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쓰기 1234] 대칭적 창조를 위하여

동은
2023-06-13 18:26
261

 

대칭적 창조를 위하여

 

 

 

1.

  <대칭성 인류학>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예전에 진행했던 <도시와 영성> 세미나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였다. 그때 같이 읽는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었고, 예전부터 신화나 종교가 궁금했기 때문에 막연히 <대칭성 인류학>이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니 음 재밌긴 한데… 책에서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었다. 신화와 종교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 고고학, 인간의 마음 등등. <대칭성 인류학>을 포함한 [카이에 소바주* 전집]에는 인간의 사상 전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시도하려는 신이치의 다양한 ‘시도’들이 담겨있었다. ‘시도’라고 강조하는 것은 신이치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굉장히 촘촘하고 세밀한 내용이기보다는 하나의 공리를 제시해보는, 이론을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문제의식에는 너무나 깊이 공감이 되면서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자체를 흔들리며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신이치는 911테러를 목도하고 오늘날 이런 야만적이고 윤리적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세상의 ‘대칭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슬람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야만적이라고 칭하는 미국인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보복으로 발생하는 ‘야만’에 대해 질문한다. 인간의 야만스러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 가로수를 돌보지 않고 그냥 잘라버리는 공공기관들, 공장식 축산으로 불필요하게 도살당하는 수많은 동물들, 정의라는 이름으로 생명과 환경을 파괴하는 전쟁. 신이치는 오늘날의 이 수많은 행위가 과거의 문화가 사라지면서 대칭성과 비대칭성의 균형이 무너져 비대칭적인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어 야만스러움이 드러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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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hier Sauvage '야생적 사고의 산책'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처음 사용한 단어로 신이치가 레비 스트로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이 ‘대칭성’은 브루노 라투르의 ‘대칭성 인류학의 시도’에서 착안되어 나온 개념이다. 브루노 라투르는 비대칭성에 대해서도 언급했는데, ‘이것’과 ‘저것’을 가르는 이분법적인 사고이며, 라투르는 이러한 사고가 근대인의 성공의 비결이 되었지만 동시에 위기도 불러왔다고 보았다. 

“이분법적인 사고도 물론 문제가 됩니다. 더 나아가 이분법이 분할한 세계의 두 부분을 서로 다른 방식으로 설명하는 시도도 비대칭성으로 볼 수 있어요. 그 절정은 마르크스주의에서 경험했지요. 마르크스주의에서 과학과 이념의 구분은 근대성 내부의 자연과 사회, 사실과 가치, 대상과 주체를 분할하면서 비대칭성을 드러냈지요.” (국내 제목 <우리는 결코 근대인이었던 적이 없다>)

개인적으로는 신이치가 신유물론자인 라투르의 논지와 닿아있다는 것이 반가웠다. 이해가 더 잘되기도 했고! 내가 라투르를 좋아해서…ㅎㅎ

 

 

 

 

2.

  대칭적 사고가 비대칭적인 현실 사고와 균형적이었던 시기에 대해서 이야기하기 전, 신이치가 주장하는 인지고고학에 대해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신이치는 네안데르탈인과 현생인류 사이에 벌어진 뇌 조직의 변화를 통해 인간의 상징적 사고가 작동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서로 다른 영역의 의미를 중첩 시켜 비유나 상징 같은 '시적 표현'이 가능해졌다고 한다. 이를 계기로 인류는 현실의 평면 세계(세속세계)에서 벗어나 비인간과 인간의 경계를 흐리면서 다차원적인 전체적 사고를 하게 되었다. ‘다차원적인 전체적 사고’란 이를테면 “인간은 야생 염소가 될 수 없고, 야생 염소는 인간이 될 수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을 뒤엎는 ‘논리’가 가능한 것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인류는 전체적 사고를 통해 세상의 이치와 자연의 순리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이후로도 인류는 야생 염소와 인간의 관계나 곰과 인간의 관계, 동물뿐만 아니라 식물과 기후 등등 세계와 적극적으로 연결하고 결합하며 인간의 인식과 존재, 가치를 탐구했다.

