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주역이야기 12회] 풍지관(風地觀), 잘 보면 알게 된다

봄날
2023-11-12 22:34
216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우리는 바람이 부는 것을 분명히 느낀다. 공기의 흔들림으로, 내 피부에 닿는 감각으로 바람이라는 것을 ‘인식한다’. 분명 눈으로 보는 것과는 다른 방식의 인식과정을 거치는 것이다. 바람을 형상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왜 풍지관괘(風地觀卦)를 ‘주역의 형이상학’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참된 인식의 과정, 보는 것에서 아는 것으로

관(觀)이라는 글자는 자세히 보다, 보이다, 나타내 보이다, 드러내다, 명시하다 등등의 뜻을 가진다. 이런 뜻을 가진 글자가 관(觀) 하나만은 아니다. 볼 견(見)자도 있고, 나타낸다는 뜻의 보일 시(示)자도 있다. 하지만 관은 눈앞에 보이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눈앞에 보이는 것 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까지를 꿰뚫어본다는 뜻을 포괄한다. 이른 바 통찰(通察)을 뜻하는 글자가 바로 관이다. 괘명은 그 괘 전체의 내용을 함축하므로 관괘는 본격적인 ‘통찰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괘이다.

 

풍지관괘의 물상은 ‘땅 위에 부는 바람’이다. 상괘가 바람이고 하괘가 땅이니, 땅위의 모든 사물을 바람이 훑으며 지나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혹자는 이 바람이 천둥과 비를 동반하는 태풍같은 바람이라고 해석하지만 나는 그런 것 같지는 않다. 나는 이때의 바람이, 땅위의 사물을 찬찬히 스캔하듯 훑고 지나가는 산들바람 같은 존재라고 보았다. 단전에서는 이때의 ‘봄(觀)’을 대관(大觀), 즉 크고 넓게 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것은 높은 곳에서 아래를 굽어보며, 작은 것도 놓치지 않는 동시에, 시야를 넓혀 전체를 아우르는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소성괘의 성질을 가지고도 괘의 의미를 풀어낼 수 있는데, 대관할 수 있는 것은 상괘, 즉 윗사람이 공손함의 덕을 가진 손괘이기 때문이다. 이렇듯 전체를 조망하는 대관(大觀)과 자신을 스스로 낮추어 내면을 비우는 자세는 참된 인식과정의 기본이다.

 

그런데 이것이 쉽게 이룰 수 있는 경지는 아니다. 크게 보는 것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려니와 자신을 낮추라는 것도 너무 추상적이다. 관괘의 괘사에 매우 구체적인 힌트가 있다.

 

“관은 (제사를 위한) 손을 씻고 (제사를 위한) 음식을 올리지 않는 것이니, 믿음이 있으면 (사람들이) 우러러보듯 보리라(觀 盥而不薦 有孚 顒若)”

 

관괘는 아래에 있는 네 개의 음효가 위의 두 개의 양효를 우러러보는 형태를 하고 있다. 위에 있는 양효가 제사를 지내는 주체라고 생각하고 괘사를 풀어보자. 관이불영의 관(盥)은 제사를 앞두고 손을 씻고 제주(祭酒)를 땅에 부어 신을 부르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천(薦)은 제사음식을 올리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제사를 위해서 손을 씻었는데, 정작 제사음식은 올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괘사를 이해하려면 행해지는 ‘일’보다, 일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변하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정이천은 변하는 요체가 ‘마음가짐’이라고 했다. 즉, 제사를 올리기 전에는 오로지 제사를 통해 하늘에 간절히 소망하고 정성들일 것만 생각하는데, 막상 제사과정을 따라 절을 하고 음식을 올리다 보면 과정의 번다함으로 인해 “그 마음이 처음 손을 씻을 때만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제사가 많이 간소화되고 각자의 집안에 맞게 제사를 치른다. 그러나 그 형식과 마음가짐의 관계는 똑같다. 제사를 위해 가족이 모이고,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제사를 지내려는 마음이 희석되고, 제사의 절차나 음식에 대한 이러저러한 말들이 오가다 보면 제사를 앞두었을 때의 마음가짐과는 딴판으로 흐를 수 있다. 관괘의 괘사가 실제 제사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제사는 그저 비유일 뿐, 어떤 일이건 시작 전의 마음가짐과 진행되는 과정의 그것이 일관되는지가 중요하다.

