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바램이 삶이 되려면       최근에는 집 재계약과 전기세, 정원 가꾸기로 매일매일 그룹채팅방이 시끄러웠다. 급한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임의적으로 회의를 만들지만 회의 시간을 잡기란 굉장히 어렵다. 생각보다도 더 12명이 한집에 머무르는 때는 드물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도 금방 바뀌고, 매일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4년이 된 이 셰어하우스에 현재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알론소다. 중앙 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한국보다 더 적은 인구가 사는 코스타리카에서 온 그는 이 도시에서 현대무용 학교를 다닌다. 그는 댄서다.   최근 그의 학교에서는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졸업하는 학년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 알론소는 셰어하우스 톡방에 공연 정보를 공유해줬는데, 티켓 값이 생각보다 비싸 못 가겠군 하던 차였다. 공연 오냐고 묻는 그에게 표 비싸더라 궁시렁대니 무료 티켓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나는 알론소가 댄서라는 사실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한 번도 그가 제대로 춤을 추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입구를 못 찾아 공연 시작 10분 전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머리가 아름답게 센 할머니를 만났다. 굉장히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 할머니도 입구를 못 찾는 중이었다. 같이 입구를 찾고 우여곡절 끝에 입장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할머니는 시야에서 없어졌다. 부랴부랴 좌석에 앉아 놓여있던...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바램이 삶이 되려면       최근에는 집 재계약과 전기세, 정원 가꾸기로 매일매일 그룹채팅방이 시끄러웠다. 급한 문제가 있을 때 우리는 임의적으로 회의를 만들지만 회의 시간을 잡기란 굉장히 어렵다. 생각보다도 더 12명이 한집에 머무르는 때는 드물기 때문이다. 사는 사람도 금방 바뀌고, 매일 다른 일들이 일어나는, 4년이 된 이 셰어하우스에 현재로 가장 오래 산 사람은 알론소다. 중앙 아메리카의 작은 나라, 한국보다 더 적은 인구가 사는 코스타리카에서 온 그는 이 도시에서 현대무용 학교를 다닌다. 그는 댄서다.   최근 그의 학교에서는 한 학년을 마무리하고 졸업하는 학년을 위한 공연을 열었다. 알론소는 셰어하우스 톡방에 공연 정보를 공유해줬는데, 티켓 값이 생각보다 비싸 못 가겠군 하던 차였다. 공연 오냐고 묻는 그에게 표 비싸더라 궁시렁대니 무료 티켓으로 초대를 받게 되었다. 나는 알론소가 댄서라는 사실을 굉장히 좋아했지만, 한 번도 그가 제대로 춤을 추는 걸 본 적이 없었다. 입구를 못 찾아 공연 시작 10분 전에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머리가 아름답게 센 할머니를 만났다. 굉장히 우아한 분위기를 풍겼던 그 할머니도 입구를 못 찾는 중이었다. 같이 입구를 찾고 우여곡절 끝에 입장을 하다보니 어느 순간 할머니는 시야에서 없어졌다. 부랴부랴 좌석에 앉아 놓여있던...
현민
2023.06.17 | 조회 458
문탁의 나이듦 리뷰
공자와 빨치산, 그리고 노회찬 <공자세가> (사마천) &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1. 호국영령과 민주열사라는 호명   지난 6월6일 현충일, 곳곳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위국 정신의 높은 뜻”을 기리는 추념식이 있었다. 순국선열은 주로 독립운동가에게, 호국영령은 주로 6.25 전쟁 전사자에게 붙여지는 명칭이란다. 의문이 생겼다.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속절없이 죽은 젊은이들이 호국영령인가? 이들이 국가를 ‘위해서’ 죽었나? 국가 ‘때문에’ 죽은 게 아니고? 독립운동가의 죽음도 그렇다. 그들도 한 때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을 것이고, 정파 투쟁 속에서(그것 없는 독립운동과 좌파운동은 없다^^) 동지들과 수없는 갈등도 겪었을 것이다. 확신과 회의 사이에서 흔들렸던 적도 여러 번이었을 것이고. 그러나 ‘순국선열’이라는 호명은 삶의 그런 다양한 측면들을 너무 납작하게 만들어버린다.   ‘민주열사’도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노동운동 시절 동지 한 명이 암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50대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 한 친구들이 추도식을 연다고 했다. 뒤늦게 부고를 접한 나도 애도의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여했다.   추도식은 고인의 약력 보고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공식적인 약력은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적 정당운동까지로 뚝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고인은 운동권으로 산 세월보다 생활인으로 산 시간이 더 길었다. 그리고 그 세월은  영예롭기보다는 비루한 쪽에 가까웠다. 경제적인 이유와 성격 차이 등으로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정신없이 사고 치는 사춘기 아들에게 속수무책이었고,  보험 판매원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 같은 생계노동으로 하루하루가 고단하였다. 그 시절 우리...
