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해서 혹은 용감해서(꿈틀이)
꿈틀이
2023-08-29 11:18
115
“ 난 난파선을 탐색하러 내려왔다/ 단어들이 목적이다 /단어들이 지도이다/ 난 이미 행해진 파괴의 정도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보물들을 보러왔다/<중략> 내가 찾으러 왔던 것/ 그것은 잔해이지 잔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 자체일뿐 그것을 둘러싼 신화가 아니다” (에이드리언 리치,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6쪽)
에이드리언 리치의 시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는 그녀의 작품 활동의 주된 목적이 무엇인지 밝히는 일종의 선언문과 같은 것이다. 1960년대 서구 가부장제 사회를 ‘난파선’으로 명명하며 위험한 심해에 들어가 그녀가 응시하고자 한 ‘잔해’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시 속의 자아는 불편한 잠수복을 입고 산소마스크를 달고 내려가 검은색으로 변한 바다 속으로 몸을 옯겨 놓는다. 그곳에는 중력이 없고 산소가 없다. 그러므로 위험하다. 권력이 없고 너와 내가 없다. 그러므로 자유롭다. 스트레스를 아직도 가슴에 품고 있는 익사자의 시체, 고장난 나침반, 물먹은 일지. 그곳에서는 이 모두가 그녀 자신이며, 우리이다. 여기에서 길어올린 ‘나’, ‘그녀’에 관한 이야기는 레즈비언이며 가부장제에 부역한 이혼녀이고 세 아이의 엄마였던 미국여성 시인인 그녀의 글속에서 자유롭게 횡단하고 있다. 그녀의 에세이 <뿌리에서 갈라지다>와 <피,빵 그리고 시>에서는 자신을 손에서 놓치지 않으면서 세계를 향해 문을 열어 제치는 그녀의 소심함과 용기가 그대로 담겨 있다. 특히, 유대인이면서 미국 주류 사회의 토큰이 되고자 했던 그녀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는 수치스럽지만 꼭 써야만 하는 의무감으로 표현된다. “내가 유대인인 것은 기독교인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것이니까”(288쪽) , “유대인으로서 나의 양가감정이 대체 어디서 오는지, 그 기원과 실체를 똑바로 대면해야 된다.”(288쪽) 그녀의 회고적 이야기에 담긴 유대인 아버지에 대한 ‘잔해응시’는 가부장적 사회에서 한 여성으로 삶을 통과하고 있는 ‘나’에게도 어떤 영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나의 아버지(피)와 연결된 ‘빵’ 그리고 앞으로의 이야기에 대해서.
나의 아버지
거제도의 아름다운 작은 항구 마을에 터전을 마련한 나의 아버지. 나는 그에게서 힘이 넘치는 젊은 남자의 그것을 한번도 느끼지 못했다. 내 눈이 기억하는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되기 전의 조금 늙은 남자. 그 정도가 맞을 듯하다. 표면적으로 그는 무능력하고 교육받지 못했으며 술에 자주 취해 있었다. 동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그가 영향력이 있거나 존재감이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생활력 있고 똑부러진 어머니는 아버지를 답답해 하면서도 가정의 가장으로 인정하고 대접해주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바다가 주는 풍부한 자원과 물질은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이용하느냐에 따라 부를 축적하거나 생계의 수단으로 삼기 충분했다. 항구 마을에서 배를 소유하고 있음은 부자라는 소리이고 그 집의 아버지가 뱃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면 밥 먹고 살기 문제 없다는 뜻이었다. 나의 아버지는 이 둘 다 해당이 되지 않았다. 태생적으로 허약 체질이었던 아버지는 배멀미로 바닷일은 그의 수단이 되어주지 못했다. 고작해야 농사를 짓는 일이 전부였다. 그 마을에서 남자, 어른 ,뱃사람에게 주어지던 권력이 아버지에겐 없었다.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추고 거기에 물려 받은 재산까지 많았던 큰아버지에게, 아버지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 같았다. 이유도 없이 우리집에 불쑥 나타나 아버지를 폭력으로 다스리기도 하고 물건을 때려부수기도 했다. 나는 큰아버지의 그 야만성 보다 당하고만 있는 아버지가 정말 싫었다. 분노, 억울함, 복수의 감정 등을 어린 나에게 심어주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아버지의 그 내면에 또아리고 있었을 루저의 감정을, 참아낼 수 밖에 없었을 것 같은 억압의 감정에 대해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세상은 1960년대~80년대는 돈이 권력이 되어 우리의 삶으로 조금씩 침범해 오던 시기였다. 같이 못 먹고 못살던 시대는 이미 막을 내리고 돈을 만들어내어 자식을 공부시키고 좋은 것을 사서 입히고, 먹여야 되는 시기였다. 유교사회의 남성중심 문화는 ‘돈’이라는 막강한 권력과 맞물리면서 그 위세를 더 심하게 떨쳤다. 아버지는 그 과도기의 중심에 있던 인물이기도 하다. 돈을 벌 수 있는 능력이 없던 아버지는 주류인 큰아버지로부터의 핍박을 내면화 했을 것이고 그 계급의 맨 아래, 여성의 그것과도 비슷한 곳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작은 어촌 마을의 남자 권력 계급에서 주류가 되지 못한 아버지는 평생을 술을 벗삼아 삶을 살아낸 이름 없는 남자였다.
