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 나는 비빌언덕이 되고 싶다
김윤경~단순삶
2024-02-20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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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말고 함께
내가 사는 금천은 1995년 3월 구로구에서 분구하였다. 서울 면적의 2.1%를 차지하고 중구에 이어 두 번째로 작은 구이다. 그런데도 2022년 서울시 정신건강 지표조사에 따르면 금천구는 우울감 경험률(11.9%)과 자살률(28명/10만 명당)이 서울시 평균(7.3%, 21.4명/10만 명당)보다 높다. 면적은 작지만, 인구는 적지 않고 비교적 사회적 시설과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서 신체적 건강이나 정신적 건강 수치가 서울시 평균보다 안 좋은 것 같다. 내가 마을 일을 시작하면서 들었던 충격적인 얘기도 우리 구 청년들의 자살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금천구에서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서 그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활동을 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연한 기회에 제안이 들어온 ‘노랑식탁’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망설이지 않았다. 노랑식탁을 기획한 ‘청춘삘딩’은 예전에는 청소년 독서실로 쓰던 공간이었다. 구청에서 그 공간을 없애려고 할 때 지역 주민들의 제안으로 기초지자체 최초의 청년활동공간으로 탈바꿈 한 곳이다. 도시재생과 거버넌스의 좋은 사례가 되는 청년들을 위한 반짝반짝 빛나는 장소다. 그런 곳에서 청년 1인 가구를 위한 밥상을 준비한다니 더욱 기대되었다. 2023년 6월부터 사전 준비모임을 가져 메뉴 선정과 시장 조사를 했다. 7월 한차례 테스트 파일럿 식탁을 준비한 후 8월 첫 주부터 본격적으로 가동했다. 매주 금요일 저녁마다 총 16회, 160명 이상(중복 제외 47명)이 참여했고, 93가지의 메뉴를 선보였다.
이름은 노랑식탁이고 형식은 집밥을 차려주는 것이었지만, 실제 그 안은 마음건강을 케어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였다. 금천구에 정착한 1인 가구 청년들에게 건강한 식사를 매개로 안전한 사회적 관계망을 맺어가게 하는 것이 노랑식탁의 추진 방향이다. 노(NO)는 ‘인스턴트 NO, 휴대폰 NO, 혼밥 NO’의 의미를 담았고, 랑(WITH)은 ‘대화랑, 건강한 집밥이랑, 이웃이랑’의 의미를 담은 것이다. 메뉴는 신선한 제철 재료를 위주로 혼자서는 절대 해 먹을 것 같지 않은 그런 요리들(꽃게탕, 갈치조림, 소고기무국, 육전 등)과 싸갈 수 있는 반찬류로 정했다. 양을 넉넉히 준비하여 남은 반찬을 포장해서 가져가 집에서도 건강한 끼니를 챙길 수 있도록 말이다. 저녁 7시부터 시작해 마을활동가 이모 셋이 정성껏 준비한 저녁을 맛있게 먹고 난 후엔 공감대를 쌓고, 세대 간 차이점을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의 장을 마련했다. 그리고 설거지 및 뒷정리를 함께 하며 마무리하는 순으로 진행했다.
1회부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준비를 한 우리는 음식의 맛을 걱정했지만, 참여자 친구들은 음식의 맛은 기본이고 거기에 정성까지 느꼈다고 말해주었다. 또 끝맺을 때 나눈 오(5)자 소감으로 그들의 진심을 전해주었다. 제철 음식 짱, 눈코입 만족, 또 오고 싶다, 다정한 식탁, 뜻밖의 상담, 건강한 한 끼, 푸근한 느낌, 퇴근 후 힐링, 일주일의 힘 등등. 맛나고 정성스러운 저녁 식사, 주제가 있는 이야기, 또래 친구들과 동네 이웃과의 대화, 재미있는 게임 등 노랑식탁은 말 그대로 노랑노랑 따뜻한 식탁이었다.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워
노랑식탁에서 나의 담당은 ‘환대’였다. (결국엔 힘쓰는 일, 온갖 궂은일도 나의 담당이 되었지만 ^^;;) 처음 청춘삘딩이나 노랑식탁에 와 봤을 참여자들이 어색하지 않게 조금은 ‘오버’해서 맞이하는 환대, 말이다. 나는 나름의 아이디어를 내어 ‘웰컴 음료’를 준비해 “어서 오세용”라는 멘트와 함께 와인잔에 따라주었다. 비록 와인은 아니지만 와인잔이 놓인 식탁은 멋스러워 보였고, 분위기도 한결 누그러졌다. 서로가 초면일 참여자들이 뻘쭘하지 않도록 “금천엔 언제 정착했냐, 집은 어디냐, 밥은 어떻게 챙겨 먹느냐” 등 질문을 하면서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집중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었다. 참여자들이 맛난 저녁을 먹는 동안 이야기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것이 나의 역할이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난 후에는 다른 마을활동가가 바통을 이어받아 준비해온 다양한 심리 카드를 이용해 마음속 이야기들을 꺼내어 놓을 수 있는 시간을 가졌었다. 질문 카드에 적힌 다양한 질문에 답을 하면서 참여자들은 서로를 조금씩 알아가고 이해해가고 있었다. 또래 친구들의 고민이 나의 고민이고, 그들의 외로움과 어려움에 공감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연장자들인 마을활동가 이모들의 인생 경험담에서 위로가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어떤 주에는 심리 카드로 대화하고 어떤 주에는 게임을 했다. 추석이 다가오는 금요일에는 윷놀이를 했었는데, 승부에 집착한 참여자 친구들이 정말 청춘삘딩이 떠나갈 정도의 환호성을 지르기도 했었다. 이렇게 노랑식탁이라는 건강한 밥상은 참여자 모두에게 따뜻한 그 어떤 것을 선물해 주었다.
