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의 암 이야기4> 방심하면 안 되는 방사선 치료

문탁
2023-04-19 09:47
248

 

 

 

 

 

 

 

노라

얼마나 놀기 좋아하면...ㅎㅎ..

문탁의 터줏대감이다. 모르는게 있으면 나에게^^

 

 

 

 

간호병동 입원 기간은 예상했던 일주일이 넘어 12일 동안이었다. 간호병동은 간호사가 상주하며 환자들을 돌봐주는 시스템인데 가격은 5인실 입원비에 2만원만 추가하면 된다. 나는 그곳에서 ‘잠자는 숲속의 미녀’가 되어 계속 잠만 잤다! 걱정 없이 푹 잤기에 회복도 빨랐다. 무통주사 한번 누르지 않는 나를 보고 간호사는 고통을 잘 못 느끼는 체질인 것 같다고 했다. 좋은 뜻인가? 무뎌서 암세포가 그리 커지도록 못 알아챈 거 아닐까? 보호자 없는 병실에서 그 긴 날을 보내는 동안 남편과 아이들은 잠시 휴가를 얻었다. ‘골룸’처럼 돌아다니는 환자가 집에 없다는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해방감을 느꼈으리라. 아이들이 집을 엄청 깨끗하게 치웠다고 카톡으로 알려왔다. 그동안 책장 가득히 쌓여 있던 내 책들도 다 버렸다. (나쁜 놈들!) 밤마다 맥주파티를 했다는 소문도 들려왔다. 수술이 잘 된 것을 축하하며, 집이 깨끗해진 것도 축하하며! 주치의가 도전정신을 갖고 수술한 덕분에 수술은 잘 되었고, 네 개씩 맞던 항암제 ‘약빨’이 잘 들었기에 ‘완전관해’도 되었다. 완전관해란 암 세포의 흔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는 뜻으로 나와 같은 종류의 유방암에선 30~40%의 환자들에게 해당된다.

 

 

암 진단을 받고 항암을 하는 동안 커다란 고민 중 하나는 부모님께 나의 상황을 알려야 하느냐, 마느냐 이다. 부모님의 연세가 80이 넘으셨기에, 나는 이 소식을 듣고 매일 밤 울고 계실 엄마를 상상하는 것조차 싫었다. 어른들을 위로하는 역할까지 내가 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여러 집안 행사에 참석 못한다는 것은 코로나 정국이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많이 모이지 말라는 정부의 지침에 잘 따르는 척 했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찾아보면,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갑자기 죽으면, 남아 있는 가족들의 상처가 훨씬 심하다고 한다. 환자를 챙기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인해 힘들게 살아간다고 한다. 그러나 난 알리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인생은 계획대로 되지 않는 법! 수술 마치고 나오는 날, 아빠가 쓰러지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빠를 병원에 옮기고 검사하는 정신없는 순간에 부모님은 그동안 내가 항암하고 수술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셨다. 울고불고 하는 시간 없이 얼렁뚱땅 넘어가게 되었다. 다행이 아빠는 곧 나으셨지만, 엄마는 그간 혼자 고생한 나를 생각하며 가슴 아파하셨다. 미리 안 알리길 잘했다!

 

 

노라찬방시절, 어느날 세프로 활약해주신 어머니

 

 

수술의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방사선치료와 12차의 후함암이 시작되었다. 방사선 치료는 병원에 따라, 암 기수나 조사된 방사선의 양에 따라 회수가 조절된다. 17회에서 30회까지 다양하다. 난 19번 받았다. 주말을 뺀 매일 일정한 시간에 가서 방사선기계 안에 누워 2~3분간 받는다. 매일 가야 한다는 부담감에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서 받는 환자들도 많다. 잠시 누웠다 온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차수가 지날수록 피곤함이 더해졌다. 만만하게 보면 안 되는 치료였다! 치료기간 동안 단백질 식단으로 잘 먹어야 하는데 밥맛도 없고, 기력도 없어 하루 종일 누워 있었다. 일주일 후부터 방사선을 쪼인 가슴은 화상으로 따끔따끔 했는데, 치료 후 화상으로 거뭇거뭇해진 부위를 병원에서 권하는 로션으로 매일매일 발라야 했다. 몇 달 후 방사선폐렴이 오는 경우도 있으니 정말 조심해야 한다. 난 그 기간 영광스럽게도 최저 몸무게를 찍었다! 방사선 치료와 동시에 3주 간격으로 진행되는 12번의 후항암이 시작되었다. 정말 정신없는 한 달이었다.

