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요와불교산책14회]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수행자들

요요
2023-07-20 2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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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편은 30명과 500명이 함께 읊은 시로 전해진다. 500명(Pancasata)을 한사람이라고 보는 해석도 있으므로 『테리가타』는 최소 102명, 최대 601명의 시를 모은 시집이라 할 수 있다. 결코 적지 않은 숫자다.

 

 

 

일상의 수행자 테리까

 

첫 번째 노래의 주인공은 테리까다. 그녀는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고자 했으나 남편의 허락을 얻지 못해 가정에 머물러야 했다. 결혼한 남성은 아내의 허락이 없이 출가하는 것이 가능했지만 여성에게는 그런 자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테리까는 할 수 있는 만큼 통찰지를 닦는 수행을 계속했다. 어느날 부엌에서 카레를 끓이던 중 그릇에 불이 붙었다. 그 불은 그릇을 새까맣게 불태웠다. 그녀는 그 불을 관찰하면서 무상(無常)을 통찰했고, 모든 것에는 실체라 할만한 것이 없다는 지혜를 성취하여,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끊은 불환자의 경지에 올랐다.

불환자는 초기 불교의 수행자들이 얻는 세 번째 단계이다. 첫 번째는 붓다와 붓다의 가르침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신뢰를 갖고 깨달음의 흐름에 들어간 예류자(預流者, 수다원)다. 두 번째는 다음 생에는 깨달음을 얻게 되는 일래자(一來者, 사다함), 세 번째는 욕망의 세계를 벗어난 곳에 태어나 그곳에서 깨달음을 얻어 다시는 이 세상으로 돌아오지 않는 불환자(不還者, 아나함), 마지막으로 지금 여기에서 해탈한 지혜의 완성자 아라한이다. 테리까는 물질적이고 정신적인 영역에서 거의 모든 탐욕이 사라져 신체를 아름답게 꾸미는 일체의 장식을 멀리하게 되었다. 그녀의 남편은 아내에게 탐욕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내의 출가를 허락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붓다] 옹기 속의 마른 야채처럼 그대의 탐욕은 실로 지멸하였다.(『테리가타』, 「테리까 장로니의 시」)

 

그녀의 경지를 찬탄한 붓다의 게송이 테리까의 노래가 되었다. 가정생활을 하면서도 수행을 계속해 온 테리까에게 출가는 수행의 시작이 아니라 수행의 완성을 의미했다. 테리까에게 출가는 번뇌를 종식한 아라한으로서의 새로운 삶의 시작이었다. 재가의 삶을 살면서도 출가자 못지않게 수행에 진심이었던 테리까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재가의 삶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통찰지를 닦았던 여성들의 존재를 알 수 있다.

 

<춘엽니(비구니)> 권진규

 

 

자식을 잃고 수행한 끼사꼬따미

 

끼사 꼬따미는 아들이 어린 나이로 죽자 반미치광이가 되었다. 그녀는 죽은 아이를 안고 다니며 아이를 살릴 약을 구했다. 사람들은 그녀를 비웃었지만 붓다는 아이를 살려주겠노라고 약속했다. 단 조건이 있었다. 한 사람도 죽은 이가 없는 집에서 겨자씨를 구해와야 한다는 조건이었다. 자식을 살리고 싶었던 끼사 꼬따미는 모든 집의 문을 두드렸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깊이 깨닫고 아들의 죽음에 대한 자책과 회한, 비탄과 슬픔으로부터 벗어났다. 오랫동안 내게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들 잃은 여성이 아니라 그녀를 구원한 위대한 스승 붓다였다. 그랬기에 나는 이후 그녀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아무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테리가타』를 통해 그녀의 이름을 알았고, 그 뒤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구니 끼사 꼬따미는 『쌍윳따 니까야』 「수행녀의 품」에도 등장한다.

