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27회]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 <오발탄(1961)> - 한국고전영화_03

청량리
2023-04-09 20:00
397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오발탄>(1961) | 감독 : 유현목 , 주연 : 김진규, 최무룡 | 107분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영화 <오발탄>(1961)은 어느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암울함이 지속됐던 당시의 사회모습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작이다. 영화 <오발탄>이 한국 고전영화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건, 동명의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유현목 감독의 진지하고 풍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실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영상미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허나 대부분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액션영화 등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은 촬영기법이나 내용, 장르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제작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는 이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시 조명감독이었던 김성춘이 사비를 털어 겨우겨우 필름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초, 당시 전후 한국은 그야말로 폐허였다. 일제 강점기에서 해방된 지 얼마 안 되어 일어난 ‘한국전쟁’으로 서민들의 삶은 직격탄을 맞았다. 내가 살던 고향은 더 이상 '꽃 피는 산골'이 아니었다.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는 뭘 해야 할지 몰라 넋 놓고 있었고, 기반시설이 전부 무너져 일자리도 없었다. 월남한 실향민과 집 없는 피난민이 뒤엉켜 값싼 노동력이 무제한으로 제공되던 시절이었다.

시내에는 ‘짚차’가 돌아다니고 회계사를 둘 정도로 재산관리를 해야 사람도 있지만, 여전히 판자로 지붕을 얹고 거적으로 대문을 대신한 집에 사는 이들이 도시 속에 공존했다. 모두가 배고팠던 시절에는 가난이 부끄럽지 않았으나, 커져가는 상대적 빈곤 속에 돈 없는 설움은 극에 달했다. 그 시절, 가난에서 자국민을 구한 이가 ‘박정희’라 평가받으니, 5.16 군사쿠데타가 누군가에게는 ‘혁명’으로 불리는 이유다.

 

 

가자, 어떻게?

어두운 골목길 ‘스탠드빠 서라벌’의 간판 아래로 오늘도 군복 입은 사내들이 휘청거린다. 그들은 ‘육이오 때 쓰고 남은 잔재’인 상이군인들이다. 영호(최무룡)의 옆구리에는 총상이 남아있고, 그의 친구 경식은 절름발이가 되었다. 정부는 그들을 국가영웅으로 칭송했으나, 현실은 전쟁에서 손상을 입은 피해자, 장애인이라는 인식과 차별이 존재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이곳에서, 더군다나 불구가 된 그들이 설 자리는 없었다. 그저 술에 취해 지난 군가나 부를 따름이다.

비틀거리는 영호는 집 앞에서 그의 형, 철호(김진규)와 마주친다. 충치를 뽑으러 갈 여유도, 돈도 없이 언제나 일그러진 얼굴로 ‘남의 재산이나 계산해주는 일’을 하는 철호. 영호는 그의 형이 못마땅하지만, 철호의 손에 딸린 식구가 자신을 포함해 여섯이다. 실성한 어머니, 만삭인 아내, 영호, 여동생 명숙, 막내 동생 민호와 딸아이. 그러니 꼬질꼬질한 잠자리에 몸을 구겨 넣는 수밖에 영호도 달리 방법이 없다.

제대 후 안 해 본 게 없는 영호, 그러나 곰은 커녕 아직 ‘토끼 한 마리’도 손에 넣질 못했다. 영호는 괜히 은행 앞을 서성거린다. 그는 “허수아비를 비웃는 까마귀의 용기가 필요하다”고 믿는다. 그 즈음, 우연히 만난 간호장교 오중위의 집에서 권총 한 자루를 발견한다.

 

우물물로 타는 목을 축이던 영호(좌측, 최무룡)는 형 철호(우측, 김진규)와 마주한다. 영호는 형을 존경하지만, 그의 삶을 따라하고 싶진 않다.

 

 

가자, 누구와?

한편, 영호의 친구인 경식은 동생 명숙(서애자)과는 연인 사이였다. 경식 비록 불구의 몸이 되었지만, 명숙은 그에게 결혼을 재촉한다. 전쟁이 끝나기만을 기다렸고 벌써 2년이 지났으나, 경식은 명숙을 향해 제대로 걷질 못한다. 그를 향한 사랑의 미련도 있겠으나, 명숙은 서둘러 이 지긋지긋한 집구석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미칠 수 있어요?”

그러나 경식은 불구가 된 자신을 용납할 수도, 기다리는 그녀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건 명숙에 대한 사랑보다는 쓸데없는 자존심이 키운 ‘자폐’에 가까웠다. 전쟁으로 불구가 된 건 그의 신체뿐만이 아니었다. 명숙은 결국 스스로 돈을 벌어서 이 집에서 나가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당시 그녀가 가진 유일한 밑천은 자신의 몸, 뿐이었다.

