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레의 인문약방 / 2회] 자기도 아프면서 누굴 치료한다고

둥글레
2019-06-14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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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의 인문약방 / 2회]


자기도 아프면서 누굴 치료한다고

프로필 01.jpg

글 : 둥글레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천식이라는 아이러니

회사에 다닐 때 기침감기를 심하게 두 번 앓았다. 두 번 다 기침이 한 달가량 지속되는 감기였다. 기침을 해대면서도 난 병원에 간다거나 약을 먹는다거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몸에 이상이 왔는데도 그것을 무시했다. ‘더 심해지면 약 먹지 뭐라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던 시기다. 증상이 심해지자 폐렴인가 싶어서 내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렴은 아니었고 기관지 알레르기였다. 다른 말로 하면 알레르기성 천식이다.

그때는 그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종합병원 근무할 때 난 호흡기약물 상담서비스(Respiratory Service)를 전문적으로 하는 약사로서 폐질환 환자들에게 흡입제 사용법을 지도했다. 그런데 내가 천식에 걸리다. 천식 치료제의 부작용을 너무 잘 알기에 처음부터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단식과 채식 요법으로 몸을 정상화시키자 마음먹었다.

생애 최초의 단식을 3일 동안 했다. 그리고 동물권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내 몸을 위해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등산도 하고 건강 관련 책도 열심히 읽었다. 비쌌지만 유기농으로 먹거리를 채우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빵에 우유가 들어있어서 책을 보고 직접 비건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외국 고객들과 식사 자리에서도 양해를 구하고 고기를 먹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채식을 했다. 점점 천식 증상이 호전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렇지! 나는 단식과 채식의 전도사가 되었다. 그 성취감에 젖어 몇 달이 지났을 때 모든 것은 원래대로 돌아왔다. 다시 기침이 시작된 것이다.

알레르기성 천식은 사람에 따라 특정한 알레르기 유발 원인(알러젠)이 있다. 나의 경우는 집먼지 진드기. 하지만 공통적으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것이 바로 차가운 공기와 강도 있는 운동이다. 겨울바람이 불자 점점 내 천식은 심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당시 가족의 죽음으로 몸을 돌볼 겨를도 없었다. 결국 난 폐활량이 25% 이하까지 내려가서 숨이 잘 안 쉬어지는 지경에 이르자 병원에 제 발로 갈 수밖에 없었다.

난 내가 이 정도로 나를 방치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더욱이 약사이면서도 이 지경이 된 것에 자괴감을 느꼈다. 스스로 창피함에 약사라는 것은 철저히 숨기고 치료를 받았다. 내가 피하고 싶었던 스테로이드 약물과 기관지 확장제는 드라마틱하게 천식 증상을 개선했다. 살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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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화가 만들어낸 신화와 맹목

폐질환 환자들에게 상담서비스를 했던 약사가, 천식에 대한 임상적 지식이 충분히 있는 내가 천식에 걸린 것이 정말 아이러니한 일일까? 질병에 대한 지식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면 의료 전문직들은 모두 장수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조금만 둘러봐도 알 수 있다. 약사나 의사인데 큰 병에 걸려 투병생활을 하는 경우도 꽤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의료 전문직들은 건강할 것이라고 덮어놓고 생각한다. 그만큼 현대 의료에 대한 믿음이 높은 것이다.

하지만 임상 공부를 하면서 질병에 대해 100% 이것이 원인이다 라고 확신하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원인을 모르는 경우, ‘특발성(特發性, Idiopathic)또는 본태성(本態性, Essential)이라는 말을 질병명 앞에 붙인다. ‘고유의 체질적 영향또는 저절도 생기는 성질이라는 뜻으로, 두 단어 모두 병의 원인을 모른다는 말이다. 고혈압의 대부분이 본태성 고혈압인 것처럼 의외로 질병의 원인에 대해 현대 의학이 밝히지 못한 부분이 많다. 최근엔 특정 질환을 발병시키는 유전자를 찾아내기도 했지만 그 또한 그 유전자의 발현 여부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가능성으로만 얘기될 수 있다.