나의 세계 그리고 빵
나는 아버지의 그것을 어릴 적부터 심하게 부정하며 성장했다. 나 또한 억눌림, 기가 죽음, 자신 없음을 되물려 받아 학교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나는 교육을 받을 기회가 있었고 그들 사이에서 경쟁력이 있음을 조금씩 알아챌 수 있었다. 아버지처럼 절대 루저가 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아버지를 나의 인생에서 단절시키고자 했고 그의 삶에 대해 질문하고 싶지 않았다. 그건 아버지의 무능력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버지가 보여준 남성상을 부정하기 위해 루저 아님, 돈 버는 능력, 주류남성의 그것을 확대경으로 보아왔다. 확대경 속의 조건과 맞는 남자와 결혼을 선택했고 뿌리 깊은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 자본주의 경쟁 사회에서 주류에 가까운 곳에 맞닿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성의 권력을 통해 ‘나’의 자리를 올려 놓고 싶었고 아버지의 뿌리에서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가부장제 사회에서 나는 여전히 비주류 인간이며 그곳에서 하류의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다. 시부모에게 허리를 굽신거리고 남편의 아침밥을 거부감 없이 차려 대며 임신과 출산, 육아를 오로지 나의 몸으로만 버텨야만 했다. 때론 참는 것이 미덕인 양 부조리한 상황에서도 ‘나의 자아’를 심하게 부정했다. 남성중심의 계급사회에서 하류였던 남자, 아버지의 그것과 별 다른 것 없이 나의 위치는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확대경은 사물을 왜곡할 수 있고 확대경 밖의 사물은 지나치게 왜소화될 수 있으며 전체 세계는 흔들린다.
“한쪽 현실을 바라보는 사이 또 다른 현실이 흔들리며 흩어질 것이다” (316쪽) 반유대정서에서 자란 유대인 정체성을 가진 여성-에이드리언은 정체성 회복을 위해 유대인과 결혼했으나 유대인의 아이를 생산하는 유대인여성과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는다. 그리고 1960년대 인권 운동을 기점으로 여성해방운동에 눈을 돌리며 청소년기부터 그녀 안에서 억눌려왔던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을 깨어나게 하고 이혼을 감행하며 유대인 여성과 사랑에 빠지게 된다. “백인, 유대인,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 기혼자, 레즈비언, 중산층, 페미니스트..나는 뿌리에서 갈라져 이것들은 전부 하나로 통합할 수 없다.”(319쪽) 그녀는 자신 앞에 붙은 정체성의 이름들을 나열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다양한 정체성의 전면개입
“내 정체성의 모든 면이 전부 개입되어야 한다. 특권을 얻고 싶으며 복종을 바치라고 배운 백인 중산층 여자아이. 이성애자 기독교인으로 길러진 유대인 레즈비언. 흑인 인권투쟁을 통해 처음으로 억압이 호명되고 분석되는 것을 들었던 여성. 남성 폭력을 증오하는 페미니스트. 피흘리는 사람도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멈춘 여성. 아름다운 언어도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억압자의 언어가 때로는 아름답게 들릴 수 있음을 아는 시인. 저항의 일부분으로 자신의 행동을 깨끗이 하려고 노력하는 여성”(327쪽)
