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1234]차별은 없다, 정말입니까?

스르륵
2023-09-17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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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은 없다, 정말입니까?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2023), 이주희

 

 

감정사회학을 접하면서 제일 먼저 왔던 현타는 ‘지금 내 감정이 내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었다. 감정은 자발적이고 은밀한 나만의 본질같은 것이라기보다 구조적으로 만들어지고, 관리되고, 연출된다는 것.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은 바로 그런 감정과 ‘구조의 은밀한 콜라보에 차별’이라는 다소 버거운 주제를 함께 이야기 한다.

 

 

 

 

처음엔 ‘차별’이라는 주제에 오히려 좀 식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차별받으며 혹은 차별하며 살아온 사람일까?’라는 물음에 이내 답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며, 차별이 식상한 주제가 아니라 그만큼 우리가 이미 ‘차별’에 너무 익숙해져서 버린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별받지 않고 평생을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혹은 식상하다는 이 느낌은 아마 차별을 없애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들이 더뎌지고 희미해지고 무산되는 과정에서 번번이 느꼈던 익숙한 실망감이거나, 그도 아니면 너무 어마한 주제에 대한 무기력감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한마디로 언급하기엔 좀 불가능하지만 ‘감정’, ‘구조’, ‘차별’ 이라는 어마무시한 삼총사를 1234를 통해 ‘아무튼’ 만나 보았다.  

 

차별은 구조와 맞물려 있다

『차별하는 구조 차별받는 감정』에서 저자는 우리가 차별에 둔감한 이유는 우리 각자가 서로 다른 성향인 이유도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구조 속에 숨어 들어간 차별을 식별해내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차별은 차별하는 이나 차별당하는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조직과 국가, 그리고 여러 신념체계가 복합적으로 작동해서 발생 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한다면 차별에 대해 이제껏 제기된 다양한 이야기들과 소기의 성과들은 장기적인 효과로 이어지기 힘들다.

 

 

하여 구조 속에 숨겨진 차별을 인식하는 것은 무너진 자존감과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첫걸음이다. 보통 우리는 조직(구조)이 합리적일 거라 생각하지만 오히려 조직은 모든 절차를 정당화하면서 차별이나 불평등에 관한 문제들을 감추는데 유리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사와 육아에 더 많은 부담을 지고 있는 여성의 문제는 고려되지 않은 채 행해지는 성 중립적 채용 절차들, 그리고 차별하지 않겠다는 의도로 공정하게 요구되는 졸업장과 시험 성적이 알고 보면 교육기회의 불평등을 가리는 간접차별인 것처럼 말이다.

 

 

더구나 시장 경쟁이 자연스럽게 강조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조직에서의 차별 문제는 구조적 차별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 쉽게 치환되어 버린다. 인적자원에 대한 합리적인 투자라는 명목으로 여성에 대한 차별은 무시되고, 백인보다 흑인이 소프트 스킬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인종차별 역시 자연스레 합리화된다. 무한 경쟁에 대처해야 하는 유연하고 효율적인 조직에서 요구하는 인재란 아픈 아이를 돌보는 일 같은 것은 하지 않는, 즉 조직에 완전히 몰입할 수 있는 추상화된 개인이다. 성과와 경쟁 중심의 조직 구조 내에서 우리가 겪는 차별은 개인적인 문제로 평가절하 되기 일쑤다.

 

 

멀리 가지 않아도 지금 우리 사회에서 이미 익숙하게 유통되는 차별의 서사인 ’능력주의‘ 역시 구조적인 차별을 지속시키는 주범이다. 능력에 따른 분배는 정당하고 평등해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친 임금 격차로 연결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불평등이 극대화된 지금의 시대에는 재능과 노력, 어쩌면 운까지도 ‘가진’ 부모와 거기서 유래한 재능과 유전자, 환경적 요인이라는 이미 기울어진 운동장에 기반하고 있기에 말이다. 불평등과‘불평등’하게 분배된 자원에 기대어 ‘공정하게’ 펼쳐지는 오징어 게임의 ‘무한 경쟁’이 더 효율적이라는 것은 착각일 수 있다.