 

  물론 선인류가 정말 염소가 인간과 같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다. 선인류 시대에도 인간과 동물은 분명하게 구분되어 이질적인 대상이었다. 신이치를 이를 ‘비대칭적 관계’라고 표현하는데 시적 표현이 가능해진 선인류는 ‘전체적 사고’를 통해 ‘논리적’으로 사냥꾼(인간)과 염소 사이에 동질적인 연관성을 발견했다. 이 연관성을 통해 서로를 분리하기 어려운 유대관계가 만들어지고 이 관계는 현실의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비대칭적인 관계를 전복시켜서 ‘대칭적 원리’를 작동시킨다. 선인류는 이렇게 신화를 만들어 내면서 인간과 자연 사이에 어떤 싸움이나 교섭으로 일종의 타협이 성립된 결과가 곧 세계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분리할 것(비대칭)’과 ‘유대관계를 형성할 것(대칭)’의 원리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 선인류가 자연 속에서 살아가기 위한 지적 능력이었다. 선인류는 인간과 동물뿐만 아니라 삶과 죽음에서도 동질성과 대칭성을 찾아 현실을 극복하려 했다. 신이치는 이 지적 능력이 오늘날의 과학적 사고를 탄생시킨 것과 본질적으로 같은 인간의 내재한 능력이며 이를 ‘유동적 지성’이라 한다.

 

 

  선인류의 사회에서는 이러한 대칭성 사고와 비대칭성 사고, 두 개의 논리구조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에 신이치는 선인류의 사회가 대칭과 비대칭이 ‘복논리’적으로 이루어진 균형적인 사회라고 보았다. 신이치가 이러한 '균형'이 무너졌다고 하는 것은 인간이 주변과 맺고 있던 관계 방식이 바뀌었다는 말과 같다. 더 이상 비인간과의 유대관계를 통해 세상을 이해하지 않고, 비대칭적 논리가 강화되어 대칭적 사고가 억압되고, 결국엔 자연의 힘과 인간의 관계를 차단하는 일신교적 사상이 출현하게 된다. 이렇게 대칭적 사고가 억압되고 있는 오늘날과 과거의 차이를 진단한 신이치는 우리가 잃어버린 관계에 대해 되찾아야 한다고만 말하지 않는다. 다만 '대칭적 관계'도, '비대칭적 관계'도 모두 인간에게 내재한 유동적 지성으로 가능했던 것이기에 그 능력을 믿고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할 뿐이다.

 

 

 

3. 

  대칭적 사고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인간의 유동적 지성이지만, 유동적 지성이 대칭적 사고를 위해서만 작동하지는 않는다. 우리가 대칭적 사고를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신이치는 레비 스트로스의 “신화적 사고는 무의식에서 이루어진다”는 언급을 통해 오늘날의 정신분열증과 레비 스트로스가 말하는 무의식의 유사함을 비교***하면서 분열증-무의식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무의식은 개체화가 아닌 일반화를 지향하며 종種과 강綱같은 객체 구분을 흐려버리고, 선형적인 시간 순서를 무시하고 부분이 전체와 동일하다는 사고가 가능한 영역으로, 무의식 속에서는 감정.  또한 마찬가지로 구분되지 않고 인식되는 상태라고 한다. 비대칭적인 세계에선 이러한 구분과 선형적인 시간 순서뿐만 아니라 감정도 쉽게 구분할 수 있지만, 대칭적인 상태에선 뒤섞인 감정이 그대로 표출되기 때문에 마치 골룸처럼 불안하고 ‘일반적이지 않은‘ 상태로 보여 병리적 문제로 치부되어 버린다. 신이치는 우리가 정신분열적인 망상이라 여기는 상태와 선인류가 만들어 온 신화의 지혜가 깊은 곳에서 구조적으로 일치한다고 보았다.

