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인생극장/8회> 관포지교(管鮑之交), 나의 수많은 포숙들을 기다리며

기린
2020-03-16 00:31
539
  1. 환공을 패자로 만든 관중과 포숙

 

 노(魯)나라 환공이 제(齊)나라를 방문하면서 제 양공의 여동생인 부인을 대동했다. 결혼하기 전부터 연인관계였던 양공과 여동생은 환공의 눈을 피해 몰래 만났다. 환공이 그것을 알게 되어 부인에게 화를 냈고 양공은 사람을 시켜 환공을 죽여 버렸다. 양공의 동생들이었던 규와 소백은 형의 이러한 행실 때문에 화가 자신들에게도 미칠까 염려하여 주변국으로 도망쳤다. 관중은 둘째 왕자인 규를 모시고 노나라로, 포숙은 소백을 모시고 거나라로 갔다.

 

 

 결국 양공은 자신의 부하였던 무지에게 목숨을 잃었다. 무지가 제 스스로 왕위에 오르자 그에게 원한이 있던 무리들이 일어나 그를 처단해 버렸다. 그리고 규와 소백 가운데 한 사람에게 왕위를 계승하기로 했다. 이 소식을 들은 두 왕자는 각각 노나라와 거나라에서 출발했고, 누가 먼저 제 왕실에 도착할 것인지를 두고 각축을 벌였다. 제나라로 향하는 길목에서 소백의 무리를 마주친 관중은 소백을 향하여 화살을 쏘아 맞혔다. 소백이 쓰러지는 것을 확인한 관중은 뒤따라오던 규 왕자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일행은 느긋하게 귀국길에 올랐다.

 

 

 그 시각, 소백은 재빨리 정신을 차리고 귀국을 재촉하여 먼저 제 왕실에 도착해 왕위를 차지했으니 바로 제 환공이다. 그는 복대에 화살을 맞은 후 죽은 시늉을 하며 관중을 속였던 것이다. 이후 환공은 노나라를 협박해 규 왕자를 처단했고 관중은 제나라로 불러들여 죽이겠다고 호송시켰다. 환공을 모셨던 포숙이 나섰다.

 

-임금께서 제나라를 다스리겠다면 지금의 신하들로 충분합니다. 하지만 천하를 차지하겠다는 뜻이 있다면 관중 없이는 안 됩니다.

 

 환공은 포숙의 의견을 수렴하여 관중을 살려서 대부로 삼았다. 그 후 관중은 제나라를 정비하여 환공을 춘추시대의 첫 번째 패권자로 만들었다. 환공을 보좌하여 천하의 제후들을 규합하는데 힘썼고 북쪽 오랑캐들을 평정하여 제후국들의 신임을 샀다. 안으로는 바닷가에 위치한 제나라의 지리적 이점을 살려 주변 제후국들과 교역을 통해 재물을 쌓았다. 관중의 이러한 활약으로 제나라는 고대 중국에서 일찌감치 부강한 나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춘추시대 이전에 천하를 차지했던 이들은 훌륭한 임금과 훌륭한 신하의 만남에서 비롯되었다. 요임금과 순이 그랬고 탕왕과 이윤, 주 무왕과 강태공도 있었다. 이들의 협력으로 천하의 주인이 바뀌게 되었다. 반면, 세가에 실린 환공의 면면은 천하의 패권을 차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런 환공을 모셨던 포숙은 관중의 능력이 절실하게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하여 천하를 차지하고 싶은 환공의 야심도 자극하면서 젊은 시절을 함께 보낸 친구도 구하는 계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관중은 출중한 능력을 발휘해서 두 사람 모두를 만족시키는 업적을 이루었다. 환공을 춘추시대 첫 패자로 만든 두 사람의 협력, 어떻게 가능하게 되었을까?

 

2. 포숙이 없었다면

 

관중이 재상이 되어 제후를 능가하는 부귀영화를 누리게 되었을 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가난하게 살 때 포숙과 장사를 한 적이 있었다. 이익을 나눌 때마다 내가 더 많은 몫을 차지하곤 하였으나 포숙은 나를 욕심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내가 가난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한 번은 내가 포숙을 대신해서 어떤 일을 경영하다가 실패하여 그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지만 그는 나를 어리석다고 하지 않았다. 운세를 따라 좋은 때와 나쁜 때가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일찍이 세 번이나 벼슬길에 나갔다가 세 번 다 군주에게 내쫓겼지만 포숙은 나를 모자란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내가 아직 때를 만나지 못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세 번 싸움에 나갔다가 세 번 모두 달아났지만 포숙은 나를 겁쟁이라고 하지 않았다. 내가 늙은 어머니를 모시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공자 규가 임금 자리를 놓고 벌인 싸움에서 졌을 때, 소흘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으나 나는 붙잡혀 굴욕스러운 몸이 되었다. 그러나 포숙은 나를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자그마한 일에는 부끄러워하지 않지만 천하에 이름을 날리지 못하는 것을 부끄러워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를 낳아준 이는 부모이지만 나를 알아준 이는 포숙이다. (『사기열전』 25쪽? 김원중 저/ 민음사)

