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20대의 탄생 2회] 고은 - 말을 찾아 삼만리
김고은
2018-04-03 06:42
828
다른 20대의 탄생
대학을 안 가고, 못 가고, 자퇴한 우리들의 이야기. 학교를 관두라는 말, 직장을 관두라는 말은 많지만 어떻게 살라는 말은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다. ‘다른 20대의 탄생’은 세 명의 20대가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 질문들을 던지고 길을 찾아가는 구체적인 과정을 담은 글이다.
다른 20대의 탄생 #02
말을 찾아 삼만리
글 : 김고은 (길드;다)
똑똑이가 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헛똑똑이가 되지 않기 위해 공부한다.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공부를 시작했다. 지금은 그저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공부한다.
일반중학교에서 대안고등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을 때, 그 소식을 듣고 날 바라보던 성택이의 표정을 아직까지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이런저런 친구들과 두루 잘 어울렸는데, ‘일찐’이라 불렸던 성택이와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유일하게 3년 간 같은 반을 하며 서로의 모습을 보고 자랐던 사이였다. 복도에서 마주친 성택이는 나에게 대안학교에 가냐고 점잖게 물었다. 그러나 표정은 그렇지 않았다. 지금이야 대안학교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만 당시에 대안학교는 문제아들이 가는 곳이란 인식이 팽배했다. ‘나도 안가는 대안학교를 네가…? 왜…?’ 내가 가는 대안학교가 어떤 곳인지 알았던 몇몇 선생님들도 의아해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기주장이라곤 없어 보이는 평범한 모범생이 왜 대안학교에…?’
중학교의 첫 국어시간이었다. 우리는 삼형제에 관한 전래동화를 배웠다. 교과서에서는 첫째와 둘째 이야기만 소개해놓았으므로 셋째 이야기는 각자가 상상해서 써야했다. 모두가 대충 넘기는 활동이었지만 나는 성심성의껏 이야기를 지어냈다. 그런데 나중에 확인해보니 아니 이런, 내가 쓴 내용과 전과에 적힌 내용이 완벽하게 일치했다. 이런 일은 꽤 일어났는데 글짓기 대회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산문대회에서 도대회 1등상을 수상했지만, 나중에 확인해보니 2등을 했던 친구와 이야기 전개가 완전히 똑같았던 것이다.
나의 전형적인 모범생 생활은 이후로도 계속되었다. 고등학교 3학년에 입시공부를 시작하며 시간을 초단위로 끊어 죽자 살자 공부를 했다. 덕분에 모의고사에서 상위권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대학교 진학해서는 늘 앞자리에 앉아 교수님의 말에 두 눈을 반짝였다. 수석과 차석을 연달아했다. 한때는 내가 전형적으로 성공한 삶을 살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좋은 학교, 좋은 직장, 좋은 연봉을 모두 갖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도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이것들 중 내가 얻은 것은 단 하나도 없다.
1. 모범생인 척 입을 꾹 다물다
중학교를 졸업할 무렵, 나는 대안학교로 진학한다는 사실이 알려지길 원하지 않았다. 중학교에서 대안학교로의 진학은 내 나름의 반항이었고, 당시 내가 학교에 반항할 것이란 생각을 하는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중학교에 갖는 가장 큰 불만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가장 이익을 누리고 있는 부분이었다. 나는 선생님들에게 받는 편애의 최고 수혜자였으나 사실은 나는 그 편애를 무척이나 싫어했다.
매 학년의 새 학기가 시작되면 선생님들은 학생들을 더 꽉 잡기 마련이다. 3학년이 시작되던 때 나는 머리를 길게 기르고 있었다. 그러나 나보다는 머리가 짧았던 '일찐' 친구는 매일같이 지적을 받았다. 어느 날 학년주임은 그 친구의 머리를 막대기로 툭툭 건드리며 비아냥거렸고, 이에 분개한 그 친구는 나를 가리키며 분노에 차 소리를 질렀다. “쟤가 나보다 머리가 긴데 왜 나한테만 뭐라 그래요?!” 그러나 그 자리에서 혼났던 건 내가 아니라 그 친구였다. “이놈이 어디서 말버릇이야!!”