 

요컨대 사람들이 보는 것은 제사를 지내는 사람의 마음이다. 괘사의 뒷부분 유부옹약(有孚顒若)은 구오가 정성스러운 마음가짐으로 임함으로써 드러나는 결과 혹은 효능이다. 옹(顒)은 ‘우러러본다’라는 뜻의 글자로, 구오의 마음가짐만으로도 사람들이 감화되는 모양이다. 구오의 역할은 하늘을 보고 자연, 즉 천지가 운행하는 이치를 봐서 안 다음, 아래로 굽어보고 백성들을 (바람처럼) 살피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아래의 네 음효들은 구오를 우러러보고 그것을 믿고 따른다. 제사과정을 말했을 뿐인데, 관괘는 우주의 운행원리를 인간사회로 시각화하고 있는 것이다.

 

앎을 이끄는 여러 개의 시선

그러고 보면 관괘의 괘사와 효사에는, 상대로 하여금 앎에 이르게 하는 ‘보여줌’과 스스로의 앎에 다다르는 ‘봄’의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효사에서는 이렇게 앎으로 귀결되는 여러 개의 시선을 발견할 수 있다. 각 효의 관(觀)은 ‘보는 사람’이다. 아래 네 음효의 시선은 모두 구오를 향한다. 하지만 각 효가 가진 기질이나 상황에 따라 그 봄은 때로는 능력의 모자람이나, 부분적인 것을 전체인 것처럼 아는 것으로 드러난다.

가령 초육의 효사는 “어린아이가 보는 것이니 소인은 허물이 없지만, 군자는 부끄럽다(初六 童觀 小人无咎 君子吝)”인데, 이 동관(童觀)은 보고 듣는 것이 아직 많지 않아서 제대로 알지 못한다.

 

 

또 육이에는 규관(闚觀)이 등장한다(六二 闚觀 利女貞). 이것은 자신이 보고 아는 것을 처음이자 끝인 것처럼 아는 것, 즉 부분적인 앎을 말하는 것이다. 어쩌면 육이는 자신의 시선이 닿는 것을 파악하는 것보다, 자신이 지금 어떤 상황에서 보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할지도 모른다.

 

 

한편 네 음효의 제일 위에 있는 육사는 구오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있는 존재로서 바야흐로 구오의 신임을 받아 중요한 역할을 할 존재이다. 왜냐 하면 육사는 다른 음효들과 달리 구오가 이루어낸 업적을 제대로 판단하고 그와 함께 하려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육사의 효사는 “육사는 나라의 빛을 봄이니, 왕에게 손님대접을 받음이 이롭다(六四 觀國之光 利用賓于王)”이다. 왕에게 손님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국사를 다루는 중요한 자리에 등용된다는 뜻이다. 육사는 구오 한 사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구오가 이루어놓은 그 나라의 빛, 즉 문화의 찬란함을 제대로 본다. 관국지광은 현대의 ‘관광’의 출처이다. 그러니까 오늘날의 관광은 그 뜻이 아주 협소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오늘날의 관광은 보는 것, 소비하는 것에 치중해서 자신의 발길이 닿는 곳의 역사나 문화, 예술 등을 깊게 살피는 것에 소홀해졌으니 아쉽기만 하다.

 

참된 인식은 나를 보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중요한 또 하나의 시선이 있다. 구오와 육삼의 효사에 등장하는 관아생(觀我生)이 그것이다. ‘나의 생김을 본다’ ‘혹은 내가 낳은 것을 본다’로 해석하는 이 관아생은 그 시선이 자신을 향한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관아생은 나를 본다는 것이다. 육삼의 관아생(六三 觀我生 進退)은 자신의 생김을 봄으로서 나아감과 물러남을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다. 또 구오는 자신을 들여다보고 대번에 군자의 앎에 이르는 존재이다(九五 觀我生 君子无咎). 요컨대 스스로를 보는 것은 참된 지혜를 얻는 첩경으로서, 관괘가 말하려는 ‘참된 인식’을 위한 성찰의 방식이다.

 

민화를 그리면서 바람을 다시 보게 되었듯, 관괘를 들여다보며 ‘과연 제대로 보고, 참된 인식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나는 지금 내 주변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일들과 나 자신에 대해 제대로 보고 있을까 자문한다. 우리들 대부분은 표면적인 ‘봄’에 치우쳐서 통찰적 시각을 얻지 못한다. 아는 것이 많지 않아 어리석은 동관(童觀)이나, 부분적이고 치우친 앎인 규관(闚觀)에 머무르는 때가 많을 것이다. 끝없이 자신을 돌아보는 관아생(觀我生)없이 관괘의 괘사가 말하는 ‘눈을 들어 천지의 도를 보고 아래를 굽어살펴 사람들에게 베푸는’ 군자의 통찰지를 얻기는 힘들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그것이 절대 오를 수 없는 경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관괘를 통해 주역은 어린 아이의 봄에서 자기 지평안에서의 봄으로, 나라의 빛을 봄으로 인식의 역량을 키워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 시선을 나에게 집중하고 다시 군자되기에 도전!

