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차별은 없다, 정말입니까?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2023), 이주희     감정사회학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왔던 현타는 ‘지금 내 감정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감정은 자발적이고 은밀한 나만의 본질같은 것이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연출된다는 것.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바로 그런 ‘감정’과 ‘구조’의 은밀한 콜라보에 ‘차별’이라는 다소 버거운 주제를 함께 이야기 한다.         처음엔 ‘차별’이라는 주제에 오히려 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차별받으며 혹은 차별하며 살아온 사람일까?’라는 물음에 이내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며, 차별이 식상한 주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이미 ‘차별’에 너무 익숙해져서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받지 않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혹은 식상하다는 이 느낌은 아마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더뎌지고 희미해지고 무산되는 과정에서 번번이 느꼈던 익숙한 실망감이거나, 그도 아니면 너무 어마한 주제에 대한 무기력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마디로 언급하기엔 좀 불가능하지만 ‘감정’, ‘구조’, ‘차별’ 이라는 어마무시한 삼총사를 1234를 통해 ‘아무튼’ 만나 보았다.     차별은 ‘구조’와 맞물려 있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차별에 둔감한 이유는 우리 각자가 서로 다른 성향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조 속에 숨어 들어간 차별을 식별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차별은 차별하는 이나 차별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과 국가, 그리고 여러 신념체계가 복합적으로...
차별은 없다, 정말입니까?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2023), 이주희     감정사회학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왔던 현타는 ‘지금 내 감정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감정은 자발적이고 은밀한 나만의 본질같은 것이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연출된다는 것.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바로 그런 ‘감정’과 ‘구조’의 은밀한 콜라보에 ‘차별’이라는 다소 버거운 주제를 함께 이야기 한다.         처음엔 ‘차별’이라는 주제에 오히려 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차별받으며 혹은 차별하며 살아온 사람일까?’라는 물음에 이내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며, 차별이 식상한 주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이미 ‘차별’에 너무 익숙해져서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받지 않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혹은 식상하다는 이 느낌은 아마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더뎌지고 희미해지고 무산되는 과정에서 번번이 느꼈던 익숙한 실망감이거나, 그도 아니면 너무 어마한 주제에 대한 무기력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마디로 언급하기엔 좀 불가능하지만 ‘감정’, ‘구조’, ‘차별’ 이라는 어마무시한 삼총사를 1234를 통해 ‘아무튼’ 만나 보았다.     차별은 ‘구조’와 맞물려 있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차별에 둔감한 이유는 우리 각자가 서로 다른 성향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조 속에 숨어 들어간 차별을 식별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차별은 차별하는 이나 차별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과 국가, 그리고 여러 신념체계가 복합적으로...
스르륵
2023.09.17 | 조회 392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현실이 상상으로, 상상이 다시 현실로 동은       1. 빛나는 정지된 순간    몇 년 전 여울아쌤과 탕누어의 <한자의 탄생>을 읽으면서 받았던 여운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탕누어가 다양한 주제로 소개하는 한자들을 경험하며 한자에 담겨있는 고대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었고, 그때 느꼈던 영감과 자극 덕분에 한자로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입이 닳도록 한자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을까? 최근 <한문이 예술> 글을 쓰면서 내가 느끼는 재미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서서히 실감하고 있다. 요즘에는 그 문제의 원인이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야) 알고 있는 지식과 배경이 너무 짧고 얕고 좁아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게 된 <한자의 풍경>은 탕누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자의 경이로움을 전달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고고학적 자료와 유물 조사의 기록, 시대적 배경과 흐름, 최근까지 계속 달라지고 있는 담론을 소개하면서 비교적 추상적이고 짐작되는 내용보다는 실재적이고 사실에 근거하는 한자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학술적인 책이라고 생각됐지만 저자는 동시에 한자가 갖고 있는 힘과 경이로움을 놓치지 않는다.   한자의 기원을 찾아가다 보면 빛나는 정지된 순간을 만나게 된다. (6)     저자는 형태에 의미가 남아있는 한자의 특성상 문자가 만들어진 순간을 파헤치다 보면 문자를 만들어 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본 경외심을 느낄 수...
