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1] 노년은 전투다 -필립로스의 <에브리맨>

문탁
2024-03-08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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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년은 전투다

 

미국 뉴욕에서 잘나가는 광고장이로 살았던 주인공은 은퇴 이후 거처를 바닷가의 은퇴자 마을로 옮긴다. 9·11 이후 테러에 대한 불안이 가장 큰 이유였다. 50세에 바람을 피워서 두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범죄를 덮어버리듯” 재혼한 세 번째 부인과도 이혼한 후였다. 혼자서 실컷 그림이나 그리면서 노후를 멋지게 보낼 수 있을 거야, 이런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은퇴 후 그는 거의 한해도 빠지지 않고 병원 신세를 지게 된다. 이제 책도 싫고 그림도 싫고 손주들이 삶의 낙인 은퇴자 마을의 다른 노인도 다 싫다. 테러보다 더 무서운 것은 혼자서 늙고 수술하고 죽는 것이다. 뉴욕으로 돌아가자.

 

다른 말년을 꿈꾸는 주인공. 유일한 마음의 거처인 딸에게 큰 집을 제공하고, 자신이 손녀를 돌봐준다고 하면 딸도 자기와 함께 산다고 하지 않을까? 하지만 딸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엄마(주인공 전처)와 살림을 합치겠다고 했다. 설상가상 연거푸 과거 상사의 부고와 동료의 투병(극심한 우울증과 말기암)소식을 듣는다. 상사의 부인에게 전화했을 때 들은 이야기.

 

“(약으로) 잡긴 잡았죠. 온갖 약을 다 먹었으니까. 하지만 동맥 손상이 심했나봐요...그이는 살고 싶어 했지만, 누가 무슨 일을 해도 그이를 더 살아 있게 할 수는 없었어요. 노년은 전투예요. 이런 게 아니라도, 또 다른 걸로 말이에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 (149쪽)

 

주인공은 결국 은퇴자 마을을 떠나지 못하고 경동맥 수술을 위해 혼자서 병원으로 간다. 그리고 “결국 깨어나지 못했다.” 심장마비. 그는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2. 73살에 쓴 소설

 

이 책은 2006년, 미국 작가 필립 로스가 73세에 발표한 그의 27번째 장편소설이다. 삶과 죽음에 대한 가차 없는 시선, 군더더기 없는 건조한 문체, 하지만 정교한 플롯과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한 이 사람이 일흔셋의 노인이었다니! 나는 좀 놀랐다.

 

나에게는 낯선 필립 로스, 1933년생이니 우리 엄마보다 네 살 위이다. <알라딘>의 소개에 따르면 그는 해마다 노벨문학상의 강력한 후보로 점쳐졌고, ‘미국 현대문학의 4대 작가’ 중 하나로 꼽혔던 거장이며, 미국 언론으로부터 “우리 시대 가장 뛰어난 소설가”(<뉴요커>)라는 평을 들었던 작가란다. 한 세대 전의 피츠제럴드나 윌리엄 포크너쯤 되는 모양이다, 라고 현대 미국 문학의 문외한인 나는 막연히 짐작한다.

 

그러나 내가 인상 깊었던 것은 그의 문학적 성취가 아니다. 난 그가 73세 이후 매년 한 권씩 새로운 소설을 썼다는 사실에 충격받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지?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추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어나서 일을 하러 간다.”(86) 라고 한 것처럼, 그냥 할 수 있는 일을 한 것일까? 자전적 내용으로 소설을 썼다고 하니 말년에 자신의 나이듦과 죽음에 대해 실존적으로 숙고한 것일까?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흔셋 이후에도 ‘그냥’. ‘계속’ 일했다는 사실은 묘한 위안을 준다. 어쩌면 나도 일흔셋이 지나서도 계속 읽고 쓰고 세미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지만 그도 일흔아홉이 된 2012년에 절필을 선언했다. "저는 다 끝냈습니다. <네메시스>가 제 마지막 책이 될 겁니다." 간결하고 단호한 선언이었고, 이후 번복되지 않았다. (은퇴의 그 시점을 그는 어떻게 알았을까?) 그리고 2018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물론 노벨상은 타지 못했다.

