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차별은 없다, 정말입니까?

스르륵
2023-09-17 20:57
415

차별은 없다, 정말입니까?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2023), 이주희

 

 

감정사회학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왔던 현타는 ‘지금 내 감정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감정은 자발적이고 은밀한 나만의 본질같은 것이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연출된다는 것.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바로 그런 감정과 ‘구조의 은밀한 콜라보에 차별’이라는 다소 버거운 주제를 함께 이야기 한다.

 

 

 

 

처음엔 ‘차별’이라는 주제에 오히려 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차별받으며 혹은 차별하며 살아온 사람일까?’라는 물음에 이내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며, 차별이 식상한 주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이미 ‘차별’에 너무 익숙해져서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받지 않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혹은 식상하다는 이 느낌은 아마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더뎌지고 희미해지고 무산되는 과정에서 번번이 느꼈던 익숙한 실망감이거나, 그도 아니면 너무 어마한 주제에 대한 무기력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마디로 언급하기엔 좀 불가능하지만 ‘감정’, ‘구조’, ‘차별’ 이라는 어마무시한 삼총사를 1234를 통해 ‘아무튼’ 만나 보았다.  

 

차별은 구조와 맞물려 있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차별에 둔감한 이유는 우리 각자가 서로 다른 성향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조 속에 숨어 들어간 차별을 식별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차별은 차별하는 이나 차별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과 국가, 그리고 여러 신념체계가 복합적으로 작동해서 발생 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한다면 차별에 대해 이제껏 제기된 다양한 이야기들과 소기의 성과들은 장기적인 효과로 이어지기 힘들다.

 

 

하여 구조 속에 숨겨진 차별을 인식하는 것은 무너진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첫걸음이다. 보통 우리는 조직(구조)이 합리적일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조직은 모든 절차를 정당화하면서 차별이나 불평등에 관한 문제들을 감추는데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사와 육아에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있는 여성의 문제는 고려되지 않은 채 행해지는 성 중립적 채용 절차들, 그리고 차별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공정하게 요구되는 졸업장과 시험 성적이 알고 보면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가리는 간접차별인 것처럼 말이다.

 

 

더구나 시장 경쟁이 자연스럽게 강조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조직에서의 차별 문제는 구조적 차별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쉽게 치환되어 버린다. 인적자원에 대한 합리적인 투자라는 명목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무시되고, 백인보다 흑인이 소프트 스킬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인종차별 역시 자연스레 합리화된다. 무한 경쟁에 대처해야 하는 유연하고 효율적인 조직에서 요구하는 인재란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즉 조직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추상화된 개인이다. 성과와 경쟁 중심의 조직 구조 내에서 우리가 겪는 차별은 개인적인 문제로 평가절하 되기 일쑤다.

 

 

멀리 가지 않아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익숙하게 유통되는 차별의 서사인 ’능력주의‘ 역시 구조적인 차별을 지속시키는 주범이다. 능력에 따른 분배는 정당하고 평등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친 임금 격차로 연결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불평등이 극대화된 지금의 시대에는 재능과 노력, 어쩌면 운까지도 ‘가진’ 부모와 거기서 유래한 재능과 유전자, 환경적 요인이라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 기반하고 있기에 말이다. 불평등과‘불평등’하게 분배된 자원에 기대어 ‘공정하게’ 펼쳐지는 오징어 게임의 ‘무한 경쟁’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무엇보다 차별에 대한 이러한 구조적인 접근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점은 구조적 차별이 조직에 한 번 자리 잡게 되면 고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차별을 시정할 때 생겨날 위험을 회피하려는 조직의 엄청난 관성때문이기도 하고, 한번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된 개인이 지배적인 사고로부터 쉽게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점에 기인한다. 즉 우리가 경쟁적 시장의 원리라든가 개인주의, 혹은 능력주의에서 파생된 시험 서열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들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 대안이 없다고 여겨진다면 차별받는 사람은 스스로 체념하거나 순응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여 구조와 맞물려 있는 차별 속에서는 차별이 잉태한 감정들이 발아된다.