물론 일부 감염성 질환의 경우는 백신과 항생제로 사망률을 낮췄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항생제 남용으로 인해 항생제에 내성이 있는 병원균들은 계속해서 생겨나고 있다. 이반 일리치가 병원이 병을 만든다(미토, 2004)에서 말한 내용에 따르면, 결핵, 콜레라, 이질, 장티푸스 등 많은 감염성 질환은 그 병의 원인균을 알아내고 거기에 따른 항생 요법이 발견되기 이전에 발병률이 감소했다. 이 질병들이 감소된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영양의 개선으로 사람들의 저항력이 높아졌기 때문으로 여겨진다. 사실 일반인들에게 권장되는 질병 예방법이라는 것도 외출 후 손 씻기 등 위생 강화, 각종 영양제 먹기, 운동하기 그리고 건강검진이라는 범위를 벗어나기 힘들다. 어떤 질병의 특정 원인에 따르는 조처로 보긴 어렵다.

의료의 진보가 질병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만들어진 신화일지도 모른다. 이반 일리치는 이런 신화가 만들어진 이유는 의료가 전문직으로 소수 사람들에게 독점되어 사람들에게서 스스로를 돌볼 기회를 빼앗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병은 비정상이라는 생각이 우리 속에 똬리를 틀고 있다. 그러한 강박이 만사 제치고 우리를 병원으로 달려가게 한다. 아프면 치료를 위해 병원에 가고, 아프지 않으면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을 간다. 사회는 거대한 병원이 되었다. 의료화 된 사회는 질병에 처한 우리를 채근하며 미리 검진하지 못했다는, 건강을 챙기지 못했다는 자책과 후회로 몰고 간다. 그리고 우리는 의사의 지시를 따르는 아바타가 된다.

내게 천식은 아이러니에 비정상이었다. 천식이라는 진단명이 나오자 난 정상으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밖엔 없었다. 단식과 채식으로 내 체질을 바꾸려 노력했고, 집안에 공기 청정기 등 온갖 렌털 제품들을 들였다. 바쁜 회사 스케줄과 그로 인해 치인 일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단지 내가 알고 있던 알량한 의학적 지식으로 좀 더 몸에 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치료를 빨리 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천식은 사라져야 할 악이었고 그것이 내 삶에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는 전혀 생각해보지 않은 채 말이다.

    

 

생명에는 병이 포함되어 있다

병은 비정상이고 악이라는 이분법 속에 갇혀 있다 보면 악의 뿌리를 뽑기 위해 의학(이라는 과학)은 발달해야만 한다는 목적론에 빠진다. ‘무엇을 위해또는 '누군가를 위해라는 말을 앞세워 그 외 많은 것들이 악으로 낙인찍히고 배제되거나 제거된다. 이러한 소외를 만들어 내는 이분법적 생각의 틀을 벗어날 수 있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해보자. 도대체 사람에게 은 왜 생길까?라고.

먼저 진화론적 관점에서 살펴보자. 진화는 생존이나 번식에 유리한 형질이 남아서 후대에 유전되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를 어려운 말로 자연선택이라고 한다. 자연선택에 따르면 진화가 거듭될수록 질병에 취약한 개체는 도태되고 건강한 개체가 살아남는다. 또는 개체들의 질병에 대한 방어 능력이 강해질 것이다. 따라서 병의 유전은 진화론적 상식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생존을 위협하는 질병이 오히려 생존에 유리한 형질로 선택되었다는 모순이 생긴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샤론 모알렘은 아파야 산다(김영사, 2010)라는 저서에서 유전되는 병들 중에 일부는 개체의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진화적 선택이었음을 밝히고 있다. 곧 장기적으로는 그 질병 때문에 죽겠지만 당장 살아남아서 후손을 남기기 위함이었던 것. 여기서는 소아 당뇨병(1형 당뇨병)을 예로 들어보자. 소아 당뇨병은 보통 성인 당뇨병(2형 당뇨병)과 다르게 췌장이 인슐린 분비를 잘 못하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인슐린을 투약해야 한다. 그런데 북유럽 후손들의 소아 당뇨병 발병률이 월등히 높고 따뜻한 지역인 순수 아프리카, 아시아, 히스패닉 계열 후손들에게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샤롬 모알렘이 찾은 진화론적 가설은 이렇다. 마지막 빙하기 이후 북유럽의 기온이 올라가자 사람들이 이곳으로 이주했고 인구가 늘어났다. 그런데 10여 년 만에 갑자기 30도 이상 기온이 급강하하자 추위에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는데, 이때 인슐린의 역할을 떨어뜨려 혈당을 높인 사람들이 살아남았다는 가설이다. 당분이 부동액 역할을 해서 조직이 추위에 얼어 손상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실제로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다른 계절에 비해 겨울철에 사람들의 혈당 수치가 높아진다.