 

 

3. 하지만 이것은  백인 중산층 남성의 이야기 아닐까?

 

소설의 주인공은 이름이 없다. 그의 딸, 전(前)부인 셋, 동료, 부모와 형제 모두 실명이 나오지만, 그는 끝까지 ‘그’로 불린다. ‘그’의 다른 이름이 바로 ‘에브리맨’이다. 모든 개별적이고 고유한 존재들도 ‘시간’ 앞에서는 모두(에브리맨) 굴복해 간다. 굴복당하는 것은 무엇보다 몸이다. 따라서 이 소설은 에브리맨의 에브리‘바디’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도 난공불락의 남자로 남아 있으려는 전투에서 계속 패배했다. 시간은 그의 몸을 붕괴를 막기 위해 고안된 인공장치들의 창고로 바꾸어 놓았다.” (24)

 

어릴 때 탈장 수술, 최초의 공포와 부모의 따뜻한 보살핌. 청년이 된 이후 연인과 함께 수영과 하이킹을 하고 하루 중 아무 때나 편하게 섹스했던 멋진 몸. 건강과 몸에 대해 느꼈던 전능감은 50대가 되면서 사라진다. 갑자기 닥친 관상 동맥 막힘. 이후 심장병은 매년 발병한다. 한때 주변의 모든 여성을 유혹하고 쾌락을 경험했던 몸은 이제 항상 위협당한다. 가족도 있었고, 애인도 있었고, 사회적 커리어도 빵빵했지만, 그는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삶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노년은, 어쩌면 전투를 넘어서 ‘대학살’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의 쇠퇴가 진짜 문제일까? 여전히 조깅하는 젊은 여자를 보며 만지고 싶다고 생각하지만, 아닌 척 시치미 떼는 찌질함. 자신보다 건강한 형에 대한 시기와 질투 때문에 스스로 거리를 두면서 멀어지는 쪼잔함. 그의 노년을 괴롭히는 것은 자신의 욕망과 현실의 괴리 사이에서 좌절하는 중산층 남성의 자의식 아닐까? 말 그대로 이것은 에브리‘맨’에 관한 이야기인 것 같다.

 

 

4. 에브리 우먼, 에브리 맨, 에브리 띵

 

주인공이 연 은퇴자 마을 그림 교실에 오던 한 여성, 그림을 그리다가 자주 드러눕는다. 격심한 허리 통증 때문이다.

 

"나는 통증을 더 견딜 수가 없어요. 그게 모든 걸 뒤엎어버려요. 때로는 한 시간도 더 버티지 못할 것 같아요. 나 자신에게 그걸 무시해 버리라고 말하죠. 상관없다고 말해요…말려들지 마. 이건 유령이야. 그냥 성가신 것 뿐이야…하루에 수만 번씩 그런 이야기를 반복해요… 그러다가 갑자기 통증이 갑자기 너무 심해지는 바람에 슈퍼마켓 바닥에라도 드러누워야만 하고, 그러면 그 모든 말이 의미가 없어져요. 마, 미안해요, 정말로. 나도 징징거리는 건 혐오하는 사람인데.”(94)

 

나는 그 여성에게서 엄마를 보고 미래의 나를 본다. 늙는다는 것, 병든다는 것은 견딜 수 없는 몸의 통증을 경험한다는 것이고, 무력감을 느낀다는 것이고, 고립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궁상스러움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고 편안하고 충만하게 경험하는 게 쉬운 일일까? 소설 속의 저 여인은 수면제를 잔뜩 먹고 자살한다.