노랑식탁이 횟수가 쌓여 가는 동안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알아가고, 서로의 이름을 알아갔다. 우리 모두 친함이 익어가고 있었다. 모임을 한 번만 남겨둔 11월 마지막 금요일, 겨울 방학처럼 한동안 못 볼 것이 아쉬워(이미 시즌2가 내년에도 열릴 것이라는 사실이 공지되었다) 서로의 연락처를 교환하는 장면을 보면서 나는 급 뒷풀이 모임을 제안했다. 가까운 호프집으로 이동해 맥주를 마시며 못다 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들 이대로 끝내기는 아쉬워했다. 그래서 내가 독서 모임을 후속 모임으로 제안했다. 뒷풀이 자리에 모인 모두가 동의해 단체 대화방을 만들었다. 그날 못 온 다른 참여자들도 대화방에 초대해서 일단 시작은 나까지 13명이 되었다. 어찌하다 보니 다 여성 청년들이었다. (이렇게 된 마당에 청년 여성들과 중년 여성들을 연계하는 모임으로까지 키워나가고 싶은 욕망이 들었다. ^^)
2024년 1월 26일, 노랑식탁에서가 아닌 우리의 첫 모임을 가졌다. 처음으로 읽은 책은 『우리에겐 비빌언덕이 필요해』(최정은/오월의 봄)였는데 막상 책 이야기는 많이 안 하고 수다만 떨다 모임을 마쳤다. 그래도 우리 모임이 앞으로도 서로에게 ‘비빌언덕’ 같은 존재가 되었음 좋겠다는 바람은 나누었다. 그래서 청춘삘딩에서 진행해왔던 ‘청년시민지원사업 두잇(Do It)커뮤니티’에 응모하기로 했다. 리더를 정하고 모임의 이름은 ‘금덩굴’로 정했다. 금천 사랑방과 덩굴식물들을 합친 이름이다. 모임원 중 한 친구가 최근 『랩걸-나무, 과학 그리고 사랑』(호프 자런/김희정옮김/알마)을 읽었는데 책에 나온 덩굴식물들의 생명력에 감탄했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10팀 모집에 64팀 응모) 우리 모임이 선정되어 백만 원의 지원금을 받게 되었다. 모임 진행에 더욱 탄력을 받을 것 같아 모임원 모두 기뻐했다. 덩굴식물들처럼 우리 모임이 어떠한 장애물도 아우르며 계속 만남을 이어갔으면 좋겠다.
비빌언덕같은 사람
나는 내가 비빌언덕같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국어사전을 찾아보면 비빌 언덕은 ‘보살펴주고 이끌어주는 미더운 존재’라고 나온다. 검색창에서 검색해보면,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라는 속담이 먼저 뜬다. 어린 소는 뿔이 날 때 무척 가려운데, 그래서 언덕에다 머리를 자꾸 비벼서 그런 속담이 생겼단다. 누구나 의지할 곳이 있어야 무슨 일이든 시작하거나 이룰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라고. 내가 무소속 마을활동가로 금천에서 하는 활동들이 딱 비빌언덕 같았으면 좋겠다.
