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시체가 되고 싶어] 연재를 시작하며

서해
2024-04-15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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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또 죽음이야?

 

요즘 매일 ‘죽음’이 제목에 포함된 책을 읽고, ‘death’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인스타 계정을 팔로우하고, ‘장례식’을 검색하고 있는 나에게 왜 자꾸 그런 것만 보느냐고 아이가 묻는다. 생각해 보니 그 전에도 죽음 관련 책을 많이 보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죽음에 몰두(?)하게 된 것은 3개월이 채 되지 않는다.

 

회사를 그만 두어야겠다고 생각할 즈음 내가 관심을 두고 있던 단어는 ‘돌봄’이었다. 계기는 이창재 감독의 다큐멘터리 <목숨>(2014)을 보고 나서이다. 영화는 말기암 환자들을 위한 작은 호스피스 병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곳에서는 남은 삶을 둘러싼 환자들의 다양한 행태가 펼쳐진다. 자신이 없는 결혼식을 치를 딸을 위해 미리 가족사진을 찍으며 마지막을 정리하는 사람도 있고, 막걸리도 마시고 짜장면도 먹으며 일상의 즐거움을 포기하지 않는 누군가가 있는 반면 치료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하고 다시 병원으로 향하는 누군가도 있다. 그리고 그들의 곁을 지키는 호스피스들과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영화를 본 후 몇 가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마지막을 준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암이라는 병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 불확실하고 고통스러운 항암치료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의 돌봄, 호스피스가 매력 있다는 것이었다.

 

영화 <목숨> 이창재 감독, 2014

 

돌봄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23년 ‘취약한 몸들의 연대와 돌봄사회’라는 문탁의 양생 프로젝트에 발을 들인 후  마침내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나이듦연구소>를 만나게 되었다. 이곳은 나이듦, 돌봄, 죽음 그리고 애도를 주제로 존엄하게 나이 들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기 위해 공부하고 실천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문탁의 활동 단위이다. 내 관심사와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곳을 만나게 되다니 이것은 운명이다. 그리고 24년 1월 <세 가지 키워드로 읽는 생태적 죽음>이라는 강좌를 통해 케이틀린 도티를 읽게 되면서 나에게 좀 더 구체적인 방향지시등이 켜졌다. ‘분해’, ‘먹힘’, ‘좋은 시체’ 중에서 ‘좋은 시체’라는 도발적인 키워드가 바로 내 담당이 되었으니까.

 

 

뜻밖의 죽음이라고요?

 

케이틀린 도티는 시카고대학에서 중세학을 전공하였으나 죽음, 시체, 장례식 등에 대한 호기심을 뿌리치지 못하고 관련 업계에 6개월간 양동이 몇 개 분량의 이력서를 보낸 끝에 샌프란시스코의 화장장에 취직한다. 그는 일을 시작하자마자 침대에 누워있는 시신을 보며, 마치 마사지사가 손님을 대하듯 고인의 이름을 부르면서 대화를 나눈다.(도티가 고인을 다루는 모습은 발랄하고 엉뚱하면서도 경건해서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미소 짓게 된다. 멋진 언니!) 6년간 매일 수십 구의 시체를 나르고, 태우고, 분쇄하며 시신들과 나눈 이야기를 담은 책이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Smoke Gets in Your Eyes)』(2014)이며, 그 후 세계 각지의 장례 풍습, 고인과 관계 맺는 다양한 방식을 취재하여 정리한 책이 『좋은시체가 되고 싶어(From Here to Eternity)』(2017)이다. 또한 그는 200만명의 구독자를 거느린 ‘장의사에게 물어보세요(@AskAMortician)’를 운영하는 파워 유튜버이자 강사로 활동 중이다.

 

도티가 이 책들과 강연을 통해 일관되게 주장하는 바는 먼저 죽음을 긍정(Positive Death)1)해야 한다는 것이다. 죽음에 대한 긍정이란 누군가의 죽음을 기뻐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죽음과 관련된 슬픔과 경험에 대해 자유롭게 말할 수 있어야 하며 죽어가는 과정 그리고 죽은 후에도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2)

 