 

 

감정은 구조를 드러낸다

순응이나 체념, 정치적 혐오나 무기력한 분노같은 감정들은 차별하는 구조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지금의 시대적 감정이다. 우리가 차별과 함께 이런 감정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감정을 통해 거시 구조의 전면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모든 집합적 행동에 연루되어 있기에 감정사회학은 감정 그 ‘자체’보다 감정을 ‘통한’ 연구에 집중하고자 한다. 감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지금의 시공간을 해석하고 느끼며 새로운 가능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학 분야에서 일찍이 감정의 중요성에 주목해온 마이클 해먼드와 혹실드에 주목한다. 해먼드는 거시 구조를 인간의 정서적 역량의 산물로 정의한다. 혹실드 역시 『감정노동』에서 거시 구조 속에서 억압되고 관리되고 있는 인간의 감정을 포착해 냄으로써 거대 구조와 맞물려 있는 인간의 감정을 재발견한다. 그리고 이는 감정적 해방이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있어 지적인 해방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저자의 성찰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저항을 할 때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만이 아닌 그것에 대한 대안적인 감정을 느낄 권리까지 가져야 진정 그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여성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은 단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정해놓은 감정 규칙, 즉 죄책감이나 수치심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에 말이다.

 

 

어떤 새로운 감정양식이 출현한다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새로운 방식이 생겨난다는 말과 같다. 하여 고용주에게도 화를 내고 비판할 수 있는 ‘노동자’, 분노의 감정을 전통적 여성성 뒤에 숨기지 않으며 정당하게 분출시킬 수 있는 ‘여성’은 거시 구조의 프레임 규칙과 감정 규칙과의 투쟁 속에 있는 일종의 혁명가다. 알고 보면 한 사회의 지배층이나 일반적인 사회 집단 모두가 서로서로 그들의 감정 규칙의 정당성을 위해 주장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이런 감정 관리를 지배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투쟁의 영역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차별받는 사람이 이런 투쟁에서 승리하는 확률은 적다. 오히려 체념하고 적응하기 쉬운 이유는 저항에 대한 불이익과 고난에 대한 공포, 혹은 특권층에 대한 인정과 복종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종종 자신과 혹은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의 감정으로 투사되기도 한다. 특히 혐오는 차별과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노인,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혐오의 원래적 맥락에서 지나치게 확대되어 정체성 정치에 이용당하거나 죽음의 서사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2021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조사 대상의 70페센트 이상이 실생활에서 혐오 표현을 접한 경험으로 입증되며, 또 한국 성소수자 자살 시도 비율이 일반인의 9배가 넘는다는 사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OECD 국가 평균보다 2,7배가 넘어 전체 1위라는 사실, 그리고 능력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요구하는 이중적 위계 구조로 내몰린 우리나라 2030여성의 자살률 역시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비극으로 드러난다. 차별받은 감정은 취약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민낯으로 드러낸다.

 

 

 

저는 몰랐습니다만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소득의 불평등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실존적 불평등(수명이나 인권)에 관련해서는 대대적인 진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소수자의 실존적 평등을 인정해주더라도 경제적인 상위 계층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기에 일어난 ‘웃픈’ 현상일 뿐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이네와 박사장네가 서로 적대시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저 서로를 모를 뿐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보면 테르보른의 이 평가는 정확해 보인다. 차별에서 이어지는 불평등의 구조는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는 사실로써 더 선명해 진다. 차별하는 구조와 차별받는 감정은 이제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다.

 

 

 

 

결론은? 결론은 ‘짐작했듯이’ 적극적인 입법과 실효성 있는 정책의 실행이다. ‘차별 금지법’이나 ‘적극적 조치’, ‘기본 소득’ 너무 익숙한 결말인가? 그러나 ‘차별’과 ‘구조’와 ‘감정’의 트릴로지를 경유해서 도착한 이 결말은 이전과는 좀 다르게 다가온다. 제목이 제시하는 목적이 너무나 분명해서 다 안다고 느껴졌던 ‘차별금지법’이 실은 2000년대 초부터 입안이 시작되어 2022년까지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 난 몰랐다. 무엇보다 이미 성별, 장애, 고용에 관한 개별 차별금지법이 있음에도 이 법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중 소수자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더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점,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차별을 꼭 적시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 만큼 차별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은밀해진 현실을 반증하고 있으며, 또 경제계와 기독교계의 반발은 알고 보면 차별금지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역시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적극적 조치’란 이미 저질러진 과거의 차별적 처우에 대해 보상하고 현재의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소수집단을 우대하는 정책이다., 차별금지법이 있어도 차별하는 사람의 악의와 고의를 항상 증명하기는 어렵기에 차별금지법의 시행착오를 보완하는 역할도 한다. 적극적 조치는 단 하나의 정책이라기 보다 다양한 법제와 판례로 구성되어 있는 보편적이며 광범위한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용개선조치, 사회배려자 전형, 지역균형선발, 양성평등 및 지방인재 채용 목표제, 장애인 구분모집제, 여성관리자 임용목표관리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자동화, 구조조정이 상시화 된 지금에 적극적 조치는 역차별이라는 반발에 직면하기도 한다. 저자는 역차별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현실에서나 나올 수 있는 반론이라 일갈하며, 무엇보다 이런 차별의 구조와 감정을 재배열 할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서 ‘기본 소득’을 호명한다.

