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서읽기/논어4] 지금도 공자님의 '효(孝)'가 유효한가요?

곰곰
2022-07-11 10:19
389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지 20년이 넘었다. 타지에서 생활하면 자주 뵙기 힘든 부모님에 대한 ‘효’는 더욱 간절해진다. 나와 사정이 비슷한 남편은 혼자 계신 시어머니가 걱정되어 나에게도 안부 전화를 드리는지 자주 확인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도 누가 시켜서 하려면 마음이 달아나는 법. 나는 미루다 미루다 마지못해 한 번씩 전화를 드리곤 한다. 아무래도 이건 ‘효’라고 말하기 좀 그렇다. 얼마 전 친정엄마의 칠순을 기념한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왕이면 더 멋진 장소, 더 맛있는 음식, 기준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딜까 고민했고 그에 따라 여행 일정은 빡빡해졌다. 다행히 별다른 다툼 없이 여행을 잘 마쳤고 ‘고마운 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문득 그때 내가 ‘효’라고 믿고 행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가 ’효’를 말하다.

 

<논어>를 보면 여러 사람이 공자를 찾아와 효에 대해 묻는다. 당시에도 효를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공자의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효는 구체적인 행위들로 드러나는 것이지, 하나의 본질로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공자는 일정한 형식(禮)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격식에 맞는 행동이라도 마음이 빠져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공자는 효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한번은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합니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위정 6)

 

아마도 맹무백은 건강이 좋지 않았나보다. 그러니 공자는 부모에게 효도한답시고 특별한 무언가를 하기 전에 자기 몸부터 잘 보살피라고 한 것이 아닐까. 부모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야말로 효라고 말이다. 이번에는 자유가 효에 대해 묻는다. 공자의 대답은 앞서와 또 다르다.

 

자유가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요즘에 효는 부모님께 음식을 잘 해드리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개나 말도 모두 잘 먹여 키우니, 공경하는 마음이 없으면 무엇이 다르겠느냐?”
子游問孝. 子曰: “今之孝者, 是謂能養. 至於犬馬, 皆能有養 ; 不敬, 何以別乎?” (위정 7)

 

날카로운 지적이다. ‘요즘’이라고 한 걸 보니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도 효를 형식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들이 많았나보다. 부모를 잘 봉양(奉養)하면 된다고, 즉 자식은 늙은 부모를 먹여 살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공자는 그걸로는 부족하다고 말하면서 개와 말을 예로 든다. 사람은 개와 말에게도 먹이를 가져다 주고 집을 만들어 준다. 만약 공경하는 마음이 없다면 부모를 봉양한다고 해도 개나 말을 키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냐고 묻는다. 아마도 공자가 보기에 자유는 부모를 모시는 데에 마음으로는 정성을 다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래서 음식을 잘 해드리는 것에 그쳐서는 안되고 마음으로 봉양해야 함을 강조한다. 공자가 말하는 ‘효’는 가장 정성스럽되 가장 근본적인 것이다.

 

‘효’에 대해 생각하다.

 

공자는 춘추전국시대 혼란의 원인을 도덕성의 타락으로 진단하였다. 그 혼란을 극복하고 올바른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핵심요소로 ‘인(仁)’을 주장한다. <논어>에서 인은 사랑하는 마음이다. 나 자신을 수양하고 다른 사람까지 사랑하게 되는 것. 남을 배려하고 남과 함께 하며 나아가서 남을 위하는 의미까지 담겨있다. 인을 실천하는 근본은 효이다. 공자는 늘 가까운 데에서부터 인을 실천한다. 나 자신의 욕심을 버리고 수양하는 ‘극기’에서 시작한 인은 나와 가장 가까운 내 부모를 섬기는 마음으로 이어지고 내 부모를 섬기는 마음처럼 다른 사람을 섬기고 공경한다면 더 이상의 규범과 도덕이 필요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평천하가 그 나라를 다스리는 데 있다는 것은 윗사람이 부모께 효도하면 백성에게서 효가 일어나고, 윗사람이 웃어른을 제대로 모시면 백성에게서 공경함이 일어나고, 윗사람이 홀로된 사람을 불쌍히 여기면 백성이 배신하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에 군자에게는 ‘자신의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헤아려 보는 도가 있다.”
所謂平天下在治其國者, 上老老而民興孝, 上長長而民興弟, 上恤孤而民不倍, 是以君子有絜矩之道也.
<대학> 전10장 - 平天下章