 

 

 만약 내가 친구와 함께 동업을 했는데 친구가 이익을 더 많이 가져간 것을 알게 되었다면 일단 욕심을 부린다는 생각부터 들 것이다. 그게 통념이다. 그런데 포숙은 그 통념대로 반응하지 않았다. 관중이 일에 실패하고 벼슬에서 쫓겨나고 전쟁에서 도망치는 등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실패도 하고 전쟁에 나가면 죽을까봐 두려워 도망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이 그런 상황에 처한 것을 알게 되면 어리석다거나 겁쟁이라고 비난하기 일쑤다. 포숙은 그렇게 작동하는 통념을 멈추고 다른 측면을 살폈다. 그렇다면 ‘알아준다’는 것은 어떤 국면에서 통념대로 반응하기를 멈추고 또 다른 사정까지 살펴서 행동함이다.

 

 사마천은 관중의 열전 마지막에 세상 사람들은 관중의 현명함을 칭송하기보다 사람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포숙을 더 찬미했다고 했다. 포숙은 어떻게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까? 관중이라는 친구를 사귀어 그에게 관심이 생겼을 것이다. “공감과 이해는 매뉴얼이 없다. 매순간 묵묵하고도 아슬아슬한 실천만 있을 뿐”(은유, 한겨레신문 <삶의 창> ‘연민과 배려사이’) 이라고 했다. 친구에게 벌어지는 일에 대해 매순간 일어나는 통념을 넘어 맥락을 살피는 실천이 거듭되었다. 그 실천이 천하의 패권을 차지할 수 있는 기회가 왔을 때 관중을 떠올리게 했을 것이다. 결과는 두 사람 모두 원하는 것을 이루었다. 그렇다면 포숙의 능력은 친구에게 공감하고 이해하기를 포기하지 않고 거듭 실천하는 가운데 터득된 것이다. 관중 역시 그런 포숙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데 그 노련한 관중이 모를 리가.

 

3. 나의 수많은 ‘포숙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감염자가 속출하고 있다는 외신을 접했을 때만 해도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러나 상황은 점점 심각해져서 최근에는 WHO에서 ‘펜데믹’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속해 있는 공동체에서도 사태가 심각해지는 만큼 그에 대응하는 방법도 시시각각 달라지고 있다. 공동체의 주방을 맡고 있는 나는 그 과정에서 마음이 점점 복잡해졌다.

 

 

 감염자가 점점 늘어나는 상황에서 1년짜리 프로그램인 이문서당 개강은 무리라는 결정을 내리면서 주방도 잠정적으로 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문탁 전체는 닫을 수 없으니 공부하러 나오는 회원들이 알아서 도시락도 싸오고 주방에 있는 재료들로 밥이나 해 먹자고 했다. 그렇게 한 주가 지나가자 점심상에 모이는 친구들이 하나 둘 늘어갔다. 코로나 확진자 수도 점점 늘어났다. 밥을 함께 먹는 식구들 사이에 감염이 가장 잘 되는 상황이라는데 경계가 느슨해졌다고 할까. 언론을 통해 감염을 막기 위해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해야한다는 캠페인이 시작되었다. 그러자 한 친구가 좀 더 삼가는 행동이 필요하다며 주방을 완전히 닫자는 제안을 했다.

 

 공식적으로 주방을 열지 않는다고 결정했으니 각자의 감각으로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저 제안은 그 감각을 믿지 못하겠으니 강제적으로 금지하자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반발하는 마음이 들었다. 월요일에 나 혼자서라도 밥상을 차려야겠다는 다짐까지. 그런데 막상 월요일 아침에 일어났더니 그 다짐이 귀찮아졌다. 친구가 저렇게 염려하는데 그냥 쉬면 또 어때. 결국 나는 그 날 문탁에도 안 나가고 하루 쉬었다.

