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42길 15회] 고대하라, 연대의 힘/켄 로치 <미안해요, 리키(2019)>

띠우
2022-04-17 21:48
302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고대하라, 연대의 힘

켄 로치 감독 <미안해요, 리키 Sorry We Missed You(2019)>

 

일한 만큼 돈 버는 세상?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기술혁신과 사회구조의 변화를 가져왔다. 그 과정에서 시장경제는 전 세계를 뒤덮어가며 노동과 토지를 사회로부터 분리해냈고, 경제성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졌다. 물론 산업혁명이 인류에게 커다란 이로움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 지나치게 빠른 속도의 변화는 기존 사회질서를 붕괴하고 해체시키며 많은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렸다. 그로 인해 사회의 자기보호운동이 일어나면서 변화 속도를 늦추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때 주목할 것은 기술진보를 둘러싸고 이중적 운동(시장자유화와 사회보호운동)이 있었다는 것이다. 켄 로치 감독의 영화는 지나치게 빠른 성장속도를 경계하는 사회보호운동으로써 정치적 메시지를 내포하고 있다.

 

 

영화 <미안해요, 리키>의 주인공 리키는 건축업에 종사하다가 전 세계에 불어닥친 금융위기로 인해 해고된 중년 남성이다. 사람들 속에서 지쳐버린 그는 자기 사업을 갖고 싶어 택배업에 뛰어든다.  그는 면접에서 자신의 장점으로 성실함을 내세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안정된 삶을 보장받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더 이상 성실함이 무기가 되지 않는 시대다. 리키의 아내 애비는 간병노동자로 밤늦게까지 노인과 장애인을 돌보는 일을 한다. 최저 근무 시간이 0시간인 ‘제로아워 계약’에 따라 근무시간이 따로 명시되어 있지는 않다. 원칙적으론 일하고 싶을 때 원하는 만큼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애비는 법정노동시간보다 훨씬 많은 하루 14시간 이상의 노동을 함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인 삶은 나아지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시장에 뛰어든 리키 역시 깨어있는 대부분의 시간을 일하는데 쓴다.

 

사춘기인 아들 세브는 부모의 뜻대로 살아주질 않는다. 세브가 벽에 그래피티를 위해 페인트를 훔치자, 리키는 공부하지 않으면 처참한 삶이 남아있을 뿐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세브는 대학 학자금 갚느라 인생을 살아가야 하냐며 정작 노예처럼 사는 것은 리키라고 말한다. 이어 그 선택을 한 것은 리키 본인이라고 퍼붓는다. 딸 리사는 리키가 택배일을 하기 전의 따뜻했던 아버지로 돌아오길 바라며 애원한다. 시간이 돈인 이상, 대화는 이어지지 못한 채 리키와 애비는 하루 14시간의 고된 노동으로 지쳐간다. 영화 초반, 플랫폼 관리자인 멀로니는 면접과정에서 리키에게 ‘자기사업자’를 강조했다. 리키는 고용기사가 아니기에 계약서 작성이나 출근카드가 필요없다. 본인의 성실함에 따라 벌이가 달라진다는 달콤한 말, 그렇기에 삶이 나아질 거라는 희망을 버릴 수도 없다. 결국 리키는 자리를 2분만 비워도 울려대는 단말기에 매여 빈 물병에 소변을 볼 수밖에 없다.

 

희망보다 빠른 변화의 속도

 

켄 로치의 영화들은 이 땅에 존재하지만 소외되는 삶을 끊임없이 포착해왔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가난한 이들의 삶을 배제한 채 시행되는 신자유주의 복지시스템의 이면을 다루었다면, <미안해요, 리키>는 요즘 들어 심각한 상황을 보고 있는 ‘플랫폼 노동’의 이면을 비추고 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대와 함께 공유경제라는 말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던 플랫품 노동은 임시직 위주의 긱 이코노미(gig economy)와 맞물려 돌아간다. 기존의 노동 시장이 정규직 중심이었다면, 긱 경제에서는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공급되는 프리랜서 혹은 노동자들이 중심이 된다. 이런 구조에서 일하다 사고를 당한 리키는 대체기사를 구하지 못하면 벌금과 벌점을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 이것이 리키가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일터로 향하는 이유다.