 

 

 

 

지금 코로나19를 통과한 우리 노동의 현주소는 국가 간 물리적 이동 감소를 포함한 반세계화 추세와 대면 노동 기피, 자동화 급증과 노동 수요 감소, 경기 침체의 장기화, 극심한 중산층의 붕괴다. 유연한 고용체계와 기업의 금융화는 고소득자의 지속적인 세금 감소 추진으로 이어질 것이며, 뒤따라 공공 서비스가 삭감되고 비자발적 실업이 그 뒤를 쌍둥이처럼 따른다. 그리고 과거 산업화 시기에 만들어졌던 복지 국가 모델은 지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기후 위기, 극단적인 불평등의 문제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간다. 하여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 시스템의 개혁을 촉발할 수 있는 제도로서 원래적 의미가 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은 다른 조건부 현금 지원책 보다 진일보한 제도로서 수혜자가 원하는 곳에 쓸 수 있는 자유를 늘린다. 이 자유에는 모두의 우려(?)처럼 ‘일하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되는데, 저자는 이를 나쁜 일자리를 피해 기다릴 수 있는 시간적 자유로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일하지 않을 자유는 노동자의 노동 교섭권을 향상시키고 작업장에서의 민주적인 통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본소득은 ‘일 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하는데, 남성의 일하지 않을 자유가 평등한 가사 분담으로 이어져 여성의 일할 자유로 연결될 수 있다는게 그 주장이다.

 

 

 

 