 

 

 

 

무엇보다 차별에 대한 이러한 구조적인 접근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중요한 점은 구조적 차별이 조직에 한 번 자리 잡게 되면 고치기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이는 차별을 시정할 때 생겨날 위험을 회피하려는 조직의 엄청난 관성때문이기도 하고, 한번 취약한 위치에 놓이게 된 개인이 지배적인 사고로부터 쉽게 벗어나기는 어렵다는 점에 기인한다. 즉 우리가 경쟁적 시장의 원리라든가 개인주의, 혹은 능력주의에서 파생된 시험 서열주의 같은 이데올로기들을 개인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해도 우리에게 대안이 없다고 여겨진다면 차별받는 사람은 스스로 체념하거나 순응하게 된다는 말이다. 하여 구조와 맞물려 있는 차별 속에서는 차별이 잉태한 감정들이 발아된다.

 

 

감정은 구조를 드러낸다

순응이나 체념, 정치적 혐오나 무기력한 분노같은 감정들은 차별하는 구조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지금의 시대적 감정이다. 우리가 차별과 함께 이런 감정들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감정을 통해 거시 구조의 전면적인 변화를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모든 집합적 행동에 연루되어 있기에 감정사회학은 감정 그 ‘자체’보다 감정을 ‘통한’ 연구에 집중하고자 한다. 감정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지금의 시공간을 해석하고 느끼며 새로운 가능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저자는 사회학 분야에서 일찍이 감정의 중요성에 주목해온 마이클 해먼드와 혹실드에 주목한다. 해먼드는 거시 구조를 인간의 정서적 역량의 산물로 정의한다. 혹실드 역시 『감정노동』에서 거시 구조 속에서 억압되고 관리되고 있는 인간의 감정을 포착해 냄으로써 거대 구조와 맞물려 있는 인간의 감정을 재발견한다. 그리고 이는 감정적 해방이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오는 데 있어 지적인 해방 못지않게 중요하다는 저자의 성찰로 이어진다.

 

 

예를 들어 우리가 어떤 이데올로기에 저항을 할 때 그 상황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것만이 아닌 그것에 대한 대안적인 감정을 느낄 권리까지 가져야 진정 그 이데올로기에 저항하는 것이 된다는 뜻이다. 여성이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났다고 하는 것은 단지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말고의 문제가 아닌, 가부장제 이데올로기가 정해놓은 감정 규칙, 즉 죄책감이나 수치심에 얽매이지 않는 것을 의미하기에 말이다.

 

 

어떤 새로운 감정양식이 출현한다는 것은 사회적 관계에서 새로운 방식이 생겨난다는 말과 같다. 하여 고용주에게도 화를 내고 비판할 수 있는 ‘노동자’, 분노의 감정을 전통적 여성성 뒤에 숨기지 않으며 정당하게 분출시킬 수 있는 ‘여성’은 거시 구조의 프레임 규칙과 감정 규칙과의 투쟁 속에 있는 일종의 혁명가다. 알고 보면 한 사회의 지배층이나 일반적인 사회 집단 모두가 서로서로 그들의 감정 규칙의 정당성을 위해 주장하고 있는 것이며, 바로 이런 감정 관리를 지배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투쟁의 영역이기때문이다.

 

 

그러나 앞서도 말했듯이 차별받는 사람이 이런 투쟁에서 승리하는 확률은 적다. 오히려 체념하고 적응하기 쉬운 이유는 저항에 대한 불이익과 고난에 대한 공포, 혹은 특권층에 대한 인정과 복종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종종 자신과 혹은 자신보다 낮은 지위에 있는 소수자집단에 대한 혐오의 감정으로 투사되기도 한다. 특히 혐오는 차별과 불평등을 적극적으로 확대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위험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여성, 노인, 장애인,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혐오는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혐오의 원래적 맥락에서 지나치게 확대되어 정체성 정치에 이용당하거나 죽음의 서사로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사실은 2021년도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서 조사 대상의 70페센트 이상이 실생활에서 혐오 표현을 접한 경험으로 입증되며, 또 한국 성소수자 자살 시도 비율이 일반인의 9배가 넘는다는 사실, 2019년 기준 우리나라 노인 자살률이 OECD 국가 평균보다 2,7배가 넘어 전체 1위라는 사실, 그리고 능력주의 사회가 요구하는 기준과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문화가 요구하는 이중적 위계 구조로 내몰린 우리나라 2030여성의 자살률 역시 OECD 국가 중 최고라는 비극으로 드러난다. 차별받은 감정은 취약하고 불평등한 구조를 민낯으로 드러낸다.

