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감성기르기 프로젝트 #15 <올갱이, 올갱이국>

토토로
2023-11-0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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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괴산,  올갱이

충청북도는 한반도 내륙에 위치하여 바다와는 거리가 멀다. 따라서 충청도라도 할지라도 서해쪽 충청도와 달리 충북엔 해산물 문화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대신 적당한 높이의 산을 끼도 도는 하천이 많고 물이 맑아 민물 어류는 꽤 즐겨 먹는 걸로 안다. 그 중에서도 오늘 소개 할 ‘다슬기’는 충북민들, 특히 괴산 일대 사람들이 특히 좋아하는 식재료이다. 아! 괴산 사람들은 절대(!) 다슬기라고 부르지 않는다. 올갱이! ‘올갱이’라 부른다. 괴산을 떠나 사 오십년 가까이 서울 살이 하는 우리 고모들도 지금까지도 하나 같이 다슬기 대신 올갱이라고 한다.

 

올갱이는 깨끗하고 시원한 하천, 흐르는 물 밑에 깔린 돌덩이에 달라붙어 산다. 올갱이를 얻으려면 허리를 굽혀서 물 속을 잘 살펴야하니 구하는데 품이 많이 든다. 특히 요즘은 예전과 달리 물이 더러워져서 올갱이가 많지 않다. 하지만 아직은 올갱이를 구할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올갱이 먹는 법은 다양하지만 주로 삶아서 알맹이를 쏙 빼낸 뒤 그걸 된장국에 넣어 끓인다. 올갱이가 간에 좋다, 빈혈에 좋다, 해장에 좋다 등등 별 말이 많은데, 나로선 그런 건 모르겠고 올갱이국이 손 꼽히는 ‘진국’이라는 것은 장담할 수 있다. 그야말로 개운, 시원, 든든!

 

 

 

2. 추석, 올갱이국

나는 올갱이를 잡을 곳 없는 청주에서 자랐지만, 괴산 출신인 엄마의 영향으로 일 년에 두세 번쯤은 올갱이국을 먹을 수 있었다. 온가족이 모이는 날, 몸이 많이 아픈 날엔 올갱이국이 식탁에 올라왔다. 그러나 청주를 떠난 이후론 일 년에 한번 먹기도 힘들어진 올갱이국이 되었다. 내 손으로라도 끓여먹고 싶지만 올갱이를 어디 가서 산단 말인가! 마트엔 당연히 없고, 괴산 장터? 갈 일이 없다. 검색해 보니 택배로 판매하는 분들도 있긴 하다만...그건 번거롭다.

 

지난 추석엔 엄마는 자식들이 다 모인다는 구실로 오랜만에 한 솥 가~~득하게 올갱이국을 끓여놓았다. 집 된장에 아욱, 부추, 대파와 올갱이 삶은 물, 그리고 올갱이. 그렇게 끓여 낸 올갱이국이 어찌나 맛있던지 손주 녀석들까지 우리 할머니 최고라고 ‘쌍-엄지척’을 해대면서 먹었다. 조금 남은 건 눈치 볼 것도 없이 내가 다 싸왔다. 두 세끼 연달아 먹어도 질리지 않는 올갱이국 이니까...(내가 아껴 먹으려고 싸온 건데 남편이 나 모르는 새 다 먹어 치웠다. 아휴....C)

 

 

3. 힐링 푸드가 되어준 올갱이국

그렇게 추석이 지나고 딱 2주 뒤, 건강했던 엄마는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셨다. 병원에 입원하는 날부터 예감은 좋지 않았다. 매일 지정 면담자로 중환자실을 들락거리고 아파하는 엄마를 보면서 마음이 미어지고, 무서웠다. 엄마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건 좋았지만, 그 대화가 이별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면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올 때면 지하철에서 창피한 줄도 모르고 고개 숙여 울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번개치듯, 정신없이 장례를 치렀다. 몰아치는 일련의 일들로 잠이며, 먹는 거며 형편없어 졌고 장례가 끝나 갈 무렵 나는 감기몸살, 두통, 속쓰림, 허기, 장 트러블로 기진맥진한 상태가 됐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가족들, 이모들, 고모들, 장례를 도운 모든 이들이 다 그랬다.

 

괴산에 있는 가족묘원에 엄마를 묻어드리고 산에서 내려와 우리 모두는 식당에서 올갱이국을 먹었다. 전날 괴산 사는 고모가 올갱이국으로 미리 맞춤 예약을 해 둔 덕분이었다. 집밥 스타일로 차려주는 식당이라 그런지 엄마가 끓여주시던 것처럼 진하고 개운한 올갱이국이었다. 장례식장에서 억지로 꾸역거리며 육개장을 내리 먹다가, 된장으로 끓인 올갱이국을 먹으니 속이 편하고 든든해졌다. 다들 나와 비슷한 상태였는지, 남자들은 물론이고 여자들까지도 올갱이국을 두 그릇씩 배부르게 먹었다. 나도 엄마 잃은 슬픔을 잠시 잊고 먹는 것에 집중했다.

