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뚜벅 마을경제학 개론 #7] 무진장의 실험: 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뚜버기
2020-04-23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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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청년들도 안정된 일자기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되어 가고 있었다. 나 역시 남편은 실직하고 아들 녀석은 취직할 가능성이 보이질 않으니 이대로 괜찮으려나, 조바심을 떨치기 어려워졌다. 작지만 선물로 구성되는 공동체 경제를 구축하고 그 원리를 몸으로 체득하면서 시장경제의 균열이 되고자 했던 응집력이 불어닥치는 태풍에 다 날라가 버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던 차에 2016년 가을 직언직설로 때로는 사이다를, 때로는 당혹스러움을 선사하던 한 친구에게 심각한 경제적 문제가 생겼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급한 불이라도 끄려면 꽤 목돈이 필요할 텐데 어찌하나. 우리에게 핵사이다를 날려줄 친구마저 돈벌이 때문에 문탁을 떠나는 걸 또 봐야 하나. 걱정스러웠다. 문탁에선 그동안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알게 모르게 돈을 융통해주면서 넘긴 경우가 종종 있었다. “친구 사이에 돈거래 하지마라, 돈 잃고 친구 잃는다”는 말이 있지만 문탁에서 돈 때문에 친구 사이가 금 갔다는 얘긴 듣지 못했다. 아마 은행 빚까지 내면서 급전 구하러 다니는 걸 보느니, 내 돈 좀 손해보는 게 낫다는 마음이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번엔 좀 달랐다. 알음알음 변통하는 방식이 아니라 다른 조직화된 방법을 만들고 싶어진 것이다. 공동체 돈에서 맞춘 감각으로 개인적인 돈 문제도 함께 해법을 찾아보자는 쪽으로 마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돈에 대한 또다른 배움

 

그 움직임의 배경엔 당시 많은 학인들이 함께 공부했던 맑스의 『경제학 철학초고』와 그 해 봄 방문했던 홍성 마을공동체가 있었다. 1844년 청년 맑스는 “왜 자본주의 아래에서 인간의 소외현상이 발생하는가”라는 문제를 다룬다. 그는 인간 소외는 결국 사적소유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보았다. 사적 소유 관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인간과 인간의 진정한 만남이 가능하며, 인간의 활동이 화폐를 소유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사회적 삶을 향유하기 위한 목적을 추구할 때 비로소 소외는 극복된다는 맑스의 주장은 동학들의 머릿속에 “사적 소유를 넘어서자”는 강력한 메시지를 남겼었다.

 

또 다른 계기가 된 홍성군 홍동마을에서 우리가 만난 건 지역 공동체금융조직인 ‘도토리회’였다. 홍성 도토리회는 “지역주민들의 경제적 상호부조를 목적으로 회원들의 공동출자와 곗돈납입을 통해 협동기금을 만들고, 그 자금으로 공익적인 마을사업이나 생활에 필요한 급전을 무이자로 융자한다”(홍성도토리회 창립총회 소식글에서)는 취지로 2015년 창립되었다. 도토리회의 지향 속에는 제도권 금융에 대한 문제의식이 담겨있다. 은행에 돈을 맡기면 그 돈이 어디로 흘러가 어떻게 사용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큰 이윤을 기대하며 투자한 파생상품이 흘러흘러 무기산업의 자본이 될지도 모르며 어떤 이의 피눈물의 댓가로 얻어낸 고리대출의 결과물일지도 모른다. 도토리회는 금융안전망 역할을 했던 계(栔)의 전통을 되살려서 제도금융의 문제를 넘어서고자 했다. 성미산에도 비슷한 역할을 하는 대동계를 만들어 회원들의 경제적 협력을 도모하고 있었다. 이외에도 많은 공동체들이 사적인 자금을 순환시키는 장치을 가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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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은행에 맡기지 않고 생활자금이나 창업자금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혹은 의미있는 활동을 꿈꾸는 지역단체에 빌려준다면 화폐로 환산할 수 없는 더 소중한 가치를 얻을 수 있다. 그들이 가꾼 가치의 결실은 결국 나에게로 되돌아올 테니 말이다. 마을사람들이 여유자금을 모아 운용하면 마을에선 다양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야말로 살맛나는 동네를 만들 수 있다. 물론 그런 활동은 주민들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 토대가 되는 마을 공동체가 든든하게 제 역할을 할 때 가능한 일이지만, 동시에 그런 활동을 통해 사람들이 관계의 그물망을 이루어 갈 때 때 비로소 마을이 만들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그 과정의 끝은 결국 사적 소유의 담장이 허물어진 세상 아닐까.