현실이 상상으로, 상상이 다시 현실로 동은       1. 빛나는 정지된 순간    몇 년 전 여울아쌤과 탕누어의 <한자의 탄생>을 읽으면서 받았던 여운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탕누어가 다양한 주제로 소개하는 한자들을 경험하며 한자에 담겨있는 고대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었고, 그때 느꼈던 영감과 자극 덕분에 한자로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입이 닳도록 한자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을까? 최근 <한문이 예술> 글을 쓰면서 내가 느끼는 재미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서서히 실감하고 있다. 요즘에는 그 문제의 원인이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야) 알고 있는 지식과 배경이 너무 짧고 얕고 좁아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게 된 <한자의 풍경>은 탕누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자의 경이로움을 전달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고고학적 자료와 유물 조사의 기록, 시대적 배경과 흐름, 최근까지 계속 달라지고 있는 담론을 소개하면서 비교적 추상적이고 짐작되는 내용보다는 실재적이고 사실에 근거하는 한자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학술적인 책이라고 생각됐지만 저자는 동시에 한자가 갖고 있는 힘과 경이로움을 놓치지 않는다.   한자의 기원을 찾아가다 보면 빛나는 정지된 순간을 만나게 된다. (6)     저자는 형태에 의미가 남아있는 한자의 특성상 문자가 만들어진 순간을 파헤치다 보면 문자를 만들어 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본 경외심을 느낄 수...
동은
2023.09.11 | 조회 317
    정상을 벗어난 관계 - 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투쟁』 리뷰           『아이들의 계급투쟁』. 나는 이 제목을 보고 아프리카 아이들이 직접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급 불평등에 분노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에 동화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책에선 전혀 다른 내용들이 펼쳐졌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계 영국인 브래디 미카코로, 책은 미카코가 오랫동안 보육교사로 활동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는 그녀가 처음 보육 봉사를 시작했던 영국 저변에 위치한 탁아소의 이야기이다. 미카코는 저변 탁아소의 활동을 인정받아 정식 보육교사가 되었으며, 민간 어린이집 교사로 채용된다. 1부는 그녀가 일하던 민간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과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저변 탁아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권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면서 민간 보육 기관으로 향하던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단순한 ‘보육일지’라기 보다는 보육 현장 최전선에서 기록한 ‘투쟁일지’에 가깝다. 그녀가 돌아간 탁아소는 영국 브라이턴에 소재한 하층계급 주민들을 돕는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 탁아소는 스스로를 영국 생활수준의 최하위권이라고 명시히고 있으며, 그렇기에 흔히들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책에선 1부와 2부의 내용을 구분하기 위해 보육기관으로 향하는 예산이 긴축된 시점의 1부를 ‘긴축 탁아소’라 부르고, 노동당이 집권하던 시기이자 미카코가 보육 봉사를 하던 시기의 2부를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평소 슬프거나 감동적인 작품을 봐도 잘 울지 않는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수시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저자는 저변의 이야기를 다루며 감정적인 호소를 하기 보다는, 보육과...
