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대로 42길 8회] 카메라로 드러나는 질문의 태도 / 롤랑 조페 <킬링필드>(1984)

청량리
2022-01-03 07:22
285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카메라로 드러나는 질문의 태도

| 킬링필드, The Killing Fields | 롤랑 조페 감독 | 1984

 

 

 

 

 

 

영화 <킬링필드>는 1973년 캄보디아에서 시작합니다. 인접한 베트남에서 전쟁에 패한 미국이 막 철수할 무렵이었죠. 그로 인해 미국의 지원을 받던 캄보디아 ‘론 놀’정권의 세력도 약해지고, 론 놀 역시 하와이로 망명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캄보디아의 급진적인 좌익무장단체인 ‘크메르 루즈’가 무정부 상태의 캄보디아를 장악하게 됩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자 시드니(샘 워터스톤)는 급박한 캄보디아의 상황을 취재하기 위해 수도 프놈펜으로 날아갑니다. 공항에서 그를 기다리는 현지통역인 겸 기자인 프란(행 S. 응고르)은 비행기가 연착되고, 지프차들이 어디론가 급하게 이동하는 모습을 보고 뭔가 ‘사건’이 일어났음을 직감합니다. 그의 예상대로 그날, 크메르 루즈군을 섬멸하기 위한 폭격이 미국의 잘못으로 인해 엉뚱한 곳으로 폭탄이 투하되고 수 백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왼쪽이 시드니, 오른쪽이 프란

 

다음 날 두 사람은 함께 사건현장으로 달려가려하지만 가는 길이 쉽지 않습니다. 사건을 은폐하려는 미군의 방해로 미군 헬기를 이용할 수도 없었습니다. “내가 누군지 알아? 난 기자라고, 기자!!” 물론 소용없습니다.시드니는 미군 대령에게도, 프란에게도 있는 대로 짜증을 냅니다. 현장에 가는 일을 간곡히 부탁해도 모자랄 판에, 특종 때문인지 투철한 기자정신 때문인지 시드니는 시종일관 프란에게 날이 서 있습니다. 결국 프란이 사방팔방 뇌물까지 써가며 현장으로 갈 수 있는 루트를 겨우 알아내고, 두 사람은 처참한 현장에 도착합니다. 하지만 시드니의 돌발행동으로 두 사람은 크메르 루즈군에게 잡히고 목숨까지 위태로워집니다. 물론 프란이 또다시 사정사정한 덕분에 겨우 살아남게 되죠.

 

영화 <킬링필드>(1984)를 시작으로 <미션>(1986), <시티오브조이>(1992) 등 굵직한 걸작을 연출한 롤랑 조페 감독. 그의 대부분의 영화에서 카메라는 눈높이의 시점을 유지하며 안정적인 구도로 이룹니다. 다소 단조롭게 보일 수도 있으나, 지루하지 않고 원만한 흐름을 유지하며 연출하는 게 롤랑 조페 감독의 장점이기도 합니다.

영화 초반 군인들과의 협상이 잘 안 된 프란과 그에게 윽박지르는 시드니가 노을을 배경으로 서 있는 장면이 있습니다. 감독은 다음 날 잔혹한 현장으로 어떻게든 떠나려는 두 사람을 아름다운 노을을 뒤로하고 실루엣처리 합니다. 자막과 소리만 없애면 생뚱맞게 어느 휴양지의 모습 같습니다. 어쩌면 18세기의 남미(미션)나 20세기의 인도(시티오브조이), 동남아(킬링필드)는 롤랑 조페 감독에게 있어서 영화의 배경 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선구자 혹은 지식인, 구원자인 서구 백인과 그 대상이 되는 지역의 원주민들의 구도는 그의 세 편의 영화 속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때문인지 이 세 편의 영화 이후 그는 크게 주목받지 못하고 스크린에서 사라집니다.

 

두 사람의 대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석양의 배경

 

영상의 구도는 화면 내 인물과 사물을 배열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그 구도에 따라 내용은 관객에게 다르게 전달되기 때문에 영상의 구도는 감독이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타일과도 밀접하게 관련됩니다. 감독이 갖고 있는 질문의 태도는 카메라를 통해서 관객에게 전달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죠. 영화 <킬링필드>를 통해 롤랑 조페 감독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무엇이었을까요?