 

누군가 너의 쏘울푸드, 힐링푸드가 뭐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평생 나의 대답은 '올갱이국 입니다' 가 될 것이다.

 

 

 

덧붙임1

-장례식장에 육개장과 올갱이국, 두 가지로 해달라고 요구 했으나 이뤄지지 못했다. 올갱이를 잘못 해감하면 가끔 흙이 섞여 나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쉽다.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올갱이를 공수해서 내 손으로 문탁식구들에게 ‘괴산스타일 올갱이국’을 선보이고 싶다. 그런 날이 꼭 오리라!

덧붙임2

-그 동안 이런저런 핑계로 잠시 멈췄던 '생태감성기르기 프로젝트' 다시 시작합니다.

'올갱이국'이 생태감성기르기랑 상관이 있니? 라고 물으신다면, "네! 상관있습니다" 라고 우기렵니다.

(사진을 찍어두지 못해 모두 퍼왔습니다.)

댓글 10
  • 2023-11-06 07:23

    쏘울푸드 한 그릇에 몸도 마음도 많이 좋아지셨기를 바랍니다.
    저도 올갱이 아욱된장국 먹어봤어요. 돌아가신 시댁 어른들이 옥천에 계시거든요. 지난 달에 시어머니 뵈러 옥천 갔던 길에 올갱이국으로 유명하다는 식당에서 먹었어요. 진짜 엄지척! 토토로샘 말씀에 백퍼 공감입니다^^

  • 2023-11-06 09:29

    지난번 병원에서 우연히 만난 토토로샘의 얼굴이 반쪽이 되서 얼마나 짠했었는지요...
    저도 쌤이 올갱이국을 시작으로 이제 몸도 챙기고 마음도 잘 챙기고 그러시길 바래요.

    그리고 이렇게 생태일지로 돌아오셔서 얼마나 반가운지 몰라요...! ^^
    경상도에서는 고디국인데 저희 집에선 부추 넣고 빨갛게 끊여요. 생각해보니 먹기는 많이 먹고는... 어떻게 끊이는지 한번도 관심을 가져본 적이 없었네요.
    괴산스타일 올갱이국을 맛볼 그날을 기다리며... ㅎ

  • 2023-11-06 17:03

    먹어본 적이 있는지 어떤 지 기억은 잘 안 나지만, 앞으로는 올갱이는 토토로 이야기로 떠오를 거 같아요.
    올갱이 국이 있어서 감사하고, 토토로가 고맙고 그러네요.

  • 2023-11-06 17:20

    토토로샘에게 올갱이국은 쏘울푸드이자,
    엄마의 사랑으로 자리잡겠네요.
    괴산스타일 올갱이국 저도 궁금합니다.

  • 2023-11-06 19:27

    며칠전 양양 도라지네 텃밭 웅덩이에 오글오글하던 그 아이들도 올갱이일까요?
    이젠 올갱이국을 보면 울컥하면서 토토로가 생각날 것 같아요.

    • 2023-11-07 23:18

      네 맞습니다~
      다슬기라고 하는데 올갱이는 충청도 사투리라네요.^^

  • 2023-11-07 07:54

    아, 그렇구나...올갱이국은 토토로와 엄마를 연결해주는 음식이구나.
    그런 음식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운인 것 같아요

  • 2023-11-07 12:48

    올갱이국이라...
    결혼하고 시댁에 갈 때면 자주 옥천에 들러 올갱이국을 샀었어요(토용님이 갔던 곳이 아닐까 싶네요)
    전 낯선 음식이었는데 시할머니께서 참 좋아하셨거든요. 금강근처에서 많이 주워 끓이셨다고 하더라구요.
    결혼하고 시부모님보다 시할머니에게 더 정이 들었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 올갱이국 위로 토토로님이 겹쳐지네요.
    언제고 기회가 되면 같이 한 그릇 해요, 괴산 올갱이국도 맛보고 싶네요~^^

  • 2023-11-07 23:21

    이제 내가 올갱이국 끓여 줄게요!

  • 2023-11-08 22:55

    제 고향에서는 올뱅이라 부릅니다
    저희 친정집 바로 앞도랑에서 올뱅이를 주워 박박 문질러 씻어 삶아낸 국물로 맑은 된장국을 끓여먹어요
    아욱을 넣기도하고 배추를 넣기도 하고
    부추는 꼭 넣어주어야 맛이 납니다
    제게도 소울 푸드까지는 아니지만 고향의 맛이죠
    올뱅이 잡는 고모따라 허벅지까지 잠기는 냇물에서 놀던 날이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