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기(겸목)

겸목
2023-08-29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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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생의 비밀

잠결에 엄마와 외할머니의 말소리를 들었다. “남의 자식 키우는 거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억울하다는 엄마의 목소리는 곧 울음소리로 바뀌었다. 잠결이지만 나는 놀랐다. ‘이런 일이 우리 집에? 나에게?’ 나와 여섯 살 차이 나는 언니가 가출을 했다. 언니네 담임선생님이 우리 집을 찾아왔고, 엄마에게 “계모라서 애한테 너무 신경 안 쓴 거 아니냐고” 모진 소리를 하고 갔다. 살기 바빠서 내 새끼고 남의 새끼고 간에 건사하지 못한 건 맞지만, 본인 또래의 여자에게 계모소리 들은 것을 엄마는 분해했다. “지가 뭐라고!” 언니는 가출청소년이 되었고, 우리 집은 문제아가 있는 문제 가정이 되었다. 당시는 밤 9시만 되면 텔레비전과 라디오에서 “청소년 여러분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라는 ‘계몽적’ 멘트가 나왔던 시절이다. 뉴스에서는 ‘문제 청소년은 문제 가정에서 나온다’는 캠페인을 자주 내보냈다. 나는 우리 집의 문제가 걱정스러웠지만, 그것보다는 이걸 사람들이 알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우선이었다.

 

 

언니의 가출은 계모 때문일까? 아니라고는 말 못 한다. 그러나 언니네 담임선생님 말고 언니의 가출을 엄마와 연관 지어 생각한 사람은 우리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가 계모라서가 아니라 우리 집이 가난해서 언니는 가출했다는 것이 좀 더 맞는 말이다. 가난과 돌봄의 공백은 이어진 문제이고, 아무도 신경 써주지 않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언니는 격렬하게 맨몸으로 겪어냈다. 언니의 가출은 두 달 정도 지속되었다. 돌아왔지만 우리와 살지 않고 혼자 사는 고모네 집으로 갔다. 거기서 학교에 다녔는데, 몇 달 후 언니는 다시 가출했고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늘 언니 편을 들어주던 고모와 살면서도 언니가 가출했다는 점이 엄마에게는 위안이 되었다. 그때 어른들은 언니의 가출을 나쁜 친구들 때문이라고 못 박았다. 연예인이 되고 싶어 헛바람 든 애들 때문이라고. 어른들에게도 변명이 필요했고 그렇게 생각하는 게 가장 마음 편했다. 언니도 언니 친구들 집에서는 ‘나쁜 친구’가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빈곤-돌봄의 공백-낮은 학업성취도-나쁜 친구’는 세트가 아닐까?

 

 

 

  1. 언니의 연대기(年代記)

‘나까지 문제 청소년이 되어서는 안 된다’가 내 청소년기의 좌우명이었다. 딸이 가출했다는 사실을 드러내놓고 걱정하지는 않았지만, 부모님은 부끄러워했다. 내세울 것도 없는 집이었지만, 이제 우리 집은 ‘망친 딸년이 있는 집’이 되었다. 나까지 그래선 안 되었다. 누가 뭐라 그러지는 않았지만 나는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아니 누군가 “니네 엄마아빠 고생하는데 너는 정말 말 잘 들어야 한다”고 단도리를 했는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나 이모가 아닐까?

 

 

나는 새 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니네 언니 몇 학년이야?”라고 물어볼까봐 불안 초조했다. 새 학기에 흔히 하는 질문들인데, 그때마다 깜짝깜짝 놀랐고 되도록 그런 얘기는 짧게 끝냈다. 자퇴 후에도 언니는 ‘고2, 고3’으로 내 상상 속에서 학년이 올라갔고, 그런 거짓말을 하기 싫어 언니얘기는 거의 하지 않았다. “와! 니네 언니 고3이니 선물을 사주겠다”는 오지랖 넓은 친구와는 친해질 수 없었다. “언니가 대학을 가냐? 취업을 하냐?” 물어올 때도 어디까지 거짓말을 해야 하나 난감했다.