 

 

후항암은 ‘표적항암제’라는 신약으로 하기에 부작용은 적다. 관절통, 기력 없음, 심장에 큰 무리, 뭐 이정도! 선항암이 안겨준 부작용이 너무나 컸기에 후항암은 거져먹기였다. 나는 표적항암제로 ‘퍼셉틴’과 ‘허제타’ 두 종류를 맞았다. 표적항암제는 암이 있는 세포를 표적으로 공격하여 제거한다. 유방암 환자 수가 엄청 늘다보니 여러 연구 끝에 성과 좋은 항암제가 많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그것이 실용화되기까지는 시간이 꽤 들어간다. 보통 암환자는 ‘중증환자등록’을 하여 치료비의 5%만 내면 된다. 근데 내가 맞아야 하는 함암제는 비보험이다. 한번 맞을 때 350만원이 든다. 기본 코스가 18번인데 다 맞으면 7000만원 가까이 된다. 재발율을 6%대로 낮춰 준다는 말에 치료를 거부하지 못한다. 만약 수술에서 완전관해가 아니라 암세포가 조금이라도 남아 있었으면 한 번에 700만 원 짜리 ‘케싸일라’를 맞아야 한다. 그건 맞는데 거의 1억이 넘는다.

 

 

 

"이윤보다 생명을!!" 2002년의 그 유명한 글리벡 투쟁 

 

 

그런데! 카페커뮤니티를 들락거리다 ‘신포괄수가제’를 시행하는 병원이 가까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 제도를 설명하자니 너무 복잡해서 패스!) 그 병원으로 옮기면 한 번 치료에 20만원만 내면 된다. 엄청난 절약이다! 남편은 수술 잘해준 병원을 배신(?)하는 거라며 병원 옮기는 것에 비협조적이었다. 의사인 지인은 ‘의사도 환자가 경제적으로 부담스럽지 않고 편안하게 치료받는 것을 원한다’고 하면서 옮기라고 권했다. 그래서 난 후항암 기간 동안 가족들에게 ‘엄마 돈 벌어 올께!’ 말하며 신포괄수가제 병원으로 항암 하러 갔다. 그런데 이 제도가 올해 없어졌다. 나는 치료가 끝나 다행이지만 다른 환우들은 아직 고액의 치료비에 힘들어 한다. 카페커뮤니티에는 종종 환우들이 힘을 모아 여러 신약들의 보험수가 적용을 위해 서명을 받거나 시위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얼마 전 그 비싼 ‘케싸일라’가 보험적용 약물로 인정되었다! 그들의 투쟁으로 지금 내가 보험 적용된 항암제를 맞고 생명을 유지해 가고 있는 것이다. 나도 다음 환자들을 위해 서명했다!

 

 

다음엔 돈 제일 많이 들었던 <재활치료 이야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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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라의 암 이야기는, 일리치약국 뉴스레터 <건강한달>에 2022년7월부터 6개월간 연재되었습니다.

이제 여기 홈페이지 <자기돌봄의 기술>에 Re-Play 합니다.

