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진한 시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자작나무
2023-11-13 22:23
261
진한 시기 중앙집권과 지방분권 사이에서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 읽기
- 들어가기 : 처음에는 한나라에 대한 관심에서 출발
요즘 중국 한나라와 관련 있는 책을 보고 있다. 한나라에 관한 모든 것을 알자는 모토였지만, 세미나에서 읽은 책은 두세 권 남짓이다. <춘추>를 해석해낸 동중서의 <춘추번로>, 한 무제의 평전과 <염철론> 및 <사기>. 처음 김영민의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나의 관심은 전적으로 한나라에 있었다. 세미나에서 강의안을 쓰자고 결의한 이상, 관련 이차자료를 봐야 하는 이상, <읽고쓰기 1234>도 하고 겸사겸사 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한나라에 대한 나의 관심은 지금 우리가 ‘중국’이라고 할 때 상상되는 모든 것들(‘漢’)의 원형이 이때 만들어졌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즉 흉노와의 전쟁을 통해 획득한 영토는 이후 중국인의 관념적 국토 영역의 한 원형이 구축되었으며, 독존유술獨尊儒術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중국 통치의 시스템이 마련되었으며, 경학/역사/문학 등 중국 정신 문화 영역에서의 모델이 구축된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적으로 당시의 지도만 보더라도 우리가 상상하는 중국 영토와 다르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나라 시대에 단지 그 ‘원형’이 세워졌다는 의미이지, 완벽히 확립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이로부터도 우리는 ‘중국’에 대한 이미지가 역사적으로 다르게 상상되는 것을 알 수 있다.
김영민의 <중국정치사상사>는 중국을 하나의 단일한 단위로 생각하는 본질주의적 접근에 대한 비판으로 채워져 있다. ‘중국’이 역사적으로 고찰되어 온 과정을 밝히는 작업인 셈이다. 그는 서론에서 기존 정치사상사 전개에 딴지를 건다. 어떻게? 바로 그들이 밟고 서 있는 ‘기본 전제’에 대해서 근본적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가령 지금껏 중국정치사상사에서 유명한 권위자는 샤오궁취안(蕭公權)인데, 그는 중국 대륙의 입장을 보여준다. 그가 기반하는 전제들을 김영민은 이렇게 정리한다.
(1)‘중국’을 궁극적으로 단일한 단위로 간주하는 본질주의 (2)중국 제국의 역사를 권위주의 혹은 전제주의 정치체제로 보는 시각 (3)유교 혹은 유가를 중국정치사상의 전형적 형태로 보고, 공자를 그것의 ‘갑작스러운’ 창조자로 간주하는 시각 (4)중국정치사상을 권위주의 혹은 전제주의 정치체제를 이데올로기적으로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보는 시각 (5)근대 이전까지 중국 정치체제와 사상에는 심오한 변화가 없었다고 보는 시각 (6)세계사 발전 단계론에 의거하여 중국정치사상의 연대기를 구조화하는 양상.(23쪽과 24쪽 요약 정리)
이러한 전제들에 대해서 김영민은 “그(샤오궁취안)의 견해 가운데 거의 모든 면에 이의가 있다”(24)고 단언하며, 본론에서 전제들을 조곤조곤 반박한다. 그는 일련의 테마들을 통해 중국정치사상에 대한 비민족주의적이고 비본질주의적인 설명을 제공(59)하려고 한다. 가령 김영민의 논점에서 보면, 유학을 정치 이데올로기로 존숭하고 공자가 신성화된 것은 한나라 때부터이며, 시대마다 공자는 항상 새롭게 해석되어 왔다. 또한 공자가 획기적인 무엇인가를 만든 것으로 여기지만, 공자의 “계몽된 관습적 공동체”는 “진공 속에서 생겨난 천재적 도약이 아니라 동주 시기 문화적 분위기와 지적인 발전 속에서 배태된 것”(73)일 뿐이다. 이 과정에서 김영민은 고고학적 증거를 통해서 새롭게 제기된 공자시대 중국사회의 모습을 가져오거나 공자가 요순이나 주공 등을 ‘미학적으로 재현’함으로서 자신의 비전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논증한다. 이런 식으로 우리가 조금은 알고 있는 것을 김영민은 새롭게 대두된 연구 성과를 가지고 와서 중국을 다시 볼 수 있게끔 우리의 시선을 환기시킨다. 접근 방법이나 시각 및 최근의 영미권 자료나 다른 학계의 연구 성과를 적재적소로 가져와 깔끔하게 설명하고 정리하는 것이 개인적으로는 인상적이었다. 물론 깔끔한 ‘정리’가 갖는 왠지 모를 허전함도 있지만 어쨌든...