 

‘수신제가(修身齊家) 치국평천하(治國平天下)’의 평천하를 말하면서 효를 그 시작점으로 삼는다. 공자가 말하는 효는 우리가 생각하고 실천하는, 단순히 부모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봉양하는 것보다도 범위가 훨씬 넓다. <논어,사람의 길을 열다>(배병삼)에서 저자는 부모가 내리사랑을 하는 것은 모든 동물이 다 그렇지만, 부모의 사랑을 알아채고 그것을 감사히 여겨 이를 되갚겠다는 동물은 오로지 인간밖에 없다고 한다. 그만큼 효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어려운 것이다. 공자는 이 인간만이 가진 ‘사랑 되돌려주기’(치사랑-上愛無)에 깊이 감동 하였고, 이 되돌려주는 사랑을 확산시켜 세계를 평화롭게 만들겠다고 작정했다.
효는 목표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운동을 하고 체력을 키우는 것은 땀을 흘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서인 것처럼, 효를 실천하는 것은 효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이 ‘되돌려주는 사랑’이라는 근육을 발달시키기 위해서다. 가족은 우리가 인을 계발하는 헬스장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랑하는 법과 사랑받는 법을 배운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사랑을 베푸는 것에서 시작하라. 사랑으로 충만한 관계는 결코 가족 안에서 머물 수 없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서 가족으로, 이웃으로, 국가로 모든 지각있는 존재로 관심의 영역을 확장할 때 인은 연못에 던진 돌멩이처럼 커다란 원을 만들며 퍼져 나간다는 것이 공자의 믿음이다.

 

‘효’는 방법론이다.

 

자하가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님 앞에서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는 것은 어려운 것이다. 일이 있을 때는 젊은이가 힘든 일을 대신하고 술과 음식이 있을 때는 어른이 먼저 드시게 하는 것,
이것을 효라고 할 수 있겠는가?
子夏問孝, 子曰: "色難. 有事, 弟子服其勞; 有酒食, 先生饌, 曾是以爲孝乎?” (위정 8)

 

공자는 부모를 위해 수고로운 일을 하고 맛있는 음식을 드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한다. 이것도 효성스러운 태도는 맞지만, 효라고 부르기에는 부족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얼굴빛(표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아마 자하는 효행을 실천하기는 하는데, 얼굴 표정에는 귀찮은 기색이 그대로 드러났던 모양이다. 그 표정을 보는 부모의 마음은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그러니 이것을 효라고 할 수 있을까? 마음이 빠져 있다면 당연히 행동의 효과도 반감된다. 효를 행함에 있어서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는 것이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이다.
최근에 어르신 케어 AI 로봇이라는 광고를 봤다. 로봇이 노인의 가장 친한 벗이라니 슬픈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이미 고령화 시대는 시작되었고 노인을 책임지고 보살필 필요성은 점차 커지는데, 바쁜 자식은 부모를 챙길 여유가 없다. 그렇지만 독거노인을 살피는 반려 로봇이 자식의 미안한 마음을 대변해 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한숨이 난다. 남편 등살에 시어머니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나도 결국은 이와 비슷한 것 아닌가? 공자의 효에 대입해 보면, 효성스러운 태도가 진정한 가치를 발휘하려면 마음이 바탕이 되어야 하니 말이다.

 

 

공자의 ‘효’는 현재의 나에게 어떠한 의미가 있을까.

 

공자의 말대로 부모님께, 나아가 시어머니께 진심에서 나온 미소를 지으며 기꺼이 ‘효’를 행한다면 무척 기쁘고 좋은 일이라는 결론에 다다르자, 정작 내 마음은 답답하고 불편해진다. 지금도 그런 효만이 마땅한 것일까? 과거의 사상은 흐트러지고 모든 것이 변했다. 그럼에도 옛날에 장착된 효의 마음은 그대로 남았고 그 형식도 크게 변한 것 같지 않다. 봉양도 제대로 못하는 시대에 어르신 케어 로봇은 효의 형식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방법 중 하나가 될 수 있음에도 찜찜한 마음이 드는 것은 그런 이유일테다.