 

1편: "우리 엄마 아미래"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0&mod=document

2편: 항암'산'을 넘다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1&mod=document&pageid=1

3편: 수술이 가장 쉬었어요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69&mod=document&pageid=1

4편: 방심하면 안 되는 방사선 치료 

5편: 돈 많이 든 '재활치료'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71&mod=document&pageid=1

6편: 사람이 아주 겸손해질 때 https://moontaknet.com/?page_id=14957&uid=38872&mod=docu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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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퍼거는 귀여워
  감자는 정말, 정말정말정말 오줌, 똥을 못 가렸다. 만 3살이 지나, 한국 나이로 5살이 되었는데도, 기저귀를 못 뗐으니 말 다 했지. (네이버에 쳐보니 ‘기저귀를 떼는 시기는 18개월에서 24개월이 적당하다.’라고 쓰여있다) 발육이 남다른 감자에게 맞는 기저귀 사이즈가 더 이상 없어서, 더 큰 기저귀를 찾으려면 성인용으로 가야 할 판이였다. 이걸 어찌해야 하나 고민하던 중, 어린이집을 가게 되었다. 사람들이 말하길 일단 벗기고 팬티를 입혀 놓으면 자신도 축축한 것을 알게 되어서 자연스럽게 떼게 된다나? 그 말을 믿고 덜컥 어린이집 적응과 배변 훈련을 동시에 해버리자는 안일한 생각을 해버렸다. 어린이집 적응도 힘든 마당에 배변 훈련까지 더해지니 그야말로 혼돈의 카오스. 나도 울고, 감자도 울고, 어린이집 선생님도 (아마도) 울었다.       기저귀 벗기 강제집행을 시행한 후, 어린이집에서 하루 평균 2~3번 오줌을 쌌다. 여벌 바지와 팬티를 수도 없이 챙기고, 심지어 바지가 모자라는 날은 친구 것을 빌려 입고 오는 일도 허다했다. 외출 시에는 무조건 화장실만 보이면 억지로 오줌을 뉘었다. 내가 신경 써서 화장실을 보내면 괜찮지만, 조금만 무언가에 정신이 팔려있거나, 내가 집안일이라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실수했다. 외출도 불안하고, 늘 둘 다 신경이 예민해져 있었다. 그래도 늘상 실수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오줌은 나았는데, 똥 문제는 정말 심각했다. 갈수록 똥 누는 걸 너무 무서워한 나머지, 나중에 가서는 변을 5일에서 일주일 정도에 한 번 눴다. 똥은 딱딱해질 대로 딱딱해져서 더 누기 힘든 악순환. 온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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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4.25 | 조회 151
윤경이는 마을활동가
      2024년 나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는 토요일 양생프로젝트와 죽음 탐구 세미나에서 공부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봄에 2주나 결석했다. 2019년 감이당 일성으로 시작해 1년 과정을 6년 동안 공부해오는 동안 결석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매주 꼬박꼬박 공부하러 가는 것이 수행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수업에 출석하는 것을 우선으로 하였다. 그런데 이번에 2주 연속 빠지게 된 것이다. 그런 결정을 내린 사건은 제22대 국회의원 선거에 선거사무원으로 참여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가 신앙처럼 지켜온 인문학 수업 출석을 어기게 한 이 사건을 정리하며 나에게 정치적 활동이란 무엇일까 다시 짚어보고 싶다.           나의 첫정당 활동 연대기     내가 처음 정당에 가입한 것은 2012년, 녹색당이었다. 그때 나는 하기 싫은 일에 매여 사는 나의 일상이 싫었다. 그 탓을 이명박 정권 때문이라 생각했나 여하튼 정권에 불만이 쌓여 있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사람들을 만나 매일매일 술을 마시며 정권을 욕했다. 그러나 술 먹고 욕하는 걸로는 불만이 해소되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탈출구가 필요했다. 그래서 2012년 3월, 직장을 그만두고 다르게 살고자 첫 백수 생활에 도전했다. (나의 백수 도전기와 다르게 사는 도전은 나의 연재 글 <1화 금천에서 다시 시작하기>를 참고하시길^^) 그러다 마을에서 만난 녹색당에 가입했다.         녹색당에서 ‘녹색 가치’에 대해 공부하며 많은 것을 배웠다. 특히나 핵 발전소와 탈핵 운동에 대해서 그랬다. 밀양 765kV 송전탑 건설과 관련된 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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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단순삶