그녀의 시작은, 그녀가 말한 정체성의 전면 개입은, 한 개인이 정치와 사회가 강요하는 보편적 질서와 연결되면서 겪게 되는 자기모순에 저항하는 지속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 같다. 에이드리언은 가부장제와 인종차별이 팽배하던 당시 미국 사회의 여성이 겪은 불합리, 자기분열에서 자신을 뒤로 감추지 않고 드러내려고 했던 용감한 여성 시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버지를 통해 돈과 권력이 없으면 불행하다는 것을 알아버린 아이, 남성을 통해 권력을 얻고자 했으나 그것은 남성의 발 아래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알아챈 여성. 결혼제도가 여성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하다는 것을 몸으로 체득한 여자. 동네 인문학 공동체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여성. 가부장제에 순응하지 않기 위해 경제적 자립을 도모하며 다시 몸을 일으켜 세운 여자. 여성, 여자 앞에 호명된 ‘나’의 다른 이름들은 에이드리언의 말처럼 하나로 통합될 순 없다. 이것들 또한 나의 피와 빵이 연결된 각각의 다른 이름들이며, 이름과 이름 사이의 모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적 개인인 ‘나’는 거기에 맞는 주류적 인간이 되기 위해 아버지의 수치심과 억압의 감정에서 도망쳐 나왔지만 심한 자기 분열에 흔들릴 수 밖에 없었던 것 같다. 나에겐 하류의 삶이 공포임과 동시에 억압자에 대한 예민한 저항의식이 이미 꿈틀거리고 있었다. 나의 공간적 위치는 주류의 그것으로 이동했지만 그 공간을 에워싸고 있는 거대한 틀은 나를 여전히 하류로 밀어내고 있었다.
나는 수도권에 거주하는 중산층의 안정적인 주부로서의 삶을 이미 버렸다. 대기업의 관리직인 남편의 든든한 조력 아래 문화생활을 즐기고 그럴싸한 명품을 걸치며 조금은 지적인 중년 여성인양 살아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적당히 바보여야 했고 적당히 분노를 감춰야 했으며 나의 발언권은 항상 뒷전으로 밀려나야 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하며 저항해야 했다. 나의 모순에 맞서며, 상대의 억압에 맞서며. 나이 오십 됐지만 최저 시급에 가까운 보수를 받는 직업을 과감하게 선택했고, 받는 보수 만큼만 일을 하리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곳에서도 ‘나’를 성찰한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을 예전처럼 업무 처리의 대상과 이해관계로만 보지 않는다. 나는 그들과 눈과 말소리를 맞추기 위해 마음을 쓴다. 혹여 불편한 마음이 생기더라도 그들이 나를 훌륭하게 이끌어주는 조력자이자 소중한 인연들임을 일깨우려 노력한다. 관리자에게는 우리의 권리를 강조하기도 하고 굳이 그의 눈밖에 나는 행동을 하지 않으려 애쓰기도 한다. 누군가는 나를 지랄맞다고 하고 누군가는 친절하고 좋은 사람이라고 한다. ‘돈벌이’가 내포하고 있는 상징성을 무시할 수 없기 때문에 비굴한 마음이 약간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출근길의 25분 산책은 내 사유의 우주가 되고, 루틴으로 자리잡은 아침 독서 30분은 전업주부로만 있었다면 느끼지 못했을 무한한 가능성을 선물했다. 그리고 일요일엔 공동체에 나가서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인다.
이제 내가 향하는 곳은 주류와 비주류가 구분되는 곳이 아니다. 나의 삶이 일관된 정체성을 향해 나아가리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뿌리에서 나온 소중한 한 인간임을, 그 각각의 소중한 인간들과 연결되어 살아가고 있음을 매번 일깨우는 곳이다.
“우린, 난, 넌/ 소심해서 혹은 용감해서/ 여기에 다시 돌아오는 길을 찾는 사람이다/ 칼 한자루, 카메라 한 대/ 우리의 이름이 적혀 있지 않은/ 신화에 대한 책 한 권을 가지고 ”(「난파선 속으로 잠수하기」, 6쪽>
그곳으로 가는 길은 표지판도 신호등도 없다. 그러므로 조금은 두렵다. 하지만 어차피 인생은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가는 외로운 작업이다. 조금씩 몸을 움직여보려고 한다. 나는 소심하기도 하지만 용감하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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