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9회]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 <돈 컴 노킹(2005)>

띠우
2022-01-17 03:46
318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 (2005)>

 

 

 

1. 퇴물 카우보이, 어머니를 찾아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휴대폰을 사적공간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 다른 입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면 남과는 다른 정도로 공유해야 한다는 사람과 휴대폰을 본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 여섯 명의 생각에서 차이들이 드러났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이 몸의 일부인 젊은 세대라면 당연히 사적공간이라는 쪽이 강하겠지만, 전제가 부부나 가족이 되면 그 경계에 대해 모호한 입장들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만큼 어떤 잘못도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달콤한 말이 여러 매체의 형태로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환상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의 오프닝은 인상적이다. 검은 화면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주인공의 두 눈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광활한 서부에서 말을 타고 사라지는 인물의 모습에 정통 서부극인가 할 찰나에 볼품없고 작은 규모의 영화촬영장이 보인다. 과거 서부극의 인기스타였던 하워드(샘 세퍼드)를 내세워 이제는 한물간 서부극을 찍는 현장인데 주인공이 촬영장을 무단이탈하는 모습이었다. 술과 마약, 돈과 섹스에 둘러싸여 방탕한 삶을 살았던 하워드는 현재 늙고 초라하다. 영화는 하워드의 초점없는 시선과 아름다운 풍경을 어긋나게 보여줌으로써 인물의 고립감을 증폭시킨다. 무책임하게 도망친 그는 30년 동안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던 어머니(에바 마리 세인트)에게 찾아간다.  

 

영화사에서는 계약을 위반한 그를 잡기 위해 서터(팀 로스)라는 인물을 보낸다. 그는 도망친 사람들은 어머니를 찾기 마련이라며 하워드의 발밑까지 추격한다. 중요한 사건은 여기서 시작된다. 하워드에게 다 큰 아들이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는 수 년 전에 한 통의 전화를 받았고 손자의 존재를 알았지만, 그 사실을 하워드에게 전해줄 방법이 없었다. 어머니가 스크랩해둔 사진첩에서 그는 도린(제시카 랭)과 찍었던 한 장의 사진을 발견하는데 한창 잘 나가던 시절에 촬영지에서 찍었던 두 사람의 모습이었다. 어머니를 만나도 이전과 별 다를 바 없이 하워드는 불안해하며 카지노에 들러 술을 마시고 폭력적인 행동을 한다. 그는 그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길을 나설 수밖에 없어 도린과 아들이 있다는 몬태나 주의 뷰트로 향한다. 영화는 하워드가 자신을 구원해줄 누군가를 찾아 헤매는 일종의 로드무비다. 

 

2. 난 그런 여자가 아니야

 

그런데 하워드에게는 아들 얼(가브리엘 만)뿐만 아니라 딸인 스카이(사라 폴리)도 있었다. 서부극이 부흥하면서 한창 영화촬영지로 북적거렸던 뷰트는 그들 모두의 과거와 연결된 도시다. 물론 하워드는 그녀의 존재도 모른다. 스카이의 어머니는 혼자 아이를 낳아 키웠고, 아버지의 존재를 따뜻한 이야기로 남겨주었다. 스카이는 아버지 사진을 보며 그리움을 달래곤 했는데 어머니의 죽음 이후 부모가 맺어졌던 도시 뷰트에 왔다. 비슷한 시기에 도린은 뷰트에서 얼을 낳았고 아버지란 존재에 대해 자세한 설명없이 살아왔다. 서부극의 쇠퇴와 함께 이 도시도 소외되며 쇠락해갔다. 그러나 영화 속에 등장하는 화면의 색감은 더할나위 없이 아름답고 그로 인해 사람들의 공허한 뒷모습은 더 쓸쓸하게 그려진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고 나서 그들 모두는 한 자리에 모여들었다. 

