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인생극장/7회> 부창부수(夫唱婦隨)로 본 별별 로맨스

기린
2020-01-28 21:31
409

 벌써 작년이다.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가 장안의 화제였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주인공들의 로맨스도 한 몫을 했다. 여주인공인 동백에게 첫 눈에 반해서 순정을 바치는 용식의 ‘폭격형’ 로맨스가 묘하게 마음이 끌리는 구석이 있었다. 드라마가 방영되는 내내 그 로맨스는 동백과 그 주변 인물들에게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선사했다.

 

 

『사기』에서 남녀의 로맨스를 주로 다룬 편은 아예 없을뿐더러 여성을 주인공으로 삼은 편도 「본기」에서 유방의 아내였던 여치의 일대기를 다룬 「여태후 본기」가 유일하다. 다만 부부로 연을 맺은 이들의 소소한 이야기가 가물에 콩 나듯 발견된다. 이들의 이야기는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지는 않지만 나름의 반전이 숨어 있다. 무엇보다 아내의 활약이 돋보이는 이들의 로맨스 속으로 들어가 보자.

 

  1. 어리석은 남편을 일깨운 로맨스

 안영은 춘추 시대 제나라의 재상이다. 오랑캐 출신으로 제나라 조정에 발탁된 후 세 명의 제후를 섬기면서 재상을 지냈다. 그러나 집안에서의 살림살이는 소박하기 그지없었다. 밥상에는 한 가지 이상의 육류가 오르지 못하게 했고, 첩에게는 비단옷을 입지 못하게 했다. 이러한 안영의 성품을 흠모하는 이가 있었으니 안영의 마부 아내였다.

어느 날, 안영이 외출하려고 마차를 대령시켰다. 마부는 재상을 모시는 자신의 처지에 우쭐하여 어깨에 한껏 힘이 들어갔다. 마부의 아내가 보기에 그런 남편이 영 마뜩찮아 보였다. 저녁이 되어 남편과 마주앉은 아내가 말했다.

 

-당신과 헤어지겠어요.

 

-그게 무슨 말이오?

 

-재상님은 당신보다 덩치가 작아서 여섯 자밖에 안 되는데도 재상자리에 올랐어요. 근데 당신은 키는 여덟 자나 되는데도 남의 마부 노릇이나 하고 있잖아요.

 

-이제 와서 내가 마부라서 싫다는 거야?

 

-당신은 재상님이 어떻게 재상 노릇하는지에 대해 손톱만치도 관심이 없고 마부인 주제에 재상인양 거들먹거리는 꼴은 또 어떻고요! 그래서는 제대로 마부 노릇도 할 수 없어요!

 

아내로부터 버림받기에 이른 마부는 어떻게 했을까? 삶의 태도를 바꾸었다. 제 일에 충실함은 물론 매사에 겸손을 익히기 위해 노력했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챈 것은 안영이었다. 안영은 그 까닭을 물었고 마부는 사실을 말했다. 그 말을 들은 안영은 그를 대부로 추천했다. 부창부수(夫唱婦隨)의 순종은 일방향이 아니라 쌍방향일 때 해피엔딩의 가능성도 그만큼 상승하게 된다.

 

 

2. 현실에 발 디딘 로맨스

 

 사마상여는 한(漢)무제 때의 사람이다. 어려서부터 책읽기를 좋아했던 그는 장성하여 여러 유세객들과 어울리면서 글쓰기에 재능을 드러냈다. 집안의 살림살이는 넉넉지 않았고 별다른 직업도 없었지만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많았다. 그 중에는 고을의 현령도 있었다. 어느 날은 현령의 초대로 탁왕손의 집안 잔치에 가게 되었다.

 탁왕손은 노복을 800여 명이나 부리는 부호였다. 잔치 상에 이르러보니 수백 명의 빈객이 어울리고 있었다. 상여의 인기는 잔치 상에서도 눈길을 끌었다. 사람들은 흘긋흘긋 그를 훔쳐보았다. 현령은 그 분위기를 틈타 사마상여에게 거문고를 주며 말했다.

 

-그대가 거문고 연주 솜씨가 뛰어나다 들었소. 한 곡 듣고 싶소이다.

 

사실 사마상여의 연주는 탁왕손의 딸이면서 과부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문군의 마음을 사기 위한 의도로 기획된 것이었다. 문군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별당에서 사마상여의 연주를 들은 문군이 관심을 보였다. 잔치 마당을 떠나기 전 사마상여는 심부름꾼에게 한바탕 선물을 안겨 보내면서 문군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했다.