하지만 효는 방법론이기도 하다. 공자는 효가 구체적인 행위이기에 그 마음을 중시했다. 마음은 일반화해서 말할 수 없고 행위로 드러나야 하기 때문에 질문하는 사람과 상황에 따라 다른 답을 주었다. 시대가 변한 만큼 전통적인 효에 대한 생각만 고집하는 것은 편협한 생각이다. 아직 그런 사람이 있다면 공자는 도리어 역정을 내지 않았을까. 공자가 말한 효의 기본과 ’색난(色亂)’의 의미는 되새기되, 지금도 그것이 유효한지 다시 물어야 한다. 얼굴색을 적극적으로 관리하여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는 것이 의미있는 효일지, 정체된 효의 자리에 머물면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공경에 미치지 못함에 힘들어 하는 건 괜찮은지 말이다. 효가 살아 있으려면, 지금의 시대에 맞는 새로운 효의 방법, 각자의 처지에 따른 맞춤형 효의 방식을 상상하고 계발해야 할 때가 아닐까. 여전히 ‘효’는 질문이다.

댓글 3
  • 2022-07-12 16:27

    시부모님께 효도하기  인생과제입니다.

    가부장 문화의 분위기가 여전한 상태에서  마음을 담는 효를 행하기

    아슬아슬 줄타기도 해보고 가끔은 반항도 해보고

    슬기로운 효도생활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보는 수밖에

     AI는 좀 ......