 

[빠삐만] 그대, 아들을 잃어버리고 홀로 슬퍼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가? 외롭게 숲속 깊이 들어와 혹시 남자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끼사 꼬따미] 언제나 자식을 잃은 어머니도 아니고, 남자도 지난 일이다. 나는 슬퍼하지 않고 울지 않으니, 벗이여,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든 환락은 부서졌고, 어두운 존재의 다발은 파괴되었으니, 죽음의 군대에 승리하여, 나는 속세의 번뇌를 여의고 살아간다.(『쌍윳따니까야』 5:3 「꼬따미의 경」)

 

끼사 꼬따미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서 벗어났을 뿐 아니라 출가 수행을 통해 생과 사에 수반되는 일체의 번뇌와 두려움에서도 벗어났다. 악마 빠삐만은 그런 그녀를 ‘아들을 잃고 슬퍼하는 여인으로, 남자에게 의지하려는 연약한 여성으로’ 규정하고 싶어한다. 수행자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여성을 가부장제에 예속된 존재로 돌려놓으려는 남성의 목소리이다. 해탈한 여성 끼사 꼬따미는 그런 목소리를 가볍게 물리친다. 그녀의 내공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만하다. 메가스테네스가 본 여성 철학자들 역시 이런 당당한 여성이 아니었을까?

 

 

깨달음에 남녀는 없다고 선언한 쏘마

 

깨달음을 얻은 여성들이 실제로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수행자를 불신하는 의심의 눈초리는 언제나 존재해 왔다. 여성혐오적인 담론도 그친 적이 없었다. 여성은 머리가 나쁘다, 여성은 질투심이 강하다, 여성은 속이 좁다, 여성은 지도자의 자질이 부족하다, 여성은 화를 잘낸다, 여성은 사치스럽다, 등등. 가부장제의 질서와 이념은 열등한 인간으로 여자를 규정하고, 남자와 여자는 본래적으로 본성과 역할이 다르다는 말을 되풀이 한다.

 

[악마] 선인만이 도달할 수 있을 뿐, 그 경지는 성취하기 어려우니, 두 손가락만큼의 지혜를 지닌, 여자로서는 그것을 얻을 수 없다.

[쏘마]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쌍윳따니까야 』 5:2 「쏘마의 경」)

 

이 대화에 등장하는 악마는 여성의 지혜는 보잘것없어서 여성들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고 보는 남성중심적이고 가부장적인 담론을 대변한다. 고대 인도에서만 이런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이 아니다. 가부장적 질서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여성 혐오적 통념은 때로는 공공연하게 때로는 은밀하게 온존한다. 비구니 쏘마는 여성과 남성을 구별하는 것은 악마의 견해일 뿐, 지혜에는 남녀가 없다고 응수함으로써 악마의 목소리를 잠재운다.

 

붓다는 금수저냐 흙수저냐의 출생이 아니라 무엇을 말하고 행하고 생각하느냐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준다고 가르쳤다. 붓다는 과거의 업이나 절대자가 내 운명을 결정한다는 숙명론적 결정론을 단호히 거부했다. 동시에 붓다는 각각의 사물에 주어진 고정불변의 본질이나 실체가 있다는 본질주의도 거부했다. 모든 사물은 조건적으로 발생하고 소멸하며, 만물은 상호의존적이라는 연기설은 여성과 남성에게 불변하는 본질과 역할이 있다는 전제와는 양립할 수 없다. 여성은 열등한 존재여서 지혜를 성취할 수 없다는 주장은 붓다의 가르침에 반하는 악마의 견해일 뿐이다. 깨달음에 남녀는 없다는 비구니의 사자후다.

