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양생에세이②] 나의 페미니즘

하현
2021-07-09 15:02
244

소녀를 구하라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서 다닌 첫 직장은 성폭력상담소 부설 청소녀 쉼터였다. 성폭력 피해 10대,20대 청소녀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쉼터의 간사로 활동했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모두 해 먹고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를 보내는 것이 일이었다. 90%가 친부에 의한 성폭력이었고, 유산 경험이 있으며, 어릴 때부터 정서적 학대로 인해서 지능이 발달하지 못해 지적발달장애를 가졌고,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받는 딸아이를 외면하는 친모를 가진, 청소녀들이, 거기 있었다. 그 때부터 성(性)에 관심이 높아졌다. 성폭력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성이 무엇인지, 성차가 무엇인지 배웠다. 그 즘 레즈비언과 게이를 알게 되었고 트랜스젠더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페미니즘을 배웠다. 양성평등을 위해서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정책을 만들어내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성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을 위한 것이었다. 남성보다 차별받는 여성이 좀 더 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친구, 레즈비언

 

‘여성’이 좀 더 잘 사는 세상이 궁금했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여성단체에서 실시한 아카데미에 참여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예술분야를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배웠다. 그리고 많은 레즈비언을 만났다. 울퉁불퉁하게 생겼을 줄 알았던 그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대화가 잘 되었고 유쾌했으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벽장 속에 갇혀 있어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으며 아웃팅 당할까봐 전전긍긍한다고 말하는 그들과 나는 친해졌다.

 

 

 

 

퀴어문화축제 내 별도로 구성된 퀴어전시 기획팀으로 일하게 되면서 일반과 이반들 사이에서 수많은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처음 본 드랙킹쇼는 충격적이지 않았다. 남장을 한 여자 사람이 나와 온 몸을 다해 자신의 라인과 출렁거림을 보여주었다. 사람들은 환호성을 질렀고 술에 취한 퀴어들은 난리법석이었다. 매력을 느끼지 못한 것은 내 안의 포비아가 있기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 즐기지 못한 나를 보면서 멍하게 무대 위의 그 여자 아니 남자 아무튼 그 사람을 쳐다보기만 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네팔여행 때 밤거리에서 본 MTF(male-to-female)들. 시내 으슥한 곳을 서성였고 무엇을 하려는지 뻔히 알면서 서로가 서로를 외면해야 했던 순간들이 지나쳐갔다. 뼈 속까지 레즈비언이었든 정치적 선택을 위한 레즈비언이었든 수많은 언니들은 곳곳에 있었고 동료가 되었고 친구가 되었다. 그러나 트랜스젠더는 텔레비전에서만 만날 뿐이었다. 하리수를 보았을 때 느꼈던 감정은 복잡했다. 그의 당당함이 불콰했고 그녀의 섹시함이 아름답지 못했다. 그렇게 내 안의 트랜스젠더의 포비아는 형성되었던 듯 싶다.

 

 

 

 

래팸 - 열 명이 부랄을 떼도 여자가 아니다.

 

고 변희수, 고 김기홍의 자살이 잇따르면서 혼란스러웠다. 변희수 전 하사가 살아있을 때는 그의 목소리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의 행동에 박수를 보내는 사람도 있지만 굳이 군복무 중에 성전환 수술을 했어야했냐는 비난 어린 목소리도 있었다. 그의 선택이었으니깐 그러려니 했었다. 강제 전역 취소를 위한 행정소송까지 진행하고 있으니 군을 이기지는 못해도 알아서 싸우려니 했었다. 그리고 김기홍씨의 사망에 이어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소식이 이어진 것이다. 애도를 해야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자살을 하면 사람들은 말이 많았다. 그 힘으로 살아남겠다. 세상과 맞서 싸우겠다고. 그런데 그 힘으로 살아갈 마음이 없어졌으니 스스로 세상을 버린 게 아닌가. 세상을 등지게 만드는 세상에 화가 났다. 그 자살은 분명 자의가 아닌 타의인데 말이다. 학살의 역사를 배우면서 인간의 죽음에는 어떠한 명분도 없음을 알게 되었지만 이번 자살에는 편견의 학살이 만연했다. SNS에서는 난리가 났다. 트랜스젠더를 혐오하고 배제하는 래디컬 페미니즘(Trans-Exclusionary Radical Feminism) TERF(터프) 계열의 사람이 고 변희수 전 하사에 죽음에 대해 이렇게 조롱했다.