 나는 삼갔으면 좋겠다는 친구의 의견을 듣는 순간 강제한다는 통념부터 떠올랐다. 그 순간을 인식하고 멈추었다면 코로나 정국이 점점 심각해지는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면 그것은 강제라기보다는 심각함을 반영한 대책이라는 맥락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더구나 반발했던 마음조차 하룻밤 자고 났더니 바뀌고 말지 않았는가. 어떤 상황에서도 공동체 밥상은 차려야한다고 새겨진 나의 ‘통념’이 작동하는 순간 상황의 맥락을 알아채는 능력은 급격히 쫄아 들고 말았다. 포숙-되기가 쉬운 게 아니다.

 

 

 작년 3월 <사기, 인간극장> 첫 글의 주제는 ‘전전긍긍’ 이었다. 공동체 주방을 맡은 매니저로 활동하면서 주방을 드나드는 친구들의 마음을 ‘몰라서’ 전전긍긍하는 고충을 토로하는 글을 썼다. 8회 차에 ‘관포지교’를 주제로 우정에 대해서 쓰겠다고 했더니 첫 글과는 다른 내용을 쓸 수 있겠느냐고 염려 했다. 아니나 다를까 피드백이 거듭되는데도 글은 좀처럼 진전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코로나 정국에서 친구의 말에 반응하는 나를 살펴보면서 깨달았다. 나의 통념, 즉 공동체 주방과 관련하여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에 반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즉각 반발이 일어나면서 다른 맥락을 살피는 힘이 급격히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런 반응은 공동체에서 겪는 많은 국면에서 우정을 쌓는데 걸림돌로 작동한다는 것도.

 

여전히 코로나정국이다. 그래서 주방도 공식적으로 닫혀있다. 공동체 밥상이 안 차려지는 일은 ‘절대로’ 없어야 한다던 나의 통념도 깨졌다. 동시에 모든 끼니를 공동체 밥상에서 해결했던 최근의 나에게 흉흉한 시절이 지나가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그러니 보였다. 그렇게 매 끼니가 차려졌던 것은 공동체 밥상이 꼭 차려져야 한다는 나의 뜻을 ‘알아준’ 수많은 포숙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이 흉흉한 시간도 결국은 다 지나갈 것이다. 그러고 나면 나의 수많은 포숙들이 돌아올 것이다. 매서운 겨울이 지나고 포근한 봄이 오는 것처럼.

 

 

  • 8회를 끝으로 <사기, 인생극장> 연재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댓글 9
  • 2020-03-16 08:23

    자기에게는 포숙이 없다고 한탄한 사마천에겐 없었고 포숙을 기다리는 기린샘에게는 있는 건
    '공동체의 삶'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동안 연재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 2020-03-16 09:21

    기린에게 주방은 로도스구나! 자 한 번 뛰어보시오!!

  • 2020-03-16 09:32

    가끔 나에게는 게으르니님이 관중이자 포숙입니다~ 가아끔ㅋㅋ
    마지막 글에서야 댓글 다는 친구, 이런 우정을 가진 친구도 있답니다..
    고생많으셨습니다~ 다시 만날 글들도 기다릴게요^^

  • 2020-03-16 09:44

    우정은 친구를 끝까지 책임지는거라는데
    친구를 알아주는게 먼저겠네요
    알아주려면 일단 관심과 애정을 그에게로 향하고 그를 잘 들어야할테구요
    물리적인 격리가 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코로나팬데믹 시절에 친구와 공동체가 새롭게 다가오는 요즘입니다
    기린샘 산고의 고통을 끝낸? 오늘을 맘껏 즐기시오!!!
    매실주 한병 콜? ㅋ

  • 2020-03-16 10:59

    벗을 향한 내마음을 돌아보는 일
    벗을 제대로 이해하고 대한다는 것은 결국은 다시한번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가다듬는 일이 되지않을까하는 생각이듭니다

  • 2020-03-16 16:47

    전 : 전전긍긍이 과연 주방 일 만이랴
    전 : 전속 오지라퍼일수록 전전긍긍이 심해지지
    긍 : 긍정적 마인드? 그건 혼자만 우아한 자의 것!
    긍 : 긍께, 아무나 주방지기 하겠냐고..
    관 : 관심 좀 끊고 우아해 지고 싶어도
    포 : 포숙아들이 손짓발짓하니
    지 : 지대로 내손으로 목줄걸고
    교 : 교차로 없는 길에서 호각부는 오지라퍼 매니저들!