    정상을 벗어난 관계 - 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투쟁』 리뷰           『아이들의 계급투쟁』. 나는 이 제목을 보고 아프리카 아이들이 직접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급 불평등에 분노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에 동화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책에선 전혀 다른 내용들이 펼쳐졌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계 영국인 브래디 미카코로, 책은 미카코가 오랫동안 보육교사로 활동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는 그녀가 처음 보육 봉사를 시작했던 영국 저변에 위치한 탁아소의 이야기이다. 미카코는 저변 탁아소의 활동을 인정받아 정식 보육교사가 되었으며, 민간 어린이집 교사로 채용된다. 1부는 그녀가 일하던 민간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과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저변 탁아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권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면서 민간 보육 기관으로 향하던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단순한 ‘보육일지’라기 보다는 보육 현장 최전선에서 기록한 ‘투쟁일지’에 가깝다. 그녀가 돌아간 탁아소는 영국 브라이턴에 소재한 하층계급 주민들을 돕는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 탁아소는 스스로를 영국 생활수준의 최하위권이라고 명시히고 있으며, 그렇기에 흔히들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책에선 1부와 2부의 내용을 구분하기 위해 보육기관으로 향하는 예산이 긴축된 시점의 1부를 ‘긴축 탁아소’라 부르고, 노동당이 집권하던 시기이자 미카코가 보육 봉사를 하던 시기의 2부를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평소 슬프거나 감동적인 작품을 봐도 잘 울지 않는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수시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저자는 저변의 이야기를 다루며 감정적인 호소를 하기 보다는, 보육과...
우현
2023.09.11 | 조회 162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흐름으로서의 세계  『운행과 창조』 프랑수와 줄리앙     예전에 어떤 다큐에서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의 사고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물고기가 들어있는 수조를 보여주고 이후에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도록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주로 물고기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동양 사람들은 수조 안에 수초나, 돌이 놓인 위치 등 물고기뿐 아니라 배경에 대한 묘사를 꼭 넣어서 이야기를 했다. 주체를 중시하는 서구인에 비해 배경을 고려하는 동양인에게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 다큐의 마무리였다. 얼핏 보기에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들도 그 다큐와 비슷해 보인다. 서구사상과 동양사상을 비교하는 것이 말이다. 『운행과 창조』 역시 동양의 ‘운행(運行)’을 서구의 ‘창조(創造)’와 비교하며 동양사상의 특징을 서술하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줄리앙의 책은 ‘어렵다’     왕부지의 『주역』   줄리앙의 책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게 된 것은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를 읽은 뒤였다. 동양 철학을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맹자도 잘 모르는데, 칸트까지. 어려움이 이중 삼중으로 느껴졌다. 그 뒤에 만나는 줄리앙의 책은 공부를 하는 만큼만 쉬워졌다. 그리고 이 책 『운행과 창조』는 제일 먼저 만났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맹자와 칸트가 낯설었던 만큼, ‘왕부지’가 낯설기 때문이다.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명말청조의 학자이다. 그가 과거에 막 합격했던 시기에 ‘이자성의 난’ 등 민란이 일어나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그는 항청(抗靑) 투쟁을 했으나 그의 바람과 달리 청나라의 세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말년에 왕부지는 청에 대한...
흐름으로서의 세계  『운행과 창조』 프랑수와 줄리앙     예전에 어떤 다큐에서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의 사고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물고기가 들어있는 수조를 보여주고 이후에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도록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주로 물고기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동양 사람들은 수조 안에 수초나, 돌이 놓인 위치 등 물고기뿐 아니라 배경에 대한 묘사를 꼭 넣어서 이야기를 했다. 주체를 중시하는 서구인에 비해 배경을 고려하는 동양인에게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 다큐의 마무리였다. 얼핏 보기에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들도 그 다큐와 비슷해 보인다. 서구사상과 동양사상을 비교하는 것이 말이다. 『운행과 창조』 역시 동양의 ‘운행(運行)’을 서구의 ‘창조(創造)’와 비교하며 동양사상의 특징을 서술하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줄리앙의 책은 ‘어렵다’     왕부지의 『주역』   줄리앙의 책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게 된 것은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를 읽은 뒤였다. 동양 철학을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맹자도 잘 모르는데, 칸트까지. 어려움이 이중 삼중으로 느껴졌다. 그 뒤에 만나는 줄리앙의 책은 공부를 하는 만큼만 쉬워졌다. 그리고 이 책 『운행과 창조』는 제일 먼저 만났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맹자와 칸트가 낯설었던 만큼, ‘왕부지’가 낯설기 때문이다.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명말청조의 학자이다. 그가 과거에 막 합격했던 시기에 ‘이자성의 난’ 등 민란이 일어나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그는 항청(抗靑) 투쟁을 했으나 그의 바람과 달리 청나라의 세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말년에 왕부지는 청에 대한...