 

  레비스트로스의 말대로 신화가 무의식 속에서 이루어진다면, 분열증적인 실언들이나 우리가 잠꼬대****로 하는 말이나 꿈속에서 보는 비현실적인 장면들이 같은 작용의 결과이지 않겠냐는 것이다. 하지만 신화는 우주를 탐구한 인간의 진리를 담고 있다고 여겨지고, 분열증은 병으로 치부되어 사회생활에서 배제되어 사회 바깥으로 내몰린다. 무의식의 원리로 오늘날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신화와 분열증. <대칭성 인류학>의 부제가 ‘무의식에서 발견하는 대안적 지성’인 것으로 알 수 있듯이, 신이치는 무의식의 가능성에 주목하며 강하게 억압받고 있는 무의식을 통해 다시 대칭적 사고를 불러일으킬 수 있을 거라 희망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무의식이라는 분열증의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아니, 그 전에 신이치의 주장대로 억압된 인류의 본성인 대칭적 사고를 발현시키면 오늘날 사회의 대칭성이 다시 균형을 이뤄 이 사회의 ‘야만’스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쉽지만 신이치는 자연 세계와 인간의 균형이 무너지게 되면서 자연 세계에 있다고 여겼던 '힘의 원천'을 인간사회의 국가권력이 독점하게 되었고, 점점 자연 세계와 인간사회가 분리되면서 국가 등장 이전까지 지켜온 자연 세계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되었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대칭성을 수호하는 사회에 국가란 없다고 분명히 밝히며 권력이 사회를 유지하는 힘을 독점하게 된다면 비대칭성의 극단인 ‘일의 원리’에 지배당할 것이라 보았다. 결과적으로 신이치는 국가 안에서 유동적 지성으로 가능했던 전체적 사고는 인간사회의 부분적 사고에 한정되리라 전망하고 있다. 적어도 신이치에게는 오늘날의 국가체계에서 대칭성이 유지되는 유동적 지성, 즉 신화적 사고가 발현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럼 어떻게 해야하는가? 어떻게 국가 이전의 과거로 돌아가지 않으면서도 과거의 가치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 아무것도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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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냐시오 마테 블랑코의 분열증 연구를 참고해 비교한다.

**** 어렸을때 동생과 함께 방을 쓸 때, 동생이 “언니 학교에 가서 콩나물 좀 사다줘”라고 잠꼬대를 했던 적이 있다. 동생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멀쩡히 얘기해서 나는 동생이 자고 있는 줄도 몰랐다. 신이치가 말하는 무의식의 발현이라고 하는 것이 이런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4. 

 

 우리는 과거 지향적인, 향수에 젖은 시선으로 과거를 돌아보는 그런 학문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완전히 형이상학화된 세계 속에 살아 있는 야생의 사고를 회복하는 것, 곧 유동적 지성을 본질로 하여 대칭성의 논리로 작동하는 무의식의 작용에 창조적인 표현 형태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대칭성 인류학은 그런 창조적인 지성의 활동으로서 구성되었습니다. (<대칭성 인류학>, 295)

 

  신이치는 지금까지 두 번의 ‘형이상학 혁명*****’이 있었다고 한다. ‘제 1차 형이상학 혁명’에는 비대칭성의 일의 논리가 강화되어 일신교가 등장하게 되었고 ‘제 2차 형이상학 혁명’을 통해 야생의 사고능력(대칭적 사고)이 과학으로 바뀌었다. 오늘날은 2차 형이상학 혁명 이후의 시대이지만 신이치는 기술이나 사회제도, 신화나 제의로 표현되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유동적 지성은 근본적으로 다른 시도를 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주장한다. 대칭과 비대칭도, 컴퓨터의 이진법도, 사물을 이중으로 나누어 복합적으로 사고했던 신화적 사고도, 그 밑에 흐르고 있는 유동적 지성은 같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신이치는 인류의 잠재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인 무의식을 발견했고 이후 다가올 ‘제 3차 형이상학 혁명’을 이야기한다. 유동적 지식을 가지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야한다는 것은 세 번째 형이상학 혁명을 향한 것이었다.

