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회> 좋은 이별 나쁜 이별

현민
2023-04-16 07:54
511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좋은 이별 나쁜 이별

 

 

나의 집은 오래된 3층짜리 주택이다. 우리가 살지 않으면 허물어 새집을 지어야만 하는, 12개의 방과 12명의 사람들이 있는 집. 5년 전 레아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이 집을 찾고 사람을 모아 셰어하우스를 시작했다고 한다. 어떤 이들이 필요에 의해 이 곳에 모이고 떠나가 지금 내가 이곳에 산다. 각자 사느라 바쁘면서도 우리는 같이 사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서로의 시간들을 경험한다.

내가 이사 온 이후로 집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이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지어 비싸게 세놓으려 했던 집주인이 치솟는 물가 탓에 집을 유지하기로 결정했고, 당분간 우리 12명은 집을 구할 필요가 없을 만큼의 넉넉한 기간을 재계약했다. 그리고 가장 오래 살았던 미키와 캐시가 이사를 가 가일과 레오가 들어왔고, 나와 앞, 옆방을 마주하는 쿠쉬와 필리페는 본국으로 장기 휴가를 가 그 기간 동안의 단기세입자 다니와 발렌티나가 새로 들어왔다. 그리고 A가 쫓겨났다.

 

최근 사람이 너무 많이 바뀌어서 내가 임시로 만들었던 우체통 이름표

 

A는 영화를 공부한다고 했다. 내가 이사를 온 직후, 한동안은 그를 볼 수 없었다. 다른 애들에게 A가 어디에 갔냐고 물었는데, 그의 개인적 문제 때문에 잠시 집을 비웠다고 했다. 몇일 뒤, 부엌 문을 열자 A가 있었다. 반가웠던 나는 활기찬 인사를 건네고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이 집의 또 다른 플랫메이트인 B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셋이 창가에 앉아 담배를 피웠다. 담배에 불을 붙이며 나는 A의 눈이 유독 빨갛다고 생각했다. 차를 잡은 손이 덜덜 떨린다는 것도. 그러다 B가 나에게 A와 둘이 잠시 이야기해도 괜찮냐고 했다. 그러라고 한 뒤, 담배를 피면서 책을 읽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A가 소리를 지르며 들고 있던 잔을 바닥에 던졌다.

그때 알게 되었다. A가 B에게 관심을 보였고, B가 거절을 한 뒤로부터 A가 폭력적으로 굴기 시작했다는 것을. 그래서 A가 집을 비웠었다는 사실을.

 

A는 위태롭게 굴었다. 방에서 노래를 크게 틀었고, 밥을 먹을 때는 술이 함께였다. 잠을 안 잤고, 눈이 새빨개진 채로 부엌에서 대마초를 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별로 없었다. 그를 만날 때마다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이 말을 걸어 밥을 먹었는지, 잠은 잘 자는지에 대해 물었다. 가해자한테 잘해주는 기분이 들어서 기분이 이상했지만, 네가 어서 괜찮아져서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최선이었다.

하지만 A에 대한 또 다른 사실은 그가 항상 상냥했다는 것이다. 내가 터키 전통방식으로 차를 내리는 걸 신기해하자 차를 대접해준다거나, 자기가 만든 음식을 나누어주었다. 어느 날은 이 도시에서 억울하게 사고를 당해 죽은 사고 피해자를 추모하는 행사에 간다고 했고, 어느 날은 자신의 트렌스젠더 친구가 최근에 태국에서 성전환 수술을 마치고 돌아와 그 축하파티에 간다고 했다. 진심으로 그녀의 성전환을 기뻐하던 A의 얼굴이 나를 자꾸 어렵게 만들었다. 만약 내가 컵 던지는 장면을 보지 못했다면 덜컥 그를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할 조건을 A는 잔뜩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서서히 느꼈다. 아직도 내가 얼마나 사람을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싶어하는지.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사는 일은 언제나 생과 사가 엎치락뒤치락했고,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세상을 흑과 백으로 이해하는 게 더 이상은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날은 그렇게 생각하며 사는 게 쉬우니까 그것에 기대 살고 싶고 그랬다. 어떤 상황을 기꺼이 이해하기엔 내가 가진 언어가 너무 부족했다.