문군은 당장 그날 밤으로 보따리를 싸서 사마상여에게 왔다. 두 사람은 곧바로 고향을 떠나 도성으로 향했다. 도성에 이르러 찾은 거처는 네 벽만 겨우 서 있을 뿐이었다.

한 편, 탁왕손은 자신의 딸이 사마상여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 한 것을 알고 대노했다.

 

-딸은 쓸모가 없다고 할 때 내 그 말을 믿지 않았는데 참말이구나! 내 눈에 흙이 들어가지 전에는 한 푼도 내주지 않을 것이다.

 

문군은 아버지의 노여움을 누그러뜨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는 더 이상 미련을 두지 않았다. 그리고 사마상여에게 말했다.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요. 저한테는 아버지도 있지만 그 외 형제들도 있으니까요. 그들에게 돈을 빌려 뭐라고 해서 먹고 살아야지요.

 

고향으로 돌아 온 두 사람은 돈을 빌리고 가진 것을 모두 팔아 술집을 차렸다. 문군은 주모가 되어 직접 술을 팔고 사마상여는 머슴들과 허드렛일을 하면서 술집을 꾸려갔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탁왕손은 기가 찼다.

 

-이런 배은망덕을! 내 챙피해 얼굴을 들고 나다닐 수 없다.

 

그러고는 문을 닫아걸고 나가지 않았다. 형제들과 자식들은 그런 탁왕손에게 번갈아 드나들며 구슬렸다.

 

-고작 셋 뿐인 자식이오. 게다가 넘치는 저 재산을 어디에 쓸 것이오. 사마상여가 비록 가난하긴 해도 들어보니 쓸 만한 재목이라고 합니다. 우선은 거두어서 다음을 도모하는 것이 진정 치욕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이렇게 되자 탁왕손도 더 이상 모른 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탁왕손은 문군에게 한 재산을 떼 주었고 두 사람은 그예 술집을 접고 다시 도성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사마상여의 유혹이 낭만이었다면 문군의 사랑은 현실이었다. 현실에 뿌리내린 문군의 사랑은 예상치 못한 가난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이후 사마상여는 한무제의 전속 작가가 되어 그 사랑에 보답했다.

 

 

3. 천하를 함께 경영한 로맨스

 

 유방(한고조)과 여치(여태후)는 여치의 아버지가 중매를 했다. 유방의 고향인 패현 현령의 손님으로 갔다가 유방의 인물됨에 반한 결과였다. 딸을 유방에게 시집보내겠다고 집안에 알렸더니 아내가 버럭 했다.

 

-패현 현령이 중매를 넣었을 때도 거절해놓고 어디 이름도 없는 나부랭이한테 보낸단 말입니까?

 

여씨 집안은 나름대로 재산 규모가 있었던 반면 유방은 주막집에서도 줄곧 외상술만 마셨던 형편이었다. 결국 여치는 아버지의 뜻을 따랐고 유방과의 슬하에 두 명의 자식을 두었다. 진섭의 난을 시작으로 진(秦)나라에 반기를 든 무리들이 천하에서 일어날 때 유방도 합류하기에 이르렀다. 이때부터 여치는 유방과 헤어져 갖은 고생을 했다. 유방과 항우의 접전이 계속 되었을 때는 항우 진영에 포로로 잡히기도 했다. 여치의 집안에서는 위기에 몰린 유방을 돕기 위해 새로 병사들을 모집하여 유방의 전력을 보충해 주기도 했다.

항우를 물리치고 유방이 천자의 자리에 올랐고 아들 혜제가 태자가 되었다. 공을 세운 신하들을 논공행상하는 과정에서 여치는 장차 한나라에 위협이 될 수 있는 대신들을 없애는데 적극적으로 나섰다. 유방이 전장에서 함께 고생했던 한신을 차마 처단하지 못하고 망설였는데 여치가 나서서 해결해버렸다. 반란을 평정하기 위해 궁에서 떠나 있었던 유방은 이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못했다.

반란의 전장에서 빗나간 화살을 맞은 유방은 결국 병석에 눕고 말았다. 병세는 호전되지 못하고 점점 악화되었다. 결국 목숨이 경각에 이르자 여치는 유방의 병석에서 물었다.

 

-폐하가 돌아가시고 소하가 죽으면 누가 대신합니까?

 

-조참이 할 수 있소

 

-그 다음 사람은 누구입니까?

 

-왕릉이 할 수 있소. 그러나 왕릉은 고지식한 면이 있으니 진평이 그를 돕도록 하는 것이 좋소.