어느 날, 철호가 일하는 계리사(회계사) 사무실로 전화가 한통 온다. 그의 누이동생 명숙이 서울중부경찰서에 있단다. 미군을 상대로 매춘을 하던 명숙은 경찰서에서 그의 오빠 철호와 마주한다. 그러나 무능력한 철호는 동생에게도 특별히 해 줄 말이 없다. 훈방조치 된 명숙은 철호와 함께 경찰서를 나와 서로 멀찍이 떨어진 채로 길을 걷는다.

카메라는 철호를 앞에 두고 길 건너편의 명숙을 함께 보여주며 그들의 걷는 속도에 맞춰 따라 움직인다(트래킹샷). 이도저도 아닌,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상황을 대사 없이 눈빛과 표정만으로 연기하는 김진규 배우와 유현목 감독의 절제된 연출력 역시 돋보이는 이 장면은 한국고전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일 것이다.

철호에겐 자신을 희생해 돈을 버는 명숙에게도, 사회구조 속의 희생양이 된 영호에게도 따뜻한 시선을 보낼 여유가 없다. 가족이 해체되고 공동체가 무너진 그런 세상에서 철호가 지켜야한다던 ‘양심과 윤리’란 무슨 소용이냐고 영호는 묻는다. 그렇다. 그건 어쩌면 공동체의 ‘신뢰’ 안에서만 작동하는 원리인지도 모른다.

 

“형님 어금니만 해도 그래요. 푹푹 쑤시고 아픈 걸 견딘다고 절약이 되나요? 지긋지긋하게 살아야 하니까 문제죠. 왜 우리라고 좀 더 넓은 테두리까지 못 나가라는 법이 어디 있어요? 왜 우리만 이 좁은 양심의 울타리 안에서 숨이 막혀야 해요?”

 

경찰서를 나와 명숙(좌측, 서애자)과 철호는 나란히, 그러나 따로 멀찍이 떨어져서 걷는다. 카메라는 그 둘을 말없이 따라간다. 

 

 

가자, 어디로?

영호의 질문을 “마음 한 구석이 비틀려서 하는 억지”같은 말이라고 철호는 외면한다. 그러나 어차피 현실은 오중위와 함께 투신자살한 시인의 말마따나 “열편의 시마저 채워 줄” 여지조차 없는 메마른 세상이 아닌가. 오히려 철호야말로 ‘양심과 윤리’라는 이름으로 피폐하고 암울한 현실을 외면하려는 건 아닐까?

영호의 은행강도는 동료의 배신으로 실패하고, 붙잡힌 동생을 만나러 철호는 또다시 경찰서로 찾아간다. 그러나 영호 앞에서 역시 아무것도 해줄게 없는 철호는 얼굴만 바라보다 말없이 뒤돌아 나간다. 설상가상으로 만삭인 아내는 둘째를 낳다가 그만 죽게 된다. 허망하게 죽은 아내도 차마 볼 수가 없는 그는 영안실을 뒤로하고 비틀거리며 병원 밖으로 나온다.

먹고 살기 위해 여동생은 ‘양공주’가 되고, 또 다른 동생은 ‘은행강도’가 되어 버린 세상. 더는 못 참겠다. 차라리 나에게 더 많은 고통을 다오!! 철호는 지긋지긋한 충치 두 개를 뽑아내고 과다출혈로 택시 안에서 정신을 잃는다. 어디로 가냐는 택시 기사의 물음에 그의 어머니처럼 ‘가자’는 말만 되풀이 한다.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철호의 죽은 아내가 낳은 둘째아이 앞에서 명숙은 다시 일어서길, 다시 웃으며 살길 다짐하지만 어쩐지 되풀이되는 영호의 거짓말 같아 씁쓸해진다. 저들의 형편이 절대로 풀리지 않을 답답함에 ‘희망’이라는 단어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정말 갈 곳을 알 수가 없다. 그런데 지금 나는 어딘지 가긴 가야 하는데...”

 

죽은 아내와 경찰에 잡힌 동생을 뒤로 하고 택시에서 정신을 잃은 철호. 가긴 가야 하는데,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

 

 

1960~70년대 기록필름들은 많다. 너무나 생경한 모습에 그저 멀리 떨어져 ‘관객’이 될 뿐이다. <오발탄>은 그 판자지붕을 걷어내고 그 안에 ‘리얼한 삶’의 모습을 담았다. 그러자 카메라가 안으로 훅 밀고 들어온다. 그래서 송철호 가족의 삶을 떨어져서 바라만 보긴 어렵다. 감각의 확장과 생각의 유연함을 만들어내는, ‘고전’은 시간이 지나도 우리에게 그런 ‘상상력’을 제공해 준다. 영화 <오발탄>도 그러하다.