 

 

대출이 아니라 출금

 

우리도 도토리회같은 조직을 만들어보자고 삼삼오오 모여 나눈 이야기가 퍼져나가 동참하겠다고 모인 사람이 십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처음 얘기가 나오고 두어달 만에 오십만원 이상의 가입비를 내고 열 두명의 창립멤버가 모였다. 가입비가 부담인 경우 다른 회원이 대신 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종잣돈 이천만원으로 일단 출발했다. 이후에 이름도 정했다. 써도 써도 잔고가 줄어들지 않았으면 하는 소망을 담아 <마르지 않는 창고, 무진장>이 탄생했다.

 

무진장에서 자금을 운용하는 방식은 간단하다. 돈이 들어가고 나가는 하나의 통장이 있고 회계가 이를 관리한다. 무진장의 돈을 써야 할 필요가 생기면 자금의 사용처를 회원들과 간략히 공유하고 회계에게 출금을 요청한다. 그걸로 끝이다. 수입이 줄어들어서 모자라는 생활비에 도움을 받고자, 갑자기 고장나 버린 오래된 자동차를 수리하기 위해 무진장이 이용되었다. 나도 딸래미 자취방 보증금을 마련해야 했을 때 무진장에서 일단 돈을 받아서 계약을 할 수 있었다. 출금이 있다면 반대쪽엔 입금이 있다. 입금 역시 각자의 형편에 따라 각자의 방식으로 입금을 하면 된다. 그리고 누가 입금했는지, 통장에 잔고가 얼마나 되는지는 회계의 보고를 통해서라든가 인터넷 검색으로 언제나 확인이 가능하다.

 

대부분의 회원들은 무진장이 무이자 대출과 상환이라는 방식으로 돈을 운영할 걸로 예상했다. 나 역시 그 방법말고 다른 방식은 생각도 안 해봤다. 그러나 비록 무이자라도 대출과 상환이라고 하면 상환에 대한 약속을 정해야 하는데 그 계획조차 세우기 힘든 상황이라면 어떻할까? 차라리 돈이 필요하면 돈을 빼서 쓰고 돈에 여유가 생기면 언제든지 돈을 채워 넣는 방식이 더 명실상부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공감이 가긴 하는 이야기지만 그랬다가 금새 통장잔고가 바닥날 수 있지 않을까 우려하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또 나는 아끼고 아껴서 무진장에 입금을 하는데 누구는 무진장 돈으로 값비싼 자동차를 사겠다고 하면 그 출금에 흔쾌히 동의할 수 있냐는 얘기도 나왔다. 어쩌면 여기서 서로의 민낯을 보고 얼굴 붉히며 갈라서게 될 수도 있다. 잔잔한 인문학공동체에 파문을 일으키는 돌팔매질이 될 지도 모른다. 굳이 그런 모험을 해야 할까. 의견차이를 좁히기 위한 전체 모임이 육개월 정도 매월 진행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생면부지의 남이 아니고 그 집 숟가락젓가락이 몇 개인지까지 아는 관계라면 대출/상환이나 출금/입금이나 실제로는 크게 다르지 않게 작동할 것이다. 꼭 대출이라 명시하지 않아도 자금에 숨통이 트이고 나면 공동의 통장에 돈을 채워 넣어서 빚짐의 부담에서 벗어나려고 할 테니 말이다. 그런 윤리감각마저 함께 하지 못 했다면 그건 운영방식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는 데 다들 동의를 하게 되었다. 과연 마르지 않는 창고가 될 수 있을까 모두들 반신반의 했지만 입출금 방식으로 무진장은 출범하게 되었다.

