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떼~는 말이야, 여성부의 추억 (<아젠다> 15호/ 2021년08월 / 사장칼럼)

관리자
2021-08-24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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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쩌다 공무원

 

여성가족부 폐지가 또 논란이 되고 있다. 대선 국면마다 반복되는 양상이긴 한데 이번에는 류승민, 하태경, 이준석 이 세 남성이 선봉에 섰다. 앞의 둘은 국민의힘 대선후보이고 뒤의 한명은 국민의힘 당대표이다. 예나 지금이나 동네북 신세인 여가부를 보며 갑자기 나는 타임 슬립을 한 듯 17년 전으로 돌아간다.

 

그 때 나는 여성부 ‘어공’(어쩌다 공무원)이었다. 새벽 6시에 용인에서 출발하여 7시에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도착했고, 매일 아침 8시 반에 시작하는 국장급 회의에 참석했고, 장관이 출근하면 그때부터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했고, 평균적으로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했는데 국정감사기간엔 퇴근이 더 늦어졌고, 정부예산안 통과 마감을 앞두고는 새벽에 퇴근했었다. 내 기억에 2004년 12월31일 제야의 종소리는 국회 근처(어쩌면 광화문 어디쯤일수도 있다)에서 장관과 함께 들었던 것 같다. 맞다, 나는 2004년 가을부터 2005년 봄까지 약 8개월 동안 별정직 3급의 여성부장관 정책보좌관이었다

 

물론 나는 공무원 같은 걸 하겠다는 생각을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여성부에 대해서도 일반적인 응원의 마음 이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그런데 당시 여성부 장관이었던 지은희 선생님의 제안을 받았고, 뭐에 홀린 듯이 국가를 내부에서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에 사로잡혀서 당시 몸담고 있던 수유너머 친구들의 우려와 만류에도 불구하고 딱 1년만 ‘어공’을 해보겠노라며 ‘광화문’으로 향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장관 정책보좌관 제도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여정부 장관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관료(‘늘공’)에게 밀리지 말고 일해보라는, 대통령의 특별한 주문이자 격려 같은 것! 그리고 당시 지은희 장관은 ‘성매매특별법’의 시행을 앞두고 이것의 의미를 대대적으로 선전할 수 있는 ‘인재’(?!)로 날 영입했던 것이다. 아마도 민중당 시절에 지은희 장관과 내가 당내 여성위원회에서 여러 가지 선전물을 함께 만든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2.  라떼~는 말이야~

 

알다시피 여성부는 김대중 정부 때인 2001년에 만들어졌다. 대선공약을 지킨 셈인데 재밌는 것은 당시에는 김대중 뿐 아니라 이회창, 이인제 등 15대 대선후보 모두가 여성부 신설을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는 점이다. 여성운동은 80년대 후반부터 착실히 성장하고 있었고, 호주제 폐지를 비롯해서 가정폭력, 인신매매, 성매매, 일본군위안부, 고용평등 등의 의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있었다. 그 모든 성과들을 아우를 수 있는 화룡정점이 (적어도 그 때는) 여성부 신설이었다. 위의 의제들을 지속적으로 다룰 수 있는 별도의 정부조직을 만들어라! 여성의 권익을 신장하기 위한 정책에 예산과 인력을 배치하라! 아무도 토를 달수가 없었다. 그 때 여성부 신설은 사회 전체의 뉴노멀이었고, 정치권에서도 누구든 선점하면 좋은 아젠다였다.

 

 

 

 

여성부의 첫 숙원사업은 호주제 폐지였다. 아니 그것은 1950년대 이래 모든 여성운동단체들의 염원이 담겨 있는 과제였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여전히 전국의 유림아저씨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미풍양속의 사수’를 외쳐댔지만 2003년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성인 남성의 절반 이상이 호주제 폐지에 찬성하고 있었다. 일제 잔재이지만 전통의 이름으로 둔갑하여 잘 만나지도 않는 시아버지나 혹은 한 살짜리 아들이 나의 호주(戶主)가 되어버리는 남성혈통중심주의를 찬성한다는 것은, 너무 후진 일이었다. 이이효재, 조한혜정, 고은광순, 권김현영... 부모성을 함께 쓰는 여성셀럽들도 많아졌다. 16대 대선의 주요후보들은 – 이회창씨를 제외하고 – 모두 호주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호주제 폐지가 대세가 되긴 했지만 그것을 실현시킨 것은 확실히 참여정부의 공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부터 호주제 폐지를 주요 국정과제로 내걸었고, 무엇보다 초기 내각에 네 명의 여성장관을 임명했다. 법무부 장관에 강금실, 환경부 장관에 한명숙, 보건복지부 장관에 김화중, 여성부 장관에 지은희. 그리고 1대 여성부 장관이었던 한명숙 장관의 백업과 강금실-지은희 투톱의 환상적 콜라보를 통해 호주제 폐지가 추진되었다. 그들 모두는 여성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성주의자들이었다.