 

<승려복을 입은 여인> 최우석

 

 

아들을 해탈로 이끈 밧다의 어머니

 

밧다의 어머니는 아들 밧다를 친척에게 맡기고 출가했다. 그녀는 일체의 번뇌를 여읜 아라한이 되었다. 밧다도 장성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따라 출가하였다. 어느날 밧다가 어머니의 처소를 방문했다. 밧다의 행동거지는 사사로이 어머니를 찾아온 아들의 모습이었다. 밧다의 어머니는 밧다의 안일함을 꾸짖었다. 이에 밧다는 크게 느낀 바가 있어서 용맹정진하였고, 마침내 모든 번뇌가 가라앉은 적멸을 얻었다. 밧다의 어머니의 시는 밧다와 그 어머니 사이의 대화로 구성되어 있다.

 

[밧다의 어머니] 통찰을 얻기 위하여 선인들이 닦은 길을 가는 것에, 밧다여, 헌신하라. 괴로움의 종식을 위한 것이니라.

[밧다] 어머니, 확신을 가지고 그 의취를 말씀하셨으니, 어머니, 생각건대 당신께는 저에 대한 애착이 없습니다.

[밧다의 어머니] 어떠한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든 낮거나 높거나 중간이건 간에, 아주 작은, 또는 원자의 크기라도 결코 나에게 애착은 없다.

[밧다] 나는 그녀의 말씀, 어머니의 가르침을 듣고 진리에 대한 외경을 얻어 멍에로부터의 안온에 도달했다. 어머니로부터 자극받아 그래서 나는 노력을 기울여 밤낮으로 게으름이 없었으니 최상의 적멸에 도달했다.(『테리가타』 제9장 「밧다의 어머니 장로니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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밧다의 어머니는 자식의 성취를 위해 헌신하는 맹모도 아니고 자식의 매니저인 헬리콥터 맘도 아니었다. 높은 깨달음을 성취한 그녀는 자신을 결코 밧다의 어머니로 정체화하지 않았다. 밧다의 어머니는 밧다의 어머니이면서 밧다의 어머니가 아니었다. 비구니 밧다의 어머니를 통해 우리는 젠더로서의 ‘남자, 여자’의 정체성에 구속되지 않을 뿐만이 아니라 핏줄로 얽힌 ‘어머니, 자식’ 관계의 애착마저 벗어버리고 대자유인이 된 여성 수행자를 만난다. 밧다의 어머니는 모성에 대한 통념을 가뿐히 뛰어 넘는다. 붓다가 라훌라에게 한 것처럼 밧다의 어머니 역시 밧다의 정진을 독려하여 최상의 열반으로 이끈 스승이었다. 아마도 밧다의 어머니는 아들 밧다만이 아니라 가르침을 구하는 사람들을 멍에로부터 벗어난 안온으로 이끄는 훌륭한 스승이었을 것이다.

 

전국비구니회(여성신문)

 

 

여성 수행자들의 학교, 비구니 승가

 

개인으로서 여성들은 독자적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시대였다. 이 여성 철학자들이 시대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를 남길 수 있었던 것은 그녀들이 뛰어난 능력을 가졌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여성 출가자들의 수행을 돕는 공동체가 잘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붓다의 시대로부터 물적 토대와 교육시스템을 갖춘 비구니 승가가 존재했기 때문에 이들 여성 출가자들은 가정과 사회의 의무와 구속에서 벗어나 수행 생활에 온전히 집중하며 탁월한 성취를 이룩할 수 있었다.

 

붓다에게는 뛰어난 비구 제자들이 많았다. 사리뿟따, 목갈라나, 마하깟싸빠와 아난다 등. 그들의 출가와 수행에 얽힌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는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앎으로써 깊은 감동을 받는다. 그런데 붓다의 여성 제자들은 그렇게 널리 알려져 있지도 않거니와 경전에서도 쉽사리 만나기 어렵다.(왜 그렇게 되었는지가 다음 글의 주제다.) 그러나 붓다는 뛰어난 여성 제자들을 많이 길러냈다. 그랬기 때문에 그녀들이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테리가타』가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었다. 『테리가타』의 시를 통해 그 존재감을 드러내는 비구니들 역시 사리뿟따 등에 못지않은 뛰어난 스승이었고 설법자이고 명상가들이었다.