 

 

태어나 하워드를 처음 마주한 아들과 딸의 태도는 사뭇 다르다. 얼은 불안한 행동으로 그에게 폭력을 휘두르며 적대적이다. 반면 딸은 반짝반짝하는 눈빛에 그리움을 가득 담아 그에게 먼저 말을 걸고 뷰트에서 가정을 꾸리라고 조언한다. 또 이복형제인 얼에게도 따뜻하게 아버지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데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모습으로, 스스로도 현실보다는 꿈이 좋다고 말한다. 자신이 사진을 보면서 키워왔던 아버지의 이미지를 사랑하는 모습이랄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도린이 있다. 그녀는 쿨하게 하워드를 대한다.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해 아들에게 모욕적인 말을 듣지만 자신이 무책임했던 부분은 감내하고 사실을 전한다. 막무가내 하워드에, 현실감각 떨어지는 스카이에, 아버지와 판박이로 보이는 얼까지 엉망진창이다. 하지만 도린이란 존재만으로도 이 영화는 다시 볼 만 했다.

 

얼이 2층에서 창밖으로 집어던진 소파에 앉아서 한참동안 생각에 빠졌던 하워드는 아침 일찍 도린을 찾아간다. 그는 자신이 만든 불행의 연속을 끝내는 방법으로 도린에게 가정을 꾸리자고 제안한다. 자기가 아들이 아닌 도린을 찾아온 것임을 이제 막 깨달았다고. 기막힌 전개다. 모든 상황에 침착했던 도린이 그 순간 불같이 화를 낸다. 자기 실패나 공허감을 마주하지 못하고 가족의 뒤로 숨어버리려는 하워드에게 겁쟁이라고 욕하며, 시간이 흐르면 옛일은 잊혀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세상 어딘가에 헌신적인 여자가 있다고 믿느냐고, 그 역할을 자신에게 해달라는 거냐고 묻는 도린. “난 그런 여자도 아니고 그렇게 될 일도 없어”라고 외친 후 그녀는 자기 길을 가버린다. 하워드는 잠시 그녀를 따라가다가 이내 우왕좌왕한다. 그가 정착할 곳은 여기도 아니다.

 

 

 

3. 다시 길 위에서 시작이다

 

도린과 헤어지고 술을 마시다 차에서 잠든 하워드를 서터가 마침내 찾아낸다. 그는 영화 <서부의 유령>의 계약 위반 통지서를 들이밀며 촬영장으로 끌고 가려고 한다. 영화 제목 한 번 그럴 듯하다. 그러나 이제 서부유령 하워드에게 서터의 등장은 반가울 지경이다. 마침내 이곳을 떠날 이유가 생겼다. 황량한 미국 서부를 가로질러 과거를 향해 먼 길을 왔던 하워드는 가족을 만났지만, 이것도 하나의 일탈로 끝나버린다. 현재를 살아가기에는 그가 여전히 과거의 겁쟁이에 머물러있기 때문이다. 어딘가 존재할지 모르는 구원의 빛을 향해 길을 떠나는 인물들은 빔 벤더스 영화의 주요한 모티브다. 1984년 발표했던 <파리 텍사스>의 주인공 트레비스가 그러했듯이, 2006년의 하워드도 과거의 자신과 마주하지 못하고 길 위로 다시 나선다.

 

하워드는 각박하고 고독한 현실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지만 과거를 벗어나지도 못하고 현재를 마주하지도 못한다. 계속 회피하고 과거도 현재도 아닌 불완전한 경계선에서 살면서 암담한 미래를 예감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타나 자신의 문제들로부터 자기를 구원해줄 것이라는 것은 지독한 환상이다. 특히나 모성신화와 같이 여성을 사랑과 포용을 갖춘 환상적인 구원자로 바라보는 시선은 더 이상 효과가 없다. 그러나 오히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다. 때로는 종교가, 공부가, 이성이 그리고 말 그대로 가족이 우리의 문제에 답을 던져줄 수도 있다. 다만 그것들이 하나의 진리처럼 오지는 않을 것이다. 똑 떨어지는 답을 찾기 어려운 우리 삶에서 ‘~때문에’라는 말이 정답인 경우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부부이기 때문에, 부모이기 때문에 무조건이라는 말들은 실제 삶 속에서 모순이 될 때가 많다. 전혀 그렇지 않은 사인데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는 삶이란 얼마나 숨 막히겠는가.

