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회> 유학점검기

현민
2024-02-16 09:11
286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유학점검기

 

독일에는 아우스빌둥(Ausbildung)이라는, 직장과 직업학교를 번갈아가며 배우는 제도가 있다. 영어로는 Apprenticeship이고 한국어로는 직업교육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사에서 실질적인 교육을 받고 직업학교에서 이론적인 것을 배운다.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에 가지 않고 아우스빌둥을 하는 경우도 줄곧 있다. 독일의 오기 전 나의 계획은 일년 간 어학연수를 하고 출판사에서 아우스빌둥을 하는 것이었다. 최근 나는 출판사들에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넣고 인터뷰를 다닌다. 자본주의의 빈틈에 껴서 살다가 제발 일 시켜달라고 스스로를 둘도 없는 인재처럼 소개하려니 어색하다.

독일에 와서 변한 것이 많다. 코코넛밀크로 맛있는 커리를 만들 수 있고, 알리오 올리오를 먹고, 핸드크림을 바르고, 외식은 잘 하지 않는다. 전에는 곁에 없으면 안 될 것 같았던 친구들과는 어쩌다 한번 연락한다. 그리고 새로운 친구들과 익숙한 공간들이 생겼다. 한 해 동안 어떻게 살았는지 돌아보는 마음으로 유학점검기를 쓴다. 나를 아시는 분들께는 그래서 얘가 지금 독일에서 뭐하며 사는건지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보실 수 있을 것 같다.

 

독일의 여름을 믿지 마세요

 

2022년 6월부터 9월 독일 지인 댁에서 아름다운 여름을 보냈다. 그즈음 나는 이러다간 익숙함에 속아 한국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여름이 지난 뒤, 나는 독일에 와서 살아보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가 태어난 나라, 하지만 낯선 타지.

한국에 돌아가 비자 받기를 기다리면서 4년간 일하던 서점을 정리했다. 떠난다고 동네방네 광고를 하고 같은 해의 초겨울, 독일에 다시 똑 떨어졌다. 한국보다 시원하고 오후 10시까지 해가 짱짱한 여름만 알았던 나는 물론 독일의 겨울 해가 그렇게 빨리 지는지 몰랐다. 독일 겨울 날씨에 대한 충격과 함께 집도 없었던 나는 척박한 겨울 3개월간 홈리스 생활을 했다. 사이비 교회에서 3주, 그 후로는 텅 빈 아파트에서 2달간 지냈다. 꽤나 유명한 사이비였는데 편견이 너무 없었던 건지 교회 안에 즐비한 힌트에도 거리낌 없이 지낼 수 있었다. 두 달 간 지냈던 아파트는 곧 독일로 이민 올 한국 가족이 미리 계약해놓은 집이었다. 전에 지내던 교회보다는 나았지만, 가구 하나 없는 곳에서 가끔 혼자 말을 하면 메아리가 울려서 공허함이 크게 느껴졌다. 세탁기가 없어서 손으로 빨래를 하고, 열심히 밥을 차려 먹는 일이 빈 시간들을 견뎌내는 데 중요했다. 외국에서 혼자 사는 게 그닥 나와 맞는 일은 아니라는 걸 깨달을 때쯤, 사람들과 연결되는 일이 간절해졌다.

 

독일은 어디를 가도 집을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 한국에서 자취 집 구할 때는 그나마 고를 수라도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다른 감각이 필요했다. 집 구하는 앱을 통해 몇백 통 넘는 메세지를 보내야 한두 곳에서 인터뷰 연락이 왔다. 그러다 지금 사는 셰어하우스에 오게 되었다. 2월에 입주해 11명의 친구이자 가족을 얻고, 그들과 두텁게 신뢰할 수 있는 관계가 되면서 독일에서의 삶이 견딜 만 해졌다.

