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지리적 사실

현민
2024-04-17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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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The History of Dutch Cannabis Coffeeshops | LeaflyWhy Amsterdam's oldest cannabis 'coffeeshop' has been forced to close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된장과 코인육수를 챙겨왔다. 독립생활의 적적함을 OTT(스트리밍 플랫폼 총칭)로 달래는 서경은 내가 요리를 하는 동안 밥 먹으면서 볼 영화를 골랐다. 너 파친코 봤어? 아니, 근데 그거 보고 싶었어. 그럼 보자. 우리는 파친코를 보기 시작했다.

 

파친코와 재일 조선인

 

파친코는 소설 원작의 드라마로 주인공 선자를 통해 일제 강점기에 일본으로 이주한 재일조선인의 삶, 그리고 주인공 선자의 손자인 솔로몬의 삶을 통해 미국 이주민, 일본의 버블 경제 시대를 다룬다. 정확히는 1910년부터 1989년까지 선자의 부모, 선자, 선자의 아들과 손자까지 4세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파친코 독일판 표지

'Ein einfaches Leben' 가장 보통의  삶 이라고 번역할 수 있을 것 같다.

어린 선자(왼쪽), 젊은 선자(중간), 늙은 선자(오른쪽 끝)을 통해 시대의 흐름을 볼 수 있다.

 

드라마를 보며 나는 은은하게 젖어 들었다. 역사 책에는 가장 잔인한 폭력의 희생자나 가장 영웅적인 서사가 기록되기 마련이지만, 사연 없는 사람이 없는 시절이었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며 시대의 불행함을 보았다. 숨이 약간 막힌 채로 물 안에서 숨을 쉬는 기분이었다. 나라를 빼앗기고, 집과 먹을 것을 빼앗기고, 언어와 이름을 빼앗기고, 존엄을 빼앗겼다. 그들에게는 가족을 지키고 배를 채우는 일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살아남으려면 가족애와 애국심이 필요했을 것이다. 종종 한국인의 가족애와 공동체적 특성, 애국심이 터무니없다고 생각했지만 역사 속에 그 기원이 있었다.

 

재일조선인(재일한국인, 재일교포, 재일동포)은 역사의 이 틈에 있다. 한국전쟁 시기, 나라가 찢어지게 가난할 시절, 살아남기 위해 일본으로 이주했다가 해방 후 한반도의 어지러운 정치 상황과 경제 혼란 등의 이유로 돌아가지 못한 혹은 않은 사람들이다. 아직까지도 일본에는 30만명의 재일조선인이 있으며, 특별 영주권자로 분류된다. 그마저도 어느 일본인들은 특혜라고 그들의 생존권을 박해한다. 그들이 한국에 입국하려면, 대사관에서 매번 임시 비자를 발급받아야 한다. 일본에서는 한국인이라고 멸시 받고, 한국에서는 일본인이라고 욕 먹는 존재. 어느 나라도 나 몰라라 하는 사람들. 재일조선인의 존재를 알고 난 후 나는 세상이 조금은 다르게 보였다. 우리나라에 재일조선인 작가로 알려진 서경식은 <디아스포라의 눈>에 이렇게 썼다.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요즘 한국에서도 꽤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듯하다. 원래 이산 유대인을 가리키는 이 말은 현대에는 좀 더 폭넓게, 어떤 외부의 힘에 의해 고향을 떠나 이리저리 흩어져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고 있다. 나와 같은 재일 조선인도 식민 지배와 민족 분단이라는 외적인 힘에 의해 이산당한 백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디아스포라는 그가 살아가는 공간에서 언제나 마이너리티(소수·비주류)이다. 당연히 디아스포라로 살아가는 건 즐겁지 않다. 하지만 디아스포라에겐 이점도 있다. 그것은 머조리티(다수·주류)에겐 잘 보지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면 국민 국가 시대의 머조리티란 ‘국민’이기 때문에, 디아스포라는 ‘국민’에게 잘 보이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존재이다.’

 

재일조선인은 역사에서 지워져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야기를 조금만 들어보면 그들의 존재가 한국 근현대사를 관통한다는 걸 알 수 있다. 마이저리티의 눈으로 세상을 감각해보면 세상은 얼마나 부당한가. 그들이 느끼는 부당함은 세상의 어떤 면을 보여주는가. 서경식은 많은 사람들이 국가 단위로 세상을 인식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고 말한다.