 

 

 

저는 몰랐습니다만

흥미로운 사실 하나는, 지난 반세기 동안 소득의 불평등과는 무관하게 인간의 실존적 불평등(수명이나 인권)에 관련해서는 대대적인 진전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는 소수자의 실존적 평등을 인정해주더라도 경제적인 상위 계층의 지위가 위협받지 않기에 일어난 ‘웃픈’ 현상일 뿐이다. 영화 <기생충>에서 기택이네와 박사장네가 서로 적대시하지 않았던 이유가 그저 서로를 모를 뿐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고 보면 테르보른의 이 평가는 정확해 보인다. 차별에서 이어지는 불평등의 구조는 이제 서로가 서로에게 무관심하다는 사실로써 더 선명해 진다. 차별하는 구조와 차별받는 감정은 이제 서로가 서로를 잘 모른다.

 

 

 

 

결론은? 결론은 ‘짐작했듯이’ 적극적인 입법과 실효성 있는 정책의 실행이다. ‘차별 금지법’이나 ‘적극적 조치’, ‘기본 소득’ 너무 익숙한 결말인가? 그러나 ‘차별’과 ‘구조’와 ‘감정’의 트릴로지를 경유해서 도착한 이 결말은 이전과는 좀 다르게 다가온다. 제목이 제시하는 목적이 너무나 분명해서 다 안다고 느껴졌던 ‘차별금지법’이 실은 2000년대 초부터 입안이 시작되어 2022년까지도 우리나라는 아직도 진행중이라는 사실, 난 몰랐다. 무엇보다 이미 성별, 장애, 고용에 관한 개별 차별금지법이 있음에도 이 법이 마련되어야 하는 이유는 다중 소수자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더 두텁게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점, 그리고 헤아릴 수 없는 수 많은 차별을 꼭 적시해야만 하는 이유는 그 만큼 차별의 종류가 다양해지고 은밀해진 현실을 반증하고 있으며, 또 경제계와 기독교계의 반발은 알고 보면 차별금지법에 대한 잘못된 해석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 역시 이번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다.

 

 

 

 

적극적 조치’란 이미 저질러진 과거의 차별적 처우에 대해 보상하고 현재의 차별을 개선하기 위해 한시적으로 소수집단을 우대하는 정책이다., 차별금지법이 있어도 차별하는 사람의 악의와 고의를 항상 증명하기는 어렵기에 차별금지법의 시행착오를 보완하는 역할도 한다. 적극적 조치는 단 하나의 정책이라기 보다 다양한 법제와 판례로 구성되어 있는 보편적이며 광범위한 정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용개선조치, 사회배려자 전형, 지역균형선발, 양성평등 및 지방인재 채용 목표제, 장애인 구분모집제, 여성관리자 임용목표관리 등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자동화, 구조조정이 상시화 된 지금에 적극적 조치는 역차별이라는 반발에 직면하기도 한다. 저자는 역차별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 평등한 현실에서나 나올 수 있는 반론이라 일갈하며, 무엇보다 이런 차별의 구조와 감정을 재배열 할 결정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서 ‘기본 소득’을 호명한다.

 

 

 

 

지금 코로나19를 통과한 우리 노동의 현주소는 국가 간 물리적 이동 감소를 포함한 반세계화 추세와 대면 노동 기피, 자동화 급증과 노동 수요 감소, 경기 침체의 장기화, 극심한 중산층의 붕괴다. 유연한 고용체계와 기업의 금융화는 고소득자의 지속적인 세금 감소 추진으로 이어질 것이며, 뒤따라 공공 서비스가 삭감되고 비자발적 실업이 그 뒤를 쌍둥이처럼 따른다. 그리고 과거 산업화 시기에 만들어졌던 복지 국가 모델은 지금의 불안정한 일자리와 기후 위기, 극단적인 불평등의 문제 앞에서 무용지물이 되어간다. 하여 기본소득은 새로운 사회 시스템의 개혁을 촉발할 수 있는 제도로서 원래적 의미가 크다고 저자는 강조한다.