웨스트윈드3)에서 장례를 준비할 때, 고인의 딸이 내 눈을 깊이 들여다보며 말했다. “장례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가 참 힘들군요. 그건 오로지 엄마의 죽음이 너무 뜻밖의 것이었기 때문이에요. 당신도 이해하셔야 해요. 엄마는 호스피스에 겨우 반년 계셨거든요.” 이 여자의 어머니는 호스피스에 반년 동안이나 있었다. 그건 180일 동안 어머니가 실제로 점점 죽어가고 있었다는 얘기다. 어머니가 호스피스에 가기 오래전부터 아팠다는 것을 딸은 알고 있었다. 왜 그녀는 그 동네에서 가장 좋은 장의사를 찾아 가격을 비교해보고, 친구들과 가족에게 물어보고, 무엇이 법적인 일이고 가장 중요한 일인지를 생각해보고 ‘자신이 죽으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를 어머니에게 물어보지’ 않았는가? 어머니는 죽어가고 있었고, 딸은 그걸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안 하겠다고 하고 나서 그것을 “뜻밖의” 일이라고 부르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
『잘해봐야 시체가 되겠지만』 (케이틀린 도티, 반비, 166) 

 

 

화장장에서 준비되지 않은 죽음을 맞은 사람에 대한 일화이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딸이 어머니의 죽음과 장례에 대해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그저 “뜻밖의 일”이라고 변명한 것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드는가. 도티에게 야단을 맞지 않을 정도로 준비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우리 주변에 얼마나 될까. 나 역시도 그러했고 아마 대부분은 그 순간이 닥치면 장례지도사에게 의존하여 상조업체가 제시하는 상품을 선택한 후 그의 지도에 따라 장례를 진행하게 될 것이다.

 

죽음에 대한 관심이 있다거나 관련된 책을 읽는 것만으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나 관계 맺는 방식을 바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유는 우리가 평소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며, 누군가의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것은 더욱 더 ‘차마 하지 못할 말’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관혼상제의 다른 세 분야에 비해 상례에 관해서는 유독 새로운 방식에 대한 시도나 아이디어가 부족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죽음을 말하지 못하는 것, 또는 말하지 않는 것, 그것이 문제다.

 

 

당신의 장례희망은 무엇인가요

 

도티를 만나기 전 나에게 죽음의 문제는 ‘죽음에 이르는 길’에 대한 화두였다. 내가 어떻게 하면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에 천착했다면 도티는 죽음 이후의 의례, 산자와 죽은자의 관계맺음(애도)를 비롯하여 시신의 처리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고 일러준다. 죽음을 탐구하는 일은 우리가 생태계의 일원임을 자각하고 그 순환의 고리 속으로 잘 돌아가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확장될 수 있다. 나는 영혼불멸 보다는 이생이 끝이라고 믿는 편에 속하지만 순환이라는 의미에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리베카 긱스는 “모든 생명의 죽음은 그것이 새 생명의 잉태에 기여하도록 설계되어 있다”4)고 했다. 내 육신의 소멸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생명의 탄생으로 이어져야 한다. 그러려면 결론은 역시 ‘좋은 시체’가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좋은 죽음 교단(The Order of Good Death) 홈페이지(https://www.orderofthegooddeath.com)

 

 

도티는 좋은 죽음 교단(The Order of Good Death)을 만들어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한 죽음의 문제를 다음 네 가지로 지적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행동에 참여할 것을 권한다. 

 

- 환경(Environmental) : 지구를 오염시키는 장법
- 비용(Financial) : 상업적인 장례업 확장으로 인한 과다한 비용 지출
- 의례(Ritual) : 충분한 애도가 없는 장례식
- 죽음을 맞이하는 권리(Access) : 인종, 성별, 사회적 계층에 따른 불평등한 죽음

 

모두 고개가 끄덕여지는 내용들이다. 우리나라의 화장률은 이미 90% 이상인데 화장시설은 부족하고 게다가 화장 시에는 대기오염물질이 발생된다. 화장을 마친 후에도 매장을 위한 장소가 모자란 상태이며, 산분장이 허용된다고 하나 장소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한 고가의 장례식장과 강매되는 각종 서비스들, 고인 중심이 아닌 상주 중심의 조문 문화, 다양한 가족형식을 고려하지 않은 장례의식 등은 우리가 평소에 고민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고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다.

 

나는 도티의 의견을 참고하여 우리나라에서 ‘좋은 시체가 되기 위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한다.

즉, 삶의 주도권을 놓지 않은 상태에서 맞이하는 죽음에 관해, 고인과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작은 장례식에 관해,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는 혹은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생태적 장법에 관해, 퀴어들도 배제되지 않는 애도의 평등함에 관해.

 

글을 준비하면서 우연히 악뮤 이찬혁의 ‘장례희망’이라는 노래를 알게 되었다. MZ세대가 죽음과 장례를 이야기하는 것이 놀라웠다. 그렇다면 386, X, Y세대에게 장례희망은 좀 더 친숙한 단어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한 번 들어보시라.

