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26회] 공포물이거나 혹은 복수극이거나 / <월하의 공동묘지(1967)> - 한국고전영화_02

띠우
2023-03-26 23:40
356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공포물이거나 혹은 복수극이거나

 

<월하의 공동묘지(1967)>/권철휘 감독

 

 

이것은 공포다

 

1924년 발표된 김영환 감독의 <장화홍련전>은 우리나라 공포영화의 효시로 알려져 있다. 이 작품은 계모의 괴롭힘 때문에 죽은 딸들이 밤마다 고을 사또에게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하며 한을 푸는 이야기다. 여성귀신이 나오는 이야기들은 처음에 갑자기 귀신들이 나타나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한다. 그런데 알고 보면 이것은 자신의 억울함을 공적 대리인에게 호소하기 위해서다. 이후 악인은 처벌받고 한을 풀면서 마무리된다. 한국공포영화에서 소복입은 여성귀신의 이미지는 유독 강렬한데, 이는 가부장제 속에서 고통받던 우리나라 여성들의 고난사와 관련이 있다. 차츰 이 과정은 공포영화 서사의 전형이 되어 간다. <장화홍련전>은 1936년, 1956년, 1962년, 1972년에 리메이크되었고, 2003년에는 김지운 감독에 의해 또 다른 가족괴담의 형태인 <장화, 홍련>으로 만들어졌다.

 

 

 

 

한국공포영화의 전형을 보여준 기념비적인 작품으로 권철휘 감독의 <월하의 공동묘지(1967)>가 있다. 서울 동아극장에서 개봉 당시 관객이 5만 명을 넘어 흥행에 성공했다. 주인공 명순(강미애)은 독립운동으로 투옥된 오빠 춘식(황해)과 애인 한수(박노식)의 옥바라지를 위해 기생이 된다. 춘식이 모든 죄를 떠안자 한수는 풀려나 명순과 가정을 꾸리고 자식도 낳는다. 그런데 이 집의 식모 난주(도금봉)는 명순이 정절을 지키지 못했다고 모함한다. 정절이라니, 순정파 춘향이 떠오른다. 암튼 우여곡절 끝에 춘향은 몽룡에게 구원받지만 명순은 그렇지 못하다. 기생이었던 과거 때문에 한수에게도 버림받고 자살한다. 난주는 안주인이 되자마자 사기꾼 태호(허장강)와 짜고 한수와 그의 아들도 죽이려 든다. 절체절명의 순간, 원귀가 된 명순이 나타나 악인들을 물리치고 승천한다. 기념비라고는 해도 너무나 전근대적인 이야기다. 게다가 지금은 이게 공포영화인가 싶을 정도로 유치하지만, 1980년대 말까지 이것은 공포물의 전형으로 반복된다.

 

알다시피 한국전쟁은 나라 전체를 파괴했고 폐허로 만들었다. 그런데 한편으로 전쟁 후 진행된 근대화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러일으켰다. 자유로운 개인이 탄생하며 사람들은 빠르게 봉건적인 사고방식을 탈피하기 시작한다. 1950년대 후반 한국 영화계는 이런 분위기를 담아 역동적으로 움직였고 다양한 작품들이 만들어졌다. 문예물부터 시대극과 세태풍자를 담은 코미디, 파격적인 멜로물과 스릴러, 범죄물 등이 발표된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는 시간을 순식간에 되돌려버렸다.  불과 10여 년 만에 한쪽에서는 다시 전통적 가치관이 영화 주제로 부활한다. 수많은 판본으로 전해졌던 <춘향전>의 저항적이고 다층적인 주제가 어느새 정절을 중심으로 한 남녀의 연애담(<성춘향>)으로 자리잡은 것처럼 말이다. 이때는 저항과 시대정신이 담긴 영화들이 봇물터지듯 쏟아졌던 시기임과 동시에 봉건적 가치관이 공존하게 된다. 그런데 오늘 문득, 정말 문득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에서 상영중인 한국영화를 찾아보니 <웅남이(2023)>뿐이다.