<제이슨 본> 시리즈의 폴 그린그래스 감독과 맷 데이먼이 다시 만나 화제가 된 영화 <그린 존>(2010)에 등장하는 ‘그린 존’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정권 붕괴 뒤 바그다드 궁을 개조한 미군의 특별 경계구역입니다. 그 안에는 미군 사령부 및 이라크 정부청사가 자리하며 고급 수영장과 호화 식당, 마사지 시설, 나이트클럽 등이 있으며, 이슬람 국가에서는 금지된 술까지 허용되는 안전지대를 말하죠. <킬링필드>의 프랑스대사관은 정도의 차이가 많으나, 분명 캄보디아 내 ‘그린 존’, 안전지대입니다. 그러나 안전지대라 하더라도 미국에 우호적인 캄보디아인이 크메르 루즈군의 압박 속에서 버티고 살아남기란 쉽지 않습니다. 담장을 사이로 천국과 지옥이 마주하게 되죠. 결국 프랑스대사관에 억류된 서구인들만 고국으로 돌아가고, 프란을 비롯한 캄보디아인들은 수용소로 끌려갑니다.

 

탈출과정에서 프란은 끔찍한 '킬링필드' 현장을 목격하게 된다.

 

<킬링필드>가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다면, 영화 <그린 존>의 이야기는 이라크 전쟁입니다. 둘의 공통점 중 하나는 미국이 논란의 중심에 있다는 거죠. 미 육군 로이 밀러(맷 데이먼) 준위는 이라크 내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상부의 정보에 따라 작전을 수행하지만 번번이 실패합니다. 이에 밀러는 미군의 정보에 의심을 품죠. 이때 이라크 지역주민인 프레디(칼리드 압달라)가 정보를 제보하고, 밀러는 후세인 정부 고위인사들의 모임을 급습하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나 프레디는 자신이 미국을 돕는 게 아니라고 선을 긋습니다.

“왜 이라크의 문제를 당신들 미국이 해결하려고 하나? 난 당신에게 돈을 바라고 제보를 하는 게 아니다. 이라크의 독재정권이 물러나길 바란다. 난 이라크를 사랑한다.”

프레디를 만난 후로 밀러는 충격을 받습니다. 상부의 정보와는 달리 대량살상무기 따위는 애초부터 없었으며, 자신이 이라크에서 하고 있는 일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질문합니다. 카메라는 시종일관 뛰어다니며 밀러의 뒤를, 이라크의 뒷골목을 쫓아다닙니다. 밀러의 혼란, 이라크의 불안한 상황, 프레디의 두려움 등이 흔들리는 카메라 구도 속에 잘 드러납니다. <킬링필드> 속의 시드니-프란과의 관계는 <그린 존>의 밀러-프레디와 유사합니다. 그러나 감독의 질문은 서로 다르죠.

 

너무나 어이없는 결말, <이매진>이라는 노래가 이렇게 부끄럽게 느껴지다니....

 

어쩌면 롤랑 조페 감독에게 필요한 건 시드니를 통한 변명과 자책이 아니라 밀러와 같은 질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영화의 마지막에서 그의 연출은 더욱 더 실망입니다. 크메르 루즈군에게 잡혀간 프란은 죽을 고비를 넘겨 겨우 탈출에 성공합니다. 시드니는 곧 바로 태국 국경으로 건너갑니다. 결국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 프란을 보자마자 시드니는 사과하지만, 프란은 뜬금없이 “용서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 둘 사이로 존 레논의 <이매진>이 맥없이 흐르며 영화는 끝납니다.