 

 물론 이 3차 혁명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신이치는 ‘창조적인 표현 형태’에 힘을 실어야 한다고 할 뿐이다. 과연 창조적 표현 형태를 무엇이라 보면 좋을까? 나는 본문에서 이러한 요소로 샤먼과 수장, 장군, 하마차(식인) 이니세이션같은 다양한 역할과 의례가 소개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유동적 지성을 갖게 된 이후로 세상을 이해하며 그들이 찾아낸 각자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 다양한 장치로 사회를 유지해 왔다. 이는 이미 세상에 있는 ‘구성된 질서’와 무의식의 대칭적 사고로 ‘스스로 구성한 질서’의 결과로 보인다. 신이치는 사회를 유지하고 있는 오늘날의 장치들 - 화폐, 제도, 법령 - 도 국가 이전의 사회에서 보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계속해서 강조한다.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내재적 능력으로 또 무엇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 발견하기 어려운 무의식의 가능성을 대칭성을 품고 있는 창조적 표현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까? 그 새로운 표현형태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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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셸 우엘벡의 <소립자>에서 사용한 용어다.

 

 

 

5.

  신이치가 주장하는 내용들을 고대 중국의 절기와 연결해 보면 어떨까? 신이치의 책에서는 대부분 일본과 북미와 동북아시아 원주민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한국과 중국의 이야기는 한漢민족이 국가를 세우고 주변 소수민족을 포획하며 국가권력이 커졌다는 몇 문장이 전부일 정도로 짧게 언급될 뿐이다. 그 이유를 유추해 보자면, 중국에는 아주 이전부터 국가형태가 등장했고 지금도 소수민족을 탄압하는 거대 권력국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그런 점에서 “대칭성을 수호하는 사회에 국가란 없다.”는 신이치에게 고대 중국은 일찍이 국가를 통해 대칭성과 비대칭성 사고의 균형이 깨져버린 예시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부족의 과도기를 일찍이 거쳤던 고대 중국에서 그들만의 창조적 표현 형태를 찾아볼 수 있지 않을까? 절기와 한자 염불을 외고 있는 내가 약간이라도 신이치의 주장에 반박을 해볼 수 있는 부분이 없을까(+_+)?

 

  이 지역 사람들은 여름과 겨울의 생활 형태에 철저한 변화를 줍니다. 여름 동안은 공동의 영토에서 어로나 수렵, 채집을 합니다. 이런 작업은 기술을 필요로 하는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활동입니다. (…) 겨울이 왔습니다. 여름에는 넓은 영토에서 가족 단위로 분산해서 오두막을 지어서 생활하고 있었지만, 겨울이 되면 모두 일제히 여름의 오두막을 버리고 한곳으로 모여듭니다. 겨울의 마을이 부활하는 겁니다. (<곰에서 왕으로 >,197)

 

 

 

 

  고대 중국의 절기는 <곰에서 왕으로>에서 소개하는 콰키우틀족의 생활과 일면 비슷해 보인다. 고대 중국 사람들이 발견한 '때'의 구분은 절기로 정리되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는데 절기는 농업의 생산 활동 뿐만 아니라 사람의 마음가짐과도 연결되었다. 사람들은 일정한 시기를 지나는 동안에는 그 시기가 요구하는 것에 따라야 했다. 고대 중국에서도 콰키우틀족처럼 그들이 만들어 낸 시공간의 규칙에 따라 일정한 리듬을 갖춰 생활해 온 시기가 있었으며 두 경우 모두 시기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고, 다른 태도를 갖춰 생활했다. 절기는 농사력으로서 제도 안에서 그들의 경제생활을 해결하는 과정이기도 했지만 시기에 맞춰 제사를 올리고 의례를 실행할 수 있는 지표이기도 했다. 그들이 절기를 통해  세상과 유대적 관계를 맺었다고 볼 수 있다면, 고대 중국에도 대칭적 사고 안에서 조화를 이루고 균형을 맞춰 살아가려 노력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고대 중국에서 이러한 시공간의 구분으로 절기를 만들어 낸 것은 시공간의 지식을 독점하고 있던 권력 계층이었다. 시공간을 구분 짓는 것은 국가 권력을 작동시키는 데 아주 중요한 요소였기 때문에 절기 같은 역법이 비대칭적 사고의 계기가 되었을 것이라 바라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시기의 통치자들은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으로서 맡은 바를 다하기 위해 굉장히 노력했어야 했다. 통치자는 그 자리에서 세상의 모든 위치를 배정하는 자였으며 각각의 시공간이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세상의 흐름을 유지할 수 있는 자로 여겨졌다. 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어떤 태도’에서 가능성을 찾고 있는 것 같다. 고대 중국은 일찍이 세상이 계속해서 변한다는 사실을, 변한다는 사실 만큼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받아들였다. 그러니 고대 사람들에게 계절이나 날씨 같은 자연의 변화를 피하거나 없앤다는 건 떠올릴 수 없는 발상이었다. 어차피 세상이 변한다면, 그 변화와 함께 사는 것이 그들에게 '잘 사는 방법'이었던 것이다. 국가권력으로서 세계를 통치의 관점에서 바라보더라도 그 통치자는 하늘과 인간을 연결하는, 어쩌면 샤먼과 같은 사람이지 않았을까? 나는 절기를 자연세계의 진리를 완전히 인간 내부 세계로 갈취해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끊기 위한 제도나 법령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문화로서 관계를 지키기 위한 하나의 창조적 시도로 바라보고 싶다.

