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16회]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 <시>(2010)

청량리
2022-04-30 21:09
355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시 Poetry(2010) | 감독 이창동 | 주연 윤정희 | 135분 | 15세 이상

 

 

 

 

 

 

영화는 개천에서 떠내려 오는 주검을 한 아이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스토리는 ‘누가, 왜 죽였는지’ 밝혀나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관심 역시 대부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서, 왜!!!

그러나 이 영화의 질문은 애초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66세 미자(윤정희). 그녀가 '시'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임을 의심한 이후였다. 스스로 ‘시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해보니 잘 안 써진다. 그러나 그건 사물의 이름이나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증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자가 참가하는 문예교실에서 김용택 시인(극중 김용탁)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그럴 때 느껴지는 무언가를 적은 것이 바로 '시'란다. 집으로 돌아온 미자는 식탁에 앉아 사과를 바라보거나 혹은 나무 밑에서 앉아 시가 떠오르길 기다리지만, 여전히 ‘진짜’를 보지 못하고 그들을 어떤 ‘대상’으로 바라본다. 그것들은 아직 그녀의 시를 위한 사과이고, 나무일뿐이다.

 

 

이어서 영화는 앞서 죽은 아이가 미자의 손자와 같은 중학교 여학생이며, 손자가 성폭행 가해자 중 한 명임을 담담하게 드러낸다. 등교 전 손자의 아침밥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했던 미자는 충격에 빠진다. 이번에는 죽은 여학생에 대한 애도의 시를 써보려고 하지만 실패한다. 여학생의 사진을 훔치고 그 아이의 집을 찾아가 보지만, 김용택 시인의 관점을 빌리자면 그 아이는 미자에게 아직 제대로 보지 못한 ‘사과’에 가까웠다. 이 사건을 통해 감독이 말하려는 시의 의미는 무엇일까? 진짜로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영화 <시>(2010)는 이창동 감독의 전작인 <밀양>(2007)과 함께 ‘구원’의 문제를 다루는 연장선에 놓여있다. 정치가 영화를 선동적으로 다루는 방식과 유사하게 종교 역시 영화를 ‘수단’으로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한 ‘종교영화’는 대부분 특정 종교의 복음과 전도를 목적으로 하며, 신에 대한 믿음이 곧 구원에 이르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한다.

영화 <밀양>에서 원하는 돈을 못 받은 유괴범은 신애(전도연)의 아들을 죽이게 되고, 이미 교통사고로 남편마저 잃은 그녀는 모든 것이 무너지는 절망에 빠진다. 이때 그녀 앞에 교회의 문이 열리고 신애는 새 삶을 얻은 듯하다. 신에 대한 그녀의 믿음은 무엇으로 보장받을 수 있고, 그녀는 어떻게 신의 구원을 확신할 수 있을까? 아들을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는 것이 자신에게 보여준 신의 응답이라 생각한 신애는 감옥을 찾아간다.

그러나 철창 너머의 그 유괴범 역시 자신도 하나님을 만나 용서를 받았다는 신앙고백을 듣자 신애는 혼란스러워한다. 그를 용서하는 건 자신이어야 했다. 그게 신이 자신에게 보여준 구원의 길이라 생각했다. 남편과 아들을 데려갔고 자신마저도 구원하지 않는 하나님이 이해되지 않는다. 그때부터 신애는 삐뚤어지기 시작한다. 집에서 ‘사과’를 깎아 먹던 칼로 자신의 손목을 그으며 위를 바라본다. “(하나님) 보고 있어요?” 당신의 구원 따위는 이제 필요 없어.

두 영화에는 유사한 실패가 반복적으로 드러난다. 유괴범(밀양)과 여학생(시)을 ‘진짜로’ 보지 못하고, 구원과 시의 ‘대상’으로 마주했기 때문에 신애는 구원받지 못했고, 미자도 아직 시를 쓰지 못한다.