 

나는 수행녀들의 허스토리와 그녀들의 이름을 알게 되어 기쁘고 벅차다. 이 글에서 소개한 테리까, 끼사 꼬따미, 쏘마 그리고 그 외에도 여러 난관을 뚫고 스스로를 구원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으면 좋겠다. 영적인 성취를 이룬 여성들의 존재는 우리의 상상력과 영감을 자극하고, 우리를 구속하는 안팎의 한계를 넘어 우리의 잠재력을 끌어내고, 더 많은 가능성을 꿈꾸게 하기 때문이다.

 

댓글 5
  • 2023-07-23 11:48

    수행녀... 번다한 일상 속에서 영적 성취를 이룬 여성들의 이야기, 잘 읽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는 출가수행만이 수행이 아니다, 일상과 수행이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깨달음 역시 멀리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네요.
    솔직히 제겐 너무나 요원한 이야기처럼 느껴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속하는 안팎의 한계를 넘어 잠재력을 끌어내고 더 많은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는 말을 마음에 담아두겠습니다.

  • 2023-07-24 11:29

    모성과 애착에서 벗어난 어머니
    감동입니다^^
    이글을 쓰면서 느꼈을 요요샘의 마음을 쪼끔은 알것도 같네요
    다음글도 또 기대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ㅎ

  • 2023-07-26 23:30

    회사에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났는데 그 중 한 사람의 회사 이름이 '라훌라' 였어요. 아마도 그 회사 이름을 만든 분은 불교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었나봅니다. 저는 그때 불교 까막눈이었으니 '그냥 그런가보다' 했었지요.ㅎ

    어머니와 자식이면서 어머니와 자식관계를 뛰어넘어 어머니와 자식이 아닌 경지에 오르고 싶습니다....ㅠㅠㅠ

  • 2023-07-29 09:19

    수유하면서 이 글을 읽는데 육아로 지친 마음에 새로운 에너지로 채워지네요.

    살면서 이렇게 집에만 있었던 적이 없었는데 매일 반복되는 일상과 집안일을 하는 것 만큼 대단한 수행이 없는 거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ㅎㅎ 일상의 수행자 테리까로부터 오늘 하루도 깨어 있을 수 있는 지혜를 얻고 싶네요.

    저도 자식과 부모의 관계를 넘어서 독립적인 개인으로 관계 맺고 싶은데 밧다의 어머니처럼 서로 깨달음을 주는 존재가 될 수 있을지..? ㅎㅎㅎ 저의 수행에 달려있겠죠??

    이렇게 육아를 하니 불교 공부와 인연이 있다는 것 자체 만으로도 감사한 마음이 드네요.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