 

 

“과거는 흘러갔고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다. 삶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니 여기 있는 것은 현재 뿐이고, 이게 내가 말해줄 수 있는 전부구나”

 

이것은 같은 해 개봉되었던 짐 자무쉬의 영화 <브로큰 플라워>에 나오는 대사다. 주인공 돈(빌 머레이)도 하워드와 비슷한 삶을 살았던 인물로, 어느날 다 큰 아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들일지 모르는 청년에게 들려준 말로, 감독은 이것이 사람이 살면서 배울 수 있는 유일한 철학인 것 같다고 말했다.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순간에 자신의 존재를 느끼면서 살고 싶다는 그의 말은 늘 깨어있겠다는 다짐같다. 깨어있다는 것은 고집하지 않는 것일 수도 있겠다. 앞서 휴대폰을 두고 나눈 이야기는 생각보다 꽤 길어졌다. 그리고 차이가 느껴지는 만큼 내가 찾은 답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고는 볼 수 없었다. 이제껏 살아온 방식이더라도,  현재의 상황 안에 좀더 집중하고 귀기울인다면 작은 변화가 생길 수 있다. 그것을 가능성으로 남겨둔다면, 현재의 삶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영화는 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의 뒷모습으로 끝난다.  다시 길을 나서는 사람들의 여정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자신이 원하지 않거나 예상치 못한 만남이라도 그 자리에 멈춰 주저 앉지 않는다면 새로운 삶의 길은 계속될 것이다. 

 

댓글 6
  • 2022-01-17 10:51

    영화 한편 다 본것같네요. 어찌나 스무쓰하게 장면들을 넘기는지...다음 영화 보고 싶네요. 서부의 유령을~ 찍었을까? ㅎㅎ

    그런데 하워드는 굳이 말하자면 과거형이 아니라 미래형인듯한 느낌~~

  • 2022-01-21 00:43

    이 영화를 예전에 필름이다 X 영화인문학 구성으로 본 게 기억납니다.

    글을 읽으면서 저 역시도 그 장면들이 스쳐지나갑니다. 

     

  • 2022-01-21 09:07

    영화를 보다 보면 아이의 존재를 아이 아빠에게 알리지 않고 혼자 낳아 키우는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그렇게 자라난 아이들은 아빠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할까.

    이 영화에 나온 아들과 딸을 보았을 때도 그런 감정들이 보였습니다. 갑자기 나타난 아버지에 대한 분노와 연민이, 정리되지 않은 감정들이 과연 자식들만의 몫인가. 그것에 대해 파고들어 보는 것도 필요하겠다 싶습니다.

    창문으로 집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을 던져 버리던 아들의 분노가 기억나는 영화였습니다. 글은 띠우샘의 또다른 창작품이네요. 잘 읽었어요~~ ㅋㅋ

  • 2022-01-21 09:26

    요즘 영화 한 편이 절실? 그리웠는데..^^ 

  • 2022-01-21 15:04

    2020년 7월 필름이다  상영작이었죠.

    토용님 딸 문정이가 후기를 썼었어요.

    저도 이 영화, 진짜 재밌게 봤구, 수수님처럼 아들 얼이 창밖으로 티비, 소파 등을 마구 던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죠. 하지만 더 기억에 남는 장면은 밖에 던져진 소파 위에서 마구 춤을 추던 아들의 애인. ㅋㅋㅋㅋㅋㅋ

     