 

  한자에 담겨있는 대칭적 사고에 대해서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오랜 시간 동안 선인류는 국가권력을 거부했던 것처럼 언어를 기호화시키는 문자에 대해서도 오랜 시간 거부해 왔다고 한다. 한자도 절기와 마찬가지로 국가에서 제사를 지내며 거북이 등딱지나 소뼈에 새겼던 기호로부터 발전되었다. 다만 한자는 6000년 이상 그 시스템을 오늘날까지 유지해 온 유일한 문자다. 초기 갑골문 상태를 보면 선인류가 벽화로 남겨두었던 흔적과 비슷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한자가 발전하는 과정에서 그 형태가 신이치가 말하는 ‘대칭적 사고’와 비슷하게 소리를 도형으로 표현하거나 은유적으로 표현된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그러다 일정한 규칙이 생기면서 수만 개의 문자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한자 중에서는 육서로 설명되지 않는 한자도 많으며 여전히 초기에 만들어진 문자가 사라지지 않고 오늘날까지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한자의 굴곡을 보면 신이치가 말하는 유동적 지식의 여러 작용을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니 어떤 한자에서는, 신이치가 말하는 대칭적 사고가 드러나는,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을 찾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만약 이런 해석이 가능하다면 한자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얻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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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락시아를 향해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을 읽고   쾌락에 대한 오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은 쾌락이라고 했다. 쾌락이라니... 아마도 사람들은 쾌락이 고상한 철학자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쾌락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향락, 방탕함 등을 자연스레 떠올리면 말이다. 그렇지만 사전적 의미의 쾌락은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을 뜻한다. 그리고 사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도 이런 의미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에피쿠로스주의’가 전용되어 감각적 향락주의, 즉 육체 탐닉이라든가 식도락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실제 에피쿠로스 당대에도 에피쿠로스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티몬은 에피쿠로스에 대해 “자연철학자 중에서 가장 후안무치한 자, 사모스에서 온 문법학교 교사, 모든 살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완고하고 다루기 힘든 자”라고 평했다. 에피쿠로스에 적대적이었던 스토아학파 철학자 디오티모스는 에피쿠로스가 50통의 음란한 서신을 썼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에픽테토스는 에피쿠로스를 음탕한 말을 늘어놓는 자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심지어 에피쿠로스 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중도에 떠난 티모크라테스는 에피쿠로스가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 때문에 하루에 두 번이나 토했고, 밤늦게까지 벌어지는 철학 토론과 비밀 회합을 자신도 지긋지긋해했다고 주장했다. 비난의 이유 중 매춘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비난은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의미를 알면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어댄 이유는 아마도 에피쿠로스학파가 ‘정원’을 꾸려 공동체생활을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신비주의는 때로 황당한 소문을 낳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많은...