인간에게 삶과 죽음은 어려운 난제다. 종교는 인간들에게 평온의 안식처를 제공하는 듯하다. 종교영화는 그러한 신앙의 ‘이미지’를 반복적으로 재현한다. 그러나 거대한 핵무기나 아주 작은 바이러스 앞에서 우리는 여전히 그 해답을 찾지 못하고 헤매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요점을 놓치고 있다. 누군가 신에게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신은 그에게 인내심을 줄까, 아니면 인내심을 발휘할 기회를 줄까? 사랑을 주세요, 라고 한다면 묘한 사랑의 감정을 줄까, 아니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줄까?”(영화 <브루스 올마이티> 중에서) 신애와 미자의 실패를 돌이켜보면, 결국 풀리지 않는 난제의 ‘해법’이 아닌, 그 앞에서 흔들리는 자신의 태도와 마주하려 할 때 성찰이 일어나는 건 아닐까?

<밀양>과는 달리 <시>에서는 기독교나 교회에 대한 직접적인 배경도 없지만, 그러나 두 영화 모두 짙은 ‘종교적’ 색채를 띠고 있다. 이창동 감독은 <시>에서 종교적 성찰의 문제를 더 깊숙이 파고 들어간다. “시가 죽어가는 이 시대에, 시라는 것은 말 그대로 시일 수도 있고, 영화일 수도 있고, 우리의 눈에 미처 보이지 않는 작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란 아름다운 것이다. 작지만 가치 있는 것, 그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미자는 죽은 소녀를 떠올리기 위해 몸을 던진 다리를 찾아간다. 그러나 애꿎은 모자만 강물에 빠진다. 노트를 꺼내보지만 비까지 쏟아지자 미자는 온몸이 젖은 채 허망하게 휘둥거린다. 도대체 이게 뭐람. 비에 젖은 노트를 들고 바위에 걸터앉아 흘러가는 강물을 말없이 바라보는 미자. 그때 그녀를 스치고 지나가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날 미자는 자신이 간병하고 있는 김노인을 찾아가 노골적으로 원하던 그의 성적욕구를 해결해 준다.

 

 

이 부분은 <밀양>에서 신애가 유괴범을 만나러 감옥으로 찾아가는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자신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세한탄과 김노인에 대한 약간의 연민 그리고 성폭행당한 소녀를 이해하고픈 다소의 절박함이 버무려져 있다. 난 김노인보다는 나은 인간이니까. 그러나 그 껍데기를 벗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죽은 소녀의 사진을 외면하는 손자의 태도를 마주했을 때, 죽은 소녀의 엄마 앞에서 치매증상으로 시답지 않은 꽃타령이나 늘어놓았을 때, 합의하겠다고 찾아온 그 소녀의 엄마를 정신 차리고 마주했을 때, 그러나 돈이 없다는 핑계를 늘어놓을 수밖에 없었을 때, 미자는 다시 김노인을 찾아가 돈 5백만원을 요구한다. 지난 번 대가로 날 협박하는 거냐는 김노인의 말에 그러든가 말든가, 미자는 어떻게든 소녀의 엄마에게 합의금을 줘야했다. 소녀의 죽음으로 마주한 건 아름다운 시 한 편이 아니라 냉혹한 현실이었다. 미자는 이제 소녀에게 시 한 편을 건넨다. ‘아네스의 노래’

“아니에요. 시를 쓰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시를 쓰겠다고 마음을 갖는 게 어려워요.”

<밀양>에서 신애는 결국 정신병원에 가지만, <시>에서 미자는 시 한편을 완성한다. 아무래도 이창동 감독은 존재론적 문제를 종교적(외부적) 구원이 아니라 내면적(종교적) 성찰을 통해 찾으려 하는 듯하다. “예술은 눈에 보이지 않는 진정한 아름다움을 찾아서 드러내는 것인데, 시야말로 그런 예술의 의미를 담고 있죠. 예술을 한다는 것이 눈앞에 보이는 현실의 고통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미자가 시를 쓰느냐, 소설을 쓰느냐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당연히 시를 써야 하죠.”