 

마르지 않는 창고를 꿈꾸며

 

활동의 주요 내용이, 아직은 다루기 부담스러운 돈이다 보니 무진장은 가볍고 유연하기보다는 무겁고 보수적인 운영방식을 택하게 되었다. 운영규정을 만들었고 중요한 내용은 회원 전체가 참석하는 총회에게 결정하기로 했다. 매월 만나 공유한 내용을 자누리님이 잘 다듬어 운영규정에 실었다.

 

“...무진장의 운영은 상호부조와 재분배의 원리로 시작한다. 우리는 상호부조의 원리를 서로 돕는 일뿐만 아니라 각자의 소유의식과 욕구에 질문을 던지는 일로 이해한다. 따라서 무진장은 서로의 삶을 돌아보는 일을 상호부조의 가장 중요한 작용으로 본다. 우리는 재분배의 원리를 공동창고 내에서 사적 소유의 경계를 허무는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출자자의 소유권과 그에 기반한 대출의 개념을 배제한다. 무진장을 하나의 통장처럼 사용하여 회원들의 긴급한 생활자금에 운용한다. 회원들은 필요에 따라 찾아 쓸 수 있으며 마음껏 채워놓을 수 있다. 출금과 입금, 어떤 경우든 무진장의 규모와 흐름을 살펴야 한다. 무진장은 회원들의 능력에 따라 변형을 거듭할 것이다. 우리가 공유하는 법을 배워서 품격있는 삶을 살수록 무진장은 더 많은 용법을 갖게 될 것이다. 궁극적으로 무진장은 자본주의적 사적소유를 넘어서는 것을 지향한다. (무진장 운영규정 전문)

 

2017년 4월 창립총회를 열었을 때에는 스물네명의 회원이 모였다. 그 사이에 이미 총 삼천만원의 입금활동과 칠백만원의 출금활동이 발생했다. 여기엔 좋은 취지를 응원하며 멀리 빛내님과 가까이의 마로니님이 낸 특별회비가 포함되었다. 하지만 출금도 서너명에 한정되어 있었고 가입 이후 그저 관망하는 회원들이 점점 늘고 있었다. 주요활동인 입금도 출금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뭘까. 솔직히 나는 그 상황이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뜻을 함께 하기로 하고 무진장을 만들었는데 왜 다들 주춤하고 있는 걸까.

 

돌이켜보니 무진장이 추구하는 상호부조와 재분배라는 두 원리 사이에서 회원들은 미묘하게 어긋나고 있었다. 누구는 형편이 어려운 친구에게 도움이 되고 싶어 가입했을 뿐이고 또 누구는 사적경제와 공동체 경제를 섞는 실험에 관심이 있어 가입했다. 친구 따라 강남 온 이들도 있었다. 제각각인 동기들이 만나니 의견차이가 안 날래야 안 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매달 스물 남짓이 함께 모여 논의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떤 회원들은 목소리 큰 회원들의 기에 눌려 자기 의견을 말하기가 눈치보인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상상을 현실화하는 새로운 실험이 되기는커녕 재미없고 의무감만 남은 활동으로 전락해버린 느낌이었다.