 

어느 날 1층에서 빨래를 널고 있었는데 3층에서 B가 소리를 질렀다. 올라가보니 B와 A가 몸싸움을 하고 있었고, 3층에 사는 다른 룸메이트들이 나와 둘을 말리고 있었다. B는 소리를 듣고 올라온 애들에게 방금 A가 내 방에 들어와 옷장과 침대를 뒤집었다고,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했다. 우리는 A에게 당장 나가달라고, 가능한 빨리 이사해달라고 했다. A는 곧 바로 집을 나갔다. 그리고 우리는 부엌에 모여 담배를 피며 B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렸다. 죄책감이 느껴졌다. A가 이렇게 군지 몇 달이나 되었는데, 우린 결국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때까지 기다려 왔던 거 아닐까 하면서. 생각해보면 그게 최선이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게 정말 최선이었냐는 물음이 끊이질 않았다. 나는 조금 멍해져 담배를 말았다.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애들은 농담을 하기 시작했다. 지금 있는 남자애들 차례로 나가면 여자애들만 받아서 여자 셰어하우스로 만들자고. 다들 웃었다. 나도 웃었다. 웃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는 밤이었다. 살면 살수록 유머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걸,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을 웃어넘기며 사는 것이 가장 최선이라는 걸 알아가게 된다. 그날 밤 나는 A의 불행한 가정사와 몰랐던 이야기를 조금 들었다.

 

A가 떠난 주, 집에 가장 오래 살았던 캐시가 떠났다. 캐시는 A가 폭력적인 행동을 보일 때마다 그와 차분히 이야기를 나누고, 그의 멘탈 클리닉 예약을 잡아주고, 당장 경찰을 부르자던 다른 플랫메이트들을 진정시키고 설득했던 사람이다. 그는 베를린으로 떠난다고 했다. 그의 이별파티에는 많은 사람들이 왔다.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친구와 노래를 부르는 친구가 그녀를 위해 노래를 시작했다. 그 장면에서 나는 눈물이 좀 날 것 같았다.

 

I'll follow you into the park. Through the jungle, through the dark. Girl, I've never loved one like you. Moats and boats, and waterfalls. Alleyways, and payphone calls. I been everywhere with you. Laugh until we think we'll die. Barefoot on a summer night. Never could be sweeter than with you. Oh, home, let me come home. Home is whenever I'm alone with you.

 

Home is whenever I'm alone with you 부분을 부르며 캐시를 안아주는 캐시의 친구

 

널 따라 공원에도 정글에도 어둠에도 갈 수 있다고. 우리가 죽을 것 같을 때까지 웃자고. 내가 너와 있는 모든 곳이 집이라고 하는 이 가사를 들으며 내가 캐시라면 떠나는 일은 무섭겠지만 종종 두렵지 않은 기분이 들 거라는 생각을 했다. 그날 밤 울어도 좋을 것 같았던 사람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A가 떠났던 밤이 떠올랐다. 그 밤은 웃지 않으면 너무 괴로울 것 같았는데, 캐시의 밤에는 애쓰지 않아도 웃을 수 있었고, 눈물도 조금 흘렀고, 춤을 추며 노래도 불렀다.

A에게는 내가 모르는 모습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의 삶 어느 순간에는 그도 누군가를 웃게하고 행복하게 만들었을 테다. 하지만 나는 기꺼이 그가 나빴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를 아프게 했던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기꺼이 그것이 아프고, 슬프고, 나빴다고 말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나에게는 있다.

 

파티가 끝난 뒤, 캐시가 떠나고 A가 이사 간 뒤에도 B는 한동안 아팠다. B는 A에게 세게 잡혀 파래진 손목을 보여주었다. 그 애는 밥도 잘 먹지 않았고, 방문을 잠그지 않으면 잠을 못 잤다. 담배를 피우러 부엌에 내려올 때마다 전혀 괜찮지 않아 보였다. 화가 나서 괴로운 사람의 얼굴이었다.