 

영화를 보다가, 시장경제하에서는 산업의 변화 속도가 빨라질 때 비슷한 일이 반복된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산업혁명 후 20세기 초에 빠르게 진행된 기술진보와 시장경제의 확대로 인한 사회혼란은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들게 되었고 이는 파시즘을 낳았다. 그리고 <런던 프라이드>나 <빌리 엘리어트>의 배경이 되었던 1980년대는 ‘대처리즘’이나 ‘레이거니즘’으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밀려들었다. 이는 석탄중심에서 석유중심으로 산업구조가 변화하면서 일어난 사회구조의 개편이었다. <미안해요, 리키> 에도 애비가 간병하는 로지와 함께 1984년 광산파업 때 찍은 사진을 보는 장면이 있었다. 그와 함께 <미안해요, 리키>의 주된 내용은 4차 산업혁명의 기술발전과 관련된 경제구조와 사회문제를 다룬다.

 

 

사회혼란을 막기 위해 자기조정시장에 맡기든, 국가차원의 보호가 일어나든 사람들의 삶을 망가뜨리는 결과는 동일하다. 성장 속도가 보통 사람들의 삶을 유지할 수 없게 빨라지면 문제가 발생한다. 남편의 사고로 절망하는 애비가 분노를 표출할 대상마저 없다. 새벽에 몰래 운전대를 잡는 리키를 향해 돌아오라며 절규하는 가족들, 사회의 보호막이 사라져버린 현실에서 삶을 지속하기 위한 개인의 안녕은 위태로울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것은 사람들이 시장경제에 순응하며 시장의 부속물로 살아가는 한 반복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거대한 전환>의 저자 칼 폴라니는 묻는다. “삶의 터전이냐 경제 개발이냐”고. 그는 이어 말한다. “어떤 변화가 나타났을 때 만약 그것이 방향도 통제할 수 없고 속도도 지나치게 빠르다면 가능한 한 그 속도를 늦추어서 공동체의 안녕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은 복잡하게 설명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다.”

 

함께 행동하라

 

장 뤽 고다르는 현대 사회를 반영하는 가장 동시대적인 예술로서 “모든 영화가 정치적”이라고 말했다. 정치·경제·사회·문화적인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모든 영화는 이미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일뿐 정치를 움직이는 힘을 즉각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대중매체라는 영화의 특성상 소비되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 편의 영화로 우리 사회의 모순을 날카롭게 들여다보는 것을 통해 사회 변화를 일으키는 물결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이와 관련해 켄 로치 감독은 이렇게 답한다.

 

"좋은 질문이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로 많은 사람들이 토론을 시작했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하면 정권의 정책과 어떤 시스템은 바뀌지 않았다. 보수 정권은 여전히 (노동자의) 배고픔을 무기로 사용한다. 단 1인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영화나 책, 음악 등 문화로 토론을 시작할 수 있지만 변화를 만드는 건 또 다른 문제다. 정권의 생각을 영화로 바꿀 수는 없지만, 그에 반대하는 의견은 커지고 있다."

 

이 말을 통해 더 이상 영화를 찍지 않겠다던 켄 로치가 다시 카메라를 든 이유를 알 수 있다. 그의 영화는 ‘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기 때문에 ‘정치적’이다. 켄 로치 감독은 “영화에 나오는 리키 같은 긱 노동자의 삶을 이해하려면 당장 무료급식소로 달려가 보라”고 한다. “자원봉사자, 여러 기관들의 연대를 볼 수 있다”며 그는 개인 중심으로 고립된 삶의 방식은 큰 문제이며, 그게 우리의 삶을 더 힘들게 만들고 함께 활동하기 어렵게 한다고 조언한다. 또한 그는 “가난은 너의 잘못이다, 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이 문제다”라는 말로써 사회가 자기 역할을 하지 않는 것에 대해 강력히 비판한다. 1984년, 비록 실패했지만 광산파업을 둘러싼 사람들의 연대가 보여주는 의미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플랫폼 시장은 놀랄 만큼 성장하였다. 반나절 만에 택배가 집에 도착한다. 혼밥이 자연스럽고 집에서 개봉영화를 본다. 온라인 수업이 가능해 학교에 가지 않는다. 이런 사회에서 개인화는 점점 가속화된다. 거기에는 돈만 있으면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는 환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러나 주변에 정말 아무도 없다고 상상해보라. 사람이란 사회적 관계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확인하기 마련 아닌가. 명예든 과시든 누군가는 있어야 한다. 라면도 혼자보다 여럿이 먹을 때 맛있어지는 경험, 그것은 물질적 풍요로 가질 수 없는 정서적 만족감을 동반한다. 경제적 이익이 아닌 사회 속에 실재하는 관계를 통해 우리삶은 풍요로워지는 것이다. 영화 원제 <쏘리 위 미스드 유(Sorry We Missed You)>는 택배기사들이 주문자를 만나지 못했을 때 남기는 메모다. 아마도 이것은 우리에게 서로 마주할 수 있는 시간을 놓치지 말라는 감독의 메시지일 것이다. 그는 ‘연대’의 힘을 믿고 있으며 나 역시 그러하다.