시드니는 미국으로 돌아와 프란을 찾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무용하죠. 수용소를 겨우 탈출해 태국 국경까지 오는 건 오로지 프란의 몫이었습니다. 시드니의 기자상 수상식에서 친구인 사진기자 알은 프란을 이용한 거라며 시드니를 비난하지만, 그는 울면서 항변합니다. 자신이 좀 더 노력했어야 했다고 시드니는 자책하기도 하죠. 그러나 수많은 제3세계를 식민지로 만들고 침공했던 서구사회에게 필요한 건 ‘변명’이 아니라 ‘질문’입니다. 그에 비해 롤랑 조페 감독은 잘못을 쉽게 인정하고 불편함을 서둘러 해결하려고 하는 듯합니다.

이후 영화들 속에서 성직자와 원주민(미션), 의사와 농부(노동자)(시티 오브 조이) 등의 구도가 계속 유지되면서 롤랑 조페의 영화들은 ‘백인우월주의’라는 비판을 받습니다. 영화 <킬링필드> 역시 그러한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 영화로 프란을 연기한 응고르는 아카데미 남우조연상을 수상합니다. 극중 시드니가 기자상을 받으며 기사의 절반 이상은 프란의 도움으로 쓰였다는 수상소감을 전하죠. 이 영화 역시 프란을 연기한 응고르에 절반 이상을 기대고 있지만, 캄보디아 출신인 그는 아카데미에서 남우주연상을 받지는 못합니다. 더욱 안타깝게도 그는 미국에서 1996년 크메르 루즈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총에 피살됩니다. 영화 <킬링필드>는 끝났고, 시드니와 프란은 상봉했지만, 캄보디아는 내전의 상처가 아직까지 아물지 않았습니다.

 

 

 

 

댓글 2
  • 2022-01-06 11:15

    고등학교 때 단체관람으로 본 영화.

    지금은, 내용은 기억이 안 나고, 대한극장에서 울리는 헬기 소리가 진짜인 줄 알고 깜짝 놀랐던 기억만 있습니다. 

    옆에서 애들이 자꾸 울어서 오히려 슬프지 않았던... 

    저 해골 무더기, 진짜 무서웠어요. 

  • 2022-01-19 22:24

    저두 이 영화 단체로 봤던 기억이 나네요

    엄청난 해골더미 속을 지나가던 장면도...