    수고했어요. ? 또 다른 글로 만나는 거죠?

  • 2020-03-17 08:25

    쿵짝 쿵짝~ 난 쌤 옆에서 같이 박자를 맞추다가~
    쿵쿵짝! 하고 가끔씩 삑싸리~내는 포숙일 것 같구만요. ㅎㅎ

    그동안 연재하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2020-03-22 08:11

    관중과 포숙의 이야기가 새삼 절절히 다가오네요
    통념을 버리고 서로의 리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어렵다는 걸 요즘 새삼 절절하게 체험하고 있기 때문일까요??
    기린 전전긍긍하며 글쓰는 당신이 아름다웠소 ㅋ

  • 2020-04-08 18:59

    저는 포숙되기 를 과제로 삼아야 할것 같네요.

지난 연재 읽기 아젠다 사장칼럼
      나는 길드다 사장이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지만 아무튼! 지금 난 길드다라는 ‘청년인문학스터트업’의 사장이다. 그런데 청년들의 배움과 밥의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보겠다는 이 실험적 공동체 안에서, 유일하게 50대인 나는, 사장이라는 이름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일단 나는 공식적이고 대외적인 길드다 활동에서는 존재감이 없다. 청년들은 이런 저런 자리에서 길드다를 소개할 때 대체로 나를 ‘제낀다’. 길드다 블로그나 인스타에서도 나의 흔적을 찾아보긴 어렵다. 그렇다면 길드다에서의 사장은 일종의 명예직일까? 그렇다고 하기엔 나는 꽤 많은 일을 한다.        무엇보다 나는 길드다 조직 전체의 비전을 제시하거나 한 해의 사업계획을 짜는 일을 한다. 전형적인 CEO의 임무이다. (하지만 내가 제시하는 비전이나 사업계획은 청년들에게 자주 ‘까인다’^^) 실제로는 궁색한 길드다 살림이 ‘빵꾸’나지 않게 여기 저기 협박도 하고 읍소도 하면서 돈을 끌어오는 일을 가장 열심히 한다. 뿐만 아니라 지난 몇 년 간 나는 한 번도 쉬지 않고 청년들에게 푸코니 들뢰즈니 장자니를 가르치는 교사였다. 때론 회계장부 쓰는 법, 공지 올리는 법 등 각종 실무와 관련된 노하우를 전수하는 사수(射手)이기도 하고, 또 때론 청년들을 전국으로 보내 <북 콘서트>라는 행사를 뛰게 하는 기획사 매니저로 변신하기도 한다. 음, 아주 가끔씩은 운전도 못하고 차도 없는 청년들을 실어 나르는 운전기사 노릇도 한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청년쉐어하우스 <선집> 대청소를 하면서 매트리스 커버와 이불커버를 몽땅 벗겨 집으로 가져와 빨아서 다시 갖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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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탁
2020.05.20 | 조회 141
기린의 공동체가 양생이다
  설명하기엔 애매한     나는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갔지 안정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문탁에서 학생들과 수업도 한다는 얘기로 미루어 예전에 다녔던 학원 같은데 이겠거니 생각하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어머니는 학원에서 월급은 주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뭐래니 라는 표정이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족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공동체 관련 기사도 열심히 읽었고 그와 관련한 책도 꾸준히 사서 읽었다. 새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소개된 공동체 방문해보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살자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 떠올린 공동체의 상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책을 통해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맞닥뜨리는 상황들도 낯설어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렸던 ‘그런’ 공동체의 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뜻이 맞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설명하기엔 애매한     나는 시골에 홀로 사시는 어머니에게 가장 큰 걱정거리이다. 나이는 오십이 넘었는데 시집도 못 갔지 안정된 일을 하는 것 같지도 않다. 내가 문탁에서 학생들과 수업도 한다는 얘기로 미루어 예전에 다녔던 학원 같은데 이겠거니 생각하신다. 코로나 사태가 심각해졌을 때 어머니는 학원에서 월급은 주냐고 걱정하는 전화를 하셨다. 학원이 아니라 공동체라고 아무리 말해도 어머니는 뭐래니 라는 표정이다. 어머니뿐만이 아니다. 