물론 반대 의견이나 문제점들 역시 만만치 않다. 기존의 복지가 축소될 위험, 조세 부담의 심리적 저항들, 그리고 능력주의와 성과주의적 맥락에서 여전히 기본 소득이 해명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제도가, 어떤 특정한 기술 수준이 사회적 삶을 우리가 기대한 형태로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기본 소득과 차별 금지법 그리고 적극적인 조치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똑같은 정책이라도 나라마다 다른 효과로 나타나는 국제적 아이러니는 정치나 제도가 그 사회의 맥락과 어떻게 융합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기에 말이다. 하여 결국 이 책이 기본 소득이냐 아니냐를 너머 지금, 여기, 우리의 서사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를 다시 묻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이 리뷰의 마지막 한 줄 결론을 어떻게 맺으면 좋을까... ‘음 저기... 우리 지금 차별이나 기본 소득 난상토론 한번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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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이후에도 삶이 있다 『내가 알던 그 사람』(2018), 웬디 미첼       지난번 1234에서 ‘유쾌한 치매관계를 위한 상상력 한 자밤’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상상력 한 자밤을 얻어 볼까 하고 『내가 알던 그 사람』을 골랐다. 저자 웬디 미첼은 영국의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20년간 근무하던 중이었다. 이혼 후 청소부를 하며 싱글맘으로 두 딸을 키우다가 이직을 하고, 뛰어난 기억력과 일처리 능력 덕분에 간호사의 근무일정을 작성하는 복잡한 업무처리 팀의 노련한 팀장이 되었다. ‘아니야, 그럴 리 없어’라고 생각했지만 58세에 알츠하이머 초기 진단을 받은 웬디. ‘내가 알던 그 사람’은 치매 이전의 자신을 말한다. 85세가 아니고 58세라니! 엄마의 상상의 세계만이 문제가 아닐 듯하다.                                                         감정의 책꽂이를 채우다   웬디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지만 의사가 ‘알츠하이머’와 ‘치매’라는 두 단어를 말하는 순간은 그냥 멍하다. 치매진단을 받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아는 인생을 훔쳐갈 단어. 치매는 이렇게 ‘들이닥치고’ 그 이유조차 모른다. ‘거대한 시꺼먼 블랙 홀’, 완전히 백지상태였다. 그리고 거기에는 ‘나’ 자신이 없었다. 즉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머릿속이 목화솜이 반쯤 차 있는 것처럼 뿌예지고, 조깅을 하다가 이유 없이 넘어지고, 포크를 떨어뜨리고, 생각한 것만큼 말할 수 없고, 밑도 끝도 없는 피로감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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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이 상상으로, 상상이 다시 현실로 동은       1. 빛나는 정지된 순간    몇 년 전 여울아쌤과 탕누어의 <한자의 탄생>을 읽으면서 받았던 여운은 지금까지도 남아있다. 탕누어가 다양한 주제로 소개하는 한자들을 경험하며 한자에 담겨있는 고대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었고, 그때 느꼈던 영감과 자극 덕분에 한자로 어떤 이야기를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나는 입이 닳도록 한자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나에게 깨달음을 준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과연 그것을 얼마나 잘 전달하고 있을까? 최근 <한문이 예술> 글을 쓰면서 내가 느끼는 재미와 사람들에게 잘 전달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라는 걸 서서히 실감하고 있다. 요즘에는 그 문제의 원인이 (당연한 말이지만 이제야) 알고 있는 지식과 배경이 너무 짧고 얕고 좁아서 그 한계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읽게 된 <한자의 풍경>은 탕누어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자의 경이로움을 전달하고 있었다. 구체적인 고고학적 자료와 유물 조사의 기록, 시대적 배경과 흐름, 최근까지 계속 달라지고 있는 담론을 소개하면서 비교적 추상적이고 짐작되는 내용보다는 실재적이고 사실에 근거하는 한자를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굉장히 학술적인 책이라고 생각됐지만 저자는 동시에 한자가 갖고 있는 힘과 경이로움을 놓치지 않는다.   한자의 기원을 찾아가다 보면 빛나는 정지된 순간을 만나게 된다. (6)     저자는 형태에 의미가 남아있는 한자의 특성상 문자가 만들어진 순간을 파헤치다 보면 문자를 만들어 낸 사람이 세상을 바라본 경외심을 느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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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은
2023.09.11 | 조회 326
    정상을 벗어난 관계 - 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투쟁』 리뷰           『아이들의 계급투쟁』. 나는 이 제목을 보고 아프리카 아이들이 직접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급 불평등에 분노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에 동화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책에선 전혀 다른 내용들이 펼쳐졌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계 영국인 브래디 미카코로, 책은 미카코가 오랫동안 보육교사로 활동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는 그녀가 처음 보육 봉사를 시작했던 영국 저변에 위치한 탁아소의 이야기이다. 미카코는 저변 탁아소의 활동을 인정받아 정식 보육교사가 되었으며, 민간 어린이집 교사로 채용된다. 1부는 그녀가 일하던 민간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과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저변 탁아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권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면서 민간 보육 기관으로 향하던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단순한 ‘보육일지’라기 보다는 보육 현장 최전선에서 기록한 ‘투쟁일지’에 가깝다. 그녀가 돌아간 탁아소는 영국 브라이턴에 소재한 하층계급 주민들을 돕는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 탁아소는 스스로를 영국 생활수준의 최하위권이라고 명시히고 있으며, 그렇기에 흔히들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책에선 1부와 2부의 내용을 구분하기 위해 보육기관으로 향하는 예산이 긴축된 시점의 1부를 ‘긴축 탁아소’라 부르고, 노동당이 집권하던 시기이자 미카코가 보육 봉사를 하던 시기의 2부를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평소 슬프거나 감동적인 작품을 봐도 잘 울지 않는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수시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저자는 저변의 이야기를 다루며 감정적인 호소를 하기 보다는, 보육과...