 

 

무엇보다 기본소득은 다른 조건부 현금 지원책 보다 진일보한 제도로서 수혜자가 원하는 곳에 쓸 수 있는 자유를 늘린다. 이 자유에는 모두의 우려(?)처럼 ‘일하지 않을’ 자유까지 포함되는데, 저자는 이를 나쁜 일자리를 피해 기다릴 수 있는 시간적 자유로 적극적으로 해석한다. 일하지 않을 자유는 노동자의 노동 교섭권을 향상시키고 작업장에서의 민주적인 통제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기본소득은 ‘일 할 수 있는’ 자유도 포함하는데, 남성의 일하지 않을 자유가 평등한 가사 분담으로 이어져 여성의 일할 자유로 연결될 수 있다는게 그 주장이다.

 

 

 

 

물론 반대 의견이나 문제점들 역시 만만치 않다. 기존의 복지가 축소될 위험, 조세 부담의 심리적 저항들, 그리고 능력주의와 성과주의적 맥락에서 여전히 기본 소득이 해명하고 넘어가야 할 부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제도가, 어떤 특정한 기술 수준이 사회적 삶을 우리가 기대한 형태로 완전히 바꿀 수는 없다. 기본 소득과 차별 금지법 그리고 적극적인 조치가 만병통치약이 아님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똑같은 정책이라도 나라마다 다른 효과로 나타나는 국제적 아이러니는 정치나 제도가 그 사회의 맥락과 어떻게 융합되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기에 말이다. 하여 결국 이 책이 기본 소득이냐 아니냐를 너머 지금, 여기, 우리의 서사 안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를 다시 묻고 있는 것이라면, 나는 이 리뷰의 마지막 한 줄 결론을 어떻게 맺으면 좋을까... ‘음 저기... 우리 지금 차별이나 기본 소득 난상토론 한번 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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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유교,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 - 『문명들의 대화』 뚜웨이밍   뚜웨이밍(杜維明), 어디서 들었더라   학이당에서 한참 공부할 당시 유학의 흐름을 따라 주자를 거쳐 어찌어찌 왕양명의 『전습록』을 읽게 되었다. 그 때 문탁샘은 양명의 전기문으로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이라는 책을 뽑으셨지만 아쉽게도 그 책이 절판인 고로 최재묵 교수님이 쓴 『내 마음이 등불이다』로 바꾸어 읽었다. 그런데 종종 왕양명이 등장하는 순간마다 문탁샘은 우리가 뚜웨이밍의 책을 읽었다고 기억하고 계신 듯하다.   “왜, 우리도 읽었잖아. 그 책 왕양명의 전기인데… 그 책 쓴 사람이잖아.” “……?”   그렇게 이름만 익숙한 뚜웨이밍, 아마도 그가 궁금은 한데, 그의 다른 책이 딱히 없어서 이 책, 『문명들의 대화』를 사지 않았나 싶다. 1940년생인 뚜웨이밍은 현대 신유가로 대표되는 지식인이다. 중국 윈난성(雲南省) 쿤밍시(昆明市)에서 태어나 타이완의 뚱하이(東海) 대학을 졸업하고 1968년 하버드에서 동아시아 역사 · 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중국 베이징대학교 고등인문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문명들의 대화』는 2000년 대 초 발행된 책으로 뚜웨이밍의 인터뷰, 강의록, 저널의 기고문 등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지은이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글들은 중복되는 내용도 많고, 다소 산만하게 구성된 점도 없지 않다. 또 2000년 대 초에 쓰인 책이라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이제는 철지난 것이 되어버린 면도 좀 있다. 더 최근 자료가 있을까 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유학,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2015년)라는 제목의 강연 영상을 볼...