내가 어떤 곳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가족은 물론 주변 친구들에게도 설명하기가 참 애매하다.    사실 나는 오래전부터 공동체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신문을 통해 소개되는 공동체 관련 기사도 열심히 읽었고 그와 관련한 책도 꾸준히 사서 읽었다. 새해가 되어 하고 싶은 일을 떠올릴 때 소개된 공동체 방문해보기가 빠지지 않았다. 주변 친구들에게도 공동체를 만들어 같이 살자는 말을 곧잘 했다. 그럴 때 떠올린 공동체의 상은 뜻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살아간다는 정도였다. 책을 통해 문탁네트워크를 알게 되었을 때는 ‘그런’ 공동체를 실제로 경험해 본다는 생각에 좀 설렜던 것 같다.        하지만 실제로 와보니 만나는 사람들도 맞닥뜨리는 상황들도 낯설어 좌충우돌하기 일쑤였다. 처음이라 그런가 싶었지만 시간이 지난다고해서 익숙해지지도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그렸던 ‘그런’ 공동체의 상이 자꾸만 떠올랐다. 뜻이 맞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함께 산다는 것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래서 공동체에서 살고 있다는 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살아갈수록 내가 이미 알고 있다고 여겼던...
기린
2020.05.13 | 조회 597
지난 연재 읽기 둥글레의 인문약방
[둥글레의 인문약방 / 10화]     슬픔의 치료제를 찾는 사람들     가끔 지인들이 정신과 치료나 약에 대해 물어온다. 어떤 경우는 꾸준히 정신과 약을 먹어야 한다는 판단이 섰고, 어떤 경우는 정신과 약 복용이 너무 섣불러서 심리상담을 권유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치료나 약 복용이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이런 조언을 하지만 종합병원을 그만두고 나서는 나도 정신과 질환의 처방을 조제할 기회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 정신과 처방의 경우 의약분업 예외라서 병원에서 조제해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과 처방이 아니더라도 향정신성 의약품이나 중추신경계에 작용하는 약은 빈번히 취급한다.) 약국에서 정신과 처방을 보는 횟수가 줄어들었지만 사람들이 정신적 문제를 약 복용으로 해결하려는 경향은 늘었다. 그도 그럴게 요사이 정신 질환에 대한 비호감이 많이 줄었고 정신과 병원도 거리낌 없이 간다. 또 연예인들이 공황장애로 약을 먹고 있다고 토로하는 장면도 TV에 심심치 않게 나온다.  보건 복지부가 실행한 ‘2016년 정신질환실태 역학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성인 4명 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 정신질환을 겪는다고 한다. 정신질환의 유병률이 25.4%라니 놀랍다. 그런데 왜 정신적 질병이 늘고 있을까? 확실한 건 정신질환에 대한 진단이 늘었다. 요새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학교 내에서 심리를 상담하고 이상 여부를 체크하는 일이 기본이 되었다. 학생들이고 성인들이고 정신적 문제로 약을 먹거나 상담을 받는 경우가 늘어났다.     자본주의의 발달과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갈수록 개인들의 부담을 늘리고 사회 안정망을 줄이고 있다. 이로 인해 정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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둥글레
2020.04.27 | 조회 705
지난 연재 읽기 뚜벅뚜벅 마을경제학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벅뚜벅 마을경제학개론 #7] 무진장의 실험:사적 소유를 넘을 수 있을까   이웃 카센터의 요란한 소음이 슬슬 동네에 퍼질 때 쯤이면 파지사유의 아침도 시작된다. 폴딩도어를 활짝 열어재치고 한바탕 아침 청소를 마친 학인들이 모닝커피 한 잔씩 뽑아들고 종종걸음 세미나를 하러 가고 나면 오늘의 밥당번들이 등장한다. 오전의 고요함을 깨는 건 열공으로 에너지 만땅 채우고 밥먹으러 오는 학인들 무리다. 감염병의 대유행을 맞아 지금은 중단된 그리운 파지사유의 일상이다. 작업장에 이어 2013년에 마을공유지 파지사유까지 열게 되었다. 그동안 매니저의 활동비를 결정하는 일이나, 새로운 사업을 위한 씨앗자금이나 각종 기금을 조성하면서 문탁 사람들은 돈에 대한 감각을 맞춰왔었다. 그 대표적인 예가 학인들의 십시일반과 수고가 한데 모여 탄생한 마을공유지 파지사유다. 자본주의의 상징인 돈까지  자본주의와는 다르게 쓸 수 있다는 자신감마저 가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라고 감히 평가해본다.     마을경제 따로, 가정경제 따로?   함께 가꾸는 터전이 늘어나자 공동체의 일상은 점점 풍성해졌다. 원한다면 필요한 공부를 조직하는 일도, 공부로 뜻을 맞춘 이들이 작당모의를 하는 일도 맘껏 펼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돈은 수시로 우리를 곤란함에 빠지게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문탁에서 공부하면서 경쟁 대신 우정으로 삶을 조직하겠다던 친구는 모아둔 돈은 줄어들고 전세보증금만 계속 오르니 흔들리는 듯 했다. 불경기에 당장의 밥벌이가 시급해진 학인들도 자꾸 늘어났다. 공부를 중단하고 생업전선에 나서겠다는 친구들을 붙잡을 도리가 없었다. 자본주의 내부에서 살아가는 한 아무리 절제해도 최소한의 돈 없이는 생활유지가 안 된다는 게 문제였다....