 

 

마중물에서 조아까지

 

2018년 정초, 어떻게든 정체 상태에서 벗어나 보자고 과감한 결정을 내렸다. 문탁 강좌수강료를 모두 무진장에서 공동출금하기로 한 것이다. 꽤 목돈이 드는 강좌비를 무진장 돈으로 내고 조금씩 입금해서 채워가다보면 무진장이 몸에 익으리란 기대감이 있었다. 천만원 넘는 돈이 한꺼번에 빠져 나갔지만 기대처럼 활동이 활발해지진 않았다. 이후로 확 줄어든 잔고가 혹시 바닥나면 어쩌나 마음 졸이게 되었다는 점에선 어쨌든 더 마음을 쓰게 되었다.

 

그래도 우리는 계속해서 새로운 실험을 해나갔다. 하나는 나중에 ‘마중물’이라는 이름을 얻은 실험이고 다른 하나는 ‘조아’라고 불리게 된 실험이다. 마중물은 매월 일정액을 고정적으로 출금해서 생활에 보탬이 되도록 하는 제도이다. 첫해에는 한 명이, 나중엔 두 명, 세 명으로 늘려서 월 오십만원 정도씩 별도 출금요청없이 회계가 송금해준다. 마중물을 받았던 한 회원이 남긴 말이 지금도 기억에 남는다. 비록 그 돈으로 생활 전체가 해결되지는 않아도 “기획서니, 결과보고서니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주는 돈”이 있어서 든든했다는 것이다. 올해는 네 명의 회원이 마중물을 이용하고 있다. 마중물이 진짜 마중물이 되기엔 팍팍한 세상이지만 마음의 마중물정도는 되는 듯하다.

 

‘조아’는 무진장 역사상 가장 첨예한 논쟁 끝에 시작되었다. 무진장회원들이 문탁에서 쓰는 돈을 무진장통장에서 공동출금하는 제도다. 말 그대로 무진장을 공동지갑으로 이용하자는 취지다. 식권을 사거나 자율카페 찻값을 내거나 작업장 물건을 살 때 무진장으로 계산하겠다고 기록을 남기면 월말에 일괄적으로 회계가 지불을 한다. 문탁의 경제생활이라도 함께 섞어보자는 아이디어다. 통장잔고도 아슬아슬한데 굳이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까지 무진장 돈을 빼 쓸 필요가 있냐는 반대도 컸다. 하지만 넣는 사람과 빼는 사람이 분리되지 않는 공동지갑이라는 실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쪽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나는 공동지갑이 되면 입금도 늘 것 같아서 찬성하는 쪽에 섰다. 하지만 처음 생각했던 무진장의 모습이 아니라며 탈퇴하는 회원도 생겼다.

 

돈을 섞는다는 건 마음처럼 쉽지 않았다. 명분이 분명한 기금을 모으는 일에 일회성으로 참여하는 것과는 다른 여러가지가 끼어들었다. 그중 가장 큰 것은 가정경제와의 만남이었다. 남편과 무진장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한 회원의 토로에 물꼬터지듯 이야기들이 터져나왔다. 누구는 집에선 가족들이 눈치를 주고, 무진장에선 가정경제 울타리에 갇혀 있다고 탓하는 것 같아 힘들다고 했다. 자본주의의 최전선에서 남편이 벌어들인 돈을 무진장에 입금하는 것에 당당하던 회원도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에 입금이 고민되고 또 그런 자신의 모습이 찌질해보여서 차라리 무진장을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도 했다. 경제라는 부분에 있어서 사적인 영역의 울타리가 얼마나 단단한 것인지 절감하는 계기였다. 골치아픈 무진장에 적은 두고 있으나 이미 마음이 떠난 듯한 회원들도 여럿이다.