 

“열 명이 부랄 떼고, 스무 명이 재기를 해도 여자가 아니다. 성별을 바꾼다는 희망 없는 일에 매달려 사람 죽어나가는 꼴을 보면서 그걸로 운동 삼는 놈들이 인권 운운하는 걸 보면 욕지기가 난다. 여자가 아님. 응 여자가 아님. 삼천 삼백 명이 죽고 그걸로 장례를 지내고 깃발을 꽂고 임을 위한 노랜지 뭔지 밤새도록 불러도 응 여자가 아님. 한 남자가 죽었네. 끝.”

 

 

퀴어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반박글이 도배를 했으며 셀 수 없는 사람들이 터프의 발언에 비난의 말을 쏟아냈다. 그러나 비난만 있진 않았다. 그 터프의 말에 동의하고 박수치는 사람들 또한 있었다. 사람이 죽었는데 닥치고 일단 추모했으면 좋겠다. 터프는 생물학적인 성만 인정하고 그 누구보다 더 이성애적이고 이분법적인 사고로 젠더를 인식하는게 아닌가.

 

 

 

 

 

n개의 성

 

젠더는 그 자체가 일종의 생성이거나 활동이 될 것이고, 그 젠더는 명사이거나 실재하는 것, 혹은 정태적 문화의 표식으로 간주되기보다는 부단히 반복되는 행동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야 할 것이다. 젠더는 분명히 성의 이분법이 부과한 이원적 한계를 뛰어넘어 증식될 잠재력 있는 일종의 행위이다." (주디스 버틀러, <젠더트러블>, p295)

 

 

20년 전 나의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을 위한 페미니즘이었다. 한 청소녀가 자신은 레즈비언이라고 하면서 자신과 만나는 많은 청소녀들을 보호하고 아껴줘야 한다 생각하고, 행동한다. 이는 부치의 허세라고 생각했다. 남성들이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허세 말이다. 버틀러는 말한다. 부치와 팸을 이성애적 교환의 ‘복제’나 ‘모방’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들 정체성의 성애적 의미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라고. 그 정체성의 의미란 자신을 가능하게 만드는 지배적 범주를 새로운 의미로 만들면서 내적인 복잡성을 띠게 되었다는 말이다. 젠더의 표현물 뒤에는 어떠한 젠더 정체성도 없다. 정체성은 결과라고 알려진 바로 그 ‘표현물’ 때문에 수행적으로 구성된다. 모든 젠더는 생물학적 섹스에 기초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적으로 구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생물학적 원본은 없다. 반성한다. 그 청소녀에게 사과한다.

 

레즈비언은 여성이 아니며, ‘제3의 성’이라고 말하는 모니크 위티그. 남녀 구분이 이성애라는 경제적 필요에 부합하고, 이성애 제도에 자연스러운 구실을 제공하지 않는다면, 인간의 몸을 남성과 여성으로 나눌 이유가 없다고도 한다. 섹스와 젠더는 아무 차이가 없으며 ‘섹스’의 범주는 그 자체가 젠더화된 범주이고 전적으로 정치적으로 부과된 것이며 자연화되어 있지만 자연스럽지도 않다는 것이다. 레즈비언은 여성과 남성 간의 이분법적 대립을 초월하여 레즈비언은 남자도 여자도 아니라고 모니크 위티그는 주장한다. 레즈비언은 성을 갖지 않는 것이다. 성의 범주를 초월하고 거부하는 것이다. 섹스는 젠더라고 했다. 성의 범주를 거부하니 젠더 역시 거부하는 것이 아닐까. 젠더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하더라도 그것을 의미화하지 않겠다는 것이 아닌가. 레즈비언이 제3의 성이라면, 게이는 제4의 성이고, 중성화한 나의 반려묘는 제5의 성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N개의 성이 존재하지 않겠는가.