여기에 예술과 종교의 공통분모가 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지 않는 것들을 응시하며, 그러한 태도로 현실과 마주한다. 종교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한 채 개인의 구원으로 나아갈 수 없듯이, 예술도 현실에 발을 딛지 않고는 지속될 수 없다. 어쩌면 영화가 종교든 정치든 그 수단으로 포섭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이 그러한 현실에 바탕을 둔 예술성이 아닐까? 그렇기에 예술이 그리는 세계가 더욱 절망적일수록 희망 없는 세계와는 정반대의 꿈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이다(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그곳은 어떤가요, 얼마나 적막하나요

저녁이면 여전히 노을이 지고

숲으로 가는 새들의 노래소리 들리나요

차마 부치지 못한 편지 당신이 받아볼 수 있나요

하지 못한 고백 전할 수 있나요

시간은 흐르고 장미는 시들까요

 

이제 작별을 할 시간

머물고 가는 바람처럼 그림자처럼

오지 않던 약속도 끝내 비밀이었던 사랑도

서러운 내 발목에 입 맞추는 풀잎 하나

나를 따라온 작은 발자국에게도

작별을 할 시간

 

이제 어둠이 오면 다시 촛불이 켜질까요

나는 기도합니다

아무도 눈물은 흘리지 않기를

내가 얼마나 간절히 사랑했는지 당신이 알아주기를

 

  • 양미자 ‘아네스의 노래’ 중에서 -

 

 

 

댓글 3
  • 2022-05-01 10:45

    <밀양>도 대단한 영화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시>가 더 좋았어요.

    저도 영화 <시>에 대해 글을 쓰고 싶은 욕망이 늘 가득해요. 늘 실패하지만^^

    청량리 글 잘 읽었어요. 고마와요

     

    피에쑤: 근데 문단별로 한 줄씩 띄는 게 더 가독성이 있을듯^^

  • 2022-05-02 09:46

    전 영화 <시>를 보고나서 한동안을 미자에 감정이입되서....