 

 

내가 고3때 언니가 결혼을 했다. 언니 나이 스물다섯 살. 이른 결혼이었다. 그때 비로소 나는 마음이 편해졌다. ‘가출과 자퇴’라는 수식어가 아니라 그냥 ‘주부’라는 말로 언니를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학력고사를 보러 가는 날, 대학교 앞에서 시험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준 사람도 엄마가 아니라 언니였다. 일하기 바빴던 엄마는 수험생을 따라가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었고, 언니가 같이 가줬다. “언니네 애들 대입 시험 보러갈 때 내가 대신 가줄게!”라고 나도 기특한 동생처럼 말했다. 대학에 합격했다고 신혼인 언니네 부부의 선물을 받았고, 형부생일에는 귀여운 처제에 맞는 선물을 하기 위해 고심했다. 며칠을 고민하다, ‘BYC’와 ‘TRY’를 제치고 막 인기를 얻고 있던 ‘제임스딘’ 팬티세트를 선물했다. 이때가 우리 자매의 ‘아름다운 시절’이다. 가출과 자퇴를 했어도 여자는 결혼만 잘하면 되는구나! 하는 안도감이 들었다.

 

 

언니는 스물아홉에 이혼을 했다. 이혼 소식을 들었을 때, 다시 불안 초조함이 몰려왔지만, 그때는 가족의 문제, 언니의 문제, 나의 문제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있는 시기라 크게 두렵지는 않았다. 대신 눈물이 났다. 언니는 서른 살도 안 됐는데, 벌써 이혼까지 했구나. 언니 인생은 왜 이렇게 잘 안 풀릴까?

 

 

 

  1. 남일 수는 없지만, 남과 다르지 않은

이혼 후 언니는 미용사로 시작해 미용실 원장이 되었고, 지금까지 인기 있는 동네 미용실 원장으로 살아가고 있다. 길고 짧게 몇 번의 연애가 이어졌지만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지금 언니와 살고 있는 남자의 얼굴을 나는 모른다. 자식이 없고, 자기 가게를 계속 해오고 있기 때문에 언니는 탄탄한 경제력을 갖고 있다. 이제 우리는 집안 경조사에서 다른 사촌들처럼 만났다 헤어진다. 가끔 언니는 엄마를 ‘니네 엄마’라고 부른다. 이럴 때 감정이 뾰족하게 날카로워지기도 하지만 예민하게 반응하지는 않는다.

언니와 나는 아버지의 피를 나눈 자매이지만 우리가 함께 산 시간은 12년에 불과하다. 가출과 함께 언니의 이른 독립이 시작되었고, 때때로 우리는 가족 또는 자매의 모습을 유지하기도 했지만, 더 많은 시간을 연락 없이 지냈다. 아버지를 닮아 술을 좋아하는 우리는 술을 마시며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나누지만, 그걸 계속할 수는 없다.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지도 28년이 지났고, 언니와 나 사이에 공유하는 기억은 너무 적다.

 

 

‘날라리’ 소리를 들으며 격렬한 질풍노도의 시간을 보냈지만, 천성적으로 언니는 온순한 사람이다. 언니는 욕심 없고 놀기 좋아하는 아버지의 성격을 많이 닮았다. 지금은 놀기 좋아했던 ‘문제아’의 모습을 찾을 수 없이 근면 성실한 생활인으로 살아가고 있다. 언니의 생모는 아이가 돌 때 떠났다고 한다. 아버지는 인물 좋았고, 언니의 생모도 미인이었다고 한다. 이들을 닮은 언니 또한 미인이다. 늘 인기가 많았다. 언니는 재고 따지는 것 없이 정을 주는 사람이지만, 그 사랑이 오래가지는 않았다. 한 번의 이혼 후 또다시 이혼하게 될까봐 결혼도 망설여진다고 했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언니의 남자와 아는 체 하고 지내는 것이 의미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제 우리 아는 사이인가? 가족인가?’ 친근감이 들 때쯤, 언니는 이별을 알려왔고 나는 당황스러웠다. 그 과정의 우여곡절을 모르고 결과만 통보받으니 허탈감이 더 컸다. 이게 우리 자매의 모습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일들을 의논하지 않는다. 언젠가 한 번 언니의 연애문제로 크게 싸웠다. 왜 그렇게 끈기가 없는가? 혹은 남자 보는 눈이 왜 그렇게 없는가? 라는 비난의 말이 내 입에서 튀어나왔고, 시원찮은 언니의 대답을 듣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나와 버렸다. 며칠 후 그날 밤 찍힌 속도위반딱지가 날아왔다. 위반딱지에 찍힌 사진을 보며 사고가 날 수도 있었겠다는 아찔함 함께, 언니와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후회와 후련함이 동시에 들었다.