 

 

소중한 나의 타자

 

나의 둘째 고양이 봄봄이를 입양하고 6개월이 지나서야 암컷임을 알았다. 암컷인 첫째보다 사냥 본능이 강했고 골격이 컸으며 점프실력이 뛰어났다. 개구쟁이에 사고뭉치여서 수컷이니깐 그러려니 했던 나의 편견들이 무너졌다. 혼란스러웠다. 견고한 젠더기준은 어디서부터 형성되어 이렇게까지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모를 일이었다. 모든 생명의 근원을 하나로 정체화시켜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나의 고정된 시선을 흩뜨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젠더의 속성과 행위들, 몸이 자신의 문화적 의미를 보여주고 생산하는 다양한 방식들이 수행적인 것이라면, 어떤 행위와 속성이 재단될 수 있는 선험적 정체성이란 없다. 진정하거나, 거짓된 젠더 행위, 사실적이거나 왜곡된 젠더 행위 또한 없다. 결국 진정한 젠더 정체성이라는 가정은 규제가 만든 허구임이 드러날 것이다. (위의 책, p350)

 

 

정체성의 정치학은 모든 정치적 권익을 주장하는 운동에는 그 주체가 분명한 범주가 있어야 한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버틀러는 그런 단일한 범주로서의 정치적 주체가 그 주체에 들어가지 못하는 소수자들을 만들기 때문에 이런 정체성의 범주는 다양성과 다변성으로 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나의 정체성의 범주는 없다. 그래서 정체성은 비정체성으로 변화해야 한다. 게이,이니깐 그의 찌질함에 대해서 그러려니 했다. 그의 예민함에 둔감하려 애썼다. 새끼 손가락으로 자신의 좋고 싫음을 표현하는 게이 후배가 마뜩찮았다. 어느 날 드랙퀸으로 변신한 그가 신선했고 정체화,란 무엇인가를 나에게 가르쳐주었다. 인정해야 했다. 서로 다른 것에 말 걸고 공감하고 공존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정체성이란 있다가도 없어지고 없다가도 생기는, 유동적인 것이었다. 젠더의 비정체화는 나의 삶에 필수조건이 되었다.

 

암컷이었던 나의 두 고양이는 중성화수술을 하고서 암컷도 수컷도 아닌 고양이가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묻는다. 암컷이에요? 수컷이에요? 단지, 루나고 봄봄일 뿐이다. 단지, 우리는 공존하고 있을 뿐이다. 단지, 나의 소중한 반려종일 뿐이다.

 

 

 

 

http://moontaknet.com/?page_id=5254&mod=document&uid=33691

댓글 2
  • 2021-07-09 21:50

    n개의 성을 이야기하면서도 저 역시 레즈비언은 여자고 게이는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섹스와 젠더가 아무 차이가 없다는 모니크 위티그의 이야기는 사실 제게 좀 충격이네요.

    오랫동안 젠더를 사회적인 것으로 섹스를 생물학적인 것으로 생각해 온 것 자체가 성에 있어서 생물학적 원본을 은연중에 전제하고 있었다는 걸 이 글을 읽으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는 글입니다. 잘 읽었습니다.

     