진달래
2023.09.11 | 조회 19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아론 베나바브, 『자동화 사회와 노동의 미래』1) ― 미래에, 구두는 누가 닦을 것인가?   사소하지 않은 문제 프랜시스 윈의 맑스 전기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맑스가 머물던 루트비히 쿠겔만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 맑스에게 ‘공산주의 사회에서 구두는 누가 닦나요?’라고 묻는다. 이에 모욕감을 느낀 맑스는 ‘당신이 닦으시오!’라고 쏘아붙였다2). 그렇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누군가는 구두를 닦아야 하고, 거리를 청소해야하며, 음식물 쓰레기도 누군가는 수거해야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체제의 변환이지 그런 사소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게다가 맑스주의 담론 안에는 그런 ‘사소한 문제제기’에 대한 충실한 방어 논리도 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가 개체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명제’다. 사적소유가 철폐된 세계에서 그런 일들은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이 아니게 될 테고, 누가되었든, 그게 누구든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하에서 빈번한, 직업의 귀천에 따른 사회적 차별은 그곳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자본주의적 차별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꺼리는 것이 다만 ‘자본주의적 심성’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그러면 사회적 관계가 전체가 전변했던 현실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그런 일들은 누구의 몫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른바 ‘고급 당원’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시스템은 결국 자신의 목표였던 계급의 철폐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전의 계급을 새로운 계급으로 대체했을 뿐. 심지어 ‘출신성분’을 따져가며 계급을 분할한다는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는 계급 철폐...
아론 베나바브, 『자동화 사회와 노동의 미래』1) ― 미래에, 구두는 누가 닦을 것인가?   사소하지 않은 문제 프랜시스 윈의 맑스 전기에는 이런 일화가 나온다. 맑스가 머물던 루트비히 쿠겔만의 집에 찾아온 손님이 맑스에게 ‘공산주의 사회에서 구두는 누가 닦나요?’라고 묻는다. 이에 모욕감을 느낀 맑스는 ‘당신이 닦으시오!’라고 쏘아붙였다2). 그렇다. 세상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누군가는 구두를 닦아야 하고, 거리를 청소해야하며, 음식물 쓰레기도 누군가는 수거해야 한다. 물론 ‘중요한 것은 체제의 변환이지 그런 사소한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있다. 게다가 맑스주의 담론 안에는 그런 ‘사소한 문제제기’에 대한 충실한 방어 논리도 있다. 그것은 ‘사회적 관계가 개체의 의식을 결정한다는 명제’다. 사적소유가 철폐된 세계에서 그런 일들은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이 아니게 될 테고, 누가되었든, 그게 누구든 그것을 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자본주의 하에서 빈번한, 직업의 귀천에 따른 사회적 차별은 그곳이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일어난다는 것, 따라서 그것은 자본주의적 차별일 뿐이다. 그런데 정말 그런가? 많은 사람들이 그런 일들을 꺼리는 것이 다만 ‘자본주의적 심성’에서 비롯된 문제일까? 그러면 사회적 관계가 전체가 전변했던 현실 사회주의 시스템에서 그런 일들은 누구의 몫이었을까? 모르긴 몰라도 이른바 ‘고급 당원’의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사회주의 시스템은 결국 자신의 목표였던 계급의 철폐를 달성하는 데 실패했다. 이전의 계급을 새로운 계급으로 대체했을 뿐. 심지어 ‘출신성분’을 따져가며 계급을 분할한다는 점에서 현실 사회주의는 계급 철폐...
정군
2023.09.11 | 조회 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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