집을 찾고 나서는 아침에 일어나 어학원을 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 밥을 먹고, 숙제를 하고, 낮잠을 자거나 산책을 하고, 저녁엔 둘러앉아 수다를 떨면 하루가 금방 갔다. 혼자일 땐 이 겨울을 보내야 봄이 온다는 게 막막했는데, 겨울은 함께보내야 하는거구나 싶어졌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에서 맨몸으로

 

한국이 지겨웠다. 조그만 동네에도 문제가 너무 많았고, 가족도 나의 삶을 자꾸 어렵게 만들었다. 어느 날은 거창한 명분을 위해 거리로 나갔고 어느 날은 숨이라도 쉬어보려고 친구들을 찾아갔다. 무언가 바꿔보려고 애를 쓰다가 두 권의 책도 만들어버렸다. 변화라는 게 금방 오는 게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나는 소진됐다. 상담 선생님은 말했다. 사실 상담을 해야 할 사람은 현민씨가 아니에요. 위로를 받으면서도 동시에 화가 났다. 그럼 내가 뭘 더 할 수 있단 말인가. 자꾸만 좁아지고, 슬퍼지고, 예민해졌다.

어느 순간부터는 새로운 공간에서 새사람을 만나도 새롭지 않았다. 어디 사는지, 부모님은 무슨 일을 하는지,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 어떤 이들과 친구인지, 어떤 가치를 중요시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은 나를 그것으로 받아들였다. 나를 소개하는 설명들이 가치가 없어지는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삶을 결핍이 아니라 풍족함으로 감각 할 수 있을까? 오랜 질문이었다.

 

독일에서의 3개월 이후 첫 번째로 도착한 곳은 셰어하우스였다. 이사한 직후에는 밉보이지 않으려고 지나치게 긴장하고 친절하게 행동했다. 누군가 청소를 안 해서 다른 플랫메이트들이 화가 나면 대신 청소를 한다던지 말이다. 그러나 살아보니 플랫메이트들의 생활방식은 예의나 성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가끔은 묻지 않고 서로의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먹었고, 제때 집 청소를 하지 않았고, 가끔은 싸가지 없어 보일 만큼 자기주장을 했다. 그런데 아무도 서로를 미워하지 않았다. 짜증은 나지만 왜 그랬는지 이유를 이해해보려고 했고, 그러다 서로의 습관이나 상황을 알게 되었다.

내가 지나치게 친절했던 이유는 내가 그들의 마음에 들어야 할 것 같은 기분에서였다. 이사 온 뒤 어떤 일에도 굳이 의견을 피력하지 않았던 나에게 플랫메이트들은 나의 의견을 계속 물으며 이곳은 너의 집이기도 하다고 말해주었다. 어느새 나도 배고프고 요리하기 싫을 때는 하루 종일 친구들에게 빌붙어 먹었고, 가끔은 집을 더럽힌 뒤 치우는 것을 잊어버렸고, 누가 청소를 제때 하지 않을 때는 문제제기를 했다. 미움받지 않으려고 애쓰기보다 그들이 나를 이해할 거라는 신뢰가 생겼다. 잘못을 했다면 바로잡을 기회가 있었다. 좋은 게 있으면 그들이 생각났고, 나누는 기쁨에 몰두했다. 12명이 모두 너무나 다른데, 함께 지낸 시간 동안 그들이 나와 완전히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24년 1월 1일 우리 중 몇은 함께, 몇은 따로 새해를 맞았다. 모두들 새해가 되자마자 단톡방에 메시지를 보냈다. 나도 할 말이 있었다. 사랑을 어떻게 표현하고 어떻게 받는지 너희로부터 배웠다고. 보내고 곱씹어보니 정말 맞는 말이었다. 느낀만큼 표현하고 받은 걸 느끼면 되었다. 그걸 이들로부터 배웠다.

 

집 계단에 걸려있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T의 그림

 

최근엔 첫 면접을 봤다. 나는 출판사에서 원고부터 책 홍보까지 전반적인 일을 경험하는 직종 Medienkauffrau Medien und Print(영어나 한국어로는 정확히 어떤 직업인지는 모르겠다)에 지원하고 있다. 독일어로 하는 첫 면접에 지나치게 긴장한 데다가 도움을 청하는 일도 어색해하는 나를 친구들이 잡아 앉혔다. 헝가리인이지만 독일에서 자란 티는 나와 면접 시뮬레이션을 시작했다. 그는 내가 말을 하다가 막히면 몇 번이고 다시 시작해주었고, 말이 막힐 때는 물을 마시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뼛속까지 독일인이자 네덜란드 컨설팅 회사에서 일을 하는 니키는 전날 함께 침대에 앉아 나와 책의 역사를 다시 재점검하면서 내게 어떤 경험과 강점이 있는지 되짚어주었다. 긴장감에 질린 나는 내가 너무 부족한 것만 같은데 자신감 넘치는 척하는 거 너무 싫다고 징징댔다. 니키는 이렇게 말했다. 너에게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억지로 척할 필요 없다고, 하지만 네가 이미 해낸 것에 대해서는 충분히 자신감을 갖고 자랑스러워 할 수 있다고.