공자와 빨치산, 그리고 노회찬 <공자세가> (사마천) &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1. 호국영령과 민주열사라는 호명   지난 6월6일 현충일, 곳곳에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숭고한 위국 정신의 높은 뜻”을 기리는 추념식이 있었다. 순국선열은 주로 독립운동가에게, 호국영령은 주로 6.25 전쟁 전사자에게 붙여지는 명칭이란다. 의문이 생겼다. 전쟁에 동원되었다가 속절없이 죽은 젊은이들이 호국영령인가? 이들이 국가를 ‘위해서’ 죽었나? 국가 ‘때문에’ 죽은 게 아니고? 독립운동가의 죽음도 그렇다. 그들도 한 때 사랑과 이별을 경험했을 것이고, 정파 투쟁 속에서(그것 없는 독립운동과 좌파운동은 없다^^) 동지들과 수없는 갈등도 겪었을 것이다. 확신과 회의 사이에서 흔들렸던 적도 여러 번이었을 것이고. 그러나 ‘순국선열’이라는 호명은 삶의 그런 다양한 측면들을 너무 납작하게 만들어버린다.   ‘민주열사’도 다르지 않다. 몇 년 전, 노동운동 시절 동지 한 명이 암으로 급작스럽게 세상을 떴다. 50대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 한 친구들이 추도식을 연다고 했다. 뒤늦게 부고를 접한 나도 애도의 마음으로 그 자리에 참여했다.   추도식은 고인의 약력 보고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공식적인 약력은 학생운동, 노동운동, 진보적 정당운동까지로 뚝 끊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한 고인은 운동권으로 산 세월보다 생활인으로 산 시간이 더 길었다. 그리고 그 세월은  영예롭기보다는 비루한 쪽에 가까웠다. 경제적인 이유와 성격 차이 등으로 아내와 사이가 좋지 않았고, 정신없이 사고 치는 사춘기 아들에게 속수무책이었고,  보험 판매원이나 아파트 관리사무소 소장 같은 생계노동으로 하루하루가 고단하였다. 그 시절 우리...
문탁
2023.06.13 | 조회 754
남어진의 현장분투기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일이 없는 추운 겨울에는 어떤 일이던 마다하지 않고 한다. 일용직 잡부는 당장 내일, 일주일 뒤에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일이 생기면 비가 억수처럼 와도, 한파가 세상을 얼려도 일단 몸을 깨워 나간다. 유독 빠르게 추웠던 올겨울. 2주 동안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매일 160㎞를 운전하며 일터를 오갔다. 총 100평이 넘는 수십 마리의 앵무새 집을 만드는 일이었다. 회장님(?)이라 불리는 건축주는 취미로 앵무새를 키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앵무새에게 더욱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나를 먹여살린 앵무새     2.   앵무새는 매달려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과연 열대 우림에 살던 앵무새들이 3.3㎡ 조금 넘는 감방 같은 개인실을 좋아할까 싶기는 하다. 그래도 우체국 5호 박스만 한 새장에 살다가 큰 집에 살면 좋은 건가.) 그리하여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철망으로 두르는 작업을 사람 네 명이서 1주일이나 했다. ​ 천장에 철망을 두르는 작업이 가장 고역이었다. 3m 높이 천장에는 폭 4㎝의 가느다란 각관*이 다섯 줄 깔려 있고, 내가 그 위에 엎드려 기며 철망을 방수 피스로 고정시켜 나가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철망을...