 

 

이번 총회엔 과연 전원출석이 가능할까 매번 염려하는 가운데 벌써 무진장 4년째다. 사적 소유의 담장을 허물기는커녕 그 견고함을 확실히 알게 해준 것이 무진장 활동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진장이 없었다면 훨씬 표면적인 관계에 머물렀으리라 생각한다. 각 가정의 사정이 얼마나 다른지 그 차이를 확인한 것에서 출발해서 조금씩 서로의 생활에 개입해 가고 있는 것 아닐까. 공부만 했더라면 이런 꼴 저런 꼴 안 보고 우아한 모습만 보며 살 수 있었을까. 아마 우리의 공부가 그렇게 놔두지 않았을 것 같다. 공부공동체로 만나 생활공동체가 되어가는 과정 중에 있는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지지리 궁상을 서로 보이면서 나가고 있다. 마음이 불편해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돌이킬 수 없는 공동체의 경험 속에 엮여 버렸기 때문에. 이제는 정념의 소용돌이 대신 지성적 생활공동체에 도달하는 내공을 쌓아가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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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뚜버기

나는 글 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 그런데 이번에 글을 쓰려고, 그것도 재미없는 경제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었다. 그건 ‘마을경제’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서 이다.

 

댓글 5
  • 2020-04-23 10:42

    "사적 소유의 담장을 허물기는커녕 그 견고함을 확실히 알게 해준 것이 무진장 활동이다."
    저도 동감합니다. 제가 무진장의 실험을 계속 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구요.
    글쓰는 게 하나도 재미없다는 뚜버기샘의 글은 읽는 사람은 재밌어요~ㅎㅎ

  • 2020-04-23 10:47

    무진장 활동을 비회원이 지켜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요? 간혹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요. 또 간혹 문탁의 소중한 실험에 거리를 두는 것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계속 생각거리를 던져주네요.

  • 2020-04-23 10:59

    무진장으로 공부와 돈과 생활이 뒤섞이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무진장이 없었다면
    공부 따로 생활 따로, 가정경제 따로 마을경제 따로가 눈에 잘 안 들어왔을 텐데
    무진장이 이걸 자꾸 생각해보게 하네요.

  • 2020-04-24 00:51

    저는 무진장이 있어서 가난하면서 도를 즐기는 '빈이락'과 부유하면서 예를 좋아하는 '부이호례자'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기회가 많아요^^ 그래서 좋아요^^