 

이것은 복수다

 

<월하의 공동묘지>는 공포를 불러오는 사운드의 효과, 여기저기 날아다니는 도깨비불, 고양이의 난입 등으로 당시 관객들을 긴장하게 만들었다. 자살한 명순의 장례식 장면은 전통적인 창을 사용해 유서를 낭독하며 엄숙한 분위기로 연민을 끌어내려 했다. 중간에 변사 역할을 한 나레이션은 주인공의 비극적인 운명을 강조하여 관객을 명순에게 감정이입시켰다. 영화기법이 발달한 현재에는 별 감흥이 없을 수 있는데, 지금 보아도 인상적인 것은 도금봉과 허장강의 연기였다. 도금봉은 주인공 명순을 괴롭히는 악녀 이미지로, 허장강은 재산을 노린 사기꾼 연기로 대중의 두 눈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달리 보면, 두 인물로 대표되는 이미지는 근대화되는 시기에 나타난 주체들의 욕망과 결부된다.

 

 

 

 

거기에 왜 식민지 시대를 배경으로 한 가정 비극을 다소 유치한 공포물로 변형시켰는지는 사회적 상황으로 알 수 있다. 쿠데타로 권력을 손에 넣은 정권은 과거의 봉건적 국가 체제로 대중을 통제하려 들었고, 근대화는 사람들을 자본주의 시스템으로 밀어넣었다.  <월하의 공동묘지>에서도 알 수 있듯이, 원귀들의 사연은 가부장제 사회의 윤리가 여성을 억압하면서 만들어졌다. 전통사회의 춘향에게는 암행어사 이도령이 있었고, 장화와 홍련에게는 사또라는 공적 권력이 있었다. 이를 통한 원한의 해결은 국가중심의 가부장제를 교묘하게 지탱시키는 장치였다. 그런데 명순의 오빠는 식민지배하에서 감옥에 갇혀 무력한 존재다. 못난 남편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다. 이미 전통사회는 균열이 간 상태였고, 민주적 제도가 미처 자리잡지 못한 채로 진행된 근대화는 대중을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혼란스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사실상 여성의 위치는 더욱 위태로워진다.

 

이 영화가 다시 보이는 지점이 바로 여기다. 한국공포영화의 초창기에는 여성원귀가 죽어서라도 공적 대리인에게 기대어 한을 푸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 사회는 변했다. 기댈 대상이 없다. 오히려 이 지점이 여성들을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단연 명순과 난주다. 난주는 기생에게 남편을 빼앗겨 식모가 된 존재다. 명순은 난주에게 남편을 빼앗겨 자살로 내몰린다. 다음 순간부터 이들은 가부장적 질서나 공적 권력에 기대지 않는다. 아쉽게도 자발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마침내는 능동적인 복수의 주체가 된다. 이 영화의 흥행에는 복합적인 요인이 숨겨져 있었다고 본다. 전통적인 여성 가치관을 내세운 것 같지만, 난주가 보여주는 욕망의 표현이나 사적 복수를 행하는 명순에게서 새로운 시대를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흥행을 위해 애썼던 감독이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1960년대 명순이 봉건적 여성상으로 돌아간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동시에 기댈 곳 없는 명순은 공포영화와 같은 장치를 통해서나마 과거와 달리 사적 복수를 감행한다. 2003년 최대 화제작이었던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역시 한 가족 안에서 발생하는 죽음과 그로 인한 공포를 다루고 있다. 아버지와 계모, 두 딸이 등장하고 딸들의 친엄마는 자살했다. 집이라는 공간 자체가 이야기의 중심이 되어 움직이고, 감독이 공들인 조명이나 세트 디자인 및 미장센은 특유의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여기서 공포의 원인은 원귀가 아니다. 피 철철 흘리는 여성귀신은 이제 잘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1924년이나 1960년대 말과는 달라진 것일까.