    곰곰의 논어읽기 재밌습니다~

  • 2022-07-15 07:32

    효도와 관련  얼굴빛을 가다듬기 어렵다는  색난의 문제를 고민해 보게도 되는... 시간이었어요^^

  • 2022-07-19 18:48

    병원을 전전하는 친정엄마 때문에 막내동생은 오늘도 전화기를 붙들고 여기저기 이것저것 알아보느라 바쁩니다. 동생은 동양고전을 배우지 않았는데도,  '효'를 말할 때 절로 막내동생을 떠올릴만큼 엄마에 정성을 다합니다. 엄마의 지독한 고집과 아들만 좋아라하는 고약한 말에 눈물도 찔금거리고 '다시는 엄마 수발 안하겠다'고 선언하지만, 그래도 역시 제일 먼저 엄마의 보족기와 살살 녹는 복숭아를 사야 된다고 난리 블루스를 칩니다. 효의 사상이 바뀌었나요? '효도란 이러해야 한다'고 말하기 전에 이미 몸이 먼저 움직이는 동생이 있어 엄마한테 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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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 글쓰기 클래스 시즌2는 '여행'이 주제였습니다. 시즌2을 마치며 쓴 에세이 가운데 두 편을 북앤톡에 올립니다. 함께 읽어봤으면 합니다.    나를 부르는 망우산 발을 옮겨 딛는 단순한 기쁨을 마음껏 즐겼다.(239쪽) 생기 있는 푸른 하늘과 군청색의 대지, 자연이 부여할 수 있는 모든 색의 선명한 농담을 발산하는 나뭇잎들. 숲에 있는 모든 나무들 하나하나가 개성 있는 존재가 되는 광경을 보는 것은 참으로 놀라웠다. 나는 열정적으로, 원기 왕성하게 신선한 대기와 광채에 들떠서 등산을 즐겼다.(387쪽)   『나를 부르는 숲』(빌 브라이슨, 까치, 2018년)에서 빌과 카츠는 처음 계획대로 애팔래치아 트레일 3520킬로미터 전부를 걷지는 못했지만 두 번에 걸쳐 시도했고 시도한 만큼 예상 밖의 많은 경험을 쌓았다. 그 중 트래킹을 마친 후 빌과 카츠가 ‘발을 옮겨 딛는 단순한 기쁨’을 알고 누리게 된 점이 인상적이었다. 빌처럼 내게도 산에서 단순한 기쁨을 누리며 등산을 즐긴 적이 최근에 있었나? 떠올려보니 올 여름이 되어서는 더워서 없었고 장마가 시작되자 더욱 산에 갈 생각조차 안 했다. 더위와 비 때문이 아니어도 산 자체를 여유 있게 마음껏 즐겼던 기억이 없다.   왜 없을까? 나는 10년 전 2030산악회 막내 회원으로 활동하며 설악산, 지리산 종주도 가 보았고 혼자서 템플 스테이를 다니며 지방 곳곳 산행도 했고 고민이 있을 때에는 서울 불암산, 수락산도 종종 등산했는데 말이다. 함께 산행 했을 때에는 웃고 떠들고 나누다가 혼자서는 현실의 고민과 걱정이 가득차서 산 자체를 온전히 즐길 여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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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래
2022.08.22 | 조회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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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산지 20년이 넘었다. 타지에서 생활하면 자주 뵙기 힘든 부모님에 대한 ‘효’는 더욱 간절해진다. 나와 사정이 비슷한 남편은 혼자 계신 시어머니가 걱정되어 나에게도 안부 전화를 드리는지 자주 확인한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일도 누가 시켜서 하려면 마음이 달아나는 법. 나는 미루다 미루다 마지못해 한 번씩 전화를 드리곤 한다. 아무래도 이건 ‘효’라고 말하기 좀 그렇다. 얼마 전 친정엄마의 칠순을 기념한 여행을 준비하면서 기왕이면 더 멋진 장소, 더 맛있는 음식, 기준보다 더 나은 곳이 어딜까 고민했고 그에 따라 여행 일정은 빡빡해졌다. 다행히 별다른 다툼 없이 여행을 잘 마쳤고 ‘고마운 딸’이라는 답변이 돌아왔지만, 문득 그때 내가 ‘효’라고 믿고 행한 것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든다.   공자가 ’효’를 말하다.   <논어>를 보면 여러 사람이 공자를 찾아와 효에 대해 묻는다. 당시에도 효를 어떻게 실천하는지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이 많았던 모양이다. 그러나 공자의 대답은 명쾌하지 않다. 효는 구체적인 행위들로 드러나는 것이지, 하나의 본질로 설명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공자는 일정한 형식(禮)으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격식에 맞는 행동이라도 마음이 빠져 있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그래서 공자는 효에 대해 묻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하라고 가르치지 않고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준다. 한번은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맹무백이 효에 대해 물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병들까 근심합니다.” 孟武伯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 (위정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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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