 

 

 

 

 

 

3. 성매매특별법의 추억

 

성매매특별법은 참여정부 여성부의 첫 사업이었다. 맥락이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90년대 내내 여성을 대상으로 한 인신매매가 기승을 부렸다. 미국 국무부에서 발생한 인신매매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최하위인 3등급을 받았다. 국제적으로 쪽팔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이 법을 추진하게 된 더 직접적인 계기는 2000년, 2001년, 2002년 연속적으로 발생한 군산과 부산의 성매매 업소 화재였다. 2000년 9월 군산시 대명동, 속칭 ‘쉬파리골목’ 성매매 업소에서 불이 나서 성매매 여성 5명이 사망했는데 이유는 포주들이 이들이 도망가지 못하게 창문에 쇠창살을 달아놓고, 출입구도 두꺼운 철제문으로 잠가놓았기 때문이었다. 이들 여성은 모두 20대로 10대에 가출했다가 인신매매되고 감금되어 성매매를 강요당하고 있던 여성이었다.

 

 

 

 

그동안 윤락행위등방지법(1961)의 저촉대상이었던 성매매. 그러나 이것은 윤락(淪落)이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여자가 타락하여 몸을 파는 처지에 빠지는 것”(국어사전)을 처벌하는 법이다. 이 용어는 성매매가 여성의 성을 도구화하여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는 조직화된 산업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감춘다. 그리고 이 산업이 마약산업과 마찬가지로 인신매매, 감금, 폭행, 경제적 착취를 일상화하고 있는 거대한 조직범죄라는 것을 감춘다. 성매매특별법은 바로 이 악랄한 성산업 카르텔을 겨냥한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게 흘러갔다. 포주의 폭력과 착취로부터 성매매 여성을 보호하려는 입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성매매 여성들이 가장 강하게 반발했다. 그들은 그 법이 자신들의 ‘생존권’을 침해한다고 했으며, 심지어 소복을 입고 시위를 했다. 소위 진보적이라고 자처하는 많은 학자들도 이 법의 실효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문화적이고 윤리적 영역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발상이 문제라고 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은 ‘성노동’ 혹은 ‘성노동자’라는 개념을 가지고 여성부와 여성단체가 순결주의에 빠져있다고 비판했다. 모든 쟁점은 이 문제의 복잡성을 나타낸다. 그만큼 토론과 숙의가 필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여성부는 무조건 방어해야했고 여성부 공무원인 나는 입에 단내가 나고 발바닥에 땀이 나게 토론이 아니라 홍보를 위해 뛰어다녀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의를 일으킨’ 장관은 조용히 교체되었다.

 

 

4. 여성부 잔혹사의 세월

 

무엇이 문제였을까? 많은 사람들이 비판했던 것처럼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이념에 너무 사로잡혔던 것일까? 문화적이고 다차원적인 이슈를 손쉽게 금지와 처벌의 사법모델로 환원했던 것일까? 솔직히 잘 모르겠다. 아니, 어쩌면 둘 다. 다만 아직도 기억에 생생한 어떤 장면 하나. 성매매특별법 첫날, 경찰의 압도적이고 경쟁적이고 전시적인 단속. 다음 날 신문의 대서특필. 솔직히 나는 좀 당황했다. 구조적인 성산업을 해체하겠다는 여성부의 바람은 경찰이 매일 매일 발표하는 성매수 남성들의 검거숫자에 묻혀버렸다. 아주 오랫동안 포주와 밀착관계를 맺고 있던 경찰들은, 마치 그런 일이 없었다는 듯이 강경하게 단속을 했다. 성매매특별법은 경찰의 협조 없이는 집행되기 어려운 것이지만 바로 그 때문에 경찰의 행동에 딴지를 거는 것도 불가능했다. 장관도 나도 속앓이를 했지만 별다른 도리는 없었다.