나는 친구들이 나보다 못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 친구가 반에서 기피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다. 현진이는 이리 튀고 저리 튀는 특수학급 친구였다. 그 때 거침없이 현진에게 다가갔던 친구가 있었다. 성택이었다. 성택이는 현진이를 가장 열심히 놀렸고, 가장 열심히 싸웠다. 덕분에 현진이가 반에 잘 적응하게 되었음은 물론이고 우리 반의 트레이드마크가 되기까지 했다. 친구들 모두는 각기 다른 힘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온 몸으로 부딪히는 힘, 그것이 성택이가 가진 힘이었다.
편애를 받을 때 마다 나는 당당해지기는커녕 더 위축되었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선생님들의 편애 속에서 나는 ‘우수한 사람’이 되었고, 다른 친구들은 ‘남보다 못한 사람’이 되었다. 내가 더 받는 관심과 사랑만큼 다른 친구들은 무시를 당했다.
그렇다고 선생님들을 원망한 것은 아니었다. 잘살지 못하는 동네, 그래서 학구열이 높지 않은 동네에 있는 우리학교의 학생들은 공부에 목을 매지 않았다. 나는 그런 점이 좋았지만 선생님들의 사정은 달랐다. 공부는 모든 일을 제치고 우선순위에 올랐다. 그러니 학생들이 선생님들을 우습게 여기는 것은 당연했다. 학생이 선생님에게 소외당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은 학생에게 큰 상처를 받았다.
순둥이였던 가정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자꾸 놀림을 당하자 교사가 된지 3학기 만에 스타일을 바꿔서 나타났다. 샤랄랄라 했던 공주스타일에서 과도한 뽕을 장착한 차도녀스타일로, 강아지처럼 웃는 얼굴에서 까칠하게 남을 째려보는 얼굴로 변했다. 그야말로 ‘변신’이었다. 열정적으로 수업을 해주던 수학 선생님이 상처받은 표정으로 교실을 떠나는 일은 다반사였고, 복도에서 혼자 울고 있는 국어 선생님을 보는 것도 영 드문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한 편을 적으로 만들고 한 편에 속했으면 좋았으련만 나는 선생님을 적으로 만들지도 못하고 친구들보다 우위에 서지도 못하는 상태로 중학교 3년을 보냈다. 선생님은 왜 학생의 우열을 나누는지, 학생은 왜 선생님에게 상처를 주게 되는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당시에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모범생의 이름표를 단 채로 묵묵히 그 광경을 지켜보는 일 뿐이었다.
2. 내 말이 갖고 싶다
대안학교에 대한 정보를 흘리듯 말해준 건 부모님이었지만, 그 얘기를 듣고 미친 듯이 찾아본 건 나였다. 그렇게 꿈에 부풀었던 날들이 또 있었을까!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 것 같았다. 학교에 대해 찾을 수 있는 정보란 정보는 다 찾았다. 찾은 정보를 바탕으로 학교의 모습을 상상하기도 했다. 새로운 교육을 위해 열정을 다하는 학교, 학생에게 마음을 다하는 선생, 활동과 공부를 자치적으로 꾸려나가는 학생! 그러나 내가 입학한 학교는 내가 생각한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생들은 겉으로는 모두 잘 지내는 것 같아 보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이미 같은 중학과정을 밟은 친구들 사이를 타중학교에서 진학한 친구들이 겉돌고 있었다. 나는 선생님과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선생님의 단호한 반응에 당황하고 말았다. “그런 건 어쩔 수가 없지 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거야.” 귀찮다는 듯 무심하게 툭 내뱉은 말이었다. 나는 이후로도 ‘그건 원래 그러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말을 자주 듣게 되었다.