  • 2020-04-24 14:17

    무진장 실험의 중간정리 같은 느낌입니다.
    별 수가 없구나 체념의 마음이 들 때,
    '마중물', '조아' 라는 용법이 생기면서
    무진장에 대한 생각을 달리 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요.
    무진장이 마르지 않듯 그 용법도 마르지 않길 기도해 봅니다~ ^^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나는 길드다 사장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아무튼! 지금 난 길드다라는 ‘청년인문학스터트업’의 사장이다. 그런데 청년들의 배움과 밥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보겠다는 이 실험적 공동체 안에서, 유일하게 50대인 나는, 사장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나는 공식적이고 대외적인 길드다 활동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청년들은 이런 저런 자리에서 길드다를 소개할 때 대체로 나를 ‘제낀다’. 길드다 블로그나 인스타에서도 나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길드다에서의 사장은 일종의 명예직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나는 꽤 많은 일을 한다.        무엇보다 나는 길드다 조직 전체의 비전을 제시하거나 한 해의 사업계획을 짜는 일을 한다. 전형적인 CEO의 임무이다. (하지만 내가 제시하는 비전이나 사업계획은 청년들에게 자주 ‘까인다’^^) 실제로는 궁색한 길드다 살림이 ‘빵꾸’나지 않게 여기 저기 협박도 하고 읍소도 하면서 돈을 끌어오는 일을 가장 열심히 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 간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청년들에게 푸코니 들뢰즈니 장자니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때론 회계장부 쓰는 법, 공지 올리는 법 등 각종 실무와 관련된 노하우를 전수하는 사수(射手)이기도 하고, 또 때론 청년들을 전국으로 보내 <북 콘서트>라는 행사를 뛰게 하는 기획사 매니저로 변신하기도 한다. 음, 아주 가끔씩은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는 청년들을 실어 나르는 운전기사 노릇도 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청년쉐어하우스 <선집> 대청소를 하면서 매트리스 커버와 이불커버를 몽땅 벗겨 집으로 가져와 빨아서 다시 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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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0.05.20 | 조회 141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설명하기엔 애매한     나는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갔지 안정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문탁에서 학생들과 수업도 한다는 얘기로 미루어 예전에 다녔던 학원 같은데 이겠거니 생각하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어머니는 학원에서 월급은 주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뭐래니 라는 표정이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족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공동체 관련 기사도 열심히 읽었고 그와 관련한 책도 꾸준히 사서 읽었다. 새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소개된 공동체 방문해보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살자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 떠올린 공동체의 상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책을 통해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맞닥뜨리는 상황들도 낯설어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렸던 ‘그런’ 공동체의 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뜻이 맞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설명하기엔 애매한     나는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갔지 안정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문탁에서 학생들과 수업도 한다는 얘기로 미루어 예전에 다녔던 학원 같은데 이겠거니 생각하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어머니는 학원에서 월급은 주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뭐래니 라는 표정이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족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공동체 관련 기사도 열심히 읽었고 그와 관련한 책도 꾸준히 사서 읽었다. 새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소개된 공동체 방문해보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살자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 떠올린 공동체의 상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책을 통해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맞닥뜨리는 상황들도 낯설어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렸던 ‘그런’ 공동체의 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뜻이 맞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기린
2020.05.13 | 조회 598
지난 연재 읽기 둥글레의 인문약방
[둥글레의 인문약방 / 10화]     슬픔의 치료제를 찾는 사람들     가끔 지인들이 정신과 치료나 약에 대해 물어온다. 어떤 경우는 꾸준히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고, 어떤 경우는 정신과 약 복용이 너무 섣불러서 심리상담을 권유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치료나 약 복용이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런 조언을 하지만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나서는 나도 정신과 질환의 처방을 조제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정신과 처방의 경우 의약분업 예외라서 병원에서 조제해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과 처방이 아니더라도 향정신성 의약품이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은 빈번히 취급한다.) 약국에서 정신과 처방을 보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사람들이 정신적 문제를 약 복용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은 늘었다. 그도 그럴게 요사이 정신 질환에 대한 비호감이 많이 줄었고 정신과 병원도 거리낌 없이 간다. 또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로 약을 먹고 있다고 토로하는 장면도 TV에 심심치 않게 나온다.  보건 복지부가 실행한 ‘201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다고 한다. 정신질환의 유병률이 25.4%라니 놀랍다. 그런데 왜 정신적 질병이 늘고 있을까? 확실한 건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이 늘었다. 요새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교 내에서 심리를 상담하고 이상 여부를 체크하는 일이 기본이 되었다. 학생들이고 성인들이고 정신적 문제로 약을 먹거나 상담을 받는 경우가 늘어났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갈수록 개인들의 부담을 늘리고 사회 안정망을 줄이고 있다. 이로 인해 정신적...