아타락시아를 향해 『에피쿠로스의 네 가지 처방』을 읽고   쾌락에 대한 오해 고대 그리스 철학자 에피쿠로스는 행복한 삶의 시작이자 끝은 쾌락이라고 했다. 쾌락이라니... 아마도 사람들은 쾌락이 고상한 철학자의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쾌락이라는 단어에서 연상되는 향락, 방탕함 등을 자연스레 떠올리면 말이다. 그렇지만 사전적 의미의 쾌락은 유쾌하고 즐거움. 또는 그런 느낌을 뜻한다. 그리고 사실 에피쿠로스가 말한 쾌락도 이런 의미이다.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본래 에피쿠로스의 철학을 가리키는 말이었던 ‘에피쿠로스주의’가 전용되어 감각적 향락주의, 즉 육체 탐닉이라든가 식도락 등을 의미하게 되었다고 한다.(네이버)   실제 에피쿠로스 당대에도 에피쿠로스에 대한 비판이 많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티몬은 에피쿠로스에 대해 “자연철학자 중에서 가장 후안무치한 자, 사모스에서 온 문법학교 교사, 모든 살아 있는 것 중에서 가장 완고하고 다루기 힘든 자”라고 평했다. 에피쿠로스에 적대적이었던 스토아학파 철학자 디오티모스는 에피쿠로스가 50통의 음란한 서신을 썼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에픽테토스는 에피쿠로스를 음탕한 말을 늘어놓는 자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심지어 에피쿠로스 학교에서 수학하다가 중도에 떠난 티모크라테스는 에피쿠로스가 방탕하고 사치스러운 삶 때문에 하루에 두 번이나 토했고, 밤늦게까지 벌어지는 철학 토론과 비밀 회합을 자신도 지긋지긋해했다고 주장했다. 비난의 이유 중 매춘도 빠지지 않았다. 물론 이런 비난은 에피쿠로스의 쾌락의 의미를 알면 믿을 수 없는 것이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비난을 퍼부어댄 이유는 아마도 에피쿠로스학파가 ‘정원’을 꾸려 공동체생활을 했기 때문이지 않을까? 신비주의는 때로 황당한 소문을 낳게 마련이니까. 그리고 오히려 이러한 많은...
토용
2023.08.28 | 조회 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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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피터 고프리스미스, 『아더 마인즈』       나의 문어 선생님 친정집 제사상에는 늘 삶은 문어가 올라왔다. 제사가 끝나면 문어를 먹기 좋게 잘라 음복을 한 뒤 술안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곤 했다. 그렇게 내게 문어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숙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을 통해 만난 문어는 한낱 먹거리가 아니었다. 문어는 한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연의 신비와 생명에 대한 경이를 되살려 그를 다시 살게 한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였다.   다시 문어를 만났다. 이번에는 영화가 아니라 책 <아더 마인즈>로. 이 책의 저자인 철학자 피터 고프리스미스 역시 <나의 문어 선생님>의 주인공과 같은 스쿠버 다이버다. 그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문어를 만났고, 문어를 관찰하고, 문어의 마음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은 마음의 탄생에 대한 탐구로까지 나아갔다. <아더 마인즈>에서 시작한 그의 물음은 더 심화되어 의식과 마음의 진화 그리고 생명의 의미를 탐색하는 <후생동물>을 쓰게 되기에 이르렀다. 두 권의 책 모두 진화론의 관점에서 마음과 의식의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인간이 진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 보는 관점에 매우 비판적이다. 두권의 책 모두에서 마음과 의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최근의 과학과 철학의 첨예한 담론들을 건드리며 전개된다. 사실 이 담론들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이 글에서는 마음과 의식의 진화보다는 문어를 알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마음과 의식의 진화 문제는 살펴보아야 할 쟁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관련한 공부가...
문어가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 피터 고프리스미스, 『아더 마인즈』       나의 문어 선생님 친정집 제사상에는 늘 삶은 문어가 올라왔다. 제사가 끝나면 문어를 먹기 좋게 잘라 음복을 한 뒤 술안주로 초고추장에 찍어 먹곤 했다. 그렇게 내게 문어는 특별한 날에만 먹는 숙회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넷플릭스 다큐 <나의 문어 선생님>을 통해 만난 문어는 한낱 먹거리가 아니었다. 문어는 한 인간의 아픔을 치유하고 자연의 신비와 생명에 대한 경이를 되살려 그를 다시 살게 한 신비롭고 놀라운 존재였다.   다시 문어를 만났다. 이번에는 영화가 아니라 책 <아더 마인즈>로. 이 책의 저자인 철학자 피터 고프리스미스 역시 <나의 문어 선생님>의 주인공과 같은 스쿠버 다이버다. 그는 스쿠버다이빙을 하면서 문어를 만났고, 문어를 관찰하고, 문어의 마음에 대해 물었고, 그 물음은 마음의 탄생에 대한 탐구로까지 나아갔다. <아더 마인즈>에서 시작한 그의 물음은 더 심화되어 의식과 마음의 진화 그리고 생명의 의미를 탐색하는 <후생동물>을 쓰게 되기에 이르렀다. 두 권의 책 모두 진화론의 관점에서 마음과 의식의 문제에 접근한다. 그는 인간이 진화의 정점에 서 있다고 보는 관점에 매우 비판적이다. 두권의 책 모두에서 마음과 의식에 대한 철학적 탐구는 최근의 과학과 철학의 첨예한 담론들을 건드리며 전개된다. 사실 이 담론들은 매우 흥미로운 주제이긴 하지만 이 글에서는 마음과 의식의 진화보다는 문어를 알아가는 것에 초점을 맞추려고 한다. (마음과 의식의 진화 문제는 살펴보아야 할 쟁점이 많을 뿐만 아니라 관련한 공부가...