  • 2023-08-11 06:29

    와 다음 글이 기대됩니다!
    출가가 수행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었다는 게 너무 멋지네요... 크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1.포정해우   처음 소를 잡을 때는 소가 통째로만 보였습니다. 삼 년이 지나자 소의 갈라야 할 부분이 보였습니다. 지금은 소를 눈으로 보지 않고 신묘한 기운으로 대합니다. 감각기관은 활동을 멈추고 신묘한 기운이 움직이는 것이지요. 다시 말해 소의 자연스러운 결에 따라, 살과 뼈 사이의 빈틈에 칼을 넣어 움직이며, 원래 나 있는 길을 따라 나아가는 것입니다. (.....) 지금 제 칼은 십구 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소를 수천 마리나 잡았지만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소의 뼈마디에는 틈이 있고 칼날은 더없이 얇아 두께가 없습니다. 두께 없는 것이 틈새로 들어가니 넓은 공간에서 칼이 자유자재로 놀고도 남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십구 년이 지났어도 이 칼은 막 숫돌에서 갈아낸 듯 예리합니다. <낭송장자> 84쪽     「양생주」 2장은 소를 잡는 백정 포정의 이야기다. 포정은 자신이 소를 잡는 일에 대해 기술로 한 것이 아니라 도(道)로 했다고 했다. 처음 보았을 때 통째로 보였던 소가 삼 년이 지나자 갈라야 할 부분이 보이는 변화였다. 포정은 그 시간동안 덩어리째 보이는 소를 분해하는 기술부터 습득하면서 기술에 그치지 않고 소를 이해하기에까지 나아갔다. 즉, 소의 생김새라든가 섭생, 생명의 주기 등이었다. 이를 통해 소로 태어난 생명이 살아가는 이치를 통해 도의 운행을 깨우치게 되었다. 이렇게 깨우친 도로 십구 년이나 이어진 포정의 일은 여느 백정의 일과는 다른 길(道)을 낸 것이다.         포정이 수천 마리의 소를 잡으면서...
기린
2023.08.17 | 조회 293
요요와 불교산책
초기 불교의 흑역사, 여성 차별적인 팔경법     깔라마들이여, 소문이나 전승이나 여론에 끄달리지 말고, 성전의 권위나 논리나 추론에도 끄달리지 말고, 상태에 대한 분석이나 견해에 대한 이해에도 끄달리지 말고 그럴듯한 개인적인 인상이나 ‘이 수행자가 나의 스승이다’라는 생각에도 끄달리지 마십시오. … 이러한 것들은 실천하여 받아들이면 유익하지 못하고 괴로움을 야기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알게 되면 깔라마인들이여, 그 때에 그것들을 버리십시오. (『앙굿따라니까야』 「깔라마의 경」)   붓다가 가르침을 펴기 시작한 초기에 붓다를 따르는 출가수행자들은 모두 남자들 뿐이었다. 여성은 다만 재가 신자로만 붓다와 관계를 맺었다. 아마 당시로서는 마을에서 떨어진 한적한 숲에서 명상하고, 집도 절도 없이 걸식하는 길 위의 삶을 사는 여성의 존재는 생각할 수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고대 인도 사회에서 가족의 보호 밖에 있는 여성은 손쉽게 취할 수 있는 성적인 대상이자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므로 여성이 집을 떠나 출가자가 된다는 것은 위험을 무릅쓰는 일이었다. 그러나 붓다의 설법을 듣고 구도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을 한 남자들이 나온 것처럼 출가하여 수행자로 살겠다는 용감한 여자들이 나오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게다가 붓다가 이끄는 비구 승가는 세속에서의 신분과 나이에 의한 차별을 뛰어넘어 오직 출가한 햇수에 따라 예를 표하는 평등한 공동체의 이상을 보여주고 있었다. 대안적 공동체로서의 승가의 현존은 여성들에게도 ‘바람에 걸리지 않는 그물처럼, 진흙에 더러워지지 않는 연꽃처럼’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했을 터. 과연 누가 출가한 여성 수행자로 첫발을 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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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요와 불교산책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허스토리, 고대 인도의 여성 수행자들      마음이 잘 집중되어, 최상의 진리를 보는 자에게, 지혜가 항상 나타난다면, 여성의 존재가 무슨 상관이랴. (『테리가타』 3장 「쏘마 장로니의 시」)     고대 인도의 여성철학자들   기원전 4세기, 헬레니즘문명과 인도문명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전쟁을 통해서였다. 당시 평화조약 체결을 위해 인도에 온 메가스테네스는 『인도견문록』에 ‘인도에는 여성 철학자들이 있어서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한다’는 기록을 남겼다. 고대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남성 시민들의 민주주의였고 철학도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고대 인도에서도 여성들은 결코 존중받는 존재가 아니었다. 여성은 바라문교의 성전 『베다』를 학습할 수도 없었으므로 지식에 가까이 갈 수조차 없었다. 여성은 남성을 유혹하는 위험한 존재로 취급받았다. 여성들은 월경 전인 어린 나이에 조혼을 강요당했고, 자식을 낳지 못하면 비난 받았으며, 남자의 소유물이나 다를 바 없었다. 