 

천하를 차지하기 위하여 안팎으로 협력했던 부부에게 사후 권력의 향방은 목숨 연장보다 중요한 결정사안이었다. 고조의 뒤를 이어 혜제가 천자가 되었다. 하지만 혜제는 결국 여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혜제의 아들은 너무 어리고 유방에게는 혜제 외에도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다. 다른 유씨들에게 이 권력을 넘길 것인가. 여치는 혜제의 빈소에서 마른 곡소리에 눈물 한 방울 떨어뜨리지 않았다. 여치의 서슬에 안절부절 못한 승상이 여씨 집안사람들에게 전권을 준다는 통보를 받은 다음에야 안심하고 눈물을 흘렸다.

부부로서 이들은 일개 평민이 천자가 되는 과정에서 생사고락을 함께 한 동지였다. 그들의 천하는 이전에 제후들이 나눠가지는 봉건체제가 아니라 천자에게 집중되는 중앙집권체제였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일심동체가 되어 권력을 장악했다. 하지만 부부의 인연에서는 세드엔딩 이었다. 유방이 척씨 부인을 총애하고 그 소생을 태자로 만들려는 바람에 둘의 관계는 파탄이 났고 자식들도 결국 여치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천하 백성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유씨와 여씨가 구중궁궐에서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하는 동안 온 천하는 드디어 전쟁의 구렁텅이에서 벗어나 백성들도 살만한 시절을 맞이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던 이들의 부창부수야말로 결과적으로 천하가 평탄해지는 해피엔딩에 이르게 하는 동력이었던 셈이다.

 

 

부부사이의 덕목을 가리키는 부창부수의 원뜻은 남편이 주장을 하면 부인은 순종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요즘 이 사자성어는 부부가 서로 뜻을 맞춰 관계를 이어가는 모습을 가리키는 말로 바뀌었다. 위에서 살펴본 로맨스와도 일맥상통한다. 그렇다면 애초에 남편의 뜻에 아내는 무조건 따라야 한다는 도리는 없었던 것은 아닐까. 중요한 것은 처한 상황에 따라 협력으로 대처해나가는 방법이다. 그 과정에서 부부의 역할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차별도 엄연히 존재한다. 일터에서 여성이 겪는 차별이나 집안에서 육아와 관련해 아내에게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하는 분위기도 여전하다. 하지만 이 차별을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에서는 협력보다는 대립의 기운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까.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벌어지는 별별로맨스에서도 일방적인 복종이 아니라 쌍방향의 협력이 해피엔딩으로 이어졌다. 그러자면 일단 만나기라도 해야 할 터인데 저마다 홀로를 외치는 이 시절이 하 수상하다.

 

 

 

 