 

 

나는 언니와 자매가 아니었으면, ‘아는 언니’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언니는 사람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까탈스런 성격도 아니다. ‘폼생폼사’로 늘 술값이나 밥값을 내준다. 멋지게 나이 들어가고 있다. 누가 봐도 ‘좋은’ 언니다. 누가 싫어하겠는가? 그래서 나는 우리의 ‘액면가’대로 자매가 아니라 ‘남과 다르지 않은’ ‘아는 사람’으로 언니와의 관계를 정리했다.

 

 

 

  1. 아이러니

엄마와 나 사이의 껄끄러운 관계의 한 축에는 언니가 있다. 언니의 가출사건에 대해 나는 두 사람 다 원망했다. 왜 엄마는 애의 마음을 좀 살펴주지 못했을까? 왜 언니는 그렇게 철딱서니가 없었을까? 나는 엄마도 밉고, 언니도 미웠다.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고 나서, 나는 내가 콩쥐가 될 수 없는 팥쥐라는 것을 알게 됐다. 팥쥐답게 해볼까 싶었지만, 우리 형편에 욕심 부리고 말고 할 게 없었다. ‘속 깊은’ 팥쥐라는 반전 캐릭터가 내가 시도해볼 수 있는 배역이었다. 언니는 친구들과 함께 있으며 콩쥐 역할을 가끔 했으리라 본다. 가족서사에서 언니는 피해자고 엄마와 나는 가해자다. 그리고 ‘피해/가해’에 상관없이 우리는 모두 가난한 여자들이다. 우리 집 이야기는 전형적인 가난한 여자들의 이야기다.

 

 

나는 언니와 같은 방법으로는 우리 집에서 탈출할 수 없다고 생각했고 열심히 공부했다. 대학에 들어가고, 집안 문제는 나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못했다. 시나 소설에 가족 문제를 끈질기게 쓰고 또 쓰는 애들이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문학의 세계에는 나를 홀리는 것들이 많았고, 나는 심각하고 진지하게 허구의 세계에 빠져 들었다. 나는 되도록 집안 문제를 ‘사소한’ 문제로 만들어서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 것이 되게 하고 싶었다. 그 이전의 시간이 없었던 것처럼, 언제나 내 이야기는 스무 살, 대학교 일학년부터 시작됐다.

 

 

엄마와의 관계를 떠올리며 정말 나는 엄마와 문제가 없을까? 문제가 없다고 은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언니와의 관계도 동일하다. 지금 나와 언니는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거의 없다. 그러나 언니가 가출했고, 우리가 배다른 자매라는 것을 알게 되었던 때의 나에게 그 영향력은 너무 컸다. 오십대 중후반의 우리는 서로 다른 경험과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 언니의 미용일에 대해 나는 손님으로서의 경험 말고는 아는 것이 없다.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언니가 아는 것도 없다. 우리는 서로에게 간섭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각자 자기 길을 잘 가면 되는 사람들이다. 나쁘지 않다. 다만 아이러니하다는 느낌이 든다. 이럴 수가 있구나! 한때 나에게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던 사람이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문득 놀랍다.

 

 

이런 관계가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렇지 않은 건 아니다. 언니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어린 시절의 ‘나’를 떠올리지 않으려 애써왔다는 걸 알게 됐다. 왜 그때를 기억하지 않으려 했을까 생각해보니 슬픈 감정에 빠지기 싫어서였다. 그때 엄마와 언니에게 화를 내도 됐을 텐데, 그러지 않았다. 화를 낸다고 해결될 일은 없겠지만, 화를 내고 신경질을 부리며 울고불고 했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좀 편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게 가족의 모습일 텐데, 우리는 가족끼리 서먹서먹했다.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입을 꾹 다물지 않고 뭔가를 했다면, 나의 태도나 성격은 지금과 다르지 않을까? 지금의 내 모습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수치심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긴장하는 모습은 그때 만들어진 것 같고, 지금도 반복된다. 부끄럽다는 느낌을 들기도 전에 ‘들켜서는 안 돼’라는 방어벽이 먼저 작동한다. 나는 수치심을 다르게 처리하는 방법을 알고 싶다.