>>>청문회에서 메인패널로 발표중
사실 대안학교라고 더 특별할 게 없었다.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과정이 이미 짜져있었으므로 사실은 관례를 행할 뿐이었다. 배우는 내용은 일반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색다른 수업 방식에 기존 재학생들은 이미 질린 상태였다. 그러니 수업 분위기마저도 일반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가장 불편했던 것은 학교가 스스로에 대한 환상을 부풀린다는 것이었다. 당시 학교가 공중파의 다큐멘터리에 나오게 되었는데, 내가 속해 있던 반이 촬영의 중심이 되었다. 피디들은 시간이 갈수록 원하는 장면, 원하는 인터뷰 내용을 노골적으로 찍으려 했다. 그렇게 방송에 나간 학교의 모습은 아주 아름다웠다. 심지어는 누군가의 반항마저도 좋은 소재가 되었다. 반항아를 사랑하는 교사, 같이 보듬을 줄 아는 학교. 이런 학교야말로 내가 입학하기 전에 꿈꾸던 학교의 모습이 아니었던가.
내가 찾고 싶었던 학교의 모습은 이곳에 없었다. 나는 그 사실에 아주 크게 감정이 동했던 것 같다. 학교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고 싶어 했다. 할 수 있는데 하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말할 수가 없었다. 무엇이 문제인지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했다. 스스로도 말할 수 없었으니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란 불가능했다. 동아리, 학생회, 학년잡지 등 온갖 활동을 했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스스로에 대한 답답함만 늘 뿐이었다.
우연찮게 들어간 총학생회도 마찬가지였다. 내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조금 달랐던 것은 총학생회가 비효율적이지만 열정이 넘치는 곳이었다는 것이다. 모두들 내 이야기를 이해보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나는 생각을 전달하기 위해 무진 애를 썼고, 이때 애를 쓴 경험 덕분에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며 어설프게나마 내 언어로 학교의 문제를 말 할 수 있었다. 학교를 상대로 연 공청회에서 패널로 나섰던 것이다<span lang="en-us" style="background: rgb(255, 255, 255); letter-spacing: 0pt; font-family: A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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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치다가 아니고 제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찮게'가 아니라 '우연히'
이 많은 질문들을 가슴에 품고 살았을^^ 그리고 또 살아갈^^ 그러면서 절차탁마할
김고은을 응원합니다^^~
고은, 화이팅!
고은샘은 좀 더 알게 된 것 같아 좋고,
다음 이야기도 기다려지네요.
자기 얘기를 글로 쓴다는 게 쉽지 않죠?
고은이가 힘들게 쓴 글 많이 읽어주시고 소문도 많이 내주세요!!
길지 않은 세월 같은데.. 아주 길고긴 이야기들이 만들어진 시간들이네.... 고은, 화이팅! ^^
문맥이 딱딱 끊어지고, 단절되어서 숨막히는 글이 된 것 같네요...^^하하
책 공부와 상관없는 글을 이렇게 길게는 처음 써봤어요.
앞으로 다른 이십대의 탄생 글을 쓰는게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스토리텔링 연습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써보겠습니다~
마지막 글을 이 글과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지.. 기대해주세요ㅋㅋㅋ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문제를 의식하고 나름의 답을 찾아나가는 여정이 아름답게 느껴지네요 다음 글이 기다려집니다^^
말을 찾아 삼만리라는 제목이 와닿네
고은이가 자신이 하려고 하는 말의 진의를 몰라주는 내게 열심히 설명했던 모습이 떠올라서. ㅋ
나도 내 말의 진의를 열심히 설명했지 ^^
똑똑이도 특별한 사람도 아닌 그냥 인간이 되고픈 고은일 기대해~
자누리샘 딸로 보였던 고은이가
서당 동학으로 만났던 고은이가
이렇게 자신의 문제를 적극적으로 만나고
풀어가는 힘있는 청춘인줄 몰랐네^^
응원하며.. 다음 글도 기대할께요~
다음이야기가 더 기대기대 ^^
총학에서 만난 고은누나는 항상 자기 말을 찾으려, 무언가 애쓰던 모습으로 기억해.
문탁에서 오랜만에 만나 반갑게 인사했던 고은은 답답함은 잠시 내려놓고 담담하게 공부와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 같아 보기 좋았어!
이 글이 나의 서툰 이십대에도 큰 자극이 될 것 같아 다음글도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