 

댓글 6
  • 2023-04-10 14:21

    소설 <오발탄>도 짧지만 강렬했고, 영화도 예전의 흑백영화지만 그러했다. 상황이 강렬해서일 것이다. 시간이 흘러도 이 강렬함은 옅어지지도 않는다.

  • 2023-04-11 10:22

    문탁에 처음 온 2009년?
    이 영화를 보았지...

    아ㅡㅡ 세상 갑갑한 이 영화를...

    요요.문탁.인디안.파랑. 아마 새털(지금 겸목)과 같이

    그 시절 서울시내를 보여주던 영상도 새로웠는데 ㅋㅋ

    • 2023-04-12 09:20

      옹기종기 모여 앉아 60년대 영화보던 시간이 떠오르는군요.^^
      OTT 없던 시절, 디비디 가져와 틀었겠죠?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격세지감을 느낍니다.ㅎ
      그런데 60년도 더 된 이 영화 <오발탄>은 지금 청량리에게 너는 가는 곳이 어니냐고 묻나 봅니다.

      • 2023-04-23 18:27

        디비디...아닐 거에요. 제 기억엔 영상자료원인가에 회원가입해서 돈주고 스트리밍 한 것 같은디...

    • 2023-04-23 18:30

      미경이도 있었시유^^
      https://moontaknet.com/?page_id=228&mod=document&pageid=1&keyword=60%EB%85%84%EB%8C%80+%EC%98%81%ED%99%94&ddd=da&uid=1571