2022.07.11 | 조회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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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학이-2/낭송논어 p.35)   공자가 지향한 인간상은 ‘군자’다. 위 문장은 군자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 효도와 우애라고 말하고 있다. 가족 안에서 효와 우애로 다진 마음을 세상을 향해 꺼내어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서 ‘인’의 가능성은 숨 쉬고 있다. 뭐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군자가 아니라서 싱거울 정도지만 어쨌거나 ‘인’은 발아하지 못했을 뿐 내 주변 일상에 잠재해 있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는 것이 ‘인’한 것일까? 하지만 논어에서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보편윤리라서 공자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을 망치거나, 혹은 서로 미워하는 부모 자식 관계를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금쪽같은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엄마란 가장 가까이에서 스치는 칼날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삼가함(愼)을 예(禮)로 삼아   공자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이름은 공리(孔鯉). 백어(伯魚)라고도 한다. 스무 살에 얻은 아들이었으니 나이로 치면 1기 제자와 2기 제자들 중간쯤 되는 연배다. 공자가 69세일 때 50세의 나이로 (안회보다 1년 먼저)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계씨편에 진강(자금)과 백어의 대화가 나온다.   진강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백어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일찍이 아버님께서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
“군자는 근본에 힘을 쓰니, 근본이 서면 도가 생긴다. 효도와 우애는 인을 실천하는 근본이다.” (학이-2/낭송논어 p.35)   공자가 지향한 인간상은 ‘군자’다. 위 문장은 군자가 인(仁)을 실천하는 근본이 효도와 우애라고 말하고 있다. 가족 안에서 효와 우애로 다진 마음을 세상을 향해 꺼내어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서 ‘인’의 가능성은 숨 쉬고 있다. 뭐 대단한 일을 해야 하는 군자가 아니라서 싱거울 정도지만 어쨌거나 ‘인’은 발아하지 못했을 뿐 내 주변 일상에 잠재해 있다. 그런데 문득 궁금했다.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데 있어 어떻게 하는 것이 ‘인’한 것일까? 하지만 논어에서 부모가 자식을 대하는 것에 관련된 이야기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없는 보편윤리라서 공자는 이야기하지 않은 것일까?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사랑’의 이름으로 자식을 망치거나, 혹은 서로 미워하는 부모 자식 관계를 흔히 볼 수 있다. 많은 금쪽같은 자식들은 부모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받았다고 고백한다. 엄마란 가장 가까이에서 스치는 칼날이라고도 하지 않던가.   삼가함(愼)을 예(禮)로 삼아   공자에게도 아들이 있었다. 이름은 공리(孔鯉). 백어(伯魚)라고도 한다. 스무 살에 얻은 아들이었으니 나이로 치면 1기 제자와 2기 제자들 중간쯤 되는 연배다. 공자가 69세일 때 50세의 나이로 (안회보다 1년 먼저)아버지보다 먼저 죽었다. 계씨편에 진강(자금)과 백어의 대화가 나온다.   진강이 공자의 아들 백어에게 물었다. “그대는 아버지로부터 특별한 가르침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백어가 대답했다. “없습니다. 일찍이 아버님께서 홀로 서 계실 때 제가 종종...
도라지
2022.07.11 | 조회 34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며칠 전 친구가 시골에서 보내준 것이라며 호랑이 콩을 나누어 주었다. 호랑이 콩은 알이 큼직한 게 특징인데, 크기가 작았다. 가뭄 때문이라고 했다. 가뭄에 산불까지, 올 봄도 참 힘겹게 지나갔다.   어차피, 파멸인데....   관심만 있었던 환경문제에 대해 이제 실천적 대응을 해보자며 삼년 전부터 ‘에코 000’ 운동을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쓰레기 덜 만들고 자동차 덜 타고 전기 아껴 쓰고. 주로 덜 하고 덜 사고, 소박하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어서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것들 이었다. 운동이란 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야 힘이 나는 법이라 같이 하자고 여러 사람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작년에 나는 문탁 내 에코 챌린지 매니저였다.) https://moontaknet.com/?pageid=4&page_id=244&uid=36826&mod=list 그런데 공부를 통해 지구 생태계가 처한 실태를 알아갈수록 부정적 예측을 떨칠 수 없었다. 전 지구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부분적인 개개인들의 소소한 변화로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까. 대기과학자 조천호의 설명은 더욱 암담했다. 지금의 늘어난 온실가스와 기온 상승은 2000년 이전 산업 활동의 결과이며, 현재의 결과물은 30년 이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각고의 노력으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해도 몇 십 년 뒤 상태는 지금보다 끔찍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각국은 이기주의에 빠져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행여나 부자나라가 감축할 탄소는 저개발국가가 떠안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붕괴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바다를 떠다니는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또 어쩔 건가. 이건 도저히 해결 불가능. 임계점을 이미...