 

 

 

 

 

  1. 블랙박스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에게 벌어지는 일이 아니다. 우리가 겪는 일은 대부분 상당히 비슷하다. 출생, 사랑, 못생기게 찍힌 운전면허증 사진, 죽음. 우리를 구별하는 것은 우리가 각자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는 점이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다. (데이비드 실즈, 『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책세상, 2014년, 151쪽)

 

 

 

언니의 가출은 이제 위험성을 상실한 이야기다. 열두 살의 나에게는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되는 ‘위험한’ 이야기였다. 위험이 제거되고 나니, 슬픔이 보인다. 열두 살의 나는 불안했다. 어린 여자에게 거리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고, 집을 나간 언니는 공포감을 느꼈을 것이다. ‘계모소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엄마에게도 괴로운 시간이었다. 그때 우리 집에는 위로가 없었다. 위로할 수 없다는 게 내가 겪은 슬픔의 정체다. ‘달리 해볼 수도 있었을 텐데……’ 라는 생각을 해보다, 그럴 수 없기 때문에 슬픈 거라는 확인을 해본다. 어쩔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지지부진해 보이는 삶도 애쓰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언니에게 오랜만에 연락을 해볼까 하다 그만두었다. 나는 언니와 친척들의 경조사에서만 만나는 다른 사촌들처럼 지내기로 마음먹었다. 언니를 좋아하거나, 미워하지 않는다. 아쉬움은 있지만 못 견딜 정도의 안타까움은 아니다. 어떤 사건이 우리의 관계를 다시 묻게 될 때, 그때는 적극적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행동해보고 싶다. 그때의 감정에 따라 아쉬움이 남지 않는 방식으로 언니를 대하고 싶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일부러 만들지는 않겠다. 그럴 일은 아니다.

 

 