 

 

아는 얼굴 다 모였네 여기에 / 한 공간에 다 있는 게 신기해 / 모르는 사람이 계속 우는데 /
누군지 기억이 안 나 미안해 / 종종 상상했던 내 장례식엔 / 축하와 환호성 또 박수갈채가 /
있는 파티가 됐으면 했네 / ...... / 한쪽엔 내가 생전 좋아했던 / 음식들이 놓여있네 마치 뷔페 /
꾸준히 당부해 두길 잘했네 / 좋은 기억으로 남겨주길 바라 .......
<장례희망> 이찬혁 작사, 노래

 

 


1) 케이틀린 도티는 좋은죽음교단에서 죽음긍정운동(Positive Death Movement)을 펼치고 있다.

2) 죽음긍정운동(Positive Death Movement), https://www.orderofthegooddeath.com/death-positive-movement의 교리

3) 저자가 처음 일했던 캘리포니아 화장 회사의 이름

4) 리베카 긱스, 『고래가 가는 곳』(2021), 프롤로그

댓글 14
  • 2024-04-15 07:13

    나이듦에서 빠질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게 되었네요, 서해님의 안내를 따라 다양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보면 좋겠습니다 ~

  • 2024-04-15 08:16

    나의 장례희망에 대해 찬찬히 생각해볼 기회네요
    죽음에 대한 생각을 좀더 구체적으로 해볼수 있겠어요
    고맙습니다~

  • 2024-04-15 08:50

    서해님의 새로운 연재 기대됩니다!
    좋은 시체가 되고 싶다니.. 많은 이야기 들려주세요!

  • 2024-04-15 09:01

    서해님의 글을 보니 '나의 해방일지'의 염창희가 생각나네요~ 이제야 내 길을 찾은거 같다.

    서해님을 따라 장례희망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어요~^^

  • 2024-04-15 09:14

    저도 케이틀린 도티의 책을 읽은 후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퇴비장이 가장 마음에 든다고 했더니 다들 깜놀하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서해님의 첫번째 글을 읽고 드는 생각, 가까운 사람들과 죽음과 죽음 이후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해야겠다 싶군요.ㅎ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 2024-04-15 09:21

    언제 죽을지 모르겠지만, 죽음의 순간으로부터 역으로 내 삶을 거슬러 올라와 본다면 지금 이 순간에 내 생과 죽음의 비율은 어떨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니 죽음이 삶 속에 늘 함께 한다는게 실감납니다. 서해님 글과 함께 죽음에 대한 생각을 같이 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 글 기다릴께요~

  • 2024-04-15 09:41

    “뜻밖의 일”이란 말을 하지 않으며 죽음을 맞고 치르고 싶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 2024-04-16 05:21

    고인과 그의 주변 사람들에게 초점을 맞춘 작은 장례식이라. 궁금하네요. 좋은 시체라는 키워드를 들고 시작한 서해샘의 발걸음이 우릴 어디로 끌고 갈지도.

  • 2024-04-17 03:18

    <장례희망>이라는 노래를 들을 때, 앗, 이런 것도 있다니.... 했는데, 정말 고민해 봐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서해샘의 글과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이 될 것 같아서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 2024-04-22 12:12

    잘 읽었습니다. 서해님의 차분한 안내를 저도 진지하게 따라가봐야겠네요. 다음 글도 기대됩니다. 고마원요~

  • 2024-04-23 09:21

    저는 죽으면 무조건 '제주도로 보내줘~ ' 였는데, 부수적인 것들도 고민을 해봐야겠네요.

  • 2024-04-26 16:45

    90이 되어가는 부모님을 뵈며 생각만 했지, 죽음에 대한 얘기는 꺼내기가 쉽지 않았어요. *죽음에 대한 긍정*을 서해샘의 글을 따라서 도전해봐도 좋겠다는 마음이 들어요.
    다음 연재 기대할께요!

  • 2024-04-26 17:27

    2021년 코비드 19 기간에 친구를 떠나보내며 친구의 시체와 잠깐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저는 그 친구와, 그 친구의 시체와 관계맺기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현실에서, 그리고 아주 가끔은 꿈에서...
    올해 7월 3주기인 '친구를 기억하는 모임'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까요? 꼬기를 매우 좋아했던 친구의 납골당 안(숯불구이와 치맥 미니어처가 놓여져 있었음.)에 올해는 채소 미니어처를 꼭 넣어줘야겠습니다. "친구여, 매우 올드패션드하오. 시대가 바뀌었오."

    죽음, 애도, 시체, 장례와 관련하여 나눌 이야기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서해샘이 쏘아올린 공 덕분입니다.ㅎㅎ

  • 2024-04-28 15:21

    잘 살고 잘 죽고 싶습니다. 후회없이 살고, 후회없이 지구에 무해하게 .. 죽어야겠지요. 연재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