결국 사건 이후의 고통은 피해자의 몫인 걸까? 나는 맞다고도 아니라고도 대답하지 않을 것 같다. 그저 매일 매일 그 애의 안부를 묻고, 끼니를 걱정하고, 가끔은 술을 마시고 함께 취해 춤을 추러 가며 그 애가 자기도 모르는 새에 건강해지길 바란다. 그리고 다시 보통의 날을 보내며 그 애가 그때 얼마나 용감했는지를 종종 떠올릴 것이다. A가 떠난 밤, 그래도 걔를 몇 대 때릴 수 있어서 너무 속 시원했다고, 너희가 그게 과했다고 말한다면 집을 나가버릴 거라고, 하지만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일이 처음이었으니 너희를 미워하지 않을 거라 말했던 B의 마음들을.

서로의 시간을 겪으며 여기가 내 집인가 싶은 날들이 늘어간다.

 

캐시의 이별파티에서 함께 불렀던 노래

댓글 7
  • 2023-04-16 15:46

    12인 정원의 셰어하우스에서 울고 웃고 부딫히고 말리고 포옹하고 춤을 추고 담배를 피우는 장면들에서 어떤 다국적 자매애? 우정? 같은 것이 느껴졌어요! 그리고 최근에 고은 지원의 <함께 살 수 있을까?> 북토크 겸 인터뷰 글쓰기 모임 자리에서 현민의 이야기가 너무 좋았다는 독자 피드백도 있었답니다ㅎㅎ 앞으로의 이야기도 기대할게요~~

  • 2023-04-16 18:26

    "우리를 아프게 했던 일들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기 위해 기꺼이 그것이 아프고, 슬프고, 나빴다고 말해야만 하는 순간들이 나에게는 있다." 이 문장이 좋네. 내가 기억해야 할 말이기도 한 것 같고. 현민의 다음 글을 기다림......

  • 2023-04-17 08:42

    다양한 사람들과의 부대낌 속에서 현민의 삶이 깊어가네요
    부럽기도 하고 ㅎ
    이렇게나마 소식을 접하니 좋아요
    다음글로 또 만나요~

  • 2023-04-17 09:11

    <살면 살수록 유머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다는 걸>
    저는 이 말이 마음에 들어오네요.
    온 하루의 고단이 늦은 저녁 한 줌의 유머로 풀어지곤 하죠.
    살아간다는 건 그런거 같네요~
    어바웃 식물 세미나후에 수목원에 다같이 놀러갔던 날에
    첨이자 마지막으로 함께 했던 현민님~ 참 반갑습니다.

  • 2023-04-17 09:23

    "세상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다. 사는 일은 언제나 생과 사가 엎치락뒤치락했고, 모든 사람에게는 좋은 면과 나쁜 면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세상을 흑과 백으로 이해하는 게 더 이상은 부족하다는 걸 알면서도, 어느 날은 그렇게 생각하며 사는 게 쉬우니까 그것에 기대 살고 싶고 그랬다." A 뿐만 아니라 삶의 많은 일들이 좋고 나쁨이 얽혀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그 모든 것이 뭉뚱그려지지 않고, 한 올 한 올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으로 나눠서 살펴봐서 더 좋아요. 현민의 시선에서 함께 고민하고 생각할 수 있어서 좋군요!! 다음 글을 기대하게 되네요~~~

  • 2023-04-21 15:12

    내가 현민이 나이였을 때 나는 어땠지?
    나는 세상을 흑백의 이분법으로 보았던 것 같고, 아마 이렇게 섬세하지 않았던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다면 지금은? 하하하 그냥 웃습니다.^^