이러한 유전병들의 기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선조들은 아팠기 때문에 살아남을 수 있었고 지금의 후손들이 태어날 수 있었다. 이렇듯 진화는 현재 환경에서 어떻게든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적응 또는 타협의 과정이다. 그래서 완벽하지 않다. 완벽하지 않은 진화의 결과인 유전자들은 또한 현재의 환경이라는 변수에 따라 어떤 식으로 발현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랜 진화의 여정 속에 있는 우리의 신체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 또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 아플 수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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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의학의 관점은 어떨까? 동양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인간이 원래부터 아픔을 품고 있는 존재라고 여기고 있었다. 동의보감에서 설명하고 있는 생명의 탄생과정을 보자. 처음에 기운이 생기고 난 뒤에 형체가 갖춰진다. 그 형체에 어떤 질적인 특이점이 나타나는 단계에서 라고 하는 병증이 생기는데 이때 생명이 완성된다. 즉 생명은 병과 함께 탄생한다. ‘미병未病으로 아직 발현되지 않은 병이다. 따라서 발현되었건 잠복되어 있건 병은 누구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학과 함께 음양오행론을 따르는 명리학으로도 비슷한 설명이 가능하다. 모든 인간은 음양이 조화롭게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치우쳐서 태어난다. 그래서 완벽할 수 없다. 역으로 말해, 음양이 조화롭다면 아예 생명 자체가 탄생할 수 없다. 그러니 조화가 깨진 상태인 아픔은 생명에게 필연이다.

서양의 진화론으로도 동양의 의학과 역학으로도 생명에 병이 포함되어 있다는 같은 인식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놀랍다. 천식이라는 아픔은 내가 살아온 삶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었구나! 나는 질병의 필연성을 알고 난 후 마음이 편해졌다. 더 이상 내게 천식은 아이러니도 비정상도 아니게 된 것이다. 더 이상 약국을 오는 환자들도 비정상인들이 아니고 약사가 아픈 것이 수치가 되지 않는다. 이제 내게 남은 문제는 이 아픔을 어떻게 겪을 것인가? 어떻게 천식과 함께 살아가야 할 것인가?이다.

    

 

댓글 4
  • 2019-06-14 09:21

    나는 <양생세미나>를 하며 내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질병에 대해 관심이 생겼다. 신장-자궁-방광으로 이어지는 내 질병의 이력이 말해주는 게 뭔지 궁금해지고 알고 싶어졌다. 이 호기심에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욕망은 2순위로 밀려났다. 엄청난 전환이다^^ 이게 언제부터 왜 내 몸에 살게 됐을까? 왜 몰랐을까? 봉준호영화만큼 미스터리하다. 매주 금욜 3시 양생세미나에서 몸의 미스터리를 함께 풀어보실 분을 찾습니다! 관심 있는 분들 둥글레 반장에게 연락주세요~

  • 2019-06-15 18:56

    원래 많이 아파 본 사람들이 더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갖는 것 같네요. 이 글을 읽으니...천식을 앓던 체 게바라가 생각나요. ^^ 병과 함께 잘 살면... 삶의 지혜와 용기를 배울 수 있겠군요~

  • 2019-06-17 09:23

    정말 그렇군요. 진화론적 가설로도 병이 생명의 일부라는 해석이 나오는군요..그런데 문득 후손을 남기는게 개체의 본능이었을까 하는 의심이..ㅋㅋ 

    어쨋든 아프면 산다, 아프지 않으면 산다가 아니라 아파야산다라는 말이 주는 뜻이 더 와닿아요^^

  • 2019-06-21 22:41

    문득 그 생각이 나네요

    거시 경제학 첫 시간에 교수님이 그러셨죠. 경제학을 공부한다고 시장을 잘 안다고 생각하면 곤란하다고. 자기는 경제학 교수니까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며 주식을 엄청 했는데 전부 날렸다고. 처가 집 재산까지도...ㅋㅋ..