남편과 아들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여성은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다. 개인으로서의 여성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사회였다. 그런데 메가스테네스가 본, 남성들과 난해한 것을 당당하게 논의하던 고대의 여성들, 그녀들은 누구였을까?   그녀들은 불교 승가로 출가한 비구니들이었다. 기원전 6~5세기, 붓다 재세시부터 최고의 깨달음을 얻은 다수의 비구니들이 존재했다. 그녀들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의무에서 자유로운 존재로서 명상적 삶에 헌신하였고, 붓다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토론하며, 제자들을 길러냈다. 다행히 우리는 그녀들의 삶을 『테리가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테리가타』는 2,500년 전에 살았던 깨달은 여성들의 성취와 해탈의 기쁨을 노래한 시집이다. 여기에는 모두 73개의 시가 실려있다. 시 중에서 두...
요요
2023.07.20 | 조회 493
논어 카메오 열전
진성자(제나라 대부 진항)가 간공을 시해했다. 공자께서 목욕재계하고 조정에 나가 애공에게 알렸다. “진항이 그의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그를 토벌하십시오.” 애공이 말했다. “세 대부들에게 말하시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임금께서는 세 대부들에게 말하라 하시는구나.” 공자께서 세 대부들에게 가서 말했으나 모두 안 된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陳成子弑簡公 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陳恆弑其君 請討之 公曰 告夫三子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君曰 告夫三子者 之三子告 不可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논어> 헌문-22   내가 동양 고전을 처음 읽었을 때 겪은 어려움 중 하나는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진성자(陳成子)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 여기는 진성자라고 되어 있지만 대체로 전성자(田成子)라고 하고, 진항(陳恒), 전항(田恒), 혹 전상(田常)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성자(成子)는 그의 시호이며, 이름이 항(恒)인데 『사기』에는 상(常)으로도 되어 있다. 진성자 혹은 전성자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이들이 진(陳)나라에서 살다가 제(齊)나라로 이주하여 성을 전(田)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강(姜)씨의 제나라에서 전(田)씨의 제나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세가(世家)」는 춘추전국시대 제후국들의 역사를 쓰고 있다. 그러니까 노나라의 역사는 「노세가」에 진나라는 「진세가」를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제나라의 경우 「제세가」로 되어 있지 않고 「제태공세가」와 「전경중완세가」로 나누어져 있다. 제나라 군주의 자리가 강태공의 강씨에서 바로 진성자, 아니 전성자의 전씨로 바뀌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陳)나라에서 처음 제나라로 이주한 이는 진완(陳完)이다. 완은 원래 진나라의 공족(公族)이었다. 진나라는 순임금의 후예들에게 봉해...
진성자(제나라 대부 진항)가 간공을 시해했다. 공자께서 목욕재계하고 조정에 나가 애공에게 알렸다. “진항이 그의 임금을 시해하였으니 그를 토벌하십시오.” 애공이 말했다. “세 대부들에게 말하시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임금께서는 세 대부들에게 말하라 하시는구나.” 공자께서 세 대부들에게 가서 말했으나 모두 안 된다고 하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대부의 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감히 고하지 않을 수 없었다.” (陳成子弑簡公 孔子沐浴而朝 告於哀公曰 陳恆弑其君 請討之 公曰 告夫三子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君曰 告夫三子者 之三子告 不可 孔子曰 以吾從大夫之後 不敢不告也) <논어> 헌문-22   내가 동양 고전을 처음 읽었을 때 겪은 어려움 중 하나는 한 사람이 여러 이름으로 등장하는 것이다. 진성자(陳成子)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였는데, 여기는 진성자라고 되어 있지만 대체로 전성자(田成子)라고 하고, 진항(陳恒), 전항(田恒), 혹 전상(田常)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성자(成子)는 그의 시호이며, 이름이 항(恒)인데 『사기』에는 상(常)으로도 되어 있다. 진성자 혹은 전성자라고 하는 것은 원래 이들이 진(陳)나라에서 살다가 제(齊)나라로 이주하여 성을 전(田)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강(姜)씨의 제나라에서 전(田)씨의 제나라로   사마천의 『사기(史記)』 중 「세가(世家)」는 춘추전국시대 제후국들의 역사를 쓰고 있다. 그러니까 노나라의 역사는 「노세가」에 진나라는 「진세가」를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제나라의 경우 「제세가」로 되어 있지 않고 「제태공세가」와 「전경중완세가」로 나누어져 있다. 제나라 군주의 자리가 강태공의 강씨에서 바로 진성자, 아니 전성자의 전씨로 바뀌는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진(陳)나라에서 처음 제나라로 이주한 이는 진완(陳完)이다. 완은 원래 진나라의 공족(公族)이었다. 진나라는 순임금의 후예들에게 봉해...
