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곰 21일차 - 궁상과 에코의 차이

곰곰
2021-09-29 2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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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생각해보면, 집안 사정이 많이 어렵거나 한 것도 아니었는데 우리 아빠는 자원이든 재물이든 뭐든 많이 아꼈다. 밥풀 하나 못 남기게 했고, 불은 꼭 꺼라, 물은 받아써라 등등 잔소리가 많았다. 당시 다른 친구네 놀러 가도 그런 부모님은 없었기에, 어린 마음에 아빠의 그런 모습은 늘 궁상이었다. 왜 궁상 앞에는 지지리가 붙는지. 그때는 (그리고 지금도) 지지리도 궁상이 싫었다.

 

 

오늘 나는 화장실에 물 받을 용기를 가져다 두었다. 이제 날씨가 쌀쌀해져서 샤워물이 따듯해 졌는데, 따듯한 물이 나올 때까지 물을 받아뒀다가 나중에 다른 데 설거지나 청소, 빨래 할 때 재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요즘 나는 (아빠처럼) 그렇게 불필요한 전등을 끄러 다니고 흘려보내지는 물을 받아 사용하려 한다. 어떻게 하면 에너지 절약, 환경 보호를 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이거, 궁상인가? 

 

 

늘 궁상과 에코 사이에서 갈등이었다. 지긋지긋했던 아빠와 내가 오버랩되면서 (물론 아빠 정도 되려면 아직 멀었다) 그런 모습이 좀 싫었다. 주위에는 에너지 펑펑 쓰며 잘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만 궁상 떠는 것 같고 내 실천 따위가 무슨 대순가 싶기도 했다. 

 

 

그런데 궁상과 에코... 일어나는 현상은 같지만 전혀 다른 거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지금 분명 궁상이 아니다. (아니다. 아니다... 지금도 그렇게 세뇌 중이다...ㅋ) 에코첼린지 일지를 쓰면서 내가 하는 것과 아빠가 하는 것이 아주 싫지만은 않아졌다. 내 마음이 조금 바뀌었다. 전기세를 아끼고 물세를 아끼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다. 어이없이 많이 소비되는 물건들과 불필요하게 낭비되는 에너지를 아껴 조금이나마 환경에 도움이 되고 싶은 것이다.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완벽하게 뭔가를 한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불필요한 곳의 자원과 에너지를 줄여서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고 싶고, 그렇게 노력하고 싶다.

 

 

다른 샘들의 일지를 보며 작은 변화를 하나둘 목격할수록 좋은 에너지를 얻을 때가 많았다. 나도 더 유심히 찾아보게 되었고, 혼자 고민하고 애쓰는 게 아니란 사실을 알고 나자, 억울한 마음(?)도 좀 풀렸다. 함께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어 참 든든했다. 공생자행성은 서로 공감하고 격려하며 더 나은 환경을 그리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예전에는 ‘나 같은 사람이 또 있을까? ‘생각했다면, 이제는 ‘오늘도 어디선가 에코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라는 마음으로 바뀌었다. 개인이 바꿀 수 있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방법을 찾고 변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함께하면 쉽고 해볼 만한 일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굳이 왜’ 대신 '나도 함께한다'라고 생각해보면 어떨까.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유명한 대사가 있다. 

“같은 길을 걷겠소?” 

이병헌의 멋진 목소리로 이 말을 하면 누군들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전쟁 통에 총 맞을 일은 없으니 지구와 우리를 위한 이 길을 함께 쭉- 걸어 봅시다!!

 

댓글 7
  • 2021-09-29 22:52

    '지지리' 궁상떤다는 말대신

    '고귀한 궁상씨'라고 부르겠어요.

    (작년부터 저는 '궁상'이라는 단어를 좋아하고있거든요ㅋ~)

     

    왜 내가 굳이! 라는 '억울한 마음' 들지않도록

    '함께' 고귀한 궁상(꽃)을 피워보겠어요.

     

    세미나 할 때와는 다른,

    생활인 곰곰샘 모습. 

    그리고 일지들.

    오래 마음에  남을듯합니다. 고맙습니다.

    ^______^

  • 2021-09-30 00:28

    곰곰님이 우리가 함께 한 길을 멋지게 갈무리^^

    에코와 궁상이라…

    전 사실 지금의 삶 속에서 에코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삶은 궁상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것을 빚지고 살고 있는데 눈가리고 아웅한다고 할까ㅋ

    혼자 사는게 아니니 어렵고 괴롭고 힘이 들기도 하겠죠

    그런데 그래서 또 살아볼만한 것 같아요. 

    다른 방식의 우정이나 환대가 

    그 안에서 가능하다는 것도 동시에 아니까요

    다음주에 못다한 이야기 나눠보아요~
    고맙습니다^^

  • 2021-09-30 11:47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당연했던 일들이 너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아요. 

    아끼고, 나누고 했던 걸들을 폄하하고 마치 혼자, 뭘 해야 멋진 것처럼 만들어 버려서...

    곰곰샘이 만들고, 고치는 걸 보면서 약간 대리만족(?) 같은 게 있었어요. 

    앞으로 샘이 만드시는 것들은 또 어떤 것들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 2021-09-30 19:21

    저도 궁상이라는 말이 언젠가부터 부정적인 느낌보다 긍정적인 느낌이 더 많이 생기는 단어입니다.  토토로님의 '고귀한 궁상씨'라는 말이 참 좋습니다. ^^

  • 2021-10-01 14:57

    저 머리는 곰곰샘의 알토 톤으로 음성지원되어 들려오네요~ 같이 가지시면 가지요^^

     

     

  • 2021-10-01 21:04

    궁상과 에코가 이렇게 엉기는 군요^^ 애쓰셨습니다~~ 궁상에서 에코로 도약하시느라^^

  • 2021-10-14 08:30

    궁상도 에코도 다 이름일뿐

    지구의 뭇 생명들과 함께 잘 살아보려는 애틋한 마음이 아름답네요

    이런 친구들 옆에 있어 나도 덩달아 쫌 예뻐보여 다행

    아닌가? 두드러지게 추해보일 수도 ㅋㅋㅋ