    또 그런 생각도 들어요

    저는 아플 때마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이 공포심과 싸우는 일이네요. 아프다는 것 자체로 겁을 너무 많이 줘서, 괴기하고 끔찍해보일 정도이니까요. 차라리 아픔을 들뢰즈의 포착불가능한 괴물로, 그러니까 살아있음을 자각하게 하는 괴물로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을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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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이 돌아왔다 12회] 『국가』의 ‘엔딩 요정’은 BTS -『국가』 10권     문탁에서 공부하고 생활한 지 어느새 9년째다. 시간은 정말 자~알 간다. 정신없이 후딱 지나갔다 세미나에서 오고간 말들을 모아서 ‘10주년 자축이벤트’를 준비중이다. 거기엔 분명 당신의 생각도 단팥빵의 앙꼬처럼 들어있다는 사실을 이 연재를 통해 확인해보시라          글 :  새 털   문탁샘도 아닌데 문탁에 왔더니 ‘쪼는’ 인간으로 살고 있다 요즘 먹고 사는 시름에 젖어 ‘쪼는 각’이 좀 둔탁해졌다 예리해져서 돌아갈 그날을 꿈꾸며 옥수수수염차를 장복하고 있다       1. 영혼, 뷰티인사이드 (beauty inside) 『국가』10권에서 우리는 ‘이데아’ ‘이상국가’와 함께 플라톤의 주요개념 가운데 하나인 ‘영혼 불멸’을 만나게 된다. 아킬레우스, 오뒷세우스, 이아손, 테세우스, 헤라클레스 등 그리스의 영웅들은 전쟁과 괴물과 맞서 싸우는 데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 그리고 명예를 얻어 오늘날까지 신화와 전설로 살아남는 불멸의 존재가 되었다. 명예와 불멸은 그리스 사람들에게 표준이 되는 생활양식의 전범(典範)이었다. 이 말은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플라톤 철학의 혁신은 ‘이름’을 ‘영혼’으로 교체했다는 점이다. 플라톤의 도식에 따르면 ‘사람은 죽어도 영혼은 남는다’. 플라톤은 가시적이고 가변적인 감각의 세계와 비가시적이고 불변적인 지성의 세계로 이분법적 인식론을 체계화했던 공식대로, 인간의 삶도 가시적이고 파괴적인 육체와 비가시적이고 불변하는 영혼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한다. 그리고 변덕스러운 감각세계에 휘둘릴 것이 아니라 불변하는 지성의 세계를 알고자 힘써야 하는 것과 같이, 언젠가는 파괴되는 육체를 보살피는 삶이 아니라 불변하는 영혼을 돌보는 삶이 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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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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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버기
2019.07.04 | 조회 535
지난 연재 읽기 사기-인생극장
[사기, 인생극장 / 2회]    전전긍긍(戰戰兢兢)에도 ‘급’이 있다       글 : 기린    ______   『사기』를 읽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믿음으로 한 편, 한 편 상영하는 인간극장! 막이 올랐다.              동양 고전의 원문을 읽다보면 내가 알고 있던 뜻과는 다른 사자성어를 만나게 되곤 한다. ‘전전긍긍’도 그 중 하나다. 이 사자성어는 바라지 않는 일이 자신에게 닥칠까 조바심 내는 모습을 표현할 때 쓴다. 그러다보니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안절부절 못한다는 부정의 의미로 더 자주 쓰였다. 하지만 원문에서 전전긍긍(戰戰兢兢)은 전쟁(戰)에 나아갔을 때 두려워하는(兢) 그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라는 의미였다. 전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다. 살아남기 위한 마음가짐. 그렇다면 전전긍긍은 두려운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늘 대비하는 태도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무엇을 두려워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르기도 한다. 제대로 전전긍긍하는 삶, 무엇이 필요할까?       고난에서 배우지 못한 전전긍긍     염파는 인상여가 자신보다 윗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울화통이 터져서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     -나는 조(趙)나라 장수로서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웠다. 세 치 혀밖에 놀릴 줄 모르는 인상여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거늘! 내 그 자를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결판을 낼 것이다. 인상여는 그런 염파를 피해 다녔고 부하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인상여가 말했다.   -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진(秦)나라 소왕 앞에서 위세에...