  • 2021-07-10 09:50

    하현님애 대해 아직 모르는 게 많아.....궁금증이 만발하네요^^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진짜' 군인은 없다. - <지.아이.제인>(’97), <MBC 진짜 사나이 95회:여군특집>(’15), <엣지 오브 투모로우>(’14) 여성 군인 재현 분석        누구에게나 말하기 싫은 이야기가 하나쯤은 있다. 너무 자주 말해서든 말하기 어려워서든. 나에게는 내 직업과 군대가 그렇다. 그래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꾸준히 쓰고 말하려는 이유는 어떻게든 ‘공부하는 몸’으로, 현재의 배움을 바탕으로, 내 언어로 풀어내고 싶어서다. 전쟁, 평화, 폭력 등등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아직 ‘내 몸에, 내 생각에, 내 삶에 ‘개념’을 붙여가는 일’(정승연, 세미나책, 193)이 어렵다. 이번에도 할 수 있는 만큼만. 그래서 이 글은 딱 그만큼의 에세이다. 새로운 현상을 분석한다거나 궁금증에 답을 하는 에세이는 아니다.(문탁샘께서 제목이 길다고 하셔서 바꿨습니다. 원제 : 여성 군인, '진짜 사나이', '어머니', '피해자', 무엇으로 명명되든 재현을 넘어 수행으로)      2006년 페미니즘을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난 내 직업이 불편해졌다. ‘너 역시 군사주의와 성별 이분법적 사고에 갇혀 있다’고 일갈하는 페미니즘을 그냥 외면하고 싶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대다수의 문제들이 ‘가부장제-자본주의-군사주의’*의 견고한 동맹에서 비롯되었다는 페미니즘의 진단에 동의하면서 내 직업 현장에 대해 단순히 불편함을 토로하기보다 진지한 고민을 해보고 싶어졌다.    전사(戰死)와 전사(戰士)      역사적으로 여성은 늘 전쟁의 한가운데 있었지만 피보호자 아니면 피해자로 재현되었다. 행주치마로 돌을 나르고(공병/포병), 부상 장병을 치료하며(의정/간호), 전장에서 밥을 지었지만(병참) 여성은 전투를 ‘지원’했을뿐 전사로 호명되지는 못했다. 직접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여성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환향녀와 전시 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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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a
2021.07.12 | 조회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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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가 없었다   나는 60세. 전형적인 가부장제 가정의 딸로 태어나, 남녀차별의 한복판에서 자랐다. 나는 공교육에서, 더 빈번하게는 혈연관계 아버지로부터 순결교육을 받았다. 나는 한치의 의심도 없이 이성애자가 되어 결혼을 했고, 아이를 낳았다. 결혼 이후 독박육아가 시작되면서 나는 남/녀, 가부장의 모순이 얼마나 폭력적이며 심각한 문제인지를 깨달았다. 그때의 나는 우울하지 않으면 늘 화가 나 있었다.   90년대 초. 남편의 구타와 학대로 죽게된 아내들의 사건이 연일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었을 때, 나는 여성의전화에서 상담원 활동을 하게 되었다. 같이 살던 남자에게 향하는 화를 사회적으로 풀고 싶었다. 전화 상담은 너무나 많은 여성들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차별과 폭력의 고통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었다. 전화기 속의 수많은 그녀들과 나는 똑같은 가부장 이데올로기 희생자라는 생각으로 연대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절반의 여성이라는 동질감과 연대의식이 왜 나를 페미니스트로 만들지는 못했을까? 아마도 그것은 나에게 페미니즘 운동으로 뛰어들게 만들 수 있는 이론적 무기가 없었기 때문 아니었을까? 상담을 하면 할수록 나는 점점 더 남성혐오자가 되어 갔고, 남/녀 대립으로 치닫기만 하는 감정적 언어와 화법밖에 쓰지 못하는 현실이, 나의 한계가 지겨웠다. 그래서 때려치웠다.       곤란함과 낯섬   해러웨이의 선언문을 읽은 후 나는 뭐라 말할 수 없는 곤란한 감정에 휩싸였다. 단순히 오랫동안 모호한 채로 방치된 과거의 경험이 다시 소환되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물론 한편으로는 과거의 내가 왜 지쳐 나자빠질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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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불빛
2021.07.09 | 조회 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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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를 구하라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서 다닌 첫 직장은 성폭력상담소 부설 청소녀 쉼터였다. 성폭력 피해 10대,20대 청소녀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쉼터의 간사로 활동했다. 아침, 점심, 저녁 세 끼를 모두 해 먹고 아이들을 깨워서 학교를 보내는 것이 일이었다. 90%가 친부에 의한 성폭력이었고, 유산 경험이 있으며, 어릴 때부터 정서적 학대로 인해서 지능이 발달하지 못해 지적발달장애를 가졌고, 지속적인 성폭력 피해를 받는 딸아이를 외면하는 친모를 가진, 청소녀들이, 거기 있었다. 그 때부터 성(性)에 관심이 높아졌다. 성폭력에 대한 공부를 시작하면서 성이 무엇인지, 성차가 무엇인지 배웠다. 그 즘 레즈비언과 게이를 알게 되었고 트랜스젠더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페미니즘을 배웠다. 양성평등을 위해서 페미니즘이 존재하는 것이라고. 성폭력 없는 사회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정책을 만들어내고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성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랬다. 페미니즘은 양성평등을 위한 것이었다. 