    전 영화도 다큐처럼 보나봐요..🍎

  • 2022-05-03 07:33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시 Poetry(2010) | 감독 이창동 | 주연 윤정희 | 135분 | 15세 이상             영화는 개천에서 떠내려 오는 주검을 한 아이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스토리는 ‘누가, 왜 죽였는지’ 밝혀나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관심 역시 대부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서, 왜!!! 그러나 이 영화의 질문은 애초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66세 미자(윤정희). 그녀가 '시'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임을 의심한 이후였다. 스스로 ‘시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해보니 잘 안 써진다. 그러나 그건 사물의 이름이나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증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자가 참가하는 문예교실에서 김용택 시인(극중 김용탁)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그럴 때 느껴지는 무언가를...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시 Poetry(2010) | 감독 이창동 | 주연 윤정희 | 135분 | 15세 이상             영화는 개천에서 떠내려 오는 주검을 한 아이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스토리는 ‘누가, 왜 죽였는지’ 밝혀나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관심 역시 대부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서, 왜!!! 그러나 이 영화의 질문은 애초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66세 미자(윤정희). 그녀가 '시'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임을 의심한 이후였다. 스스로 ‘시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해보니 잘 안 써진다. 그러나 그건 사물의 이름이나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증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자가 참가하는 문예교실에서 김용택 시인(극중 김용탁)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그럴 때 느껴지는 무언가를...
청량리
2022.04.30 | 조회 35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고대하라, 연대의 힘 켄 로치 감독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2019)>   일한 만큼 돈 버는 세상?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기술혁신과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시장경제는 전 세계를 뒤덮어가며 노동과 토지를 사회로부터 분리해냈고, 경제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물론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커다란 이로움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나치게 빠른 속도의 변화는 기존 사회질서를 붕괴하고 해체시키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렸다. 그로 인해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 일어나면서 변화 속도를 늦추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주목할 것은 기술진보를 둘러싸고 이중적 운동(시장자유화와 사회보호운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지나치게 빠른 성장속도를 경계하는 사회보호운동으로써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 리키는 건축업에 종사하다가 전 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인해 해고된 중년 남성이다. 사람들 속에서 지쳐버린 그는 자기 사업을 갖고 싶어 택배업에 뛰어든다.  그는 면접에서 자신의 장점으로 성실함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정된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더 이상 성실함이 무기가 되지 않는 시대다. 리키의 아내 애비는 간병노동자로 밤늦게까지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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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2.04.17 | 조회 301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기억하자, 우리에게 잊히는 것을 알랭 레네 감독,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1959)         시간이라는 공통분모와 ‘현재성’ 2차 세계대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1945년 8월 두 개의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다. 역사상 최초로 일반시민 학살에 원자폭탄이 사용됐다. 그로부터 14년 후 1959년, 프랑스 여배우인 그녀는 세계평화 메시지를 위한 영화 촬영차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일본인 남자를 만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처음 와 본 히로시마에서 보낸 낯선 남자와 하룻밤. 그러나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잊고 있었던 ‘느베르’에서의 첫사랑 혹은 그의 죽음을 다시 떠올린다. 영화의 소재는 공교롭게 ‘사랑과 전쟁’ 속에 이뤄진 불륜이지만, 이건 제목처럼 부부클리닉 재현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도시, 일본의 히로시마와 프랑스의 느베르는 모두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갖고 있다. 다만, 히로시마는 집단기록인 ‘역사’를, 느베르는 개인적인 ‘기억’의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히로시마는 박물관의 전시내용 혹은 극중 영화 속 반전퍼레이드 장면을 통해 이야기되는 반면, 느베르의 시간은 대부분 그녀에게 일어난 과거 개인적인 사건에 집중한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묻고 있는 ‘집단과 개인’ 혹은 ‘역사와 기억’문제의 교집합은 ‘시간’이다. 역사 속 전쟁은 지난 과거가...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기억하자, 우리에게 잊히는 것을 알랭 레네 감독,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1959)         시간이라는 공통분모와 ‘현재성’ 2차 세계대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1945년 8월 두 개의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다. 역사상 최초로 일반시민 학살에 원자폭탄이 사용됐다. 그로부터 14년 후 1959년, 프랑스 여배우인 그녀는 세계평화 메시지를 위한 영화 촬영차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일본인 남자를 만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처음 와 본 히로시마에서 보낸 낯선 남자와 하룻밤. 그러나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잊고 있었던 ‘느베르’에서의 첫사랑 혹은 그의 죽음을 다시 떠올린다. 영화의 소재는 공교롭게 ‘사랑과 전쟁’ 속에 이뤄진 불륜이지만, 이건 제목처럼 부부클리닉 재현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도시, 일본의 히로시마와 프랑스의 느베르는 모두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갖고 있다. 다만, 히로시마는 집단기록인 ‘역사’를, 느베르는 개인적인 ‘기억’의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히로시마는 박물관의 전시내용 혹은 극중 영화 속 반전퍼레이드 장면을 통해 이야기되는 반면, 느베르의 시간은 대부분 그녀에게 일어난 과거 개인적인 사건에 집중한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묻고 있는 ‘집단과 개인’ 혹은 ‘역사와 기억’문제의 교집합은 ‘시간’이다. 역사 속 전쟁은 지난 과거가...
청량리