[사기, 인생극장 / 2회]    전전긍긍(戰戰兢兢)에도 ‘급’이 있다       글 : 기린    ______   『사기』를 읽었다. 모든 인간에게는 자기만의 ‘드라마’가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 믿음으로 한 편, 한 편 상영하는 인간극장! 막이 올랐다.              동양 고전의 원문을 읽다보면 내가 알고 있던 뜻과는 다른 사자성어를 만나게 되곤 한다. ‘전전긍긍’도 그 중 하나다. 이 사자성어는 바라지 않는 일이 자신에게 닥칠까 조바심 내는 모습을 표현할 때 쓴다. 그러다보니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안절부절 못한다는 부정의 의미로 더 자주 쓰였다. 하지만 원문에서 전전긍긍(戰戰兢兢)은 전쟁(戰)에 나아갔을 때 두려워하는(兢) 그 마음으로 매사에 임하라는 의미였다. 전쟁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죽음이다. 살아남기 위한 마음가짐. 그렇다면 전전긍긍은 두려운 상황에 이르지 않도록 늘 대비하는 태도이기도 한 것이다. 다만 무엇을 두려워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에 이르기도 한다. 제대로 전전긍긍하는 삶, 무엇이 필요할까?       고난에서 배우지 못한 전전긍긍     염파는 인상여가 자신보다 윗자리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울화통이 터져서 사람들에게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     -나는 조(趙)나라 장수로서 전쟁에 나가 큰 공을 세웠다. 세 치 혀밖에 놀릴 줄 모르는 인상여 따위와는 감히 비교도 할 수 없거늘! 내 그 자를 만나기만 하면 반드시 결판을 낼 것이다. 인상여는 그런 염파를 피해 다녔고 부하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인상여가 말했다.   -나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진(秦)나라 소왕 앞에서 위세에...
기린
2019.06.21 | 조회 471
지난 연재 읽기 둥글레의 인문약방
[둥글레의 인문약방 / 2회] 자기도 아프면서 누굴 치료한다고 글 : 둥글레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천식이라는 아이러니 회사에 다닐 때 기침감기를 심하게 두 번 앓았다. 두 번 다 기침이 한 달가량 지속되는 감기였다. 기침을 해대면서도 난 병원에 간다거나 약을 먹는다거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몸에 이상이 왔는데도 그것을 무시했다. ‘더 심해지면 약 먹지 뭐’라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던 시기다. 증상이 심해지자 폐렴인가 싶어서 내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렴은 아니었고 기관지 알레르기였다. 다른 말로 하면 알레르기성 천식이다. 그때는 그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종합병원 근무할 때 난 호흡기약물 상담서비스(Respiratory Service)를 전문적으로 하는 약사로서 폐질환 환자들에게 흡입제 사용법을 지도했다. 그런데 내가 천식에 걸리다……. 천식 치료제의 부작용을 너무 잘 알기에 처음부터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단식과 채식 요법으로 몸을 정상화시키자 마음먹었다. 생애 최초의 단식을 3일 동안 했다. 그리고 동물권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내 몸을 위해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등산도 하고 건강 관련 책도 열심히 읽었다. 비쌌지만 유기농으로 먹거리를 채우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빵에 우유가 들어있어서 책을 보고 직접 비건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외국 고객들과 식사 자리에서도 양해를 구하고 고기를 먹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채식을 했다....
[둥글레의 인문약방 / 2회] 자기도 아프면서 누굴 치료한다고 글 : 둥글레 문탁에 와서 생전 처음으로 철학과 문학을 공부했다. 그리고 엄청 흔들렸다. 내 흔들림과 함께 해준 친구들이 있다. 그 친구들과 약방을 차려볼까 한다. 약학과 인문의역학이 버무려진 ‘인문약방’을!    천식이라는 아이러니 회사에 다닐 때 기침감기를 심하게 두 번 앓았다. 두 번 다 기침이 한 달가량 지속되는 감기였다. 기침을 해대면서도 난 병원에 간다거나 약을 먹는다거나 등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몸에 이상이 왔는데도 그것을 무시했다. ‘더 심해지면 약 먹지 뭐’라는 생각도 있었고, 무엇보다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었던 시기다. 증상이 심해지자 폐렴인가 싶어서 내과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는데 폐렴은 아니었고 기관지 알레르기였다. 다른 말로 하면 알레르기성 천식이다. 그때는 그 상황이 아이러니하다고 생각했다. 종합병원 근무할 때 난 호흡기약물 상담서비스(Respiratory Service)를 전문적으로 하는 약사로서 폐질환 환자들에게 흡입제 사용법을 지도했다. 그런데 내가 천식에 걸리다……. 천식 치료제의 부작용을 너무 잘 알기에 처음부터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예전부터 관심이 있던 단식과 채식 요법으로 몸을 정상화시키자 마음먹었다. 생애 최초의 단식을 3일 동안 했다. 그리고 동물권과는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내 몸을 위해 채식을 하기 시작했다. 등산도 하고 건강 관련 책도 열심히 읽었다. 비쌌지만 유기농으로 먹거리를 채우려고 노력했다. 대부분의 빵에 우유가 들어있어서 책을 보고 직접 비건 빵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외국 고객들과 식사 자리에서도 양해를 구하고 고기를 먹지 않을 정도로 철저히 채식을 했다....
둥글레
2019.06.14 | 조회 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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