 

한국은 삼면이 바다고 북쪽은 막혀있어 고립되기 쉬운 지리적 요건을 가지고 있다. 나는 한국이 외국인 친화적이라거나, 문화적 다양성을 성숙하게 받아들이는 나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만 예를 들어도, 덴마크,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 벨기에, 네덜란드와 붙어있다.  적어도 이곳에서 내가 외국인이라는 사실은 그렇게 유난하지 않다. 독일에서는 외국인을 뜻하는 단어 아우스랜더Ausländer를 누군가를 차별할 때 쓰는 말이라는 인식 때문에 잘 쓰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한국적인 것, 두루뭉술한 혈연 공동체인 ‘우리’를 강조할 때 더 힘을 부여 받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사회가 국민성과 애국심을 강조할 때, 누가 배제되었는가. 나와 당신은 어떤 이점을 누렸는가. 마이너리티의 시선으로 내가 속한 사회를 볼 때마다, 우리가 이미 도태됐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싶을 때가 잦다.

 

여러개의 고향

 

<파친코>의 원작 소설 작가 이민진의 아버지는 북한, 어머니는 남한 출신으로 한국전쟁 후 그가 3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그녀의 다큐멘터리에서 그녀는 ‘당신은 재미교포인데 왜 재일조선인에 대한 이야기를 쓰냐’는 질문을 받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학 시절 어느 나라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재일교포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떤 한국인도 그 사람들의 이야기에 관심 갖지 않을 때, 그녀는 일본인인 남편을 따라 일본에서 재일조선인의 삶을 연구하며 11년 동안 책을 썼다. 한국인이냐 미국인이냐 따지면 미국인에 가까운 사람이, 한국어를 완벽히 구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쓰는 한국 이야기. 나는 글을 쓸 때 내가 이 글을 쓸 자격이 있는 지에 대해 자주 의심하는데, 그녀의 이야기를 들은 후 이야기할 자격이란 이러한 끈질김에서 온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다큐멘터리에서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이 모든 지리적 사실이 저를 만들었고, 저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습니다.’

 

어딘가 딱 들어맞지 않는 비정상적 존재, 경계의 사람들로부터 우리는 무엇을 배우는가. <디아스포라의 눈>에서 서경식은 또 이런 문장을 남긴다. '나는 타자로서의 ’조국‘, 그리고 ’조국’의 타자로서의 자신을 발견했다. 하지만 그것이 꼭 슬퍼하거나 한탄할 일은 아니었다. 그 지점에서 나는 다수의 ‘국민’들이 공유하고 있는 듯한 애매한 혈연공동체적 정서의 의거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의 공공적인 연계로서의 ‘조국’이라는 가능성에 대해 사색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대화를 계속해감으로 새로 만들어가는 사회, 그것이 나에게는 바람직한 ‘조국’이다.'

 

독일에서 사는 게 막막할 때마다 독일이냐 한국이냐를 고민한다. 한국에 돌아가는 나를 상상하면 숨이 막히지만, 타지에서 지독하게 살아남는 모습을 상상해봐도 기쁘지 않다. 그러다 보면 독일이나 한국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만이 내 삶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어떻게든 삶을 이어간다면 아주 먼 미래에는 내게 여러 고향이 생길 것이다. 이주민의 삶을 살면서 내 정체성이 아슬아슬하게 느껴질 때가 많지만, 이민진과 서경석 같이 먼저 세대의, 다정한 어른들의 글을 읽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나는 '나의 집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을 오래 붙잡고 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결코 어느 한 이름이 되지 않을 것 같다.

 

 

인도에서는 요맘때 쯤 봄이 오는 것을 축하하며 홀리Holi 페스티벌을 한다.

인도인 플랫메이트 쿠쉬가 다양한 사람들을 불러모아 우리집 마당에서 홀리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홀리에서는 네가 누구든지 간에 상관없이, 색 가루와 물 풍선을 서로에게 던지며 논다.

쿠쉬는 그것이 서로를 축복해주는 일이라고 말해주었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댓글 3
  • 2024-04-18 08:24

    너의 글을 읽을때마다 생각하지
    나의 20대와 참 다르구나...(라는 지당한 것을.)

    나는 이제야 "이 모든 지리적 사실"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는데
    너희 세대는 삶 자체가 "이 모든 지리적 사실"과 연관되어 있다는 생각도 들고.

    언젠가, 내가, 니가 있는 곳, 그 때 그곳이 어디든, 그곳에 가서 같이 걷고 밥 먹고 이야기할 수 있기를!

  • 2024-04-18 08:27

    <파친코> 못 봤는데, 이주민의 정체성으로 이 영화를 본 현민의 소감이 담담히 읽히는 걸 보니, 영화가 좋았나봐요. 언젠가 나도 봐야쥐~~

  • 2024-04-18 09:22

    앞으로 여러 개의 고향이 생길 현민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 '나의 집은 어디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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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 조회 184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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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4.04.20 | 조회 292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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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4.17 | 조회 214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가마솥
2024.04.15 | 조회 193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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