 

댓글 5
  • 2022-04-18 07:17

    사회속에 실재하는 관계를 실감하기위한 우리 모두의 실행들, 그 안에서 들끓고 있는 다종다양한 분투들도 함께라면 감당해볼만 하겠죠^^~

  • 2022-04-18 15:47

    이 영화 아직 못 봤는데 남편과 같이 봐야겠어요. 글 잘 읽었어요^^

  • 2022-04-19 15:48

    가능한한 그 속도를 늦추어서 공동체의 안녕을 보호해야한다.

     

    이 영화 급 호감이 가는군요

    이번주에 봐야겠어요

  • 2022-04-21 08:13

    넘 마음 아플까봐 못보고 있는 영화..

    언제쯤 보게될지 …

  • 2022-04-21 18:45

    전 이 영화 보고 우리나라 택배노동자들이 생각나서 소심하게(?) 문에 간식거리 걸어뒀어요.
    그것도 연대의 한 방법이라는 띠우샘의 얘기에  에이 뭔가 더 거창해야 하지 않나 라고 했지만, 돌아와 생각해보니 연대가 맞네요.
    지금 다시 그 마음이 옅어져서 그렇긴 하지만...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시 Poetry(2010) | 감독 이창동 | 주연 윤정희 | 135분 | 15세 이상             영화는 개천에서 떠내려 오는 주검을 한 아이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스토리는 ‘누가, 왜 죽였는지’ 밝혀나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관심 역시 대부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서, 왜!!! 그러나 이 영화의 질문은 애초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66세 미자(윤정희). 그녀가 '시'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임을 의심한 이후였다. 스스로 ‘시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해보니 잘 안 써진다. 그러나 그건 사물의 이름이나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증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자가 참가하는 문예교실에서 김용택 시인(극중 김용탁)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그럴 때 느껴지는 무언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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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2.04.30 | 조회 355
영화대로 42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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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2.04.17 | 조회 302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기억하자, 우리에게 잊히는 것을 알랭 레네 감독,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1959)         시간이라는 공통분모와 ‘현재성’ 2차 세계대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1945년 8월 두 개의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다. 역사상 최초로 일반시민 학살에 원자폭탄이 사용됐다. 그로부터 14년 후 1959년, 프랑스 여배우인 그녀는 세계평화 메시지를 위한 영화 촬영차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일본인 남자를 만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처음 와 본 히로시마에서 보낸 낯선 남자와 하룻밤. 그러나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잊고 있었던 ‘느베르’에서의 첫사랑 혹은 그의 죽음을 다시 떠올린다. 영화의 소재는 공교롭게 ‘사랑과 전쟁’ 속에 이뤄진 불륜이지만, 이건 제목처럼 부부클리닉 재현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도시, 일본의 히로시마와 프랑스의 느베르는 모두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갖고 있다. 다만, 히로시마는 집단기록인 ‘역사’를, 느베르는 개인적인 ‘기억’의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히로시마는 박물관의 전시내용 혹은 극중 영화 속 반전퍼레이드 장면을 통해 이야기되는 반면, 느베르의 시간은 대부분 그녀에게 일어난 과거 개인적인 사건에 집중한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묻고 있는 ‘집단과 개인’ 혹은 ‘역사와 기억’문제의 교집합은 ‘시간’이다. 역사 속 전쟁은 지난 과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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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2.04.03 | 조회 280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덧없는 죽음의 시대 이장호의 <바보선언(1983)>   1. 절망에서 실험정신이 피어나다   1960년대 활발한 르네상스 시기를 보냈던 한국영화는 1972년 유신헌법 선포를 전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갔다.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과는 반대로 영화소재는 제한되었고, 반공영화나 정책선전 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져 국가정책 홍보에 앞장섰다. 이 시기 상업영화로는 하이틴물이나 에로영화가 대량으로 만들어졌으며 영화제작도 허가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시작했던 이장호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문화예술계를 뒤흔들었던 대마초사건(1975)에 연루된다. 이를 계기로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의식화 과정을 겪는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이어서 선보이면서 197,80년대를 관통해 한국영화의 전통과 현대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영화감독을 자리매김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영화적 실험이 돋보였던 작품이 바로 <바보선언(1983)>이다.     <바보선언>에서 그가 온갖 영화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있다. 이장호는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정권에서도 혹독한 검열을 경험한다. 내놓는 시나리오마다 거부당했던 그는 제작사와의 계약조건 때문에 고소 직전에 이르렀다. 어떤 영화든 찍어야 했던 상황에서 엉망으로 쓴 시나리오로 우선 검열에 통과한다. <바보선언>이라는 제목도 당시 문화관광부 직원과 말하다 우연히 정해졌고, 시나리오를 무시한 채 떠오르는 대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덧없는 죽음의 시대 이장호의 <바보선언(1983)>   1. 