 

나중에 영화 <한공주>로 널리 알려진 끔찍하고 잔혹한 밀양여중생 집단성폭력 사건 때도 그랬다. 나는 사건을 인지한 그날 당일 바로 KTX를 타고 밀양으로 내려갔다. 사건을 신고한 피해자의 이모, 그리고 평생 남편한테 맞고 산 피해자의 엄마와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그 일은 경찰의 관할이었다. 난 경찰의 성인지 감수성(性認知 感受性)을 믿을 수 없었고 피해자가 제대로 보호되고 있는지도 의심스러웠지만 단 한 순간도 조사 과정에 개입할 수 없었다. 그들은, 서울에서 내려온 여성부 직원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나중에 그 경찰들은 성폭력 사건을 이렇게 다루면 절대 안 된다는, 2차 가해의 전범이 된다.

 

 

 

 

 

여성부는 처음부터 별로 힘이 없었다. 그리고 진보적인 대통령들이라도 여성부가 논란을 일으키는 것을 바라지는 않는다. 진보적으로 보이고 싶고 여성표도 얻고 싶지만 그렇다고 남성표를 잃는 것을 감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 결과가 여성부의 조직개편과정이다. 2001년 여성부가 여성가족부가 되고(이 때는 보건복지부의 영유아 보육업무를 이관 받았다) 2008년 여성가족부가 다시 여성부가 된다.(영유아 보육업무를 다시 보건복지부로 보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영유아 보육업무가 아니라 청소년 업무를 보건복지부에서 이관 받아 다시 여성가족부가 되었다. 좀 더 온건한, 좀 더 관습적인 활동을 하라는 ‘윗분’들의 의중이 반영된 것일 수도 있고, ‘찍’ 소리라도 내려면 라이트플라이급에서 벗어나서 플라이급이나 밴텀급은 되어야 한다는 내부의 절실함 때문일 수도 있다. 라이트플라이급으로는 슈퍼헤비급인 재정경제부를 상대하여 예산을 따오거나 헤비급인 국방부를 상대하여 성인지 예산을 늘리라고 압박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현재의 구조로는 여성부의 1급 실장도 메이저 부서의 4급 사무관을 상대하긴 어렵다.

 

 

 

 

 

여성가족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류승민이나 하태경이 대통령이 될 가능성은 없으니 당장 폐지되지는 않으리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틈만 나면 얻어맞는 동네북 신세를 면하려면 말빨도 좀 세지고 덩치도 좀 커져야 하지 않겠는가? 페미니스트 대통령을 자처한 문재인 정부부터 뭔가 액션을 취해보는 건 어떨까? 이 정부의 전 현직 여성장관들이 연판장이라도 돌리거나 공동기자회견이라도 하는 것도 모양이 좋아 보이고 모모한 유력인사들, 앞 다투어 김대중-노무현을 좇는 사람들이, 자신들도 두 전직대통령만큼의 성인지 감수성(gender sensitivity)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로 삼는 것도 괜찮아 보인다. 하태경 등의 덕분에 여성가족부 노이지 마케팅이라도 되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드는, 지금까지 여성부 추억팔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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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 2021-08-24 10:12

    '성매매 여성의 성인식'을 "정희진의 패미니즘의 도전"에서 읽으며 그때 지은희 장관이 스톡홀름 현상이라고 말했다는 이야기를 앍고 찾아본 기억이 납니다 . 그때 그속에 계셨더랬군요. 이상과 현실은 늘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성매매 방지법으로 시도해 본것은 긍정적 진전있는 일이었습니다.

    조금 조금씩 이런 일들이 반복되며 세상은 나아자고 있자고 믿고 살아야 살 수 있으니까요?

    50년전.100년전을 생각해보면 세상 개벽한게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그걸 감사할 줄 모르고 잘 잘못만 따져대니 속도가 더딜뿐..

    애쓰셨네요. 

     

  • 2021-08-24 11:04

    한공주! 아직도 강렬한 느낌을 주는 영화인데....그때 밀양에 내려가셨다고요?? 이걸 여태 몰랐네요!!