진달래
2023.07.11 | 조회 322
한문이예술
昔, 어떤 과거는 오래된 극복이다   동은     1. 하고 싶은 말      언젠가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선생님을 하기로 했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가 선생이었나?'부터 '내가 선생이어도 될까?', 그리고 '내가 어쩌다 선생이 되었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질문한 친구에게 되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친구는 "그냥 궁금해서요."라고 했지만 곧이 곧대로 듣기에는 조금 찔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선생이라기엔 하고 다니는 행색이 너무 선생답지 않았나? 수업이 별로인가? 아니면 (그럴 것 같진 않지만) 혹시라도 너무 '선생'같은가^^?? 스스로 선생이라기보다는 학생이라고 생각해온 시간이 훨씬 길어서 그런지 친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 앞에 서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선명했다.      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너희들한테 한자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인 것 같아."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몰랐던 것을 '나 정말 그랬구나!'하고 이제서야 깨닫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수업준비의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자의 이야기를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방식보다도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았다. 그랬으면서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건지...!     2. 昔      한자로 상상조차 힘든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과거로 회귀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완전히 달라진 오늘날에 고대의 일에...
昔, 어떤 과거는 오래된 극복이다   동은     1. 하고 싶은 말      언젠가 한 친구가 나에게 물었다. "선생님은 왜 선생님을 하기로 했어요?" 짧은 순간이었지만 여러 생각이 스쳤다. '내가 선생이었나?'부터 '내가 선생이어도 될까?', 그리고 '내가 어쩌다 선생이 되었지?'라는 물음으로 이어졌다. 나는 질문한 친구에게 되물었다.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 친구는 "그냥 궁금해서요."라고 했지만 곧이 곧대로 듣기에는 조금 찔리는 부분들이 있었다. 내가 선생이라기엔 하고 다니는 행색이 너무 선생답지 않았나? 수업이 별로인가? 아니면 (그럴 것 같진 않지만) 혹시라도 너무 '선생'같은가^^?? 스스로 선생이라기보다는 학생이라고 생각해온 시간이 훨씬 길어서 그런지 친구의 질문에 쉽게 대답할수 없었다. 하지만 내가 <한문이 예술>에서 아이들 앞에 서있는 이유는 생각보다 선명했다.      그 친구의 질문에 대한 나의 대답은 이랬다. "너희들한테 한자로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인 것 같아." 짐짓 태연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사실 말을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묘한 감정에 휩싸였다.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몰랐던 것을 '나 정말 그랬구나!'하고 이제서야 깨닫는 느낌이었다. 실제로 수업준비의 대부분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한자의 이야기를 전할지 고민하는 시간이었다. 어떻게 전달할지에 대한 방식보다도 어떤 내용을 전달할지에 대한 내용이 훨씬 많았다. 그랬으면서 왜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는 것을 잊고 있었던 건지...!     2. 昔      한자로 상상조차 힘든 과거를 이야기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과거로 회귀하라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도 없는데 완전히 달라진 오늘날에 고대의 일에...
동은
2023.07.04 | 조회 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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