뚜버기
2020.04.23 | 조회 637
지난 연재 읽기 둥글레의 인문약방
[둥글레의 인문약방/9회]     바이러스 폭풍시대의 윤리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고 별별 장면들이 우리 사회뿐 아니라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대중들의 심리를 손쉽게 파고드는 공포, 감염병의 유행과 직결되는 정치적 논쟁, 높은 인식 수준을 자랑했던 선진국들의 봉쇄 정책 등 매일매일이 놀람의 연속이다.     약국에서 마스크를 팔면서 느낀 점도 많다. 다들 약국에 오면 한 마디씩 한다. 중국에 마스크를 퍼줘서 마스크가 부족하다, 중국이 공산국가라서 벌을 받았다 등등. 진의 여부나 정부 비난은 차치하고 중국에 대한 혐오감은 듣기 좀 불편했다. 이념적 편 가르기를 하면서도 마스크 판매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율배반에 한숨이 나왔다. 마스크 사재기를 비난하지만 마스크를 많이 사려고 하는 사람들, 마스크가 없다고 화내고, 마스크를 겨우 구해오면 비싸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 등. 마스크를 파는 입장이라서 보게 되는 그림자가 많았다. 결국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없애기 위해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다. 이 한시적 제도에 사회주의적이라며 딴지를 거는 언론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으로는 사람들의 불만과 불안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바이러스 대유행이라는 낯선 상황을 약국에서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사람들의 불만과 공포와 누구 탓을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그리고 자주 보게 될 줄이야…. 우리는 이 낯섦이 촉발한 감정과 혼란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 이 낯섦은 아예 우리를 새로운 사유로 그리고 새로운 윤리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퇴치할 수 없다 20세기 선진국에서는 감염병이 완전히 정복되었다고...
[둥글레의 인문약방/9회]     바이러스 폭풍시대의 윤리     코로나19 유행이 시작되고 별별 장면들이 우리 사회뿐 아니라 각국에서 펼쳐지고 있다. 대중들의 심리를 손쉽게 파고드는 공포, 감염병의 유행과 직결되는 정치적 논쟁, 높은 인식 수준을 자랑했던 선진국들의 봉쇄 정책 등 매일매일이 놀람의 연속이다.     약국에서 마스크를 팔면서 느낀 점도 많다. 다들 약국에 오면 한 마디씩 한다. 중국에 마스크를 퍼줘서 마스크가 부족하다, 중국이 공산국가라서 벌을 받았다 등등. 진의 여부나 정부 비난은 차치하고 중국에 대한 혐오감은 듣기 좀 불편했다. 이념적 편 가르기를 하면서도 마스크 판매를 국가가 통제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의 이율배반에 한숨이 나왔다. 마스크 사재기를 비난하지만 마스크를 많이 사려고 하는 사람들, 마스크가 없다고 화내고, 마스크를 겨우 구해오면 비싸다고 화를 내는 사람들 등. 마스크를 파는 입장이라서 보게 되는 그림자가 많았다. 결국 정부는 국민들의 불만과 불안을 없애기 위해 ‘마스크 5부제’를 실시했다. 이 한시적 제도에 사회주의적이라며 딴지를 거는 언론도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 느끼는 체감으로는 사람들의 불만과 불안은 많이 줄어든 것 같다. 바이러스 대유행이라는 낯선 상황을 약국에서 경험하면서 많은 생각들이 오고 간다. 사람들의 불만과 공포와 누구 탓을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그리고 자주 보게 될 줄이야…. 우리는 이 낯섦이 촉발한 감정과 혼란을 넘어설 수 있을까? 아니 이 낯섦은 아예 우리를 새로운 사유로 그리고 새로운 윤리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닐까?     퇴치할 수 없다 20세기 선진국에서는 감염병이 완전히 정복되었다고...
둥글레
2020.03.24 | 조회 5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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