*내가 사랑하는 한나라의 유물 ; 왼쪽)춤추는 무녀 테라코타(舞女陶俑) 오른쪽)기러기가 물고기를 물고 있는 등(雁魚銅燈)
- 한나라는 무엇을 걱정하였나
제4장(The State)은 진한을 다루는 장이다. 여기에서 김영민은 진한에 대한 검토와 더불어 “중국사 전반에 걸친 제국 국가(imperial state)의 부침”과 국가 이론의 관점에서 “중앙집권화된 제국의 구심력과 지역의 원심력 간의 긴장”(233)을 살펴본다. 이때 그가 정리해낸 키워드들은, 영토국가-군현제-중앙집권-행정력-관료제-지방주의-지방 엘리트 혹은 신사-흉노 제국-대외관계-‘한’ 즉 중국 등등이다. 위 샤오궁취안이 기반한 전제에서 보자면 (1)과 (2)에 대한 질문과 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다. 그러면 도대체 진한 시기, 무엇이 문제였을까. 이 질문은 앞선 왕조, 진의 문제의식, 그 성공과 멸망에 대한 평가에서 시작한다.
이 장은 여러 제후국이 다닥다닥 붙어 있던 상태의 중국이 어떻게 그전보다 더 잘 통합된 영토를 관장하는 중앙집권화된 제국으로 이행했는지를 추적한다. 그리고 진시황이 원래 가졌던 국가주의적 야심--중앙집권적, 관료적, 통일적 행정 시스템으로 세상을 다스리겠다는 야심--이 어떻게 한나라에 이르러 타협되었는지를 검토할 것이다. 거대한 영토를 통일한 단일 권력이 다스린다는 것은 통치자에게나 정치사상가들에게나 새로운 도전이었다. 진나라의 정치적 실험은 결국 광대한 영토를 중앙정부의 관료들 휘하에 두겠다는 것이었다. 진나라의 성취는 한나라 때 재평가되었다.(233)
진한시기의 문제의식은 통일된 ‘거대한 영토’를 ‘단일 권력’이 어떻게 오랫동안 다스릴 수 있을 것인가 였다. 역사를 지배층의 입장에서 그리고 ‘통일’을 기준으로 하여서 평가하여 온 입장에서 보자면, 국가가 강력한 권력을 쥐고 일방적으로 하향식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정치체가 하등 이상하게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진시황이 통일을 했을 때 그리고 한나라가 그 뒤를 이었을 때, 이들 앞에는 중앙집권적 국가라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다른 선택지 가령 주나라의 봉건제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도 있었다. 물론 전국 시대의 제자백가들이 구상한 다양한 정치 비전도 선택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전국을 통일한 것은 진나라가 아닌가. 진이 취한 시스템의 유효성이 증명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나라에 있어서 진나라는 애증의 존재처럼, 따라야 할 롤모델이면서 그리하여 “한나라에 주어진 과제는 망해버린 주나라 ‘봉건’제도와 진나라의 엄혹한 중앙집권적 관료 행정이라는 이중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과연 질서와 안정을 담보하는 통치체제를 발전시킬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239)
그 결과로 한나라 초기에는 진나라의 정책을 약간 완화하거나 수정했을 뿐 진나라의 제도를 답습했다. 그 타협을 한나라 초기의 역사는 잘 보여준다. 초기 군국제나 황노사상을 채택한 것. 하지만 이러한 타협에도 불구하고 한 고조에서 그 이후의 황제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각각의 호구에까지 직접 지배력이 미치는 통일된 행정의 이상을 포기하지 않았다.(241) 통치에 적합하도록 인구를 가시화하고 수치화한 한나라 정부의 노력이야말로 사회를 통제하고자 하는 국가의 지속적인 욕망(241)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욕망을 잘 보여줄 뿐만 아니라 성공적으로 이룩한 자가 바로 한 무제이다.
한 무제는 안으로는 지방의 세력(그들이 동성의 제후들이든 공신의 후예이든)과 다퉜고 밖으로는 흉노 세력과 싸웠다. 그리고 전자는 군국제에서 군현제로, 추은제, 오경박사 설치, 염철 전매 등을 통한 정치적 경제적 행정적 개혁 등을 들 수 있고, 후자는 흉노와의 여러 차례에 걸친 전쟁과 실크로드 및 사방으로의 군사 원정을 들 수 있다. 일견 한 무제 시기에 일망타진한 듯 보이지만 이것과 관련된 정책들이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물론 잘 진행되지는 못했다. 중앙 세력이 약했다고도 이야기할 수 있고, 그만큼 지역의 반발도 심했다고 볼 수 있으며, 한나라 조정 또한 지방 세력, 혹은 권세 있는 가문들이 연합하여 중앙정부를 치지 않을까 항상 의심하고 견제했음을 보여준다.