며칠 전 친구가 시골에서 보내준 것이라며 호랑이 콩을 나누어 주었다. 호랑이 콩은 알이 큼직한 게 특징인데, 크기가 작았다. 가뭄 때문이라고 했다. 가뭄에 산불까지, 올 봄도 참 힘겹게 지나갔다.   어차피, 파멸인데....   관심만 있었던 환경문제에 대해 이제 실천적 대응을 해보자며 삼년 전부터 ‘에코 000’ 운동을 호기롭게 시작하였다. 뭐, 대단한 일을 한 건 아니었다. 쓰레기 덜 만들고 자동차 덜 타고 전기 아껴 쓰고. 주로 덜 하고 덜 사고, 소박하게 먹고 살면 되는 것이어서 운동이라고 말하기도 멋쩍은 것들 이었다. 운동이란 게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해야 힘이 나는 법이라 같이 하자고 여러 사람을 부추기기도 하였다. (작년에 나는 문탁 내 에코 챌린지 매니저였다.) https://moontaknet.com/?pageid=4&page_id=244&uid=36826&mod=list 그런데 공부를 통해 지구 생태계가 처한 실태를 알아갈수록 부정적 예측을 떨칠 수 없었다. 전 지구적으로 대변혁이 일어난다면 모를까 부분적인 개개인들의 소소한 변화로 어떻게 위기를 벗어날까. 대기과학자 조천호의 설명은 더욱 암담했다. 지금의 늘어난 온실가스와 기온 상승은 2000년 이전 산업 활동의 결과이며, 현재의 결과물은 30년 이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각고의 노력으로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한다 해도 몇 십 년 뒤 상태는 지금보다 끔찍할 것이란 말이다. 그런데 각국은 이기주의에 빠져 서로 눈치만 보고 있다. 행여나 부자나라가 감축할 탄소는 저개발국가가 떠안게 된다. 이런 식이라면 붕괴를 피할 수 없다. 게다가 바다를 떠다니는 그 많은 플라스틱 쓰레기는 또 어쩔 건가. 이건 도저히 해결 불가능. 임계점을 이미...
토토로
2022.07.11 | 조회 245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논어』 하면 유가 경전을, 공자를 떠올리고 또 인(仁), 예(禮), 정명(正名)을 생각한다. 내가 처음 『논어』를 배웠을 때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한자 문장들, 그것도 단편적인 구절들의 집합. 거기다 위대하신 공자님 말씀들의 개념들을 파악하느라 내겐 여느 철학책 못지않게 어려웠다. 이번 ‘고전학교’에서 다시 만난 ‘논어’는 역사상 실존했던 공자와 그의 사상들을 파헤치기보다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논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행하기는 어렵구나.”(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竝爲仁矣)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잘한다. 그러나 아직 인하지는 못하다.”(子游曰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위 두 문장은 모두 『논어』 <자장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보면 자장이라는 사람은 공자가 지향하는 인(仁)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비친다. 자장은 공자 만년의 제자로 공자와 48세 차이가 난다. 공자가 54세가 되던 해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절에 제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 무렵 자하, 자유, 증자, 자장이 공자 학단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은 출신 지역은 서로 다르지만(위나라, 오나라, 노나라, 진나라), 나잇대는 비슷비슷하며 이 중 자장이 가장 어렸다.(자하보다 4살 연하) 왜 자장은 동문수학하는 문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얼마나 나쁜 일을 하였기에? 『논어』에는 이렇다 할 자장의 잘못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지인 인을 거론하면서까지 교우를 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 학단 내에서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지, 선배인 자공이 나서서 아예 대놓고 스승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낫냐고 물어본다. 이에 공자는...
『논어』 하면 유가 경전을, 공자를 떠올리고 또 인(仁), 예(禮), 정명(正名)을 생각한다. 내가 처음 『논어』를 배웠을 때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한자 문장들, 그것도 단편적인 구절들의 집합. 거기다 위대하신 공자님 말씀들의 개념들을 파악하느라 내겐 여느 철학책 못지않게 어려웠다. 이번 ‘고전학교’에서 다시 만난 ‘논어’는 역사상 실존했던 공자와 그의 사상들을 파헤치기보다는 공자와 그의 제자들을 『논어』라는 책을 통해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당당하구나, 자장이여. 그러나 함께 인을 행하기는 어렵구나.”(曾子曰 堂堂乎張也 難與竝爲仁矣) “나의 벗 자장은 어려운 일을 잘한다. 그러나 아직 인하지는 못하다.”(子游曰 吾友張也 爲難能也 然而未仁)   위 두 문장은 모두 『논어』 <자장편>에 나오는 구절이다. 이 문장을 보면 자장이라는 사람은 공자가 지향하는 인(仁)과는 거리가 먼 사람으로 비친다. 자장은 공자 만년의 제자로 공자와 48세 차이가 난다. 공자가 54세가 되던 해 노나라를 떠나 14년 동안 천하를 주유하기 시작하는데, 이 시절에 제자들이 많이 들어온다. 이 무렵 자하, 자유, 증자, 자장이 공자 학단의 제자가 되었다. 이들은 출신 지역은 서로 다르지만(위나라, 오나라, 노나라, 진나라), 나잇대는 비슷비슷하며 이 중 자장이 가장 어렸다.(자하보다 4살 연하) 왜 자장은 동문수학하는 문인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을까? 얼마나 나쁜 일을 하였기에? 『논어』에는 이렇다 할 자장의 잘못은 드러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성인의 경지인 인을 거론하면서까지 교우를 비하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공자 학단 내에서 분위기도 심상치 않은지, 선배인 자공이 나서서 아예 대놓고 스승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낫냐고 물어본다. 이에 공자는...
마음
2022.07.11 | 조회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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