나는 유난히도 힘들게 20, 30대를 보냈다고 생각한다. 뭐 누구나 인생을 사는 게 쉬운 게 아니지만 말이다. 가난한 집안 형편에, 대학입시에 실패해서, 4년제에 못 갔다는 자괴감에, 자격증 시험에 또 떨어져서, 뚱뚱해 남자 친구는 고사하고 사람들이 다 날 싫어한다는 자기 비하에, 정규직이 아니라 월급도 적고 승진도 안 되고..... 나를 괴롭히며 내 인생을 비관할 이유는 인생 굽이굽이 마다 널려 있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낙담하고 비관할 때 누군가가 또 무엇인가가 내 옆에 있었다. 누군가들은 내 옆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나의 술주정을 받아주기도 하고, 내 손을 잡아주거나, 등을 토닥여주기도 했다. 또 지도(지도map는 나에게 아주 아주 각별하다)와 수많은 산과 길, 골목은 늘 자기 자리에서 내게 비빌언덕이 되어 주었다.
그리고 40대에 만난 감이당에서 인생의 지도를 다시 그렸고, 문탁네트워크에서 내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찾았다. 인생의 고비마다 수많은 비빌언덕들이 나의 ‘비빔’을 받아주고 있었기에 나는 잠시 쉬어 숨을 고르고 다시 인생길에 나설 수 있었다. 노랑식탁의 활동 경험은 좋은 징조 같다. 나도 누군가에게 비빌언덕이 될 수도 있겠다는. 내가 인생길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수많은 비빔을 할 수 있었듯이, 나도 그런 비빌언덕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금덩굴의 청년 여성들과 그리고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이 내게 기대 잠시 쉬어갈 수 있도록 말이다.
지오디의 ‘촛불 하나’의 노래 가사가 이 글을 마무리하는 나의 마음가짐이다. (지오디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는데, 글을 쓰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노래 가사가 떠올랐다.^^) “지치고 힘들 때 내게 기대, 언제나 네 곁에 서 있을게, 혼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내가 너의 손 잡아줄게”, “작은 촛불 하나 켜 보면 달라지는 게 너무나도 많아, 아무것도 없다고 믿었던 내 주위엔 또 다른 초 하나가 놓여져 있었기에 불을 밝히니 촛불이 두 개가 되고 [...] 세 개가 되고 네 개가 되고 어둠은 사라져 가고”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에 불 밝히는 소소하지만 큰 힘을 가진 활동을 해 나갔음 좋겠다. 만나보니 좋은 친구, 마을활동가 윤경이~~로서 말이다!
김윤경~단순삶
다르게 살아보려고 자발적 백수가 되었고, 이제는 마을활동가로 변신 중.
마을에서 조증적 열광적 사랑을 실천하려고 한다.
아스퍼거는 귀여워
모로
2024.04.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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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이는 마을활동가
김윤경~단순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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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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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또 멋지다!
소셜다이닝도 멋지고,
윤경샘 마음도 멋지다.
샘, 나는 샘의 비빌언덕이 되볼게요.
아니, 문탁 친구들 모두가 서로간의 비빌언덕이에요^^
피에쑤1 : <랩걸> 이거 내가 비업무용독서 1순위로 코앞책꽂이에 꽂아놓고 있어유.
피에쑤2 : '이모' 말고 다른 용어가 필요해!!! ㅋㅋㅋㅋ
정화의 작은 촛불에서 소도 비비고 싶은 언덕으로 마구마구 빛을 넓혀가겠다는 포부~ 멋지네요~
만나 보니 좋은 친구, 마을 활동가 윤경샘~
새삼 반갑네요^^
매번 글 읽을 때마다 반가울듯 ㅋ
이렇게 글로 윤경님이 어떤분인지 조금 알게 되었네요..!
누군가의 촛불 윤경님 멋지셔요
명품은 아니지만,
든든한 '빽'에
손을 번쩍 듭니다. ㅎㅎ
와~~
글로 만나는 윤경샘도 너무 좋네요~~^^
그냥 그냥 너무 좋아요~~!!!
글을 읽는데 감동이 찡 ~ 했어요 ㅜㅜ 윤경님의 찬란한 삶이 제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있어요!!! 싸랑합니당
노랑식탁에 이어 금덩쿨로! 윤경샘의 다음 행보를 기대해봅니다~
비빌언덕-되기, 수많은 되기가 있지만 참으로 멋진 되기인 것 같아요.^^
와! 단순삶님, 삶이 단순하지 않은데요? ㅎㅎ
정말 멋지십니다^^
조증적 열광을 실물을 매달 볼 수 있어서 기쁩니다! (전염되는 기분..^^)
배우고 싶은 활동이네요. 윤경샘 정말 멋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