            글쓴이 남어진​ 밀양에서 작은 목공소를 합니다. 밀양에서 765kV 초고압 송전탑 반대 운동도 하고 있습니다. 먹고 사는 일도, 마음이 사는 일도 어렵고 괴롭다는 생각을 자주 하며 지냅니다.       1.   일이 없는 추운 겨울에는 어떤 일이던 마다하지 않고 한다. 일용직 잡부는 당장 내일, 일주일 뒤에 일자리를 보장받을 수 없는 처지이다. 일이 생기면 비가 억수처럼 와도, 한파가 세상을 얼려도 일단 몸을 깨워 나간다. 유독 빠르게 추웠던 올겨울. 2주 동안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생겨서 매일 160㎞를 운전하며 일터를 오갔다. 총 100평이 넘는 수십 마리의 앵무새 집을 만드는 일이었다. 회장님(?)이라 불리는 건축주는 취미로 앵무새를 키우는 사람이었다. 그는 앵무새에게 더욱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이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지난 겨울 나를 먹여살린 앵무새     2.   앵무새는 매달려 있는 걸 좋아한다고 한다. (과연 열대 우림에 살던 앵무새들이 3.3㎡ 조금 넘는 감방 같은 개인실을 좋아할까 싶기는 하다. 그래도 우체국 5호 박스만 한 새장에 살다가 큰 집에 살면 좋은 건가.) 그리하여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철망으로 두르는 작업을 사람 네 명이서 1주일이나 했다. ​ 천장에 철망을 두르는 작업이 가장 고역이었다. 3m 높이 천장에는 폭 4㎝의 가느다란 각관*이 다섯 줄 깔려 있고, 내가 그 위에 엎드려 기며 철망을 방수 피스로 고정시켜 나가는 일이었다. 어느 정도 철망을...
문탁
2023.06.10 | 조회 495
인문약방 에세이
1. “그리고 다른 부류의 여학생들이 있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가 세고 주관이 뚜렷한 이들. 대차고 까다롭고, ‘집시의 음울함’을 풍기고, 탁월한 지성을 갖추었으나 세심하지 않고, 감성은 공격적이지 온화하지 않으며, 말투와 태도는 냅다 직설적이고, 우아함이나 겸손함 따위는 결여되어 있으며 아슬아슬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사나운 애착」, 비비안 고닉, 202쪽)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늦은 나이에 병원에 취직하여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며 녹록하지 않은 직장 생활을 버텨내는 주인공(차정숙)의 모습이 판타지 같지만은 않아서 공감하며 보고 있다. 나에게 주인공보다 더 눈길이 갔던 인물은 같은 과 선배이자 주인공 아들의 여자 친구 ‘소라’이다. ‘일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이러한 원칙은 후배 교육에서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jtbc. 닥터 차정숙. 인물 소개) 드라마 속 그녀는 주인공의 실수에 직설적인 비난을 쏟아낸다. 그녀의 날카로운 질책은 온 병동에 울리고 이를 보다 못한 남자 친구(주인공의 아들)가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라’고 조언하자 ‘나는 잘하고 있다’며 돌아선다. 드라마의 전개 상 소라는 자신이 그렇게 다그치던 나이 많은 주인공이 남자 친구의 엄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텐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거친 태도를 후회할 것인가? 그 상대가 시어머니인데’. 소라는 그 사실을 알고 잠시 이불킥 하지만 ‘우리가 결혼할 사이도 아니고, 남자 친구의 엄마라고 해서 내가 달라져야하는지’ 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기에 신선했다. 왜 나는 시어머니라고 해서 그녀가...
1. “그리고 다른 부류의 여학생들이 있었다.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기가 세고 주관이 뚜렷한 이들. 대차고 까다롭고, ‘집시의 음울함’을 풍기고, 탁월한 지성을 갖추었으나 세심하지 않고, 감성은 공격적이지 온화하지 않으며, 말투와 태도는 냅다 직설적이고, 우아함이나 겸손함 따위는 결여되어 있으며 아슬아슬하고 혼란스러워 보인다” (「사나운 애착」, 비비안 고닉, 202쪽)     드라마 ‘닥터 차정숙’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늦은 나이에 병원에 취직하여 실수도 하고 좌절도 하며 녹록하지 않은 직장 생활을 버텨내는 주인공(차정숙)의 모습이 판타지 같지만은 않아서 공감하며 보고 있다. 나에게 주인공보다 더 눈길이 갔던 인물은 같은 과 선배이자 주인공 아들의 여자 친구 ‘소라’이다. ‘일에 관해서는 철두철미한 완벽주의자.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며 이러한 원칙은 후배 교육에서 나이 고하를 막론하고 무차별적으로 적용된다’.( jtbc. 닥터 차정숙. 인물 소개) 드라마 속 그녀는 주인공의 실수에 직설적인 비난을 쏟아낸다. 그녀의 날카로운 질책은 온 병동에 울리고 이를 보다 못한 남자 친구(주인공의 아들)가 ‘사람들에게 너그럽게 대하라’고 조언하자 ‘나는 잘하고 있다’며 돌아선다. 드라마의 전개 상 소라는 자신이 그렇게 다그치던 나이 많은 주인공이 남자 친구의 엄마라는 사실을 곧 알게 될텐데 그녀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가 궁금해졌다. ‘그녀는 자신의 거친 태도를 후회할 것인가? 그 상대가 시어머니인데’. 소라는 그 사실을 알고 잠시 이불킥 하지만 ‘우리가 결혼할 사이도 아니고, 남자 친구의 엄마라고 해서 내가 달라져야하는지’ 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예상했던 답이 아니었기에 신선했다. 왜 나는 시어머니라고 해서 그녀가...