    정상을 벗어난 관계 - 브래디 미카코, 『아이들의 계급투쟁』 리뷰           『아이들의 계급투쟁』. 나는 이 제목을 보고 아프리카 아이들이 직접 투쟁을 벌이는 이야기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계급 불평등에 분노하는 어른들, 그리고 그에 동화된 아이들의 이야기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책에선 전혀 다른 내용들이 펼쳐졌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계 영국인 브래디 미카코로, 책은 미카코가 오랫동안 보육교사로 활동해온 이야기를 담고 있다. 2부는 그녀가 처음 보육 봉사를 시작했던 영국 저변에 위치한 탁아소의 이야기이다. 미카코는 저변 탁아소의 활동을 인정받아 정식 보육교사가 되었으며, 민간 어린이집 교사로 채용된다. 1부는 그녀가 일하던 민간 어린이집이 문을 닫으면서 과거에 자원봉사자로 활동했던 저변 탁아소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된다. 집권당이 노동당에서 보수당으로 바뀌면서 민간 보육 기관으로 향하던 복지예산의 상당 부분이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아이들의 계급투쟁』은 단순한 ‘보육일지’라기 보다는 보육 현장 최전선에서 기록한 ‘투쟁일지’에 가깝다. 그녀가 돌아간 탁아소는 영국 브라이턴에 소재한 하층계급 주민들을 돕는 기관에 소속되어 있다. 탁아소는 스스로를 영국 생활수준의 최하위권이라고 명시히고 있으며, 그렇기에 흔히들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책에선 1부와 2부의 내용을 구분하기 위해 보육기관으로 향하는 예산이 긴축된 시점의 1부를 ‘긴축 탁아소’라 부르고, 노동당이 집권하던 시기이자 미카코가 보육 봉사를 하던 시기의 2부를 ‘저변 탁아소’라고 부른다.    평소 슬프거나 감동적인 작품을 봐도 잘 울지 않는 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는 수시로 눈가가 촉촉해졌다. 저자는 저변의 이야기를 다루며 감정적인 호소를 하기 보다는, 보육과...
우현
2023.09.11 | 조회 168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흐름으로서의 세계  『운행과 창조』 프랑수와 줄리앙     예전에 어떤 다큐에서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의 사고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물고기가 들어있는 수조를 보여주고 이후에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도록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주로 물고기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동양 사람들은 수조 안에 수초나, 돌이 놓인 위치 등 물고기뿐 아니라 배경에 대한 묘사를 꼭 넣어서 이야기를 했다. 주체를 중시하는 서구인에 비해 배경을 고려하는 동양인에게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 다큐의 마무리였다. 얼핏 보기에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들도 그 다큐와 비슷해 보인다. 서구사상과 동양사상을 비교하는 것이 말이다. 『운행과 창조』 역시 동양의 ‘운행(運行)’을 서구의 ‘창조(創造)’와 비교하며 동양사상의 특징을 서술하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줄리앙의 책은 ‘어렵다’     왕부지의 『주역』   줄리앙의 책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게 된 것은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를 읽은 뒤였다. 동양 철학을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맹자도 잘 모르는데, 칸트까지. 어려움이 이중 삼중으로 느껴졌다. 그 뒤에 만나는 줄리앙의 책은 공부를 하는 만큼만 쉬워졌다. 그리고 이 책 『운행과 창조』는 제일 먼저 만났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맹자와 칸트가 낯설었던 만큼, ‘왕부지’가 낯설기 때문이다.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명말청조의 학자이다. 그가 과거에 막 합격했던 시기에 ‘이자성의 난’ 등 민란이 일어나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그는 항청(抗靑) 투쟁을 했으나 그의 바람과 달리 청나라의 세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말년에 왕부지는 청에 대한...
흐름으로서의 세계  『운행과 창조』 프랑수와 줄리앙     예전에 어떤 다큐에서 서양 사람들과 동양 사람들의 사고가 얼마나 다른지에 대한 영상을 본 적이 있다. 물고기가 들어있는 수조를 보여주고 이후에 기억나는 것을 이야기하도록 하는데 서양 사람들은 주로 물고기의 움직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고, 동양 사람들은 수조 안에 수초나, 돌이 놓인 위치 등 물고기뿐 아니라 배경에 대한 묘사를 꼭 넣어서 이야기를 했다. 주체를 중시하는 서구인에 비해 배경을 고려하는 동양인에게는 ‘관계’가 중요하다는 것이 그 다큐의 마무리였다. 얼핏 보기에는 프랑수아 줄리앙의 책들도 그 다큐와 비슷해 보인다. 서구사상과 동양사상을 비교하는 것이 말이다. 『운행과 창조』 역시 동양의 ‘운행(運行)’을 서구의 ‘창조(創造)’와 비교하며 동양사상의 특징을 서술하고 있다. 다른 게 있다면 줄리앙의 책은 ‘어렵다’     왕부지의 『주역』   줄리앙의 책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갖게 된 것은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를 읽은 뒤였다. 동양 철학을 공부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맹자도 잘 모르는데, 칸트까지. 어려움이 이중 삼중으로 느껴졌다. 그 뒤에 만나는 줄리앙의 책은 공부를 하는 만큼만 쉬워졌다. 그리고 이 책 『운행과 창조』는 제일 먼저 만났던 『맹자와 계몽철학자의 대화』만큼, 어렵다. 왜냐하면 맹자와 칸트가 낯설었던 만큼, ‘왕부지’가 낯설기 때문이다. 왕부지(王夫之:1619~1692)는 명말청조의 학자이다. 그가 과거에 막 합격했던 시기에 ‘이자성의 난’ 등 민란이 일어나 관직에 나가지 못했다. 명나라가 멸망하고 청나라가 세워지는 과정에서 그는 항청(抗靑) 투쟁을 했으나 그의 바람과 달리 청나라의 세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말년에 왕부지는 청에 대한...
진달래
2023.09.11 | 조회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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