 

댓글 1
  • 2023-11-15 09:38

    예술적 감각이 뛰어난 봄날님. 소성괘 8괘의 상을 그린 민화, 깜짝 놀랬더랬어요 ㅎㅎ
    관괘는 위정자들이 민초들을 살피는 괘로 많이 해석되죠.
    봄날샘은 자신에게 시선을 집중하는 것에 더 많이 비중을 두고 해석하셨네요.
    봄날샘의 군자되기 도전! 응원합니다^^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은 점치는 책이다. 그런데 점치는 방법이 제대로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주역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것은, 주역은 점을 치는 책으로 인정받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내용과 의미를 꼼꼼히 원리와 뜻을 따져가며 해석해서 읽어도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원리를 따져가며 읽는 방식의 주역을 의리역(義理易)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러한 구분은 별로 의미가 없다. 점을 치면서도 그 해석을 의리적으로 하기도 하고 의리역으로서 주역을 읽으면서 수시로 점을 치기도 한다. 어쩌면 두 가지 방식을 적절하게 취하는 것이 지혜로운 태도일 수 있다. 가끔 혼자 혹은 함께 모여 시초점으로 괘를 뽑고 이것을 해석하는 재미가, 주역이 다른 텍스트와 구별되는 매력이 되기도 한다. 점을 쳐서 화수미제(火水未濟)괘를 얻었다고 치자. 그럼 나는 생각해본다. 나에게 왜 이 화수미제괘가 왔을까? 주역을 공부하기 시작한 초기에는 우선 이 괘가 길흉, 즉 좋은지 나쁜지를 먼저 따졌었다. 지금은 그것이 그다지 의미가 없다는 것을 잘 안다. 어떤 괘가 오든지 내내 좋기만 하든지, 내내 나쁘기만 한 괘는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좋다고 환호하고 있을 때 막바지에 다가올 불운을 캐치해내지 못하는 것이, 나쁜 괘를 받아들고 심사숙고해서 해결책을 찾아내는 것보다 더욱 큰 낭패를 보는 일이 종종 있다.   정(正)도 없고 응(應)도 기댈 바 없고 화수미제괘는 주역 64괘의 순서에서 마지막에 위치한 괘이다. 하나의 괘를 이루는 여섯 효는 음양의 배치에 원칙이 있다. 이 원칙에 따르면 첫 번째부터 여섯 번째 효의 자릿값의 순서는 양-음-양-음-양-음이다. 63번째 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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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4.22 | 조회 131
봄날의 주역이야기
우리 사무실은 한 사람의 후원자 A씨가 거액의 전세 보증금을 빌려준 덕에 월세 없이 5년여를 버텨왔다. 그런데 그 후원자가 그것을 돌려받고 싶어했다. 실은 이런 뉘앙스의 말을 일년 전부터 들어왔다. 하지만 월세가 얼마가 되었건 새로운 고정지출을 만드는 건 회사 운영에 큰 위협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듣고도 모른 체 해왔다.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동네서점’을 지향하며 청년 중심으로 운영되는 서점의 관리자 B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서점이 0월말로 전세기간이 만료돼요. 조금 더 공간이 크고, 학교와 가까운 곳으로 옮길 생각인데...혹시 함께 공간을 얻을 생각이 있으신지요?”   한번도 이 문제에 대해 입밖에 낸 적도, B씨와 논의한 적도 없었는데, 나는 이상하게 그 제안에 끌렸다. 늘 마음 한 구석에 남아있던 A씨에 대한 부채를 해결하고픈 생각이 불쑥 고개를 내밀었다. 공간을 함께 나누면 월세의 부담도 덜고, 초기 위험부담도 적어질 거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나는 덜컥 동의를 해버렸고, 하루 이틀 사이에 신축건물 2층 공간을 발견하고, 며칠 사이에 월세계약까지 해치워버렸다. 누가 떠민 것도 아닌데,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정해진 수순처럼 나의 결정은 거침 없었다.   택천괘(澤天夬)는 바로 이런 결정의 순간을 가리킨다. ‘결단하다’, ‘결정하다’의 뜻을 가진 쾌(夬)라는 글자는 활시위를 당길 때 엄지에 끼는 깍지나, 깍지를 낀 손의 형상에서 나왔다. 활은 쏘아 맞히는 도구이고, 시위를 당긴 화살은 언젠가는 쏘아야 한다. 쾌괘는 목표를 겨누었다가 깍지를 풀어놓는 그 순간의 상황이다. 겨눌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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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4.01.08 | 조회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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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