    그 때 저의 20자평은 "찌질 중년남성, 동서가 따로 없다" 였어요. ㅋ

  • 2022-01-21 23:33

    읽으면서 어디서 많이 본듯한 이야기다 싶었는디 ㅋㅋ

    같이 봤던 영화네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울의 시대, 더욱 필요한 웃음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장 피에르 주네, 마르크 카로 감독     웃음은 강장제이고, 안정제이며, 진통제이다. Laughter is the tonic, the relief, the surcease for pain - 찰리 채플린   만화적 상상력을 스크린에 담다 1974년, 장 피에르 주네는 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감각적이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마르크 카로와 처음 만났다. 둘은 함께 독특한 CF촬영과 단편을 찍으며 영화적 감각을 익혀나갔고,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를 만나면서 그 만화적 상상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이 힘을 합쳐 만든 첫 작품이 바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1990년 도쿄영화제 영시네마상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영화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일본만화원작). 그런데 실제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포스터만 보고 당시 유행하던 컬트영화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컬트영화는 금기에 도전하고 논리를 파괴하면서 기성세대를 비웃고 관객의 기대도 위반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기존의 표현방식과 다르긴 하지만, 컬트로 보기에는 영상이나 인물들의 표현이 너무나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거기에 감독의 독특한 유머코드까지 들어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델리카트슨’은 햄이나 소세지, 치즈 등을 파는 가게를 말하는데, 영화에서는 인육을 파는 정육점 건물의 이름이다. 세상은 핵전쟁 이후에 심각한 식량난으로...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울의 시대, 더욱 필요한 웃음 <델리카트슨 사람들(1991)> 장 피에르 주네, 마르크 카로 감독     웃음은 강장제이고, 안정제이며, 진통제이다. Laughter is the tonic, the relief, the surcease for pain - 찰리 채플린   만화적 상상력을 스크린에 담다 1974년, 장 피에르 주네는 한 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감각적이고 기괴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마르크 카로와 처음 만났다. 둘은 함께 독특한 CF촬영과 단편을 찍으며 영화적 감각을 익혀나갔고, 촬영감독 다리우스 콘지를 만나면서 그 만화적 상상력을 더욱 발휘할 수 있게 된다. 이들이 힘을 합쳐 만든 첫 작품이 바로 <델리카트슨 사람들>이다. 이 영화는 1990년 도쿄영화제 영시네마상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영화계의 관심을 불러일으켰다(일본만화원작). 그런데 실제 내용은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포스터만 보고 당시 유행하던 컬트영화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컬트영화는 금기에 도전하고 논리를 파괴하면서 기성세대를 비웃고 관객의 기대도 위반하는 것이다. 물론 이 영화가 기존의 표현방식과 다르긴 하지만, 컬트로 보기에는 영상이나 인물들의 표현이 너무나 아름답고 몽환적이며 거기에 감독의 독특한 유머코드까지 들어있다.   제목에 등장하는 ‘델리카트슨’은 햄이나 소세지, 치즈 등을 파는 가게를 말하는데, 영화에서는 인육을 파는 정육점 건물의 이름이다. 세상은 핵전쟁 이후에 심각한 식량난으로...
띠우
2022.02.14 | 조회 32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영화를 '듣는다'는 것 <스코어 : 영화음악의 모든 것  SCORE: A Film Music Documentary>(2016)           M본부의 <출발, 비디오여행>은 1993년에 시작됐으니, 그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영화소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요즘엔 ‘비디오’로 영화를 보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영화소개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건 옛날 사람들이다. 반면 라디오는 매체의 특성상 영화에서 흘러 나왔던 음악을 중심으로 영화를 소개한다. 1998년에 시작된 CBS의 <신지혜의 영화음악>은 영화음악 방송의 초장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유튜브’가 대세인 요즘 영화를 영상이 아닌 음악으로 소개하는 건 어쩐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신영음>이 20년 이상, 지금도 여전히 애청된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이 시간이 방송을 듣는 사람들에게 아지트같이 편안하고 아늑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잠시 숨어 영화음악으로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요.” 진행자인 신지혜 아나운서의 말이다. 결국 영화를 ‘듣는다’는 건 아지트에 숨어들어야 찾을 수 있는 나만의 또 다른 영화감상법이다. 영화에서 사운드트랙(soundtrack)이라는 말은 영화에 쓰이는 모든 ‘소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 상우(유지태)가 녹음하는 자연의 소리도 은수(이영애)가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이 아니라 영화에 삽입되었다면 그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된다. 