 

유한한 개인에게 죽음은 불가해하고 부조리한 것으로 온다. “버티고 서서 오는 대로 받아” 들이는 것 말고 “다른 방법이 없”는 것일까? 비록 그것도 진실이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덜 찌질하게 덜 쪼잔하게 받아들이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초고령화사회 늙어가는 에브리맨과 에브리우먼 모두 이 질문을 받고 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특별한 일은 없었다. 그들이 모두 하고 싶은 말을 했을까? 아니, 그렇지 않았다. 또 물론 그렇기도 했다. 그날 이 주의 북부와 남부에서 이런 장례식, 일상적이고 평범한 장례식이 오백 건은 있었을 것이다... 다른 여느 장례식보다 더 흥미로울 것도 덜 흥미로울 것도 없었다. 그러나 가장 가슴 아린 것, 모든 것을 압도하는 죽음이라는 현실을 한 번 더 각인시킨 것은 바로 그것이 그렇게 흔해빠졌다는 점이었다.”(23)

 

“이제 한 해도 입원 없이 지나가지 않았다....그는 아직 육십 대에 불과한데도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몸은 늘 위협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는 세 번 결혼했고, 애인들과 자식들과 성공을 안겨준 흥미로운 일자리를 가졌지만, 이제 죽음을 피하는 것이 그의 삶에서 중심적인 일이 되었고 육체의 쇠퇴가 그의 이야기의 전부가 되었다.”(76)

 

“노년은 전투에요. 이런 게 아니라도, 또 다른 걸로 말이에요. 가차 없는 전투죠. 하필이면 가장 약하고, 예전처럼 투지를 불태우는 게 가장 어려울 때 말이에요.”(149)

 

"그가 긴 직장생활 동안 사귄 모든 사람의 괴로운 사투를 알았다면, 각각의 사람들의 후회와 상실과 인내가 담긴, 공포와 공황과 고립과 두려움이 담긴 고통스러운 이야기를 알았다면, 이제 그들이 떠나야 할 것, 한때 그들에게 생명과도 같았던 그 모든 것을 알았다면, 그들이 체계적으로 파괴되어 가는 과정을 알았다면, 그는 하루 종일, 또 밤늦도록 계속 전화기를 붙들고, 전화를 적어도 수백 통은 해야 했을 것이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노년은 대학살이다."(162)

 

 

 

 

 

1. 겉으로든 속으로든 ‘라떼’를 생각하는 내 또래 남성들에게

 

우리 사회에는 남성 노년의 서사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 리얼 버전의 이야기는 더욱 드물구요.  ‘라떼는’ 때문에 괴롭다면, 이 소설을 읽어볼 것을 권합니다. 자신의 숨겨진 욕망까지를 완벽하게 해부해야 이후 노년이 좀 덜 쓸쓸해질 것 같아요. (그렇지 않으면 왕따 당하십니다)

 

2. 혼자 남겨진 80, 90대의 아버지를 둔 우리 세대의 아들과 딸, 특히 딸들에게.

 

정말 다가가기 힘든 우리 시대 할아버지들! 그런데 내 아버지가 바로 그 할아버지예요. <에브리맨>은 그 아버지들의 생애와 그들이 자기 삶에서 느끼는 감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이해하게 해 줄지도 모릅니다.

댓글 2
  • 2024-03-08 11:34

    노년의 서사.
    멋집니다. 책도 이렇게 자신을 솔직하게 바라보고 쓸 수 있는 애브리맨이 에브리원(모든 사람)이 되면 좋겠네요~

  • 2024-03-11 09:34

    수년전 <에브리맨>을 읽을 때만 해도 노년의 삶에 대한 구체적인 고민이 별로 없던 터라
    젊을 때 잘나가던 미국 백인 중산층 남자도 이렇게 외롭게 늙고 죽는구나, 그 정도로 읽었는데..
    다시 읽으면 나의 서사도 그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새롭게 보일 것 같군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