  • 2023-04-21 18:16

    아고 … 많은 일들이 생기고 지나가고 있네요.. 현민의 독일에서 일상이, 세월이 쌓이네요. 그리 단순하지 않은… 다음 글 기다릴께요!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현민
2024.04.17 | 조회 203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55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현민
2024.02.16 | 조회 285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나의 셰어하우스에는 풀타임 직장인이 두 명 있다. 그들은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그들은 거의 홈 오피스를 해서 집에서 자주 보이지만 늘 지쳐있고, 하루만 사무실에 다녀오는 날에는 진을 다 빼고 온다. ‘일하기’는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모든 날을 이렇게 하루하루 진을 빼며 사는 것인가 가늠해 보기 시작하면 주 4일제 실현이 간절해진다. 이들이 일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면 저녁에 부엌에 둘러앉아 담배를 물고 진토닉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주방에 있는 큰 스피커에 노래를 연결해 테크노 음악을 틀기 시작한 후 자정쯤 파티에 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디제잉을 하며 파티를 벌이는 것이 있다. 매주 서너 병의 진을 사와 자신들이 다 마신 사실을 잊고 그 술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는 사람들. 이들의 특징으로는 파티와 술과 담배 따위에 매우 후하다는 점이 있다. 자신이 마셔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함께 마실 사람이 항상 필요한 이들.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들과 잦은 파티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방탕히 노는 시간으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 때가 오면 가끔은 해야 할 일을 못 해도, 밥을 못 먹어도 즐겨 마땅했다는 확신이 든다.   독일 클럽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나의 셰어하우스에는 풀타임 직장인이 두 명 있다. 그들은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그들은 거의 홈 오피스를 해서 집에서 자주 보이지만 늘 지쳐있고, 하루만 사무실에 다녀오는 날에는 진을 다 빼고 온다. ‘일하기’는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모든 날을 이렇게 하루하루 진을 빼며 사는 것인가 가늠해 보기 시작하면 주 4일제 실현이 간절해진다. 이들이 일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면 저녁에 부엌에 둘러앉아 담배를 물고 진토닉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주방에 있는 큰 스피커에 노래를 연결해 테크노 음악을 틀기 시작한 후 자정쯤 파티에 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디제잉을 하며 파티를 벌이는 것이 있다. 매주 서너 병의 진을 사와 자신들이 다 마신 사실을 잊고 그 술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는 사람들. 이들의 특징으로는 파티와 술과 담배 따위에 매우 후하다는 점이 있다. 자신이 마셔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함께 마실 사람이 항상 필요한 이들.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들과 잦은 파티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방탕히 노는 시간으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 때가 오면 가끔은 해야 할 일을 못 해도, 밥을 못 먹어도 즐겨 마땅했다는 확신이 든다.   독일 클럽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현민
2023.11.21 | 조회 348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Heimat   정민   최근엔 정민이 왔다 갔다. 그 애는 나의 바로 밑 동생이다. 세자매 중 나와 정민은 극도로 상극의 삶을 산다. 그 애는 중학생 때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면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던 것 같다. 그 애는 꿈이 없는 게 불안해서 공부를 했다면 나는 꿈 같은 거 생길 수 있는 사회냐고 화를 내는 편이었다. 우리가 삶을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웃긴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생 최고의 개그맨이다. 나의 지겨운 가정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것으로 극도의 유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애가 유일하다.   한 달이 지나고 공항에 그 애를 데려다주는 길에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독일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먼 나라에서 온 편인 나는 그 거리감을 대체로 즐겼다. 하지만 비행기에 앉아서 하루쯤 지나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문득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 소리나 시작했다. 나 만약에 한국에 돌아가야 되면 어떡하지? 진짜 돌아가야 되면 거기서 뭘 할 수 있지? 정민은 말했다. 왜 자꾸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해? 언니...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Heimat   정민   최근엔 정민이 왔다 갔다. 그 애는 나의 바로 밑 동생이다. 세자매 중 나와 정민은 극도로 상극의 삶을 산다. 그 애는 중학생 때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면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던 것 같다. 그 애는 꿈이 없는 게 불안해서 공부를 했다면 나는 꿈 같은 거 생길 수 있는 사회냐고 화를 내는 편이었다. 우리가 삶을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웃긴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생 최고의 개그맨이다. 나의 지겨운 가정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것으로 극도의 유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애가 유일하다.   한 달이 지나고 공항에 그 애를 데려다주는 길에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독일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먼 나라에서 온 편인 나는 그 거리감을 대체로 즐겼다. 하지만 비행기에 앉아서 하루쯤 지나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문득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 소리나 시작했다. 나 만약에 한국에 돌아가야 되면 어떡하지? 진짜 돌아가야 되면 거기서 뭘 할 수 있지? 정민은 말했다. 왜 자꾸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해? 언니...
현민
2023.09.19 | 조회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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