나는 언니의 가출을 걱정했고, 부끄러워했고, 슬퍼했지만, 그 슬픔을 드러내지 못했다. 드러내지 못했던 슬픔을 뒤늦게 느껴본다. 슬픔은 내 인생의 어떤 시기를 망각하려 했지만, 나는 거기에 무엇이 기록되어 있는지 보려고 블랙박스를 열어본다. 기억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떠오르고 내 모습이 더 드러난다. 기타, 펜팔, 스케이트, 전학, 친구와 버스 뒷자리에서 먹던 달짝지근한 살구맛 ‘피크닉’, 언니에게 받았던 용돈의 단맛. 기억할수록 궁금해진다. 나는 무엇을 겪어냈는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제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겠다. 나에게는 여섯 살 차이 나는 이복언니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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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가마솥
2023.09.05 | 조회 341
인문약방 에세이
  그날 시는 내게 무슨 일을 한 걸까   아이를 낳기 전까지 남편과 함께하는 삶은 가윗날 두 개가 맞물려 비로소 온전한 하나가 된 느낌이었다. 우리는 과거와 현재의 문제를 상대와 함께 자르고 해체해 재구성했고 혼자였을 때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가는 느낌에 더 ‘온전한’ 미래를 꿈꿨다. 그렇게 아이를 낳았다. 내게는 어떤 환상 같은 게 있었다.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는 말을 하는 많은 부부들과 우리 부부는 다를 거라는. 아이를 낳고 나서 환상이 허황된 자만임을 알았다. 물론 아이를 낳은 뒤에도 남편은 내게 어떤 반쪽 같은 존재였다. 아이가 중심인 세계에서 내가 밤이라면 남편은 낮인 느낌. 그와 함께해야 온전한 하루가 되는 느낌이기에 그는 여전히 소중했다. 그러나 남편은 같이 있어도 만날 수 없는 곳에 가 버린 사람 같았다. 나만 어두운 곳에 남겨두고 자꾸 밝은 곳으로만 떠나려고 하는 느낌. 화가 났다가 외로웠다가 무시했다가 반성했다가 체념했다가,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밤의 세계에 그는 낮의 세계에 있다고 받아들이고는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자는 깨달음 같은 것을 얻은, 그렇게 밤의 세계의 머물며 별과 달의 아름다움에 빠져 들고 더 이상 낮의 세계가 신경 쓰이지 않거나 그 세계를 신경 쓰려하지 않게 된. 이런 상태의 요약이 아이 때문에 같이 사는 부부라면 우리는 아이 때문에 같이 산다. 그런데 아이 때문에 함께 사는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확신과 각자의 세계를 존중하는 게 사랑의 또 다른 형태가 아닐까 하는 추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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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지
2023.09.05 | 조회 306
인문약방 에세이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내게도 비슷한 문제해결 본능이 있었다. 침묵과 거리두기가 정면충돌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우리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부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은 이런 공존 능력 덕분이었다.” (게일 콜드웰 , 먼길로 돌아갈까?, 문학동네, 2021, p51)       1. 30년 지기, K   감정의 여파로 비난이나 앙금, 부유물이 남지 않는 관계라니...이 문장으로 나는 오랜 친구인 K를 떠올렸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로 지금껏 근거리에서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어지는 시간들이 생겼고 나는 K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만큼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으로 두 번째 글쓰기는 K와의 “이 우정이 잘 되어가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와 드러나는 것 말고도 생각해 보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요즘 부쩍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진 난 베트남여행을 하는 K에게 면세 위스키를 부탁했고 귀국 후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중학교 물리교사인 K는 방학이라 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나도 바쁜 시기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동네 횟집의 평일 점심 특선에 감탄하며 이번 여름휴가지인 강원도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감정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 캐럴라인은 사안의 경중과 상관없이 달아나기보다 오히려 문제에 다가가는 사람이었다. 해결이 될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감정의 여파로 아무런 비난이나 앙금을 남기지 않았다. 내게도 비슷한 문제해결 본능이 있었다. 침묵과 거리두기가 정면충돌보다 훨씬 더 해롭다는 것을 나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수년 동안 우리 사이에 해결하지 못한 부유물이 남지 않았던 것은 이런 공존 능력 덕분이었다.” (게일 콜드웰 , 먼길로 돌아갈까?, 문학동네, 2021, p51)       1. 30년 지기, K   감정의 여파로 비난이나 앙금, 부유물이 남지 않는 관계라니...이 문장으로 나는 오랜 친구인 K를 떠올렸다. K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로 지금껏 근거리에서 교류를 이어가는 사이다. 공통의 관심사로 끊임없이 이어지던 우리의 대화는 최근 몇 년 사이에 끊어지는 시간들이 생겼고 나는 K가 내 인생에서 소중한 만큼 어떻게 우리의 대화를 이어가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있다. 그런 고민으로 두 번째 글쓰기는 K와의 “이 우정이 잘 되어가고 있나”라는 글을 썼다. 조금 더 생각해 보자와 드러나는 것 말고도 생각해 보는 건 뭘까 라는 질문이 내게 던져졌다.     요즘 부쩍 위스키에 관심이 많아진 난 베트남여행을 하는 K에게 면세 위스키를 부탁했고 귀국 후 동네 근처에서 만났다. 중학교 물리교사인 K는 방학이라 적당히 느긋하고 편안한 모습이었고 나도 바쁜 시기가 아니라 여유로웠다. 동네 횟집의 평일 점심 특선에 감탄하며 이번 여름휴가지인 강원도에서 있었던 인상 깊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새봄