    줄거리는 생각이 잘 안 났는데.이 글을 읽으니 뜨문뜨문 떠오르네요.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시 Poetry(2010) | 감독 이창동 | 주연 윤정희 | 135분 | 15세 이상             영화는 개천에서 떠내려 오는 주검을 한 아이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스토리는 ‘누가, 왜 죽였는지’ 밝혀나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관심 역시 대부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서, 왜!!! 그러나 이 영화의 질문은 애초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66세 미자(윤정희). 그녀가 '시'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임을 의심한 이후였다. 스스로 ‘시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해보니 잘 안 써진다. 그러나 그건 사물의 이름이나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증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자가 참가하는 문예교실에서 김용택 시인(극중 김용탁)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그럴 때 느껴지는 무언가를...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사과’가 필요할 때 시 Poetry(2010) | 감독 이창동 | 주연 윤정희 | 135분 | 15세 이상             영화는 개천에서 떠내려 오는 주검을 한 아이가 우연히 발견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미’ 우리는 ‘누군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럴 때 스토리는 ‘누가, 왜 죽였는지’ 밝혀나가는 방식으로 대부분 전개된다. 이는 어쩌면 우리의 관심 역시 대부분 그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해자가 누구인지, 범행 동기는 무엇인지, 어떻게, 어디서, 왜!!! 그러나 이 영화의 질문은 애초부터 다른 곳을 향하고 있었다. 같은 마을에서 중학생 손자와 함께 낡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66세 미자(윤정희). 그녀가 '시'를 배우기 시작한 건 자신이 알츠하이머 초기임을 의심한 이후였다. 스스로 ‘시인 기질’이 있다고 생각했으나, 막상 해보니 잘 안 써진다. 그러나 그건 사물의 이름이나 적절한 단어가 잘 떠오르지 않는 그녀의 증상 때문만은 아니었다. 미자가 참가하는 문예교실에서 김용택 시인(극중 김용탁)은 이렇게 말한다. “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그럴 때 느껴지는 무언가를...
청량리
2022.04.30 | 조회 350
영화대로 42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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띠우
2022.04.17 | 조회 29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기억하자, 우리에게 잊히는 것을 알랭 레네 감독,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1959)         시간이라는 공통분모와 ‘현재성’ 2차 세계대전, 일본이 항복하지 않자 미국은 1945년 8월 두 개의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다. 역사상 최초로 일반시민 학살에 원자폭탄이 사용됐다. 그로부터 14년 후 1959년, 프랑스 여배우인 그녀는 세계평화 메시지를 위한 영화 촬영차 ‘히로시마’를 방문한다. 그곳에서 일본인 남자를 만나고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다. 처음 와 본 히로시마에서 보낸 낯선 남자와 하룻밤. 그러나 그녀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잊고 있었던 ‘느베르’에서의 첫사랑 혹은 그의 죽음을 다시 떠올린다. 영화의 소재는 공교롭게 ‘사랑과 전쟁’ 속에 이뤄진 불륜이지만, 이건 제목처럼 부부클리닉 재현드라마가 아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두 도시, 일본의 히로시마와 프랑스의 느베르는 모두 2차 세계대전의 상처를 갖고 있다. 다만, 히로시마는 집단기록인 ‘역사’를, 느베르는 개인적인 ‘기억’의 문제를 상징하고 있다. 그래서 히로시마는 박물관의 전시내용 혹은 극중 영화 속 반전퍼레이드 장면을 통해 이야기되는 반면, 느베르의 시간은 대부분 그녀에게 일어난 과거 개인적인 사건에 집중한다. 영화가 의도적으로 묻고 있는 ‘집단과 개인’ 혹은 ‘역사와 기억’문제의 교집합은 ‘시간’이다. 역사 속 전쟁은 지난 과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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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리
2022.04.03 | 조회 274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덧없는 죽음의 시대 이장호의 <바보선언(1983)>   1. 절망에서 실험정신이 피어나다   1960년대 활발한 르네상스 시기를 보냈던 한국영화는 1972년 유신헌법 선포를 전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갔다.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과는 반대로 영화소재는 제한되었고, 반공영화나 정책선전 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져 국가정책 홍보에 앞장섰다. 이 시기 상업영화로는 하이틴물이나 에로영화가 대량으로 만들어졌으며 영화제작도 허가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시작했던 이장호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문화예술계를 뒤흔들었던 대마초사건(1975)에 연루된다. 이를 계기로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의식화 과정을 겪는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이어서 선보이면서 197,80년대를 관통해 한국영화의 전통과 현대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영화감독을 자리매김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영화적 실험이 돋보였던 작품이 바로 <바보선언(1983)>이다.     <바보선언>에서 그가 온갖 영화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있다. 