*내가 사랑하는 한나라 유물 : 하늘을 나는 제비를 밟고 달리는 말(馬踏飛燕)
- 그 후로도 오랫동안
중앙집권 대 지방 세력(혹은 분권)의 대립은, 한에서 그치지 않고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제국으로 말해지는 시기는 어쩌면 왕권의 강화로 중앙집권이 웬만큼 이뤄진 시기이고, 이른바 분열 시기는 지방 세력이 강세를 보였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은 전자가 성공한 예는 서너 차례에 지나지 않는다고 김영민은 보고 있다. 그리고 이런 대립에 결정적인 전환을 맞은 것은 당나라 때다. 중만당 시기. “진나라 비전의 공식적인 종말.”(245) 김영민은 이를 균전제/조용조/개병제가 무너지고 양세법과 보병제(나아가서는 모병제)로 대체되었다고 말한다.
이러한 변화는 국가가 농민의 동일성이라는 유구한 이상과 그 이상에 기반한 직접적 재정 행정이라는 이상을 공식적으로 포기한다는 것을 함의한다.(245)
그래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공식적으로 포기한다’고 말하지만, 국가의 입장에서 다스리지 않는다는 말은 아닐 것이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이는 “국가와 사회관계에서 거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한다. 즉 국가 관료제 자체가 변했다는 말이 아니고(관료제 규모와 인구 증가 간의 불균형), 국가와 백성 사이에 다양한 종류의 사회 그러니까 중간 매개체들이 더 활성화되었다(246)는 것이다. 정치사상 쪽에서 보자면, 지방사회나 민간에 관한 담론과 ‘사대부士大夫(송원)’나 ‘신사紳士(명청)’와 같은 ‘지방 앨리트’를 다룬 연구가 많이 생겨나고 있다. ‘신사’ 혹은 ‘지방 앨리트’에는 중앙 관료 준비생이 포함되기도 하지만, 관직에 나아가지 못한 지역 유지 혹은 ‘독서인讀書人’도 포함된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문제는, ‘지방 앨리트’는 국가와 어떤 관계를 맺는가. 그들은 스스로를 관료 예비군, 즉 준공무원이라고 보았을까. 그렇지 않으면 국가와는 상관없이 지방을 근거지로 자신의 세력을 확대해가려고 한 것일까. 그들은 자신을 무엇이라고 규정했을까.
사대부의 입장이 아니라 국가의 입장에서라면 어떨까, 국가는 신장하는 이들(‘사회’)의 세력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국가는 지방이나 사회에까지 자신의 힘이 완벽히 미치지 않는다고 의식하고 그 대안으로 지방의 앨리트들과 손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중국은 중앙집권의 전제주의 국가라기보다 함께 나라를 다스린다(가버넌스)는 의미에서 비非전제주의적 국가인 것은 아닐까. 나아가 이 둘을 손잡게 만드는 공통의 기반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연구는 진행중이어서 아직은 규정할 순 없지만, 점차 “공통의 정치 행위자”로 떠오른 이들의 복합성과 다양성은 “전제국가론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국가론”(268)으로 우리를 이끈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명나라와 청나라는 국가 관료제라는 단일한 원리에 의해 더 이상 조직될 수 없었다. ... 국가 관료제와 사회적 행위자가 상호 배제적으로 조직화되지 않았다. ... 사회적 자율성과 국가 통제 간의 경계선 역시 명확하게 정의된 바 없었다. 당시 그러한 경계선이란 국가와 사회의 끊임없는 상호 작용의 결과였다.”(250)
그래서? 김영민은 이러한 연구를 소개함으로써 결국은 앞서 그가 제기한 중국 정치사 및 정치사상을 권위주의와 전제주의로 보는 기존 시각은 재고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논의는 아마도 오늘날 중국을 보는 데도 유효하지 않을까 싶다. 작금은 중국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및 자치정부로 나뉘어 있다(구체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게다가 아직 이 책의 결론을 다 못 봐서 김영민이 어떤 새로운 주장을 내놓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작금의 정치형태는 흡사 중앙의 시진핑 일인에게서부터, 공산당에서부터, 중앙정부로부터 오는 듯이 보인다. 또한 일견 잘 작동하는 듯도 보인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역사적으로 국가 전제주의적 모습이 강조될수록 그 속의 지방의 원심력의 힘은 컸다. 게다가 지방(정부)이 중앙의 수족이기만 했던 시기가 있었을까. 위의 진한에서 명청까지의 지방의 힘에 관한 연구를 볼 때, 일견 일방적인 하달식으로 보이는 체제는 항상 그 이면에 복합적이고 다양한 아래로부터의 힘이 꿈틀대고 있고, 또한 스스로가 항상 그것을 견제하고 의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오랜만에 답이 아니라 문제 제기로 가득 찬 역사책을 읽은 것 같다.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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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김영민샘의 이 책을 저는 몰랐어요.
흥미가 확 땡겨서 사려고 알라딘 갔더니.....끄응......45,000원.....일단 보류^^
예전에 저는 낙양 갔을 때 박물관에서 이것 저것 보다가....
중국사는 소위 중원과 소위 변방이라고 말해지는 지역(부족)의 지난고난한 길항관계로 봐야 하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이 퍼뜩 스친 적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