그말을 듣고 나니 갑자기 나의 서점와 내가 만든 책들이 더 좋아졌다. 혼자한 일은 아니지만 그들도 내가 없었다면 하기 힘들었을 일이다. 정상규범에 맞게 살지 않았다는 사실에 이해받기 어려울거라고 생각하면서 시도하기를 두려워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날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온 후, 나는 처음 학교를 다녀온 아이처럼 경험담을 떠들었다. 그들은 내가 독일에서의 첫 인터뷰를 마쳤다는 사실에 오랫동안 나를 자랑스러워했다. 우리가 함께 살지 않았던 시간이 무수한데도 그들이 오늘의 나에 대해서 가장 잘 아는 사람이다.

 

창문에 해가 들면 보이는 필름

 

지난 한 해의 기억이 선명하다. 일년 동안 새롭고 기묘하고 아름다운 일들을 종종 겪었다. 요새는 숨쉬기가 편하다. 가끔 살아서 좋다고 말하고 놀란다. 지도를 보지 않고도 길을 갈 수 있고, 먼 곳에 갔다 돌아오면 집 앞 대로에서부터 익숙함에 마음이 놓인다. 내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껄끄럽지 않아졌고, 어느 날은 잠깐 내가 동양인 여자애라는 사실을 잊기도 한다.

배낭 메고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기보다 한 곳에 머무르면서 나의 공간의 이름을 부여하고 섬세하게 가꾸는 사람이 되어보고 싶어졌다.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익숙함을 탐험하면서 작년과는 또 다른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가장 최근에 했던 모험

댓글 5
  • 2024-02-16 20:35

    저의 첫 해외여행지가 독일이었어요.
    독일에 도착했을 때, 여기서 살고 싶다. 딱 5년만.. 이런 생각을 했는데 ㅋㅋㅋㅋ
    익숙했던 곳을 뒤로 하고 완전히 새로운 곳에서 새롭게 시작하고 싶다는 저의 오랜 꿈이 생각나는 글이네요.
    저도 언젠간...!!!

  • 2024-02-16 20:36

    현민이에게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어서 안심이 됩니다.
    아마 현민이가 좋은 친구이기 때문이기도 하겠지요.
    2024년, 독일에서, 또 한국에서 우정을 쌓고 지지받고 지지하고 연대하며 함께 잘 살아 봅시다!!

  • 2024-02-17 08:22

    글에서 뭔가 변화의 바람이~~ 현민의 바람을 응원합니다 ~

  • 2024-02-17 10:50

    살짝 울컥한 느낌은 뭘까?
    늙은게구나...쩝!