남성보다 차별받는 여성이 좀 더 잘 사는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운동이 페미니즘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친구, 레즈비언   ‘여성’이 좀 더 잘 사는 세상이 궁금했고 그러한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여성단체에서 실시한 아카데미에 참여해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문화예술분야를 바라본다는 것은 무엇인지 배웠다. 그리고 많은 레즈비언을 만났다. 울퉁불퉁하게 생겼을 줄 알았던 그 사람들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었다. 대화가 잘 되었고 유쾌했으며 자신의 성 정체성에 대해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벽장 속에 갇혀 있어 커밍아웃을 하지 못했으며 아웃팅 당할까봐 전전긍긍한다고 말하는 그들과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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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현
2021.07.09 | 조회 244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1. 정체화된 페미니즘의 현장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긍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고, 내가 조금 더 나에 가깝게 설명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지 못했다. 공공장소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의식적으로 작게 소리 냈고,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로 번역하기를 꺼려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페미니스트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오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와 메갈을 동어로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인 메갈로 오해받기 싫었다. 또, 페미니스트라면 PC(Political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하거나, 탈코르셋을 한 외관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PC하기엔 너무 흔들리는 사람이었고, 매일 화장을 하며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페미니즘을 그렇게 생각했다. PC하고, 모두가 숏컷하고 바지 입는, 혹은 메갈인 것.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온 친구가 나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아? 라고 말한 날이 있었다. 그때 친구는 자신의 발언이 언피씨하다고 바로 정정했지만,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런 게 있었다. 페미니스트다운 것, ‘진짜 페미니스트’의 이미지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서점에서 일하게 됐을 때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라는 책을 보게 된 적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낙인의 의미로 페미니스트 되기는 밥 먹듯이 쉽지만, ‘진짜’ 페미니스트는 너무도 숭고하여 셀수 없이 많은 판관들의 인증을 거쳐야 한다. 나는 ‘진짜’를 지향하지 않는다. ‘진짜’가 되려는 윤리적 욕망은 때로 타인을 폭력적으로 규정짓고 배척하며 제압할 위험이 있다. (이라영,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들어가는...
1. 정체화된 페미니즘의 현장   페미니즘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그게 뭔지는 몰라도 긍정적인 지지를 보냈다. 페미니즘을 통해 새로운 시선을 얻을 수 있었고, 내가 조금 더 나에 가깝게 설명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꽤 오랜 시간동안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지칭하지 못했다. 공공장소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의식적으로 작게 소리 냈고, 페미니즘을 여성주의로 번역하기를 꺼려했다. 그것은 무엇보다 페미니스트라고 말했을 때 사람들이 나를 오해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와 메갈을 동어로 쓰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기적이거나 폭력적인 메갈로 오해받기 싫었다. 또, 페미니스트라면 PC(PoliticalCorrectness·정치적 올바름)하거나, 탈코르셋을 한 외관을 가져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PC하기엔 너무 흔들리는 사람이었고, 매일 화장을 하며 죄책감을 가지는 사람이었다.   나는 페미니즘을 그렇게 생각했다. PC하고, 모두가 숏컷하고 바지 입는, 혹은 메갈인 것. 미용실에서 머리를 자르고 온 친구가 나 진짜 페미니스트 같지 않아? 라고 말한 날이 있었다. 그때 친구는 자신의 발언이 언피씨하다고 바로 정정했지만, 우리의 머릿속에는 그런 게 있었다. 페미니스트다운 것, ‘진짜 페미니스트’의 이미지 말이다. 시간이 흘러 내가 서점에서 일하게 됐을 때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라는 책을 보게 된 적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낙인의 의미로 페미니스트 되기는 밥 먹듯이 쉽지만, ‘진짜’ 페미니스트는 너무도 숭고하여 셀수 없이 많은 판관들의 인증을 거쳐야 한다. 나는 ‘진짜’를 지향하지 않는다. ‘진짜’가 되려는 윤리적 욕망은 때로 타인을 폭력적으로 규정짓고 배척하며 제압할 위험이 있다. (이라영, 『진짜 페미니스트는 없다』 들어가는...
현민
2021.07.09 | 조회 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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