  • 2021-08-25 10:01

    그때 문탁샘의 옷차림들이 스쳐 지나갑니다 ㅋㅋㅋ

    '어공'생활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 듣던게 이리 오래되었네요

    그래도 그때 여성부가 한발짝 내디딘건 분명하지요

    지지부진해서 문제지만.ㅠㅠㅠ

     

    여러분, <아젠다>구독합시다!!!

    길드다가 사라지면 안되니까요^^

    • 2021-08-25 18:29

      맞아요. 공무원 정장이 한 벌도 없어서 싼 걸로 여러벌 샀었어요. 결국 나중에 다 누군가에게 줘버렸지만^^

  • 2021-09-10 19:50

    저도 비슷한 시기에 그 언저리쯤 있었네요. 암튼 2004년은 불판을 갈아 엎자는 캐츠프레이즈가 먹히던 시절이라, 이런저런 시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ㅎㅎ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삶은 내 맘대로 되지 않는다 빔 벤더스의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 (2005)>       1. 퇴물 카우보이, 어머니를 찾아가다   평소 알고 지내던 두 부부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이야기를 나누다가 서로의 휴대폰을 사적공간으로 볼 것이냐에 대해 다른 입장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부부 혹은 가족이라면 남과는 다른 정도로 공유해야 한다는 사람과 휴대폰을 본다는 것 자체를 이해 못하는 사람까지, 여섯 명의 생각에서 차이들이 드러났다. 태어날 때부터 휴대폰이 몸의 일부인 젊은 세대라면 당연히 사적공간이라는 쪽이 강하겠지만, 전제가 부부나 가족이 되면 그 경계에 대해 모호한 입장들을 취하는 경우가 있었다. 피는 물보다 진한 만큼 어떤 잘못도 용서와 사랑으로 감싸주는 것이 가족이라는 달콤한 말이 여러 매체의 형태로 재생산되어 우리 앞에 나타난다. 그런 만큼 우리는 ‘가족’이라는 이미지의 환상에 갇혀 있는 것이 분명하다.     <돈 컴 노킹Don't Come Knocking>의 오프닝은 인상적이다. 검은 화면에 난 두 개의 구멍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인다. 영화를 보다 보면 그것이 주인공의 두 눈과 매우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광활한 서부에서 말을 타고 사라지는 인물의 모습에 정통 서부극인가 할 찰나에 볼품없고 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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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2.01.17 | 조회 314
요요와 불교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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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2.01.03 | 조회 285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1.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숲은 생각한다’라는 이 짧은 문장은 내 안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나는 이 문장을 말할 때 꽤 희망적이게 된다. 페미니스트와 비건 지향인이 되기로 하면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보다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을 더 많이 마주했다.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말이다. 정상성을 모방하며 종종 정상성의 범주에 들지 않는 나는 나와 비슷한 인간들을 만날 때마다, 혹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만날 때마다 세계가 협소하게 느껴졌다. ‘숲은 생각한다’는 말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인 나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만약 사고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은 이 세계 속에 있는 유일한 자기들selves이 아니다.   <숲은 생각한다>에서는 자기self라는 개념이 나온다. ‘자기’는 우리가 흔히 주체라고 생각하는 ‘인간’ 뿐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기호작용을 하고 표상하는 모든 존재를 지칭한다. 비인간 존재도 ‘자기’로 명명되며, 숲은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숲 속의 수많은 존재들은 살아있는 ‘자기’다. 그러면 이 세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도덕성이 존재하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이 지구 위를 걷기 전에는 도덕성도 윤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덕성은 우리와 이 행성을 공유하는 비인간 존재들로부터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인간적인 것들이 비인간 자기들의 것을 무시한 채 이 세계의 오랜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더 이상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 세상의 도덕으로 해석하고 답을 찾는건 너무 부족하다....