[둥글레의 인문약방 / 10화]     슬픔의 치료제를 찾는 사람들     가끔 지인들이 정신과 치료나 약에 대해 물어온다. 어떤 경우는 꾸준히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고, 어떤 경우는 정신과 약 복용이 너무 섣불러서 심리상담을 권유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치료나 약 복용이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런 조언을 하지만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나서는 나도 정신과 질환의 처방을 조제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정신과 처방의 경우 의약분업 예외라서 병원에서 조제해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과 처방이 아니더라도 향정신성 의약품이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은 빈번히 취급한다.) 약국에서 정신과 처방을 보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사람들이 정신적 문제를 약 복용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은 늘었다. 그도 그럴게 요사이 정신 질환에 대한 비호감이 많이 줄었고 정신과 병원도 거리낌 없이 간다. 또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로 약을 먹고 있다고 토로하는 장면도 TV에 심심치 않게 나온다.  보건 복지부가 실행한 ‘201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다고 한다. 정신질환의 유병률이 25.4%라니 놀랍다. 그런데 왜 정신적 질병이 늘고 있을까? 확실한 건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이 늘었다. 요새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교 내에서 심리를 상담하고 이상 여부를 체크하는 일이 기본이 되었다. 학생들이고 성인들이고 정신적 문제로 약을 먹거나 상담을 받는 경우가 늘어났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갈수록 개인들의 부담을 늘리고 사회 안정망을 줄이고 있다. 이로 인해 정신적...
둥글레
2020.04.27 | 조회 705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4.23 | 조회 638
지난 연재 읽기 둥글레의 인문약방
[둥글레의 인문약방/9회]     바이러스 폭풍시대의 윤리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고 별별 장면들이 우리 사회뿐 아니라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대중들의 심리를 손쉽게 파고드는 공포, 감염병의 유행과 직결되는 정치적 논쟁, 높은 인식 수준을 자랑했던 선진국들의 봉쇄 정책 등 매일매일이 놀람의 연속이다.     약국에서 마스크를 팔면서 느낀 점도 많다. 다들 약국에 오면 한 마디씩 한다. 중국에 마스크를 퍼줘서 마스크가 부족하다, 중국이 공산국가라서 벌을 받았다 등등. 진의 여부나 정부 비난은 차치하고 중국에 대한 혐오감은 듣기 좀 불편했다. 이념적 편 가르기를 하면서도 마스크 판매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율배반에 한숨이 나왔다. 마스크 사재기를 비난하지만 마스크를 많이 사려고 하는 사람들, 마스크가 없다고 화내고, 마스크를 겨우 구해오면 비싸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 등. 마스크를 파는 입장이라서 보게 되는 그림자가 많았다. 결국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없애기 위해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다. 이 한시적 제도에 사회주의적이라며 딴지를 거는 언론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으로는 사람들의 불만과 불안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바이러스 대유행이라는 낯선 상황을 약국에서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사람들의 불만과 공포와 누구 탓을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그리고 자주 보게 될 줄이야…. 우리는 이 낯섦이 촉발한 감정과 혼란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 이 낯섦은 아예 우리를 새로운 사유로 그리고 새로운 윤리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퇴치할 수 없다 20세기 선진국에서는 감염병이 완전히 정복되었다고...
[둥글레의 인문약방/9회]     바이러스 폭풍시대의 윤리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고 별별 장면들이 우리 사회뿐 아니라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대중들의 심리를 손쉽게 파고드는 공포, 감염병의 유행과 직결되는 정치적 논쟁, 높은 인식 수준을 자랑했던 선진국들의 봉쇄 정책 등 매일매일이 놀람의 연속이다.     약국에서 마스크를 팔면서 느낀 점도 많다. 다들 약국에 오면 한 마디씩 한다. 중국에 마스크를 퍼줘서 마스크가 부족하다, 중국이 공산국가라서 벌을 받았다 등등. 진의 여부나 정부 비난은 차치하고 중국에 대한 혐오감은 듣기 좀 불편했다. 이념적 편 가르기를 하면서도 마스크 판매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율배반에 한숨이 나왔다. 마스크 사재기를 비난하지만 마스크를 많이 사려고 하는 사람들, 마스크가 없다고 화내고, 마스크를 겨우 구해오면 비싸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 등. 마스크를 파는 입장이라서 보게 되는 그림자가 많았다. 결국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없애기 위해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다. 이 한시적 제도에 사회주의적이라며 딴지를 거는 언론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으로는 사람들의 불만과 불안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바이러스 대유행이라는 낯선 상황을 약국에서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사람들의 불만과 공포와 누구 탓을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그리고 자주 보게 될 줄이야…. 우리는 이 낯섦이 촉발한 감정과 혼란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 이 낯섦은 아예 우리를 새로운 사유로 그리고 새로운 윤리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퇴치할 수 없다 20세기 선진국에서는 감염병이 완전히 정복되었다고...
둥글레
2020.03.24 | 조회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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