    멋있다, 현민아.
    올해는 꼬박꼬박 글쓰자^^

  • 2024-02-18 07:21

    더 설명이 잘 되는 느낌! 그래서 읽기 좋았음^^

현민의 독국유학기
이 모든 지리적 사실   네덜란드는 독일의 북쪽에 맞닿아있다. 세 명의 친구가 살고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다. 지난 겨울 니키가 운전해서 네덜란드에 간다고 하길래, 그럼 가는 길에 친구가 사는 도시에 내려 달라고 부탁했다. 서경은 독일과 국경이 맞닿아있는 아른헴에서 공부한다. 모부님께 네덜란드 유학을 가고 싶다고 말했을 때 그들은 성매매와 마약 합법 때문에 꼭 그곳이어야겠냐고 물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네덜란드에서는 정치적 혼란시기였던 19세기 마땅한 보수정당이 없어 동성결혼, 성매매와 마약 합법 등을 실행하게 되었다고 한다.   네덜란드의 흔한 커피샵 커피도 파는데 대마초도 판다. 일상적으로 사람들이 와서 대마초를 피우는 곳이다.   서경은 영어권 국가 중 네덜란드가 가장 물가가 싼 편이라 네덜란드 대학에 지원했다. 네덜란드에는 더치Dutch라고 불리는 고유어가 있음에도 영어권 국가라고 불릴 만큼 국민 90%는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독일인들은 네덜란드어가 독일어에서 파생한 괴상한 사투리라고 말하는데, 네덜란드에 와보니 더치는 생각보다 더 고유했다. 영국과 미국에 비교하면 굉장히 싼 유학비지만, 독일과 비교했을 땐 비싼 생활비 그리고 주거난 때문에 아직도 에어비엔비에서 산다는 서경의 학교 동기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 나라에 이주민 비율이 큰 이유가 궁금해졌다. 헤이그에서 공부하는 지연은 현재 네덜란드가 보수집권이지만 여성·퀴어 인권은 너무 당연해서 보수당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말해주었다. 그 대신 보수당은 이주민을 규제하고 싶어한다고 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서경과 새벽까지 조잘대며 회포를 풀고, 아침에 일어나 밥을 짓기 시작했다. 서경은 내 음식을 좋아한다. 그래서 집에서 마른 미역과 들깻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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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4.17 | 조회 203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입원기   볼더링을 하다가 떨어졌다. 다음 날 응급실에서 하루종일 엑스레이를 몇 번 찍은 후 의사로부터 인대 파열과 발목 바깥쪽 뼈가 부러졌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뼈를 재위치하기 위해선 다리에 못을 박는 수술을 해야 했다. 살면서 병원에 가는 일이 잘 없는게 자랑이었는데, 갑작스럽게 입원을 하게 되었다. 가장 먼저 한 것은 보험 확인이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게 보험은 있냐고 물었다. 최근 나는 독일에서 새 비자를 받았는데, 그때 독일 사보험을 등록해놓았다. 지난 한 해 동안은 한국에서 가장 싼 여행보험을 들어놓았다. 그동안 한 번도 병원에 갈 일이 없었는데, 독일 보험을 들어놓고 사고를 당해서 다행이었다.   입원하면 금방 수술을 받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발목이 너무 부으면 수술 후 봉합이 어려워 붓기가 가라 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병원에서 아침 점심 저녁 밤으로 진통제를 받았는데, 살면서 그렇게 많은 약을 먹어본 적이 없었다. 빈속에 약을 먹어 배가 쓰리면, 그것을 방지하는 약을 먹는 식이었다. 서양 의학이란 이런 것이구나 체감하며 먹으라는 약을 먹었다. 팔에 주사바늘을 꽂고 이름 모르는 주사들을 여러 번 맞으니 몸에 멍 자국이 금방 늘었다. 매일 아침 집단으로 의사 무리가 찾아와 오늘도 수술은 못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예상보다...
현민
2024.03.16 | 조회 257
현민의 독국유학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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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민
2024.02.16 | 조회 2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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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나의 셰어하우스에는 풀타임 직장인이 두 명 있다. 그들은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그들은 거의 홈 오피스를 해서 집에서 자주 보이지만 늘 지쳐있고, 하루만 사무실에 다녀오는 날에는 진을 다 빼고 온다. ‘일하기’는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모든 날을 이렇게 하루하루 진을 빼며 사는 것인가 가늠해 보기 시작하면 주 4일제 실현이 간절해진다. 이들이 일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면 저녁에 부엌에 둘러앉아 담배를 물고 진토닉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주방에 있는 큰 스피커에 노래를 연결해 테크노 음악을 틀기 시작한 후 자정쯤 파티에 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디제잉을 하며 파티를 벌이는 것이 있다. 