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삼아 걷기-16 그냥 걷기

느티나무
2022-05-26 2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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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길의 걷기

아이들과 읽은 단편 동화에 나오는 "그냥"이라는 말이 내내 생각난다.

나는 걷는 것 마저 "그냥'이 없구나.

이전엔 건강을 위해 운동이 되도록 파워 워킹을 하고

일삼아 걷기를 하면서는  어떤 글을 쓸까를 생각하며 일삼아 걸었다.

오늘 문득 "그냥" 걷기를 하고 싶었다.

어깨에 힘도 빼고 발걸음도 늦추고 천천히 느긋하게...

지는 햇살에 길게 그림자가 먼저 앞서서 걸어가고

바람이 제법 불어 풀들이 이리저리 누웠다 일어났다 한다.

생각이

시큰거리는 무릎으로 발목으로 몸 안을 돌아다니더니

어느새 밖으로 뛰쳐나와 억새풀에 기대어 쓰러져 있는 자전거로

내려 앉는 오리의 펼쳐진 날개 속에 담긴 바람과 저항으로

흐르는 물소리에서 여울로, 여울에서 여울아로,

그리고 내 삶을 숨쉬게 하는 여울은 뭘까로...

옮겨 다녔다.

누군가에겐 삶에 지친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는 길이고

누군가에겐 에세이를 썼다 지웠다 하는 길이고

누군가에겐 아픈 몸을 치유하는 길이기도 한

산책은, 

마음을 가는 데로 내버려 두며  "그냥"  걷는

내 살아가는 인생 길에 산소를 공급해 주는 여울일 터이다. 

 

"산책하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는,

이 세계의 가장 심원한 비밀이 우리 삶의 가장 가까운 표면에 깃들어 있다고 믿는다.

그는 평면에서 무한한 깊이를 길어 올릴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이 땅 위에 스며들어 있는 생명의 시작과 종언에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며, 

우리들의 저 부산한 움직임 속에서 어떤 불편함과 장엄함을 느끼곤 하는 사람이다.

그는 함부로 말하지 않는 사람이고, 사물을 조용히 관찰하는 사람인 것이다.

 그는 세상의 온갖 소란들에 무덤덤하므로 비로소 자신만의 깨우침을 얻을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가 이 공간을 걸어간다는 것과 동떨어진 특별한 '신비'는 없다는 것을......

내가 지금 이 길 위에서 마주치는 것들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있는 '신비는 없다.'

나의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이 순간의 세계'가 곧 신비이며,

그곳을 걷고 있는 나의 육체가 곧 신비이다.

산책길 너머의 수수께끼는 없다.

아니,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수수께끼는 없다."

<산책하는 마음> 212p

 

 

댓글 4
  • 2022-05-27 08:20

    왠지 그냥

    여울아쌤이 댓글을 꼭 달 것 같군요. ^^ㅎ

     

    쌤의 경행을 응원합니다~ 

    • 2022-05-27 11:27

      맞아 맞아 글써야 하는데 참새 방앗간처럼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중~ 

  • 2022-05-27 11:45

    걷는 것이 신비다. 오늘의 한 문장, 마음에 새깁니다.^^

  • 2022-05-28 11:24

    그냥 걷기 그냥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