃게 만든다. 또 ‘미덥게 호소하되 위태롭게 여긴다’라는 괘사 부분은 ‘방심’을 경계하는 대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우리는 운동경기에서 승패가 이미 많이 기울어져 패색이 짙었던 선수가 ‘막판 뒤집기’로 의외의 승리를 거두는 장면을 적지 않게 본다. 또 산에 화재가 났을 때, 완전히 진화한 줄 알았는데 작은 불씨 하나가 다시 살아나 온 산을 집어삼키기도 한다. 모두 방심하여 완전히 결단하지 못한 결과 생긴 일이다.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택천쾌에서는 아래에 있는 다섯 개의 양효가 모두 결단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결단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과 제대로 결단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다섯 양이 모두 양의 성질을 가지고 있어 제대로 결단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동일한 존재는 아니므로 결단의 내용과 방식에서 각각의 양효가 처한 상황이나 능력이, 그것을 감당할 수 있거나 그렇지 못하다. 가령 쾌괘의 시작 지점에 있는 초구는 자신의 대세를 이끌 수 있을만큼 성숙되지 못한 깜냥인데, 조급하게 처단을 서두르는 모습을 보인다.(초구의 효사는‘발꿈치가 강하니 , 가서 이기지 못하면 허물이 되리라’이다) 결단의 순간은 한번으로 끝나며 되돌이킬 수 없다. 충분히 겨누기 전에 활시위를 당기면 결국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다. 한편 구사는 초구보다는 분명 결단의 능력이 있다고 볼 수 있으나, 자신이 처한 상황이 결단을 어렵게 만드는 위치에 있다. 구사 바로 위에는 강하게 결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구오가 있고, 주변에 자신을 도와 함께 할 사람이 없다. 그러니 모든 결단을 고스란히 온자 힘으로 해내야 하는 중압감을 가진 존재이다. 이럴 때일수록 결단의 정당함을 주변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중요한데, 오히려 자신만의 생각으로 밀어붙이는 독불장군이 되기 십상이다. ‘볼기에 살이 없어 행함을 머뭇거리니, 양을 끄는 것처럼 하면 뉘우침이 없겠으나,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는 구사의 효사는 종종 독단에 치우친 결정을 하는 인간의 모습에 경고를 전한다.

 

결국 구오만이 제대로 음을 처단하는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역은 말한다. 구오는 어떻게 결단할 수 있을까?

 

九五 莧陸夬夬 中行 无咎

구오는 현륙을 결단하고 결단하면 중(中)을 행함에 허물이 없으리라.

 

‘현륙’이라는 식물을 가지고 ‘군자의 결단함’을 상징한 것은, 결단이 얼마나 많은 것을 고려하며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하는지를 대변한다. 현륙은 오늘날 비름나물 같은 들풀의 일종이다.비름나물은 줄기에 물이 많아 통통하고 쉽게 부러지는 성질을 가진다. 주역에서 물은 음의 성질에 배속되므로 현륙은 곧 상육을 가리킨다. 손쉽게 부러지는 모습은, 약할대로 약해진 마지막 음을 양이 처단할 때의 손쉬움을 그대로 표현한다. 그런데 효사의 뒷부분에 ‘중도를 행한다’는 ‘중행(中行)’을 넣은 것에는 깊은 뜻이 있다. 구오가 비록 결단의 주체이고 군주이지만, 상육과 매우 가까운 자리인 만큼 결단의 과정이 구오에게 쉽지는 않다. 상육과 구오는 각각의 삶의 여정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곁에서 영향을 주고받았던 존재이므로, 구오의 결단은 상육과 그간의 관계를 모두 끊어내는 일을 말한다. 결단하기로 마음만 먹으면 비름나물의 줄기를 ‘톡’ 부러뜨리듯 쉬운 일인데, 그 마음 먹기가 어려운 일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오가 조금이라도 망설인다면 결단은 실패할지도 모른다. 주자는 거듭해서 구오가 어떻게 결단해야 하는지 경고한다. “구오가 쾌괘의 때에 결단하는 주체가 되었는데, 상육의 음과 매우 가까우니, 현륙과 같이 하여 만약 결단하고 결단하되 또 지나치게 포악하게 하지 않게 하여 중행에 합하면 허물이 없을 것이다.”

 

나는 결단할 수 있는 사람인가

주역은 같은 텍스트를 가지고도 많은 해석이 가능하며,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상황이나 맥락에 따라 상반된 의미로 읽힐 수도 있다. 나는 쾌괘를 해석하는 내내, 내가 어떤 방식으로든 결단을 해야 하는 구오의 위치에 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쨌든 대표라는 직함은 무언가를 결정하고, 무언가를 포기하는 권한과 책임을 가져야 하니까. 마침 몇 달 전 새 직원이 들어오면서 회사의 분위기가 달라져서, 직원들끼리 고객사 응대라든지 회사 홈페이지 개편에 적극적인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의 구체적인 성과를 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이 모습에서 택천쾌괘가 상정한 양의 시대, 청년중심 조직의 시대에 대한 기대감이 생겼다. 어쩌면 내가 이사를 결정한 것도 이 움직임에 수반되는 ‘대세에 부응하는 결단’ 같은 것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나의 결단과정 중에 적지않은 잘못을 저질렀다는 것을 발견했다. 공간을 옮길 때는 무엇보다 구성원들과의 협의를 거쳐야 했다. 모든 일을 투명하고 공개적으로 처리해야 한다는 괘사 ‘왕의 뜰에서 휘날린다’의 의미를 정면으로 무시하는 처사였다. 공간을 다른 사람이 먼저 계약할까봐 서둘렀다는 변명의 이면에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직원들과 의견이 달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 않았던 몇 번의 경험이 있었다. 그들의 이해를 구하고 설득하는 일을 건너뛰고 싶은 생각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괘사처럼 공명정대하지도 않았고, 구오처럼 중도를 걷지도 못했다. 오히려 구사처럼 나 혼자만의 생각에 치우쳐 독불장군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구사 효사의 ‘말을 들어도 믿지 않는다’는 구절이 아프게 눈에 들어왔다. 내가 해야 할 일은 미루고 남에게 떠넘기면서, 정작 결단의 순간에는 독단으로 움직였다는 자각이 밀려왔다. 택천쾌괘를 만나지 않았다면 나는 거듭해서 독단의 결단을 반복하면서 구사처럼 행세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래하는 청년들의 시대, 내가 구오로서 정말 처단해야 하는 음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중도를 행할 수 있을까? 고민이 깊어지는 나날이다.

 

댓글 2
  • 2024-01-08 16:22

    결단이란 말은 굉장히 속도감있게 느껴지지만 쉬운 일이 아니군요. 봄날샘의 고민이 진솔하게 느껴집니다.

  • 2024-01-08 16:58

    봄날 이사장님의 결단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를......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봄날
2024.04.22 | 조회 129
봄날의 주역이야기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봄날
2024.01.08 | 조회 329
봄날의 주역이야기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봄날
2023.11.12 | 조회 215
봄날의 주역이야기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봄날
2023.07.04 | 조회 287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봄날
2023.04.22 | 조회 372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