매주 서너 병의 진을 사와 자신들이 다 마신 사실을 잊고 그 술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는 사람들. 이들의 특징으로는 파티와 술과 담배 따위에 매우 후하다는 점이 있다. 자신이 마셔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함께 마실 사람이 항상 필요한 이들.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들과 잦은 파티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방탕히 노는 시간으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 때가 오면 가끔은 해야 할 일을 못 해도, 밥을 못 먹어도 즐겨 마땅했다는 확신이 든다.   독일 클럽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미친 인간들의 안전한 파티   나의 셰어하우스에는 풀타임 직장인이 두 명 있다. 그들은 아침부터 오후 5시까지 일한다. 그들은 거의 홈 오피스를 해서 집에서 자주 보이지만 늘 지쳐있고, 하루만 사무실에 다녀오는 날에는 진을 다 빼고 온다. ‘일하기’는 중요하지만 앞으로 남은 모든 날을 이렇게 하루하루 진을 빼며 사는 것인가 가늠해 보기 시작하면 주 4일제 실현이 간절해진다. 이들이 일만큼 열심히 하는 것이 있다면 저녁에 부엌에 둘러앉아 담배를 물고 진토닉을 마시기 시작하다가, 주방에 있는 큰 스피커에 노래를 연결해 테크노 음악을 틀기 시작한 후 자정쯤 파티에 가거나, 지하실에 내려가 디제잉을 하며 파티를 벌이는 것이 있다. 매주 서너 병의 진을 사와 자신들이 다 마신 사실을 잊고 그 술들이 다 어디 갔냐고 묻는 사람들. 이들의 특징으로는 파티와 술과 담배 따위에 매우 후하다는 점이 있다. 자신이 마셔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이들, 함께 마실 사람이 항상 필요한 이들. 제안하면 거절하지 않는 사람으로서 나는 이들과 잦은 파티를 가진다. 우리는 종종 방탕히 노는 시간으로부터 삶의 아름다움을 본다. 그럴 때가 오면 가끔은 해야 할 일을 못 해도, 밥을 못 먹어도 즐겨 마땅했다는 확신이 든다.   독일 클럽에는 무엇이 있는가   나의...
현민
2023.11.21 | 조회 348
현민의 독국유학기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Heimat   정민   최근엔 정민이 왔다 갔다. 그 애는 나의 바로 밑 동생이다. 세자매 중 나와 정민은 극도로 상극의 삶을 산다. 그 애는 중학생 때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면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던 것 같다. 그 애는 꿈이 없는 게 불안해서 공부를 했다면 나는 꿈 같은 거 생길 수 있는 사회냐고 화를 내는 편이었다. 우리가 삶을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웃긴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생 최고의 개그맨이다. 나의 지겨운 가정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것으로 극도의 유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애가 유일하다.   한 달이 지나고 공항에 그 애를 데려다주는 길에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독일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먼 나라에서 온 편인 나는 그 거리감을 대체로 즐겼다. 하지만 비행기에 앉아서 하루쯤 지나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문득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 소리나 시작했다. 나 만약에 한국에 돌아가야 되면 어떡하지? 진짜 돌아가야 되면 거기서 뭘 할 수 있지? 정민은 말했다. 왜 자꾸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해? 언니...
          글쓴이 현민 친구들과 함께 동천동의 책방 우주소년을 운영했습니다. 서점을 운영하며 스쿨미투집 <밀려오는 파도 막을수는 없다> 1권과 같은 이름의 공동체 탐구집 2권을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독일에 삽니다.             Heimat   정민   최근엔 정민이 왔다 갔다. 그 애는 나의 바로 밑 동생이다. 세자매 중 나와 정민은 극도로 상극의 삶을 산다. 그 애는 중학생 때부터 독서실에서 공부를 하느라 12시 이전에 집에 들어온 적이 없다면 나는 친구들과 노느라 12시 전에 집에 들어간 적이 없던 것 같다. 그 애는 꿈이 없는 게 불안해서 공부를 했다면 나는 꿈 같은 거 생길 수 있는 사회냐고 화를 내는 편이었다. 우리가 삶을 사는 모습은 너무나도 다르지만 그 애는 내 인생에서 가장 웃긴 사람 중 하나다. 우리는 서로에게 인생 최고의 개그맨이다. 나의 지겨운 가정사를 가장 잘 아는 사람, 그것으로 극도의 유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그 애가 유일하다.   한 달이 지나고 공항에 그 애를 데려다주는 길에는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독일에서 만나는 외국인들 중에서도 먼 나라에서 온 편인 나는 그 거리감을 대체로 즐겼다. 하지만 비행기에 앉아서 하루쯤 지나면 도착하는 게 한국이라니 문득 너무 가깝게 느껴졌다. 그래서 아무 소리나 시작했다. 나 만약에 한국에 돌아가야 되면 어떡하지? 진짜 돌아가야 되면 거기서 뭘 할 수 있지? 정민은 말했다. 왜 자꾸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해? 언니...
현민
2023.09.19 | 조회 3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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