댓글 2
  • 2020-01-29 15:26

    그럼 미팅이라도 잡아볼까요? ㅋㅋ

  • 2020-01-30 09:13

    고전 속의 부부? 연애? 이야기 재밌습니다.
    그리고 기린샘의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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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2020.01.28 | 조회 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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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재 읽기 사기-인생극장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야?” 회의 할 수 있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는 최종 결정단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정 사안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 시간부터 잡아야 한다. 그 사안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데, 한 번의 회의로 결정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혀 가는데 이게 쉽지 않다. 서로 오가는 말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감응이 일어날 리 없고 회의 시간은 점점 피곤해지기 일쑤다. 『사기』에도 수많은 대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조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많은데, 이 때 빛을 발하는 것은 말 잘 하는 신하들의 활약이다. 물론 그 말들이 모두 나라의 안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속사정을 따져보면 각자의 실리를 좇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들은 장차 닥쳐올 파국을 막게 되는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초래하는 감응의 대화, 어떤 말들이 오고갔던 것일까.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魏王)은 술을 좋아하여 밤새 술 마시기를 즐겨하는가 하면 나랏일은 나 몰라라 하는 위인이었다. 그러자 신하들도 그에 발맞춰 흥청망청하니 나라의 안위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형국이었다. 그런 어느 날 위왕이 순우곤이라는 신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고가는 잔에 술이 오른 왕은 순우곤에게 말했다. -그대는 주량이 어찌 되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있는 시간이 언제야?” 회의 할 수 있는 시간을 잡기 위해서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는 최종 결정단위가 따로 없다. 그래서 결정 사안이 생기면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회의 시간부터 잡아야 한다. 그 사안에 관심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참석할 수 있는데, 한 번의 회의로 결정 나는 경우가 거의 없다. 횟수를 거듭하면서 서로의 의견 차이를 좁혀 가는데 이게 쉽지 않다. 서로 오가는 말에서 좀처럼 접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감응이 일어날 리 없고 회의 시간은 점점 피곤해지기 일쑤다. 『사기』에도 수많은 대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조정에서 오가는 대화가 많은데, 이 때 빛을 발하는 것은 말 잘 하는 신하들의 활약이다. 물론 그 말들이 모두 나라의 안위를 위한 것은 아니다. 속사정을 따져보면 각자의 실리를 좇을 때가 더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말들은 장차 닥쳐올 파국을 막게 되는 결정적 변화를 이끌어낸다. 변화를 초래하는 감응의 대화, 어떤 말들이 오고갔던 것일까. 위왕과 순우곤의 대화   전국 시대 제(齊)나라 위왕(魏王)은 술을 좋아하여 밤새 술 마시기를 즐겨하는가 하면 나랏일은 나 몰라라 하는 위인이었다. 그러자 신하들도 그에 발맞춰 흥청망청하니 나라의 안위가 점점 위태로워지는 형국이었다. 그런 어느 날 위왕이 순우곤이라는 신하와 함께 술을 마시게 되었다. 오고가는 잔에 술이 오른 왕은 순우곤에게 말했다. -그대는 주량이 어찌 되오? -신은 한 말을 마셔도 취하고 한 섬을 마셔도...
기린
2019.11.12 | 조회 505
지난 연재 읽기 사기-인생극장
 도행역시(倒行逆施)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의 인물인 오자서가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는 부모형제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잊지 않고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원수의 시신을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무덤까지 파헤치며 사람이라면 차마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는 어떤 연유로 그 선을 넘었을까? 선을 넘어선 복수란 과연 무엇일까?   무덤을 파헤친 오자서   임금을 받드는 신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바른 말(諫言)을 하는 신하와 아첨하는 말(讒言)을 하는 신하이다. 초(楚)나라 평왕에게도 두 부류가 다 있었다. 비무기는 아첨형이었다. 어느 날, 평왕이 비무기에게 진(秦)나라로 가서 태자의 아내를 맞아 오라는 임무를 내렸다. 비무기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침 진나라의 공주가 미인이라는 정보도 입수했다. 임무 수행 길에 올랐던 말머리를 돌려 평왕 앞에 다시 섰다.   -소신이 알아보니 진나라의 공주는 빼어난 미인이라 합니다. 며느리로 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왕비로 맞이하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아내를 얻어주십시오.   평왕으로 말하자면 미인을 마다할 인물은 아니었다. 당장 비무기의 참언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비무기는 임금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평왕이 하루아침에 죽고 태자가 즉위하게 되는 위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비무기는 태자에 대한 비방의 강도를 점점 높여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고해 바쳤다. 그 말을 믿은 평왕은 태자의 사부인 오사를 불러 추궁했다. 간언형인 오사는 강직하게 말했다.   -임금께서는 아첨을 일삼는 하찮은 신하 때문에...
 도행역시(倒行逆施)는 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한다는 뜻이다. 춘추시대의 인물인 오자서가 아버지와 형의 복수를 하면서 나온 말이다. 그는 부모형제가 억울하게 죽은 것을 잊지 않고 오랜 세월을 기다린 끝에 원수의 시신을 훼손하기에 이르렀다. 무덤까지 파헤치며 사람이라면 차마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고 말았다. 그는 어떤 연유로 그 선을 넘었을까? 선을 넘어선 복수란 과연 무엇일까?   무덤을 파헤친 오자서   임금을 받드는 신하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는데 바른 말(諫言)을 하는 신하와 아첨하는 말(讒言)을 하는 신하이다. 초(楚)나라 평왕에게도 두 부류가 다 있었다. 비무기는 아첨형이었다. 어느 날, 평왕이 비무기에게 진(秦)나라로 가서 태자의 아내를 맞아 오라는 임무를 내렸다. 비무기는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마침 진나라의 공주가 미인이라는 정보도 입수했다. 임무 수행 길에 올랐던 말머리를 돌려 평왕 앞에 다시 섰다.   -소신이 알아보니 진나라의 공주는 빼어난 미인이라 합니다. 며느리로 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돌아왔습니다. 전하께서 직접 왕비로 맞이하시고 태자에게는 다른 아내를 얻어주십시오.   평왕으로 말하자면 미인을 마다할 인물은 아니었다. 당장 비무기의 참언을 실행에 옮겼다. 그 결과 비무기는 임금의 환심을 사게 되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었다. 평왕이 하루아침에 죽고 태자가 즉위하게 되는 위험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비무기는 태자에 대한 비방의 강도를 점점 높여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고해 바쳤다. 그 말을 믿은 평왕은 태자의 사부인 오사를 불러 추궁했다. 간언형인 오사는 강직하게 말했다.   -임금께서는 아첨을 일삼는 하찮은 신하 때문에...
기린
2019.09.30 | 조회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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