 

 

 

 

“너 진짜 무서운 게 뭔지 알아? 뭔가 잊고 싶은 게 있는데,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싶은 게 있는데,  도저히 잊지도 못하고 지워지지도 않는 거 있지... 근데 그게 평생 붙어 다녀. 유령처럼...”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2003)> 중에서

 

공포영화는 “의도적으로 관객의 근원적인 공포를 건드려 부정적인 정서를 일으키는 영화”를 말한다. 우리가 어떤 일에 대해 공포심을 갖는 것은 사회의 집단 무의식 속에 공통적인 기억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것도 죄의식과 관련된 기억 말이다. 영화 <장화, 홍련>은 여전히 존재하는 것, 잊혀지지도 지워지지도 않은 가부장제의 흔적이 여전함을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세상 많이 좋아졌다고들 한다. 그러나 오늘날도 불과 한두 해 만에, 그때 그 시절 쿠데타를 경험한 것처럼 빠르게 과거의 어딘가로 되돌아가는 중이다. 공적으로든 사적으로든 깨끗하게 지워버리고 싶었던 그것이 불쑥불쑥 우리 앞에 튀어나온다. 우리 주변 곳곳에서 숨어지내며 세상을 노리고 있었다.  진짜 무서운 건,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그것들이 내게도 보인다는 것이다.

 

 

 

 

댓글 4
  • 2023-03-27 09:14

    1924년과 1967년의 시대적 차이로 영화를 보니 재밌네요.
    1960년대야말로 근대적 가족의 탄생 시대인가보군요?
    전통적 가부장제의 여성 억압과 사적 복수하는 능동적 여성 주체라는 대비가 헷갈리기는 하지만
    사적 복수의 출현이 주는 강렬함이 있네요.

    현대판 사적복수가 더글로리인가?
    요즘 한국영화 안팔린다고 난리던데, OTT가 대신한다고..

  • 2023-03-27 20:44

    김지운 감독의 <장화, 홍련> 미적 공포영화라 생각했고, 아름다워서 더 공포스러웠던 느낌이 지금도 생생해요. 영화내용은 가물가물한데....

  • 2023-03-31 14:55

    월하의 공동묘지 ㅋㅋ

    지금 보면 하나도 안 무서웠을 그 영화가 그때는 왜 그렇게 무서웠는지

    도금봉, 허장강 배우님들 이름도 반갑네요.

  • 2023-04-03 09:53

    계속 되살아나기에 진짜 무서운 것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요
    덕업을 잘 쌓아야하나