천유상
2023.06.07 | 조회 270
인문약방 에세이
  1.모범생 딸의 방황과 탐색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 엄마 입장에서는 27년간 모범생으로 속 한 번 썩이지 않던 딸이 낯설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집안일을 잘 돕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수다를 같이 떨어주고 미주알고주알 묻지 않아도 이것저것 잘 말해주는 딸이었다. 엄마에게 나는 서울의 4년제 대학도 나오고 중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직장도 잘 다니는 딸이기도 했다. 그러던 딸이 갑자기 주중에는 무역회사에서 퇴근하고 술 마시느라 연락도 없이 밤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하거나, 주말에도 2030등산동호회를 다니느라 또 집에 붙어있질 않으니, 엄마는 딸이 방황하고 있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빠는 모두 엄마 탓을 해대는 통에 엄마는 이중고를 겪었다.     엄마의 이런 마음은 고려하지도 않고 나는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라는 엄마 말을 듣고 그동안 애써 유지해오던 가면을 이제야 깬 것 같아서 시원하고 통쾌했다. ‘나는 나래가 공부 못 할 줄 알았는데, 곧잘 하네.“ 중학교 1학년 때쯤 아빠가 엄마에게 말을 듣고나서 나는 줄곧 반 1등의 모범생 모드를 약간의 압박을 느끼면서도 편하고 즐겁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시험 때 잠깐의 벼락치기가 아닌 1년을 공부해야 하는 고3때 나는 오히려 한,중,일 드라마에 빠지고 친구들을 꼬여내어 노래방에서 놀며 보내다 당연히 명문대는커녕 서울의 4년제 대학에 겨우 붙었다. 딱히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재수는 하기도 싫었으면서, 당연히 돌아온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가장 불만족스러워했다.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를...
  1.모범생 딸의 방황과 탐색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 엄마 입장에서는 27년간 모범생으로 속 한 번 썩이지 않던 딸이 낯설었을 것이다. 나는 엄마의 집안일을 잘 돕지는 않았지만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수다를 같이 떨어주고 미주알고주알 묻지 않아도 이것저것 잘 말해주는 딸이었다. 엄마에게 나는 서울의 4년제 대학도 나오고 중국으로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직장도 잘 다니는 딸이기도 했다. 그러던 딸이 갑자기 주중에는 무역회사에서 퇴근하고 술 마시느라 연락도 없이 밤늦게 들어오거나 외박을 하거나, 주말에도 2030등산동호회를 다니느라 또 집에 붙어있질 않으니, 엄마는 딸이 방황하고 있다고 느꼈다. 더군다나 내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아빠는 모두 엄마 탓을 해대는 통에 엄마는 이중고를 겪었다.     엄마의 이런 마음은 고려하지도 않고 나는 ‘이건 내가 알던 딸이 아니야’라는 엄마 말을 듣고 그동안 애써 유지해오던 가면을 이제야 깬 것 같아서 시원하고 통쾌했다. ‘나는 나래가 공부 못 할 줄 알았는데, 곧잘 하네.“ 중학교 1학년 때쯤 아빠가 엄마에게 말을 듣고나서 나는 줄곧 반 1등의 모범생 모드를 약간의 압박을 느끼면서도 편하고 즐겁게 학창시절을 보냈다. 그러나 시험 때 잠깐의 벼락치기가 아닌 1년을 공부해야 하는 고3때 나는 오히려 한,중,일 드라마에 빠지고 친구들을 꼬여내어 노래방에서 놀며 보내다 당연히 명문대는커녕 서울의 4년제 대학에 겨우 붙었다. 딱히 분명한 목표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재수는 하기도 싫었으면서, 당연히 돌아온 결과를 받아들이기보다 내가 가장 불만족스러워했다.     어학연수도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를...
나래
2023.06.07 | 조회 247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