1.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숲은 생각한다’라는 이 짧은 문장은 내 안의 환상을 불러일으킨다. 어쩌면 나는 이 문장을 말할 때 꽤 희망적이게 된다. 페미니스트와 비건 지향인이 되기로 하면서 나는 내가 살고 싶은 세상보다 살고 싶지 않은 세상을 더 많이 마주했다. 너무나 인간적인 세계 말이다. 정상성을 모방하며 종종 정상성의 범주에 들지 않는 나는 나와 비슷한 인간들을 만날 때마다, 혹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만날 때마다 세계가 협소하게 느껴졌다. ‘숲은 생각한다’는 말은 어쩔 수 없는 인간인 나의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만약 사고가 인간적인 것을 넘어서 존재한다면, 우리 인간은 이 세계 속에 있는 유일한 자기들selves이 아니다.   <숲은 생각한다>에서는 자기self라는 개념이 나온다. ‘자기’는 우리가 흔히 주체라고 생각하는 ‘인간’ 뿐만 아니라 살아가기 위해 기호작용을 하고 표상하는 모든 존재를 지칭한다. 비인간 존재도 ‘자기’로 명명되며, 숲은 생각하는 존재가 된다. 숲 속의 수많은 존재들은 살아있는 ‘자기’다. 그러면 이 세계는 인간만의 것이 아니게 된다.   우리는 언제 어디에서 도덕성이 존재하게 되는지를 정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인류가 이 지구 위를 걷기 전에는 도덕성도 윤리도 존재하지 않았다. 도덕성은 우리와 이 행성을 공유하는 비인간 존재들로부터 구성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 인간적인 것들이 비인간 자기들의 것을 무시한 채 이 세계의 오랜 생태계를 바꾸고 있다는 건 명백한 사실이다. 더 이상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이 세상의 도덕으로 해석하고 답을 찾는건 너무 부족하다....
인문약방
2022.01.02 | 조회 330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인간(Man, 人間)을 넘어선다는 것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들보다 인간이 아닌 것, 예를 들어 비인간 동물이나 자연이 더 잘 이해된다. 나에게 ‘인간’이라는 단어는 이해되지 않는 범죄들을 저지르고, 동물들은 소유물 혹은 고깃덩어리로 대하며,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남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가득한 건 아니다. 다만 매일 올라오는 각종 폭력 범죄들, 도로에서 마주치는 동물의 사체들,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을 알게 되면서 더 자주 인간들이 싫어졌다. 처음 공부를 할 때는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인간은 곧 남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주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그들과 나 둘 중에 하나만 살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그들을, 그들이 나를 해석할 수 있을까. 나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처음에 양생 세미나를 신청할 때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며 어느새 인류학까지 왔다. ‘나’에서 숲으로 확장된 셈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인간적”인 것에 의문을 던진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을 아마존 숲속에 있는 루나족의 생활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이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담겨있다. 인간은...
인간(Man, 人間)을 넘어선다는 것   나는 인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들보다 인간이 아닌 것, 예를 들어 비인간 동물이나 자연이 더 잘 이해된다. 나에게 ‘인간’이라는 단어는 이해되지 않는 범죄들을 저지르고, 동물들은 소유물 혹은 고깃덩어리로 대하며, 여자를 사람으로 보지 않는 ‘남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그렇다고 내 주변에 이런 사람이 가득한 건 아니다. 다만 매일 올라오는 각종 폭력 범죄들, 도로에서 마주치는 동물의 사체들, 이해되지 않는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 이들을 마주칠 때마다 인간에 대한 애정이 뚝뚝 떨어진다. 페미니즘, 환경, 동물권을 알게 되면서 더 자주 인간들이 싫어졌다. 처음 공부를 할 때는 ‘인간’을 넘어설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가 컸다. 하지만 공부를 하면 할수록,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에 사로잡혔다. 나에게 인간은 곧 남자가 되어버렸고, 나는 남자에게 마음을 열어주기가 쉽지 않다. 어차피 이 세상에서 그들과 나 둘 중에 하나만 살아갈 방법은 없다는 것도 안다. 그렇다면 내가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내가 그들을, 그들이 나를 해석할 수 있을까. 나의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넘어설 수 있을까?           처음에 양생 세미나를 신청할 때는 몸과 마음이 연결되는 것이 궁금했다. 하지만 <숲은 생각한다>를 읽으며 어느새 인류학까지 왔다. ‘나’에서 숲으로 확장된 셈이다. <숲은 생각한다>는 “인간적”인 것에 의문을 던진다. 인간적인 것을 넘어선 인류학을 아마존 숲속에 있는 루나족의 생활을 통하여 이야기한다. 그들이 어떻게 문명과 야생 사이에서 소통을 하고 있는지 담겨있다. 인간은...
인문약방
2022.01.02 | 조회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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