요요
2023.06.17 | 조회 4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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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스티븐 핑거, 동녘 사이언스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수 없는 생각들, 웃고 화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두려움, 걱정, 사랑, 충동이나 욕구 등은 모두가 마음작용이다. 종교나 철학에 대한 신념, 관계의 형성, 그리고 자아에 대한 의식도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그리고 마음을 가진 존재는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상호작용하는가? 20세기 들어 마음을 더 이상 신비 혹은 형이상학의 영역 속에 남겨두지 않고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내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20세기 중반의 인공지능 연구에서부터 신경생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인지과학 분야의 연구와 최근의 진화심리학까지.     스티븐 핑커가 정의하는 마음이란   스티븐 핑커Pinker는 “마음은 어떻게 작용하는가”How The Mind Works란 책에서 인지과학, 진화생물학 그리고 기타 다른 과학적 논문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마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마음은 자연선택이 우리 조상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식량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특히 사물, 동물, 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 설계한 기관들의 연산체계이다’(p.48)라는 것이다. 좀더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마음은 뇌의 활동이다.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이며 사고는 일종의 연산이다. 마음은 여러 개의 모듈 즉 마음 기관(Demon,악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모듈은 이 세계와의 특정한 상호작용을 전담하도록 진화한 특별한 설계를 가지고 있다. 모듈의 기본 논리는 우리의 유전자 프로그램에 의해 지정된다. 이러한 모듈들의 작용은 인간의 진화사(進化史) 대부분을 차지하는...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스티븐 핑거, 동녘 사이언스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수 없는 생각들, 웃고 화내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두려움, 걱정, 사랑, 충동이나 욕구 등은 모두가 마음작용이다. 종교나 철학에 대한 신념, 관계의 형성, 그리고 자아에 대한 의식도 마음에서 비롯된다. 마음은 무엇인가. 어디에서 생겨나는가, 그리고 마음을 가진 존재는 어떻게 보고, 생각하고, 느끼고, 상호작용하는가? 20세기 들어 마음을 더 이상 신비 혹은 형이상학의 영역 속에 남겨두지 않고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내려는 노력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20세기 중반의 인공지능 연구에서부터 신경생리학을 비롯한 다양한 인지과학 분야의 연구와 최근의 진화심리학까지.     스티븐 핑커가 정의하는 마음이란   스티븐 핑커Pinker는 “마음은 어떻게 작용하는가”How The Mind Works란 책에서 인지과학, 진화생물학 그리고 기타 다른 과학적 논문이나 자료를 바탕으로 지금까지 마음에 관한 과학적 연구 성과를 가늠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그의 주장의 핵심은 ‘마음은 자연선택이 우리 조상들을 대상으로, 그들이 식량을 채집하는 과정에서 특히 사물, 동물, 식물 그리고 다른 사람을 이해하고 정복하는 과정에서 직면했던 문제들을 해결해 주기 위해 설계한 기관들의 연산체계이다’(p.48)라는 것이다. 좀더 풀어서 설명하면 이렇다. 마음은 뇌의 활동이다. 뇌는 정보를 처리하는 기관이며 사고는 일종의 연산이다. 마음은 여러 개의 모듈 즉 마음 기관(Demon,악마)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모듈은 이 세계와의 특정한 상호작용을 전담하도록 진화한 특별한 설계를 가지고 있다. 모듈의 기본 논리는 우리의 유전자 프로그램에 의해 지정된다. 이러한 모듈들의 작용은 인간의 진화사(進化史) 대부분을 차지하는...