그러나 좁은 범위에서는 영화에 흐르는...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영화를 '듣는다'는 것 <스코어 : 영화음악의 모든 것  SCORE: A Film Music Documentary>(2016)           M본부의 <출발, 비디오여행>은 1993년에 시작됐으니, 그 역사를 자랑하는 대표적인 영화소개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요즘엔 ‘비디오’로 영화를 보는 사람은 당연히 없을뿐더러, 영화소개 프로그램을 ‘텔레비전’으로 보는 건 옛날 사람들이다. 반면 라디오는 매체의 특성상 영화에서 흘러 나왔던 음악을 중심으로 영화를 소개한다. 1998년에 시작된 CBS의 <신지혜의 영화음악>은 영화음악 방송의 초장수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유튜브’가 대세인 요즘 영화를 영상이 아닌 음악으로 소개하는 건 어쩐지 시대에 뒤떨어진 것 같아 보인다. 그럼에도 <신영음>이 20년 이상, 지금도 여전히 애청된 이유도 분명 존재한다. “이 시간이 방송을 듣는 사람들에게 아지트같이 편안하고 아늑한 시간이었으면 좋겠어요. 잠시 숨어 영화음악으로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요.” 진행자인 신지혜 아나운서의 말이다. 결국 영화를 ‘듣는다’는 건 아지트에 숨어들어야 찾을 수 있는 나만의 또 다른 영화감상법이다. 영화에서 사운드트랙(soundtrack)이라는 말은 영화에 쓰이는 모든 ‘소리’를 지칭하는 말이다. 예를 들어, 영화 <봄날은 간다>(2001)에서 상우(유지태)가 녹음하는 자연의 소리도 은수(이영애)가 진행하는 라디오프로그램이 아니라 영화에 삽입되었다면 그 영화의 사운드트랙이 된다. 그러나 좁은 범위에서는 영화에 흐르는...
청량리
2022.01.30 | 조회 311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 (2005)>       1. 퇴물 카우보이, 어머니를 찾아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휴대폰을 사적공간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 다른 입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면 남과는 다른 정도로 공유해야 한다는 사람과 휴대폰을 본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 여섯 명의 생각에서 차이들이 드러났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이 몸의 일부인 젊은 세대라면 당연히 사적공간이라는 쪽이 강하겠지만, 전제가 부부나 가족이 되면 그 경계에 대해 모호한 입장들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만큼 어떤 잘못도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달콤한 말이 여러 매체의 형태로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환상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의 오프닝은 인상적이다. 검은 화면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주인공의 두 눈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광활한 서부에서 말을 타고 사라지는 인물의 모습에 정통 서부극인가 할 찰나에 볼품없고 작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 (2005)>       1. 퇴물 카우보이, 어머니를 찾아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휴대폰을 사적공간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 다른 입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면 남과는 다른 정도로 공유해야 한다는 사람과 휴대폰을 본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 여섯 명의 생각에서 차이들이 드러났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이 몸의 일부인 젊은 세대라면 당연히 사적공간이라는 쪽이 강하겠지만, 전제가 부부나 가족이 되면 그 경계에 대해 모호한 입장들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만큼 어떤 잘못도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달콤한 말이 여러 매체의 형태로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환상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의 오프닝은 인상적이다. 검은 화면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주인공의 두 눈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광활한 서부에서 말을 타고 사라지는 인물의 모습에 정통 서부극인가 할 찰나에 볼품없고 작은...
띠우
2022.01.17 | 조회 318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카메라로 드러나는 질문의 태도 | 킬링필드, The Killing Fields | 롤랑 조페 감독 | 1984             영화 <킬링필드>는 1973년 캄보디아에서 시작합니다. 인접한 베트남에서 전쟁에 패한 미국이 막 철수할 무렵이었죠. 그로 인해 미국의 지원을 받던 캄보디아 ‘론 놀’정권의 세력도 약해지고, 론 놀 역시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즈’가 무정부 상태의 캄보디아를 장악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자 시드니(샘 워터스톤)는 급박한 캄보디아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수도 프놈펜으로 날아갑니다. 공항에서 그를 기다리는 현지통역인 겸 기자인 프란(행 S. 응고르)은 비행기가 연착되고, 지프차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합니다. 