2022.04.03 | 조회 280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덧없는 죽음의 시대 이장호의 <바보선언(1983)>   1. 절망에서 실험정신이 피어나다   1960년대 활발한 르네상스 시기를 보냈던 한국영화는 1972년 유신헌법 선포를 전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갔다.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과는 반대로 영화소재는 제한되었고, 반공영화나 정책선전 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져 국가정책 홍보에 앞장섰다. 이 시기 상업영화로는 하이틴물이나 에로영화가 대량으로 만들어졌으며 영화제작도 허가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시작했던 이장호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문화예술계를 뒤흔들었던 대마초사건(1975)에 연루된다. 이를 계기로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의식화 과정을 겪는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이어서 선보이면서 197,80년대를 관통해 한국영화의 전통과 현대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영화감독을 자리매김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영화적 실험이 돋보였던 작품이 바로 <바보선언(1983)>이다.     <바보선언>에서 그가 온갖 영화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있다. 이장호는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정권에서도 혹독한 검열을 경험한다. 내놓는 시나리오마다 거부당했던 그는 제작사와의 계약조건 때문에 고소 직전에 이르렀다. 어떤 영화든 찍어야 했던 상황에서 엉망으로 쓴 시나리오로 우선 검열에 통과한다. <바보선언>이라는 제목도 당시 문화관광부 직원과 말하다 우연히 정해졌고, 시나리오를 무시한 채 떠오르는 대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덧없는 죽음의 시대 이장호의 <바보선언(1983)>   1. 절망에서 실험정신이 피어나다   1960년대 활발한 르네상스 시기를 보냈던 한국영화는 1972년 유신헌법 선포를 전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갔다.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과는 반대로 영화소재는 제한되었고, 반공영화나 정책선전 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져 국가정책 홍보에 앞장섰다. 이 시기 상업영화로는 하이틴물이나 에로영화가 대량으로 만들어졌으며 영화제작도 허가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시작했던 이장호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문화예술계를 뒤흔들었던 대마초사건(1975)에 연루된다. 이를 계기로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의식화 과정을 겪는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이어서 선보이면서 197,80년대를 관통해 한국영화의 전통과 현대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영화감독을 자리매김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영화적 실험이 돋보였던 작품이 바로 <바보선언(1983)>이다.     <바보선언>에서 그가 온갖 영화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있다. 이장호는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정권에서도 혹독한 검열을 경험한다. 내놓는 시나리오마다 거부당했던 그는 제작사와의 계약조건 때문에 고소 직전에 이르렀다. 어떤 영화든 찍어야 했던 상황에서 엉망으로 쓴 시나리오로 우선 검열에 통과한다. <바보선언>이라는 제목도 당시 문화관광부 직원과 말하다 우연히 정해졌고, 시나리오를 무시한 채 떠오르는 대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띠우
2022.03.14 | 조회 23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살아있다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감독, <사마에게, برای سماء, For Sama>(2019)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시리아는 1946년 독립한다. 하지만 이집트와 연합국가 형태를 띠고 있다가, 1960년대 초 연합을 탈퇴하면서 여러 번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결국 정권을 잡은 ‘알아사드’정부가 40년 넘게 부자세습과 독재정치로 시리아를 지배한다. 영화에서도 잠깐 나왔는데,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시민들의 무장투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독재 알아사드 정부를 타도하려는 군 출신들이 반군을 형성하여 대립하고,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종파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슬림의 대부분은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10~15% 정도다. 그런데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는 대부분 시아파 출신들이다. 그래서 시아파 이란과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부군을,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반군을 지원한다. 2012년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이라크에서 발생한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시리아 북부(알레포가 있는 지역)를 점령하면서 시리아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의 북부도시 알레포에는 매일같이 폭격이 쏟아지고 복구 역시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외부의 지원이나 뉴스보도가 거의 끊겨 고립된 상황.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아 나선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와드’와 ‘함자’ 그리고 그들의 딸 ‘사마’...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살아있다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감독, <사마에게, برای سماء, For Sama>(2019)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시리아는 1946년 독립한다. 하지만 이집트와 연합국가 형태를 띠고 있다가, 1960년대 초 연합을 탈퇴하면서 여러 번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결국 정권을 잡은 ‘알아사드’정부가 40년 넘게 부자세습과 독재정치로 시리아를 지배한다. 영화에서도 잠깐 나왔는데,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시민들의 무장투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독재 알아사드 정부를 타도하려는 군 출신들이 반군을 형성하여 대립하고,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종파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슬림의 대부분은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10~15% 정도다. 그런데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는 대부분 시아파 출신들이다. 그래서 시아파 이란과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부군을,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반군을 지원한다. 2012년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이라크에서 발생한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시리아 북부(알레포가 있는 지역)를 점령하면서 시리아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의 북부도시 알레포에는 매일같이 폭격이 쏟아지고 복구 역시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외부의 지원이나 뉴스보도가 거의 끊겨 고립된 상황.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아 나선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와드’와 ‘함자’ 그리고 그들의 딸 ‘사마’...
청량리
2022.02.27 | 조회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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