    공포영화로 보는 한국사회사
    재밌네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 이번에 '영화대로42길'로 가는 법은 '같은 영화 다른 이야기' 컨셉입니다. 그 첫 번째 영화는 <디 아워스>(2002)입니다.          죽은 시인의 시간(hours) <디 아워스>(2002) | 감독 : 스티븐 달드리, 주연 : 니콜 키드만, 메릴 스트립, 줄리앤 무어 | 114분       영화 <디 아워스, The Hours>(2003)는 버지니아 울프(니콜 키드먼), 로라 브라운(줄리앤 무어), 클라리사 본(매릴 스트립) 세 명의 여성이 보내는 하루의 시간을 중첩해서 보여준다. 영화는 시간 순으로 1923년 ‘버지니아’로 시작해서 1951년 ‘로라’와 2001년 ‘클라리사’로 이어진다. 이때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 ‘댈러웨이 부인’은 세 명을 관통하는 매개 역할을 한다. ‘댈러웨이 부인’은 버지니아가 집필 중인 소설이며, 로라는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삶의 위안을 얻고, 클라리사는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별명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영화의 첫 장면, 강물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버지니아의 모습은 영화의 엔딩과 서로 맞닿아 있다. 단지 동일하게 반복되는 게 아니라, 리처드의 죽음 이후 이어지는 그 장면은 어떤 질문을 던지고 있는 듯하다. 어쩌면 영화에서 직접적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인물은 리처드(에드 해리슨)가 아닐까. 왜냐하면 그는 로라의 아들이자, 클라리사의 옛 연인이면서, 영화 속에서 버지니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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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4.02.19 | 조회 184
영화대로 42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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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3.05.28 | 조회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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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3.05.02 | 조회 364
영화대로 42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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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불온함의 불온함     - 이만희 감독의 <휴일(1968)>   37년 만에 발견된 미개봉작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싫다고 하면 난 뭐라고 했었지? 우선은 학교에 가고 상태가 계속 안 좋으면 다시 집으로 오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일단은 가라고. 그런데 가기 싫으면 가지 말라고 다정하게 말했다는 이만희 감독, 그는 나에게 배우 이혜영의 아버지로 먼저 기억되는 사람이다. 도회적이고 자유롭지만 어떤 면에서는 반항적이고 불온하게 보였던 이혜영을 통해 알게 된 이만희 감독은 1960년대 한국영화계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데뷔작 <주마등(1961)>을 시작으로 1975년 간암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총 52편의 영화를 남겼다. 이만희 감독은 1931년생으로 한국전쟁과 해방을 거쳐 4·19 혁명의 환희 속에서 30대를 맞이했을 것이다.  특정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도전했던 그의 영화세계는 그 시대 어느 감독보다 폭넓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1960년대 권력을 잡은 박정희 정권은 대중문화예술이 미치는 영향력을 간파했고 차츰 예술작품에 대한 검열을 강화해갔다.   1968년은 이만희 감독의 <휴일>이 제작된 해다. 기록에 따르면 <휴일>은 “주체성과 예술성이 없다”, “주체성은 있는데 예술성이 없다”, “이런 작품은 되도록 안 만드는 것이 좋다”라는 이유로 심의에서 차례차례 반려되었다. 심의 당국으로부터 시나리오의 결말을 고치면 개봉을...
띠우
2023.04.23 | 조회 37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오발탄>(1961) | 감독 : 유현목 , 주연 : 김진규, 최무룡 | 107분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영화 <오발탄>(1961)은 어느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암울함이 지속됐던 당시의 사회모습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작이다. 영화 <오발탄>이 한국 고전영화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건, 동명의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유현목 감독의 진지하고 풍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실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영상미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허나 대부분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액션영화 등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은 촬영기법이나 내용, 장르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제작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는 이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시 조명감독이었던 김성춘이 사비를 털어 겨우겨우 필름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초, 당시 전후 한국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충치 같은 지리멸렬한 삶 <오발탄>(1961) | 감독 : 유현목 , 주연 : 김진규, 최무룡 | 107분           “어쩌다 오발탄 같은 손님이 걸렸어. 자기 갈 곳도 모르는”   영화 <오발탄>(1961)은 어느 가족에 대한 짧은 이야기지만, 오랫동안 암울함이 지속됐던 당시의 사회모습을 짜임새 있게 보여준 유현목(1925~2009) 감독의 수작이다. 영화 <오발탄>이 한국 고전영화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건, 동명의 원작소설을 뛰어넘는 유현목 감독의 진지하고 풍부한 디테일이 잘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사회적 빈곤과 부조리를 고발하고 사실주의적인 관점이 잘 드러난 영상미는 네오리얼리즘의 거장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영화 <자전거도둑>(1948)에도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 1960년대는 한국영화의 르네상스로 불린다. 허나 대부분 멜로드라마와 스릴러, 액션영화 등이 스크린을 채우고 있던 점을 고려한다면, <오발탄>은 촬영기법이나 내용, 장르 등 여러 측면에서 귀중한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영화의 제작과정 역시 순탄치 않았다. 1960년 4·19혁명 직후 개봉됐다가 이듬해 5·16 군사정권 하에서 3년 간 상영이 금지된 바 있다. 노모가 가자는 곳이 ‘북’이라는 이유다. 제작비가 없어서 당시 조명감독이었던 김성춘이 사비를 털어 겨우겨우 필름을 샀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1960년대 초, 당시 전후 한국은...
청량리
2023.04.09 | 조회 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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