2023.11.12 | 조회 216
봄날의 주역이야기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쌀벌레가 나타나야 쌀이 상한 것을 안다 십년이 넘도록 함께 웃고 지내던 동아리에 일이 생겼다. 표면적으로는 멤버 중 몇몇의 술이 과해서 벌인 쌈박질이지만, 그것은 오랫동안 동아리 내에서 묵혀두었던 ‘과거사’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다. 육십갑자가 넘은 사람들이 해도 되는 말과, 절대로 하면 안되는 말을 마구 내뱉었다. 욕설을 몇 번 주고받던 사람들이 급기야 의자를 집어던지고 주먹다짐을 하고 말았다. 장수하는 동아리로, ‘성격 좋은 사람들’이 모인 동아리로 주변의 부러움을 샀었는데, 비록 술기운을 빌렸다고 하지만, 누군가의 가슴 속에 상처가 되는 말들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십년의 우정은 어디로 가고, 곪을대로 곪아버린 관계만이 드러났다. 그것은 주역의 18번째 괘인 산풍고(山風蠱)괘가 형상화한 ‘벌레먹은 그릇’, 바로 그것이었다.   괘명인 고(蠱)라는 한자는 그릇(皿) 속에 많은 벌레가 있는 모양을 하고 있다. 벌레의 종류를 정확하게 규정하지 않고 있지만, 이때의 벌레는 쌀에서 생겨나는 바구미 같은 류를 생각하는 것이 적당할 듯하다. 좀 오래된 쌀독을 열었을 때 갑자기 튀어나오는 바구미처럼, 우리는 벌레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쌀이 상했을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않는다. 바구미가 튀어나온 순간, 일은 완전히 다른 국면으로 넘어가고, 시선은 쌀에서 벌레로 옮겨간다.     산 아래 머무는 바람이 하는 일 이렇게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진 데에는 나름대로 원인이 있을텐데, 64괘가 배열된 차례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측면이 있다. 산풍고괘는 18번째 괘인데, 16번째 괘는 ‘기쁨’을 나타내는 뇌지예(雷地豫)괘이고, 17번째는 ‘남을 따른다’는 뜻을 가진 택뢰수(澤雷隨)괘이다. 그러니까, 기뻐하고 따르는...
봄날
2023.07.04 | 조회 287
봄날의 주역이야기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주역의 4대 난괘 중 하나인 택수곤(澤水困)괘는 한 마디로 ‘결핍의 시대’을 상징한다. 이때의 결핍은 위는 연못이고 아래는 물인 곤괘의 물상이 변하면서 발생한다. 표면에 보이는 것은 연못인데, 연못에 차 있어야 할 물이 아래로 다 빠져나가 버려 못이 바짝 말라있는 상태. 물이 머물지 않고 계속해서 빠져나가는 연못은 더 이상 생명력이 없다. 택수곤괘의 결핍은 곧 생명력의 결핍이다. 나는 그 모양이 정확하게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생태파괴의 현장을 가리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옛사람들은 수천년 전에 이미 우리에게 주어졌던 자연 생태계가 망가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곤괘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던져주려고 했던 것 아닐까? 그렇다면 택수곤괘에는 그런 비극적인 사태를 벗어날 수 있는 메시지도 함께 담겨있지 않을까? 나는 택수곤괘를 생태적 관점으로 읽어보려 한다.   인류문명은 택(澤)에서 시작됐다 곤괘를 생태와 연결하여 생각하게 된 것은 바로 연못을 뜻하는 ‘택(澤)’이라는 글자 때문이다. 주역의 괘는 여덟 가지의 자연의 형상을 본따서 만든 3획을 두 번 겹쳐서 만들어진다. 여덟 개의 괘에서 표현하는 자연의 물상은 하늘(☰), 땅(☷), 불(☲), 우레(☳), 바람(☴), 물(☵), 산(☶), 연못(☱)이다. 이 물상들의 변화하는 모습과 서로 작용하는 모습을 보고 만든 것이 주역이니, 주역은 당연히 자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그런데 이 소성괘 중에서 다른 괘의 물상은 뚜렷한데, 연못은 어딘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물을 뜻하는 감괘(坎卦)가 엄연히 있는데 굳이 같은 물을 머금고 있는 택괘(澤卦)가 또 다른 소성괘를 이루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봄날
2023.04.22 | 조회 3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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