유교,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 - 『문명들의 대화』 뚜웨이밍   뚜웨이밍(杜維明), 어디서 들었더라   학이당에서 한참 공부할 당시 유학의 흐름을 따라 주자를 거쳐 어찌어찌 왕양명의 『전습록』을 읽게 되었다. 그 때 문탁샘은 양명의 전기문으로 『한 젊은 유학자의 초상』이라는 책을 뽑으셨지만 아쉽게도 그 책이 절판인 고로 최재묵 교수님이 쓴 『내 마음이 등불이다』로 바꾸어 읽었다. 그런데 종종 왕양명이 등장하는 순간마다 문탁샘은 우리가 뚜웨이밍의 책을 읽었다고 기억하고 계신 듯하다.   “왜, 우리도 읽었잖아. 그 책 왕양명의 전기인데… 그 책 쓴 사람이잖아.” “……?”   그렇게 이름만 익숙한 뚜웨이밍, 아마도 그가 궁금은 한데, 그의 다른 책이 딱히 없어서 이 책, 『문명들의 대화』를 사지 않았나 싶다. 1940년생인 뚜웨이밍은 현대 신유가로 대표되는 지식인이다. 중국 윈난성(雲南省) 쿤밍시(昆明市)에서 태어나 타이완의 뚱하이(東海) 대학을 졸업하고 1968년 하버드에서 동아시아 역사 · 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버드대 옌칭 연구소 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는 중국 베이징대학교 고등인문연구원 원장을 맡고 있다. 『문명들의 대화』는 2000년 대 초 발행된 책으로 뚜웨이밍의 인터뷰, 강의록, 저널의 기고문 등을 모아서 만든 것이다. 따라서 ‘지은이의 말’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이 글들은 중복되는 내용도 많고, 다소 산만하게 구성된 점도 없지 않다. 또 2000년 대 초에 쓰인 책이라 저자가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이 이제는 철지난 것이 되어버린 면도 좀 있다. 더 최근 자료가 있을까 해서 인터넷을 찾아보니 “유학, 새로운 인간학이 될 수 있을까?”(2015년)라는 제목의 강연 영상을 볼...
진달래
2023.11.13 | 조회 246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박세당의 장자 읽기 『남화경주해산보』   지난 번 <읽고쓰기 1234>에서 나는, 절대자유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도가철학의 관점에서 장자철학을 살펴보았다. 시즌4에서는 조선 유학자 박세당의 “장자 읽기”를 통해 유학자들이 어떻게 금서였던 “장자”에 접근하고 해석했는지 “장자의 도”를 중심으로 도가철학과 비교해보고자 한다.   박세당은 누구인가   내가 박세당에 대해 관심을 둔 이유는 요즘 한창 재미있게 보는 사극 <연인> 때문이다. 남우조연으로 나오는 남연준은 박세당과 비슷한 시기의 인물로서 “수찬”이라는 관직을 수행했다는 점까지 닮아있다. 그러나 이후 이 둘의 행보는 전혀 달랐다. 수찬은 경연을 담당하고 왕을 자문하는 역할과 더불어, 국가의 모든 편찬을 주관한다. 특히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서 편찬에도 참여한다. 드라마에서 남연준은 명과 주자학의 신봉자이자 의리와 지조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의 대표주자이다. 그러하기에 병자호란 당시 사절단(서장관)으로 청에 문안인사를 다녀오라는 인조의 명을 거절하고 투옥된다. 그렇다면 박세당은 어떠한가. 그는 32세에 등용되어 8년 여 간 관직생활을 지냈으며, 이때 수찬에 오르기도 한 인물이다. 그러나 당쟁으로 자식을 잃자 수락산 자락으로 들어가 수차례 벼슬을 내리는 왕명에도 불구하고 은둔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때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상서』 등 각각의 해설서 『사변록』을 지었으며, 특히 『도덕경』과 『장자』의 해설서를 둘 다 지은 최초의 조선시대 유학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인조반정의 공신이었고, 그의 할아버지는 정2품을 지냈다. 비록 그는 이른 나이(4세)에 아버지를 잃고 가세가 기울어 등용이 늦어졌으나 대대로 명망가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다. 은둔생활 도중 그가 (1668년 혹은 1669년이라는 기록도 있다) 한 달여간 서장관의 자격으로 청의 수도...