2023.09.03 | 조회 233
인문약방 에세이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두려움_임신의 경험   ‘이 제도(‘제도로서의 모성’)가 빚어낸 가장 기본적이고 당황스러운 모순은 우리 여성들을 우리 몸 안에 가둠으로써 오히려 우리를 몸으로부터 소외시킨 것이다‘ (「우리 죽은 자들이 깨어날 때」, 130쪽, 에이드리언 리치)      30살에 첫 임신을 했다. 입덧으로 시작된 임신 기간은 나른함과 졸림, 움직임의 부자연스러움으로 인해 육체적으로 낯설고 불편한 시기였고, 임산부인 나에게 몇 가지 제약이 따라왔다. ’건강한 아기를 맞이하기 위해서 임산부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반드시 조심해야 한다: 술, 카페인, 흡연-이것을 어길 경우 태아에게 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 (2021. 헬스조선) 와 같은 문구들의 홍수 속에서 나는 더 이상 ’술‘과 ’담배‘, ’커피‘를 즐길 수 없었다. 한동안 피웠던 담배는 ’여자가 담배를 피우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했던 남편 때문에 끊은 뒤였지만 술과 커피는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음에도 가끔씩 아쉬웠다. 어느 날 주유소에서 주유를 하던 중 직원이 건넨 믹스커피를 무심코 받아서 마시려는데 옆에 앉아있던 남편이 갑자기 화를 내며 커피를 버리라고 했다. 남편의 관점에서 나는 임신 중임에도 불구하고 커피를 먹는 부주의한 여성(임산부)이었고, 결국 나는 커피를 마시지 못한 채 버려야만 했다.      4~5개월쯤에는 다니던 산부인과에서 산전 검사를 하게 되었다. 그 후 남편과 점심을 먹고 있는데 산부인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산전 검사 결과 일정 확률의 가능성으로 ’태아 기형‘의 위험성이 발견되었다는 것과 양수 검사를 해 정확한 확인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양수 검사는 선택 사항이었다. 검사를 받는다는 의미는 몸속의 태아가 ’장애‘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천유상
2023.09.03 | 조회 190
정화와 임수의 좌충우돌 가족-되기
  아무튼, 공동체력   2023.8.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백수에게도 번아웃이?   갭이어(Gapyear)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년의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후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질끈 눈을 감고 싶을만큼 즐비한 사건사고 때문에 뉴스, 신문, 솔직히는 책과도 거리를 두고 싶은 나날들이다.   두달 전 긴 제주여행 끝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백수에게 번아웃이 웬말이냐며 나조차 비웃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탁 양생프로젝트 1학기 에세이를 겨우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은 좀 더 이어졌고, 7월 중순이 되어서야 나아졌다. 나름 퇴직증후군을 겪고 있는가보다 했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짧고 길게 번아웃은 찾아왔었다. 사치라며 뒤로 미루거나 지는 척 대충 겪어내면서 미봉해왔을 뿐이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에게도 운동과 체력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나면, 상념은 사라지고 근육의 통증과 심장 박동만이 남는 순간이 온다.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만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지고 볶았던 많은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돌잡이의 매직   학창시절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돌잡이로 연필과 공을 동시에 잡았던 운명 탓이려나? 초딩 때는 하루 이틀 상간에 수학경시대회와 육상대회를...
  아무튼, 공동체력   2023.8.31. 정화편 Designed by Cho-hui           (앞으로 꽃길만 걷고 싶은) 백수 꿈나무 살림의료사회적협동조합 조합원, 희망법/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한국성폭력상담소 후원회원 문탁에서 함께 공부하던 임수를 꼬드겨 '쫌 다른 가족-되기' 실험 중 소박하게 꾸린 정임합목 양생하우스에서 앎과 삶에 관해 질문하며 살고 있다.     백수에게도 번아웃이?   갭이어(Gapyear)의 중간 지점을 지나고 있다. 20년의 직장생활을 꾸역꾸역 마무리한 후 맞는 꿀맛같은 휴식이다...라고 쓰고 싶지만, 질끈 눈을 감고 싶을만큼 즐비한 사건사고 때문에 뉴스, 신문, 솔직히는 책과도 거리를 두고 싶은 나날들이다.   두달 전 긴 제주여행 끝에 번아웃이 찾아왔다. 백수에게 번아웃이 웬말이냐며 나조차 비웃었지만,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문탁 양생프로젝트 1학기 에세이를 겨우 마무리하고 나서도 번아웃은 좀 더 이어졌고, 7월 중순이 되어서야 나아졌다. 나름 퇴직증후군을 겪고 있는가보다 했지만, 사실 직장생활을 하던 중에도 짧고 길게 번아웃은 찾아왔었다. 사치라며 뒤로 미루거나 지는 척 대충 겪어내면서 미봉해왔을 뿐이었다.       <미생>의 장그래처럼 나에게도 운동과 체력은 주저앉고 싶을 때마다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가뿐 숨을 몰아쉬며 달리고 나면, 상념은 사라지고 근육의 통증과 심장 박동만이 남는 순간이 온다. 땀에 흠뻑 젖은 몸뚱이만이 지금 이 순간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고, 지지고 볶았던 많은 것들이 하찮게 느껴졌다.     돌잡이의 매직   학창시절에도 공부와 운동을 병행했다. 돌잡이로 연필과 공을 동시에 잡았던 운명 탓이려나? 초딩 때는 하루 이틀 상간에 수학경시대회와 육상대회를...
무사
2023.08.31 | 조회 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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