절망에서 실험정신이 피어나다   1960년대 활발한 르네상스 시기를 보냈던 한국영화는 1972년 유신헌법 선포를 전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갔다.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과는 반대로 영화소재는 제한되었고, 반공영화나 정책선전 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져 국가정책 홍보에 앞장섰다. 이 시기 상업영화로는 하이틴물이나 에로영화가 대량으로 만들어졌으며 영화제작도 허가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시작했던 이장호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문화예술계를 뒤흔들었던 대마초사건(1975)에 연루된다. 이를 계기로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의식화 과정을 겪는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이어서 선보이면서 197,80년대를 관통해 한국영화의 전통과 현대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영화감독을 자리매김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영화적 실험이 돋보였던 작품이 바로 <바보선언(1983)>이다.     <바보선언>에서 그가 온갖 영화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있다. 이장호는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정권에서도 혹독한 검열을 경험한다. 내놓는 시나리오마다 거부당했던 그는 제작사와의 계약조건 때문에 고소 직전에 이르렀다. 어떤 영화든 찍어야 했던 상황에서 엉망으로 쓴 시나리오로 우선 검열에 통과한다. <바보선언>이라는 제목도 당시 문화관광부 직원과 말하다 우연히 정해졌고, 시나리오를 무시한 채 떠오르는 대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띠우
2022.03.14 | 조회 236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살아있다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감독, <사마에게, برای سماء, For Sama>(2019)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시리아는 1946년 독립한다. 하지만 이집트와 연합국가 형태를 띠고 있다가, 1960년대 초 연합을 탈퇴하면서 여러 번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결국 정권을 잡은 ‘알아사드’정부가 40년 넘게 부자세습과 독재정치로 시리아를 지배한다. 영화에서도 잠깐 나왔는데,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시민들의 무장투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독재 알아사드 정부를 타도하려는 군 출신들이 반군을 형성하여 대립하고,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종파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슬림의 대부분은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10~15% 정도다. 그런데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는 대부분 시아파 출신들이다. 그래서 시아파 이란과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부군을,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반군을 지원한다. 2012년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이라크에서 발생한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시리아 북부(알레포가 있는 지역)를 점령하면서 시리아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의 북부도시 알레포에는 매일같이 폭격이 쏟아지고 복구 역시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외부의 지원이나 뉴스보도가 거의 끊겨 고립된 상황.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아 나선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와드’와 ‘함자’ 그리고 그들의 딸 ‘사마’...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살아있다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감독, <사마에게, برای سماء, For Sama>(2019)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시리아는 1946년 독립한다. 하지만 이집트와 연합국가 형태를 띠고 있다가, 1960년대 초 연합을 탈퇴하면서 여러 번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결국 정권을 잡은 ‘알아사드’정부가 40년 넘게 부자세습과 독재정치로 시리아를 지배한다. 영화에서도 잠깐 나왔는데,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시민들의 무장투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독재 알아사드 정부를 타도하려는 군 출신들이 반군을 형성하여 대립하고,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종파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슬림의 대부분은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10~15% 정도다. 그런데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는 대부분 시아파 출신들이다. 그래서 시아파 이란과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부군을,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반군을 지원한다. 2012년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이라크에서 발생한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시리아 북부(알레포가 있는 지역)를 점령하면서 시리아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의 북부도시 알레포에는 매일같이 폭격이 쏟아지고 복구 역시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외부의 지원이나 뉴스보도가 거의 끊겨 고립된 상황.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아 나선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와드’와 ‘함자’ 그리고 그들의 딸 ‘사마’...
청량리
2022.02.27 | 조회 2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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