박세당의 장자 읽기 『남화경주해산보』   지난 번 <읽고쓰기 1234>에서 나는, 절대자유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도가철학의 관점에서 장자철학을 살펴보았다. 시즌4에서는 조선 유학자 박세당의 “장자 읽기”를 통해 유학자들이 어떻게 금서였던 “장자”에 접근하고 해석했는지 “장자의 도”를 중심으로 도가철학과 비교해보고자 한다.   박세당은 누구인가   내가 박세당에 대해 관심을 둔 이유는 요즘 한창 재미있게 보는 사극 <연인> 때문이다. 남우조연으로 나오는 남연준은 박세당과 비슷한 시기의 인물로서 “수찬”이라는 관직을 수행했다는 점까지 닮아있다. 그러나 이후 이 둘의 행보는 전혀 달랐다. 수찬은 경연을 담당하고 왕을 자문하는 역할과 더불어, 국가의 모든 편찬을 주관한다. 특히 <조선왕조실록>과 같은 역사서 편찬에도 참여한다. 드라마에서 남연준은 명과 주자학의 신봉자이자 의리와 지조를 중시하는 선비정신의 대표주자이다. 그러하기에 병자호란 당시 사절단(서장관)으로 청에 문안인사를 다녀오라는 인조의 명을 거절하고 투옥된다. 그렇다면 박세당은 어떠한가. 그는 32세에 등용되어 8년 여 간 관직생활을 지냈으며, 이때 수찬에 오르기도 한 인물이다. 그러나 당쟁으로 자식을 잃자 수락산 자락으로 들어가 수차례 벼슬을 내리는 왕명에도 불구하고 은둔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때 『대학』, 『중용』, 『논어』, 『맹자』, 『상서』 등 각각의 해설서 『사변록』을 지었으며, 특히 『도덕경』과 『장자』의 해설서를 둘 다 지은 최초의 조선시대 유학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인조반정의 공신이었고, 그의 할아버지는 정2품을 지냈다. 비록 그는 이른 나이(4세)에 아버지를 잃고 가세가 기울어 등용이 늦어졌으나 대대로 명망가의 자손이라고 할 수 있다. 은둔생활 도중 그가 (1668년 혹은 1669년이라는 기록도 있다) 한 달여간 서장관의 자격으로 청의 수도...
여울아
2023.11.13 | 조회 202
봄날의 주역이야기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다섯 달 동안 주역공부를 같이 했던 친구들과 발표회를 치렀다. 준비하면서 이번엔 좀 색다른 방식으로 해보자고 뜻을 모았다. 에세이를 발표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많은 친구들이 퍼포먼스나 전시같은 형식을 택했다. 나도 몇 달 전부터 배우기 시작한 민화를 이용해 주역을 표현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8개의 소성괘를 민화기법으로 그려보기로 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민화로 주역을 표현한 작품들이 있기는 있었다. 그러나 거의 모든 민화 작품이 음양오행을 중심으로 그린 그림이었다. 태극모양이거나 3획의 검은색 막대그림은 주역을 아는 사람에게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그러니까 8개의 소성괘가 가진 물상을 그린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참고할만한 것이 없다는 아쉬움과 함께 나야말로 소성괘의 물상을 제대로 그려보리라는 욕심도 생겼다.   하늘, 땅, 연못, 번개(우레), 불, 물, 산, 바람의 물상을 가진 소성괘를 가시적으로 표현해내는 것은 만만하지 않았다. 하늘을 그냥 파랗게, 땅을 그냥 황토색으로 칠하는 것은 소성괘를 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산, 번개 등을 형상화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려웠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어려웠던 것은 ‘바람’을 뜻하는 손괘(巽卦)를 형상화하는 일이었다. 바람은 기체의 움직임 자체이니 육안으로 볼 수는 없고, 불거나 멈추는 데 일정한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 발생과 소멸 또한 예측할 수 없다. 형체없는 자연물의 형상화 때문에 머리가 아플 정도로 고민하다가 마침 손괘에 배속된 자연물에 나무도 있다는 것에 착안해서 ‘나무에 이는 바람’을 그리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 과정에서 나는 바람을 다시 보게 됐다. 바람은 형체가 없지만,...
봄날
2023.11.12 | 조회 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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