2024.04.20 | 조회 275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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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4.17 | 조회 203
가마솥의 59년생 서른살
    고기리 집은 2층집이다. 설계 컨셉을 ‘따로 또 같이’로 잡았다. 건물 전체 덩어리를 5개 정도로 나누어, 함께 쓰는 공간과 독립적으로 쓰는 공간이 분리되게 설계하였다. 당시 공항동에 사셨던 장인, 장모님을 모시기 위하여 1층을 독립공간처럼 방과 화장실 그리고 거실을 크게 만들었다. 2층의 아이들 방도 침실과 공부방 그리고 거실을 두었다. 우리 부부도 침실과 전실 공간을 두었다. 음식을 나누는 식당과 부엌은 1층 가장 좋은 뷰를 가진 공간에 두었다.           장모님이 치매로 혼자 생활하기 힘들어 졌다. 우리 집에 오셔서 4년을 함께 지냈다. 미리 준비한 아래층, 부모님 공간에 계셨으니 지내시는데 크게 무리가 없었다. 문제는 3년 전에 아들놈이 집으로 들어오면서부터 발생했다. 녀석들이 결혼하기 전에 사용했던 2층, 방 2개와 거실공간에서 그럭저럭 지낼만 했는데, 아이가 생기고 고 녀석이 자람에 따라 ‘아이의 공간’이 많이 필요하게 되었다. 모든 일상에서 아이가 1순위이니, 공간도 녀석의 성장에 맞추어 늘려 주었지만 항상 북적거렸다. 젊은 부부들의 살림살이를 우리들 공간으로 재배치하여 공간을 확보하여도 아이의 장남감이 곳곳에서 발에 채이기 일쑤였다. 문득, 이 넓은 공간에도 세 집 살림이 힘들다니, 옛날 우리 5형제는 그 작은 고향집에서 어떻게 살았지? 하고 떠올려 본다.           그 전에 어떻게 살았더라?       올해 들어 장모님을 더 이상 집에서 모시기 어려워졌다. 파킨슨과 치매가 더욱 심해져 거동할 수 없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계신 장모님을 시간마다 이리 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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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마솥
2024.04.15 | 조회 183
일상명상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매일 아침 명상을 한다. 5년이 좀 넘게 계속해 온 아침 의례다. 어쩌다 며칠 명상을 놓치게 되면 명상시간을 확보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진다. 마음을 집중하여 들숨과 날숨을 온전히 알아차릴 때 누리는 고요와 평화가 그립기 때문이다. 그럴 때 알게 된다. 일상에서 그럭저럭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매일의 명상 덕분이었다는 것을. 내게 명상은 마음을 돌보는 시간이면서 마음에 좋은 에너지를 충전하는 귀한 시간이다.   호흡관찰   나는 붓다가 가르친 ‘호흡 수행(아나빠나사띠)’과 ‘사념처 수행(사띠파타나)’에 의지해서 명상을 하고 있다. 경전은 이렇게 명상을 시작하라고 한다.   여기 숲으로 가거나 나무의 뿌리로 가거나 빈집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몸을 똑바로 세우고 면전에 마음챙김을 확립하여 마음챙겨 숨을 들이쉬고 마음챙겨 숨을 내쉰다.   명상을 하기 위해서는 조용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가부좌 자세로 앉아 알아차림을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숨을 내쉰다. 조용한 곳으로 가는 것은 외부에서 오는 번다한 자극으로부터 물러나 몸과 마음을 잘 관찰할 수 있는 조건을 확보하기 위해서이다. 조용한 곳에서 명상할 때 우리는 마음이 얼마나 산만하고 시끄러운지 더 잘 알 수 있다. 산만함을 가라앉히는 방법은 산만함과 대결하는 것이 아니라 산만함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모든 번뇌의 대치법도 다르지 않다. 어떤 환경에도 구애받지 않고 마음을 고요히 할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 정도 내공을 갖추기 전까지는 조용한 곳에서 명상을 하며 힘을 기르는 수밖에...
요요
2024.04.14 | 조회 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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