이장호는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정권에서도 혹독한 검열을 경험한다. 내놓는 시나리오마다 거부당했던 그는 제작사와의 계약조건 때문에 고소 직전에 이르렀다. 어떤 영화든 찍어야 했던 상황에서 엉망으로 쓴 시나리오로 우선 검열에 통과한다. <바보선언>이라는 제목도 당시 문화관광부 직원과 말하다 우연히 정해졌고, 시나리오를 무시한 채 떠오르는 대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덧없는 죽음의 시대 이장호의 <바보선언(1983)>   1. 절망에서 실험정신이 피어나다   1960년대 활발한 르네상스 시기를 보냈던 한국영화는 1972년 유신헌법 선포를 전후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져갔다. 괄목할만한 경제 성장과는 반대로 영화소재는 제한되었고, 반공영화나 정책선전 영화들이 대거 만들어져 국가정책 홍보에 앞장섰다. 이 시기 상업영화로는 하이틴물이나 에로영화가 대량으로 만들어졌으며 영화제작도 허가없이는 불가능해졌다. 신상옥 감독의 신필름에서 연출을 시작했던 이장호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한국문화예술계를 뒤흔들었던 대마초사건(1975)에 연루된다. 이를 계기로 사회의 어두운 부분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의식화 과정을 겪는다.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비판적 리얼리즘 영화들을 이어서 선보이면서 197,80년대를 관통해 한국영화의 전통과 현대적 감수성을 보여주었던 영화감독을 자리매김한다. 그의 작품 중에서도 영화적 실험이 돋보였던 작품이 바로 <바보선언(1983)>이다.     <바보선언>에서 그가 온갖 영화적 실험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있다. 이장호는 박정희에 이어 전두환 정권에서도 혹독한 검열을 경험한다. 내놓는 시나리오마다 거부당했던 그는 제작사와의 계약조건 때문에 고소 직전에 이르렀다. 어떤 영화든 찍어야 했던 상황에서 엉망으로 쓴 시나리오로 우선 검열에 통과한다. <바보선언>이라는 제목도 당시 문화관광부 직원과 말하다 우연히 정해졌고, 시나리오를 무시한 채 떠오르는 대로 영화를 찍기 시작했다....
띠우
2022.03.14 | 조회 235
영화대로 42길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살아있다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감독, <사마에게, برای سماء, For Sama>(2019)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시리아는 1946년 독립한다. 하지만 이집트와 연합국가 형태를 띠고 있다가, 1960년대 초 연합을 탈퇴하면서 여러 번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결국 정권을 잡은 ‘알아사드’정부가 40년 넘게 부자세습과 독재정치로 시리아를 지배한다. 영화에서도 잠깐 나왔는데,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시민들의 무장투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독재 알아사드 정부를 타도하려는 군 출신들이 반군을 형성하여 대립하고,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종파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슬림의 대부분은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10~15% 정도다. 그런데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는 대부분 시아파 출신들이다. 그래서 시아파 이란과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부군을,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반군을 지원한다. 2012년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이라크에서 발생한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시리아 북부(알레포가 있는 지역)를 점령하면서 시리아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의 북부도시 알레포에는 매일같이 폭격이 쏟아지고 복구 역시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외부의 지원이나 뉴스보도가 거의 끊겨 고립된 상황.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아 나선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와드’와 ‘함자’ 그리고 그들의 딸 ‘사마’...
      언제 어디서나 영화를 볼 수 있지만, 정작 영화에 대해 묻지 않는 시대.  우리는 영화와 삶의 사이길, 영화대로 사는 길에 대한 질문으로,  산업과 자본의 도구가 아닌 영화로서의 영화를 보고 읽습니다.   *본 리뷰에 사용된 이미지에 대한 저작권은 해당 영화에 있습니다.   #살아있다 와드 알-카팁, 에드워드 와츠 감독, <사마에게, برای سماء, For Sama>(2019)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시리아는 1946년 독립한다. 하지만 이집트와 연합국가 형태를 띠고 있다가, 1960년대 초 연합을 탈퇴하면서 여러 번의 군사쿠데타가 일어나고 결국 정권을 잡은 ‘알아사드’정부가 40년 넘게 부자세습과 독재정치로 시리아를 지배한다. 영화에서도 잠깐 나왔는데, 2011년 알아사드 정권의 퇴진을 요구하는 학생들에 대한 무자비한 탄압은 시민들의 무장투쟁으로 이어진다. 여기에 독재 알아사드 정부를 타도하려는 군 출신들이 반군을 형성하여 대립하고, 주변의 아랍 국가들이 개입하면서 종파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 무슬림의 대부분은 수니파이고, 시아파는 10~15% 정도다. 그런데 시리아의 알아사드 정부는 대부분 시아파 출신들이다. 그래서 시아파 이란과 러시아는 알아사드 정부군을, 수니파 사우디아라비아와 미국은 반군을 지원한다. 2012년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이라크에서 발생한 수니파 무장단체 IS가 시리아 북부(알레포가 있는 지역)를 점령하면서 시리아는 거의 무정부 상태에 놓이게 된다. 내전으로 인해 시리아의 북부도시 알레포에는 매일같이 폭격이 쏟아지고 복구 역시 불가능해 보인다. 더구나 외부의 지원이나 뉴스보도가 거의 끊겨 고립된 상황.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한 방법을 함께 찾아 나선다. 지극히 평범한 인물인 ‘와드’와 ‘함자’ 그리고 그들의 딸 ‘사마’...
청량리
2022.02.27 | 조회 2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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