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삼아 걸었다 -19

도라지
2022-05-28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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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으면 생기는 것들에 관하여

 

 

기린쌤과 스륵쌤한테서 내가 매번 거의  같은 코스를 걷는 것에 대한 질문을 받곤 했는데, 비교적 같은 코스를 걷는 행위는 ‘무상’을 감각으로 경험하기 좋은 현장이었다.

불교 공부를 하는 사람으로서 '무상'의 경험을 선명하게 느낄 때마다, 놓치고 살았을 수 있었다는 가정법을 동시에 떠올리며 소름이 돋을 때가 있었다. 식물들의 한살이의 경이와 바람과 소리와 냄새들, 타자들. 나는 그 텍스트들을 한 순간도 동일하지 않게 마주치며 걸어서 통과했다. 울고 웃고 아파하며. 그렇다고 불법을 공부하는 것이 울퉁불퉁한 현실을 잔디밭으로 바꿔주는 기적 같은 시간이라고 말하려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러나 그 자세한 이야기는 안 쓴다... 왜냐하면 나는 지금 에세이를 쓰는 중이기 때문이다. 에세이에 썰을 풀어야 해서 체력을 아끼기로. ㅋ)

 

 

이 일지가 마지막 일지다. 만세!그런데 무슨 말을 할까? 마지막으로 걷기와 발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쳐야겠다.

나에겐 무지외반으로 인해 걸을수록 더 아플 수밖에 없는 왼쪽 발이 있다. 주로 걷는 동안 느껴지던 발의 통증이 이제는 수시로 심해지고 있다. 겁이 나는 것은 계속 걷다가 더 안 좋아져서 외과적 수술을 하는 경우인데 과연 수술 후에도 잘 걸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 여기서 생각을 멈춘다. 일단 아직까지는 견딜만하니 즐겁게 걷고 나중에 고민하자.ㅋ

 

그래서 말인데요. 여러분~ 걷기 생활자 여러분~

걸을 때 신발이 아주 중요합니다. 지난 금요일 씩씩하게 걸어서 문탁에 온 여울아쌤의 신발과 양말을 보고 제가 깜짝 놀랐어요. 쿠션 없는 운동화와 얇은 양말로 걷는 것은 발에 너무 안 좋아요. 저는 발 사이즈가 250인데 운동화는 260으로 신고 양말은 한 여름에도 두꺼운 걸로 착용합니다.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발은 다르겠지만요.

많이 걸은 덕에 ‘조깅 발톱’이라는 질환도 있었어요. 발톱에 피멍이 드는 것인데 그 이후로 운동화 재질을 더 부드러운 것으로 바꿨어요. 발톱도 잘 관리해야 하고, 무게 중심을 잘 잡고 걸어야 합니다. 그러니 자주 걷는 것은 자체로 몸에 많은 변화를 주는 것 같아요. 증상들을 무시하면 통증으로 잘 해석하면 새로운 증상들로 말이죠.ㅋ

 

그동안 일곱 번의 일지를 올렸네요.

귀찮기도 했고 때론 요상한 글 올리면서 부끄러웠지만, 덕분에 한동안 시들하던 걷기에 다시 탄력받았습니다. 머무는 곳마다 걷는 마음으로 살아봅시다. 멈추지 말고.

 

금계국

 

걸으면서 사진 잘 안찍는데, 이번 일지 올리면서 사진이 많아졌다. 

바닥에 주저앉았다가 다시 일어서  걸은 시간이 많았다는 뜻이다. 

사진을 잘 찍는 남편이 가끔 요즘 내가 일리치약국 관련해 찍은 사진들을 보며 칭찬을 더러한다. 

"제법인데! "

나는 대답했다. 

"애정이야." 

잘 찍어주고 싶은 마음. 

 

길바닥도 애정하며 사진을 찍었다. 

 

 

 

 

 

 

댓글 8
  • 2022-05-28 19:55

    맞아요. 잘 들여다 보는 것은 애정이예요~~ 

    매일 같은 길이 무상과 연결되는 것도 깊이 공감되구요. 우리의 일삼아 걷기 일지는 끝나가지만 일상 속에서 걷기는 계속 되겠죠?? 

    그리고 도라지님!! 저 신발 새로 사서 어제부터 새 워킹화신고 있어요. 기존 게 두툼해서 여름용으로 바꿨어요. 걱정마셔요!!

  • 2022-05-29 07:22

    도라지님의 애정하는 마음^^ 늘 와 닿습니다~~ 

  • 2022-05-29 08:02

    나도 그댈 애정해, 알란가 모르겠지만^^

  • 2022-05-29 11:49

    애정하는 마음과 마음이 서로서로 얽히며 공생자행성이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제 애정하는 마음도 한 스푼 떠 넣을께요.

    도라지 걷기일지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 2022-05-29 12:33

    도라지가 어디쯤에서 이 사진을 찍었을까, 짐작이 간다는 사실에 놀랍니다.

    금계국과, 저 멀리 보이는 버드나무와 다리까지, 눈에 익은 길, 우리가 함께 사는 세계군요.^^

    그 세계를 계속 넓혀갑시다!ㅎㅎ

  • 2022-05-31 07:32

    도라지 발이 그렇다는 걸 몰랐어요. 그래도 걸어서 이기는 도라지 쵝오입니다걷기 마라톤이라도 한 번 열어야겠어요. 

    매번 재미있는 글 잘 읽었어요.

     

  • 2022-05-31 15:29

    내가 지난 길을 도라지도 지나갔겠지요?

    근데 내가 못 본 것들, 무심코 지나친 것들이 도라지의 시선엔 포착되는 작고 예쁜 세계를 만나서 좋았던 5월입니다^^.

  • 2022-06-01 23:17

    전 요즘 걸었다 안 걸었다 하는데

    도라지님의 걷기를 보면서 다시 한 번~ 걸어야지 해요ㅋ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