가마솥
2023.06.14 | 조회 254
세미나 에세이 아카이브
  대칭적 창조를 위하여       1.   <대칭성 인류학>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예전에 진행했던 <도시와 영성> 세미나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였다. 그때 같이 읽는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었고, 예전부터 신화나 종교가 궁금했기 때문에 막연히 <대칭성 인류학>이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니 음 재밌긴 한데… 책에서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었다. 신화와 종교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 고고학, 인간의 마음 등등. <대칭성 인류학>을 포함한 [카이에 소바주* 전집]에는 인간의 사상 전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시도하려는 신이치의 다양한 ‘시도’들이 담겨있었다. ‘시도’라고 강조하는 것은 신이치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굉장히 촘촘하고 세밀한 내용이기보다는 하나의 공리를 제시해보는, 이론을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문제의식에는 너무나 깊이 공감이 되면서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자체를 흔들리며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신이치는 911테러를 목도하고 오늘날 이런 야만적이고 윤리적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세상의 ‘대칭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슬람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야만적이라고 칭하는 미국인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보복으로 발생하는 ‘야만’에 대해 질문한다. 인간의 야만스러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 가로수를 돌보지 않고 그냥 잘라버리는 공공기관들, 공장식 축산으로 불필요하게 도살당하는 수많은 동물들, 정의라는 이름으로 생명과 환경을 파괴하는 전쟁. 신이치는 오늘날의 이 수많은 행위가 과거의 문화가 사라지면서 대칭성과 비대칭성의 균형이 무너져 비대칭적인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어...
  대칭적 창조를 위하여       1.   <대칭성 인류학>을 읽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은 예전에 진행했던 <도시와 영성> 세미나 인터뷰를 했을 때부터였다. 그때 같이 읽는 사람들이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었고, 예전부터 신화나 종교가 궁금했기 때문에 막연히 <대칭성 인류학>이 재밌을 것 같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읽고 나니 음 재밌긴 한데… 책에서는 생각보다 광범위한 내용들을 다루고 있었다. 신화와 종교뿐만 아니라 경제와 문화, 고고학, 인간의 마음 등등. <대칭성 인류학>을 포함한 [카이에 소바주* 전집]에는 인간의 사상 전반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시도하려는 신이치의 다양한 ‘시도’들이 담겨있었다. ‘시도’라고 강조하는 것은 신이치가 주장하는 내용들이 굉장히 촘촘하고 세밀한 내용이기보다는 하나의 공리를 제시해보는, 이론을 세워가는 과정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나는 그의 문제의식에는 너무나 깊이 공감이 되면서도 책을 읽는 과정에서 내가 알고 있는 내용 자체를 흔들리며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이 있었다.     신이치는 911테러를 목도하고 오늘날 이런 야만적이고 윤리적이지 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 세상의 ‘대칭성**’이 무너졌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는 이슬람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야만적이라고 칭하는 미국인들을 보며 아무렇지 않게 보복으로 발생하는 ‘야만’에 대해 질문한다. 인간의 야만스러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경제적 논리에 따라 가로수를 돌보지 않고 그냥 잘라버리는 공공기관들, 공장식 축산으로 불필요하게 도살당하는 수많은 동물들, 정의라는 이름으로 생명과 환경을 파괴하는 전쟁. 신이치는 오늘날의 이 수많은 행위가 과거의 문화가 사라지면서 대칭성과 비대칭성의 균형이 무너져 비대칭적인 논리가 세상을 지배하게 되어...
동은
2023.06.13 | 조회 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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