그의 예상대로 그날, 크메르 루즈군을 섬멸하기 위한 폭격이 미국의 잘못으로 인해 엉뚱한 곳으로 폭탄이 투하되고 수 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왼쪽이 시드니, 오른쪽이 프란   다음 날 두 사람은 함께 사건현장으로 달려가려하지만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미군의 방해로 미군 헬기를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기자라고, 기자!!” 물론 소용없습니다.시드니는 미군 대령에게도, 프란에게도...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카메라로 드러나는 질문의 태도 | 킬링필드, The Killing Fields | 롤랑 조페 감독 | 1984             영화 <킬링필드>는 1973년 캄보디아에서 시작합니다. 인접한 베트남에서 전쟁에 패한 미국이 막 철수할 무렵이었죠. 그로 인해 미국의 지원을 받던 캄보디아 ‘론 놀’정권의 세력도 약해지고, 론 놀 역시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즈’가 무정부 상태의 캄보디아를 장악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자 시드니(샘 워터스톤)는 급박한 캄보디아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수도 프놈펜으로 날아갑니다. 공항에서 그를 기다리는 현지통역인 겸 기자인 프란(행 S. 응고르)은 비행기가 연착되고, 지프차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합니다. 그의 예상대로 그날, 크메르 루즈군을 섬멸하기 위한 폭격이 미국의 잘못으로 인해 엉뚱한 곳으로 폭탄이 투하되고 수 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왼쪽이 시드니, 오른쪽이 프란   다음 날 두 사람은 함께 사건현장으로 달려가려하지만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미군의 방해로 미군 헬기를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기자라고, 기자!!” 물론 소용없습니다.시드니는 미군 대령에게도, 프란에게도...
청량리
2022.01.03 | 조회 29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과 각성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68혁명의 분위기는 영화계 안에도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혁명주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년저항문화, 여성해방운동, 반전, 풀뿌리운동 등 차이와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마이너 영화들과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7,80년대를 지나면서 관습에 대항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장착한 세계 각국의 작품들이 영화계에 영향을 주게 되자 할리우드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왜냐하면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국제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문명과 야만, 세대와 인종 등의 대립구도로는 미국이 원하는 영화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세계최강을 목표로 미국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할리우드가 새롭게 내세운 것은 비인간세계, 바로 SF의 세계다. 우주에 대해 무지했던 인간들에게 우주생명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가져와 그들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그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미지와의 조우(1977)>, <스타트랙(1979)>등 연이어 SF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제작비의 35배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개봉되었던 1982년, 또...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당신은 왜 인간입니까   리들리 스콧  감독의 <블레이드 러너> Blade Runner, 1982   - 저주받은 걸작, <블레이드 러너>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성과 각성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뒤흔들었던 68혁명의 분위기는 영화계 안에도 새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학생들이었던 혁명주체들이 사회에 진출하면서 청년저항문화, 여성해방운동, 반전, 풀뿌리운동 등 차이와 다양성을 이야기하는 마이너 영화들과 전위적인 작품들을 선보여 주목받았다. 7,80년대를 지나면서 관습에 대항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장착한 세계 각국의 작품들이 영화계에 영향을 주게 되자 할리우드도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해졌다. 왜냐하면 미국은 베트남전쟁으로 국제적인 거짓말쟁이가 되었기 때문이다. 더이상 문명과 야만, 세대와 인종 등의 대립구도로는 미국이 원하는 영화적 설득력을 얻을 수 없게 되었다. 다시 세계최강을 목표로 미국은 새로운 적을 만들어야 했던 것이다.     이때 할리우드가 새롭게 내세운 것은 비인간세계, 바로 SF의 세계다. 우주에 대해 무지했던 인간들에게 우주생명체에 대한 공포와 불안을 가져와 그들을 물리칠 강력한 힘을 갖고 싶은 욕망을 불러온다. 그 존재들에 대한 상상력을 마구 불러일으키는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1968)>, <미지와의 조우(1977)>, <스타트랙(1979)>등 연이어 SF영화들이 제작되었다. 그리고 제작비의 35배 이상의 수입을 기록한 스티븐 스필버그의 <ET>가 개봉되었던 1982년, 또...
띠우
2021.12.19 | 조회 3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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