  • 2023-04-17 16:56

    오발탄, 김진규의 절제된 연기가 인상적이었어요.
    최무룡이 내뱉던 말들에 깊은 숨을 쉴 수밖에 없기도 했고..
    충치를 빨리 뽑기라도 하지ㅠㅠ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죽은 시인의 시간(hours) <디 아워스>(2002) |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주연 : 니콜 키드만, 메릴 스트립, 줄리앤 무어 | 114분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2003)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로라 브라운(줄리앤 무어), 클라리사 본(매릴 스트립) 세 명의 여성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을 중첩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시간 순으로 1923년 ‘버지니아’로 시작해서 1951년 ‘로라’와 2001년 ‘클라리사’로 이어진다. 이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세 명을 관통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가 집필 중인 소설이며,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삶의 위안을 얻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버지니아의 모습은 영화의 엔딩과 서로 맞닿아 있다. 단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게 아니라, 리처드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그 장면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리처드(에드 해리슨)가 아닐까. 왜냐하면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옛 연인이면서, 영화 속에서 버지니아처럼...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죽은 시인의 시간(hours) <디 아워스>(2002) |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주연 : 니콜 키드만, 메릴 스트립, 줄리앤 무어 | 114분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2003)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로라 브라운(줄리앤 무어), 클라리사 본(매릴 스트립) 세 명의 여성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을 중첩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시간 순으로 1923년 ‘버지니아’로 시작해서 1951년 ‘로라’와 2001년 ‘클라리사’로 이어진다. 이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세 명을 관통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가 집필 중인 소설이며,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삶의 위안을 얻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버지니아의 모습은 영화의 엔딩과 서로 맞닿아 있다. 단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게 아니라, 리처드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그 장면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리처드(에드 해리슨)가 아닐까. 왜냐하면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옛 연인이면서, 영화 속에서 버지니아처럼...
청량리
2024.02.19 | 조회 18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한국영화시리즈 마지막 회   시대로부터 버림받은 천재   - 하길종 감독의 <바보들의 행진(1975)>   베이비붐 세대의 문화예술론   1941년생인 하길종 감독은 서울대에 입학한 해에 4·19혁명을 맞이했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을 겪으며 한국을 떠날 결심을 한다. 1965년, 그는 ‘아메리카 뉴시네마’의 자유로운 분위기에 이끌려 UCLA 영화과에 진학하였다. 졸업작품으로 만든 <병사의 제전>(1969)은 미국 영화과 졸업생 가운데 4명을 뽑는 ‘메이어 그렌트(Meyer Grent) 상’을 수상할 만큼 뛰어났다. 당시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나 조지 루카스 등과도 인연을 맺었으며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를 연출했던 아서 펜의 조감독으로 현장경험을 쌓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에게는 국가경제기획원에서 일하는 형이 있었다. 해외에서 병역기피자가 되어 형에게 해가 되지 않기 위해 그는 1970년에 강제소환된다. 베트남전과 68혁명의 영향으로 자유를 향한 저항정신이 휘몰아치던 시기의 미국을 떠나 귀국하면서 보게 된 한국 사회는 그에게 어떤 모습이었을까.                                                              하길종의 한국 생활은 순탄치 않았다. 사전검열뿐만 아니라 사후검열이라는 이중의 검열 제도가 있었고, 해외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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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3.05.28 | 조회 32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겨우 잡았는데, 이토록 허망하다니 <짝코>(1983) | 감독 : 임권택 , 주연 : 김희라, 최윤석 | 103분            어느 날, 노숙자 한 명이 '갱생원'으로 들어온다. 갱생원이란 “오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밥도 주고 잠도 재워 주는” 곳이지만, 실상은 ‘사회복지’보단 “속세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자들의 ‘사회적 청소’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노숙자는 침대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보고 깜짝 놀란다.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살고 싶었으나 망실공비(사망, 실종 또는 아무리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는 공비)로 떠도는 빨치산 ‘백공산, 일명 짝코(김희라)’와 한평생 그를 잡기 위해 뒤를 쫓는 토벌대 경사 ‘송기열(최윤석)’은 30년 만에 서울의 ‘갱생원’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송기열은 단번에 짝코, 백공산을 알아본다. 아닌 척하지만 백공산 역시 그를 알아보고 식은땀을 흘린다.     영화 <짝코>(1983)는 지리산을 시작으로, 갱생원까지 오게 된 두 사람의 시간을 ‘플래시백 기법(회상장면으로 넘어간 시점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진행하는 기법)’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에선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왜 그토록 송기열이 백공산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 백공산과 송기열은 이미 사회에서 잊힌,...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겨우 잡았는데, 이토록 허망하다니 <짝코>(1983) | 감독 : 임권택 , 주연 : 김희라, 최윤석 | 103분            어느 날, 노숙자 한 명이 '갱생원'으로 들어온다. 갱생원이란 “오고 갈 데 없는 사람들을 모아서 밥도 주고 잠도 재워 주는” 곳이지만, 실상은 ‘사회복지’보단 “속세에서 버림받고 소외당한”자들의 ‘사회적 청소’개념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 노숙자는 침대에 누워 있는 누군가를 보고 깜짝 놀란다. 평생을 찾아 헤매던 그 사람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살고 싶었으나 망실공비(사망, 실종 또는 아무리 찾아도 행방을 알 수 없는 공비)로 떠도는 빨치산 ‘백공산, 일명 짝코(김희라)’와 한평생 그를 잡기 위해 뒤를 쫓는 토벌대 경사 ‘송기열(최윤석)’은 30년 만에 서울의 ‘갱생원’에서 우연히 마주하게 된다.   송기열은 단번에 짝코, 백공산을 알아본다. 아닌 척하지만 백공산 역시 그를 알아보고 식은땀을 흘린다.     영화 <짝코>(1983)는 지리산을 시작으로, 갱생원까지 오게 된 두 사람의 시간을 ‘플래시백 기법(회상장면으로 넘어간 시점에서 과거의 시간으로 진행하는 기법)’으로 교차해서 보여준다. 이러한 전개에선 일반적으로 관객들은 “왜 그토록 송기열이 백공산에게 집착하게 되었는지”를 따라가게 된다. 그러나 두 사람, 백공산과 송기열은 이미 사회에서 잊힌,...
청량리
2023.05.02 | 조회 36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띠우
2023.04.23 | 조회 37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오발탄>(1961) | 감독 : 유현목 , 주연 : 김진규, 최무룡 | 107분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영화 <오발탄>(1961)은 어느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암울함이 지속됐던 당시의 사회모습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작이다. 영화 <오발탄>이 한국 고전영화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건, 동명의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유현목 감독의 진지하고 풍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실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영상미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허나 대부분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액션영화 등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은 촬영기법이나 내용, 장르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제작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는 이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시 조명감독이었던 김성춘이 사비를 털어 겨우겨우 필름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초, 당시 전후 한국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오발탄>(1961) | 감독 : 유현목 , 주연 : 김진규, 최무룡 | 107분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영화 <오발탄>(1961)은 어느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암울함이 지속됐던 당시의 사회모습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작이다. 영화 <오발탄>이 한국 고전영화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건, 동명의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유현목 감독의 진지하고 풍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실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영상미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허나 대부분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액션영화 등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은 촬영기법이나 내용, 장르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제작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는 이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시 조명감독이었던 김성춘이 사비를 털어 겨우겨우 필름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초, 당시 전후 한국은...
청량리
2023.04.09 | 조회 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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